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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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이드의 구독자 _ 젠틀맨, 가이 리치 감독

# 0. Ladies and Gentlemen, Please Welcome.        가이 리치 감독,『젠틀맨 :: The Gentlemen』입니다.     # 1. 가이 리치가 돌아왔다. 셜록 홈스, 킹 아서, 알라딘을 돌아 무려 12년 만에 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줄 작품을 가지고 말이다. 낡은 술집 귀퉁이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허풍 가득한 이야기가 타란티노스러운 리드미컬한 플롯 위에 펼쳐진다. 화려한 수사학적 과장으로 가득한 묘사, 현란한 촬영과 편집의 기교도 충만하다. 위선적 교양이 지저분한 액션으로 탄로 나는 시퀀스의 완급은 능숙하다. 애드거 라이트의 그것만큼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누가 보더라도 누가 만든 건지 알아볼 수 있을 법한 스타일 역시 그..

Action 2024.04.24 2

뱀파이어 힐스 _ 죽어야 사는 여자,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 0. 50대 중년에겐 두 갈래 길이 있다. 40대처럼 보이려 발버둥 치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죽어야 사는 여자 :: Death Becomes Her』입니다. # 1. 가끔은 아쉽다. 50대 중년에게 '멋진 50대가 된다'라는 선택지는 정녕 없는 걸까. 만약 그런 선택지가 있었다면 40대처럼 보이려 발버둥 치는 사람은 조금 덜 괴롭지 않았을까. 자조적으로 포기해 버린 사람도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예로 든 것일 뿐 비단 50대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젊어 보인다는 말이 칭찬으로 통용되는 것은 세대를 막론한다. 40대는 30대로 보이고 싶어 하고, 30대는 20대로 보이고 싶어 하고, 20대는 10대로 보이고 싶어 한다. 이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은..

SF & Fantasy 2024.04.20 0

Recommended Movies

완벽 ⅰ _ 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 감독

# 0. 천재 감독이 인생 역작을 만들면 이런 결과물이 나옵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 『그래비티 :: Gravity』입니다. # 1. 관객을 가지고 노는 솜씨는 예술입니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기술을 동원해 시각과 청각을 흔들 수 있는 방법을 이상적인 형태로 총집합시켜놓은 듯 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600km 상공에선 생명이 사는 게 불가능하다'는 상투적인 문구와 함께 시작합니다. 사실 일련의 문구들은 큰 의미는 없습니다. 그저 관객이 스크린을 가까이에 있는 평면으로 받아들이게끔 하기위해 동원된 문장에 불과하죠. 관객의 등을 의자에서 떼어 내 스크린 앞으로 끌어당긴 감독은 연이어 600km 상공에서 내려다본 지구를 압도적인 스케일로 보여줍니다. 눈 앞에 있던 평면에 어마어마한 깊이감이 생깁니다...

SF & Fantasy 2019.02.20 0

빌 머레이의 옥중일기 _ 사랑의 블랙홀, 해럴드 래미스 감독

# 0. 한국어 제목은 대체 누가 지은 걸까요? 어느 분이신지는 몰라도 영화의 개봉 연도를 생각하면 연배가 제법 되실 것 같긴 합니다만, 실례를 무릅쓰고 여쭤보건대 선생님은 좀 맞아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에... 사랑의 블랙홀이라니. 아니, 의사 양반, 이게 무슨 소리야! '해럴드 래미스' 감독, 『사랑의 블랙홀 :: Groundhod Day』 입니다. # 1. 원제는 입니다. 우리에겐 성촉절이라 번역되는 기념일이죠. 북미산 마멋의 다른 이름인 그라운드 호그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동굴에서 나오다 자신의 그림자를 뒤돌아보면 겨울이 6주 더 이어지고 그냥 나오면 봄이 온다는, 뭐 그런 설화의 날입니다. 어쨌든 겨울과 봄의 경계 즈음에 있는 날이니까 우리로 치면 '경칩' 정도 되겠네요. Groundhog day..

Comedy 2019.01.24 2

성인용 인사이드 아웃 _ 펀치 드렁크 러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 0. 이란 영화를 아시나요? 2015년 혜성같이 나타나 다 죽어가던 픽사를 구해낸 2010년대 애니메이션사를 돌아볼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될 명작이죠. 주제의식과 아이디어, 이를 구축하는 이야기의 풍부함과 치밀함, 표현의 창의력과 유려함에 있어서 호평을 받기에 충분한 작품입니다. 만 뭐 이건 평론가들이 하는 얘기구요. 어느새 예비군도 끝난 찌들대로 찌들어 버린 아저씨에겐 장르 자체에서부터 심심하지 않을 도리는 없는 영화였죠. 아이디어는 신선하고 재밌는데... 이런 인사이드 아웃 비슷한 느낌의 매운 맛 영화는 어디 없을까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펀치 드렁크 러브 :: PUNCH-DRUNK LOVE』 입니다. # 1. 그 영화 여기 있습니다. 뒤집어 까놓은 양말 같은 영화입니다. 주인공 머릿속에..

Comedy 2019.01.14 2

스칼렛 요한슨 목소리 삽니다. 선제시 _ 그녀, 스파이크 존즈 감독

# 0. 변태 감독이 부리부리한 눈이 매력적인 배우를 불러다 찐따 같은 헤어스타일에 콧수염을 붙인 다음 컴퓨터 프로그램과 폰섹스를 하게 만들고 까이게 만들어 0 고백 1 차임의 나락으로 떨어트린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주소록에 여자번호라곤 엄마밖에 없는 우리 모태솔로들도 기술적 특이점까지만 버티면 스칼렛 요한슨 목소리를 한 여친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도 주는 작품이죠. 한 작품으로 인싸에겐 빅엿을 먹이고 아싸에겐 정신승리를 안기다니. 역시 아카데미 각본상은 아무나 타는 게 아닙니다. 잠시 애인이 있다는 상상을 해봅시다. 아, 진정하시구요. 상상 정도는 해 볼 수 있는 거잖아요? 꼼냥 거리는 상상 연애는 각자 많이들 해 보셨을 테니 과감히 생략하고 있지도 않은 애인이 바람이 난 단계로 넘어갑시다..

SF & Fantasy 2019.01.10 4

HELLO, HOW ARE YOU, WHO ARE YOU _ 김씨표류기, 이해준 감독

# 0. 『천하장사 마돈나』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키덜트 한진우 박사를 데려다 살을 뒤룩뒤룩 찌우게 만들어 성전환 수술을 꿈꾸는 트랜스젠더 씨름 선수로 만든 미친 영화죠. 짝사랑하는 선생님은 초난강, 씨름부 감독은 백윤식, 쿵짝을 맞추는 동료는 개그맨 문세윤입니다. 막장 영화 아니냐구요? 전혀요. 주연 류덕환은 천하장사 마돈나로 그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을 비롯한 7개의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휩쓸게 되는걸요. 이 골 때리는 영화를 만든 사람이 2009년 차기작이라고 가져온 영화가 바로 이 작품입니다. 천만명이 사는 서울 한복판에 표류된 남자를 다룬 케스트 어웨이. '이해준' 감독, 『김씨표류기 :: Castaway on the Moon』 입니다. # 1. 남자 김씨는 신용불량자입니다. 부모의 무모한 기대, ..

Comedy 2018.12.17 0

언젠가 4월이었을 당신에게 _ 4월 이야기, 이와이 슌지 감독

# 0. 일본 영화 좋아하시나요? 일본 영화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뇨, 애니메 말구요. 아뇨, 빌어먹을 코스프레 특촬물 말구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나 『지금 만나러 갑니다』. 혹은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나 『바닷마을 다이어리』 같은 영화들 말이죠. 글쎄요. 저는 말보다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다. 약간은 게슴츠레하게 뜬 눈을 슬쩍 사선으로 올려다보며 무언가를 회상하는 사람. 피식 웃는 입꼬리는 한쪽만 가볍게 올라가고, 마음속 깊이 쌓인 무언가를 숨에 담아 긴 호흡에 내보내는 소리가 들리는 그 순간. 언제든 자리를 뜰 수 있다는 듯 어설피 걸터앉은 엉덩이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한가로운 오후 하늘을 올려..

Drama 2018.12.13 0

역설로 빚은 잔혹동화 _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안국진 감독

# 0. 빈방이 있습니다. 각진 빈방을 노려보던 감독은 창문과 문이 거꾸로 매달리게끔 방을 뒤집습니다. 침대를 거꾸로 천장에 붙입니다. 협탁과 수납장 역시 천장에 뒤집어 붙입니다. 책상도 의자도 붙입니다. 이불과 배게, 카펫, 거울, 그 외 사소한 장식 모두 빠짐없이 거꾸로 매답니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앨리스를 방에 들여보냅니다. 눈 앞에 모든 것이 뒤집힌 세상이 보입니다. 어지럽네요. 다행히 감독의 생각을 이해한 성실한 주인공은 스스로의 몸도 천장에 거꾸로 매답니다. 그랬더니 어머나. 모든 것이 뒤집힌 세상이 잔인하리만치 똑바르게 보이지 뭐예요. '안국진' 감독,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Alice In Earnestland』 입니다. # 1. 모든 것을 뒤집어 세상을 적나라하게 비추려 드는 ..

Drama 2018.12.10 0

밀려나 버린 것들, 지워져 버린 것들 _ 이다,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 0. 전쟁이 할퀴고 간 참혹한 상처. 원래의 길에서 밀려나 버린 것들, 지워져 버린 것들. 그들이 만들어 낸 공백입니다. 세상은 정적이고 엄숙하고 삭막하며 육중합니다. 색과 온기를 잃습니다. 사람들은 얼굴만 겨우 보일 정도로 밑바닥으로 끝으로 밀려납니다.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이다 :: Ida』 입니다. # 1. 어디서 뭘 하는지 원망스러운 신을 모시는 수도원입니다. 대화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귀퉁이로 밀려나는 동안 빈자리는 건조하고 차가운 여백이 차지합니다. 카메라는 픽스되어 있습니다. 인물들은 전시되어 있습니다. 최소한의 목소리는 앵글 밖에 있는 사람에게 맡깁니다. 생동감은 극단적으로 제한됩니다. 관객은 메마르게 정지된 시간을 관찰하게 됩니다. # 2. '안나'는 정식 수도자가 될 서원식..

Drama 2018.11.22 0

폭주하는 해방감 _ 친절한 금자씨, 박찬욱 감독

# 0. 최고의 한국영화가 뭐라 생각하냐 물으신다면 아무래도 을 고를 듯합니다. 하지만 과 중 뭘 보겠느냐 물으신다면 라 답할 겁니다. 만약 박찬욱 최고의 영화가 뭐냐 물으신다면 역시 를 꼽을 듯합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 영화 중, 아니 한국 영화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 물으신다면 전 이 영화를 고르겠습니다. '박찬욱' 감독, 『친절한 금자씨 :: Sympathy for Lady Vengeance』입니다. # 1. 의 주제 의식에 관한 해석은 대충 구글링만 해 봐도 징글징글하게 많이 나옵니다. ⑴ 금자의 뿌리 깊은 죄책감과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에 대한 탐구라든지, ⑵ 천사는 내가 부를 때만 나타난다는 둥의 편의적이고 왜곡된 종교관이라든지, ⑶ 야매 미용실에서의 기도 후 개의 몸을 ..

Thriller 2018.10.25 2

다섯 번째 유령 ⅰ _ 퍼스널 쇼퍼,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 0. 삶의 이유를 지배하는 유령. 불안함과 두려움을 대변하는 유령. 금기에 대한 숨겨진 욕망을 끄집어내는 유령. 희망과 안식의 도피처로서의 유령. 그 한 가운데 표류하는 주인공의 내면에 대한 집요한 탐구입니다. 매력적인 반전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죠.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퍼스널 쇼퍼 :: Personal Shopper』입니다. # 1. '모린'은 '키라'의 퍼스널 쇼퍼입니다. 모린은 그녀에게 직업적으로 경제적으로 복무합니다. 모린의 시간과 땀은 키라의 삶을 더욱 화려하고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값비싼 보석과 화려한 드레스를 구매하는 순간엔 마치 주인이라도 되는 양 결정을 내리곤 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들은 그녀의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가질 수 없는 거라면 볼 일 없었더라면 ..

Thriller 2019.10.01 0

3분 20초 _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감독

# 0. 1970~80년대 모타운 음악들을 좋아합니다. 스티비 원더나 템테이션스, 인챈트먼트, 잭슨 5, 마빈 게이, 슈프림즈 같은 이름들이죠. 리뷰를 쓰는 지금은 'Superstition'으로 유명한 '스티비 원더'의 『Talking Book』 앨범 수록곡 'Lookin' for another pure love'이 흘러나오고 있네요. 서른 줄이 넘어가다 보니 새로운 노래들을 찾는 게 점점 힘에 부친 달까요. 안전하고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특정 브랜드에 익숙해져 갑니다. 얼마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녔던 것 같은데요. 갑자기 서글프네요. 물론 이건 제가 이상한 거구요. 보통 저의 세대에겐 버즈와 SG워너비로 대변되는 소몰이 창법 때의 음악이 향수를 불러 일으킵니다. 저보다 살짝 윗 세대분들은 야다나 얀 같..

Romance 2019.09.27 0

내가 너를 놓쳤어 _ 먼 훗날 우리, 유약영 감독

# 0. 왕가위 감독의 , , , , 진목승 감독의 , 혹은 오우삼 감독의 시리즈와 같은 냄새입니다. 개인의 곤궁함으로 모자이크 된 화려한 도시를 부유하는 청춘들의 이야기. 거부할 수 없는 흐름 속에 표류하는 사람들의 위태로움과 발버둥. 그 아래 흐르는 처연하고 섬세한 서정성과, 처절하고 육중한 고독감 등을 꺼지기 직전 가장 밝게 빛나는 불꽃처럼 눈부시게 그려내던 그 시절의 그 영화들 말이죠. 유약영 감독, 『먼 훗날 우리 :: 後來的我們』 입니다. # 1. 물론 정서의 결은 살짝 다릅니다. 홍콩 영화는 반환을 앞두고 거대한 집단이 통째로 입양되는 듯한 긴장감,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의하지 못하는 존재들의 불안함, 정착하지 못하고 버려진 존재들의 고독감,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들에 대한 짙은 회의와 허무함..

Romance 2019.09.20 2

100년전 코미디 _ 황금광 시대, 찰리 채플린 감독

# 0. 좋은 작품들은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점점 많은 사람들이 만족을 표할수록 인지도는 높아집니다. 일정 숫자 이상의 사람들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면 명작 혹은 걸작이라 불리게 되죠. 작품들이 명작이나 걸작으로 평가받는 근거는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감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가치 역전이 일어나게 된다는 건데요. 사람들이 좋아해서 좋은 작품인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이기 때문에 좋아해야만 하는 작품이 되는 것이죠. 그때부턴 작품에 대한 감상과 작품의 가치는 이미 결정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감상평은 일종의 사상검증으로 전락하죠. '찰리 채플린' 감독, 『황금광 시대 :: the Gold Rush』입니다. ..

Comedy 2019.09.13 0

욕망의 항아리 _ 아이 엠 러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 0. 캐스팅만으로 영화가 예상되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김명민이 아빠랍니다. 재난 터지고 가족 구하러 발버둥 치겠죠. 류승룡이 주연입니다. 약자를 바보로 묘사하다 얻어터지면서 눈물 짜내는 영화겠군요. 강하늘, 박서준 같은 배우들은 감독이 강요하는 '건강한 젊은이'를 기계적으로 연기할 겁니다. 조진웅은 바바리에 올백머리로 등장할 테고, 김윤석은 면도 안 하고 2시간 내내 뛰어다니겠죠. 임원희는 얼굴개그를 할 테고, 박철민은 말장난을 할 테고, 김정태는 누군가를 때리다가 마지막엔 역관광 당할 테고, 뭐가 됐든 고창석은 그 옆에서 귀엽게 웃고 있을 겁니다. 갑수 옹은 돌아가실 타이밍을 재고 있을 테고, 이경영은 두 상영관에 동시 출현 중일 테고, 김민교와 정상훈은 굳이 스크린에서까지 SNL을 찍고 있겠죠. ..

Drama 2018.09.03 0

HOMAGE _ 카우보이의 노래, 코엔 형제 감독

# 0. 지금 어딘가에 또 한 명의 아이가 있다. 노래와 총질을 배우며 전설이 되길 꿈꾸는 아이 언제가 그는 그 아이를 만날 테고 다르고도 같은 이야기가 또 생겨날 것이다. 코엔 형제 감독, 『카우보이의 노래 :: The Ballad of Buster Scruggs』입니다. # 1. 죽음의 춤판이 벌어집니다. 한껏 멋 부린 총잡이들이 낡은 기타를 둘러메고 흥겨운 노래를 부릅니다. 어차피 한번 살다 가는 인생. 죽기밖에 더하겠냐는 식의 능동적 허무주의가 6개의 옴니버스를 관통합니다. 부유하는 정체성입니다. 대부분의 인물들에겐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 있는 몇몇 카우보이들은 이름으로 불리기보단 어떤 캐릭터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 속 '버스트 스크럭스'는 '샌사바의 노래하는 새'로 불리길 원하지..

Comedy 2019.09.02 2

꽃을 찢고 질문하다 _ 더 랍스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 0. 독특합니다. 고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독창적인 이야기가 관객의 이목을 부여잡습니다. 서사가 어떻게 굴러가게 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습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꽂힙니다. 설정은 각자의 영역에서 자기 매력을 지키되 따로 놀지 않습니다. 완성도도 구비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얻은 감동을 다른 영화에서 얻기란 매우 힘들어 보입니다. 이 영화는 누군가에겐 '요르고스 탄티모스'라는 이름을 평생 기억하게 할 계기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반면, '요르고스 탄티모스' 감독, 『더 랍스터 :: The Lobster』입니다. # 1. 기괴하고 불편합니다. 특유의 건조한 분위기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설정 위에서 이야기는 밑도 끝도 없이 널을 뜁니다. 서사에 깊은 개연성..

Romance 2019.09.03 0

부러우면 지는건가 _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 0. 보는 것만으로 취할 것 같은 술잔과 안주로 곁들여진 환상의 밤거리가 스크린을 수놓습니다. 몇 모금 삼키다 보면 언제부턴가 술이 술을 마시는 것마냥 잔이 절로 넘어가듯, 영화 역시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호로록 넘어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검은 머리 아가씨가 응큼한 변태에게 펀치를 날리는 순간,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선배의 자취방을 건너 야속하게 오르는 스탭롤을 보게 되실 겁니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夜は短し歩けよ乙女』 입니다. # 1. 능글맞은 변태에게 얻어먹는 술과, 화려한 등불의 축제 거리와, 삼삼한 인생을 조미하는 궤변과, 힘차게 내딛는 달리기와, 어제의 당신과 오늘의 우리를 묶어줄 헌책의 바다와, 한눈에 반한 사랑이 담긴 사과로 내리는 비..

Romance 2019.08.23 2

7000원에 영화 세편 _ 델마, 요아킴 트리에 감독

# 0. 영화의 서사는 간결합니다. 초능력 가진 짱짱녀 딸이 각성 전에 사고를 치고, 딸의 능력을 두려워하는 엄마 아빠가 딸을 담그려 하지만 역관광 당하고, 마침내 능력을 각성한 딸이 여자 친구와 뽀뽀한다는 영화죠. 네. 이 영화는 백하ㅂ... 간결한 서사임에도 관객의 머릴 아프게 만드는 건 116분의 런타임 내내 쏟아지는 수많은 상징과 은유 때문입니다. 그것도 적당히 아는 놈 알고 모르는 놈 몰라란 식으로 숨겨두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쏟아냅니다. 눈앞에다 흔들면서 '야! 이거 암시야, 암시! 뭐게! 맞춰봐!' 라 합니다. 관객들은 놀란만으로도 충분히 벅찹니다. 왜 북유럽 갬성 형님들까지 이러시는 건가요. '요하킴 트리에' 감독, 『델마 :: Thelma』입니다. # 1. 엄마는 하반신 불구입니다. 아빠..

Thriller 2018.08.29 0

쉬운 정답, 어려운 풀이 _ 아우슈비츠의 회계원, 매튜 쇼이쳇 감독

# 0. 1명이 마약을 하면 그 1명을 구속하면 됩니다. 10명이 100명이 1000명이 마약을 해도 체포하고 구속하면 되죠. 하지만 그 수가 10만 명, 100만 명, 1000만 명에 달해도 그럴 수 있을까요? 사람이 그렇게까지나 불어나버린 상황에서 무작정 모두를 범죄자로 삼아 체포하려 들면 사회는 급격하게 음성화 되고 부작용을 낳게 될 겁니다. 이런 문제에 직면한 경우 보통 사회는 문제의 해악과는 별개로 해당 사안을 그냥 끌어안아버리려 합니다. 대마나 담배나 별 차이가 없음에도 대마는 불법으로 삼고 담배는 국가가 판매하는 이유죠. 사회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정의롭지 않습니다. 같은 값이면 올바르려 노력하기는 하겠지만 그 올바름이 사회가 스스로를 유지하려는 본능에 우선하지는 않죠. 간혹 올..

Historical 2019.07.20 2

미소를 잃은 사람들 ⅰ _ 소공녀, 전고운 감독

# 0. 화려한 싱글라이프와 프로 가사도우미 '미소'의 등장입니다. 배우 이솜의 신비로운 마스크와 앳된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희끗희끗한 흰머리와 전동 드릴에 걸린 진한 분홍색 청소솔이 도드라지는군요. 이목을 끄는 인상적인 오프닝입니다. 미소가 청소하는 곳은 친구의 집이었네요. 커피 한잔 하자는 말을 냉정하게 거절당하면서도 천연덕스레 쌀을 빌려달라 말하는 미소. 한심한 듯 쳐다보는 친구의 시선과 그런 난처한 상황에서의 곤란함으로 전혀 인지하지 않는 미소의 대사와 표정에서 굉장한 캐릭터성을 읽게 됩니다. 친구에게 빌린 (이라 쓰고 동냥받은 이라 읽을) 쌀을 허술하게 비둘기에게 모이로 주고서 별 수 없다는 듯 고즈넉한 바에서 담배에 위스키를 즐기는 여기까지 3분. 감독은 독특하고 독보적인 캐릭터를 멋지게..

Drama 2019.05.13 0

살아간다 _ 조지아의 상인, 탐타 가브리치제 감독

# 0. 러시아와 흑해에 인접한 인구 500만의 작은 나라. 카메라는 '조지아'의 한 시골마을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과 동행합니다. 상인은 도시의 잡화점에서 유용해 보이는 상품들을 떼다 물류가 닿지 않는 시골 마을에 다시 팝니다. 물건값으론 라리(ლ)화를 받기도 하지만, 감자를 화폐 삼아 무게에 달아 물물 교환하는 것이 더욱 익숙합니다. 사람들은 삶을 녹여 키워낸 감자들을 필요한 물건과 교환합니다. '탐타 가브리치제' 감독, 『조지아의 상인 :: The Trader』 입니다. # 1. 트렁크가 넓은 낡은 승합차엔 온갖 물건들이 실려 있습니다. 여자들을 위한 스카프나 화장품, 핸드백부터 아이들을 위한 온갖 장난감들과 할머니를 위한 강판도 있죠. 조지아의 상인에겐 없는 것만 빼면 모든 게 있습니다. 마치 피리..

Humanism 2019.04.01 2

천재감독이 빙의물을 만들면 _ 퍼스트맨, 데미안 샤젤 감독

# 1. 좋아하는 영화감독 있으신가요? 없으시다구요? 저런.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가뭄에 콩 나듯 영화 얘기를 하게 될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 배우가 아니라 감독, 그것도 외국 감독 이름을 몇 개 얘기하면 아는 게 없어도 뭔가 있어 보일 수 있습니다. 이름 몇 개 붕권마냥 질러두고 이후엔 다 안다는 듯이 팔짱 끼고 고개만 끄떡이면 지식인의 완성이죠. 메모해 두세요. '존 도'라는 희대의 또라이를 만든 '데이빗 핀처'나 스칼렛 요한슨을 캐스팅해서 목소리만 뽑아 쓰고 버린 her의 '스파이크 존즈', 주드로, 메이슨 총리, 레아 세두, 볼드모트, 에드워드 노턴 같은 배우들을 불러다 단역으로 쓰면서 주연은 웬 처음 보는 과테말라계 미국 배우에게 맡긴 '웨스 앤더슨', 사람 못 죽여서 안달 난 '쿠엔틴 ..

Drama 2019.10.03 0

비처럼 음악처럼 _ 쉘부르의 우산, 자끄 드미 감독

# 0. 대화를 포함한 극의 전반을 음악으로 구성하는 오페라의 매력과, 노래하는 동안의 캐릭터와 연기를 북돋우는 뮤지컬의 매력과, 연출과 편집이 적극적으로 극에 개입하는 영화의 매력을 환상적으로 배합해 낸 작품입니다.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샹송과 황홀하고 매혹적인 색감이 비가 되어 관객을 사랑으로 흠뻑 적십니다. '자끄 드미' 감독, 『쉘부르의 우산 :: Les Parapluies De Cherbourg』입니다. # 1.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항구도시 '쉘부르'에서 엄마와 함께 우산가게를 운영하는 '쥬느뷔에브'와 자동차 정비공 '기이'. 두 젊은 연인의 열렬한 사랑이 알제리 전쟁으로 인해 어긋나게 되는 과정과 그 후를 그린 비극적 멜로 영화입니다. 역사적 사건이라는 거대한 풍파에 떠밀린 개인의 비극이라는..

Romance 2020.05.18 2

Less is More _ 시저는 죽어야 한다, 타비아니 형제 감독

# 0. 재소자들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무엇을 발견하고 있었던 걸까. 감독은 연기하는 재소자들로부터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관객은 이들의 극을 보는 동안 무엇을 목도하고 있었던 걸까. '비토리오 타비아니', '파올로 타비아니' 형제 감독, 『시저는 죽어야 한다 :: Cesare deve morire』입니다. # 1. 타비아니, 워쇼스키, 샤프디, 코엔 등 대체로 무슨무슨 형제가 영화를 만들었다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퀄리티 이전에 무지막지하게 어려울 가능성이 높거든요. 이 영화 역시 그러합니다. 각각이 요소들은 여타 형이상학적 예술 영화들에 비해 이례적일 정도로 단순하고 명쾌한 편이긴 하지만, 그 단순한 것들이 조립되는 과정 속에 숨겨진 함의의 깊이는 어마어마합니다. 재소자입니다. 동시에 배우죠. ..

Drama 2020.05.14 0

무제 _ 아무르, 미카엘 하네케 감독

# 0. 굳게 잠긴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서는 저택. 깊은 방 침대 위 곱게 눈을 감은 노년의 여인. 누가 놓았는지는 몰라도 사랑이 가득 담긴 것만은 확실한 꽃잎들과, 무언가가 자유로이 날아간 것만 같은 열린 창. 사랑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AMORE. 영면에 든 노인과, 그녀와 마지막을 함께 했을 누군가에게 보내는 듯한 청중의 긴 박수소리. 일련의 오프닝 시퀀스는 사실 이 작품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의 서사는 여인이 마지막으로 건넜을 켜켜이 겹쳐진 시간들과, 그녀를 마지막까지 사랑한 누군가들과, 이들의 여정에 존중의 박수를 보내는 이유에 대한 각주라 할 수 있죠. '미카엘 하네케' 감독, 『아무르 :: Amour』입니다. # 1. 깊고 좁은 복도를 걸어 들어가는 노부부. 잘 들리지도 않는 ..

Romance 2020.05.06 4

에스프레소 _ 콜드 워,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 0. 포스터만 봐도 어려운 영화입니다. 감독 이름에서부터 심상치가 않죠. 도스토예프스키든, 차이코프스키든, 로만 폴란스키든 어쩌고 저쩌고 스키 들어가면 대부분 엄청 대단하면서 동시에 무지막지하게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이 감독...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싶었는데, 세상에나. 『이다』의 감독이었군요.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콜드 워 :: Cold War』입니다. # 1. 정서와 서사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때깔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전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패턴화 된 오브제들의 감각적인 리듬, 적재적소에 4:3 비 화면을 명확한 의도 하에 과감하게 잘라 들어가는 굵은 선, 깊은 여운을 불러일으키는 여백 등의 이미지가 구현하는 심미성은 이번에도 역시나 감동적입니다. 흑백의 ..

Romance 2020.05.05 0

실신 주의 _ 베리드,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

# 0. 압도적 콘셉트의 영화입니다. 파격적 발상의 영화입니다. 그 어느 작품보다 도발적입니다.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상황을 발견한 후 그 안에서의 심리상태를 추적하는 동안의 집중력이 어마어마합니다. 감독은 배우 한 명 섭외해 관짝에 냅다 집어넣는 걸로 무려 95분을 멋들어지게 비벼내는 데 성공합니다. 심지어 개봉 직후 선댄스와 토론토까지 훔칠 뻔했다죠. 꺼무 위키에 따르면 주인공 '라이언 레이놀즈'는 과호흡으로 7번이나 실신했다고 하는데요. 겨우 7번 밖에 실신하지 않은 배우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 『베리드 :: Buried』입니다. # 1. 노골적인 공간에 주인공과 관객을 한데 구겨 넣어 대단히 직관적인 몰입감을 유도하는 데 성공합니다. 한 발자국은커녕 몸..

Thriller 2020.05.04 2

본격! 리듬! 액션! _ 베이비 드라이버, 에드가 라이트 감독

# 0. 쉴 새 없이 가슴을 두드리는 비트와, 몸을 떨게 만드는 엔진 소리와, 마초적인 배기음의 성대한 응대와 함께 엑셀레이터를 힘껏 당기는 두 시간 동안의 레이스입니다. 누가 감히 영화는 이야기라 그랬던가요. 그림이라 그랬던가요. 이 영화의 주인공은 화려한 드라이빙 스킬로 관객을 레이싱의 매력에 빠트리는 베이비 '안셀 엘고트'도, 수틀리면 샷건부터 갈기고 보는 힙하고 잘생긴 뱃 '제이미 폭스'도, 각기 다른 큐티애교와 섹도시발을 동시에 선보이는 데보라 '릴리 제임스'와 달링 '에이사 곤살레스'도, 연기 잘하는 두 쓰레기도 아닌 음악 그 자체입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 『베이비 드라이버 :: Baby Driver』입니다. # 1. 음악이 플롯과 시퀀스, 공간, 카메라 워크에 대사까지 모조리 장악하는..

Action 2020.05.03 0

깔-끔 _ 자니 익스프레스, 우경민 감독

# 0.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깔끔한 코미디입니다. 어쩜 이렇게 풍부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을 수 있을까요. '우경민' 감독, 『자니 익스프레스 :: Johnny express』입니다. # 1. 유쾌하고 명쾌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 아래 연상할 수 있는 상황들을 효과적으로 소집합니다. 관객에게 코미디로서의 장르적 재미를 줘야 하는 순간을 판단하고 좁은 공간 안에 배치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코미디가 작동하는 순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연출을 동원해 호흡을 조율하는 솜씨가 능숙합니다. 반복된 연출을 통해 리듬감을 만들어 내야 하는 순간에 대한 판단과 템포 역시 너무도 적절합니다. 재난 영화들의 클리셰를 가져와 볼륨에 걸맞지 않은 안정감을 꾀하면서도, 그것을 변주해야 할 땐 과감히 비틀어 지루..

Animation 2020.04.23 0

아이가 쓴 동화 _ 벼랑 위의 포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0. 단순한 이야기, 동화적인 그림체와 별개로 영화 자체는 제법 난해합니다. 이후의 글에선 이 난해함이 대한 제 개인적인 인상과 해석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만 언제나와 같이 헛다리 짚는 뻘소리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냥 이렇게 본 놈이 하나쯤은 있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좋겠군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벼랑 위의 포뇨 :: 崖の上の ポニョ』입니다. # 1. 보고 나면 이 영화가 이름값이나 흥행에 비해 왜 그리도 욕을 먹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이야기가 엉성하고 조악하게 접붙여져 있거든요. 벼랑 위에 사는 꼬꼬마가 우연찮게 인면어를 득템하고 제초제 뿌리는 수상한 아저씨를 지나 엄마 차 타고 어린이집을 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방생했더니 쓰나미가 몰려와 사람으로 만들어 환..

Animation 2020.04.29 4

총과 피의 테마파크 _ 장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 0. 언제나처럼 환상적인 오프닝입니다. 지금부터 보게 될 작품이 165분에 달하는 런타임에 걸맞은 긴 호흡의 영화라는 것과, 그 긴 호흡 동안의 모든 서사가 결국 이 잘생긴 노예 한 명을 둘러싼 간결한 이야기로 귀결될 것이라는 선언이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풍부한 음장의 멋들어진 ost Django (by Luis Bacalov) 가 끝남과 동시에 감각을 제한하는 한밤의 숲으로 관객을 초대합니다. 긴장감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멋들어진 장총을 보며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찰나. 이빨을 대롱대롱 매달고 다니는 우스꽝스러운 치과의사가 의도된 방심을 연출합니다. 잠깐의 위트를 발판 삼아 다시 무자비하게 집중을 끌어올린 감독은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What's your name?" '쿠엔틴 타..

Action 2020.04.15 2

악녀를 보았다 ⅰ _ 레이디 맥베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 0. 뒷모습으로 소개되는 여자. 실루엣을 짓누르는 베일. 앳되고 가녀린 목소리와, 그를 제압하는 고압적인 저음의 성가. 소녀의 연약한 요구와, 그 요구를 거절보다 폭압적인 명령으로 제압하는 남자. 발가벗겨진 소녀를 덩그러니 세워둔 채 돌아 눕는 남편. 이를 담아내는 고전적이고 고정적인 오브제들과, 정제된 채도의 색감과, 이질적인 정도로 옆으로 길게 벌어진 화면. 통상의 긴 화면비는 개방감, 안정감, 수평적 운동성, 평등, 균일감 따위를 의미하지만 이 영화의 경우에는 '수평성의 강조'라기보다는 '수직성의 통제', 즉 위아래로 잘려나간 화면이 인물을 짓누르며 지배하고 있는 공간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해 보입니다. '명령'과 '규율'과 '제약'과 이를 둘러싼 '균열'과 '파괴'의 서사임을 유추..

Drama 2020.04.01 2

명콤비의 커튼콜 _ 라디오 스타, 이준익 감독

# 0. 2006년에 소환된 1990년대 영화입니다. 다소 평면적인 캐릭터 설계와, 무던하고 진중한 관계 설정, 상황을 풀어나가는 단단하고 온건한 방식, 보수적 가치 위에 세워진 관계 중심의 주제 의식과, 다소 연극적 색채가 묻어나는 표현 등 영화 전반에 걸쳐 『8월의 크리스마스』, 『접속』, 『약속』과 같은 90년대 명작 드라마 영화들의 분위기와 냄새가 짙게 묻어나기 때문이죠. '이준익' 감독, 『라디오 스타 :: Radio Star』입니다. # 1. 공식적으로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기에 이를 존중해 리뷰의 카테고리 역시 드라마로 잡긴 했습니다만, 플롯만 보자면 버디무비라기보다는 로맨스에 더 가깝습니다. 삯바느질하는 조강지처(안성기)와 헛바람 든 철없는 남편(박중훈)[기]. 지고지순한 내조 끝에 남편이 ..

Drama 2020.03.30 4

길가의 고양이 _ 고양이의 보은,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

# 0. 사거리 혹은 오거리 정도 여러 갈래 길이 겹쳐 드는, 자동차보다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더 많은, 북유럽풍 카페거리 느낌의 광장 한가운데 펼쳐진, 어느 노천카페 허름한 테이블의 낡은 의자에 걸터앉아, 한적하게 걸어 다니는 길고양이 몇 마리를 곁눈질로 힐긋 보며, 문득 든 상상을 자유롭게 떠오르는 대로 조립해 놓은 영화입니다. 후~ 숨차라.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 『고양이의 보은 :: 猫の恩返し』입니다. # 1. 심드렁하게 드러누운 늘어진 뱃살의 '무타'처럼 늦은 휴일 오후를 보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만 같은 영화입니다. 거친 질감의 싸구려 공책에 손이 가는 대로 쓰고 그리던 상상을 자유롭게 빚어낸 느낌의 영화입니다. 하울의 성처럼 다양한 길고양이들을 파편적으로 수집한 후, 그 모습들을 자유..

Animation 2020.03.14 3

줄리아 폭스 ⅰ _ 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감독

# 0. 매운 닭발을 스스로 사 먹어 놓고 매워서 별로라고 별점 테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람쥐통에 제 발로 올라 놓고 멀미가 심해 쓰레기라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에스프레소를 자기 돈으로 사 마시며 쓰다고 물을 타 달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지 않는 한, 우리는 흔히 그런 사람들을 '진상 손님'이라 말합니다. 닭발이 매울 수는 있습니다. 다람쥐통을 타고 멀미를 할 수도 있고 에스프레소를 처음 마시고 깜짝 놀랄 수도 있죠. 다시는 닭발에, 다람쥐통에, 에스프레소에 돈을 쓰지 않겠다 생각할 수도 있고 그건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그런 이유들로 닭발과 다람쥐 통과 에스프레소를 '잘못된 것'이라 욕하는 건 썩 권장할만한 태도는 아닐 겁니다. 이 영화를 보고..

Thriller 2020.03.06 0

구연동화 _ 잭은 무슨 짓을 했는가, 데이비드 린치 감독

# 0. 무서운 영화입니다. 장르적으로 무서운 건 아니구요. 감독이 '데이비드 린치'이기 때문이죠. BBC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이자 제54회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그 감독 맞습니다. 살얼음을 내딛는 듯하군요. 까딱 헛소리를 잘못했다간 마니아들에게 영알못이라고 까일 테구요. 별 내용도 없이 좋다고 나댓다간 허세충으로 내몰릴 겁니다. 아! 그래서 감독 이름이 린치인 걸까요? '데이비드 린치' 감독, 『잭은 무슨 짓을 했는가 :: What did jack do?』 입니다. # 1.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닭가슴살 부드러운 여자 친구를 둔 말하는 원숭이가 일흔 넘은 감독에게 취조 당하는 영화죠. 능청스럽게 원숭이 앞에 앉아 온갖 개드립을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십여 분간 주절대다 원..

Comedy 2020.02.17 6

고독의 書 _ 토니 타키타니, 이치카와 준 감독

# 0. 한 줌의 수분도 없는 모래장. 모래의 바다에서 태어난 배. 그 배를 홀로 만드는 아이. 아이를 스쳐 지나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걸음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아들. 화사한 꽃들 가운데 꽃잎 한 장만 공들여 그려진 그림. 그 한 장을 바라보고 주목하고 관찰하는 아이. 의아한 그림에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선생님과, 선생님이 자신을 왜 부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이. 늦은 저녁 홀로 타는 자전거, 쓰러질 듯 위태롭게 하지만 자유롭게 자전거를 모는 아이. ‘토니 타키타니’. ‘토니 타키타니’의 본명은 정말로 ‘토니 타키타니’입니다. '이치카와 준' 감독, 『토니 타키타니 :: トニー滝谷』입니다. # 1. 까슬한 책장을 조심스레 넘기는 것만 같은 영화입니다. 건조해 만지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찢어질 ..

Drama 2020.01.08 0

이런 위로도 있다 _ 내 몸이 사라졌다, 제레미 클레팡 감독

# 0. 그로테스크한 표현과 육중하게 침전되는 감각, 독특한 상상력과 따뜻한 주제의식이 인상적입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소년 '나오펠'의 곤궁하고 허무한 삶의 여정, 해부학실을 탈출한 '손'의 위태롭고 불안한 모험이 분리된 서사의 물리적 결합을 넘어 적극적으로 정서를 주고받는 화학적 결합에 다다릅니다. 직접적이고 말초적인 불쾌감과 사회적이고 관계적인 불쾌감을 교차적으로 매칭 하는 방식이 효과입니다. 비 내리는 저녁의 피자배달, 나무로 만든 옥상의 이글루, 돌고 돌아 몸 옆에 자리하는 손, 차갑고 위태롭게 서있는 타워 크레인의 모습들 마다마다 서정성이 상당합니다. '제레미 클레팡' 감독, 『내 몸이 사라졌다 :: J'ai perdu mon corps』 입니다. # 1. '나오펠'의 삶은 보통의 드라마들처..

Animation 2019.12.04 2

밤의 우유니 사막 ⅰ _ 문라이트, 배리 젠킨스 감독

# 0. 다소 뜬금없게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전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을 떠올렸습니다. 낮의 그것도 아닌 야경이 깊게 드리운 우유니 사막 말이죠. 수분이 메마른 건조하고 삭막한 사막과 같은 소년의 삶에 쏟아질 듯 슬픔의 비가 내리면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 온 세상은 푸르른 달빛에 물들게 됩니다. 별이 빛나는 바다에 뒤덮인 사막 한가운데 외로이 서 있는 소년의 숨 막힐 듯한 고독감과 쓸쓸함이 눈앞을 떠나지 않는군요. '배리 젠킨스' 감독, 『문라이트 :: Moonlight』입니다. # 1. 영화는 세 파트의 옴니버스 구조를 가집니다. 각각 소년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와 성년기에 대응되죠. 파트의 제목은 '리틀', '샤이론', '블랙'입니다. 서사는 '리틀'로 불리던 소년 '샤이론'이..

Drama 2019.12.01 0

화가가 만든 영화 _ 러빙 빈센트, 도로타 코비엘라 / 휴 웰치먼 감독

# 0. 그림 그리려고 만든 영화 같습니다. 메시지와 서사와 캐릭터와 플롯과 연출과 대사와 그 외의 모든 영화 안팎의 요소들을 '표현'이 압도합니다. 독창성도 독창성이거니와 화가를 말 그대로 갈아 넣어야만 시도라도 해 볼 수 있는 양식이 절대적인 희소성을 부여합니다. 분명 이 영화가 제공하는 감각을 다른 영화로 비유하는 건 미련한 짓일 겁니다.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먼' 감독, 『러빙 빈센트 :: Loving Vincent』 입니다. # 1.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할 수밖에 없겠네요.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선명한 인상은 (호들갑을 조금 떨자면) 그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상당한 생명력이 전달된다는 점입니다. 통상 애니메이션과 차별되는 12 프레임의 이물감 역시, 되려 심장의 박동처럼 ..

Animation 2019.10.29 0

그냥 겁나 재밌어 _ 헤이트풀 8,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 0. 소소하게 블로그를 굴린 후로 안 좋은 습관이 하나 생겼습니다. 영화를 분석하듯 또 평가하듯 보게 되었다는 점이죠.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요. 언젠가부터 정신줄 놓고 보다가 포스팅할 만한 내용을 발견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머리 한켠에 가시처럼 박혀 감상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뿐인 취미 더 재미있게 즐겨보자고 시작한 짓이 되려 방해가 되고 있다니. 멍청한 일이군요. 근래 들어 이렇게 영화를 봐서 뭐하나 하는 현타가 스멀스멀 몰려오던 중 결국 토드 필립스의 를 리뷰하다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에라이! 덮어놓고 막보자! 아무것도 발견 못해도 좋고, 유의미한 견해가 없어도 좋으니 최대한 즐기면서 막보자!'는 생각으로 영화 한 편을 골랐습니다. 그것도 겁나 영화 잘 만드는 ..

Thriller 2019.10.09 4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_ 조커, 토드 필립스 감독

# 0.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 아니 수개월 전 예고편을 보고 난 후부터 생각했습니다. 죽인다. 예술이다. 기가 막히다. 여태까지 140여 편을 리뷰하는 동안 작품이 너무 좋아서 씬 별로 쪼개가며 돌려 봤던 작품은 알폰소 쿠아론의 와 박찬욱 감독의 뿐이었는데요. 이 영화는 앞선 두 작품만큼이나 노력과 시간을 쏟아붓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라 생각했습니다. 토드 필립스 감독, 『조커 :: JOKER』 입니다. # 1. 이야기거리는 충분합니다. 팀 버튼이 정의한 유머와 품격의 검은색 조커, 크리스토퍼 놀란이 정의한 혼돈과 공포의 보라색 조커와는 차별화된 불안과 절망의 토드 필립스식 주황색 조커를 영화 전반에 걸친 색감을 중심으로 비교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주요 장면마다 나오는 거울에 비친 아서와 그의 ..

Thriller 2019.10.07 12

난해한 것의 이유 _ 피부, 에두아르도 카사노바 감독

# 0. 장애우 라는 말을 아시나요? 학문의 전당에서 취업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 중인 대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건전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수신료만 받아쳐 먹... 아니, 땀 흘려 일하는 기자님들까지 거침없이 레퍼런스로 인용하곤 하는 민족의 지혜 주머니 킹무위키는 장애우라는 표현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기들 딴엔 중립적인 단어를 만들어 보겠다고 억지로 밀어붙였지만 끝은 참담했던 사어死語 ... (중략) ... 장애인들이 받아들이기에 장애우란 말은 "너는 불쌍하게도 장애를 가진 사람이니 너무나도 착한 내가 불쌍한 너의 친구가 되어줄게"와 같은 뉘앙스를 지니기에, 실제 장애인 중에는 병신이라는 말보다 장애우라는 말이 더 듣기 싫다는 사람이 많다. '에두아르도 카사노바' 감독, 『피부 :: Piele..

Drama 2020.11.26 0

샤프디의 시선 _ GOLDMAN v SILVERMAN, 사프디 형제 감독

# 0. Rod Goldman and Al Silverman are street performers who work the tourist scene of Times Square. Goldman gets no respect and Silverman is the first one to make sure of that. '베니 샤프디', '조쉬 샤프디' 감독, 『GOLDMAN v SILVERMAN』입니다. # 1. 도시의 밤은 낮보다 밝습니다. 밝은 빛은 대부분 무언가의 광고입니다. 몇몇은 웃고 있지만 보통은 무표정한 얼굴로 바삐 지나갑니다. 자기 눈으로 무언가를 보기보단 스마트폰 카메라를 거쳐 보는 게 익숙합니다. 간혹 공연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공연보다는 조롱이, 조롱보다는 갈등이 조금 더 이목을 끕니다. ..

Drama 2020.11.12 0

변호사 사무소의 의자 _ 세 번째 살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0. 통상의 범죄물은 관객을 형사의 발 위에 올려놓습니다. 흉악 범죄 사건을 오프닝에 배치해 물리적 폭력성을 직관적인 긴장감으로 연결한 후 이 포악한 범인과 열혈 형사의 쫓고 쫓기는 다이내믹한 움직임을 징검다리 삼아 서사를 전개해 나가죠. 4885 씬으로 유명한 나홍진 감독의 는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네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세 번째 살인 :: 三度目の殺人』입니다. # 1. 범죄 스릴러의 수작 를 예로 들었듯 이 방법이 잘못된 방식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많은 감독들이 비슷한 장르물을 만들며 같은 선택을 하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죠. 스릴러는 기본적으로 긴장감을 즐기는 장르고 2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며 사람들은 보통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는 서..

Thriller 2020.11.10 0

의식의 흐름 _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신정원 감독

# 0. 타고나길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습니다만 수능은 유난히도 거하게 조졌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매년 시월 즈음해서 슬럼프에 허덕이는 빌어먹을 바이오리듬의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당시는 무지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나는군요. 여하튼 그 때문에 직장생활을 할 때나 프리랜서 생활을 할 때나 연중에 휴일을 거의 가지지 않다가 시월에 몰아 쓰는 게 버릇이 되고 말았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휴가를 몽땅 집안에서 태웠습니다만 작년엔 제주를 다녀왔었더랬죠. 자전거를 타고 일주를 했었는데 그거 해보겠답시고 여행도 전부터 운동을 미리 하느라 똥줄 탔던 기억입니다. 참, 그러고 보니 그때 당시 한창 다니던 피트니스 클럽이 최근에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빵집이 생겼더라구요. 쓱 스쳐 지나가는 길에 소시..

Comedy 2020.11.01 3

악행은 합리화될 수 있는가 _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안토니오 캄포스 감독

# 0. 테마는 선명합니다. 정당한 악행의 연쇄. 명분과 정의가 악행을 합리화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죠. 영화에서 지칭하는 '사라지지 않는 악마'는 악의에 가득 찬 특별한 살인마가 아닙니다. 자기 명분에 한껏 충전되어 정의로운 악행을 저지르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어느 시골마을 사람들의 살인사건으로 배경을 제한하고 이를 위해 기꺼이 오프닝 시퀀스를 할애한 건 이후 벌어지게 될 무수히 많은 선량한 악행들에 보편성을 불어넣기 위함입니다. '안토니오 캄포스' 감독,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 The Devil All the Time』입니다. # 1. 주요 인물들은 모두 각기 다른 배경과 다른 동기와 다른 성격과 다른 철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만, 단 한 가지. 자기 나..

Thriller 2020.10.05 0

히치콕의 고양이 -1- _ 39계단,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슈뢰딩거의 고양이(Schrödinger's cat)는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비판하기 위하여 슈뢰딩거(E. Schrödinger, 1887-1961)가 1935년 고안한 사고 실험이다. 중첩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양자 대상이 측정장치(일반적으로는, 인과적으로 연결된 고전 대상)를 함께 고려하면 결국 측정장치도 중첩을 일으켜야 한다는 역설이다. 중첩된 파동 함수가 측정하는 순간 환원된다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출처 [물리학백과 : 슈뢰딩거의 고양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39계단 :: The 39 Steps』입니다. # 1. 사실 없는 해석은 무의미합니다. 해석되지 않은 사실은 지루합니다. 사건은 개인적 입장에 따른 주관적 관점을 통해 해석되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생명력을 가집니다. ..

Thriller 2020.09.15 2

리디아를 위하여 _ 비틀쥬스, 팀 버튼 감독

# 0. 판타지의 거장은 아이러니 하나를 다뤄도 이렇게나 현란하게 요리합니다. 평범한 캐릭터가 어째 단 하나도 없습니다. 상식적인 설정 또한 하나도 없습니다. 편의적인 전개도 일절 찾을 수 없고 결말 역시 관객의 예상과는 완전히 따로 놉니다. 물론 2020년의 시각에선 익숙한 설정이라 할법한 표현이 몇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영화가 개봉된 시기는 1988년. 지금으로부터 무려 33년 전이죠. '팀 버튼' 감독, 『비틀쥬스 :: Beetlejuice』입니다. # 1. 유령이 된 아담과 바바라 부부는 마치 사람 같아 보입니다. 그들은 시종일관 평범한 사람의 복식과 평범한 사람의 상식으로 행동합니다. 125년간 지내게 될 집을 가장 아끼며 가꾸는 이들은 이 유령 부부입니다. 유령은 '잘 살고' 싶어 합니..

Comedy 2020.09.03 5

마리옹 꼬띠아르 _ 라비앙 로즈, 올리비에 다한 감독

# 0.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를 들어 에디트 피아프보다 더 에디트 피아프 같은 마리옹 코티아르라 평했다고 하는데요. 개인적으론 50줄이 넘은 '이 평론가'가 태어나기도 전인 63년에 사망한 사람이 원래 어떠했는지를 피차 알 턱이 없는 마당에 저 평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만, '올리비에 다한' 감독, 『라비앙 로즈 :: La Vie en Rose (La Môme)』입니다. # 1. 영화를 보고 난 후 너무도 적절한 평이었다는 걸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은 아마도 '마리옹 꼬띠아르'가 연기한 '에디트 피아프'였을 것이다를 넘어 이런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은 분명 '마리옹 꼬띠아르'의 '에디트 피아프' 였어야 한다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관객 스스로 부..

Drama 2020.08.13 2

장미빛 절망 _ 카이로의 붉은 장미, 우디 앨런 감독

# 0.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사탕을 슬쩍 보여준 후 영원히 그 사탕을 다시 맛볼 수 없다는 걸 증명합니다. 사탕이 달콤하면 달콤할수록, 1920년의 파리가 낭만적이면 낭만적일수록, 스크린을 탈출한 모험가와의 데이트가 황홀하면 황홀할수록 절망감은 그에 정비례해 커져갑니다. 완벽한 사랑을 꿈꾸는 소년과 소녀들에게 우디 앨런의 붉은 장미는 제이슨의 마체테만큼이나 가혹합니다. '우디 앨런' 감독, 『카이로의 붉은 장미 :: The Purple Rose Of Cairo』입니다. # 1. 2012년작 『미드나잇 인 파리』의 기시감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영화입니다. 이를테면 『미드나잇 인 카이로』랄까요. 물론 연대를 생각하면 이 작품이 원조, 『미드나잇 인 파리』가 계승작이라 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겠습니다만 지금..

Romance 2020.08.10 2

클래식 테마파크 _ 배트맨 리턴즈, 팀 버튼 감독

# 0. '샘 레이미' 감독 작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의 가장 큰 의의는 이전까지 어린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역할극 정도로만 취급되던 슈퍼 히어로물이 현실적이고 철학적인 상업 영화로 재해석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보단 '피터 파커'의 댄스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더 많겠지만요. '팀 버튼' 감독, 『배트맨 리턴즈 :: Batman Returns』입니다. # 1.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의 대성공 이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를 지나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에 이르는 동안 어느새 슈퍼히어로물이라면 당연히 높은 현실성과 사회철학적 메시지를 갖추어야만 하는 것처럼 인식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현실의 스트레스를 벗어나 가볍게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슈퍼 히어로..

SF & Fantasy 2020.07.28 2

스타일리스트의 매력 그리고 한계 _ 메기, 이옥섭 감독

# 0. 에헤이~ 상상력이 많으면 그 인생 고달퍼~ '이옥섭' 감독, 『메기 :: Maggie』입니다. # 1. 교회의 십자가는 누군가의 바람에 의해 병원이 됩니다. 재개발지의 푸른 장막은 누군가의 사명감에 의해 해수욕장이 됩니다. 타인의 성기가 찍힌 X-ray는 누군가의 부끄러움에 의해 주인이 뒤바뀝니다. 병원 식구들의 병가는 누군가의 의심에 의해 섹스 스캔들을 면피하기 위한 꾀병이 됩니다. 펜던트의 사진은 누군가의 선입견에 의해 딸의 것으로 오해됩니다. 어린 소녀는 얼토당토않은 소문에 의해 살인미수라는 오명을 쓰지만, 그녀 역시 친구가 아빠에게 떠밀려 건물에서 떨어진 것이라 근거 없이 확신하고 있습니다. 사과를 깎다 다쳤다 말하는 사람의 말을 믿었지만 그의 배에서 나온 건 총알이었고, 사람을 믿어야 ..

Comedy 2020.07.27 0

뱀과 사다리 _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

# 0. 자칫 간과하곤 합니다만 이해력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일정 범위, 규모, 시행을 넘어서는 정보에 대해선 취합해 정리하는 것은커녕 아예 이해를 포기하게 되죠. 백조 천조가 넘어가는 돈의 규모에 단위 감각 자체가 사라진다거나 수십만 수백만 광년을 넘나드는 우주적 스케일 앞에 현실 감각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 カメラ を止めるな!』입니다. # 1. '합의된 허구로부터 어떻게 리얼리티를 설득해 낼 것인가' 라는 질문은 창작자에게 있어 벗어날 수 없는 필연적 화두일 겁니다. 창작의 자유로움과 관객에 대한 존중을 위해 자신이 풀어놓는 이야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충분히 합의하면서도 동시에 가상의 세계관으로..

Horror 2020.07.22 2

첫 타석 2루타 _ 미성년, 김윤석 감독

# 0. 강렬한 카리스마와 몰입도를 보여주는 '배우 김윤석'과는 대조적으로, '감독 김윤석'은 예술적 미감과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인 듯합니다. 이런 사람이 그 긴 시간 동안 족발 들고 4885나 쫓아다녔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김윤석 감독, 『미성년 :: Another Child』입니다. # 1. 사람은 여섯. 아니, 일곱. '안영주', '김미희', '권주리', '김윤아', '권대원', '박서방'. 그리고 '못난이' 주요 인물 중 단 두명만이 미성년자이지만 일곱의 인격은 모두 각자 다른 이유에서 미숙합니다. 일방적인 가족의 해체와 폭력적인 재조립 과정 속에서 각 인물들은 자신의 미숙함을 외면하기도, 발견하기도, 인정하기도, 부정하기도, 변명하기도 하지만 서로 간의 치열한 정서적 교환 끝에 나름의..

Drama 2020.07.18 0

날개 없이 추락하는 자들을 위한 _ 레퀴엠,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 0. 레퀴엠 [ requiem] 위령 미사 때 드리는 음악. 정식명은 이지만 가사의 첫마디가 "requiem (안식을...)"으로 시작하는 데서 이와 같이 부르게 된 것이다. 진혼곡, 장송 또는 진혼미사곡 등으로 번역되어 쓰이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레퀴엠 [requiem] (두산백과)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레퀴엠 :: Requiem for a Dream』입니다. # 1. 고차원적인 철학적 사유나, 다양한 층위에서의 감정적 낙차, 치밀하게 조립된 서사를 즐기는 영화는 아닙니다. 충격적인 연출에 힘입은 전율이 일 정도의 육중한 감수성입니다. 글의 제목 그대로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계곡 아래로 날개 없이 추락하는 자들의 비장한 마지막을 달래는 진혼곡입니다. 서사의 완성도를 짚는 건 부..

Drama 2020.07.14 0

영화에 관한 영화 ⅰ _ 이창,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유명 감독의 대표작들을 볼 때면 그러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살짝 움츠러드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무언가 이 대단한 영화가 왜 대단한 건지를 알아 모셔야만 할 것 같은 압력 같은 게 느껴진달까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주제 파악 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스스로 영화와 관련된 소양이 한없이 빈곤하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죠. 아는 것도 없고 통찰할 능력도 없는 인간의 글이라는 걸 솔직하게 고백하고서 마음 편하게 거장이 만든 오래된 테마파크를 즐겨보겠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이창 :: Rear Window』입니다. # 1.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다리를 다친 사진작가 '제프리'가 치료하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창밖의 이웃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이웃 '쏜월드'의 행동에 의아함을 ..

Thriller 2020.07.05 0

크리스마스는 누구였을까 _ 팀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헨리 셀릭 감독

# 0. 왜 영화를 이렇게 보는 걸까요. 모르긴 몰라도 영화를 해괴망측하게 제멋대로 보는 것만큼은 우주 최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에서도, 『잭은 무슨 짓을 했는가』에서도 그러더니만 이번에도 영 이상하게 보이는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전 이 영화를 팀 버튼의 인사이드 아웃으로 읽었습니다. '헨리 셀릭' 감독,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 Tim Burton's The Nightmare Before Christmas』입니다. # 1. 팀 버튼이 직접 디렉팅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의 드로잉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답게 특유의 기괴하면서도 사랑스러운 표현이 가득합니다. 고어 표현과 강한 대조를 이루는 순수성, 순수성보다 더 깊은 곳에서 흐르는 서정성이 인상적입니다. 편안한 이야기 구..

Animation 2020.06.24 5

스물 일곱 _ 프란시스 하, 노아 바움백 감독

# 0. 청춘 영화입니다. 청춘을 위한 영화입니다. 나이 어린 꽃돌이 꽃순이 배우 무더기로 때려 박은 후 미취학 아동마냥 억지로 순진한 표정을 짓도록 시켜 만든 『변산』이나 『청년 경찰』,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쓰레기가 아니라 이런 작품들이 진짜 청춘들을 위한 영화죠. '노아 바움백' 감독, 『프란시스 하 :: Frances Ha』입니다. # 1. 몇몇 감독들은 아무래도 기성인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 청년상이라는 걸 자랑하지 않으면 뒤지는 병이라도 걸려있나 봅니다. 이를테면 잘생기고 키 크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순결하고 겸손하고 예의 바른 모범생. 유복한 집안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란 데다 독립심도 강해 지 앞가림 척척하는 자소서식 유학파 글로벌 리더. 의협심과 모험심을 양 손에 무장하고 온데 일을 ..

Drama 2020.06.21 4

46년간의 겨울 ⅰ _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0. 신기한 영화입니다. 대단히 편안하고 친절한 동화이긴 한데 어린이용 동화로만 보기엔 무지막지하게 많은 코드가 동시에 읽히거든요. 겨우 8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영화 안에 이렇게나 많은 은유를 녹여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말이죠. 그림쟁이 쥐와 음악가 곰의 사랑스러운 동화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글로 풀어놓을 필요가 없을 만큼 안정적이기에 생략하구요. 이 글에선 제 나름대로 이해한 코드들에 대한 생각들을 조악하게나마 풀어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영화를 공산주의 진영(쥐)과 자본주의 진영(곰) 간의 냉전 시대 갈등과 인간성 회복에 대한 우화로 읽었습니다. '뱅상 파타', '스테판 오비에', '벵자맹 레네' 감독,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Ernest et Céles..

Animation 2020.06.17 2

Miluju tebe _ 원스, 존 카니 감독

# 0. 무명 뮤지션의 버스킹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동시에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낭만으로 가득하기도 하죠.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들이 삶을 통채로 걸어 음악을 하는 이유와, 외로운 사람들이 열렬히 사랑을 갈구하는 이유를 함께 느끼게 하는 영화입니다. 뻔뻔한 소매치기와 고장 난 청소기와 관절염에 자살해버린 아버지와 악기상에서 치는 피아노 위로 아일리시 모던 락에 담긴 사랑이 울려 퍼집니다. '존 카니' 감독, 『원스 :: ONCE』입니다. # 1. 영화는 비어 있습니다. 의도된 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재구성한 풍경들, 이를테면 음악을 연주하는 순간마다 등장하는 연출이 마련해준 가상의 무대 따위는 없습니다. 진행을 위해 필요한 사람들과 필요한 조건들이 동원된다던지 하는 등의 계획된 인과 역..

Romance 2020.06.06 0

회화의 역습 _ 셜리에 관한 모든 것,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

# 0. 모티브가 되는 작가의 작품들 뿐 아니라 미술관에서의 경험까지 통째로 이식해 온 듯한 영화입니다. 아니 어쩌면 반격이라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네요. 압도적 상업성으로 무장한 현대 영화라는 막강한 대중예술에 폐퇴한 근대 회화 미술의 역습이랄까요.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 『셜리에 관한 모든 것 :: Shirley: Visions of Reality』입니다. # 1.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의 작품 13점을 가져다 13개의 씬으로 재구성한 후 이어 붙여 만든 영화입니다. 때문에 모티브가 되는 고독의 미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피할 수야 없겠습니다만 구태여 분리해 다룰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제 얕은 지식으로 작가의 미술 철학에 대해 논하는 게 가당치 않다는 걸..

Drama 2020.06.02 2

글자를 아니까, 사는 기 더 재밌다 _ 칠곡 가시나들, 김재환 감독

# 0. 내 나이 팔십팔세 마음은 팔팔하다. 우리 사우가 장모님 글씨 차마네예 카이 마음이 또 팔팔해 즌다. 나는 박금분 할매믄서, 학생이다. 학생이다. '김재환' 감독, 『칠곡 가시나들 :: Granny Poetry Club』입니다. # 1. 마을에 한글 학교가 생깃다. 글자를 아니까, 사는 기 더 재밌다. # 2. 공부. 유촌댁 안윤선. 지금 이래 하마 한자라도 늘고 좋지. 원, 투, 쓰리, 포. 영어도 배우고 한번 해보자. # 3. 공부. 등개댁 곽두조. 80 너머가 공부할라카이 보고 도라서이 아차뿌고 눈 뜨만 이차분다. 아들 둘 딸 둘 다 키았는데 그 세월 쪼매 잘 아랐우면 초았을 거로. 우리 미느리가 공부한다고 자꼬 하라칸다. 시어마이 똑똑하라꼬 자꼬 하라칸다. 하라카는 기 고맙다. # 4. 나..

Humanism 2020.05.23 2

Black Bottom _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조지 C. 울프 감독

# 0. 우리나라에서는 의 윤여정 선생이 가장 큰 축하를 받았습니다만 2021 오스카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클로이 자오의 라 해야 하겠죠. 많은 분들의 생각처럼 저 또한 상을 탈만한 영화가 상을 탔다 생각합니다. 진즉 봤음에도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미뤄두고 있는데요. 적당한 시기가 되면 노매드 랜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기회가 있겠죠. 그 외에도 나 , , , , , 등 훌륭한 영화들이 한 해를 빛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미네이트 작 중 네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영화가 뭐냐 물으신다면 전 이 작품의 이름을 가장 먼저 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지 C. 울프' 감독,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 Ma Rainey's Black Bottom』입니다. # 1. 영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솔직히...

Drama 2021.05.02 2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다 _ 바베트의 만찬, 가브리엘 액셀 감독

# 0. 강신주 교수는 라는 책을 통해 무문관(無門關)을 저 같은 똥멍청이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을 따라 48개의 관문을 차근차근 넘는 동안 수많은 화두들을 흥미롭게 즐기고 나면 어느새 서서히 하나의 메시지로 소집됨을 느끼게 되죠. 집착을 벗어던지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자. '가브리엘 액셀' 감독, 『바베트의 만찬 :: Babettes gæstebud』입니다. # 1. 기본적으론 요리 영화입니다. 노라 에프론 감독의 과, 브래드 버드 감독 ,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과, 존 파브로 감독의 같은 정줄 놓고 편안하게 남들 밥 차리고 밥 먹는 거 구경하는 먹방 영화들의 조상님 쯤 될법한 영화죠. 동시에 종교 영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주인공부터 일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

Drama 2021.04.29 0

연기의 맛 _ 대학살의 신, 로만 폴란스키 감독

# 0. 연기 구경하는 맛으로 보는 영화입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 『대학살의 신 :: Carnage』입니다. # 1. 찰진 대사빨과 화려한 연기빨로 조지는 소위 말싸움물입니다. 네 명의 주인공이 좁은 거실에 틀어박혀 펼치는 1시간 19분 동안의 썰전입니다. 다 큰 어른들이 교양과 위선으로 싸우는 동안 리드미컬하게 변모하는 긴장과 갈등, 그 속에 숨겨진 묵직한 농담입니다. 평범하다는 말도 거창해 보일 정도로 소소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입니다. 전개라 부를만한 서사조차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인즉, 연출자가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뜻이죠. '낸시'가 화려하게 물대포를 쏘는 장면이나, '햄스터'나 '아프리카' 같은 몇 뇌절성 아이템을 활용한 러프한 완급 조절을 제외..

Drama 2021.04.26 2

컨템퍼러리 타임즈 _ 커피와 담배, 짐 자무쉬 감독

# 0.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것 같은 감독의 이름과 매일 두 잔씩은 꼬박꼬박 마시는 커피, 한동안 인생을 좀먹었던 담배와 긴장을 부르는 강렬한 흑백의 화면, 집중을 낚아채는 좁은 테이블의 공간과 왠지 아우슈비츠를 속속들이 알 것만 같은 배우의 등장이 의자를 스크린 가까이 당겨 앉게 합니다. '짐 자무쉬' 감독, 『커피와 담배 :: Coffee and Cigarettes』입니다. # 1. 집중해서 영화를 보는데요... 어째 점점 현타가 몰려옵니다. '열심히 본다'는 행위 그 자체에 강한 회의감이 듭니다. 이렇게 보는 영화가 아닌 것만 같은 위화감입니다. 가까이 다가간 몸을 다시 뒤로 뉘어 엉덩이를 뺀 채 마치 염세주의자들의 그것과 같은 무심함으로 영화를 봐야 할 것만 같다는 압박이 느껴집니다. 신기한..

Drama 2021.04.24 0

인형의 집은 정답이 아냐 _ 마루 밑 아리에티,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

# 0. 토토로 받고! 아리에티 더!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 『마루 밑 아리에티 :: 借りぐらしの アリエッティ』입니다. # 1. 며칠 전 를 리뷰하며 에 관한 영화라 말씀드렸습니다. 유년기에 경험할 수 있는 '무서운 경험들'을 소집한 후, 그 무서움을 한 발짝 넘어서게 만들었던 '용기'의 구체화로서 '토토로'와 교감하는 영화라고 말이죠. 같은 기준에서라면 이 영화는 에 대한 영화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새삼 지브리의 작품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 구체적이고 편안한 정서를 하나 딱 짚어 풍부한 상상력으로 감싸 안는 이야기를 참 맛깔나게 잘 만든다는 생각입니다. 작중 인물들은 모두 파편화되어 있는 소위 '외로운 존재들'입니다. 부모가 일찍 이혼한 탓에 아버지는 거의 본 적도 없고 엄마마저 바빠 보기..

Animation 2021.04.20 2

미스터 삑사리 _ 새벽의 황당한 저주, 에드가 라이트 감독

# 0. 혹자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삑사리의 미학이라 분석하기도 하는데요. 삑사리가 중요한 순간 매력 포인트로 작동하는 방식을 넘어 아예 삑사리만으로 영화를 만들면 요런 컬트적인 작품이 나오기도 합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 『새벽의 황당한 저주 :: Shaun of the Dead』입니다. # 1. 패러디 영화입니다. 제목부터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에서 따왔듯 말이죠. 고전적 좀비 영화의 소재들을 가져오되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선 클리셰를 역으로 비틂으로 인한 의외성을 즐기는 영화입니다. 그 수준은 패러디와 클리셰의 레퍼런스를 짚는 것보다 차라리 패러디가 아닌 장면을 찾는 편이 더 빠를 정도죠.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좀비 떼의 습격과 이를 멋들어지게 돌파해 나가는 영리한 주인공 파티는 윈체스터..

Horror 2021.04.18 0

무섭지 않아 _ 이웃집 토토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0. 감독의 수많은 명작 중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심지어 이 영화를 인생 영화로 꼽으시는 분들도 적지 않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이웃집 토토로 :: となりの トトロ』입니다. # 1.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을 안정적인 소재, 뛰어난 완성도의 작품입니다. 만, 의외로 "무슨 이야기의 영화야?" 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음... 아빠랑 딸 둘이 시골집에 이사 가서... '토토로'라는 다람쥔지 뭔지 모를 푹신한 애를 만나는 데... 아니, 엄마 있어, 근데 아파서 병원에 있지. 어쨌든, 음... 나중에 고양이 모양 버스도 나오고... 아니, 그냥 니가 직접 봐! 진짜 재밌어!" 라는 식으로 얼버무려 본 분들 제법 있으실 테죠. 생각해 보면 당연합니다. 사실상 ..

Animation 2021.04.15 2

대환장파티 _ 디스 이즈 디 엔드, 에반 골드버그 / 세스 로건 감독

# 0.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순서대로 자리합니다. 앞사람이 말한 단어의 마지막 글자로 시작하는 새로운 낱말을 늘어놓아야 합니다. 단어의 길이에 제약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두 글자면 두 글자, 세 글자면 세 글자 글자 수를 맞춰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대체로 두음법칙은 적용 가능합니다.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것도 허용되곤 하지만 재미를 위해 썩 권장되지는 않습니다. 외래어나 외국어, 고유명사나 인명 등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느냐, 그러지 않느냐를 놓고 변주를 줄 수도 있죠. '에반 골드버그', '세스 로건' 감독, 『디스 이즈 디 엔드 :: This Is the End』입니다. # 1. 플레이어 간에 합의된 룰에만 부합한다면 모든 어휘는 허용됩니다. 다음에 왜 가 나오는지, 죄 없는 은 왜 매번 에..

Comedy 2021.04.07 0

세 가지 질문 _ 녹터널 애니멀스, 톰 포드 감독

# 0.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배우들이 있습니다. 봐야겠다 싶어 리스트에 올려놓더라도 당장 보기엔 지칠까 두려워 한참 동안 묵혀 두게 되는 영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껏 충전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각오를 담은 긴 심호흡과 함께 조심스레 꺼내 드는 영화. 고런 영화들을 주로 만드는 배우들 말이죠. '톰 포드' 감독, 『녹터널 애니멀스 :: Nocturnal Animals』입니다. # 1. 이 분야 끝판왕은 단연 '호아킨 피닉스'입니다만 굳이 한 명 더 꼽아야 한다면 전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화의 주인공 '제이크 질렌할'을 꼽겠습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작품들이 대체로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형이상학적 메시지를 둘러싼 극단적인 감정 소모를 불러일으킨다면, 제이크 질렌할의 경우 대단히 디테일한 현실적..

Thriller 2021.03.24 4

물과 기름 _ 더 파티, 샐리 포터 감독

# 0. 예전엔 이런 류의 영화를 어떻게 소개해야 좋으려나 싶어 골치가 아팠습니다만, 이젠 딱 한마디면 손쉽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같은 영화라고 말이죠. '샐리 포터' 감독, 『더 파티 :: The Party』입니다. # 1.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비스무리한 작품입니다. 개성 강한 예닐곱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축하받을 만한 경사를 맞는 누군가가 호스트가 되어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합니다. 초반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수다스럽게 나눌 테지만 딱히 집중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캐릭터들을 관객에게 소개하는 작업이기 때문이죠. 얼추 15분여 동안 인물 소개가 적당히 끝나고 나면 차례차례 약속 장소에 도착한 인물들이 한데 모이게 됩니다. 처음엔 호스트를 축하하는 식의, 적당히 격식을 갖춘 정돈된 언어, 정돈..

Comedy 2021.03.17 0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_ 레베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넷플릭스의 를 보려 했습니다. 'DELING' 님 댓글 덕에 뮤지컬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요. 살펴봤더니 리메이크 작이더군요. 원작은 무려 1940년 작, 그것도 히치콕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라기에 까흠짝 놀랬더랬죠. 더 놀라운 건 그 마저 1939년에 출간한 '다프네 뒤 모리에'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역시 무식하면 놀랄 일이 이렇게나 많습니다. 80년 전 책을 찾아보기엔 너무 게으르고 뮤지컬은 볼 방법이 없다는 핑계로 작품에 대한 감상은 영화 두 편 연이어 보는 것으로 적당히 갈음하려 합니다. 기대되는군요. 오래전 명곡을 리메이크 버전과 비교해 듣는 재미가 있듯 영화 역시 같은 서사를 다루는 두 창작자의 시각을 적절히 비교해 가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니까요. 우선은....

Thriller 2021.03.10 2

냉동 고추 바사삭 _ 11:14, 그렉 마크스 감독

# 0. 우연과 필연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스릴 넘치면서 유쾌한 킬링 타임용 오락 영화. '그렉 마크스' 감독, 『11:14』입니다. # 1. 본 영화도 몇 편 안 되는 주제에 구미를 당기는 작품이 없다고 투덜거리면서 온종일 영화 목록을 뒤지는 건 바로 이런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일 겁니다. 대작의 화려함이나 걸작의 유려함은 없지만 대신 세상 잃을 것 없는 놈들의 자유분방함과 창의적인 발상, 도발적인 전개로 함께 놀아보자 덤비는 이런 영화들 말이죠. # 2. 이게 바로 킬링 타임용 오락 영화입니다. 제작비만 오지게 때려 박았을 뿐 이야기는 클리셰 대충 비벼 만들어 놓고선 "영화는 영화일 뿐이잖아?" 라거나, "킬링 타임용 영화가 이만하면 됐지!" 라 말하는 감독들의 엉덩이를 시원하게 걷어 차는 것만 같은..

Comedy 2021.03.03 0

유쾌하게 조롱당할 수 밖에 _ 디어스킨, 쿠엔틴 두피유 감독

# 0. "조르주는 전 재산을 털어 100% 사슴가죽 재킷을 구매한다. 덤으로 받은 캠코더로 영화감독 행세를 하던 그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재킷을 입은 사람이 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재킷을 없앨 계획을 세운다." ... 이 설명을 읽고 어떻게 안 볼 수 있겠어요. '쿠엔틴 두피유' 감독, 『디어스킨 :: Le daim』입니다. # 1. 서두에 말씀드린 괴랄한 소개 그대로입니다. '조르주'라는 남자가 순도 100% 사슴 가죽 재킷 하나에 전재산을 꼬라박습니다. 덥수룩한 수염의 털북숭이 호구를 낚은 사기꾼은 등쳐먹은 게 영 찝찝했던지 덤으로 캠코더를 하나 선물하죠. 사슴 재킷을 입고 신난 호구는 바에서 술을 마시는 데 웬 창녀가 직업이 뭐냐 묻자 영화감독이라 구라를 칩니다. 의자에 걸쳐둔 사슴 가죽과 복화술..

Comedy 2021.03.02 2

인싸식 영화관람법 _ 저수지의 개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 0. 사흘 전 올린 리뷰에 뜬금없이 베아트릭스 키도를 거론한 건 우연이 아닙니다. 갑자기 꽂혀서 타란티노를 정주행하고 있었거든요. 현재 , , , , , 은 왓챠에서, 는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왜 때문인지 은 양쪽 모두에서 서비스하고 있구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넷플릭스에 가 걸려 있었던 덕에 두 OTT 플랫폼만으로도 를 제외한 타란티노를 모조리 볼 수 있었습니다만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군요. 범인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누가 되었든 순순히 할리우드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게 좋을 겁니다. 면도칼을 든 미스터 블론드를 만나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저수지의 개들 :: Reservoir Dogs』입니다. # 1. 익히 알려진 타란티노. 그중..

Thriller 2021.02.27 2

더 클래식 _ 12인의 성난 사람들, 시드니 루멧 감독

# 0. 짧게 하겠습니다. 얼른 써 놓고 자기 전에 한번 더 볼꺼거든요. '시드니 루멧' 감독, 『12인의 성난 사람들 :: 12 Angry Men』입니다. # 1. 명성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만,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도 제법 오랫동안 미뤄뒀던 영화입니다. 고전 영화도 나름대로의 맛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특유의 이물감이 관람을 짐짓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연출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만 하더라도 부분적으로나마 어색한 점이 느껴될 정도니,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거라 봐야 할 겁니다. # 2. 하지만 이 영화는 다릅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작품입니다. 대부분의 고전영화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뭘 하고 싶었는지는 충분히 유추할 수 있으나 기술적-경제적 한계 ..

Thriller 2021.02.20 3

에피타이저 _ 플랜 75, 하야카와 치에 감독

# 0. 을 보고 난 후 뜬금없이 옴니버스 영화에 뽐이 왔네요. 적당한 영화가 어디 없을까 하며 OTT를 뒤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 초청작 중 첫 번째 단편입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 『플랜 75 :: Plan 75』입니다. # 1.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하나에는 [찬성] 다른 하나에는 [반대]라는 글귀가 적혀있군요. 감독은 처음엔 반대의 의자에 앉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 관객을 설득합니다. 그런가 싶어 의자에 앉았더니 다시 찬성의 의자에 앉는 것이 옳지 않겠냐며 설득합니다. 갸우뚱하며 의자를 바꿔 앉았더니 감독은 다시금 반대의 의자에 앉을 것을 권합니다. 관객은 짧은 런타임 안에서 주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라는 ..

Drama 2021.01.24 2

로코풍 스릴러 _ 맨해튼 미스터리, 우디 앨런 감독

# 0. 살인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소름 돋게 만드는 서늘한 감각이 떠오르기도 하구요. 의지하게 만드는 주인공의 카리스마가 생각나기도 하는군요. 끔찍한 살인마의 잔혹함도 필수요소인 듯하고, 살인 사건에 얽힌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의 웅장한 마무리 또한 생각이 납니다. '우디 앨런' 감독, 『맨하탄 미스테리 :: Manhattan Murder Mystery』입니다. # 1. 대체로 위와 같은 접근들은 모두,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가 지향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한 정석적 방법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요하고 오싹해야 관객이 긴장감을 가지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을 테구요. 주인공에게 카리스마가 있어야 감정이입이 수월하겠죠. 살인마가 잔혹해야 사건이 빨리 해결되었으면 하..

Comedy 2021.01.21 0

일생 ⅰ _ 붉은 거북, 미카엘 뒤독 더 빗 감독

# 0. 고요하면서 웅장합니다. 섬세하면서 장엄합니다. 간결하면서 화려하고, 차분하면서 격렬합니다. 명료하지만 동시에 대단히 치밀하고, 단순하지만 더없이 디테일하기도 합니다. 누구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편안한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함의는 깊을 사색을 필연적으로 요구합니다. '미카엘 뒤독 더 빗' 감독, 『붉은 거북 :: La tortue rouge』입니다. # 1. 언어는 논리입니다. 체계입니다. 계산적일 수밖에 없으며, 정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 아무리 창의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약속된 어휘가 허락한 사고의 틀을 벗어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화에 음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는 것 ..

Animation 2021.01.20 0

동네 영화 _ 카모메 식당,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 0. 핀란드의 갈매기는 뚱뚱하다. 비대한 몸으로 항구를 뒤뚱뒤뚱 걷는 꼴을 보면 초등학교 때 키우던 나나오가 생각난다. 나나오는 10.2킬로나 되는 거대 얼룩 고양이였다. 독불장군에다 툭하면 다른 고양이에게 폭력을 휘둘러 모두가 싫어했다. 하지만 왠지 나한테만은 만져도 화내지 않고 기분 좋은 듯 가르릉 거리기도 했다. 그게 너무 귀여워서 엄마 몰래 먹을 걸 잔뜩 주었더니, 점점 살이 쪄서 결국 죽었다. 나나오가 죽은 다음 해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었다. 엄마를 정말 사랑했지만 어쩐지 나나오 때보다 덜 울었던 것 같다. 그건 무술가인 아버지가 사람들 앞에서는 울지 말라고 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난 살찐 동물에게 약하다. 맛있게 먹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인다. 엄마는 말라깽이였다. '오기가미 나오코..

Drama 2021.01.14 11

3단변신로봇 _ 인비저블맨, 리 워넬 감독

# 0. 하나의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서사를 부분적으로 공유하는 세 장르물이 접붙여져 있는 쪽에 조금 더 가까운 작품입니다. 인트로 아카펠라, 발라드, 기타 솔로, 오페라, 하드 락, 아우트로의 6개 부분으로 구성된 '퀸'의 처럼 이 영화는 전반부, 중반부, 종반부에 걸쳐 각기 다른 세 장르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리 워넬' 감독, 『인비저블맨 :: The Invisible Man』입니다. # 1. 전반부 장르는 호러입니다. '세실리아'가, 잠든 '애드리안' 몰래 집을 벗어나는 6분. 결코 짧다 할 수 없는 긴 시간 동안 아무런 대사도, 음향도 없이 감독은 영화의 분위기를 최대한 침전시킵니다. 가장 내밀한 공간인 침대, 그중에서도 '애드리안'의 끌어안은 손아귀에서 출발한 주인공은 수많은 공간과 ..

Horror 2021.01.09 0

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 한정으로는 따뜻한 차를 조금 더 자주 즐기곤 합니다. 찬장 가득 쟁여둔 티백을 하나 꺼내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두툼한 머그잔에 우려낸 후, 입이 델라 조심스레 홀짝이며 마시고 또 마시는 것만 한 소확행도 없죠. 이 영화는 마치 한잔의 차와 같은 작품입니다. 매우 정적이고 고요하며 정갈한 영화입니다만, 동시에 손이 데일 듯 뜨거운 에너지가 담긴 영화이기도 합니다. 감상하는 동안에도 충분히 많은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게 됩니다만, 다 마시고 나면 입안을 가득 메우는 향기처럼 길고 짙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새겨진 아름다운 찻잔 속에서 논리의 창과 철학의 방패가 번득입니..

Drama 2021.01.01 0

But I couldn't help it _ 크라잉 게임, 닐 조던 감독

# 0. 인간은 두 가지야, 퍼거스. 전갈과 개구리처럼. 그 얘기 알아? 전갈이 강을 건너고 싶지만 수영을 못해서 개구리를 찾아가서 부탁을 했어. 개구리는 전갈이 찌를지 모른다며 거절을 했지. 그러자 전갈이 말하길 '그럼 둘 다 빠져 죽어.' 그랬지. 그래서 안 찌른다고 했어. 생각하던 개구리는 전갈을 건네주기로 하고 전갈을 등에 태웠어. 그런데 중간쯤 갔을 때 물결이 거칠어지자 겁난 전갈은 개구리를 찔러버렸어. 결국 둘 다 죽게 되고 만 거야. 그래서 개구리가 화가 나서 물었는데, 뻔히 죽을 줄 알면서 왜 찔렀냐고. 개구리랑 같이 죽어가면서 전갈은 대답했지. "나도 어쩔 수 없어. 이게 천성인걸." '닐 조던' 감독, 『크라잉 게임 :: The Crying Game』입니다. # 1. '퍼거스'는 IRA..

Thriller 2021.12.20 0

중독과 선택 _ 어딕션, 아벨 페라라 감독

# 0. 문과를 가까이하는 게 이렇게나 위험합니다. 대학원생은 더더욱 위험합니다. '아벨 페라라' 감독, 『어딕션 :: The Addiction』입니다. # 1. 강의실에 전쟁 범죄와 관련된 슬라이드가 펼쳐집니다. 국가의 악행에 가담한 개인의 책임을 두고 두 대학원생이 논쟁을 벌입니다. 벌써부터 피곤하죠. 뱀파이어 영화인 줄 알았는데요. 공포 영화라 그러셨잖아요.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생의 값진 교훈 하나를 안겨줍니다. 이 영화는 수면 부족으로 다크서클이 가득한 굳은 표정의 대학원생이 다가오면 단호하게 꺼져라 말해야 한다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명심하세요. 자칫 방심하다간 교수들이 득실득실한 파티장에 납치당해 피를 쪽 빨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 2. 칸트에 헤겔에 샤르트르까지. 오냐오냐 하니까 끝이..

Horror 2021.12.12 2

붉은 날 _ 슬라롬, 샤를렌느 파비에 감독

# 0. 새하얀 설원을 가르는 붉은 날. * 날² [명사] _ 연장의 가장 얇고 날카로운 부분. 베거나 찍거나 깎거나 파거나 뚫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샤를렌느 파비에' 감독, 『슬라롬 :: Slalom』입니다. # 1. 서사는 날카롭고 직선적입니다. 숨겨진 비밀 따위의 과장된 변주 없이 날 것 그대로를 전개합니다. 시니컬해 보일 정도의 선명성이 드라마가 작동하기 위한 높은 몰입도를 정석적으로 설득합니다. 프랑스 영화는 이 강단이 참 매력적이죠. 미성년자 성폭행이란 소재는 충격적이지만 핵심은 아닙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에서 특별히 문제적인 개인이 특별히 문제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건 종종 일어나는 일이며 그걸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건 감독도 알고 있습니다. 영화가 주목하는..

Drama 2021.12.02 0

겁쟁이의 기억법 _ 애플, 크리스토스 니코우 감독

# 0. 인물을 고립시킵니다. 화면 끝으로 강하게 밀어냅니다. 스크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큰 거울과 등지고 앉은 남자입니다. 머리 위나 뒤를 최대한 넓게 잡은 구도와, 멍하니 흐릿한 초점의 표정 연기가 남자의 머릿속을 공간에 던져 시각화합니다. 이 영화는 거울 속에 온전히 갇혀버린 남자의 이야기군요. 집을 나서 거리를 걷습니다. 줄지은 검은색 차량과 단조로운 패턴의 건물이 남자의 걸음에 방향성과 연속성을 부여합니다. 차 앞에 기억을 잃은 누군가가 주저앉아 있습니다. 일련의 시퀀스는 이후 남자가 걷게 될 선택을 압축적으로 은유합니다. 일정한 방향으로 연속되던 시간을 거칠게 단절하는 기억 상실입니다. '크리스토스 니코우' 감독, 『애플 :: Mila』입니다. # 1. 반전 영화입니다. 언제나의 반전 영화들처..

Drama 2021.11.28 0

한 그루의 사과나무 _ 고스트 스토리, 데이빗 로워리 감독

# 0. 기억되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아 보이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유령처럼 '데이빗 로워리' 감독, 『고스트 스토리 :: A Ghost Story』입니다. # 1. 를 보려고 했는데요. 감독 이름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누구더라... 아! 고스트 스토리의 감독이었군요. 생각난 김에 고스트 스토리를 애피타이저로 한 번 더 보고, 그린 나이트를 봐야겠습니다. 철학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입니다. 쫀쫀한 이야기는커녕 시간이 멈춘 듯 느린 템포와, 바스러지는 현학적 대사들과, 연출적 물리적 관계적 개념적 층위의 공백들과 여백들이 감상을 어렵게 합니다. 혹시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셨고 말씀드린 류의 건조하고 느린 호흡의 메시지 중심 작품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면 다른 작품을 보는 것도 생각해보..

SF & Fantasy 2021.11.26 0

홉스의 영화적 증명 _ 갓즈 포켓, 존 슬래터리 감독

# 0.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연기를 볼 마지막 기회" - The Telegraph, 영화 홍보 카피 중에서- '존 슬래터리' 감독, 『갓즈 포켓 :: God's Pocket』입니다. # 1. 영화의 제목은 갓즈 포켓, 신의 호주머니입니다. 호주머니에는 보통 볼품없는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잡동사니라 불리는 것들이죠. 각각의 용도나 정체성을 주목하지 않는 잡다한 것들의 무리. 값지지 않아 이리저리 구르고 깨져도 걱정이 없는 것들을 뜻합니다. 호주머니 속 잡동사니들은 걸음에 따라 뒤엉킵니다. 어느 조각이 위에 오르기도 하고 어떤 조각은 아래에 깔리기도 하지만 이는 걷는 사람의 의도가 아닌 운에 따를 뿐입니다. 무언가가 부서졌다거나 부서지지 않았다면 그 역시 조금 운이 나쁘거나 운이 좋았을 뿐이죠. 잡동..

Drama 2021.11.18 4

올해의 단편 _ 맛있는 엔딩, 정소영 감독

# 0. 이번 옴니버스 너무 좋은데요? 단편 옴니버스 두 번째 에피소드입니다. '정소영' 감독, 『맛있는 엔딩 :: Tasty Ending』입니다. # 1. 무수히 많은 신발과 오브젝트는 누적된 무언가를 의미합니다. 특유의 물 빠진 색감과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깊은 한숨이 인물과 공간의 수분을 제거합니다. 제법 긴 시간 동안 대사는 단 한 마디도 없습니다. 물건을 챙기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는 손길에 과격하면서도 처연한 정서가 엿보입니다. 서랍장에서 상자를 꺼냅니다. 상자 속에서 다이어리를 꺼냅니다. 1000일. 3년 여가 넘는 긴 시간을 만났다는 것보다, 1000일 이후론 세지도 않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시콜콜한 잘잘못에 대한 작품이 아닙니다. 여자의 이별은 어떤 사연 어떤 핑계를 댄다 하더라도 결국..

Romance 2021.11.08 0

나초와 발가락 _ 데스 프루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 0. 긁어모으는 동안의 흥분. 집어던지는 순간의 쾌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데스 프루프 :: Death Proof』입니다. # 1. 주문에 맞춰 정확히 배합된 칵테일을 내놓는 바텐더 '워렌'처럼 감독 '타란티노'는 관객의 기대에 정확히 부합하는 환상적 배합의 보상을 선사합니다. 존~~~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역시 타란티노 죠. 뭐랄까요. 참 동물적인 영화입니다. 관객들, 특히 남성 관객들로부터 스스로 동물이라는 것을 폭력적으로 고백케 만들려는 듯한 작품이랄까요. 영화를 보다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허울에 갇혀 잊고 있었던, 그저 DNA에 새겨진 유전자 지도에 따라 배열된 단백질 덩어리 속 호르몬의 화학적 기작이 만든 본능 덩어리임을 새삼 상기하게 됩니다. 제 아무리 거창한 이유로 치..

Action 2021.11.02 0

추악한 리얼리즘 _ 택시, 자파르 파나히 감독

# 0. 더 이상 영화를 찍을 수 없게 되었다. 고민 끝에 택시를 몰아야겠다 생각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 『택시 :: Taxi』입니다. # 1. 첫 번째 손님입니다. 강경한 법 적용을 주장하는 남자와 죄와 벌의 등가성에 대해 주장하는 여자입니다. 대화 내내 남자는 앞 좌석에 여자는 뒷 좌석에 앉아 있습니다. 남자는 화면의 정중앙에 여자는 귀퉁이에 위치합니다. 남자는 편안한 일상복을 여자는 차도르를 두르고 있습니다. 남자는 대화 내내 앞이나 옆자리 남자 운전사만을 쳐다봅니다. 여자은 돌아보지 않는 남자의 뒷모습을 응시합니다. 두 사람은 짐짓 같은 주제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 듯 하지만 다른 위계에 존재합니다. 여자는 교사입니다. 여자의 직업을 들은 남자는 말합니다. "그럼 그렇지. 현실과 동떨어진 일..

Drama 2021.10.27 6

카지노의 법칙 _ 리노의 도박사,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 0. 딜러는 돈을 잃지 않는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리노의 도박사 :: Sydney』입니다. # 1. 캐릭터를 역할 관계 하에 강하게 통제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런 작품들은 대게 이야기 구조 역시 역할을 중심으로 한 캐릭터의 배치에 종속되어 있곤 하죠. 마치 롤플레잉 게임처럼요. 각각을 보안관, 전직 군인, 교수형 집행인, 현상 수배범 등과 같은 서부극 속 역할 관계로 규정한 후 이를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했던 이나, 노예상, 자유인이 된 노예, 노예를 관리하는 흑인, 현상금 사냥꾼으로 캐릭터를 규정해 힘과 당위의 논리로 시대극을 풀었던 와 같은 영화들은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영화에서는 도박이 되겠죠. # 2. 카지노에는 여러 종류의 게임들이 있습니다. 환각적 이미지를 표현..

Thriller 2021.10.16 0

힐링은 없어. 그리고 힘냅시다 _ 바다의 뚜껑, 토요시마 케이스케 감독

# 0. '오기가미 나오코'의 작품들이 흘러가는 구름과 바다를 보며 느리게 드라이브를 하는 것만 같은 영화라 한다면, 이 작품은 바다 앞에 차를 세워둔 채 운전석에 앉아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는 영화 쪽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1시간 넘는 동안 가만히 멈춰 서 있다가 차의 시동을 탁 걸며 끝나는 것만 같은 이야기랄까요. '토요시마 케이스케' 감독, 『바다의 뚜껑 :: 海のふた』입니다. # 1. 거리감이 인상적입니다. 차분한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최대한의 거리를 유지합니다. 주요 인물인 '마리'와 '하지메', '오사무' 모두 영화 내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배치되거나, 걷는다 하더라도 서로 멀찍이 떨어져 주변을 배회합니다. 오프닝에서부터 빙글빙글 겉도는 자전거와, 오열하는 '하지메'와 지켜보는 '..

Drama 2021.09.01 0

무시하는 겁쟁이 _ 오목소녀, 백승화 감독

# 0. 촉망받던 유망주였지만 바둑 대회에서 실패를 겪은 후 기원 알바를 전전하던 주인공이 생활고를 극복하기 위해 오목 대회에 도전하는 영화입니다. 전반적으로 짧은 호흡의 가벼운 말장난 개그로 승부 보는 코미디물인데요. 57분 내내 한방의 훅 없이 잔펀치만 집요하게 때리다가 마지막에 따뜻한 메시지로 반창고를 붙여주는 영화라 말씀드린다면 무난하겠네요. '백승화' 감독, 『오목소녀 :: Omok Girl』입니다. # 1. 2014년 이후 만들어진 바둑과 인생을 엮는 다른 모든 창작물들처럼 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작품입니다만 감독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아예 패러디물로 가볼까?' 라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합니다. 알파고 드립과 같은 잔잔한 농담뿐 아니라 후반부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나 드립 등은 특히 노골..

Comedy 2021.08.18 0

술래잡기 _ 해리의 소동,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맥거핀 [macguffin] 속임수, 미끼라는 뜻. 영화에서는 서스펜스 장르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이 고안한 극적 장치를 말한다. 극의 초반부에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져 버리는 일종의 ‘헛다리 짚기’ 장치를 말한다. 관객들의 기대 심리를 배반함으로써 노리는 효과는 동일화와 긴장감 유지이다. (후략) [네이버 지식백과] 맥거핀 [macguffin] (영화 사전, 2004. 9. 30., propaganda)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해리의 소동 :: The Trouble With Harry』입니다. # 1. 18분 50초. '윅스' 부인의 가게에 찾아온 '말로우'와 '아이비'입니다. 말로우가 식료품과 담배를 사며 돈이 없다 말합니다. 윅스 부인은 익숙하다..

Comedy 2021.08.08 0

내일도 날씨는 맑음 _ 병훈의 하루, 이희준 감독

# 0. 오염 강박과 공황 장애를 앓고 있는 병훈은 남들에겐 별일 아닌 숙제를 전쟁처럼 치러낸다. 하루의 끝에는 그를 위한 진짜 선물이 있었다. 병훈은 늘 가지고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제대로 보지 못했던 선물을 재발견하고 이 순간에 감사를 느낀다. '이희준' 감독, 『병훈의 하루 :: Mad Rush』입니다. # 1. 이희준 감독 작품입니다. 이희준이란 이름은 배우밖에 모르신다구요? 네, 그 사람 맞습니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병훈'의 하루입니다. 시나리오 특성상 메시지는 주인공을 묘사하는 방식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고 묘사의 완성도는 다시 배우의 연기력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담당한 배우가 바로! 이희준이죠. 감독도 하고 주연도 하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

Drama 2021.08.04 0

시곗바늘 그 영화 _ 마침내 안전!, 프레드 C. 뉴마이어 / 샘 테일러 감독

# 0. 무성영화 시대 슬랩스틱 스턴트 코미디를 이야기하며 '찰리 채플린'을 거론하는 건 영 심심합니다. 채플린이 위대한 영화인이라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테지만, 저 같은 홍대병 환자들에게 있어 그런 것 따위보다는 내가 얼마나 아는 척을 할 수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한동안은 '버스터 키튼' 정도면 충분히 비빌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무표정'이라는 별명과 , , 등의 대표작들을 '당연히 아는 것 아니냐'는 듯한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열한 다음, 이런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그가 가진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용기, 인류사를 관통하는 통시적 가치들에 천착함으로 인해 어느 시대에서든 동시대성을 느끼게 만드는 표현, 창조적이고 도전적이며 이지적인 촬영 기법과 완벽주의자적 태도 등의..

Comedy 2021.08.02 0

직업병 _ 사라진 시간, 정진영 감독

# 0. 문소리 감독은 를 통해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의 치열한 현실과 페이소스를 묘사합니다. 김윤석 감독은 을 통해 배우의 시선에서 캐릭터를 해석하는 방식을 풍부하게 표현합니다. 그리고 정진영 감독 역시 지금 이야기하려는 영화 을 통해 배우가 필연적으로 겪게 될 정체성 갈등을 전개합니다. 배우, 특히 배테랑 배우가 영화를 만들면 첫 작품에서 배우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정진영' 감독, 『사라진 시간 :: Me and Me』입니다. # 1. 영화 초반 이영은 세 인격에 빙의됩니다. 돌아가신 수혁의 어머니와 코미디언 이주일, 레슬러 역도산이죠. 얼핏 세 인물은 아무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백종렬 감독의 처럼 저녁이면 랜덤 하게 찾아오는 각기 다른 인격의 예시인..

Drama 2021.06.23 0

위령제 _ 후쿠오카, 장률 감독

# 0.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장률' 감독, 『후쿠오카 :: Fukuoka』입니다. # 1. '제문'의 헌책방입니다. 켜켜이 쌓인 헌책은 오랜 시간에 걸친 누적의 산물입니다. 책방은 축적된 기억의 공간이자 관념의 공간입니다. 환청이 들립니다. 이름 모를 남자의 목소리입니다. 모든 정보는 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어 있지만 남자의 목소리만큼은 순간 휘발되어 사라지는 에 머물러 있습니다. 제문이 전화를 걸어 해효의 소식을 묻는 동안 소담은 책방 깊숙한 곳에 숨겨진 하얀색 을 꺼내 듭니다. 등의 형상은 책방에 있는 것이라기엔 이질적입니다. 밝고 선명하며 장식 없이 둥근 모양입니다. 완전하고 원형적이며 순수합니다. 소담은 묻습니다. "아저씨, 이런 거 좋아해요?" 제문과 소담이 20년 넘게 연락하지 않..

Drama 2021.06.21 0

김종관의 영화세계 _ 최악의 하루, 김종관 감독

# 0. 감독 김종관의 영화입니다. 김종관 감독, 『최악의 하루 :: Worst Woman』입니다. # 1. 골목길입니다. 물리적인 '방향성'과 다양한 골목들의 '보편성'과 좁은 곳을 파고드는 '탐구성'의 이미지입니다. 폭이 있는 도로를 구태여 한 곳으로 몰아 잘라버릴 정도로 감독은 좁고 깊은 길을 집요하게 묘사합니다. 한 일본인이 골목길을 걷습니다. 길가에 앉은 할머니가 엄한 외국인을 보며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은 이 인물에게 겉으로 보이는 모습 외에 다른 함의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길을 걷다 말고 공사장의 구멍을 들여다보는 장면 역시 이 인물이 무언가 혹은 누군가의 속을 들여다보게 될 인물임을 암시합니다. 한예리입니다. 레슨을 진행하는 교수가 연기하는 동안 그녀는 거울을 등지고 앉아 있습니다. 거울은 ..

Romance 2021.06.15 2

그대가 원하면 _ 언어의 정원, 신카이 마코토 감독

# 0. なるかみの すこしとよみて さしくもり あめもふらぬか きみをとどめむ なるかみの すこしとよみて ふらずとも わはとどまらむ いもしとどめば 하늘에 천둥이 여리게 울리니 드리운 구름에 비라도 오려나. 당신을 붙드네. 하늘에 천둥이 여리게 울리고 비님이 안 와도 이 몸은 있겠네. 그대가 원하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 『언어의 정원 :: 言の葉の庭』입니다. # 1. 스타일이나 장르와 무관하게 일정 궤도 이상에 오른 감독 대부분은 상당한 수준의 치밀함과 합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때론 중2병이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감성적인 작품을 하는 신카이 마코토 역시 예외는 아니죠. 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히나 논리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감히, 엄격한 형식논리 안에서 벌어지는 이분법적 구조라 정의한다 ..

Animation 2021.06.05 7

불량 성냥과 계급 우화 _ 성냥공장 소녀,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 0.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기억되기 마련입니다. 당장 이 작품만 하더라도 후반부 복수 장면이 인상적인 작품이죠. 그럼에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시퀀스를 하나 꼽으라 한다면 전 '오프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니아분들 중 일부는 간혹 극장 시간이 늦어 오프닝 10여분을 놓치게 될 경우, 아예 관람 자체를 미뤄버리기도 하는데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죠. 좋은 감독들은 대게 관객과의 첫 만남이, 이후 영화적 경험에 있어 절대적 지분을 차지하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디 앨런'의 나, '봉준호'의 , '쿠엔틴 타란티노'의 같은 영화들은 오프닝 시퀀스만으로도 티켓값을 넉넉히 돌려주는 작품이죠. 그리고 이 영화 역시 그 리스트에 들 법합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

Drama 2021.05.12 0

불안한 존재들 _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아녜스 바르다 감독

# 0. 되도록 어떻게든 생각을 정리하고서 글로 옮기려 합니다. 그게 옳으냐 그르냐, 수준이 되느냐 못 미치느냐 와는 별개로 말이죠. 하지만 이번엔 포기해야겠네요. 대단히 간결하고 선명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연출을 하나하나 음미하다보면 쉬이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문제는 절대 아니구요, 제가 부족해서 그런 거죠. 수많은 화두와 표현이 가득한 탓에, 며칠에 걸쳐 조곤조곤 읽어야 할 책을 1시간 30분 만에 단숨에 읽어버린 느낌입니다. 시간을 두고 곱씹어 봤지만 끝내 정리되지 않아, 나름대로 생각한 몇몇 포인트들을 나열해 두는 것으로 이번 리뷰는 대신해야겠네요. 개인적으론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 중 가장 러블리하면서, 동시에 가장 어려운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

Drama 2021.05.08 0

스페셜리스트 _ 마스크 오브 조로, 마틴 캠밸 감독

# 0. 을씨년스러운 11월이면 포근한 이불속에서 귤 까먹으면서 보는 고전 액션 활극이 땡길 때가 있죠. 마틴 캠벨 감독, 『마스크 오브 조로 :: The Mask of Zorro』입니다. # 1. 낭만에서 시작해 낭만으로 끝납니다. 낭만이 뛰어다니고, 낭만이 칼질하고, 낭만이 키스하고, 낭만이 폭발하는 영화죠. 어떤 것들은 원툴이라 폄하당하고 어떤 것들은 스페셜리스트라 칭송받기도 하는데요. 사실 원툴과 스페셜리스트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잘해서 설득이 되면 스페셜리스트고 안되면 원툴인 것이죠. 그 기준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분명 낭만 밖에 없지만 스페셜리스트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특별할 건 없습니다. 배경만 피식민 계급 캘리포니아인과 식민 지배계급 스페인인의 갈등일 뿐, 실상은 총..

Action 2022.11.20 0

십자말풀이 _ 뜨거운 녀석들, 에드가 라이트 감독

# 0. Greater Good! 에드가 라이트 감독, 『뜨거운 녀석들 :: Hot Fuzz』입니다. # 1. 코르네토 트릴로지 두 번째 작품입니다. 작년 초 를 다시 보고 난 후 1년 여만에 에드가 라이트군요. 감독의 절친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랑 함께한 트릴로지 중 한 작품이긴 합니다만, 사실 전후의 두 작품과는 결이 제법 다른 영화라 봐야 할 겁니다. 예외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목적지향적인 작품이기 때문이죠. # 2. 딱 잘라 말하자면 [애국자법 디스 영화]입니다. 한창 영미권이 테러에 불안해하던 시기, 공동체의 안전을 명분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는 법인데요. 원래대로라면 외국 법령을 설명드리기 위해 있는 지식 없는 지식 짜내야 했을 테지만, 다행히도 우리에..

Action 2022.11.10 0

뉘앙스 ⅰ _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 0. 대상(Her)이 주체(She)가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어른의 사랑 - 영화평론가 이동진, 그녀(Her) 한줄평 - 토드 헤인즈 감독, 『캐롤 :: Carol』입니다. # 1. 창살과 함께 영화는 시작됩니다. 감독은 자신이 펼쳐놓으려는 이야기의 환경을 똑같은 모양의 틀이 군집된 창살로 정의합니다. 거칠고 건조한 철제 질감과 오밀조밀한 구성은 단절감이나 통제력 따위의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암시합니다. 정체성을 제약하는 압박감과 획일성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기본적으론 짙은 정서의 멜로 영화입니다만 못지않은 드라마적 깊이를 겸비한 작품인 것이죠. 다양한 형태의 [프레임]을 징검다리 삼아 풀어낸 작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대표적으로 창문을 꼽을 수 있을 테죠.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

Romance 2022.10.20 0

외롭고 버거운 별들의 맞잡은 손 _ 애드 아스트라, 제임스 그레이 감독

# 0. 남을 따라서 살 일이 아니다 네 가슴에 별 하나 숨기고 살아라 끝내 그 별 놓치지 마라 네가 별이 되어라 - 너는 별이다. 나태주 - 제임스 그레이 감독, 『애드 아스트라 :: Ad Astra』입니다. # 1. 우주 SF입니다. 문제적 감독 제임스 그레이가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갈수록 멋있어지는 브래드 피트가 주연 '로이 맥브라이드'를 연기하구요, 맨 인 블랙의 K로 익숙하실 토미 리 존스가 로이의 아버지 '클리포드 맥브라이드'를 맡았습니다.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 '리마'를 이끌던 클리포드는 오래전 실종되었다 합니다. 그를 영웅으로 여긴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우주 비행사로 성장하게 되죠. 그러던 어느 날 해왕성 방면으로부터 전류 급증 현상이 초래되어 지구가 위험에 노출됩니다. 사태에 리마 ..

SF & Fantasy 2022.10.12 0

통제와 오차 _ 듀얼 : 나를 죽여라, 라일리 스턴즈 감독

# 0. 통제의 교차로에 갇혀버린 삶 오차를 누린 자의 풍요로운 죽음 라일리 스턴즈 감독, 『듀얼 : 나를 죽여라 :: Dual』입니다. # 1.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자신과 같은 유전자의 클론을 만드는 SF적 세계관입니다. 작품은 클론을 '더블'이라 부르죠.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 주인공 '세라'는 자신을 대신할 더블을 구매하기로 결정합니다. 남은 시간 동안 '세라 더블'에게 자신의 습관과 취향과 성향,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따위를 전달하며 대체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10달이 지나도 죽지를 않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세라는 병원을 찾아가는데 의사로부터 불치병이 나았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되찾아야겠다 생각한 세라는 더블을 폐기하기로 하는데요. 이미 너무 많은 ..

SF & Fantasy 2022.09.26 0

양은 무엇을 보았나 _ 애프터 양, 코고나다 감독

# 0. 목적의 여백을 발견하는 동안 수리되는 자아, 완성되는 가족 코고나다 감독, 『애프터 양 :: After Yang』입니다. # 1. 인간과 인조인간 어쩌구, 뭐 고런 영화입니다. 흔히 스필버그의 A.I. 를 대표적으로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만 개인적으론 이런 류의 영화를 볼 때면 바이센테니얼 맨을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하는데요. 로빈 윌리엄스의 애환이 뒤섞인 듯한 미묘한 표정이 뇌리에 깊이 남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하튼 통상은 교감을 쌓아나가는 과정을 직접적으로 그리기 마련인데요. 이 작품의 특별함은 인조인간을 죽인 후 시작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인조인간을 통한 가치 탐구를 다룬 영화에서 정서의 종착점을 [애정愛情]이 아니라 [애도哀悼]로 설정하겠다는 아이디어는 과연 특별합니다. 중국계 안드..

SF & Fantasy 2022.09.20 0

하얀색, 검은색, 붉은색 ⅰ _ 아메리칸 사이코, 메리 해론 감독

# 0. 하얀색 검은색 그 사이 3초 그 짧은 시간 메리 해론 감독, 『아메리칸 사이코 :: American Psycho』입니다. # 1. 사이코에 대한 이야기로만 흘러갈 뿐, 미국인과 타국인이 대결하는 식의 내셔널리즘과 관련된 설정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감독은 '패트릭 베이트먼'이라는 괴물에게 아메리칸 사이코라 이름 붙였죠. '아메리칸'이라는 출신이 '사이코'라는 정체성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고, 폭력의 뿌리에 구체적 개인의 기질 외에 출신과 깊은 연관관계가 있음을 추론케 합니다. 실제 영화는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무리들에게 1990년대 여피(Yuppie)의 스테레오 타입을 강박적으로 부여하는 것을 넘어, 아예 여피를 의인화시킨 우화처럼 그리고 있죠. 사이코는 아메리칸스러움의 극단적인 형태로 ..

Horror 2022.09.08 0

교환살인은 거들 뿐 _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누구나 없애고 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설마 없애고 싶은 사람이 한 명도 없으셨어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열차 안의 낯선 자들 :: Strangers On A Train』입니다. # 1. 교환 살인 [交換殺人] 알리바이를 만들고 동기를 숨기기 위해 둘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의 상대를 교환해 대신 죽이는 행위. 고전 명화 하면 가장 먼저 따라붙는 말은 역시나 '교환 살인'일 텐데요. 그렇다고 메인 테마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껏해야 모티브 정도에 불과하죠. 교환 살인이 메인 테마가 되려면 알리바이가 완벽한 듯한 몇몇의 별건들 사이 인과를 파훼하는 '추리극'이라는 식으로 가는 것이 합당합니다만, 이 작품은 애초에 교환 살인이 완성되지도 않을뿐더러, 사건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전개의 방..

Thriller 2022.08.30 0

나란 무엇인가 _ 존 말코비치 되기, 스파이크 존즈 감독

# 0. 당신은 어째서 자신이 존 말코비치가 아니라 확신하는 거지? 스파이크 존즈 감독, 『존 말코비치 되기 :: Being John Malkovich』입니다. # 1. "자아의 성질과 영혼의 실존 말이야. 내가 과연 나일까? 말코비치가 말코비치일까?... 이 관문이 얼마나 골치 아픈 형이상학적 문제인지 모르겠어." 영화의 착점을 상징하는 대사이자, 크레이그의 입을 빌린 감독 스스로의 선언과도 같은 대사입니다. 골치 아픈 형이상학적 문제를 다루려는 피곤한 작품이라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 스파이크 존즈가 가장 잘 알고 있죠. 몇몇의 변태 같은 관객을 제외한 대부분은 '골치 아픈 형이상학적 문제'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합니다. 영화 따위 두어 시간 동안의 오락거리 정도면 충분하다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죠. 테마..

SF & Fantasy 2022.08.22 0

혼자 강한 사람은 없단다 _ 룸, 레니 애브라함슨 감독

# 0. 스토리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론 화자의 시점과 작가의 관점, 이를 통할하는 서술의 방식이 때론 더 많은 것들을 말하기도 하죠. 이 영화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스토리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납치 범죄극에 불과하지만 해결을 앞당겨 사건 이후의 시간에 30분을 더 투자하겠다는 사소한 선택에 힘입어 전혀 다른 이미지와 메시지의 작품으로 승화됩니다. 레니 애브라함슨 감독, 『룸 :: Room』입니다. # 1. 보통의 납치 범죄극은 납치된 주인공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겪는가에 대한 묘사와, 이를 겪는 동안 주인공이 느낄 불안과 공포, 심리적 한계에 다다르는 순간 감행하게 되는 탈출의 스펙터클로 풀어내기 마련입니다.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하는 어드벤처가 될 수도 있고, 악당에게..

Drama 2022.07.24 0

미결로 완성될 영원의 바다 _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 0.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며 제목 잘 지었다 싶은 작품은 드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JSA는 JSA구요. 올드보이는 원작 제목이었죠. 박쥐나 스토커, 아가씨 모두 완성도와 별개로 특색 있는 제목은 아니었습니다. 기껏해야 복수는 나의 것이나 친절한 금자씨 정도가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창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 봐야 거기까지죠.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창작을 하나 꼽으라 한다면 저는 제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찬욱 감독, 『헤어질 결심 :: Decision to Leave』입니다. # 1. 헤어지면 됩니다. 그냥 헤어지면 됩니다. 헤어지는 데에는 결정決定이면 충분하죠. 하지만 영화의 제목은 헤어질 결심決心.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왜 결심..

Romance 2022.07.12 0

근본으로의 회귀 _ 러브, 데스, +로봇 시즌 3

# 0. 회초리의 효과는 굉장했다!!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시즌 3 :: Love, Death + Robots Vol. 3』입니다. # 1. 어울리지 않게 15세로 간을 봤던 지난 시즌은 결국 혹평으로 마무리되고 말았습니다. ⑴ 스타일리시한 화풍과 다이내믹한 액션으로 빚어낸 뛰어난 영상미. ⑵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아이템을 과감하게 동원하는 참신한 서사. ⑶ 허무와 냉소를 테마로 한 철학적 주제의식이라는 세 축이 모조리 흔들리며 죽도 밥도 아닌 시즌이 되고 말았다 말씀드린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군요. 로튼 50%가 무너지며 회초리를 세게 맞은 효과가 굉장했나 봅니다. 전 시즌에 훼손된 평판을 복구하려는 듯 첫 번째 시즌에서 호평받았던 장점들을 노골적으로 답습합니다. 특히 호러와 액션 묘..

Animation 2022.05.26 2

Yah~? _ 파고, 코엔 형제 감독

# 0. Yah~! 코엔 형제 감독, 『파고 :: Fargo』입니다. # 1. , , 등으로 익숙하실 코엔 형제의 1996년작 범죄 영화입니다. 와 에 이어 세 번째로 코엔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요. 새삼 하나같이 마이너 한 작품들만 고르는 걸 보니 별난 인간이긴 한가 봅니다. 자동차 세일즈맨 '제리'입니다. 빚 청산하겠답시고 자기 마누라 납치를 사주한 인물이죠. 덜떨어진 사위를 못 미더워하는 부자 장인에게 몸값을 뜯어내려고 이 모든 사단을 벌인 등신입니다. 딴 돈의 반을 약속받은 납치범 '칼'과 '게어'가 등장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웃기게 생긴 스티브 부세미가 영화 내내 능숙하게 수다를 떨죠. 계획대로 납치를 하나 싶었건만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살인을 벌이게 되며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갑니다. ..

Thriller 2022.05.08 0

소피의 반례 _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팀 블레이크 넬슨 감독

# 0. 제목에 교수 나오고 강의 나오면 대부분 철학과 교수의 인생 강의입니다. 다른 학과 교수님들은 반성하세요. 당신들이 강의를 안 해서 이렇게 관객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팀 블레이크 넬슨 감독,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 Anesthesia』입니다. # 1. 현실에선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슈퍼 엘리트지만 영화에서만큼은 흔해 빠진 콜림비아 대학 교수, 월터입니다. 나오는 족족 인자한 표정으로 쓸데없이 어려운 이야기를 쏟아내지만 다행스럽게도 짙은 눈썹이 개성적인 샘 워터스톤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개별적 사건들의 옴니버스로 시작해 이들이 점차 연결되는 과정으로 전개됩니다. 암에 걸린 까칠한 엄마를 둔 가족이 등장합니다. 대마와 섹스를 좋아하는 헛똑똑이 잼민이가 ..

Drama 2022.04.30 0

어둠 속의 등불 _ 더 위치, 로버트 에거스 감독

# 0. 곽도원 대신 안야 테일러 조이가 나오는 곡성이 있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 『더 위치 :: THE VVITCH』입니다. # 1. 미국으로 이민 간 영국인 가족이 마을에 정착하지 못하고 추방됩니다. 없이 사는 와중에 금슬이 좋았던 부부는 애를 다섯이나 낳지만 줄초상 납니다. 막둥이는 까꿍 하다 행방불명 되구요, 쌍둥이 동생은 염소 밥 되고 엄마 찌찌는 까마귀 밥 되고 아빠는 흑염소한테 몸통 박치기 당하지만 큰 아들은 겁나 이쁜 누나랑 뽀뽀하고 죽어 여한이 없는지 하나님께 땡큐 합니다. 가족 잃고 실의에 빠진 미모의 큰 언니는 홀딱 벗고 댄스 동호회에 가입한 후 하하호호 웃으며 승천한다는 내용의 훈훈한 영화죠. # 2. 믿음에 대한 영화들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허황된 믿음으로 ..

Horror 2022.04.20 2

상하 좌우 반전 _ 하이 라이프, 클레어 드니 감독

# 0. 우주 SF입니다. 디테일한 미술과 세심한 설정과 쫀쫀한 서사로 빚어낸 환상의 공간을 여행하는 아이 씐나! 어드벤처 물이거나, 철학적이거나 제의적이거나 관념적인 코드들로 이리저리 엮어낸 교수님스러운 스릴러 드라마인 경우가 일반적이죠. 물론 세부적으로 나누자면야 더 많은 분류가 가능할뿐더러 위의 두 분류 역시 칼같이 나눠지지 않고 겹쳐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만, 알잘딱 넘어가도록 합시다. '클레어 드니' 감독, 『하이 라이프 :: High Life』입니다. # 1. 후자의 교수님스러운 영화 그중에서도 매운맛입니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이미지와 분위기에 주력하고 있을 뿐 디테일은 과감히 생략하고 있기도 하구요, 펜로즈 과정 따위를 잠시 찍먹 하긴 하지만 그마저도 몰입을 위한 과학적 디테일이라기..

SF & Fantasy 2022.03.14 0

의심에 대하여 _ 다우트,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

# 0. "쉽게 내린 선택에 대한 대가는 미래에 치르게 되죠." '존 패트린 셰인리' 감독, 『다우트 :: Doubt』입니다. # 1. 의심(Doubt)은 대상의 불확실성을 자신의 확신으로 예단하는 기작입니다. 아귀는 고니의 패를 직접 보지 못하기에 의심할 수 있었던 것이구요. 동시에, 보지도 않은 고니의 패에 손모가지를 걸 수 있었던 건 고니가 장난질을 했을 거라는 자기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죠. 타인은 모호하게 부도덕하고 나는 분명하게 도덕적이다. 모순적이고, 그래서 이기적인 감정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교회'와 '학교'입니다. 교회는 교리와 위계에 지배받는 단호한 공간입니다. 학교는 당위의 존재들을 위한 도덕적 공간이죠. 단호한 공간에서 벌어진 일조차 이렇게나 불확실합니다. 도덕적 공간에서 조차 윤..

Drama 2022.03.07 0

고슴도치 딜레마 _ 각자의 입장, 강정인 감독

# 0. 거리 조절이 서툰 고슴도치들의 연약한 속살 '강정인' 감독, 『각자의 입장 :: Each』입니다. # 1. 오프닝입니다. 전화를 하며 길을 걷습니다. 짜증이 잔뜩 묻어납니다. 길 가던 사람과 어깨를 부딪힙니다. 더욱 짜증스러운 표정입니다. 그녀는 무언가 화를 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보상을 단단히 벼르고 있는 듯합니다. 피해의식도 발견되고 손해보지 않겠다는 보상심리도 발견됩니다. 감독은 그녀를 퇴근길 평범한 사람들의 무리에 숨겨 넣습니다. 특별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감독 '강정인'의 현대인입니다. # 2. 네 명의 주인공 란희, 싱싱, 기 감독, 선준입니다. 인물들은 얽히고설키는 우위와 열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⑴ 예술적 재능, ⑵ 경제력, ⑶ 도덕성, ⑷ 갑을 관계 등이 그것이죠. ..

Drama 2022.02.09 0

가웨인 교향곡 _ 그린 나이트, 데이빗 로워리 감독

# 0. 서사는 단순하지만 상징은 난해합니다. 화려하고 근사하고 근엄하긴 한데 겁나 어둡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 싶은 관객들이 적지 않으셨을 테죠. 스스로 생각할 것을 강요하는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거나 특유의 분위기가 기호에 맞지 않는 관객에겐 혹평을 산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작품이긴 합니다. 물론 그것이 관객의 잘못이나 부족이라 탓할 수는 없습니다. 평단에서 아무리 극찬을 늘어놓았다 하더라도 영화의 주인은 언제나 관객 개개인이니까요. 혹여 말씀드린 바와 같은 작품에 거부감이 있으시다면 이 영화는 피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합니다. '데이빗 로워리' 감독, 『그린 나이트 :: The Green Knight』입니다. # 1. 다만 세상엔 영화를 곱씹어 보며 자기 생각을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SF & Fantasy 2022.01.20 2

12월 26일 _ 유령신부, 팀 버튼 감독

# 0. 박싱 데이(Boxing Day) 또는 성 스테파노의 날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12월 26일)을 가리키는 말로, 많은 영연방 국가에서 크리스마스와 함께 휴일로 정하여 성탄 연휴로 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영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공휴일로 정하고 있다. 독일, 스웨덴 등에서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라고 단순하게 부른다. - 위키백과 [박싱데이] 중에서 - '팀 버튼' 감독, 『유령신부 :: Corpse Bride』입니다. # 1. 헨리 셀릭의 을, 팀 버튼의 내면을 구성하는 다양한 자아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소개드린 바 있습니다. 행복(크리스마스)을 선사하는 산타클로스가 되고 싶었던 팀 버튼(잭 스캘링턴)이 사람들에게 선택받지 못하자 분노(우기부기)에 휩싸이지만, 결국 분노를 제압하고 내면 깊은 ..

Animation 2022.01.15 6

초록빛 하루 _ 반디, 최희서 감독

# 0. 인내 끝에 숨어있음을 깨닫는 초록빛 하루 '최희서' 감독, 『반디』입니다. # 1. 공들여 담아낸 반딧불을 연탄불에 연결합니다. '소영'이 연탄불에 데이는 장면은 반딧불에 데이는 것과도 같습니다. 덴다는 것은 고통이자 두려움입니다. 몸을 사리는 이유는 임신, 지키고자 하는 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사라진 것은 사라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라지는 것에 데이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군요. 사실 영화는 내내 '숨어있음'을 주인공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남편이 말하는 반디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어있는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말하는 아들도 집 안에 숨어 있습니다. 삭막하기만 한 서울의 아파트 단지 뒤엔 푸르른 녹음이 숨어 있습니다. 딸은 아빠가 아빠의 방 곳곳에 숨어있음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Drama 2022.01.10 0

안전막 없는 트램펄린 _ 풀타임, 에리크 그라벨 감독

# 0. 그 어린 엄마는 잘 지내고 있을까 에리크 그라벨 감독, 『풀타임 :: À plein temps』입니다. # 1. 싱글맘의 고단하고 치열한 일상을 스릴러의 긴박감으로 그려낸 드라마입니다. 이야기에 특별함은 없고 이야기를 즐기는 영화도 아닙니다. 캐릭터성이 강한 주인공을 탐구하는 류의 이야기도 아니구요, 연출에서 강한 개성이 발견되는 작품도 아닙니다. 영화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싱글맘을 상정한 후 그녀의 평범한 일상에 치밀하게 집요하게 접근합니다. 두 아이를 혼자 키워내는 싱글맘이 느낄 법한 감정들, 이를테면 압박감이나, 고독감, 피로감, 조바심 따위를 해체해 각기 다른 현실적 레이어로 흩뿌려 투영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감독은 싱글맘의 스트레스를 주인공의 감정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

Thriller 2023.10.14 0

z의 감각 _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웨스 앤더슨 감독

# 0. 웨스 앤더슨이 선사하는 기상천외함이란 웨스 앤더슨 감독,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입니다. # 1. 오랜만에 넷플릭스에 걸린 단편입니다. 누가 봐도 '그 이름'이 떠오를 법한 독특한 화면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오이형의 모습은 관객의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죠. 영국의 소설가 로알드 달(Roald Dahl)의 동명 단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인데요. 한편도 아니고 , , 까지 무려 4편이 연달아 공개되었습니다. 참! 잘했어요. 알고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두 해전쯤 로알드 달 스토리 컴퍼니(Roald Dahl Story Company, RDSC)를 넷플릭스가 인수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요. 해당 사업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되겠군요. 혹여 문..

SF & Fantasy 2023.10.02 0

케인스의 경고 _ 구명보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궁서설묘(窮鼠齧猫).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구명보트 :: Lifeboat』입니다. # 1. 때는 제2차 세계 대전, 독일 잠수함의 공격에 미국 상선이 침몰합니다. 몇몇의 사람들이 구명보트에 간신히 올라 목숨을 부지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되죠. 그러던 중 어느 독일인 병사 하나가 구조되는데요. 사람들은 처음엔 그를 불신하지만, 점점 그의 능력에 의지하고 의존하기 시작합니다. 어느덧 구명선의 키까지 잡게 된 독일인은 그의 입장에서는 자기 방어,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기만적인 행동들을 몇 차례 보이게 되고. 결국 모두에 의해 배 밖으로 떠밀려 처단당하고 말죠. 독일인 선장은 죽었지만 배는 이미 영국의 버뮤다가 아닌 독일의 보급선에 가까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먹..

Drama 2023.09.16 0

팽팽하게 당겨진 원단처럼 _ 아웃핏, 그레이엄 무어 감독

# 0. 팽팽하게 당겨진 원단처럼. 촘촘하게 새겨진 바느질처럼. 단호하게 가르는 가위처럼. 그레이엄 무어 감독, 『아웃핏 :: The Outfit』입니다. # 1. 서스팬스는 팽팽하게 당겨진 원단 같습니다. 내러티브는 촘촘하게 새겨진 바느질 같습니다. 연기는 단호하게 가르는 가위 같습니다. 핏이 딱 떨어지는 정장 같은 고급스러움으로 가득합니다.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들이 만드는 입체적인 스릴러와, 예측을 거부하는 전개 역시 위력적입니다. 그 아래로 잔잔하게 흐르는 시대에 대한 은유는 작품에 유의미한 깊이까지 더하고 있죠. 이 모든 것들을 좁디좁은 양장점 안에 들어선 여섯 남짓의 인물들을 통해 구현했다는 것이야 말로 작품의 가장 큰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바늘', '가위', '총'이라는 세 도..

Thriller 2023.09.12 0

언어의 여백 _ 폴라로이드 일기, 김채윤 감독

# 0. 언어로는 온전히 채울 수 없는 삶의 흔적들을 탐구하는 여정 김채윤 감독, 『폴라로이드 일기 :: Polaroid Diary』입니다. # 1. '일기'는 일상적이고 회고적인 뉘앙스만을 전담하는 일종의 그릇이라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핵심은 그런 일기를 형용하는 '폴라로이드'죠. 폴라로이드는 회사명임에도 불구하고 즉석 사진을 뜻하는 보통 명사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이 작품에서의 쓰임 역시 그러하다 해야 할 겁니다. 사진은 순간순간의 단편적 장면들이 파편화되어 있는 상황을 건조하게 의미합니다. 구태여 '즉석' 사진이라 설정한 것은, 영화가 활용하려는 사진이라는 개념에 불필요한 예술성 따위를 배제하고 현장감과 생활감, 즉시성 따위만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이해할 수 있겠죠. 영화는 가정 폭력이라는 ..

Drama 2023.09.04 0

어쩌면 그 이상 _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호아킴 도스 산토스 외 2인 감독

# 0. 스파이더맨에게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 어쩌면 그 이상. 호아킴 도스 산토스 / 켐프 파워스 / 저스틴 K. 톰슨 감독,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입니다. # 1. 스파이더맨하면 뭐가 떠오르실까요. 북미 만화 특유의 역동적인 그림체가 떠오르실 수 있겠죠. 코믹스에 대한 접근성이 높지 않은 한국 관객들은 실사 영화 시리즈들을 먼저 떠올리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화풍으로 그려낸 작품들도 많거니와, 비단 작화가 아니더라도 레고 블록이나 동물, SD풍 데포르메 따위로 변주한 굿즈 상품들도 즐비하죠. 에피소다마다 아예 다른 설정으로 리뉴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 나이도 성격도 능력도 각양각색인 경우도 많습니다. 멀티버스 메타가 성행한 이후론 진짜 막 나가는 모양새입니다. 빌런이..

Animation 2023.08.20 2

이런 얼굴이었을까 _ 파라노이드 파크, 구스 반 산트 감독

# 0. 그때 내 뒷모습은 이런 얼굴이었을까 구스 반 산트 감독, 『파라노이드 파크 :: Paranoid Park』입니다. # 1. 제법 난해하고 제법 독특합니다. 누가 구스 반 산트 아니랄까 봐 지독할 정도로 긴 롱 테이크가 영화의 호흡을 붙잡고 깊은 어딘가를 향해 침전시킵니다. 느리고 몽환적인 사운드와 대비되는 과격한 파열음은 침전된 관객의 마음에 의도된 파형을 반복적으로 유도합니다. 주인공 알렉스의 목소리를 빌린 독백 전개와, 혼자 기대앉는 낡은 의자, 일기나 편지 따위의 코드는 내적 고독감을 점층적으로 쌓아나갑니다. 1.33:1의 화면비와 레트로 캠코드의 질감까지 곁들여지면 작품은 현장적이고 회고적이며 감각적이고 동시에 사유적인 무언가로 두텁게 승화됩니다. 인물을 집어삼키고 고립시키는 프레임은 그..

Drama 2023.08.08 0

그저 최선을 다할 뿐 _ 검찰 측 증인, 빌리 와일더 감독

# 0. 우리가 재판을 받아들이는 건 완벽해서가 아니라 최선이기 때문일 뿐이야. 빌리 와일더 감독, 『검찰 측 증인 :: Witness for the Prosecution』입니다. # 1. 최고의 추리 소설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최고의 영화감독 중 하나인 빌리 와일더가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세 명의 주연은 찰스 로튼, 타이런 파워, 그리고 마렌느 디트리흐가 연기합니다. 라인업 살벌하죠. 물론 70년 후의 관객에까지 전달되는 고전 명작들이 대부분 그러하긴 하지만요. 인간의 이기적인 추악한 욕망이 물고 물리는 동안의 긴장감을 지적 호기심으로 견인하는 법정 스릴러입니다. 감독의 명성에 걸맞은 밀도 높은 각본과 다소 복잡할 수도 있었을 스토리를 편안하게 전달하는 연출의 묘가, ..

Thriller 2023.07.19 0

압박과 환희가 교차하는 완성의 순간 _ 보일링 포인트, 필립 바랜티니 감독

# 0. 주인공은 단연 촬영입니다. 인물이든 환경이든 사건이든 요리든 그 무엇이 되었든 촬영 방식에 우선하지는 못합니다. 필립 바랜티니 감독, 『보일링 포인트 :: Boiling Point』입니다. # 1. 보일링 포인트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나 롱 테이크(Long take)일 텐데요. 본론에 앞서 테이크(Take)가 뭔지부터 가볍게 짚고 가도 좋겠죠. 다음백과에서 제공하는 김광철 씨의 저서 영화사전은 '중간에 끊지 않고 촬영한 하나의 연속적인 화면 단위를 지칭하는 용어'라 설명하는 데요. 대충 카메라 녹화 셔터를 한번 누른 후 정지를 위해 다시 셔터를 누르는 사이를 의미하는 촬영의 최소 단위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하겠네요. 쇼트(Shot)라는 말도 비슷한 의미로 쓰이곤 하는데요. 테이크는 촬영 용어, 쇼트..

Drama 2023.07.14 0

만용을 도닥이는 온화함, 용기를 발견하는 세심함 _ 더 브레이브, 코엔 형제 감독

# 0. 어떤 이야기를 쓰느냐보다 그 이야기에 어떤 인과를 부여하고 감동을 포착하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코엔 형제 감독, 『더 브레이브 :: True Grit』입니다. # 1. 서사만 보면 제법 가혹합니다. 삭막하고 잔인합니다. 현상금 걸린 범죄자 쫓는 서부극의 전형을 따라가고 있으니까요. 시작부터 살인 피해자와 사형수와 이미 죽은 시신이 즐비합니다. 죽거나 죽이거나의 이지선다가 매 순간 강요됩니다. 결국 결손까지 겪습니다. 애꾸 보안관 루스터 카그번은 총에 맞습니다. 레인저 라 뷔프는 혀가 찢어지고 턱이 부서져 내내 웅얼거리구요, 아버지를 잃은 소녀 매티 로스는 어린 나이에 팔을 잃습니다. 끔찍하죠. 모두는 개인입니다. 동기는 돈과 복수가 전부죠. 세 주인공의 동행이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합니..

Drama 2023.07.02 0

편리한 낙원은 없다 _ 존 윅 4,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 0.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존 윅 4 :: John Wick Chapter 4』입니다. # 1. 부제를 떼고 마침내 완성된 존 윅입니다. 분노라는 핵심 정서와 이를 작동시키기 위한 특유의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는 앞선 글에서 했으니 링크로 대신하도록 하구요. 마트 마감할인 같은 넉넉한 인심의 액션들과 수많은 오마주에 대해 이야기드리려면 스틸 컷을 따야 할 텐데, 역시 귀찮으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쯤 되면 그럼 넌 무슨 이야기를 할 건데? 싶으실 텐데요.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대사 한 줄로부터 파생된 이야기를 가볍게 나눠볼까 합니다. 그것은 바로 Without Rules, We live with the Animals. 우리말로, "규율이 없다면 우리는 동물에..

Action 2023.06.10 0

성장하는 꿈들의 유쾌한 합주 _ 스쿨 오브 락,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 0. Let's Rock~ Everybody, Let's Rock~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스쿨 오브 락 :: The School of Rock』입니다. # 1. 제목에서처럼 '스쿨'과 '락'에 대한 영화입니다. 스쿨은 [성장]이라는 가치를 공간화합니다. 락은 [꿈]이라는 가치를 청각화합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와 잭 블랙이 정의하는 성장과 꿈은 그 자체만으론 불완전합니다. 호레이스 그린 사립 초등학교의 학생들은 성장을 위한 성장에 매몰된 아이들입니다. 성적과 시험에 기계적으로 반응합니다. 성적에 따라 우쭐하거나 주눅 들거나 삐딱하거나 무기력하는 등 종속되어 있는 모습으로 소개됩니다. 듀이는 성장 없이 꿈만 좇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낭만을 추구하기만 할 뿐, 낭만에 다가가기 위한 어떤 종류의 성실성..

Comedy 2023.06.04 0

담음새 _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 딘 플라이셔-캠프 감독

# 0. 평범하고 소소한 아이디어를 비범하고 웅장하게 담아낸다. 딘 플라이셔-캠프 감독,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 :: Marcel the Shell with Shoes On』입니다. # 1.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진 않는데요. 모 유튜브에서 '평론가는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느라 재미는 덜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동진 평론가가 대충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영화에 친숙하지 않은 일반의 관객들은 영화를 두 가지 기준에서 보게 된다. 하나는 스토리, 다른 하나는 연기다. 하지만 영화에는 스토리와 연기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정보들이 있다. 이를 테면 쇼트나 편집, 구도나 플롯 따위의 흔히 연출이라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때론 스토리나 연기가 특출 나지 않음에도 훌륭한 영화들이 있고 그런 영화들 역시..

SF & Fantasy 2023.04.12 4

한 편의 걸작 두편의 부록 _ 매트릭스, 더 워쇼스키즈 감독

# 0.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송곳니를 이야기하며 인식과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로버트 저메키스의 백 투 더 퓨쳐를 보며 트릴로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의식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이끌더군요. 더 워쇼스키즈, 『매트릭스 :: The Matrix』입니다. # 1. 혹자에겐 거리감 있는 것으로,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허황된 것으로 취급되기도 하는 철학입니다. 특히 실용주의적 성향이 강한 몇몇의 이과적 인간들에겐 더욱 그러한데요. 요런 류의 인간들에게 잘못 걸렸다간 철학뿐 아니라 인문학이라는 분야 전체가 너덜너덜해지기 십상이죠. 인생에서 가장 시니컬하던 시기였던 학창 시절. 성리학의 이기론이니 주기론이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대체 검증 조차 할 수 없는 저딴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걸 넘어, 저..

SF & Fantasy 2023.03.10 0

할리우드의 모든 것 _ 백 투 더 퓨쳐,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 0. 어차피 분석적인 이야기, 디테일한 비하인드는 검색하면 차고 넘치거니와, 30년도 더 지난 마당에 이제와 새삼스럽기도 합니다. 자세한 건 꺼무위키 찾아보시구요. 오늘은 평소보다 더 어깨 힘을 빼고 소소하게 수다나 떨도록 하죠.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백 투 더 퓨쳐 :: Back to the Future』입니다. # 1. 못해도 십 수 번은 본 것 같은데요. 하하. 또 봤습니다. 이젠 처음 본 게 언젠지도 가물가물한데요. 85년 개봉작이니 영화관에서 보진 않았을 테고. 대충 명절 특선이나 비디오테이프로 처음 봤을 것 같네요. 개봉시기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즈음에 많이들 보셨을 테니 70년대생 분들께 더욱 특별한 영화로 기억되실 겁니다. 적잖은 수의 40대 중반쯤 되는 형님..

SF & Fantasy 2023.03.04 0

송곳니를 지킬 수 있겠나 _ 송곳니,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 0. 언어는 인식을 조직한다. 인식은 사고를 통제한다. 사고는 상상을 지배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송곳니 :: Kynodontas』입니다. # 1. , , 등을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출세작입니다. 불쾌하고 찝찝한 영화 깎는 장인답게 호불호를 많이 타는 감독임엔 분명하지만, 특유의 초현실적 설정과 음울한 분위기, 치밀하고 절제된 미장센 덕에 수많은 팬을 거느린 인물이기도 하죠. 몇 년 전 라는 제목으로 이야기 나눈 게 어렴풋이 기억나는데요. 오랜만에 요르고스 란티모스를 다시 보게 되었군요. 끔찍한 가족입니다. 아빠는 보호라는 명목 하에 가족을 고립시킨 후 왜곡되고 통제된 정보들로 자녀를 세뇌합니다. 장성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어른의 행동과 말투를 보이지 못하는 아이들을 지..

Drama 2023.02.26 0

야망의 초상 _ 맥베스의 비극, 조엘 코엔 감독

# 0. 빛의 캔버스 위, 잠식하는 그림자로 그려낸 살아 움직이는 야망의 초상 조엘 코엔 감독, 『맥베스의 비극 :: The Tragedy of Macbeth』입니다. # 1.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입니다. 4대 비극 중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래도 오셀로 덕에 꼴등은 면한 친구죠. 누구나 냉장고엔 먹다 남은 트러플이라도 있는 듯 맥베스를 읽은 것처럼 말하지만, 현실은 햄릿조차 인용하기 만만찮은 세상이니 익숙지 않으신 분들이 많으리라 가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겁니다. 영화 이야기에 앞서 대충의 줄거리 정도는 환기하고 시작하는 것도 괜찮은 거겠죠. 스코틀랜드의 장군이자 왕족이자 글라미스의 영주 맥베스입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친구 뱅코와 왕에게 돌아가는 데 광야에서 마녀를 만나 예언을 듣습니다..

Thriller 2023.01.30 0

호다다닥 샥샥 _ 요짐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 0. 명절엔 영화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요짐보 :: 用心棒』입니다. # 1. 명절 특선 하면 고전 액션 영화들을 많이 봤던 기억입니다. 특히 대표적인 것이라면 성룡의 영화들을 꼽을 수 있겠죠. 아무리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 년에 두어 번은 성룡을 보게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성룡의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더랬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점점 신작들이 특선으로 골라지는 듯한데요. 이젠 그 주기가 짧아지다 못해 불과 몇 개월 전에 개봉한 최신작이 풀리는 지경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당장 이번 설만 하더라도 지난여름 개봉했던 와 를 안방에서 즐길 수 있었죠. 저는 정가 다 주고 영화관에서 봤는데요. 내심 서운하네요. 서운한 와중에 문득, 당장 손실을 줄이기 위해 타 플랫폼..

Action 2023.01.26 0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ⅰ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 0.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 등을 집필한 장르 문학가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영미권에서는 순수문학가이자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더욱 큰 인물입니다. ... 나무위키가 그렇다네요. 스콧 쿠퍼 감독, 『페일 블루 아이 :: The Pale Blue Eye』입니다. # 1. 포의 이름을 들은 관객은 직관적으로 지적호기심을 최대한 자극하는 고오급 추리물을 기대하기 마련일 텐데요.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감상을 방해하는 성급한 기대가 되고 말았다는 생각입니다. 영화 에서 미스터리는 부차적인 재미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영화 속 미스터리는 삶의 목적을 상실한 길 잃은 주인공의 내면을 세계로 확장시켜 장르적으로 투사한 것에 가깝습니다. 본질은 잔혹한 과거를 가진 한 남자의 깊은 ..

Thriller 2023.01.16 0

미스터리 체리피킹 _ 나이브스 아웃, 라이언 존슨 감독

# 0. 크리스마스엔 역시 살인이지 라이언 존슨 감독, 『나이브스 아웃 :: Knives Out』입니다. # 1. 영화를 검색하다 보면 '후더닛'이라는 키워드가 함께 뜨는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Who done it? 을 들리는 대로 옮겨놓은 건데요. 미스터리 사건 속 수수께끼를 풀어 진범을 찾아내는 플롯의 추리물의 별칭 정도로 이해하시면 무난합니다. 은 아주 오랜만에 나온 후더닛 무비, 그것도 어설픈 퓨전 따위를 곁들이지 않은 정통 후더닛의 특성을 정석적으로 따라가는 작품이죠. 무고한 것이 확실한 주인공과 그의 누명을 벗기고 진실을 밝혀내는 섹도시발 천재 탐정 vs 진범의 정체와 트릭이라는 형식을 빌린 작가 간의 흥미진진 머리싸움입니다. 상황과 공간을 폐쇄적으로 제한한 후 몇몇의 용의자를 특정해 이..

Thriller 2022.12.28 0

집탈출 게임 _ 런, 아니쉬 차칸티 감독

# 0. 방탈출 게임을 테마로 영화를 뽑으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아니쉬 차칸티 감독, 『런 :: Run』입니다. # 1. 빌런의 정체와 내막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기대하시면 곤란합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스테이지 탈출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타임어택 퍼즐 게임의 경험에 훨씬 가까운 작품이죠. 실제 전개를 보면 방이면 방, 복도면 복도, 계단이면 계단, 약국이면 약국, 지하실이면 지하실. 각 공간을 스테이지 단위로 칼같이 구분한 후 그 공간의 미션을 풀 수 있는 명확한 해법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장르적 측면에서 엄마의 존재는 주인공을 정신적으로 압박하는 카리스마 빌런이라기보다는, 정해진 시간 안에 방을 탈출하도록 주인공의 등을 떠미는 게임의 조건, 째깍째깍 조여 오는 모래..

Thriller 2022.11.26 0

도메크의 망원경 _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 0. 마그다의 정신을 들여다보는 도메크의 망원경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 A Short Film About Love』입니다. # 1. 어지간한 변태가 아니고서야 이름 외우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생소하신 분들도 이나, 시리즈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그 작품들 만든 동유럽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이죠. 30여 년 전, 성경의 십계를 주제로 각색 제작된 데칼로그(Dekalog)라는 폴란드 Tv시리즈가 있었는데요. 그중 6번째, 간음을 주제로 한 에피소드에 분량을 추가 개봉한 작품입니다. 관음은 작품의 핵심적인 설정입니다. 멀리는 히치콕의 이창, 가까이는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에 이르기까지 엿보기는 에로스를 다룬..

Romance 2024.03.04 0

노을이 지난 후에도 _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미야케 쇼 감독

# 0. 처연하고 찬란한 노을이 지난 후에도 이어져 나갈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미야케 쇼 감독,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 ケイコ 目を澄ませて』입니다. # 1. 오가와 케이코. 도쿄 아라카와구 출생. 선천적 감음 난청으로 양쪽 귀가 모두 들리지 않는다. 2019년 프로복서 라이선스 취득. 데뷔전 1라운드 1분 52초 KO 승리. 선천적 청각장애인 여성 복서 오가사와라 케이코의 자서전 를 원작으로 합니다. 청각장애인 여성 복서라는 캐릭터가 목적의 전부였다면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요. 감독은 구태여 영화라는 형식을 선택하고 있죠. 비슷한 경우 왜 굳이 그녀의 이야기를 영화로 각색한 걸까. 조금 더 정밀하게 질문하자면 감독은 그녀의 인생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있는가. 에 대한 대답을 탐미해 보는 ..

Drama 2024.02.26 2

치명적인 무해함 _ 침입자들의 만찬, 미즈노 이타루 감독

# 0. 부조리 위에 펼쳐진 탐욕과 위선을 제압하는 치명적인 무해함 미즈노 이타루 감독, 『침입자들의 만찬 :: 侵入者たちの晩餐』입니다. # 1. 영화는 뻔뻔스럽게 범죄 스릴러를 주장하지만 전반적인 톤은 코미디 어드밴처라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사건이 벌어지는 후지사키 나츠미의 집 역시 현실적 주거 공간이나 차가운 범죄 현장이라기보다는 흥미진진한 던전에 가깝게 연출되어 있죠. 응큼하고 지저분하지만 엉성하고 귀엽기도 한 여섯의 인물들이 각자의 음흉한 목적을 위해 지지고 볶는 하룻밤 소동극입니다. 소동극의 묘미라면 역시나 분투하는 인간들의 소동을 귀엽고 가엽게 그리는 시선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역시 그 온건함에 대단히 충실합니다. 각본가 바카리즈무의 기질이 묻어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죠. 작품을 견인..

Comedy 2024.02.04 0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_ 믿을 수 있는 사람, 곽은미 감독

# 0. 박한영은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까. 곽은미 감독, 『믿을 수 있는 사람 :: A Tour Guide』입니다. # 1. 정착을 꿈꾸는 20대 이방인 한영의 서울 생존기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믿음'이라는 개념에 대한 고찰이기도 합니다. 믿음은 통상 신뢰, 신앙, 신념, 신용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데요. 작품에서는 신뢰와 신용을 선택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신뢰는 개인 간 주고받는 다정함에 대한 기대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겁니다. 신용은 사회인으로서 합의된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는 도리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죠. 영화는 북한을 신용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로, 탈북민은 신용을 경험해 보지 못해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한국을 외국인 손님들에게 소개하는 일이 영광스럽..

Drama 2024.01.26 0

맑은 하늘의 자화상 _ 어느 멋진 아침, 미아 한센 로브 감독

# 0. 불안한 선택의 미로 끝에 뒤돌아 깨닫는 맑은 하늘의 자화상 미아 한셀 로브 감독, 『어느 멋진 아침 :: One Fine Morning』입니다. # 1. 파리라는 배경, 불안이라는 코드, 걷는다는 이미지는 아녜스 바르다의 같은 작품을 생각나게 합니다. 마침 프랑스 영화이기도 하고, 각각 코린 마르샹과 레아 세두의 존재감으로 견인하는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혹은 삶의 무게에 떠밀린 주인공의 분투를 현실적으로 그린다는 면에서 노아 바움백의 같은 작품이 연상되기도 하는군요. 겉보기에는 주인공 산드라의 고단한 삶을 진중하게 조명하고 독려하는 드라마처럼 보이는데요. 생각하기 따라서 그보다 조금 더 깊은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벤슨 증후군에 걸린 산드라의 아버지 게오르그의 메모에 담긴 ..

Drama 2024.01.12 0

가장 사소한 우주 _ 애스터로이드 시티, 웨스 앤더슨 감독

# 0. 그놈은 그냥 돌멩이를 던져분 것이고, 자네들은 그것에 놀라 확 달아난 것이여. 웨스 앤더슨 감독, 『애스터로이드 시티 :: Asteroid City』입니다. # 1. 가장 사소한 우주 영화입니다. 통상의 우주 SF라면 웅대한 우주를 탐험하는 초라한 인간의 대비라는 식으로 풀어가기 마련일 텐데요. 웨스 앤더슨은 독특하게도 스케일의 역전을 시도합니다. 우주의 구조를 도식화해 미니어처처럼 끌고 내려온 후, 관객으로 하여금 이를 내려다보게 만들어 관조적으로 삶과 우주의 원리를 통찰해 볼 것을 제안하는 것이죠. 작품은 연극을 준비하는 무대 뒤 흑백 화면과, 그렇게 실현된 연극의 컬러 화면으로 구분되는 극중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데요. 사실 수많은 관객들이 혼란스러워했던 것처럼 구체적인 레이어는 그보다 ..

Comedy 2024.01.04 0

세 번의 문답 _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권하정 / 김아현 감독

# 0. 우리는 이 가수를 불쑥 찾아갔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를 함께 찍었다. 권하정 / 김아현 감독,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 Notes from the Unknown』입니다. # 1. 관객이 당장 만나게 되는 영화는 한 편이지만 전체 프로젝트를 생각하면 총 세 개의 영상이 존재합니다. 의 뮤직비디오, 의 뮤직비디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려는 다큐멘터리 가 바로 그것이죠. 각각은 그것이 음악이 되었든, 철학이 되었든, 태도가 되었든, 입장이 되었든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의 창작물에 대한 피드백으로서의 성격을 가집니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의도 여하와 무관하게 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일종의 질문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각각의 영상은 그 자체로 온전한 작품임과 동시에 권하정..

Humanism 2023.12.26 0

불쾌함의 이유 _ 다섯 번째 흉추, 박세영 감독

# 0. 불쾌하니까 별로라는 감상은 시시합니다. 박세영 감독, 『다섯 번째 흉추 :: The Fifth Thoracic Vertebra』입니다. # 1.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향유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제 아무리 포용적이고 개방적이라 한들) 저마다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편하게는 취향, 조금 더 고상하게 말한다면 감식안(鑑識眼)이라 부르는 것들이죠. 제 스스로 견제하고 점검하는 몇 가지 대전제 중 하나는 '감독은 바보도, 괴물도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비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못 만든 영화라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관객은 보편타당한 근거를 들어 합리적인 수위에서 평가할 권리를 가짐에 분명합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저 감독이란 사람들도 관객..

Thriller 2023.11.28 0

시나리오 특강 _ 세븐 싸이코패스, 마틴 맥도나 감독

# 0. 거만한 천재가 들려주는 잔인하고 선량한 시나리오 특강 마틴 맥도나 감독, 『세븐 싸이코패스 :: Seven Psychopaths』입니다. # 1. 마틴 맥도나입니다. 역작 의 감독이자, 얼마 전 글로도 옮긴 바 있는 를 연출한 감독인 데요. 두 작품에 앞서 만들어진 2012년 개봉작이죠. 일반적으론 코미디 범죄 영화라 해야겠습니다만, 아시다시피 메타픽션(Metafiction)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콜린 패럴이 연기한 마티는 극 중 시나리오 작가임과 동시에 감독이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세븐 사이코패스를 집필한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다른 무엇보다 마티(Marty)라는 이름은 누가 보더라도 감독의 이름 마틴(Martin)에서 가져온 애칭이죠. 영화는 로스앤젤..

Comedy 2023.11.22 0

블루 얼럿 _ 더 킬러, 데이비드 핀처 감독

# 0. 봉준호의 진단에 답하는 데이비드 핀처의 서슬 푸른 경고 데이비드 핀처 감독, 『더 킬러 :: The Killer』입니다. # 1. 아무래도 킬러 영화들은 '킬러에게 표적이 된 사람의 서스펜스'라거나 '킬러가 엮인 특별한 사건의 스릴러'이기 마련일 텐데요. 본 작품은 제목에서처럼 킬러가 직업인 사람의 멘탈리티를 중심으로 풀어나갑니다. 혹자는 이야기가 심심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듯도 보이지만, 주인공의 생각과 감각을 추적하는 데 최대한 집중할 뿐 그 외의 타깃이나 사건은 중요하지 않기에 의도적으로 비워두고 있다 판단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위플래시와 라라랜드로 익숙하실 데미안 셔젤의 영화 중에 이라는 작품이 있죠.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을 탐구하고 체험하는 것에 최대한 집중하는 작품이기에, 그가 경험하..

Thriller 2023.11.18 0

트리뷰트 _ 황혼에서 새벽까지,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

# 0. 그 모든 의미에서 흘러넘치는 유쾌하고 자유로운 펄프 픽션의 피비린내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 『황혼에서 새벽까지 :: From Dusk till Dawn』입니다. # 1. 처음은 케이블 티브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폭력과 섹스와 유흥이 조합된 말초적 쾌락이 이렇게까지 과격하게 펼쳐질 수 있구나라는 감상은, 한 떨기 가녀린 소년에게 충분히 충격적인 것이었죠. 그렇게 한동안 잊고 지냈었는데요. 적당히 이런저런 경험이 쌓일 만큼 나이를 먹은 후 다시 볼 기회가 있었고. 지금은, 좋은 영화라는 평이 현학적인 작품들만 독점적으로 향유하는 것이라 여기던 고정관념을 깨부숴 준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괴상한 영화가 이렇게나 재미있다면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라는 고민이 며칠은 머릿속에서 ..

Horror 2023.11.16 0

모닥불 _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 0. 값비싼 자동차를 몰기 위해 뾰족구두에 못은 박았지만, 그럼에도 모닥불은 피어나 얼어붙은 기타리스트를 깨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입니다. # 1. 핀란드의 거장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작품입니다.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함께, 시네필인 척하고 싶을 때 써먹으면 가성비가 무지 좋은 감독이죠. 나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려는 정도를 거명한 후, 차갑고 건조한 미장센, 비정한 세상에 대한 날 선 조소, 투쟁하는 노동자 계급을 향한 다정함, 무성 영화에 대한 동경 따위를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 늘어놓다가, 대화가 끝날 즈음 그의 진가는 작품을 지배하는 서늘한 문제의식보다 그럼에도 결코 잃는 법이 없는 웃음이라는 말과 함께 커피 한 모금 홀짝이며 창밖 멀리를 쳐다보면..

Comedy 2023.11.06 0

열린 볼라드 너머 _ 보통의 카스미, 다마다 신야 감독

# 0. 안드로메다에 가지 못해 슬픈 사람은 없어. 다마다 신야 감독, 『보통의 카스미 :: そばかす』입니다. # 1. 카스미는 연애를 하고 싶지도, 그런 감정이 들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정이 있어서는 아니구요, 타고나길 그렇게 태어난 인물이죠. 세상은 그녀의 성향을 이해하기는커녕 존재를 인지하지조차 못합니다. 직장 동료들의 최대 관심사는 언제나 연애고, 엄마는 의무감과 부채의식에 결혼을 닦달하고, 동생은 사랑의 결실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 '모범적인' 임산부죠. 카스미와 세계의 관계는 대표적으로 직업에 은유됩니다. 콜센터 상담사는 매뉴얼에 따라 수행하는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사회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이후 이직하게 되는 어린이집 역시 나이와 무관하게 사랑으로 관계가 이루어지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

Drama 2023.11.04 0

허무의 얼굴들 _ 이니셰린의 밴시, 마틴 맥도나 감독

# 0. 굳이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허무의 얼굴들 마틴 맥도나 감독, 『이니셰린의 밴시 :: The Banshees of Inisherin』입니다. # 1. 작게는 개인의 인생, 넓게는 역사를 포함한 온 우주를 허무하고 공허한 것으로 규정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는 그 자체로 세계의 허무를 상징한다 할 수 있죠. 영화는 좁게는 두 명, 넓게는 네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데요. 콜린 패럴의 파우릭 설리반, 브렌던 글리슨의 콜름 도허티, 케리 콘던의 시오반 설리반, 배리 키오건의 도미닉 키어니가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은 허무에 대응하는 각기 다른 방식들을 대변합니다. 적극성을 기준으로 나열한다면 가장 소극적인 사람부터 도미닉, 파우릭, 콜름, 시오반의 순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

Drama 2023.10.26 0

내가 너의 장례식에 갈게 _ 테스와 보낸 여름, 스티븐 바우터루드 감독

# 0. 인생의 모든 순간에서 함께 자라고 함께 추억하는 우리 스티븐 바우터루드 감독, 『테스와 보낸 여름 :: Mijn bijzonder rare week met Tess』입니다. # 1. 가족 여행을 온 '샘'이 휴가지에서 만난 '테스'와 보낸 1주일입니다. 평화롭고 귀엽고 안전한 가족 영화 혹은 어린이 영화라 소개해도 무리는 없을 작품이죠. 영화는 어디로 튈지 모를 아이들의 하루가 다른 성장기이자, 사랑하는 사람들과 추억을 쌓아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성장기이며, 이들의 휴가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반추하게 될 우리들의 성장기입니다. 아이들은 유치하지만 심오하고, 섬세하지만 거침이 없습니다. 전반부의 모호한 전개는 그 자체로 아이들의 세계를 은유합니다. 감독은 샘과 테스를 묘사함에 있어 각기 다른 방법론..

Drama 2023.10.20 2

세 번의 외출 _ 37초, 히카리 감독

# 0. 네온사인 어지러운 밤. 바람이 시원한 바다. 초록이 숨 쉬는 태국. 세 번의 외출 끝에 처음으로 돌아온 진정한 나의 집. 히카리 감독, 『37초 :: 37 セカンズ』입니다. # 1. 성장 영화입니다. 미숙하던 주인공이 서너 가지의 안전한 해프닝을 겪은 후 내면의 성장에 도달하고, 겸사겸사 주변인들도 함께 성장한다는 류의 전형적인 일본식 성장 영화죠. 뇌성마비 후유증이 있는 장애인을 주인공 삼았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을 테구요, 장애인의 성적 자각이 성장의 모멘텀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 역시 주요한 특징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글의 제목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서사는 크게 '세 번의 외출'로 요약할 수 있는 데요. 본격적인 외출을 이야기하기 앞서 출발점으로서의 집에 대해 짚고 가..

Drama 2023.10.16 0

다이브 _ 공각기동대, 오시이 마모루 감독

# 0. 숨 참고 필로소피 다이브 오시이 마모루 감독, 『공각기동대 :: 攻殻機動隊』입니다. # 1. 믿고 거른다는 꺼무위키지만 솔직히 씹덕의 영역만큼은 예외입니다. 공각기동대와 관련된 정보를 얻고 싶다면 누군가의 포스팅을 빌릴 바에야 나무위키를 정독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죠.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의 별세를 핑계로 묵은 만화책들을 몰아보다 흘러 흘러 공각기동대를 다시 볼 수 있었는데요. 오래전 감상에 새로운 감상을 조금 더 얹어 주절거리겠지만 어차피 그 감상조차 모조리 나무위키에 있을 게 뻔합니다. 마니아들처럼 시리즈를 전부 찾아볼 정도의 관심도 의리도 없는 제게 공각기동대란 1995년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과 스칼렛 요한슨이 쿠사나기로 열연한 2017년 실사판 정도가 전부라는 것 역시 감안하셔야겠네요...

Animation 2024.04.0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