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Latest Post

역부족 _ 꽃놀이 간다, 이정현 감독

# 0. 정의감만으론 힘에 부친다. 이정현 감독,『꽃놀이 간다 :: Toe-Tapping Tunes』입니다. # 1. 배우가 감독한 영화에 관심이 가는 건 다분히 '그 사람스러운'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독 이정현의 영화는 거친 세상을 힘껏 내딛는 작은 거인, 배우 이정현의 또랑또랑한 눈망울 그대로인 영화다. 군데군데 화면도 사운드도 편집도 덜컥거리거나 헛도는 부분이 상당하고, 이후 그 부분에서의 지적은 피할 수 없겠으나,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을 향해 당차게 직진하는 의지만큼은 분명한 데뷔작이라 하겠다. 단편 꽃놀이 간다는 '인물'에 대한 영화가 아닌 '상황'에 대한 영화다. 포위된 인물의 심리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여기 포위된 상황이 있어요!' 고발하는 것에 노골적이라는 ..

Drama 2026.02.12 0

종의 기원 _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 0. Some of them want to use you,Some of them want to get used by you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 :: Kinds of Kindness』입니다. # 1. 물론 친절 혹은 다정함의 종류라 직역하는 것이 무난하다. 다만 Kind는 때때로 종이라는 의미로도 쓰이기에, 제목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는 친절이라는 종(種, Species)으로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호모 코미스(Homo Comis, 친절한 인간)쯤 될까. 현생 인류란 다정함을 정체성으로 하는 유인원이고, 그것이 호모 에렉투스나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생물학적 분류에 가까운 것이라면, 우리 종의 특성은 유전자 결정적이라 주장한다는 면에서 요르고스..

Comedy 2026.02.10 0

Mystery & Thriller

more

세 쌍둥이의 일그러진 초상 _ 시스터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 0. 폭로와 은폐, 시선과 권력, 관음과 진실의 선혈 낭자한 스플릿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시스터스 :: Sisters』입니다. # 1. 결국 시스터스의 야심은 쌍둥이 다니엘과 도미니크, 그들을 관찰하는 기자 그레이스에 비춰 당대 모순을 투사하는 것이다. 감독은 (그의 필모그래피를 평생 따라다닌 히치콕스러운) 카메라 워크를 통해 분화된 심리적 갈등을 통합함으로써, 객관적 사실의 관찰을 통해 살인 사건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어떻게 비합리적이고 기괴한 모습으로 추락하는가 집요하게 추궁한다. 흥미진진한 분할 화면(Split-screen)은 인식론의 본질을 묻는다. 결합되어 있었으나 폭력적으로 분리된 샴쌍둥이로 구체화된 '분열된 본성'을 시각화하는 동시에, 은폐하려는 자와 폭로하려는 자 ..

Mystery & Thriller 2026.01.12 0

두 번째 맥거핀 _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라이언 존슨 감독

# 0. 탐정을 맥거핀으로 써먹는 추리물이 있다?! 라이언 존슨 감독,『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 Wake Up Dead Man』입니다. # 1. (당연하게도) 추리극은 과학적이고 논리적이기에, 대척점으로 애먼 종교의 머리채를 잡는 경우가 더러 있다. 비이성적이고 광신적인 교단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탐정의 대결. 이라는 식인데, 라이언 존슨의 신작은 추리극의 플랫폼 위로 종교의 역할을 탐구한다는 면에서 의외성이 있다. 핵심 사건은 네 개의 종교적 죽음으로 요약되고, 두 명은 죄악의 죽음, 다른 두 명은 회개의 죽음으로 다시 구분된다. 몬시뇰 윅스와 의사 냇은 유황이 끓는 지옥에서 최후를 맞이한 반면, 신도 마사와 정원사 샘슨은 각각 사제와 연인의 품에서 영면에 들었으니, ..

Mystery & Thriller 2025.12.22 0

귀족이라는 환상, 유령이라는 본성 _ 푼돈 도박꾼의 노래, 에드워드 버거 감독

# 0. 스타일은 이해하나 스토리가 아쉽다 에드워드 버거 감독,『푼돈 도박꾼의 노래 :: Ballad of a Small Player』입니다. # 1. 당장 어지러운 마카오가 이목을 끈다. 파편화된 과시적 요소들의 합성된 웅장함은 '거대하면서 공허한 공간'으로 구현되고, 감독은 그런 마카오를 도박 중독자의 왜곡된 심리가 투사된 비현실적 연옥이라 규정한다. 나약한 영혼을 가두어 스스로 파괴하는 순환적 행동, 중독의 본질을 시각화하는 것이다. 연옥으로서의 마카오는 내내 주인공이 짊어진 영적 결핍과 탐욕스러운 외양 사이의 모순을 증폭시킨다. 그 안에서 도일은 낯선 공간의 익명성에 일시적인 해방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내 억압적인 크기와 치장에 압도되어 고립되길 반복한다. 그래서 관객이 목도..

Mystery & Thriller 2025.11.12 0

장르 돌려막기 _ 우먼 인 캐빈 10, 시몬 스톤 감독

# 0. 돌려 막기의 끝은 어지간하면 파산이거든요. 시몬 스톤 감독,『우먼 인 캐빈 10 :: The Woman in Cabin 10』입니다. # 1. 폭설로 고립된 산장, 망망대해 외딴섬, 멈추지 않고 달리는 기차. 클로즈드 서클이다. 외부와 단절된 채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 사건을 다룬 미스터리는 이미 충분히 검증된 장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필두로, 오리엔트 특급 살인, 아서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 가문의 개나 사라진 특별열차는 물론, 히치콕이 영화화하기도 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도 넓은 의미에서는 클로즈드 서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잘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면산장 살인사건 같은 작품들도 마..

Mystery & Thriller 2025.11.04 0

번거로운 플롯의 함의 _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 0. 멀고 가깝다는 인식만이 있을 뿐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 A HOUSE OF DYNAMITE』입니다. # 1. 세상 대부분의 것들이 그러하듯 영화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겠지만, 쉽게는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가져오는 것'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이때의 '멀리 있는 것'이란 나 같은 특별한 상황일 수도, 이나 처럼 재해석된 역사일 수도 있고, 나 처럼 미래의 상상이어도 좋다. 나 처럼 이질적인 세계일 수도, 이나 처럼 특수한 관계나 환경, 나 처럼 어떠한 인식일 수도 있고, 때때로 이나 같은 영화조차 특정한 철학이나 사상을 현현해 가까이 옮긴 것이라 해설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반전주의 영화 역시 다음의 정의를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Mystery & Thriller 2025.11.02 0

콤플렉스 & 서스펜스 _ 격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 0. 거장의 테크닉은 이미 완성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격돌 :: Duel』입니다. # 1. 상어나 공룡, 손가락이 긴 외계인이나 중절모의 탐험가가 주요했다 알고 있다면 오해다. 거장에겐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놓인 두 대의 차량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끝까지 이유도, 정체도 알 수 없는 미친놈에게 쫓기는 영화는, 콤플렉스와 서스펜스를 다루는 스필버그의 기술적 묘미로 가득하다. 자신만만한 24살의 청년은 필모그래피의 시작부터 자신이 관객의 아드레날린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조종할 수 있는가 선보인다. 불필요한 대사, 복잡한 서사, 인물의 전사 따위는 필요 없다. 이미지, 사운드, 편집과 같은 기본적인 요소만으로도 90분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넉넉하다. 관객은 완벽한 영웅보다 결함..

Mystery & Thriller 2025.10.24 0

낙인 _ 고백,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 0. 보이는 죄와 보이지 않는 악의 대면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고백 :: 告白 コンフェッション』입니다. # 1. 영화의 제목은 고백이고, 고백하는 것은 죄이니,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영화는 죄책감에 관한 영화라 이해해도 무리는 없다. 인간 내면을 안에서부터 파먹어 들어가는 이야기이자, 그것을 양심과 관련된 드라마보다 호러의 방향으로 해석한다는 면에서 로버트 애거스의 도 일부 연상되는 데, 로버트 패틴슨의 고뇌는 비장하고 철학적이었던 반면, 이쿠타 토마의 그것은 장르적이고 무엇보다 윤리적이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산. 죽음을 직감한 지용이 살인을 털어놓으며 영화는 시작된다. 친구 사유리에 대한 살인 고백은 순식간에 그를 살인자로 규정하게 만들고, 곁에서 불안에 떠는 아사이를 잠재적..

Mystery & Thriller 2025.10.12 0

Horror

more

말은 쉽지 _ 굿 보이, 벤 리온버그 감독

# 0. 인간보다 먼저 귀신을 보는 개. 하우스 호러의 클리셰를 뒤집어 극 전체를 반려견 시점에서 전개하면 뭐가 나와도 나오지 않을까? 벤 리온버그 감독,『굿 보이 :: Good Boy』입니다. # 1. 말은 쉽지. 그래서 그걸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게 문제다. 적당히 꼬리 흔들고 뛰어다니다 짖고 싸우는 정도면 모를까. 무려 호러 장르의 주인공으로 쓰겠다니. 영화가 장난이야?라는 세간의 의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벤 리온버그다. 솔직히 이야기도 호러도 특별할 것은 없지만 관람은 기대보다 즐겁다. 반려견 계의 티모시 샬라메, 인디의 활약 덕분이다. 감독 본인의 반려견이기도 한 인디의 절륜한 연기력과, 저 그림을 어떻게 영상으로 뽑아냈을까 역산하는 것이야 말로 굿 보이의 진정한 재미다. 때문..

Horror 2026.01.24 0

즉시 되돌아갈 것 _ 8번 출구, 카와무라 겐키 감독

# 0. 1. 단 하나의 이상 현상도 놓치지 말 것.2. 이상 현상을 발견하면 즉시 되돌아갈 것.3. 이상 현상이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것.4. 8번 출구를 통해서 밖으로 나갈 것. 카와무라 겐키 감독,『8번 출구 :: 8番出口』입니다. # 1. 흔히 호러 게임이라 알려져 있지만 실은 틀린 그림 찾기식 퍼즐 게임에 가깝다. 플레이 타임은 게임의 규칙을 얼마나 빨리 눈치채냐가 상당 부분 차지하기에 규칙만 알아차리면 그리 오래 걸릴 것도 없다. 아무리 처음으로 돌아간다 한들 어차피 여덟 번만 제대로 맞추면 되는 데다 대부분의 기믹들에 제한시간도 없기 때문이고, 덕분에 어지간히 둔한 사람도 1시간 남짓이면 대충 엔딩을 볼 수 있으니 이례적인 인기와 별개로 작은 게임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Horror 2025.11.06 0

러브크래프트라는 색채 _ 컬러 아웃 오브 스페이스, 리차드 스탠리 감독

# 0. 묘사할 수 없는 것은 묘사할 수 없다. 리차드 스탠리 감독,『컬러 아웃 오브 스페이스 :: Color Out of Space』입니다. # 1. 코즈믹 호러의 정수는 악의 없는 무관심에 있다. 거대한 존재는 자신의 본질에 따라 주변을 재구성할 뿐이고, 인간과 지구의 생태계는 부수적으로 파괴되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무력감. 미국의 소설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다. 실체 없는 공포를 어떻게 스크린 위에 구현할 것인가. 리처드 스탠리는 러브크래프트의 정수를 보존하는 대신, 자신만의 강력한 스타일을 통해 돌파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영화 내내 원작의 고상하고 지적인 공포가 아닌, 추상적인 공포의 구체화에 집중하는 데, 원작에서의 '색'은 인간의 감각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

Horror 2025.10.14 0

문학적인 호러 _ 페브러리, 오즈 퍼킨스 감독

# 0. 문학적인 호러 영화를 차분히 읽어나가는 즐거움 오즈 퍼킨스 감독,『페브러리 :: February』입니다. # 1. 건조한 호러의 원제는 The Blackcoat's Daughter. 주인공 캐서린(캣)을 블랙코트의 딸이라 한다면 이때의 블랙코트는 누구를 이르는 걸까. 무난하게는 악마를 생각할 수 있다. 부모의 부재로 인한 극심한 허무와 고독 속에서 소녀는 유일하게 말 걸어오는 미지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서늘한 새벽, 정체 모를 실루엣을 아버지라 부르는 도입이다. 이후 캣은 악마의 목소리에 이끌려 살인하고 제물을 바치는 데, 몇몇의 순간 섬뜩하게 웃는 표정은 마치 다정한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딸처럼 보인다. 9년 후, 조앤이 되어 다시 학교로 돌아온 결말이란 떠나버린 어둠의 아..

Horror 2025.09.02 0

인과의 감옥, 회귀의 지옥 _ 이도공간, 나지량 감독

# 0. 편집증적 인과의 감옥, 폐쇄적인 회귀의 지옥 나지량 감독,『이도공간 :: 異度空間』입니다. # 1. 관객은 종종 영화 외적인 것들에 포획되곤 한다. 일례로 시대적, 역사적 배경에 과도하게 천착하는 경우다. 아일랜드 영화를 볼 때면 끊임없이 대기근에서 연원을 찾아버릇한다거나, 스페인 영화를 볼 때면 내전 혹은 스페인 독감과의 연결성을 하릴없이 점검하는 식이다. 한편 어떤 영화를 촬영할 당시의 감독이나 배우의 개인사와 연결 짓는 경우도 허다하다. 촬영당시 감독이 이혼 소송 중이었다거나 배우의 절친이 사고를 당했다거나 하는 식의 에피소드는 영화를 보는 데 있어 그와 관련된 흔적을 반복적으로 찾게 만든다. 90년대 전후 홍콩 영화들은 대표적인 것으로, 그것을 보는 관객들은 관성적으로..

Horror 2025.08.06 0

멜랑콜릭 호러 _ 언데드 다루는 법, 테아 비스텐달 감독

# 0. 두려운 상실 앞에 미련하지 않을 수 있을까 테아 비스텐달 감독,『언데드 다루는 법 :: Handling the Undead』입니다. # 1. 스스로 멜랑콜릭 호러(Melancholic Horror)를 생각했다 고백하는 것처럼 젊은 노르웨이 감독의 영화는 우울하고 서정적인 드라마다. 되살아나 움직이는 시체들은 부두신앙적 좀비라기보다는 문자 그대로 반(反)-죽음적인 존재들이다. 그들은 바이러스나 재앙의 증상으로 나타난 위협적 존재가 아닌 애도의 과정을 시각화한 것에 가깝기에 대부분의 시간 동안 폭력적이라기보다는 비참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영화의 제목 Handling the Undead는 문자 그대로 '죽음에 반하는 것'을 다루는 방법이라는 의미고, 실제 영화에서 진정 다루어지는 ..

Horror 2025.07.10 0

롱 리브 더 뉴 플래시 _ 비디오드롬,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 0. 40년 전 바디 호러가 시시하게 느껴진다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비디오드롬 :: Videodrome』입니다. # 1. 그 영화 속에서 죽은 사람은 명백히 나의 엄마가 아니다. 심지어 죽은 그 사람은 배우가 연기하는 것일 뿐 실제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 나는 오롯이 슬프다. 충분히 감정적으로 고조된 몇몇의 순간엔 주체할 수 없다는 듯 오열하기도 한다. 적어도 영화를 몰입해 보는 동안 현실과 창작은 구분할 수 없다는 뜻이고, 이는 다른 관객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이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공감능력을 적극적으로 개발한 진화의 산물이라 주장한다. 한편 어떤 이는 미디어의 등장과 발전 속도에 맞춰 인지체계가 충분히 진화하지 못한 탓이라 설명하기도 한..

Horror 2025.05.22 0

Comedy

more

종의 기원 _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 0. Some of them want to use you,Some of them want to get used by you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 :: Kinds of Kindness』입니다. # 1. 물론 친절 혹은 다정함의 종류라 직역하는 것이 무난하다. 다만 Kind는 때때로 종이라는 의미로도 쓰이기에, 제목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는 친절이라는 종(種, Species)으로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호모 코미스(Homo Comis, 친절한 인간)쯤 될까. 현생 인류란 다정함을 정체성으로 하는 유인원이고, 그것이 호모 에렉투스나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생물학적 분류에 가까운 것이라면, 우리 종의 특성은 유전자 결정적이라 주장한다는 면에서 요르고스..

Comedy 2026.02.10 0

장르는 은혼 _ 은혼, 후쿠다 유이치 감독

# 0. 조잡한 만화라서 조잡한데... 어찌 조잡하다 생각했느냐 하시면... 후쿠다 유이치 감독,『은혼 :: Gintama』입니다. # 1. 이를테면 진중한 캐릭터 옆에서 심드렁한 캐릭터가 반쯤 감긴 눈으로 코를 후빈다면, 그건 코를 후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루하다'는 기의를 표현하기 위한 기표일 뿐이다. 해당 컷을 실사 영화화 한답시고 다 큰 성년 배우가 코를 후벼 파고 있다면, 관객은 일차원적인 기의뿐 아니라 '무안하다', '지저분하다', '민망하다', '무례하다'를 포함한 복합적 의미로 읽어내게 된다. 동시에 관객도 바보가 아니기에 그 장면에서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기의란 단순히 '지루하다' 하나뿐이란 것도 알고 있다. 일련의 사고 프로세스가 순식간에 주르륵 흐르면 결과..

Comedy 2026.02.08 0

정우가 또 _ 윗집사람들, 하정우 감독

# 0. 하정우가 또 ㅈ같은 새끼를 데려왔네. 하정우 감독,『윗집 사람들 :: The People Upstaris』입니다. # 1. 관람 직후의 감상이다. 좁은 골목길, 서로 어깨가 부딪히지 않으려 한발짝 비켜나는 사회에서 내가 습관처럼 물러서자 기다렸다는 듯 '아이구~ 고맙습니다~' 스트레칭 하는 꼬라지를 바라보는 당혹감. 억울하고 분하지만 지적 하자니 너무 짜쳐서 티를 낼 수도 없는 나를 음흉하게 입꼬리 들썩이며 관찰하는 느낌적인 느낌. 보통은 절대 하지 않을 법한 에티켓과 위선의 경계에 뻔뻔하게 발가락을 담근 다음,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감각. 이를테면 커여운 김향기를 김냄새라 부른 뒤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을 군내날 것 같은 콧수염 쓰다듬으며 지켜보는..

Comedy 2026.02.06 0

발언력의 역학 _ 더 리틀 아워즈, 제프 바에나 감독

# 0. Don't fucking talk to us! 제프 바에나 감독,『더 리틀 아워즈 :: The Little Hours』입니다. # 1. 무작정 야한 영화를 기대했다면 유감이다. 물론 데카메론을 끌고 온 탓에 순결한 수녀들의 억눌린 욕정을 유감없이 드러내긴 하지만, 그럼에도 생각만큼 야하진 않다. 기껏해야 몇몇의 느슨한 은유일 뿐이고, 헐벗은 장면조차 데이브 프랭코의 탄탄한 빵댕이를 제외하면 오밤중 마녀 의식 장면 따위의 호러 연출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전부다.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한다면 차라리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 특히 넌스플로이테이션 매대를 뒤져보는 편이 낫다. 뇌가 녹아내릴 것만 같은 개막장성은 그쪽이 전문이니 말이다. 포스터에서부터 잔뜩 화가 난 수녀가 입 벌리고..

Comedy 2026.02.04 0

코러스, 레니, 린다 _ 마이티 아프로디테, 우디 앨런 감독

# 0. 황금빛 미소의 아프로디테 우디 앨런 감독,『마이티 아프로디테 :: Mighty Aphrodite』입니다. # 1. 고대 그리스의 원형 극장. 한 무리의 코러스가 등장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아이스토파네스나 에우리피데스 같은 고전 극작가의 스토리텔링을 오마주해, 뉴욕에 사는 스포츠 기자 레니 와인립의 소동극에 더할 비장미를 빌려오기 위함이다. 물론 그것을 고스란히 차용할 우디 앨런은 아니다. 엄숙한 등장에도 불구하고 코러스가 논평하는 대상은 아킬레스나 오이디푸스 같은 신화 속 영웅이 아닌, 신경증적 뉴요커의 양육 문제나, 아내의 불륜, 매춘부 개조 시도 따위의 한심한 것이다. 현대인의 사소한 고민조차 고대 비극이 다루던 운명, 윤리, 어리석음 같은 원형(Archetypes)의 연..

Comedy 2025.12.14 0

이번에는 뺏기지 않겠어 _ 키드, 찰리 채플린 감독

# 0. A picture with a smile—and perhaps, a tear 찰리 채플린 감독,『키드 :: The Kid』입니다. # 1. 예컨대 모던 타임스나 시티 라이트의 트램프는 홀로 세계와 대결하는 존재다. 그는 시스템의 톱니바퀴에 끼이거나 도시의 불빛 아래 서성일지언정, 언제나 관객이 감정 이입하는 유일한 창구로서 스크린을 장악했다. 반면 키드에서는 다르다. 화자는 모호하고 시선은 분산되며 정서는 독점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의 텍스트는 채플린이라는 거대한 자아가 파편으로 비산해 스크린에 투사된 듯 느껴진다. 거리의 부랑자, 버려진 아이, 그리고 어머니. 세 존재 모두 채플린의 내면에서 발원한 페르소나라는 뜻이다. 1919년 7월 7일. 기형으로 태어난 첫아들 노먼 ..

Comedy 2025.12.02 0

정상이라 생각들기 시작했어 _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 글렌 피카라 / 존 레쿼 감독

# 0. What the Fxck?! 글렌 피카라 / 존 레쿼 감독,『위스키 탱고 폭스트롯 :: Whiskey Tango Foxtrot』입니다. # 1. 어떤 테마는 너무 단호하게 윤리적이라 가벼이 다루는 순간 인간성을 의심받기도 한다. 당장 인명 참사나 아동 학대, 역사 논쟁 등을 가져다 성급하게 극화한다거나 심지어 코미디로 각색하겠다 한다면 무슨 사단이 벌어질지는 눈에 선하다. 내용과 이유를 듣기도 전에 강한 거부감과 공분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심지어 몇몇의 경우엔 인신공격을 포함한 맹렬한 사회적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반전주의는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보편의 가치니만큼 대부분 심각하고 엄숙하게 다뤄왔다.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이 전쟁의..

Comedy 2025.11.08 0

Action

more

신화창조 _ 고스트 독, 짐 자무쉬 감독

# 0. 신화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렷! 짐 자무쉬 감독,『고스트 독 :: Ghost Dog: The Way of the Samurai』입니다. # 1. 사무라이들의 지침서, 야마모토 쓰네토모의 '하가쿠레(葉隠)'를 삶의 근간으로 삼은 흑인 킬러 이야기. 규율이 멸종해 가는 세기말을 노려보는 짐 자무쉬다. 일본 사무라이 문화, 이탈리아계 마피아, 아프리카계 미국인,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아이스크림 장수까지. 이질적인 이들을 한데 모아 장르 관습을 해체한 건 파편화된 도시의 도덕 지형을 새로이 탐색하기 위함일 것이다. 특유의 포스트모던적 미학으로 갱스터 장르와 사무라이 영화를 결합한 자무쉬는, 황폐화된 시대에 텍스트가 어떻게 인간 실존과 결합하고 또 구원할 수 있는가 짓궂게 ..

Action 2026.02.02 0

다각적인 대조 _ 워페어, 알렉스 가랜드 / 레이 멘도자 감독

# 0. 고통스러운 권태. 인식이 부재한 규율. 데이터화된 인간. 그들이 없는 우리. 알렉스 가랜드 / 레이 멘도자 감독,『워페어 :: Warfare』입니다. # 1. 영화는 두 번의 대조로 소개된다. 화면 속 에어로빅 하는 여성들과 옹기종기 모여 열광하는 군인들, 소란스러운 베이스캠프와 어두운 밤 고요한 군사 작전이다. 연이은 대조는 이 작품이 각기 다른 무언가에 대한 영화가 아닌, 대조된 모습의 괴리감 그 자체에 천착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유난히 미니멀한 알렉스 가랜드의 전쟁 영화란 대조에 관한 것이며, 워페어를 본다는 것은 곧 무엇과 무엇이 대조되어 있는가, 그 대조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탐구하는 것이다. 초반 30여분은 전투 장면 하나 없이 건조하게 흘러간..

Action 2026.01.18 0

픽시보이 _ 프리미엄 러쉬, 데이빗 코엡 감독

# 0. 잃어버린 프런티어 정신을 찾아 뉴욕으로 돌아온 카우보이 데이빗 코엡 감독,『프리미엄 러쉬 :: Premium Rush』입니다. # 1. '스케이트보딩을 다룬 영화들은 보드의 미학을 작품 안에 끌고 들어와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이 존재하는 듯하다.' 미드 90의 글을 시작했던 문장이다. 데이빗 코엡의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프리미엄 러쉬에서 픽시(Fixed-gear Bike, Fixie)의 미학은 다른 어떤 요소들보다 우선한다. 거추장스러운 브레이크가 제거된 싱글 기어 바이크의 속성은, 영화의 리듬, 캐릭터의 철학, 나아가 작품의 세계관 전체를 규정하고 지배한다. 일반적인 자전거와 달리 픽시는 뒷바퀴의 회전과 페달의 움직임이 직결된 자전거다. 말인즉 탑승자의 의도가 기..

Action 2025.12.04 0

어정쩡 _ 킬러들의 비행, 제임스 매디건 감독

# 0. 결국 문제는 애매하고 어정쩡한 스텐스다. 제임스 매디건 감독,『킬러들의 비행 :: Fight or Flight』입니다. # 1. 비행기 안에서 킬러들이 떼싸움을 벌인다. 라는 시놉시스를 읽고 대단한 이야기를 기대한 사람이 뭐 얼마나 있을까. 간결한 오프닝은 이후 90분에 대한 예상을 금세 확신으로 바꾼다. 상황을 희화화하는 클래식 음악, 과격한 폭력과 고어한 표현, 크게 휘두르는 카메라와, 관심 없다는 듯 뮤트 된 음성은 액션 덩어리로서의 정석적인 첫인사다. 제각각 따로 노는 난잡한 캐릭터들의 과거나 서사의 개연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니 이 난장판 같은 액션의 유희만 즐겨달라는 노골적인 요청이다. 숱한 액션 코미디들이 그러하듯 킬러들의 비행 역시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려 하..

Action 2025.09.22 0

켄트 17 _ 슈퍼맨, 제임스 건 감독

# 0. 슈퍼맨은 왜 다시 시작되어야 하는가. 제임스 건 감독,『슈퍼맨 :: Superman』입니다. # 1. 20세기는 끝났다. 더 이상 명쾌한 이상주의는 없다. 영화는 의심 없는 선과 절대적 능력을 상징하던 결벽증적 설원에서 익숙한 영웅을 쓰러트리며 시작된다. 개에게 끌려 퇴각하는 장면은 영화가 탐구할 영웅의 위치가 더 이상 하늘 위가 아닌 고뇌하는 지상에 있음을 명확히 한다. 그래서 '고독의 요새'의 디자인은 흥미롭다. 기하학적 순수성의 요새는 마치 추락한 미사일과 닮았고, 이는 희망의 결정체가 아닌 파괴와 실패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양가적 공간임을 암시한다. 절대적 힘이 가진 구원과 재앙의 양면성. 오래도록 배트맨이 전담해 온 그 불안정한 정체성이야 말로 새로운 슈퍼맨의 출발점인..

Action 2025.09.16 0

호쾌하고 이쁘장하다만... _ 발레리나, 렌 와이즈먼 감독

# 0. 스타일과 이미지를 위해 각본을 내다 버린 익숙한 렌 와이즈먼 렌 와이즈먼 감독,『발레리나 :: Ballerina』입니다. # 1. 성공적인 프랜차이즈의 스핀오프는 두 가지 상반된 기대를 짊어진다. 하나는 원작의 세계를 충실히 계승하여 팬들의 향수를 만족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별 작품으로서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든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균형을 잃는 순간, 평가는 원작의 영광에 기생한다는 멸시와 함께 자유낙하하기 십상이니 쉽지 않은 일임엔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의 스핀오프 발레리나는 균형 잡기에 실패한 듯한 모양새다. 원작의 외피를 부지런히 흉내 내고 있지만, 그 안에 흐르던 냉소적인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끝내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존 윅 ..

Action 2025.08.16 0

이의있음 _ 아토믹 블론드,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

# 0. 연기가 좋았다는 건, 글쎄...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아토믹 블론드 :: Atomic Blonde』입니다. # 1. 특정 인물의 역할에 몰입해 그 인물의 생각, 감정, 행동을 자신의 신체와 목소리를 통해 재현하는 예술 행위. 연기는 정의에서부터 그러하듯 독립적일 수 없고, 따라서 모든 연기의 결괏값은 연기하려는 인물의 설득력에 연동된다. 아무리 좋은 연기자라 하더라도 완전히 망가진 캐릭터를 뛰어나게 연기할 방법은 없고, 역으로 배우의 능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캐릭터의 설득력으로 상당 부분 보강될 수 있다는 식이다. 충분히 검증된 배우들조차 특정 작품에서 헤매기도 하는 이유이자, 역으로 걸작에선 지나가는 엑스트라조차 뛰어나게 연기하는 듯 느껴지는 이유다. 존 윅을 공동 연출한..

Action 2025.07.20 0

SF & Fantasy

more

혼란하다 혼란해 _ 대홍수, 김병우 감독

# 0. 홍수에 밀려온 물방울 수보다 의아한 부분이 더 많다. 김병우 감독,『대홍수 :: The Great Flood』입니다. # 1. 아침부터 아이는 물놀이하자는 둥 심각성을 모르는 데, 아파트 3층에 물이 들이치는 걸 보고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기엔 애가 너무 큰 것 아닐까. 홍수가 났고 거실에 물이 들이쳐 발이 잠기고 있는 상황. 김다미는 대체 무슨 이유로 멍하게 서있는 연기를 디렉팅 받은 걸까. 발가락에 마비가 온 것이 아니고서야 보통 물이 발끝에 닿는 순간 '뭐야, 씨발' 화들짝 놀라게 되지 않나. 곧이어 집에서 탈출하는 데 험준한 산을 오르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 복도에서 왜 애를 둘러업고 다니는 걸까. 주사기 보여준 걸로 봐선 아픈 애라 그런가? 라기엔 멀쩡히 물놀이한다 ..

SF & Fantasy 2025.12.24 0

마음먹기 나름 _ 2분마다 타임루프, 야마구치 준타 감독

# 0. 세상사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 야마구치 준타 감독,『2분마다 타임루프 :: リバー、流れないでよ』입니다. # 1. 수많은 사람들이 타임루프를 상상하고 즐기는 건 무수한 시행착오의 비용을 무상으로 처리해 주는 편리함과 자유로움을 막연하게 갈망하기 때문이다. 1초, 1초 쫓기듯 사는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껏 폭식할 수도, 밀린 잠을 몰아 잘 수도, 거침없는 일탈을 저지를 수도, 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상상. 그런 의미에서 2분은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로 짧다. 세상에 2분이라니. 루프가 시작되는 곳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시간이 쓰일 텐데 대체 뭘 하란 말이야. 어차피 이 소소한 군상극을 보러 온 관객들 중에 '타임루프'가 핵심이라 생각할 바보는 없다. ..

SF & Fantasy 2025.12.10 0

SF는 어디까지 지적일 수 있는가 _ 컨택트, 드니 빌뇌브 감독

# 0. 결국 이 모든 것은 극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컨택트 :: Arrival』입니다. # 1. 서사의 초점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다. 다방면의 존재론적 질문들로 견인하는 부단히 지적인 SF다. 그래서 드니 빌뇌브의 야심이란 지독할 정도의 침착성과 인내심으로, 언어의 본질과 인간의 인지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사색을 향해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대체로 퍼스트 컨택트 장르들은 외계종과의 통신 문제를 불편으로 치부하거나, 혹은 바벨 피쉬와 같은 마법적인 장치를 통해 언어학적 논의를 배제해 왔다. 한편 컨택트는 외계어 습득 자체를 영화의 핵심 줄거리로 삼아 언어학을 전면에 부각한다. 특히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은 작품의 핵심 전제다..

SF & Fantasy 2025.12.08 0

아들의 그림자 _ 프랑켄슈타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 0. 여기 외로운 아들들의 동화가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프랑켄슈타인 :: Frankenstein』입니다. # 1. 어머니와 다정한 경우는 더러 있지만, 아버지와 돈독하기란 쉽지 않다. 아버지가 성공한 사람일수록, 타고난 성정이 엄격할수록 더욱 그렇다. 일생 가족을 건사한 아버지는 자식이 헤쳐 나갈 세상이 녹록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아비는 그것을 표현하는 데 어리석고, 아들은 아비의 마음을 헤아리기엔 너무 어리다. 때문에 몇몇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동시에 나는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 섣부르게 다짐한다. 긴 시간이 흘러 아이를 가지고 나서야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겠지만, 그때는 아버지와 대화하기엔 이미 늦다. 떠나버린 아버지가 고픈..

SF & Fantasy 2025.11.24 0

초코파이 하나 _ 혈세, 김민하 감독

# 0. 영화티켓 대신 초코파이 하나로 퉁치는 헌혈소? 이거 쎄하거든요. 김민하 감독,『혈세 :: Tax』입니다. # 1. 뱀파이어 '종주'는 낡은 상가의 건물주다. 당장 흥미로운 것은 임대료 대신 피를, 그래서 문자 그대로 '혈세'를 입금받는 시스템이다. 그의 시스템은 뱀파이어의 원초적 포식 행위를 현대 사회의 계약 관계로 치환하는 것이자, 역으로 현대의 계약 관계를 원초적 포식 행위로 치환한다. 종주의 공간에서 피는 숭고한 생명이 아닌 매달 수거하는 재화로 전락하고, 종주가 식량을 보장받는 동안 세입자들은 돈 대신 피를 잃는 것에 다행스러워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아마도 종주는 스스로 욕망을 통제하는 데 성공한 합리적인 관리자라 인식할 것이다. 무분별한 사냥이 야기할 혼란과 비효율을..

SF & Fantasy 2025.09.26 0

기억의 예술 _ 빅 피쉬, 팀 버튼 감독

# 0.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이야기가 된다. 팀 버튼 감독,『빅 피쉬 :: Big Fish』입니다. # 1. 짐짓 이질적이다. 모르고 보면 팀 버튼의 그것임을 알아채기 힘들 정도다. 특유의 고딕적 미장센과 그늘진 상상력 대신, 따뜻한 파스텔 톤 감성으로 충만한 영화는 화려한 필모그래피에서도 유독 도드라진다. 그럼에도 빅 피쉬는 다분히 팀 버튼스러운 영화다. 그의 영화란 언제나 다정한 설득과 치유의 과정이었고, 생선이 되어버린 어느 허풍쟁이 아저씨의 회고 역시 본질적으론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의 초기작은 정상성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 음울한 상상력을 지닌 소심한 소년의 정신세계를 대변한 후, 그 어둡고 기이해 보이는 세계 속에 숨겨진 순수와 아름다움을 설득하는..

SF & Fantasy 2025.09.14 0

로또는 왜 4등인걸까 _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김다민 감독

# 0. 정작 막걸리가 알려준 건 버려진 우리의 내일인 걸지도 김다민 감독,『막걸리가 알려줄거야 :: FAQ』입니다. # 1. 사회는 정답만이 진리인 곳이다. 해마다 바뀌는 입시 요강, 말하기 대회의 정해진 원고, 코딩의 논리 알고리즘과, 페르시아어 수업 따위는 모두 정답에 최단 경로로 도달하기 위한 규격화된 시스템을 대변한다. 어른들은 시스템의 정답을 찾는 것만이 성공이라 가르친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동춘의 엄마는 언제나 딸을 사랑하고 선생님들 역시 언제나 학생에게 다정하지만, 그들의 소통방식은 오직 정답 사회의 언어에만 국한된 모습이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해요?" 왜 그래야 하는가 대신 어떻게 더 잘할 것인가에만 몰두하는 사회를 향해 동춘은 질문한다. 어른들은 답하지..

SF & Fantasy 2025.09.04 0

Drama

more

역부족 _ 꽃놀이 간다, 이정현 감독

# 0. 정의감만으론 힘에 부친다. 이정현 감독,『꽃놀이 간다 :: Toe-Tapping Tunes』입니다. # 1. 배우가 감독한 영화에 관심이 가는 건 다분히 '그 사람스러운'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독 이정현의 영화는 거친 세상을 힘껏 내딛는 작은 거인, 배우 이정현의 또랑또랑한 눈망울 그대로인 영화다. 군데군데 화면도 사운드도 편집도 덜컥거리거나 헛도는 부분이 상당하고, 이후 그 부분에서의 지적은 피할 수 없겠으나,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을 향해 당차게 직진하는 의지만큼은 분명한 데뷔작이라 하겠다. 단편 꽃놀이 간다는 '인물'에 대한 영화가 아닌 '상황'에 대한 영화다. 포위된 인물의 심리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여기 포위된 상황이 있어요!' 고발하는 것에 노골적이라는 ..

Drama 2026.02.12 0

어둠의 되먹임 _ 스티브, 팀 밀란츠 감독

# 0. 어둠을 우악스럽게 격리하며 악을 되먹임 하는 팀 밀란츠 감독,『스티브 :: Steve』입니다. # 1. 1996년 문제아 학교 스탠튼 우드의 아이들과 교장 스티브다. 아이들은 흔들리는 앵글이 보증하는 것처럼 충동적이고 폭력적이다. 오만하면서 자기혐오적이고, 돌발적이면서 게으른 터라 교직원들은 내내 피로감에 시달린다. 다만 마지막 스티브가 담담히 말하듯 그런 아이들조차 손쉽게 격리될 만큼 단순한 존재가 아니고, 돌멩이를 창문에 던진 샤이와 성실히 동행한 관객은 마침내 그것을 안다. 소년들의 개성은 상이하지만 행위의 목적만큼은 공통된다. 부정하거나 회피하거나 분리하거나 표출함으로써 끊임없이 자신의 어둠을 처리하려는 것이고, 그렇기에 그들의 충동은 사실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과..

Drama 2026.01.10 0

시네마의 몸짓 _ 너는 나를 불태워, 마티아스 피녜이로 감독

# 0. 텍스트의 공백을 달콤쌉싸름하게 어루만지는 시네마의 몸짓 마티아스 피녜이로 감독,『너는 나를 불태워 :: Tú me abrasas』입니다. # 1. 체사레 파베제의 1947년 희곡 '레우코와의 대화' 중 '바다거품' 장을 각색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텍스트가 이미지로 변이 되는 과정에서 소멸한 언어가 현대적 육체를 얻어 재탄생되는 모습을 탐구하는, 말로만 들어도 골치 아픈 영화되시겠다. 시인 사포와 님프 브리토마르티스는 사랑과 죽음과 욕망에 대해 대화하는데, 피녜이로는 파베제의 정적인 텍스트를 시각적 음절로 분해한 후, 16mm 필름에 얹어 독서라는 행위 자체를 영화적 경험으로 번역하고 있다. 사포는 실연의 고통으로 바다에 몸 던진 시인, 브리토마르티스는 미노스의 추격을..

Drama 2026.01.04 0

괜찮을 거예요 _ 떠나는 사람은 꽃을 산다, 남소현 감독

# 0. 그래도 괜찮을 거예요. 우리 여기 살면서 그리워하는 마음을 지겹게 연습했잖아요. 남소현 감독,『떠나는 사람은 꽃을 산다 :: Those who leave buy flowers』입니다. # 1. 은하는 떠나는 사람이다. 베를린이란 도시를 떠나고, 7년이란 시간을 떠난다. 이젠 단짝이 되어버린 룸메이트, 그 자식과의 연애와 이별, 돌이켜보면 민망한 시행착오, 하릴없이 누워있었던 다리 기둥과, 아무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비밀스러운 장소, 이 모든 것이 익숙해질 수 있게 해 준 긴 시간까지 모조리 나서게 된 그녀가 떠난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이다. 떠나왔던 이유도, 떠나기 전의 생활도, 떠나게 된 이유도, 떠나고 난 이후도 알 수 없으니 중요하지 않다. 갑작스레 어디에도 속하지 ..

Drama 2026.01.02 0

한예리다 _ 봄밤, 강미자 감독

# 0. 한예리다. 강미자 감독,『봄밤 :: Spring Night』입니다. # 1. 국어교사였던 영경과 철공소를 운영하던 수환. 각자의 첫 결혼을 실패한 뒤, 알코올과 병으로 모든 것을 잃고 죽음과 마주한 시간을 지낸다. 친구의 결혼식에서 우연히 만난 둘은 어느새 서로의 상처를 응시하며 그저 함께할 뿐이다. 마침내 슬픔이 우리를 건질 것이니 눈물이여 흐르라. 상처의 끝에서 외는 두 사람의 사랑이 밤과 함께 흘러간다. 김수영의 동명 시 봄밤을 모티브로 함에도 시인의 생애나 4.19와의 연관성은 옅다. 희망적인 봄과 절망적인 밤이 접붙여진 아이러니에 취해, 시구 하나하나의 처절한 감상을 정직하게 곱씹어 외워나갈 따름이다. '애타는 마음'과 '무거운 몸'이 교차하는 허무한 공간, '피곤한..

Drama 2025.12.16 0

거울들 _ 피델리티, 니기나 사이풀라에바 감독

# 0. 금기를 어기는 욕망, 그 충실함을 시험하는 거울들 니기나 사이풀라에바 감독,『피델리티 :: Fidelity』입니다. # 1. 스스로 충실함(Fidelity)을 표방하고 있는 영화는 정작 불성실(Infidelity)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기만인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제목과 서사의 모순은, 이 모든 것이 충실함의 대상을 타인에서 자아로 이동시키려는 전복적인 텍스트임을 암시한다. 쉽게 말해, '당신은 배우자에게 충실한가, 아니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가' 되묻는 것이다. 문득, 부르주아 여성의 억압된 성적 판타지를 통해 계급과 도덕의 이면을 파헤쳤던 고전 세브린느(Belle de Jour, 1967)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루이스 부뉴엘의 그것이 몽환적인 판타지였던 것과 달리, 피..

Drama 2025.11.22 0

기본 예제 _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 0. 이젠 스스로 회의해 보세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 The Favourite』입니다. # 1. 기본적인 개념 정리는 끝났다. 송곳니, 알프스, 더 랍스터, 킬링 디어의 부조리에 비춰 당연하다 여겼던 인간 조건을 해부하는 방법론과 그 의미를 경험하는 것 말이다. 고약한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성실히 따라온 관객들은, 사회적 규범이나 인간 본성에 대한 냉소적인 회의를 통해 결함이 폭로되는 광경을 편히 즐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관객의 차례다. 자신의 관객들이 스스로 회의하길 바라는 란티모스는 기본 예제로서 이전까지의 논리적으로 통제된 세계와 정반대 되는 18세기 초 영국 궁정의 시대극을 가져온다. 여기 세 여자의 암투에 얹어 '욕망'이라는 관념을..

Drama 2025.11.16 0

Romance

more

그러니 인생에 부딪쳐봐 _ 아멜리에, 장 피에르 주네 감독

# 0. 마침내 사랑스런 상상의 문을 열어 현실의 박동을 되찾는다 장 피에르 주네 감독,『아멜리에 :: Amelie from Montmartre』입니다. # 1. 티스푼을 든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프랜치 여인. 장 피에르 주네의 아멜리에다. 사랑스러운 오드레 토투와 함께하는 영화의 즐거움은 사실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다. 우연으로 가득한 현실을 개인의 미적 질서 안으로 편입시키는 데에서 오는 평온함과 안도감이다. 관객은 시작부터 아멜리라는 대리인을 통해 세상을 재구성하는 연출가적 전능을 이양받는다. 크렘 브륄레의 단단한 표면을 숟가락으로 깨뜨리는 쾌감, 생 마르탱 운하의 수면 위로 물수제비 뜨는 순간의 정갈한 아름다움, 곡물 자루에 손을 푹 찔러 넣는 감각적 충만함. 영화는 세상에 흩뿌려..

Romance 2025.09.24 0

구원은 없어 _ 박쥐, 박찬욱 감독

# 0. 당신은 날 죽여도 후회할 거고 살려도 후회할 거야. 박찬욱 감독,『박쥐 :: Thirst』입니다. # 1. 최면술사 앞에 선 오대수는 고백한다. 우리는 규범으로 본성을 통제한 태양 같은 존재가 아닌, 본성이 이끄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짐승들이라고. 마침내 감독은 규범으로 본성을 통제할 수 없다 논증하는 것을 넘어 둘을 충돌시켜 존재를 붕괴시키기에 이른다. 박찬욱의 걸작, 박쥐다. 이전의 영화들이 외부의 시련, 감금(올드보이), 납치(복수는 나의 것), 살인(친절한 금자씨)으로 인한 비극이었던 것과 달리, 상현의 비극은 자기희생이란 내적 가치에서 발화한다는 점은 감독의 인간 탐구가 한층 깊어졌음을 의미한다. 오프닝에는 그 집요함이 가감 없이 묻어있다. 상현은 아프리카에서 ..

Romance 2025.09.20 0

모든 조롱의 신 _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우디 앨런 감독

# 0. 모든 자기기만을 조롱하다 끝내 자신마저 조롱해 버린 모든 조롱의 신 우디 앨런 감독,『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 Everyone Says I Love You』입니다. # 1. 그의 조롱에 성역은 없다. 뮤지컬의 형식을 빌려 내내 가녀린 척 사랑을 노래하지만 모조리 기망이다. 내내 뮤지컬은 감정적 동화 대신 분석적 태도를 요구하는 형식주의적 전략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장르의 허구성을 괴팍하게 폭로함으로써, 고전 할리우드로부터 오랫동안 세일즈 되어온 '낭만'이라는 신화의 구조적 결함을 까발리겠다는 비아냥이야말로 숨겨진 의의다. 그래서 뮤지컬 영화가 보장하는 핵심적인 쾌감, 숙련된 기교를 통한 감정 교양을 배반한다. 의 프레드 아스테어나 의 진 켈리 등으로 대표되는 고전 ..

Romance 2025.08.08 0

그 여자의 사정 _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레이철 램버트 감독

# 0.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어떤 사람들은 돌이 되고 싶다 답하기도 한다. 레이철 램버트 감독,『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 Sometimes I Think About Dying』입니다. # 1. 흐릿한 오리건의 해안 마을. 작은 사무실에는 여자 프랜이 일하고 있다. 정직하게 묘사되는 그녀의 삶은 평범보다 무료하고 권태보다 단조롭다. 사무실 컴퓨터 앞을 오가는 것이 전부인 그녀의 생활은 중성적인 색조와, 제한적인 광원, 폐쇄적인 시야, 단절적인 프레임, 넓은 헤드룸으로 두텁게 그려진다. 프랜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혼자라 느끼고, 다정한 동료들조차 그녀의 존재를 거의 인지하지 못한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그녀는 그렇게 불행해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

Romance 2025.06.02 0

기다리는 사랑의 빛과 어둠 _ 롤라, 자크 드미 감독

# 0.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 작가 이기주        자크 드미 감독,『롤라 :: Lola』입니다.     # 1. 진부한 표현이지만.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것이다. 고약한 사랑은 제멋대로 나타나 제멋대로 싹트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처지인지, 사랑받는 사람이 어떤 처지인지에도 관심은 없다. 우연히 들린 출장지에서, 우연히 걷던 길가에서, 우연히 찾은 서점에서 만난 사람과 언제든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당장 다음 출항지로 떠나야 하는 수병의 사정도, 급작스레 직장을 잃고 해외로 나가게 된 백수의 사정도, 7년씩이나 아내를 찾아올 수 없었던 남자의 사정도 아랑곳 않는다.  그때와 다른 시간에 만났더라면 우리의 사랑은 달랐을까. 그때와 다른 곳에서 시작했더라면 ..

Romance 2024.09.16 0

감독놀음 _ 은밀한 공범, 죠죠 히데오 감독

# 0. 평범한 소재로 비범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있지만,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내다 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죠죠 히데오 감독,『은밀한 공범 :: 恋のいばら』입니다. # 1. 은 수입사가 지어 붙인 이름입니다. 원제는 恋のいばら. 그러니까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군요. 참고로 영어 제목은 Thorns of Beauty인데요. 이쪽이 그나마 더 직역에 가까운 번역이기는 합니다. 실제 영화의 핵심은 '가시'로 은유된 각자의 마음에 있다는 면에서, 관계 중심적인 뉘앙스가 강한 '공범'이라는 우리말 제목은 썩 정밀해 보이지는 않죠. 양가적 감정에 놓인 두 여자의 갈등을 그린 작품입니다. 원제에 긍부정이 배치되는 두 개념을 접붙여둔 이유죠. 모모는 켄타로에게 집착과 파괴를 함께 느낍니다..

Romance 2024.03.30 0

도메크의 망원경 _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 0. 마그다의 정신을 들여다보는 도메크의 망원경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 A Short Film About Love』입니다. # 1. 어지간한 변태가 아니고서야 이름 외우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생소하신 분들도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나, 세 가지 색 시리즈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그 작품들 만든 동유럽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이죠. 30여 년 전, 성경의 십계를 주제로 각색 제작된 데칼로그(Dekalog)라는 폴란드 Tv시리즈가 있었는데요. 그중 6번째, 간음을 주제로 한 에피소드에 분량을 추가 개봉한 작품입니다. 특히 관음은 작품의 핵심적인 설정입니다. 멀리는 히치콕의 이창, 가까이는 ..

Romance 2024.03.04 0

Animation

more

반환점에 서서 _ 붉은 돼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0. 고향으로 돌아온 그를 본 아이들은 돼지, 붉은 돼지 아저씨라 불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붉은 돼지 :: 紅の豚』입니다. # 1. 잿빛 하늘 아래 전우들은 전부 죽었고, 운이 좋아 살아남은 그는 코를 잃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진 흉측한 얼굴. 가실 기미 없는 핏빛 단면을 하고서 고향으로 돌아온 그를 본 동네 아이들은 돼지, 붉은 돼지 아저씨라 불렀다. # 2. 어느덧 1992년. 1941년 제국주의 끝물에 태어난 그림쟁이, 영원히 하늘을 날 것만 같았던 소년의 나이도 오십을 넘었다. 시간은 벌써 그렇게나 흘러버린 것이다. 전쟁의 위험과 전체주의의 광기를 경고하고(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별의 두려움과 대화하는 법을 조언하고(이웃집 토토로), 어른이 된다는 것의 ..

Animation 2026.01.22 0

샌드박스 무비 _ 배트맨 닌자, 미즈사키 준페이 감독

# 0. 기상천외한 미즈사키 이야기 미즈사키 준페이 감독,『배트맨 닌자 :: ニンジャバットマン』입니다. # 1. 일본 망가의 캐릭터가 인격이라면, 북미 코믹스의 캐릭터는 플랫폼이다. 혹은 일본 만화를 선형적 스토리 라인의 RPG라 한다면, 북미 코믹스는 거대한 세계관 안에서 무엇이든 건설하고 파괴할 수 있는 샌드박스 게임이라 표현해도 좋다. 매 에피소드마다, 매 작가마다 캐릭터가 따로 놀기에 역사극과 시트콤의 차이라 이해해도 나쁠 건 없다.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일본 망가와 그로부터 영향받은 한국 만화에 익숙한 독자들이 유독 코믹스를 입문하는 데 버거워하는 이유다. 코믹스의 캐릭터명은 살아있는 인간의 이름이라기보다, '문명'이나 '심시티', 'GTA' 같은 모래상자의 네이밍에 ..

Animation 2025.12.06 0

로맨티시스트 _ 요수도시, 가와지리 요시아키 감독

# 0. 내일 걱정 없는 오늘 저녁의 노래 가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요수도시 :: 妖獣都市』입니다. # 1. 내일 걱정 없는 오늘 저녁의 노래. 이름 모를 누군가가 80년대 일본 시티팝을 듣고서 남겼다는 한 마디다. Stay with me. 일본의 부동산 버블 시기, 겪어보지 않은 사람조차 노스탤지어를 느낄 법한 그 희망적이면서 서정적이었던 시대의 정서를 대신하는 말로 이보다 더 근사한 표현이 있을까. 꿈꾸는 욕망은 모두 이룰 수 있고 바라는 쾌락은 모두 얻을 수 있는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의 도시.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이들은 그 걱정 없는 내일에 마음껏 몸을 던졌을 것이다. 드라마틱하게 쌓아 올려졌던 버블이 증명하듯 말이다. 하지만 세상엔 유난히 걱정 많은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

Animation 2025.11.10 0

내가 좋은걸요 _ 천년여우, 곤 사토시 감독

# 0. 그를 만나지 못해도 괜찮아요. 왜냐면 나는 그를 쫓아가는 내가 좋은걸요. 곤 사토시 감독,『천년여우 :: 千年女優』입니다. # 1. 감정엔 시제가 없다. 슬프다와 슬펐다를 기호로써 구별할 뿐 슬프다의 감정과 슬펐다의 감정은 구분할 수 없고, 단지 슬픔이란 원형만이 존재할 뿐이다. 감정엔 주어도 없다. 모든 감정은 독점적이기에 나의 슬픔 외에 너의 슬픔은 공존할 수 없고, 너의 슬픔을 전해 듣는 순간 나의 슬픔을 끄집어내어 너의 슬픔이라 이름 붙였을 뿐이다. 그래서 이야기엔 주인이 없다. 이야기는 그 자체로 온전하지 않고 각자에 의해 고유하게 재구성되기에 각각은 침범할 수도 도용될 수도 없는 것이다. 결국 사실과 허구를 구분할 수 없다. 내가 겪은 감정과 겪었던 감정과 들었던 ..

Animation 2025.10.16 0

거장의 일기장 _ 마녀 배달부 키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0. 매너리즘에서 깨어나 내일을 다짐하는 거장의 일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마녀 배달부 키키 :: 魔女の宅急便』입니다. # 1. 키키에게 비행은 호흡과 같다. 연원을 알 수도, 증명할 필요도, 걱정할 이유도 없는 순수한 것이다. 순진무구한 키키의 자신감은 재능과 자아를 동일시하는 미성숙함에서 비롯된다. '날 수 있는 나'이기에 특별하고, 그 특별함이 언제고 세상을 살아낼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 사랑스러운 어린 마녀의 성장기는 불세출의 천재 애니메이터, 펜 한 자루로 세상을 날아다닌다 믿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담담한 자기 고백이다. 코리코에서의 생활은 '재능은 그저 발현될 뿐'이라는 순진한 세계관을 허용하지 않는다. 재능이 생존을 위한 기능으로 전환되는 생경한 경험들이다. ..

Animation 2025.09.18 0

참사를 영화할 때의 고민들 _ 빅 피쉬, 박재범 / 김정석 감독

# 0.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박재범 / 김정석 감독,『빅 피쉬 :: Big fish』입니다. # 1. 설득은 형식에서부터 비롯된다. 이미 스톱모션의 물리적 노고가 지속적인 애도와 조응하며 은유로서 기능한다. 클레이의 투박한 질감과 인형의 미세한 떨림은 강력한 물질성을 전달하는데, 관객으로 하여금 고통의 무게를 간접적으로나마 감각하게 하는 효과다. 폭풍우 속에서 노를 젓고 밧줄을 당기는 엄마 요나의 행위는 스크린 뒤 애니메이터의 노동과 겹쳐지며, 잊을 수 없는 상실을 감당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시각적 묘사가 된다. 영화는 언어의 사용을 절제함으로..

Animation 2025.09.12 0

일단 토스 _ 모노노케 원혼의 재, 나카무라 켄지 감독

# 0. 일단 3장으로 토스하며 턴을 종료한다. 나카무라 켄지 감독,『모노노케 원혼의 재 :: モノノ怪 火鼠』입니다. # 1. 고작 한 편만으로 모든 개성이 지루해졌다 말하는 건 가혹하다. 여전히 강력한 스타일은 반가움과 흥분감을 순식간에 자아낸다. 오리엔탈적이면서도 사이키델릭한 오프닝 음악부터, 들불처럼 번지는 위기를 추적하는 속도감, 평면적 구도를 파헤치는 3차원적 운동성, 전통적인 질감과 현대적인 색감이 교접된 전위적인 미술 모두다. 다만 일련의 스타일은 물론, 오오쿠와 모노노케를 둘러싼 세계관, 약장수의 캐릭터성과 디테일 대부분 이미 아는 것이기에 감흥이 반감됨은 부정할 수 없다. 클라이맥스의 변신만 하더라도 이미 익숙한 모습을 재현하기에 감동은 전작만 못하다. 관객들이 영화에..

Animation 2025.08.22 0

Documentary

more

아이코닉 _ 스탑 메이킹 센스, 조나단 드미 감독

# 0. Hi. I've got a tape I want to play 조나단 드미 감독,『스탑 메이킹 센스 :: Stop Making Sense』입니다. # 1. 티나 웨이머스, 크리스 프란츠, 제리 해리슨 그리고 데이비드 번. 토킹 헤즈다. 전설적인 뉴웨이브, 포스트 펑크 밴드의 1983년 팬테이지스 극장 공연 실황은 독창적인 사운드뿐 아니라 프레젠테이션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탁월하다. 스스로 120만 달러를 조달한 독립 제작 공연은 스튜디오의 간섭 대신 순수한 역동성으로 가득하기에, 양들의 침묵, 필라델피아의 감독 조나단 드미가 밴드의 비전을 영화 언어로 번역함에 있어 타협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연출의 핵심은 자연주의적 몰입이다. 감독은 백스테이지 장면이나 인터뷰, 객석의 반응 ..

Art 2026.01.06 0

지킬 앤 하이드 _ 완벽한 이웃, 지타 갠브히르 감독

# 0. 당신의 사회는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지타 갠브히르 감독,『완벽한 이웃 :: The Perfect Neighbor』입니다. # 1. 살다 보면 이해가 가지 않아 의아한 규칙들을 더러 맞닥뜨리곤 한다. 그럴 때면 잠시 영악한 악마에 빙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규칙을 악용해 이익을 볼 방법이 없을까 추론해 보는 것인데, 겉으로 보기엔 다소 번잡해 보였던 '그 규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보다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도 참 머리가 아프겠군...이라는 류의 휘발적인 반성과 함께 말이다. 지타 갠브히르의 작품은 논쟁적인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법(Stand-your-ground Law)에 대한 비판적 스텐스의 사회고발 다큐멘터리이다. 영..

Social 2025.10.22 0

해변의 여인 _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아녜스 바르다 감독

# 0. 영화를 너무 많이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영화가 된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 The Beaches of Agnes』입니다. # 1. 80세 감독이 자신의 삶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 할 때, 관객은 으레 기대하는 그림이 있기 마련이다. 고즈넉한 흔들의자에 기대앉아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듯 차분히 과거를 돌아보거나, 적당한 영상 자료들과 지인들의 인터뷰를 모아 연대순으로 정리하는 모습 따위다. 문제는 그 80세 감독이 하필 아녜스 바르다라는 것이다. 빛나는 눈빛과 소녀의 표정을 지닌 그녀는 평생 그러했듯 관객의 지루한 예상을 그대로 허락할리 없다. 바람 부는 해변과 거울이다. 바르다는 자신을 찾아온 관객들에게, 과거를 직접 보여주는 대신 그 기억을 비춰볼 '..

Art 2025.10.10 0

어머니,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_ 보이지 오브 타임, 테렌스 맬릭 감독

# 0. 적막 속에서 이미 스스로 알고 있을 가장 근원적인 목소리에 귀 기울일 뿐이다. 테렌스 맬릭 감독,『보이지 오브 타임 :: Voyage of Time』입니다. # 1. 어떤 이는 카메라로 시를 쓴다. 트리 오브 라이프의 테렌스 맬릭이다. 2016년 베니스에서 처음 공개된 장편 다큐멘터리 보이지 오브 타임은 과연 명성에 걸맞다. 작품의 첫인상은 단연 이미지다.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진화를 재현한 모습은 예측가능한 스펙터클을 벗어난다. 압도적인 영상은 경이와 공포가 뒤엉킨 숭고의 감정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킨다. 성운의 폭발, 유기물의 형성, 공룡의 눈빛을 담아내는 장대한 시퀀스 앞에서 누구나 언어 이전의 순수한 시각적 경험에 잠길 것이다. 관객은 금세 저마다의 개성과 치열함을 잠시 ..

Scientific 2025.08.14 0

여왕의 노래 _ 어메이징 그레이스, 시드니 폴락 / 알란 엘리엇 감독

# 0. 없던 신앙심도 생기게 만드는 여왕의 음성 시드니 폴락 / 알란 엘리엇 감독, 『어메이징 그레이스 :: Amazing Grace』입니다. # 1. 1972년, 서른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이미 절정의 커리어를 달리고 있던 소울의 여왕은, 자신의 영혼의 고향, 가스펠로 회귀한다. 아레사 프랭클린.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하다는 누군가의 경탄처럼 그녀의 음성은 평범한 음악을 마치 종교적 설교로 변화시킨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이기도 한 찬송가 'Amazing Grace'를 부르는 순간. 익숙한 엄숙미와 대조되는 자유롭게 유영하는 플로우 끝에 청중을 압도하는 감정의 폭발은,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음악적 담대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실황 라이브를 고스란히 담은 다큐멘터리의 형식은 몰입을 크..

Art 2025.07.04 0

참극을 기록한다는 것 _ 밤과 안개, 알렝 레네 감독

# 0. 우리는 기록의 의미를 충분히 고민하고 있는 걸까 알렝 레네 감독,『밤과 안개 :: Night And Fog』입니다. # 1. 익숙한 것임에도 막상 정의를 내려보라 하면 쉽지 않은 말들이 있는데 '다큐멘터리' 역시 그러하다. 무언가를 진지하게 대하는 순간을 '다큐 찍는다' 말할 정도로 보편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훈련된 지식인이 아니라면 생각보다 정의를 내리기 쉽지 않다. 실재 세계를 기록하고 해석하는 영상 매체로서 사실성에 대한 지향과 윤리적 책임을 기반한다는 낮은 차원의 합의를 제외하면, 이후의 기록과 해석, 사실과 표현, 윤리와 미학 사이의 긴장 관계에 대해서는 각각 자의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모양새다. 다큐픽션을 창시한 것으로 평가되는 로버트 J. 플래허티는 현실세..

Historical 2025.06.18 0

무기수와의 대화 _ 희망을 꿰매는 사람들, 제니퍼 맥셰인 감독

# 0.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제니퍼 맥셰인 감독,『희망을 꿰매는 사람들』입니다. # 1. 미주리주 소재 최고 보안 등급 교도소. 모범수 일부에게는 매년 보호 시설 아이들에게 선물할 퀼트를 만들 자격이 허락된다. 다큐멘터리에는 작업하는 죄수들이 담담하게 묘사되지만 그것을 보는 마음은 생각만큼 편하지 않다. 인터뷰가 있을 때마다 죄질을 가늠케 하는 형량을 성실히 알려주기에 자연스레 미움이 생기지만, 그들의 겸허한 태도와 평온한 표정, 퀼트에 몰두하는 모습, 아이들의 감사편지는 그러한 미움이 온전히 정당한가 되묻는다. 만약 죄수라는 정보가 부재했다면 그저 평범한 기술자로만 보였을 것이고, 그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움트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통해 반성하며 ..

Social 2025.05.26 0

Series

more

비루한 당신의 노고에 건배 _ 흑백요리사 2

# 0. 늦은 밤. 오늘도 비루한 당신의 노고에 건배. 넷플릭스 버라이어티 시리즈,『흑백요리사 2 :: Culinary Class Wars Season 2』입니다. # 1. 흑백과 계급 운운한다는 것은 자칫 '위너'와 '루저'를 낙인찍는 것으로 비칠 수 있고, 이는 예능 프로그램에게 큰 부담일 수밖에 없기에 초기 제작진은 '유명'과 '무명'으로 대신하려 했다. 일례로 잔뜩 욕을 먹었던 시즌1의 장사 미션도 흑과 백을 잘 팔리는 유명가게와 안 팔리는 무명가게로 규정했기 때문이고, 인플루언서를 부른 것 역시 유명과 무명이라는 테마에서 파생된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이다. 하지만 20대 80의 비율로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흑수저들과 그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백수저들의 구도는 관객을 위너와 루저..

Drama 2026.01.16 0

여자 버리기 경쟁 _ 피지컬 아시아

# 0. 어느 팀이 가장 효율적으로 여자를 버릴 것인가 넷플릭스 버라이어티 시리즈,『피지컬 아시아 :: Physical Asia』입니다. # 1. 출연도 좋다. 다소 동남아시아권에 편중된 감은 있지만, 그래도 각기 다른 8개국 참가자 모두 매력적이다. 아모띠를 비롯해 전작에서 훌륭한 활약을 선보인 이들을 다시 섭외해 세계관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씨름선수 김민재나 크로스핏 최승연 같은 뉴페이스가 더해줄 신선함도 놓치지 않았다. 파퀴아오나 휘태커 같은 글로벌 스포츠 스타는 물론, 몽골 전통 씨름의 어르헝바야르, 터키 오일 레슬링의 레젭 카라 등 전통 스포츠 강자를 섭외, 단순히 범세계적 운동인 크루를 넘어 문화 교류의 정체성을 더한 것도 썩 영리하다. 곡예사 라그바오치르와 파쿠르 선수..

Action 2025.11.18 2

퐁당퐁당 _ 러브, 데스 + 로봇 시즌 4

# 0. 돌을 던지자. 애니메이션 앤솔로지『러브, 데스 + 로봇 시즌 4 :: Love, Death + Robots Vol. 4』입니다. # 1. 이쯤 되면 징크스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첫 번째 시즌의 성공, 두 번째 시즌의 혹평, 세 번째 시즌은 첫 시즌의 성공을 계승하며 반전을 거두었던 것에 반해, 네 번째 시즌은 두 번째 시즌의 단점을 답습하며 주저앉는 듯하다. 아이디어의 부재를 연성화된 표현들로 무마하려던 두 번째 시즌에서처럼 이번에는 귀여운 코미디, 만만한 판타지로 만회하려 한다는 인상이 지나치게 강하다. 물론 어떤 작품이 귀여움과 코미디로 승부를 보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이 엔솔로지가 이라는 것. 금기를 허용하지 않는 실험적인 세계관과 공격적인 플롯, 강렬한..

Animation 2025.05.20 2

죽거나 혹은 미치거나 _ 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 구스웍스 감독

# 0. 글리치 프로덕션(Glitch Productions)을 아시나요? 구스웍스 감독,『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 :: The Amazing Digital Circus』입니다. # 1. 닐 블룸캠프의 오츠 스튜디오 이후 오랜만에 스튜디오 소개글이다. 물론 하꼬 블로거 따위가 '소개'하기엔 지나치게 월클이지만 말이다. 글리치 프로덕션(Glitch Productions)은 다채롭고 개성적인 디자인, 매콤한 블랙 코미디, 재기 발랄한 스토리로 미래지향적인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호주 국적의 인디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초기작 (2019)와 (2021) 이후, 미국의 애니메이터 리암 빅커스(Liam Vickers)가 총괄로 합류한 (2021)으로 도약한 글리치는, 작년 또 다른 애니메이터 쿠퍼..

Animation 2024.06.28 0

하우프루빗 _ 포커페이스, 라이언 존슨 / 나타샤 리온 감독

# 0. 누가 범인인가 (who done it?)의 미스터리를 대신하는어떻게 범인을 밝힐 것인가 (how prove it?)의 서스펜스 라이언 존슨 / 나타샤 리온 감독,『포커페이스 :: Poker Face』입니다. # 1. Orange is The New Black을 본 사람치고 니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오뉴블을 제법 재미있게 본 저 역시 나타샤 리온은 썩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여유롭고 정겹고 온화하면서 동시에 세상에서 서너 발짝 떨어진 듯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특유의 톤이 매력적인 배우죠.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장르물로 만들어버리는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헤어스타일과 허스키한 목소리도 멋지구요. 다만 그녀의 캐스팅만을 근거로 작품을 고르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

Mystery & Thriller 2023.08.04 0

사이다의 성분 _ 피지컬 100, 사이렌 불의 섬

# 0. 왜 재미있는 거지? 넷플릭스 버라이어티 시리즈,『피지컬 100, 사이렌 불의 섬』입니다. # 1. 그놈의 K-타령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호들갑이 이해가 갈 정도로 영상 콘텐츠들의 글로벌 시장 확대가 두드러진 근년이긴 했습니다. 이젠 이야기하는 것조차 지치는 기생충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들 뿐 아니라 킹덤에서 시작해 오징어 게임의 메가히트로까지 이어진 웰메이드 드라마 시리즈,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가벼운 로맨스 드라마들도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요. 최근엔 예능까지 주목받는 듯한 양상이죠. 최근 BTS의 뷔를 섭외해 해외 시장에 도전 의지를 비친 바 있는 나영석 PD의 서진이네는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해야 할 겁니다. 그중에는 개인적으로도 흥미로..

Action 2023.06.06 0

엄숙주의의 울타리 너머 _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

# 0. 엄숙주의의 울타리를 호쾌하게 넘는 코미디의 힘 넷플릭스 모큐멘터리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 :: Cunk on Earth』입니다. # 1. 인류의 문명사를 2시간 3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앙상하게 핥아내는 모큐멘터리입니다. 문명 발생에서 시작해 종교, 문화, 근대화를 지나 세계 대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을 유럽인의, 보다 정확히는 영국인의 관점에서 편협하게 전개됩니다만 뭐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지들이 만든 거니까요. 처음엔 필로미나 컹크(Philomena Cunk)가 뭔가 싶었는데요. 코미디언 '다이앤 모건'의 부캐였더라구요. 얼핏 보고선 아이티 크라우드의 캐서린 파킨슨인 줄 알고 살짝 반가웠습니다만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선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찾아봤더니 컹크라는 부케로 ..

Comedy 2023.02.08 0

Bla-bla

more

선악과를 탐한 자의 추방과 교훈

# 0. 간교한 뱀의 혓바닥을 단호히 뿌리쳐야 한다. 『선악과를 탐한 자의 추방과 교훈』 # 1. 태초에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의 모든 풍요를 허락했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큼은 엄격히 금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게 되리라는 경고였다. 허나 간교한 뱀이 나타나 그것을 먹으면 죽는 것이 아니라 눈이 밝아져 신과 같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 유혹했다. 그 말이 탐스러웠던 하와와 아담은 결국 금기를 어겼고, 곧 자신들이 벌거벗었음을 깨달아 수치심에 몸을 숨겼다. 신의 추궁에 아담은 여자가 주어 먹었다 핑계를 댔고, 하와는 뱀이 꾀어 먹었다 변명했다. 이에 신은 뱀에게 배로 기어 다니며 흙을 먹는 저주를, 하와에게는 출산의 고통을, 아담에게는 평생..

Bla-bla-bla 2025.12.12 0

글쎄, 당신들은 엘리트가 아니라니까

# 0. 개나 소나 학사, 취업 안되면 석사 하는 시대 『글쎄, 당신들은 엘리트가 아니라니까』 # 1. 물론 영화가 엘리트이던 시절도 있었다. 무릇 예술은 사치스러운 것이고, 안 그래도 돈 많이 잡아먹는 영화를 누린다는 건 선택받은 누군가들만의 특권이었음에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1990년대 초까지 겨우 30%대에 지나지 않았던 대학진학률은 이후 급속히 늘어 00년에는 70%, 08년이면 80%를 육박한다. 말인즉 2000년대 언저리까지만 하더라도 20대조차 절반 남짓, 30대는 30~40% 정도가 간신히 고등 교육을 받았던 반면, 2020년대에 이르러 20대와 30대 전반에 걸쳐 75% 이상이 대학 교육을 받았다는 의미다. 물론 학력과 교양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

Bla-bla-bla 2025.10.26 0

캐릭터 위기에 봉착한 스타 사업가의 오너리스크

# 0. 알려주고 도와주는 캐릭터에서 지적하고 평가하는 캐릭터로 『캐릭터 위기에 봉착한 스타 사업가의 오너리스크』 # 1. 연일 부정적 기사가 이어진다.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언론의 상투적 비방이라기엔 커뮤니티의 반응도 유튜브 댓글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사업가 겸 방송인 백종원 씨다. 영화를 즐기다 보니 인간사 내러티브의 측면에서 보는 못된 관성이 있는 데 이번엔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백종원의 인지도는 과 함께 시작되었다 해도 틀리지 않다. 초기의 백종원은 철저하게 '알려주고 도와주는 캐릭터'로 기억한다. 가난한 연인들에게 깻잎으로 모히또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이었고, 자취생에게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이었으며, 한 푼..

Bla-bla-bla 2025.02.06 2

갈등을 배우지 못해서

# 0. 한국인에게 당할 줄 몰랐다. 『갈등을 배우지 못해서』 # 1. 가 연일 화제다. 이후 오랜만에 만나게 된 요리 예능은 필자 역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20명의 스타셰프와 80명의 은둔고수가 뒤엉켜 자웅을 겨룬다는 콘셉트의 버라이어티 쇼는 걸출한 캐스팅, 컬트적 캐릭터, 각각의 드라마에 힘입어 폭발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다만 1차 공개분(1회~4회)까지만 하더라도 호평 일색이었던 것과 달리 점점 비판도 늘어가는 듯한 모양새다. 2차 공개분(5회~7회)의 팀전에서 드러난 다소의 혼란을 지나, 3차 공개분(8회~10회)의 장사 미션룰은 인간성을 기망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크게 받고 있는 데, 불쾌감을 표하는 사람들의 지적은 개인적으로도 무리 없이 동의하게 된다...

Bla-bla-bla 2024.10.04 0

천사의 속삭임

# 0.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울어라, 영화관 혼자 울 것이다. 『천사의 속삭임』 # 1. 배우 최민식은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특유의 소탈한 말투로 나라도 티켓값이 부담스럽겠다 말한다. 녹록지 않은 관객의 주머니 사정을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그럼에도 만드는 이들이 작가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지적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평론가 이동진은 을 비평해 달라는 팬들의 짓궂은 농담에 살려달라는 유머러스한 답변을 남겼다. 충성도 높은 수많은 어린이 관객들과 컬트적 현상에 호기심을 느낀 몇몇의 일반 관객층에 힘입어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도전하는 하츄핑에 대한 영화팬들의 반응은 유쾌하면서 일견 자조적이다. 얼핏 무관해 보이는 두 사건은 결국 영화계의 위기를 접..

Bla-bla-bla 2024.08.22 0

20세기 소년의 회상

# 0. 2024년 3월 1일. 조산명(鳥山 明) 선생이 향년 68세의 일기로 타계하셨습니다. 『20세기 소년의 회상』 # 1. 그날따라 유난히 낯설게 느껴지는 서재. 먼지 소복한 귀퉁이에서 묵혀지고 있던 드래곤볼을 담담히 읽어나갔죠. 인이 박힐 정도로 많이도 봤던 익숙한 그림체와 익숙한 캐릭터와 익숙한 대사들은 책을 읽는 건지 책 위를 미끄러지는 건지 모를 정도로 책장을 넘기게 만듭니다. 둔하게 읽으리라는 다짐이 무색하게도 한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야속한 42권의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양반의 비보임에도 많은 분들이 소감 하시듯 참 헛헛하더군요. 문화의 본질이란 결국 연결인 걸까요. 그러고 보면 영화 개봉을 겸해 다시 읽은 슬램덩크도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데..

Bla-bla-bla 2024.03.26 0

야만의 세월, 도마 위에 오른다는 것

# 0. 배우 이선균 씨가 향년 4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야만의 세월, 도마 위에 오른다는 것』 # 1. 이원석 감독의 를 이야기하며 연기 정말 잘한다 감탄했었는데요. 그것이 마지막 코멘트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제와 구태여 사건의 추이를 값싸게 나열할 생각은 없습니다. 고인의 사생활에 대해 가타부타 윤리적 가치판단을 한다거나, 수사도 종결된 마당에 혐의와 관련된 가치판단을 할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저 쓸쓸한 마지막에 '헛헛하니 아쉽다' 정도의 끝인사를 놓아두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사실 보름 전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글을 쓸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것이 소위 어그로를 끌어 검색량을 늘리기에는 나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약간의 텀을..

Bla-bla-bla 2024.01.0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