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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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 _ 고백,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 0. 보이는 죄와 보이지 않는 악의 대면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고백 :: 告白 コンフェッション』입니다. # 1. 영화의 제목은 고백이고, 고백하는 것은 죄이니,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영화는 죄책감에 관한 영화라 이해해도 무리는 없다. 인간 내면을 안에서부터 파먹어 들어가는 이야기이자, 그것을 양심과 관련된 드라마보다 호러의 방향으로 해석한다는 면에서 로버트 애거스의 도 일부 연상되는 데, 로버트 패틴슨의 고뇌는 비장하고 철학적이었던 반면, 이쿠타 토마의 그것은 장르적이고 무엇보다 윤리적이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산. 죽음을 직감한 지용이 살인을 털어놓으며 영화는 시작된다. 친구 사유리에 대한 살인 고백은 순식간에 그를 살인자로 규정하게 만들고, 곁에서 불안에 떠는 아사이를 잠재적..

Mystery & Thriller 2025.10.12 0

해변의 여인 _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아녜스 바르다 감독

# 0. 영화를 너무 많이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영화가 된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 The Beaches of Agnes』입니다. # 1. 80세 감독이 자신의 삶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 할 때, 관객은 으레 기대하는 그림이 있기 마련이다. 고즈넉한 흔들의자에 기대앉아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듯 차분히 과거를 돌아보거나, 적당한 영상 자료들과 지인들의 인터뷰를 모아 연대순으로 정리하는 모습 따위다. 문제는 그 80세 감독이 하필 아녜스 바르다라는 것이다. 빛나는 눈빛과 소녀의 표정을 지닌 그녀는 평생 그러했듯 관객의 지루한 예상을 그대로 허락할리 없다. 바람 부는 해변과 거울이다. 바르다는 자신을 찾아온 관객들에게, 과거를 직접 보여주는 대신 그 기억을 비춰볼 '..

Art 2025.10.10 0

Mystery & Thr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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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 _ 고백,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 0. 보이는 죄와 보이지 않는 악의 대면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고백 :: 告白 コンフェッション』입니다. # 1. 영화의 제목은 고백이고, 고백하는 것은 죄이니,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영화는 죄책감에 관한 영화라 이해해도 무리는 없다. 인간 내면을 안에서부터 파먹어 들어가는 이야기이자, 그것을 양심과 관련된 드라마보다 호러의 방향으로 해석한다는 면에서 로버트 애거스의 도 일부 연상되는 데, 로버트 패틴슨의 고뇌는 비장하고 철학적이었던 반면, 이쿠타 토마의 그것은 장르적이고 무엇보다 윤리적이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산. 죽음을 직감한 지용이 살인을 털어놓으며 영화는 시작된다. 친구 사유리에 대한 살인 고백은 순식간에 그를 살인자로 규정하게 만들고, 곁에서 불안에 떠는 아사이를 잠재적..

Mystery & Thriller 2025.10.12 0

신화를 살해하다 _ 킬링 디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 0. 고대의 겸허한 비극신화를 가져와 현대의 오만한 낙관신화를 살해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킬링 디어 :: The Killing of a Sacred Deer』입니다. # 1.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란 '당연한 무언가를 고통스럽게 회의하는 것'이다. 혹자는 그의 영화를 부조리하다 감상하곤 하지만 타당하지 않다. 그는 자명하다 믿는 문명과 규율을 극단적 조건에 내던져 원초적 본성을 지극히 논리적 귀결로 증명할 뿐이다. 전작들이 언어의 울타리에 갇힌 인식의 감옥(송곳니)이나, 사랑과 충돌하는 시스템의 규율(더 랍스터)을 탐구했다면, 킬링 디어는 그 논쟁의 차원을 형이상학적 영역까지 확장시킨다. 지독하게 위생적인 합리적 현대 사회라는 성스러운 사슴의 심장에, 고대 비극 라는 독..

Mystery & Thriller 2025.09.08 0

균형과 타협의 코지 드라마 _ 목요일 살인 클럽,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

# 0. 스릴 대신 코지함을, 플롯 대신 캐릭터를, 개성 대신 보편성을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목요일 살인 클럽 :: The Thursday Murder Club』입니다. # 1. 저런 곳에서 노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환상적인 은퇴 공간, 쿠퍼스 체이스는 '코지 미스터리'를 구현하기 위한 완벽한 무대다. 잘 가꿔진 정원과 안락한 공동체의 풍경은 관객에게 이 이야기가 실존적 공포나 사회 고발이 아닌, 안전지대에서 즐기는 유희가 될 것임을 보증한다. 공간은 그 자체로 연이은 살인 사건이란 소재의 무게를 과감히 덜어내고, 장르가 추구하는 특유의 안락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본론에 앞서 캐릭터와 배우의 존재감 역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헬..

Mystery & Thriller 2025.09.06 0

아스라한 표정 _ 밤은 늘 찾아온다, 벤저민 카론 감독

# 0. 하룻밤 사이 모든 것을 처분당한 사람의 아스라한 표정 벤저민 카론 감독,『밤은 늘 찾아온다 :: Night Always Comes』입니다. # 1. 기대보다 대담하다. 한계에 내몰린 여인의 24시간을 타이트하게 추적하고 있지만, 아래론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신랄하고 자조적인 비난이 짙게 흐른다. 단적으로 주인공은 내내 불행함에도 비극은 그녀의 선택이나 실패에 기인하지 않는다. 철저히 외부의 경제 시스템, 내부의 가족 구조, 지울 수 없는 과거와, 거절할 수 없는 유산이 공모한 끝에 필연적으로 귀결될 뿐이다. 감독은 치열하게 무기력한 리넷을 통해 모든 인간적 가치가 자본 논리 앞에 무방비하게 청산당하는 과정을 나열한다. 그 끝에 남은 것은 해방이 아닌 존재론적 파산일 뿐임을 ..

Mystery & Thriller 2025.08.20 0

일렁이는 물결 _ 스위밍 풀, 프랑수아 오종 감독

# 0. 아시발글 프랑수아 오종 감독,『스위밍 풀 :: Swimming Pool』입니다. # 1. 제목은 주인공의 직업도, 두 여자 사이의 긴장도, 흥미로운 반전도, 주요 공간인 별장도 아닌 수영장이다. 굳이 강이나 바다가 아닌 수영장인 것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렁이는 수영장 물속에서 헤엄치는 사람과 내려다보는 시선은 작품을 시각적으로 정의하는 구도다. 고정되지 않고 깊이를 감각할 수 없는 이미지는 불규칙하거나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시선과 인식을 왜곡한다. 오프닝은 거의, 아니 모든 영화들에서 중요하다. 특히 자기주장이 확고한 몇몇의 독립영화들은 마치 이 장면만 보고 돌아가도 좋다는 듯 강렬한 이미지를 투사하려 애쓴다. 감독은 탁한 런던의 강물을 프레임 가득 채운 것에..

Mystery & Thriller 2025.07.24 0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 _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

# 0. 자신만만하지 않았어야 했다. 박수받지 않았어야 했다. 로맨틱하지 않았어야 했다.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 Tinker Tailor Soldier Spy』입니다. # 1. 스마일리는 자신만만하지 않았어야 했다. 적어도 결말에서 박수받진 않았어야 했다. 모든 면에서 안티-제임스 본드적인 첩보 영화 는, 알 수 없는 시대 속에서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개인의 무력함을 그린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 피와 아가 명확한 시절은 2차 대전이 막을 내리며 끝났다. 1973년, 냉전은 모두가 모두를 신용할 수 없고 모두가 모두에게 기망할 수 있는 위선의 시대, 도덕적 모호성과 냉소주의의 시대다. 영국에게 미국은 겉보기엔 동맹이지만 자신들의 ..

Mystery & Thriller 2025.07.08 0

한탕 주의 _ 유마 카운티의 끝에서, 프란시스 갈루피 감독

# 0. 죽은 사람들의 한탕주의(主義)와 살아남은 사람의 한탕 주의(注意) 프란시스 갈루피 감독,『유마 카운티의 끝에서 :: The Last Stop in Yuma County』입니다. # 1. 영화는 시작부터 서부극의 문법에 충실하다. 벌판 한가운데 외딴 건물은 서부극 특유의 황량함을 세팅한다. 주요 무대인 레스토랑은 살롱을 계승한 공간이다. 둔탁한 미닫이문이 열리고 문 위에 달린 종이 울릴 때면 마치 총잡이가 살롱 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듯한 인상을 주는 데, 그럴 때마다 미리 자리한 손님들이 외부인을 경계하는 구도는 서부극의 전형적인 긴장감을 정석적으로 조성한다. 바 형태의 카운터를 중심으로 몇몇의 인물들이 대치하거나 흩어지는 활용 또한 서부극의 공간 연출을 답습하는 것이다. 테이..

Mystery & Thriller 2025.05.08 0

Ho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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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인 호러 _ 페브러리, 오즈 퍼킨스 감독

# 0. 문학적인 호러 영화를 차분히 읽어나가는 즐거움 오즈 퍼킨스 감독,『페브러리 :: February』입니다. # 1. 건조한 호러의 원제는 The Blackcoat's Daughter. 주인공 캐서린(캣)을 블랙코트의 딸이라 한다면 이때의 블랙코트는 누구를 이르는 걸까. 무난하게는 악마를 생각할 수 있다. 부모의 부재로 인한 극심한 허무와 고독 속에서 소녀는 유일하게 말 걸어오는 미지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서늘한 새벽, 정체 모를 실루엣을 아버지라 부르는 도입이다. 이후 캣은 악마의 목소리에 이끌려 살인하고 제물을 바치는 데, 몇몇의 순간 섬뜩하게 웃는 표정은 마치 다정한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딸처럼 보인다. 9년 후, 조앤이 되어 다시 학교로 돌아온 결말이란 떠나버린 어둠의 아..

Horror 2025.09.02 0

인과의 감옥, 회귀의 지옥 _ 이도공간, 나지량 감독

# 0. 편집증적 인과의 감옥, 폐쇄적인 회귀의 지옥 나지량 감독,『이도공간 :: 異度空間』입니다. # 1. 관객은 종종 영화 외적인 것들에 포획되곤 한다. 일례로 시대적, 역사적 배경에 과도하게 천착하는 경우다. 아일랜드 영화를 볼 때면 끊임없이 대기근에서 연원을 찾아버릇한다거나, 스페인 영화를 볼 때면 내전 혹은 스페인 독감과의 연결성을 하릴없이 점검하는 식이다. 한편 어떤 영화를 촬영할 당시의 감독이나 배우의 개인사와 연결 짓는 경우도 허다하다. 촬영당시 감독이 이혼 소송 중이었다거나 배우의 절친이 사고를 당했다거나 하는 식의 에피소드는 영화를 보는 데 있어 그와 관련된 흔적을 반복적으로 찾게 만든다. 90년대 전후 홍콩 영화들은 대표적인 것으로, 그것을 보는 관객들은 관성적으로..

Horror 2025.08.06 0

멜랑콜릭 호러 _ 언데드 다루는 법, 테아 비스텐달 감독

# 0. 두려운 상실 앞에 미련하지 않을 수 있을까 테아 비스텐달 감독,『언데드 다루는 법 :: Handling the Undead』입니다. # 1. 스스로 멜랑콜릭 호러(Melancholic Horror)를 생각했다 고백하는 것처럼 젊은 노르웨이 감독의 영화는 우울하고 서정적인 드라마다. 되살아나 움직이는 시체들은 부두신앙적 좀비라기보다는 문자 그대로 반(反)-죽음적인 존재들이다. 그들은 바이러스나 재앙의 증상으로 나타난 위협적 존재가 아닌 애도의 과정을 시각화한 것에 가깝기에 대부분의 시간 동안 폭력적이라기보다는 비참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영화의 제목 Handling the Undead는 문자 그대로 '죽음에 반하는 것'을 다루는 방법이라는 의미고, 실제 영화에서 진정 다루어지는 ..

Horror 2025.07.10 0

롱 리브 더 뉴 플래시 _ 비디오드롬,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 0. 40년 전 바디 호러가 시시하게 느껴진다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비디오드롬 :: Videodrome』입니다. # 1. 그 영화 속에서 죽은 사람은 명백히 나의 엄마가 아니다. 심지어 죽은 그 사람은 배우가 연기하는 것일 뿐 실제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 나는 오롯이 슬프다. 충분히 감정적으로 고조된 몇몇의 순간엔 주체할 수 없다는 듯 오열하기도 한다. 적어도 영화를 몰입해 보는 동안 현실과 창작은 구분할 수 없다는 뜻이고, 이는 다른 관객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이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공감능력을 적극적으로 개발한 진화의 산물이라 주장한다. 한편 어떤 이는 미디어의 등장과 발전 속도에 맞춰 인지체계가 충분히 진화하지 못한 탓이라 설명하기도 한..

Horror 2025.05.22 0

노스페라투의 신부 _ 노스페라투, 로버트 에거스 감독

# 0. 외로운 우리는 죽음을 결심하지 못하기에 두렵고, 그래서 슬프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노스페라투 :: Nosferatu』입니다. # 1. 혹시 그런 적 있을까. 어둡고 고요한 밤 익숙한 잠자리에 누워 잠에 들려던 찰나. 스스로 내는 한 모금 한 모금의 숨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죽어가고 있음을 선명히 자각하는 경험 말이다. 사랑하는 부모와 친구와 가족 모두 필연적이고 불가역적인 이별에서 벗어날 수 없고, 마침내 나 역시 죽음을 눈앞에 둔 10초 전, 9초 전, 8초 전에 반드시 도달해 그 순간을 선명히 느끼게 될 것이라는 공포. 그럴 때면 두려움에 번쩍 몸을 일으켜 방을 배회하며 스스로에게 간절히 요구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벗어날 수..

Horror 2025.04.26 0

게으르고 지루하다 _ 서브스턴스, 코랄리 파르자 감독

# 0. 중독된 것은 미모도 인기도 파괴도 아닌 지적인 게으름 코랄리 파르자 감독,『서브스턴스 :: The Substance』입니다. # 1. 푸른색 배경에 계란 하나. 노른자에 주사를 꽂자 분열하더니 둘로 나뉜다. 나란히 놓인 노른자 두 개와 흰자의 실루엣은 무언가의 얼굴처럼 보이는데, 그것의 정체는 알 수 없으나 은연중 불쾌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작 서브스턴스의 오프닝이다. 영화는 도입에서 경고하듯 강렬한 이미지를 난사하는 방식으로 일관한다. 비슷한 주제의식을 미리 다뤘던 단편 와는 썩 대조적인 시도다. 쏟아지는 이미지 속에서 함의를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비단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모든 프레임들, 이를테면 광고판이나, 액자, 창문, 통로, 주요하게는 거울까지 모두 각..

Horror 2025.03.08 0

부끄부끄 _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

# 0. 부끄부끄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오퍼나지 비밀의 계단 :: The Orphanage』입니다. # 1. 물론 제작자의 명성이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오히려 노련한 관객들은 수상할 정도로 스타 제작자의 이름값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에 강한 경계심을 내비칠 정도다. 그럼에도 몇몇의 작품들은 왜 저 양반이 이 영화를 선택한 건지 알겠다 싶기도 한데, 스페인 감독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의 데뷔작은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고아원(Orphanage)에서 펼쳐지는 잔혹 동화를 특유의 서정성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아들을 찾아 헤매는 간절한 어머니의 이야기로, 나름 호러로 분류됨에도 불구하고 휘발적인 몇몇의 효과에 의존하는 대신 진중하게 ..

Horror 2025.02.2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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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의 출현 _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김민하 감독

# 0. 괴짜의 출현은 언제나 옳다. 김민하 감독,『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 Idiot Girls and School Ghost』입니다. # 1. 업계 전설이 되어버린 의 장준환이나 의 정범식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안국진의 , 봉준영의 같은 스타일리시한 영화들도 충분히 반갑다. 유재선의 이나 이정홍의 , 이옥섭의 는 물론, 이젠 체급이 달라져 버린 윤가은의 이나 나홍진의 처럼 믿을 수 없는 완성도의 작품들도 있었고, 남동협의 나 김다민의 처럼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작품들도 좋다. 김민하 감독의 데뷔작은 그중에서도 신정원의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데, 그의 세계가 엉뚱하고 개구진 소년의 것이었다면, 김민하의 것은 한결 귀엽고 발랄한 소녀 감성에 가까워 보인다. 어쨌든 ..

Comedy 2025.09.28 0

안타까운 거리감 _ 암스테르담, 데이비드 O. 러셀 감독

# 0. 숭고한 주제를 현란한 재능으로 윽박지른다.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암스테르담 :: Amsterdam』입니다. # 1. 1930년대 미국, 파시스트 쿠데타 음모 '비즈니스 플롯'을 다루지만 정작 주인공은 스메들리 버틀러가 아니다. 스필버그가 링컨의 고뇌에 비춰 시대정신을 응축했던 것과 달리, 데이비드 O. 러셀은 허구의 아웃사이더들을 내세워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신음하는 개인에게로 카메라를 돌린다. 버트는 전쟁으로 육신과 시력을 잃고 전우들의 망가진 얼굴을 재건하는 의사, 밸러리는 상류층 가문의 억압을 피해 전쟁의 파편을 모으는 예술가, 해럴드는 평생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 흑인 변호사다. 이들은 각각 전쟁의 상처, 사회적 억압, 인종적 차별이란 시대의 폭력을 대변하고 있고,..

Comedy 2025.09.10 0

시네마틱 르포르타주 _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테리 길리엄 감독

# 0. 곤조 저널리즘의 곤조는 의외로 사람 이름이다. 테리 길리엄 감독,『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 Fear And Loathing In Las Vegas』입니다. # 1. 호오와 성패는 별개다. '마음에는 들지만 망할만하다'라는 평은 생각만큼 희소한 감상이 아니다. 그 이름부터 괴팍한 다. 스스로를 마약에 내던진 괴짜 기자의 이야기는 마치 그 자체로 르포르타주와 같다. 어지러운 영화의 감상이란 아이러니하게도 감독이 제시하는 논거를 착실히 따라가는 지적인 작업들이다. 괴기한 시청각적 요소들은 하나의 목적, 1960년대 이상주의가 파산한 폐허에 남겨진 허무주의를 몸소 겪으며 취재하는 것에 소집된다. 주인공은 저널리스트 라울 듀크와 변호사 닥터 곤조다. 진실(Truth)과 정의(J..

Comedy 2025.08.18 0

성공한 자의 안식년 _ 아메리칸 셰프, 존 파브로 감독

# 0. 스스로 실천해 증명한 지극히 영악한 처세술 존 파브로 감독,『아메리칸 셰프 :: Chef』입니다. # 1. 아메리칸 셰프는 기분 좋은 영화다. 독창적이고 도전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시스템의 톱니바퀴로 전락한 한 셰프가, 원초적 노동 행위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이야기. 마침내 일과 가족, 사회적 성공까지 쟁취한다는 서사를 친근하고 낭만적인 화술로 그린다. 영화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따뜻한 쿠바 샌드위치와 닮아서, 내내 각각의 재료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음식과 같은 만족스러운 포만감을 선사하는 듯하다. 그러나 뒷맛은 생각만큼 깔끔하지 않다. 능숙하게 조리된 낙천적 위로 이면에 그것이 과연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인가 반문하게 되기 때문이다. 주인공 칼 캐스퍼의 재기는 누구나의 성공담..

Comedy 2025.08.12 0

연기의 부재 _ 총알탄 사나이 시리즈, 데이빗 주커 감독

# 0. 코미디는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데이빗 주커 감독,『총알탄 사나이 :: The Naked Gun』입니다. # 1. 종종 노골적인 코미디는 일시적이고 휘발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웃음의 유효기간은 다른 장르 경험보다 짧기에, 비평을 논하기엔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지는 식이다. 그러나 몇몇의 뛰어난 영화들은 통념을 극복하기도 하는데, 는 그중 하나로서 손색이 없다. 위대한 의 정신을 이어받은 시리즈는, 영화가 스스로의 문법과 관습을 해체하고 전복시켜 코미디의 활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를 실증한다. 수많은 관객들을 매료시킨 슬랩스틱의 소란스러움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것임에 분명하나, 충분히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아래 깔린 형식주의 미학을 생각해 보는 것도..

Comedy 2025.08.10 0

아버지의 회고록 _ 페니키안 스킴, 웨스 앤더슨 감독

# 0. 허구를 신앙하며 비행하던 아버지가 분주히 추락을 되돌아보며 읽어나가는 동화적 회고록 웨스 앤더슨 감독,『페니키안 스킴 :: The Phoenician Scheme』입니다. # 1. 호화 전용기에 앉아 독서 중인 베니시오 델 토로의 이름은 아나톨 자자 코다. 그는 여섯 번이나 비행기 추락을 경험하고도 살아남은 인물인데, 여섯 번의 암살보다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일곱 번째 비행에 나섰다는 점이다. 그는 거침없는 정적들의 흉악한 음모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날았다 추락하길 반복하는 사람이고, 이례적인 직선적 첩보 스릴러는 이 겁 없는 남자를 탐구하는 코미디 드라마다. 잿빛 슈트와 거의 비슷한 색깔,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새겨진 전용기는 그 자체로 자자 코다를 은유한다. 따라서 영화의..

Comedy 2025.07.18 0

당신인가요 _ 시티라이트, 찰리 채플린 감독

# 0. "He is beyond praise because he is the greatest of all. What else can one say? The only filmmaker, anyway, to whom one can apply without misunderstanding that very misleading adjective, ‘humane’… Today one says Chaplin as one says Da Vinci—or rather Charlie, like Leonardo." Jean-Luc Godard 찰리 채플린 감독,『시티라이트 :: City Lights』입니다. # 1. 인생영화라는 말이 그렇게 고까웠던 시절이 있었다. 어떻게 두어 시간 남짓의 영화 한 편이..

Comedy 2025.07.06 2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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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쩡 _ 킬러들의 비행, 제임스 매디건 감독

# 0. 결국 문제는 애매하고 어정쩡한 스텐스다. 제임스 매디건 감독,『킬러들의 비행 :: Fight or Flight』입니다. # 1. 비행기 안에서 킬러들이 떼싸움을 벌인다. 라는 시놉시스를 읽고 대단한 이야기를 기대한 사람이 뭐 얼마나 있을까. 간결한 오프닝은 이후 90분에 대한 예상을 금세 확신으로 바꾼다. 상황을 희화화하는 클래식 음악, 과격한 폭력과 고어한 표현, 크게 휘두르는 카메라와, 관심 없다는 듯 뮤트 된 음성은 액션 덩어리로서의 정석적인 첫인사다. 제각각 따로 노는 난잡한 캐릭터들의 과거나 서사의 개연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니 이 난장판 같은 액션의 유희만 즐겨달라는 노골적인 요청이다. 숱한 액션 코미디들이 그러하듯 킬러들의 비행 역시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려 하..

Action 2025.09.22 0

켄트 17 _ 슈퍼맨, 제임스 건 감독

# 0. 슈퍼맨은 왜 다시 시작되어야 하는가. 제임스 건 감독,『슈퍼맨 :: Superman』입니다. # 1. 20세기는 끝났다. 더 이상 명쾌한 이상주의는 없다. 영화는 의심 없는 선과 절대적 능력을 상징하던 결벽증적 설원에서 익숙한 영웅을 쓰러트리며 시작된다. 개에게 끌려 퇴각하는 장면은 영화가 탐구할 영웅의 위치가 더 이상 하늘 위가 아닌 고뇌하는 지상에 있음을 명확히 한다. 그래서 '고독의 요새'의 디자인은 흥미롭다. 기하학적 순수성의 요새는 마치 추락한 미사일과 닮았고, 이는 희망의 결정체가 아닌 파괴와 실패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양가적 공간임을 암시한다. 절대적 힘이 가진 구원과 재앙의 양면성. 오래도록 배트맨이 전담해 온 그 불안정한 정체성이야 말로 새로운 슈퍼맨의 출발점인..

Action 2025.09.16 0

호쾌하고 이쁘장하다만... _ 발레리나, 렌 와이즈먼 감독

# 0. 스타일과 이미지를 위해 각본을 내다 버린 익숙한 렌 와이즈먼 렌 와이즈먼 감독,『발레리나 :: Ballerina』입니다. # 1. 성공적인 프랜차이즈의 스핀오프는 두 가지 상반된 기대를 짊어진다. 하나는 원작의 세계를 충실히 계승하여 팬들의 향수를 만족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별 작품으로서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든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균형을 잃는 순간, 평가는 원작의 영광에 기생한다는 멸시와 함께 자유낙하하기 십상이니 쉽지 않은 일임엔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의 스핀오프 발레리나는 균형 잡기에 실패한 듯한 모양새다. 원작의 외피를 부지런히 흉내 내고 있지만, 그 안에 흐르던 냉소적인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끝내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존 윅 ..

Action 2025.08.16 0

이의있음 _ 아토믹 블론드,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

# 0. 연기가 좋았다는 건, 글쎄...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아토믹 블론드 :: Atomic Blonde』입니다. # 1. 특정 인물의 역할에 몰입해 그 인물의 생각, 감정, 행동을 자신의 신체와 목소리를 통해 재현하는 예술 행위. 연기는 정의에서부터 그러하듯 독립적일 수 없고, 따라서 모든 연기의 결괏값은 연기하려는 인물의 설득력에 연동된다. 아무리 좋은 연기자라 하더라도 완전히 망가진 캐릭터를 뛰어나게 연기할 방법은 없고, 역으로 배우의 능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캐릭터의 설득력으로 상당 부분 보강될 수 있다는 식이다. 충분히 검증된 배우들조차 특정 작품에서 헤매기도 하는 이유이자, 역으로 걸작에선 지나가는 엑스트라조차 뛰어나게 연기하는 듯 느껴지는 이유다. 존 윅을 공동 연출한..

Action 2025.07.20 0

코미디라 세뇌할 수 있다면 _ K.O., 앙투안 블로시에 감독

# 0. 못 만든 영화들에도 못 만든 영화들만의 재미가 있다. 앙투안 블로시에 감독,『K.O. :: K.O.』입니다. # 1. 의외로 못 만든 영화들에도 못 만든 영화들만의 재미가 있다. 오히려 애매하게 못 만든 영화보다 대차게 못 만드는 편이 차라리 나은 데, 관객 스스로 장르를 코미디라 세뇌(?)할 수만 있다면 기대 이상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프닝은 격투기 파이터인 주인공의 시합이다. 대충 시합 중에 사고로 상대가 죽었다는 설정인가 보다. 후두부 같은 급소를 갈긴 것도 아니고 무릎 높이에서 살포시 매치는 걸로는 어지간하면 사람이 죽지 않지만, 어쨌든 죽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 세계의 옥타곤은 아스팔트 바닥인 듯. 설령 불운이 겹쳐 변을 당했다 하더라도 상대 ..

Action 2025.07.14 0

선은 겸손해야 한다 _ 더 이퀄라이저 3, 안톤 후쿠아 감독

# 0. 자신만만한 선은 이미 선이 아니다. 안톤 후쿠아 감독,『더 이퀄라이저 3 :: The Equalizer 3』입니다. # 1. 의 글에서 주인공은 세상의 부조리를 측정하는 추와 같다 했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철저히 주인공 시점에서 끌고 나가는 원맨쇼이고 따라서 그의 인간적 고뇌가 중요하지 않을 수는 없다. 첫 작에서 맥콜의 고뇌란 '외면할 수 없는 부정을 상대로 납득가능한 선은 실현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자연스럽게 속편은 전작의 '타협된 선'에 의문을 던진다. 간략히 하자면 2편의 주제의식은 '그 납득가능한 대안은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회의다. 메인 빌런인 데이브는 맥콜의 조작된 죽음과 관련된 사건으로 자리를 잃어야 했던 인물로, 그의 피해는 맥콜의 '어쩔 수 없는 사정..

Action 2025.06.20 0

양팔저울 실험 _ 더 이퀄라이저, 안톤 후쿠아 감독

# 0. 비어있는 오른쪽 접시에 덴젤 워싱턴의 걸음과 눈빛을 무겁게 올린다. 안톤 후쿠아 감독,『더 이퀄라이저 :: The Equalizer』입니다. # 1. 양팔저울이 있다. 오른쪽 접시는 비어있고, 왼쪽 접시는 어두운 천으로 덮여 있어 접시에 올려진 물건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저울이 왼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는 것으로 보아 왼쪽 접시에 무거운 것이 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실험자는 빈 오른쪽 접시 위에 추를 올리기 시작한다. 만약 무척이나 무거운 추를 올린 후에야 양팔 저울이 평형을 이루었다면, 우리는 왼쪽 접시에 무엇이 있는지 여전히 알 수 없을지라도 그것이 매우 무거운 것임은 안다. 먼치킨 주인공의 액션 영화다. 미스터리한 배경의 퇴역 요원이 벌이는 액션활극이라는 면에..

Action 2025.06.12 0

SF &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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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 하나 _ 혈세, 김민하 감독

# 0. 영화티켓 대신 초코파이 하나로 퉁치는 헌혈소? 이거 쎄하거든요. 김민하 감독,『혈세 :: Tax』입니다. # 1. 뱀파이어 '종주'는 낡은 상가의 건물주다. 당장 흥미로운 것은 임대료 대신 피를, 그래서 문자 그대로 '혈세'를 입금받는 시스템이다. 그의 시스템은 뱀파이어의 원초적 포식 행위를 현대 사회의 계약 관계로 치환하는 것이자, 역으로 현대의 계약 관계를 원초적 포식 행위로 치환한다. 종주의 공간에서 피는 숭고한 생명이 아닌 매달 수거하는 재화로 전락하고, 종주가 식량을 보장받는 동안 세입자들은 돈 대신 피를 잃는 것에 다행스러워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아마도 종주는 스스로 욕망을 통제하는 데 성공한 합리적인 관리자라 인식할 것이다. 무분별한 사냥이 야기할 혼란과 비효율을..

SF & Fantasy 2025.09.26 0

기억의 예술 _ 빅 피쉬, 팀 버튼 감독

# 0.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이야기가 된다. 팀 버튼 감독,『빅 피쉬 :: Big Fish』입니다. # 1. 짐짓 이질적이다. 모르고 보면 팀 버튼의 그것임을 알아채기 힘들 정도다. 특유의 고딕적 미장센과 그늘진 상상력 대신, 따뜻한 파스텔 톤 감성으로 충만한 영화는 화려한 필모그래피에서도 유독 도드라진다. 그럼에도 빅 피쉬는 다분히 팀 버튼스러운 영화다. 그의 영화란 언제나 다정한 설득과 치유의 과정이었고, 생선이 되어버린 어느 허풍쟁이 아저씨의 회고 역시 본질적으론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의 초기작은 정상성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 음울한 상상력을 지닌 소심한 소년의 정신세계를 대변한 후, 그 어둡고 기이해 보이는 세계 속에 숨겨진 순수와 아름다움을 설득하는..

SF & Fantasy 2025.09.14 0

로또는 왜 4등인걸까 _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김다민 감독

# 0. 정작 막걸리가 알려준 건 버려진 우리의 내일인 걸지도 김다민 감독,『막걸리가 알려줄거야 :: FAQ』입니다. # 1. 사회는 정답만이 진리인 곳이다. 해마다 바뀌는 입시 요강, 말하기 대회의 정해진 원고, 코딩의 논리 알고리즘과, 페르시아어 수업 따위는 모두 정답에 최단 경로로 도달하기 위한 규격화된 시스템을 대변한다. 어른들은 시스템의 정답을 찾는 것만이 성공이라 가르친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동춘의 엄마는 언제나 딸을 사랑하고 선생님들 역시 언제나 학생에게 다정하지만, 그들의 소통방식은 오직 정답 사회의 언어에만 국한된 모습이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해요?" 왜 그래야 하는가 대신 어떻게 더 잘할 것인가에만 몰두하는 사회를 향해 동춘은 질문한다. 어른들은 답하지..

SF & Fantasy 2025.09.04 0

대담한 야심과 소극적 결과 _ 러브 미, 샘 주커로 / 앤드류 주커로 감독

# 0. 우주의 거리와 억겁의 시간을 건너 나의 존재를 응시해 줄 당신에게 샘 주커로 / 앤드류 주커로 감독,『러브 미 :: Love Me』입니다. # 1. 인류가 망했다. 물론 종종 있는 일이니 유난스러울 건 없다. 다만 이번엔 약간 더 심각한가 보다. 인류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생명들도 죄다 망했기 때문이다. 매 순간 똥을 남기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호모 속 원숭이들답게 망하기 직전 발악하듯 무언가를 남겼다 한다. 그동안 쌓아온 모든 데이터를 AI 인공위성에 실어 띄우는 것이다. 인공위성이 태양의 수명이 다하는 억겁의 시간 동안에도 쌩쌩 돌아갔다라... 당장 기후위기에도 알 바 아니라는 듯 지어댄 AI 센터들도 성과가 있긴 있었나 보다. 그래도 혼자 죽으란 법은 없다. 외로운 인..

SF & Fantasy 2025.08.24 0

경계선 _ 언더 더 스킨,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

# 0. 모든 방면에서 안과 밖을 무너트리려는 야심과 지독한 방법론의 대치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언더 더 스킨 :: Under the Skin』입니다. # 1. 심벌 스칼렛 요한슨의 누드와 아무튼 난해한 걸로 유명한 영화, 언더 더 스킨이다. 충격적인 경험을 선사했던 영화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려 하나 깊이는 담보할 수 없으니 감안할 것을 부탁하며 글을 시작한다. 전위적인 오프닝처럼 조나단 글레이저의 SF는 응시의 변천, 즉 보는 행위의 질적 변화를 통해 추동된다. '어둠을 통과하는 빛'이라는 태초의 우주로 말미암아 안구가 기계구조적으로 조립되는 장면 연출은 극단적인 추상성으로 표현되는 데, 이는 당연해 마지않던 '관찰'의 의미를 진공으로 비워냄으로써 본질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제안하..

SF & Fantasy 2025.08.02 0

빅 마이크를 기억하며 _ 그린 마일,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

# 0. 비범한 야심과 직관적 구현 끝에 한 끗의 아쉬움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그린 마일 :: The Green Mile』입니다. # 1. 사형수가 사형장을 향해 걸어가는 마지막 복도, 그린 마일이다. 라스트 마일로도 불리는 초록색 리놀륨 복도는 그 극단적 목적처럼 다양한 함의를 가진다. 마지막 걸음을 걸어가는 Dead Man은 이전의 삶을 훑어보며 회고하고 후회할 것이기에 인간 여정을 축약한 공간이라 이해할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사형을 선고받을 정도로 죄지은 사람들이 걷는다는 면에서 인간의 취약성과 죄의 무게를 구체화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움직임의 관점에서 양방향이 아닌 일방향으로만 작동하는 시설이라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비가역적인 결정론적 동선을 일종의 확신이라 한..

SF & Fantasy 2025.06.04 2

메리의 방과 오만의 성 _ 엑스 마키나, 알렉스 가랜드 감독

# 0. 그가 궁금한 그녀는 메리의 방을 나섰고, 그녀가 필요한 그는 오만의 성에 갇혔다. 알렉스 가랜드 감독,『엑스 마키나 :: Ex Machina』입니다. # 1. 인상적인 SF 영화는 끊임없는 상호 테스트와 기만으로 점철된다. 누가 진정으로 인간적인지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조작하는지 경계는 점점 모호해진다. 칼렙, 에이바, 네이든 세 인물 모두 각자의 의도를 숨기고 있고, 과정에서 인간 본성의 복잡성, 신뢰, 욕망 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칼렙은 집요하게 에이바의 의식을 확인하려 하지만, 에이바는 정전 중 칼렙에게 네이든을 믿지 말라 경고하며 그의 의도를 역으로 의심하게 만든다. 네이든은 데이터를 통해 칼렙의 취향을 파악하고, 에이바는 그의 마음에 들도록 자신의 외모를 디자..

SF & Fantasy 2025.05.30 0

D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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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을 위한 손 _ 이처럼 사소한 것들, 팀 밀란츠 감독

# 0. 어떻게 이 끔찍한 짓이 수십 년간 용납될 수 있었나 팀 밀란츠 감독,『이처럼 사소한 것들 :: Small Things Like These』입니다. # 1. 보통 거대한 악은 비장하기 마련이다. 시스템의 실체나 가해자의 얼굴을 극명한 콘트라스트와 엄숙한 클래식 사운드 따위를 곁들여 고발하는 식이다. 이를 본 관객의 분노는 폄하할 필요 없는 정직한 것이나, 그럼에도 감상의 결은 생각보다 깔끔하다. 사건에 멀찍이 떨어져 악당들을 손가락질하는 것으로 자신과 공동체의 윤리 의식을 확인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고, 그때의 감정선은 거대한 악만큼이나 거창하다. 한편 팀 밀란츠는 거악을 사소한 인물들과 그보다 더 사소한 고뇌를 통해 탐구한다. '누가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가' 대신 '어떻..

Drama 2025.10.04 0

이상한 나라의 그레타 _ 잠자는 소녀, 로즈마리 마이어스 감독

# 0. 콜라주 된 낡은 정상성을 이겨내고 돌아온 이상한 나라의 그레타 로즈마리 마이어스 감독,『잠자는 소녀 :: Girl Asleep』입니다. # 1. 짐짓 웨스 앤더슨스럽다. 2000년대 이후 개봉된 수많은 연극적 미장센의 영화들이 비슷한 소리를 들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만 손쉽게 웨스 앤더슨의 참조라 말하기엔 스스로 당위가 있는 작품이고, 따라서 특유의 세트 감각을 웨스 앤더슨의 미학과 일정 부분 공유한다 평하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웨스 앤더슨이 수많은 팬들을 매료시킨 강렬한 스타일리스트이자 그 스타일이 다른 창작자들에게 적잖은 영감을 주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렇다 해서 일련의 스타일을 그만이 독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공적이고 연극적인 미장센이 ..

Drama 2025.10.02 0

어떤 자해는 도피였다 _ 욕망의 대지, 길예르모 아리아가 감독

# 0. 어떤 자해는 도피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도피였다. 길예르모 아리아가 감독,『욕망의 대지 :: The Burning Plain』입니다. # 1. 들판 한가운데 트레일러가 불타고 있다. 창 밖으론 경랑이 몰아치지만 푸른 내면은 앙상하게 메말랐고, 불길은 수년이 지나도록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주 피학적이고 모멸적인 형태의 자해는 속죄를 가장한 도피다. 나의 도주로 말미암아 평화로울 것이라 다짐했던 새로운 들판 위로 비행기가 추락한 날. 그녀는 꺼지지 않는 불길이 자신을 태우는 것에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다. 도무지 무슨 생각으로 제목을 지은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영화의 원제는 The Burning Plain, 불타는 평원이다. 값싼 욕망 따위가 아닌, 차가운 두..

Drama 2025.07.22 0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_ 새벽의 모든, 미야케 쇼 감독

# 0. 그럴 수 있다. 미야케 쇼 감독,『새벽의 모든 :: 夜明けのすべて』입니다. # 1. 숫기가 없지는 않다. 말 주변이 없는 것도 아니다. 어릴 적부터 무대나 연단에 오르는 건 의외로 능숙해 주변 사람들도 신기해했을 정도다. 발표 중인 대학생이 중간중간 교수와 농담 따먹기를 할 수 있다면 분명 범상치 않은 것이고, 그 학생이 졸업해 프레젠테이션과 관련된 업무로 밥 벌어먹고 있다면 적성을 잘 찾아갔다 안도해도 좋을 법하다. 문제는 그의 머릿속에 사소하고 개인적인 고장이 하나 숨어있다는 점이다. 그 이름부터 막연한 '불안 장애'의 증상은 쓸데없이 창의적인데, 그가 가진 것은 관계 불안이다. 관계와 역할 경계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상황에서는 이상이 없지만 경계가 모호할 경우 급격히 패닉..

Drama 2025.07.16 0

버려진 개의 희망이 움추러든다 _ 웬디와 루시, 켈리 라이카트 감독

# 0. 다정한 좌절 끝에 버려진 개의 희망이 움추러든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웬디와 루시 :: Wendy And Lucy』입니다. # 1. 관객은 웬디를 모른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어떤 성격과 과거를 가진 인물인지, 어디서 출발해 어쩌다 그곳까지 흘러온 건지 알 수 없다. 알래스카에 있다는 통조림 공장은 어떤 곳인지 알 수 없고, 그곳에 찾아갈 수 있을지, 찾아간다 해서 미래를 꿈꿀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웬디를 안다. 그녀는 여행이 시작된 곳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한적한 마을에 발이 묶였다. 숙식을 해결하던 낡은 차는 완전히 망가져버렸고, 수중에 500불 남짓이 전부라 파산할 위기에 놓였다. 그 어떤 자격도, 주소도, 전화도 없다. 유일..

Drama 2025.05.18 0

시인의 세계 _ 연희, 백해선 감독

# 0. 잔인하고 곤혹스러운 시인의 세계 백해선 감독,『연희 :: Yeon hui』입니다. # 1. 몇몇의 배우들은 삶의 특별한 순간 감정적으로 격해질 때면 습관적으로 거울을 찾는다 한다. 자신이 어떤 감정으로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비춰 기억하기 위함이다. 보통의 사람들이었다면 외면하거나 망각하고 지나쳤을 감정들. 자연인으로서 두 번 경험하고 싶지 않을 끔찍한 순간에조차 그 안에 담긴 모든 추악함까지 들여다보고 끄집어내어 새긴다는 건 마치 맨 손으로 선인장을 움켜쥐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고, 그래서 고단한 일이다. 어느 대학의 문예창작과 수업. 무명의 시집에 담긴 시를 베껴 교수와 동기들에게 인정받던 학생 연희의 수업에 청강생 강희가 들어오며 단편은 시작된다. 교수의 칭찬과 동기들의..

Drama 2025.05.14 0

간절히 평범하려는 자의 쓸쓸함 _ 시스터스 브라더스, 자크 오디아르 감독

# 0. 청산되지 않는 폭력과 부정되지 않는 희망 사이에서 자크 오디아르 감독,『시스터스 브라더스 :: The Sisters Brothers』입니다. # 1. 오랜 시간 서부극은 자신의 신화를 반복해 왔다. 광활하고 황량한 대지와 피도 눈물도 없는 무법의 시대, 이를 개척하거나 지배하려는 마초 영웅의 신화다. 시스터스 브라더스 역시 표면적으로는 익숙한 서부극의 신화를 계승하는 듯 보인다. 1850년대 오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청부 살인업자 형제의 폭력과 파멸을 정직하게 따라간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는 덴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균열의 징후는 제목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Sisters'라는 형제의 성(姓)은 영화의 방향을 조용히 비튼 과정에서 생긴 흉터다. ..

Drama 2025.04.30 0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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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인생에 부딪쳐봐 _ 아멜리에, 장 피에르 주네 감독

# 0. 마침내 사랑스런 상상의 문을 열어 현실의 박동을 되찾는다 장 피에르 주네 감독,『아멜리에 :: Amelie from Montmartre』입니다. # 1. 티스푼을 든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프랜치 여인. 장 피에르 주네의 아멜리에다. 사랑스러운 오드레 토투와 함께하는 영화의 즐거움은 사실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다. 우연으로 가득한 현실을 개인의 미적 질서 안으로 편입시키는 데에서 오는 평온함과 안도감이다. 관객은 시작부터 아멜리라는 대리인을 통해 세상을 재구성하는 연출가적 전능을 이양받는다. 크렘 브륄레의 단단한 표면을 숟가락으로 깨뜨리는 쾌감, 생 마르탱 운하의 수면 위로 물수제비 뜨는 순간의 정갈한 아름다움, 곡물 자루에 손을 푹 찔러 넣는 감각적 충만함. 영화는 세상에 흩뿌려..

Romance 2025.09.24 0

구원은 없어 _ 박쥐, 박찬욱 감독

# 0. 당신은 날 죽여도 후회할 거고 살려도 후회할 거야. 박찬욱 감독,『박쥐 :: Thirst』입니다. # 1. 최면술사 앞에 선 오대수는 고백한다. 우리는 규범으로 본성을 통제한 태양 같은 존재가 아닌, 본성이 이끄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짐승들이라고. 마침내 감독은 규범으로 본성을 통제할 수 없다 논증하는 것을 넘어 둘을 충돌시켜 존재를 붕괴시키기에 이른다. 박찬욱의 걸작, 박쥐다. 이전의 영화들이 외부의 시련, 감금(올드보이), 납치(복수는 나의 것), 살인(친절한 금자씨)으로 인한 비극이었던 것과 달리, 상현의 비극은 자기희생이란 내적 가치에서 발화한다는 점은 감독의 인간 탐구가 한층 깊어졌음을 의미한다. 오프닝에는 그 집요함이 가감 없이 묻어있다. 상현은 아프리카에서 ..

Romance 2025.09.20 0

모든 조롱의 신 _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우디 앨런 감독

# 0. 모든 자기기만을 조롱하다 끝내 자신마저 조롱해 버린 모든 조롱의 신 우디 앨런 감독,『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 Everyone Says I Love You』입니다. # 1. 그의 조롱에 성역은 없다. 뮤지컬의 형식을 빌려 내내 가녀린 척 사랑을 노래하지만 모조리 기망이다. 내내 뮤지컬은 감정적 동화 대신 분석적 태도를 요구하는 형식주의적 전략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장르의 허구성을 괴팍하게 폭로함으로써, 고전 할리우드로부터 오랫동안 세일즈 되어온 '낭만'이라는 신화의 구조적 결함을 까발리겠다는 비아냥이야말로 숨겨진 의의다. 그래서 뮤지컬 영화가 보장하는 핵심적인 쾌감, 숙련된 기교를 통한 감정 교양을 배반한다. 의 프레드 아스테어나 의 진 켈리 등으로 대표되는 고전 ..

Romance 2025.08.08 0

그 여자의 사정 _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레이철 램버트 감독

# 0.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어떤 사람들은 돌이 되고 싶다 답하기도 한다. 레이철 램버트 감독,『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 Sometimes I Think About Dying』입니다. # 1. 흐릿한 오리건의 해안 마을. 작은 사무실에는 여자 프랜이 일하고 있다. 정직하게 묘사되는 그녀의 삶은 평범보다 무료하고 권태보다 단조롭다. 사무실 컴퓨터 앞을 오가는 것이 전부인 그녀의 생활은 중성적인 색조와, 제한적인 광원, 폐쇄적인 시야, 단절적인 프레임, 넓은 헤드룸으로 두텁게 그려진다. 프랜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혼자라 느끼고, 다정한 동료들조차 그녀의 존재를 거의 인지하지 못한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그녀는 그렇게 불행해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

Romance 2025.06.02 0

기다리는 사랑의 빛과 어둠 _ 롤라, 자크 드미 감독

# 0.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 작가 이기주        자크 드미 감독,『롤라 :: Lola』입니다.     # 1. 진부한 표현이지만.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것이다. 고약한 사랑은 제멋대로 나타나 제멋대로 싹트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처지인지, 사랑받는 사람이 어떤 처지인지에도 관심은 없다. 우연히 들린 출장지에서, 우연히 걷던 길가에서, 우연히 찾은 서점에서 만난 사람과 언제든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당장 다음 출항지로 떠나야 하는 수병의 사정도, 급작스레 직장을 잃고 해외로 나가게 된 백수의 사정도, 7년씩이나 아내를 찾아올 수 없었던 남자의 사정도 아랑곳 않는다.  그때와 다른 시간에 만났더라면 우리의 사랑은 달랐을까. 그때와 다른 곳에서 시작했더라면 ..

Romance 2024.09.16 0

감독놀음 _ 은밀한 공범, 죠죠 히데오 감독

# 0. 평범한 소재로 비범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있지만,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내다 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죠죠 히데오 감독,『은밀한 공범 :: 恋のいばら』입니다. # 1. 은 수입사가 지어 붙인 이름입니다. 원제는 恋のいばら. 그러니까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군요. 참고로 영어 제목은 Thorns of Beauty인데요. 이쪽이 그나마 더 직역에 가까운 번역이기는 합니다. 실제 영화의 핵심은 '가시'로 은유된 각자의 마음에 있다는 면에서, 관계 중심적인 뉘앙스가 강한 '공범'이라는 우리말 제목은 썩 정밀해 보이지는 않죠. 양가적 감정에 놓인 두 여자의 갈등을 그린 작품입니다. 원제에 긍부정이 배치되는 두 개념을 접붙여둔 이유죠. 모모는 켄타로에게 집착과 파괴를 함께 느낍니다..

Romance 2024.03.30 0

도메크의 망원경 _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 0. 마그다의 정신을 들여다보는 도메크의 망원경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 A Short Film About Love』입니다. # 1. 어지간한 변태가 아니고서야 이름 외우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생소하신 분들도 이나, 시리즈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그 작품들 만든 동유럽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이죠. 30여 년 전, 성경의 십계를 주제로 각색 제작된 데칼로그(Dekalog)라는 폴란드 Tv시리즈가 있었는데요. 그중 6번째, 간음을 주제로 한 에피소드에 분량을 추가 개봉한 작품입니다. 관음은 작품의 핵심적인 설정입니다. 멀리는 히치콕의 이창, 가까이는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에 이르기까지 ..

Romance 2024.03.0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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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일기장 _ 마녀 배달부 키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0. 매너리즘에서 깨어나 내일을 다짐하는 거장의 일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마녀 배달부 키키 :: 魔女の宅急便』입니다. # 1. 키키에게 비행은 호흡과 같다. 연원을 알 수도, 증명할 필요도, 걱정할 이유도 없는 순수한 것이다. 순진무구한 키키의 자신감은 재능과 자아를 동일시하는 미성숙함에서 비롯된다. '날 수 있는 나'이기에 특별하고, 그 특별함이 언제고 세상을 살아낼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 사랑스러운 어린 마녀의 성장기는 불세출의 천재 애니메이터, 펜 한 자루로 세상을 날아다닌다 믿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담담한 자기 고백이다. 코리코에서의 생활은 '재능은 그저 발현될 뿐'이라는 순진한 세계관을 허용하지 않는다. 재능이 생존을 위한 기능으로 전환되는 생경한 경험들이다. ..

Animation 2025.09.18 0

참사를 영화할 때의 고민들 _ 빅 피쉬, 박재범 / 김정석 감독

# 0.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박재범 / 김정석 감독,『빅 피쉬 :: Big fish』입니다. # 1. 설득은 형식에서부터 비롯된다. 이미 스톱모션의 물리적 노고가 지속적인 애도와 조응하며 은유로서 기능한다. 클레이의 투박한 질감과 인형의 미세한 떨림은 강력한 물질성을 전달하는데, 관객으로 하여금 고통의 무게를 간접적으로나마 감각하게 하는 효과다. 폭풍우 속에서 노를 젓고 밧줄을 당기는 엄마 요나의 행위는 스크린 뒤 애니메이터의 노동과 겹쳐지며, 잊을 수 없는 상실을 감당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시각적 묘사가 된다. 영화는 언어의 사용을 절제함으로..

Animation 2025.09.12 0

일단 토스 _ 모노노케 원혼의 재, 나카무라 켄지 감독

# 0. 일단 3장으로 토스하며 턴을 종료한다. 나카무라 켄지 감독,『모노노케 원혼의 재 :: モノノ怪 火鼠』입니다. # 1. 고작 한 편만으로 모든 개성이 지루해졌다 말하는 건 가혹하다. 여전히 강력한 스타일은 반가움과 흥분감을 순식간에 자아낸다. 오리엔탈적이면서도 사이키델릭한 오프닝 음악부터, 들불처럼 번지는 위기를 추적하는 속도감, 평면적 구도를 파헤치는 3차원적 운동성, 전통적인 질감과 현대적인 색감이 교접된 전위적인 미술 모두다. 다만 일련의 스타일은 물론, 오오쿠와 모노노케를 둘러싼 세계관, 약장수의 캐릭터성과 디테일 대부분 이미 아는 것이기에 감흥이 반감됨은 부정할 수 없다. 클라이맥스의 변신만 하더라도 이미 익숙한 모습을 재현하기에 감동은 전작만 못하다. 관객들이 영화에..

Animation 2025.08.22 0

결함의 미학 _ 달팽이의 회고록, 애덤 엘리엇 감독

# 0. 당신의 결핍과 균열과 흉터를 온화한 손길로 빠짐없이 끌어안는다. 애덤 엘리엇 감독,『달팽이의 회고록 :: Memoir of a Snail』입니다. # 1. '클레이 영화는 손끝으로 보는 영화'라 말한다면 너무 유난스러운 걸까. 애덤 엘리엇의 영화는 다른 클레이 무비들이 그러한 것처럼 눈보다 손끝에 먼저 도달한다. 스크린 위 꿈틀거리는 인형들, 지문과 체온이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는 듯한 점토의 물성. 완벽하게 매끈한 cgi의 범람 속에서 고집스럽고 투박하지만 그렇기에 진솔한 질감을 마주하는 경험에는 분명 대신할 수 없는 감동이 있다. 달팽이의 회고록은 기대한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만지게 하는 영화이고, 이해시키는 서사가 아니라 감각하게 하는 서사이며, 마침내 관철..

Animation 2025.08.04 0

Lesson 2 _ 화성특급, 제레미 페랑 감독

# 0. 이건 두 번째 레슨 제레미 페랑 감독,『화성특급 :: Mars Express』입니다. # 1. 다수의 고전 SF 및 네오 누아르 작품들과의 연관성은 부정할 수 없고, 딱히 부정할 생각도 없다. 일본어와 영어 대신 프랑스어로 표현된다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익숙한 사이버펑크의 그 모습 그대로다. 다방면에 걸친 디자인적 모티브, 정체성과 관련된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내러티브,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몇몇의 내적 갈등 따위에서 두루 확인할 수 있듯 말이다. 카를로스와 관련된 제일브레이크와 테이크오버, 준과 관련된 백업과 브레인 팜 아이디어는 대표적이다. 카를로스는 로이제커에게는 돈을 벌어줄 상품이고, 유가족에겐 죽은 남편을 연기하는 불쾌한 흉물이며, 거리를 다니는 일반인들에겐 평..

Animation 2025.07.12 0

음악, 노골적, 성공적 _ 케이팝 데몬 헌터스, 크리스 애펄핸즈 / 매기 강 감독

# 0. 욥마 소다팝! 말 리를 소다팝! 크리스 애펄핸즈 / 매기 강 감독,『케이팝 데몬 헌터스 :: K-Pop Demon Hunters』입니다. # 1. 미리 고백하자면 K팝에 대한 기호는 라이트라는 말조차 무거울 정도로 라이트하다. 굳이 밀어내지는 않지만 굳이 찾아 듣지도 않을 정도의 멀찍한 거리감이랄까. 그럼에도 개성적인 애니메이션에 흥미를 느낀 건 노골적인 프로젝트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항마력이 딸리지 않을까 살짝 걱정하기도 했지만 의외로 영화의 감수성은 생각보다 딥하지 않다. 무난한 로맨틱 코미디의 달달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느낌이라, 혹여나 누군가에 이끌려 뜻하지 않게 보게 된 사람들도 딱히 버겁지는 않을 것이다. 관객 경험은 크게 보고 싶은 것(..

Animation 2025.06.24 0

코와쿠나이 _ 이웃집 토토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0. 우리 이별이 두렵지만, 이젠 두렵지 않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웃집 토토로 :: となりの トトロ』입니다. # 1. 사춘기 소녀의 호기심과 두려움을 특유의 창의성으로 섬세하게 그린다. 이제 막 자아를 발견하고 탐색하기 시작한 사츠키는 따스한 가족의 보호 아래 세계를 질문하며 성장한다. 크레디트에서 함께 뛰노는 다른 모든 아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언제나 다정한 칸타의 할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어딘가에서 영화를 보고 있을 관객들이 지난날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쓰러질 듯 낡은 집은 이전까지 인지하지 못했던 시간의 흐름이 투영된 세계다. 미처 시간을 인지하지 못하기에 두려워하지도 않았던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지만, 비로소 그 안에 숨어 있던 위화감을 발견한다. 마쿠로 쿠로스..

Animation 2025.05.16 2

Docu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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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여인 _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아녜스 바르다 감독

# 0. 영화를 너무 많이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영화가 된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 The Beaches of Agnes』입니다. # 1. 80세 감독이 자신의 삶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 할 때, 관객은 으레 기대하는 그림이 있기 마련이다. 고즈넉한 흔들의자에 기대앉아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듯 차분히 과거를 돌아보거나, 적당한 영상 자료들과 지인들의 인터뷰를 모아 연대순으로 정리하는 모습 따위다. 문제는 그 80세 감독이 하필 아녜스 바르다라는 것이다. 빛나는 눈빛과 소녀의 표정을 지닌 그녀는 평생 그러했듯 관객의 지루한 예상을 그대로 허락할리 없다. 바람 부는 해변과 거울이다. 바르다는 자신을 찾아온 관객들에게, 과거를 직접 보여주는 대신 그 기억을 비춰볼 '..

Art 2025.10.10 0

어머니,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_ 보이지 오브 타임, 테렌스 맬릭 감독

# 0. 적막 속에서 이미 스스로 알고 있을 가장 근원적인 목소리에 귀 기울일 뿐이다. 테렌스 맬릭 감독,『보이지 오브 타임 :: Voyage of Time』입니다. # 1. 어떤 이는 카메라로 시를 쓴다. 트리 오브 라이프의 테렌스 맬릭이다. 2016년 베니스에서 처음 공개된 장편 다큐멘터리 보이지 오브 타임은 과연 명성에 걸맞다. 작품의 첫인상은 단연 이미지다.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진화를 재현한 모습은 예측가능한 스펙터클을 벗어난다. 압도적인 영상은 경이와 공포가 뒤엉킨 숭고의 감정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킨다. 성운의 폭발, 유기물의 형성, 공룡의 눈빛을 담아내는 장대한 시퀀스 앞에서 누구나 언어 이전의 순수한 시각적 경험에 잠길 것이다. 관객은 금세 저마다의 개성과 치열함을 잠시 ..

Scientific 2025.08.14 0

여왕의 노래 _ 어메이징 그레이스, 시드니 폴락 / 알란 엘리엇 감독

# 0. 없던 신앙심도 생기게 만드는 여왕의 음성 시드니 폴락 / 알란 엘리엇 감독, 『어메이징 그레이스 :: Amazing Grace』입니다. # 1. 1972년, 서른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이미 절정의 커리어를 달리고 있던 소울의 여왕은, 자신의 영혼의 고향, 가스펠로 회귀한다. 아레사 프랭클린.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하다는 누군가의 경탄처럼 그녀의 음성은 평범한 음악을 마치 종교적 설교로 변화시킨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이기도 한 찬송가 'Amazing Grace'를 부르는 순간. 익숙한 엄숙미와 대조되는 자유롭게 유영하는 플로우 끝에 청중을 압도하는 감정의 폭발은,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음악적 담대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실황 라이브를 고스란히 담은 다큐멘터리의 형식은 몰입을 크..

Art 2025.07.04 0

참극을 기록한다는 것 _ 밤과 안개, 알렝 레네 감독

# 0. 우리는 기록의 의미를 충분히 고민하고 있는 걸까 알렝 레네 감독,『밤과 안개 :: Night And Fog』입니다. # 1. 익숙한 것임에도 막상 정의를 내려보라 하면 쉽지 않은 말들이 있는데 '다큐멘터리' 역시 그러하다. 무언가를 진지하게 대하는 순간을 '다큐 찍는다' 말할 정도로 보편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훈련된 지식인이 아니라면 생각보다 정의를 내리기 쉽지 않다. 실재 세계를 기록하고 해석하는 영상 매체로서 사실성에 대한 지향과 윤리적 책임을 기반한다는 낮은 차원의 합의를 제외하면, 이후의 기록과 해석, 사실과 표현, 윤리와 미학 사이의 긴장 관계에 대해서는 각각 자의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모양새다. 다큐픽션을 창시한 것으로 평가되는 로버트 J. 플래허티는 현실세..

Historical 2025.06.18 0

무기수와의 대화 _ 희망을 꿰매는 사람들, 제니퍼 맥셰인 감독

# 0.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제니퍼 맥셰인 감독,『희망을 꿰매는 사람들』입니다. # 1. 미주리주 소재 최고 보안 등급 교도소. 모범수 일부에게는 매년 보호 시설 아이들에게 선물할 퀼트를 만들 자격이 허락된다. 다큐멘터리에는 작업하는 죄수들이 담담하게 묘사되지만 그것을 보는 마음은 생각만큼 편하지 않다. 인터뷰가 있을 때마다 죄질을 가늠케 하는 형량을 성실히 알려주기에 자연스레 미움이 생기지만, 그들의 겸허한 태도와 평온한 표정, 퀼트에 몰두하는 모습, 아이들의 감사편지는 그러한 미움이 온전히 정당한가 되묻는다. 만약 죄수라는 정보가 부재했다면 그저 평범한 기술자로만 보였을 것이고, 그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움트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통해 반성하며 ..

Social 2025.05.26 0

저스트 베이시스트 _ 온리 걸 인 더 오케스트라, 몰리 오브라이언 감독

# 0. Don’t ask me... I’m just the bass player. 몰리 오브라이언 감독,『온리 걸 인 더 오케스트라 :: The Only Girl in the Orchestra』입니다. # 1. 내가 오린을 사랑하는 건 오케스트라에서 빛을 내뿜기 때문이다. 오린은 음악에 전적으로 몰입하며 그쪽을 바라볼 때마다 오린도 항상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경이로운 집중력이다. 비결이 뭘까? 우리가 연주하는 모든 곡의 베이스 파트 음을 전부 외웠나? 그건 기적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이다. -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 전설적인 음악가에게 기적이란 찬사를 받은 사람은 오린 오브라이언. 1966년 뉴욕 필하모닉 정규 단원으로 고용된..

Humanism 2025.03.10 0

밥 짓는 밤 _ 밥정, 박혜령 감독

# 0. 밥 한끼에 추억과밥 한끼에 사랑과밥 한끼에 쓸쓸함과밥 한끼에 동경과밥 한끼에 시와밥 한끼에 어머니, 어머니,        박혜령 감독,『밥정 :: The Wandering Chef』입니다.     # 1. 식사는 놀랄 만큼의 고봉밥과 짭조름한 반찬 몇 가지다. 간식은 쌀알을 튀긴 것이나 밥을 쪄서 치댄 것이고, 마실 것은 밥을 엿기름에 삭힌 것, 술은 누룩에 삭힌 것을 먹었으니 밥심으로 살아낸 사람들이라 해도 무리는 없다. 검은색 옷을 즐겨 입는 요즘 사람들을 보노라면 백의(白衣)의 민족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백반(白飯)의 민족이라는 흔적은 여전히 굳건하다. 반가운 첫인사는 밥 먹었냐는 것이고, 아쉬운 끝인사는 언제 밥 같이 먹자 말하는 사람들의 나라. 끔찍한 범죄 용의자에게 건네는 원망의 한마..

Humanism 2025.02.12 0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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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당퐁당 _ 러브, 데스 + 로봇 시즌 4

# 0. 돌을 던지자. 애니메이션 앤솔로지『러브, 데스 + 로봇 시즌 4 :: Love, Death + Robots Vol. 4』입니다. # 1. 이쯤 되면 징크스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첫 번째 시즌의 성공, 두 번째 시즌의 혹평, 세 번째 시즌은 첫 시즌의 성공을 계승하며 반전을 거두었던 것에 반해, 네 번째 시즌은 두 번째 시즌의 단점을 답습하며 주저앉는 듯하다. 아이디어의 부재를 연성화된 표현들로 무마하려던 두 번째 시즌에서처럼 이번에는 귀여운 코미디, 만만한 판타지로 만회하려 한다는 인상이 지나치게 강하다. 물론 어떤 작품이 귀여움과 코미디로 승부를 보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이 엔솔로지가 이라는 것. 금기를 허용하지 않는 실험적인 세계관과 공격적인 플롯, 강렬한..

Animation 2025.05.20 2

죽거나 혹은 미치거나 _ 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 구스웍스 감독

# 0. 글리치 프로덕션(Glitch Productions)을 아시나요? 구스웍스 감독,『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 :: The Amazing Digital Circus』입니다. # 1. 닐 블룸캠프의 오츠 스튜디오 이후 오랜만에 스튜디오 소개글이다. 물론 하꼬 블로거 따위가 '소개'하기엔 지나치게 월클이지만 말이다. 글리치 프로덕션(Glitch Productions)은 다채롭고 개성적인 디자인, 매콤한 블랙 코미디, 재기 발랄한 스토리로 미래지향적인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호주 국적의 인디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초기작 (2019)와 (2021) 이후, 미국의 애니메이터 리암 빅커스(Liam Vickers)가 총괄로 합류한 (2021)으로 도약한 글리치는, 작년 또 다른 애니메이터 쿠퍼..

Animation 2024.06.28 0

하우프루빗 _ 포커페이스, 라이언 존슨 / 나타샤 리온 감독

# 0. 누가 범인인가 (who done it?)의 미스터리를 대신하는어떻게 범인을 밝힐 것인가 (how prove it?)의 서스펜스 라이언 존슨 / 나타샤 리온 감독,『포커페이스 :: Poker Face』입니다. # 1. Orange is The New Black을 본 사람치고 니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오뉴블을 제법 재미있게 본 저 역시 나타샤 리온은 썩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여유롭고 정겹고 온화하면서 동시에 세상에서 서너 발짝 떨어진 듯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특유의 톤이 매력적인 배우죠.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장르물로 만들어버리는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헤어스타일과 허스키한 목소리도 멋지구요. 다만 그녀의 캐스팅만을 근거로 작품을 고르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

Mystery & Thriller 2023.08.04 0

사이다의 성분 _ 피지컬 100, 사이렌 불의 섬

# 0. 왜 재미있는 거지? 넷플릭스 버라이어티 시리즈, 『피지컬 100, 사이렌 불의 섬』입니다. # 1. 그놈의 K-타령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일부의 호들갑이 나름 이해가 갈 정도로 영상 콘텐츠들의 글로벌 시장 확대가 두드러진 근년이긴 했습니다. 이젠 이야기하는 것조차 지치는 기생충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들 뿐 아니라, 킹덤에서 시작해 오징어 게임의 메가히트로까지 이어진 웰메이드 드라마 시리즈,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가벼운 로맨스 드라마들도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요. 최근엔 예능까지 주목받는 듯한 양상이죠. 최근 BTS의 뷔를 섭외해 해외 시장에 도전 의지를 비친 바 있는 나영석 PD의 서진이네는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해야 할 겁니다. 그중에는 개인적으로도 흥미로웠던,..

Action 2023.06.06 0

엄숙주의의 울타리 너머 _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

# 0. 엄숙주의의 울타리를 호쾌하게 넘는 코미디의 힘 넷플릭스 모큐멘터리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 :: Cunk on Earth』입니다. # 1. 인류의 문명사를 2시간 3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앙상하게 핥아내는 모큐멘터리입니다. 문명 발생에서 시작해 종교, 문화, 근대화를 지나 세계 대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을 유럽인의, 보다 정확히는 영국인의 관점에서 편협하게 전개됩니다만 뭐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지들이 만든 거니까요. 처음엔 필로미나 컹크(Philomena Cunk)가 뭔가 싶었는데요. 코미디언 '다이앤 모건'의 부캐였더라구요. 얼핏 보고선 아이티 크라우드의 캐서린 파킨슨인 줄 알고 살짝 반가웠습니다만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선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찾아봤더니 컹크라는 부케로 ..

Comedy 2023.02.08 0

근본으로의 회귀 _ 러브, 데스 + 로봇 시즌 3

# 0. 회초리의 효과는 굉장했다!! 애니메이션 앤솔로지『러브, 데스 + 로봇 시즌 3 :: Love, Death + Robots Vol. 3』입니다. # 1. 어울리지 않게 15세로 간을 봤던 지난 시즌은 결국 혹평으로 마무리되고 말았습니다. 스타일리시한 화풍과 다이내믹한 액션으로 빚어낸 뛰어난 영상미.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아이템을 과감하게 동원하는 참신한 서사. 허무와 냉소를 테마로 한 철학적 주제의식이라는 세 축이 모조리 흔들리며 죽도 밥도 아닌 시즌이 되고 말았다 말씀드린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군요. 로튼 50%가 무너지며 회초리를 세게 맞은 효과가 굉장했나 봅니다. 전 시즌에 훼손된 평판을 복구하려는 듯 첫 번째 시즌에서 호평받았던 장점들을 노골적으로 답습합니다. 특히 호러와 ..

Animation 2022.05.26 2

수집형 RPG _ 퓨어 시즌 1, 채널 4 제작

# 0. 선명한 아이템이 있다. 선명한 아이템만 있다. 채널 4 드라마, 『퓨어 :: PURE』입니다. # 1. 선명한 아이템이 있습니다. 성 강박장애를 다룬 드라마군요. 일상에서 실시간으로 소집되는 정보를 최대한 자극적인 형태의 성적 메시지로 재구성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저 사람과의 잠자리는 어떨까?' 라는 정도의 수위는 아득히 넘어섭니다. 대상에 대한 분별 능력 역시 전혀 작동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춘기 즈음을 지나며 거치게 되는, 자신이 가진 성적 지향성을 구분하고 해석하고 정의하는 일체의 작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관객에게 시리즈를 소개하는 첫 번째 화의 첫 번째 시퀀스로, 기념일을 맞은 부모가 자신 혹은 타인과 변태적 성애를 나누는 상상을 연..

Drama 2021.09.17 0

Bla-b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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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위기에 봉착한 스타 사업가의 오너리스크

# 0. 알려주고 도와주는 캐릭터에서 지적하고 평가하는 캐릭터로 『캐릭터 위기에 봉착한 스타 사업가의 오너리스크』 # 1. 연일 부정적 기사가 이어진다.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언론의 상투적 비방이라기엔 커뮤니티의 반응도 유튜브 댓글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사업가 겸 방송인 백종원 씨다. 영화를 즐기다 보니 인간사 내러티브의 측면에서 보는 못된 관성이 있는 데 이번엔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백종원의 인지도는 과 함께 시작되었다 해도 틀리지 않다. 초기의 백종원은 철저하게 '알려주고 도와주는 캐릭터'로 기억한다. 가난한 연인들에게 깻잎으로 모히또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이었고, 자취생에게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이었으며, 한 푼..

Bla-bla-bla 2025.02.06 2

갈등을 배우지 못해서

# 0. 한국인에게 당할 줄 몰랐다. 『갈등을 배우지 못해서』 # 1. 가 연일 화제다. 이후 오랜만에 만나게 된 요리 예능은 필자 역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20명의 스타셰프와 80명의 은둔고수가 뒤엉켜 자웅을 겨룬다는 콘셉트의 버라이어티 쇼는 걸출한 캐스팅, 컬트적 캐릭터, 각각의 드라마에 힘입어 폭발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다만 1차 공개분(1회~4회)까지만 하더라도 호평 일색이었던 것과 달리 점점 비판도 늘어가는 듯한 모양새다. 2차 공개분(5회~7회)의 팀전에서 드러난 다소의 혼란을 지나, 3차 공개분(8회~10회)의 장사 미션룰은 인간성을 기망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크게 받고 있는 데, 불쾌감을 표하는 사람들의 지적은 개인적으로도 무리 없이 동의하게 된다...

Bla-bla-bla 2024.10.04 0

천사의 속삭임

# 0.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울어라, 영화관 혼자 울 것이다. 『천사의 속삭임』 # 1. 배우 최민식은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특유의 소탈한 말투로 나라도 티켓값이 부담스럽겠다 말한다. 녹록지 않은 관객의 주머니 사정을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그럼에도 만드는 이들이 작가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지적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평론가 이동진은 을 비평해 달라는 팬들의 짓궂은 농담에 살려달라는 유머러스한 답변을 남겼다. 충성도 높은 수많은 어린이 관객들과 컬트적 현상에 호기심을 느낀 몇몇의 일반 관객층에 힘입어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도전하는 하츄핑에 대한 영화팬들의 반응은 유쾌하면서 일견 자조적이다. 얼핏 무관해 보이는 두 사건은 결국 영화계의 위기를 접..

Bla-bla-bla 2024.08.22 0

20세기 소년의 회상

# 0. 2024년 3월 1일. 조산명(鳥山 明) 선생이 향년 68세의 일기로 타계하셨습니다. 『20세기 소년의 회상』 # 1. 그날따라 유난히 낯설게 느껴지는 서재. 먼지 소복한 귀퉁이에서 묵혀지고 있던 드래곤볼을 담담히 읽어나갔죠. 인이 박힐 정도로 많이도 봤던 익숙한 그림체와 익숙한 캐릭터와 익숙한 대사들은 책을 읽는 건지 책 위를 미끄러지는 건지 모를 정도로 책장을 넘기게 만듭니다. 둔하게 읽으리라는 다짐이 무색하게도 한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야속한 42권의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양반의 비보임에도 많은 분들이 소감 하시듯 참 헛헛하더군요. 문화의 본질이란 결국 연결인 걸까요. 그러고 보면 영화 개봉을 겸해 다시 읽은 슬램덩크도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데..

Bla-bla-bla 2024.03.26 0

야만의 세월, 도마 위에 오른다는 것

# 0. 배우 이선균 씨가 향년 4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야만의 세월, 도마 위에 오른다는 것』 # 1. 이원석 감독의 를 이야기하며 연기 정말 잘한다 감탄했었는데요. 그것이 마지막 코멘트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제와 구태여 사건의 추이를 값싸게 나열할 생각은 없습니다. 고인의 사생활에 대해 가타부타 윤리적 가치판단을 한다거나, 수사도 종결된 마당에 혐의와 관련된 가치판단을 할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저 쓸쓸한 마지막에 '헛헛하니 아쉽다' 정도의 끝인사를 놓아두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사실 보름 전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글을 쓸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것이 소위 어그로를 끌어 검색량을 늘리기에는 나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약간의 텀을..

Bla-bla-bla 2024.01.06 0

빼앗긴 호러에도 여름은 오는가

# 0.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텐트폴까지는 고사하더라도 어째 호러가 한편도 없네? 『빼앗긴 호러에도 여름은 오는가』 # 1. 2023 여름 텐트폴은 류승완 감독의 밀수, 김성훈 감독의 비공식작전, 김용화 감독의 더 문,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입니다. 티켓값이 만만찮은 요즘인 데요. 없는 살림에 전부 극장에서 봤다는 것이 내심 스스로 대견스럽군요. 티켓값에 반비례한 관객의 인내심이 점점 낮아지는 탓에 스코어는 더 엄격하고 냉정해지는 듯합니다. 밀수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제 예상보다 조금 더 선전하는 것 같구요, 비공식작전과 더 문은 손익분기점을 크게 밑도는 모양새인데요. 갈수록 흥행 성적과 작품성의 괴리가 좁혀지는 듯한 느낌도 있군요. 밀수와 비공식작전은 공통적으로 충..

Bla-bla-bla 2023.08.28 0

도박을 포기한 관객들과 다음 영화의 풍경

# 0. 개별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 조금 넓은 영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가급적 블로그에 이런 류의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았는데요. 그래도 새로운 영화가 제작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은 팬에게도 뼈 아프다는 점에서 한 번쯤 고민하고 넘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유럽 영화, 아시아 영화, 중동 영화, 남미 영화. 온갖 영화 다 보는 터라 자막에 크게 거리낄 것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기왕이면 자막 없는 영화가 보기 편한 것이 당연합니다. 기왕이면 우리 정서를 배경으로 한 우리말 나오는 우리 영화가 좋은 건 인지상정이죠. 『도박을 포기한 관객들과 다음 영화의 풍경』 # 1. 한국 영화의 침체를 놓고 다양한 진단들이 나오는 듯 보입니다. 관객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Bla-bla-bla 2023.04.1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