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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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저주 _ 레디 오어 낫, 맷 베티넬리-올핀 / 타일러 질레트 감독

# 0. 익숙한 통속극을 경쾌한 슬래셔 코미디로 전환하는 능숙한 솜씨        맷 베티넬리-올핀 / 타일러 질레트 감독,『레디 오어 낫 :: Ready or Not』입니다.     # 1. 르 도마스 일가는 엘리트 가문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스테레오 타입의 불안과 불만을 대변한다. 각각의 스트레스는 서로에 대한 미움으로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파국 속에서도 그레이스에 의해 살해된 사람이 없는 이유다. 그레이스의 엘리펀트건이 발사되지 않는 장면은 클리셰를 비트는 장르적 장치임과 동시에, 가족의 파멸과 그녀가 무관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비밀스러운 르 베일에 의한 것도 아니다. 토니는 전통과 계약이 중요한 듯 말하지만 필요하다면 cctv를 켜고, 규칙 밖의 피고용인을 동원하는 데, 모두 자신들을 ..

Horror 2024.11.20 0

북쪽의 사람들 _ 노스맨, 로버트 에거스 감독

# 0. 선량한 복수의 세계로 빨아 당기는 일렁임, 이글거림, 으르렁거림.        로버트 에거스 감독,『노스맨 :: The Northman』입니다.     # 1. 우리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즐기는 동안 올림푸스와 동시에 그런 상상을 만개하던 아고라를 함께 떠올린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으며 인생의 유한함을 고찰하면서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을 했던 그 옛날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자취를 함께 즐긴다. 히브리 신화를 읽는 동안 기독교 교리 아래로 당대 서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상을 상상하고, 단군신화를 배우며 쑥과 마늘의 이야기 이면에 담긴 오래전 한반도에 자리했던 조상들과의 문화적 연결성을 확인한다. 이처럼 신화가 특별한 건 이야기만큼이나 특별한 화자의 세계가 동시에 느껴진다는 것..

Drama 2024.11.18 1

Mystery & Thr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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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모임은 집에서 _ 트랩,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 0. 때가 되긴 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트랩 :: Trap』입니다.     # 1. 원래 샤말란의 영화가 그렇다. 참신한 판타지 아이디어와 과격한 반전 플롯 아래로 강력한 가족주의 드라마를 깔아 두는 것이다. 걸작 (1999)에서부터 망작 (2010)에 이르기까지 어긋나는 법이 없다. 문제는 아이디어와 드라마를 접합하는 퀄리티에 기복이 심하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마음처럼 풀리지 않을 때면 어린아이처럼 되지도 않는 억지까지 부려댄다는 점이다. 부활을 알렸던 (2015)로부터 얼추 10년. 쿨타임이 돌 때가 되긴 했다. 안 좋은 의미에서의 샤말란 말이다. (2016), (2019), (2021), (2023)까지 챙기는 시늉이라도 했던 최소한의 완성도는 신작과 함께 장렬히 무..

Mystery & Thriller 2024.11.08 0

어쩔 수 없는 악 _ 필스, 존 S. 베어드 감독

# 0. 어쩔 수 없는 악은 어찌해야 하나        존 S. 베어드 감독,『필스 :: Filth』입니다.     # 1. 으로 익히 알려진 스코티시 소설가 어빈 웰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익숙한 부패 경찰의 범죄 스릴러 위로 양극성장애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내면을 심도 있게 그린다. 1인극에 준할 정도로 작품을 혼자 견인하게 되는 주인공 브루스 로버트슨은 제임스 맥어보이가 연기했다. (2017) 못지않은 폭발력으로 표현된 정신적 문제에 시달리는 경찰의 이야기는, 현실과 착란과 윤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에게 흥미로움과 불쾌감을 동시에 제공한다. 다소 어지러운 표현에도 불구하고 플롯의 방향은 간명하다. 주인공의 내면을 파고들며 입체성을 보강해 악행의 원리에 다가가는 것이다. 캐릭터라는 원인을 먼저..

Mystery & Thriller 2024.10.28 0

카타르시스 _ 아일린,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 0.  콤플렉스의 교도소. 트라우마의 지하실. 성탄절의 카타르시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아일린 :: Eileen』입니다.     # 1. (2017)를 통해 억눌린 욕망과 반동을 서슬 푸른 광기로 그려낸 감독은, 차기작에서도 음습하고 내밀한 욕구를 억누르며 사는 여인 아일린에게 주목한다. 주인공 역은 세상의 모든 불안을 담고 있는 듯한 눈망울의 토마신 맥킨지가 맡았다. 레베카 역은 매 순간 관객의 시선을 장악하는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다. 오테사 모시페그의 원작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윌리엄 올드로이드는 뛰어난 두 배우와의 협업을 통해 엄격하고 배타적인 환경과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내면 사이 유리된 자아의 혼란을, 급작스러운 범죄 사건에 얹어 탐구한다. 아일린은 보수적인 1960년대 미국 ..

Mystery & Thriller 2024.10.26 0

Fuxxing Man _ 조커 폴리 아 되, 토드 필립스 감독

# 0. 그 ㅈ같았던 영화를 위한 사소한 변호        토드 필립스 감독,『조커 폴리 아 되 :: Joker Folie à Deux』입니다.     # 1. 당황스러운 영화다. 전작을 호평한 사람들이 느꼈을 이질적인 인상은 평가와 별개로 부정할 수 없다. 더 잘 만든 영화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전작, 1편이다. 담백하게 그쪽이 완성도가 더 높다. 개인적으로도 영화는 상당히 양가적인 감정으로 즐겼다. 대단히 ㅈ같은 영화이면서, 그렇기에 흥미로운 영화라는 것이 솔직한 양심이다. 리뷰한다면 내적인 디테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당장은 어색할 듯하다. 언젠가 적당한 시기가 있지 않을까. 뮤지컬 영화인 탓에 (2016)가 함께 거론되곤 하는 데, 사실 방법론적으로는 같은 감독의 (201..

Mystery & Thriller 2024.10.16 0

전갈과 개구리 _ 올드보이, 박찬욱 감독

# 0. 짐승으로 태어나 버린 외로운 존재들        박찬욱 감독,『올드보이 :: Old Boy』입니다.     # 1. 박찬욱에게 인간은 이성과 본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외롭고 괴로운 존재다. 이때의 이성이란 논리나 도덕, 문화, 규칙, 격식, 교양 등 인간이 스스로 만든 온갖 규범을 통할한다. 본성은 사랑, 믿음, 증오, 폭력, 모멸, 질투 등 근원을 알 수 없는 마음의 변화를 모두 포괄한다.  인간은 이성을 활용해 본성을 통제함으로써 스스로 동물과 구분되는 특별한 존재라 주장하지만, 박찬욱에게 이는 스스로 고결하다 느끼기 위해 만든 허구적 신화에 불과하다. 팬들에게 흔히 복수 3부작이라 일컬어지는 (2002), (2003), (2005)는 물론 (2009)와 (2016), 최근의 (2018)과 (..

Mystery & Thriller 2024.08.20 0

신의 주사위 놀이 _ 똑똑똑,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 0. 뭐시 중헌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똑똑똑 :: Knock at the Cabin』입니다.     # 1. 언제 봐도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바티스타와 그의 팔뚝만 한 귀여운 소녀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영화, 이다. 영화는 원천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떡밥과, 사실상 떡밥의 의인화나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쉴 새 없이 던진다. 그렇다면 그렇구나 하는 수밖에 없는 일방적인 세계관과, 늘 관객보다 두어 발짝 앞질러가는 불친절한 전개는 언제나와 같은 샤말란이다. 인류의 운명을 거론하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침입자 무리, 단란한 가족 중 한 명이 희생해야 70억 인류를 살릴 수 있다는 우악스러운 설정, 피해자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 스스로 자해하는 아이러니, 작지만 구체적..

Mystery & Thriller 2024.08.14 0

진실함에 대하여 _ 리스본행 야간열차, 빌레 아우구스트 감독

# 0. 진실한 정신과 관계, 그 무한한 가능성을 향한 낭만의 열차        빌레 아우구스트 감독,『리스본행 야간여행 :: Night Train to Lisbon』입니다.     # 1. 2013년에 개봉한 미스터리 스릴러 는 파스칼 메르시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감독은 빌레 아우구스트이며,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인공을 맡았다.  스위스의 고전문헌학 교수 그레고리우스가 우연히 빨간 코트의 여인을 구한 후, 그녀가 남긴 책 한 권을 계기로 리스본행 열차에 오르며 영화는 시작된다. 코트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책 의 저자 아마데우 드 프라두에게 큰 호기심을 느낀 교수는 수업도 내팽개친 채 충동적으로 그의 삶을 추적한다. 저자의 집을 찾은 그레고리우스는 여전히 저택을 지키는 여동생을 시작으로 아마데우의..

Mystery & Thriller 2024.08.02 0

Ho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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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저주 _ 레디 오어 낫, 맷 베티넬리-올핀 / 타일러 질레트 감독

# 0. 익숙한 통속극을 경쾌한 슬래셔 코미디로 전환하는 능숙한 솜씨        맷 베티넬리-올핀 / 타일러 질레트 감독,『레디 오어 낫 :: Ready or Not』입니다.     # 1. 르 도마스 일가는 엘리트 가문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스테레오 타입의 불안과 불만을 대변한다. 각각의 스트레스는 서로에 대한 미움으로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파국 속에서도 그레이스에 의해 살해된 사람이 없는 이유다. 그레이스의 엘리펀트건이 발사되지 않는 장면은 클리셰를 비트는 장르적 장치임과 동시에, 가족의 파멸과 그녀가 무관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비밀스러운 르 베일에 의한 것도 아니다. 토니는 전통과 계약이 중요한 듯 말하지만 필요하다면 cctv를 켜고, 규칙 밖의 피고용인을 동원하는 데, 모두 자신들을 ..

Horror 2024.11.20 0

너 홀로 집에 _ 맨 인 더 다크, 페드 알바레즈 감독

# 0. 더 이상 삶이 편리하지 않은 너 홀로 집에        페드 알바레즈 감독,『맨 인 더 다크 :: Don't Breathe』입니다.     # 1. 집주인과 침입자의 대치는 생각보다 흔한 플롯이나, 그중에서도 특히 (1990)의 영향을 크게 받은 듯하다. 고전 명작 를 리메이크한 바 있는 페드 알바레즈 감독의 영화는, 전반적으로 나 홀로 집에로부터 큰 틀을 가져오되 세부 설정을 모조리 뒤집어 놓은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의 핵심 재미가 인물의 관계보다 제한된 조건을 활용한 기믹인 것은 더없이 좋은 증거다. 기믹에 걸려 넘어지는 타인을 보면 코미디고, 기믹에 걸려 넘어지는 게 내가 되면 호러일 뿐이다. 어린아이 혼자 있는 집에 어른이 침입했던 것은 노인의 집에 미성숙한 소년이 침입하는 것으로 뒤바..

Horror 2024.10.22 0

시점의 전환 _ 밤낚시, 문병곤 감독

# 0. 사물과 생물을 구분 짓던 과거를 지나 마침내 펼쳐진 새로운 미래        문병곤 감독,『밤낚시 :: NIGHT FISHING』입니다.     # 1. 전기 털어먹고 다니는 미상의 비행체와, 정체불명의 낚시꾼이 벌이는 하룻밤 사투다. 고작 13분짜리에 손석구를 태운 영화는, 숏폼 트렌드에 발맞춰 멀티플렉스에 정식 상영된 단편으로 이목을 끌었다. cj뿐 아니라 현대자동차와 협업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염치도 없이 아이오닉 5가 크레디트에 올라가는 게 뻔뻔하긴 하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작위적이지 않게 녹아 있어 광고 영화 특유의 불쾌감은 덜 하다는 것이다. 〈세이프〉(2013) 이후 오랜만에 돌아온 문병곤 감독의 야심은 '시점의 전환을 통한 인식의 확장'이다. 영화는 일관되게 생물과 사물을 ..

Horror 2024.10.06 0

Papa, just killed a man _ 라이트하우스, 로버트 에거스 감독

# 0. 아빠. 방금 사람을 죽였어요.        로버트 에거스 감독,『라이트하우스 :: The Lighthouse』입니다.     # 1. 데뷔작 (2015) 보다 더 난감한 상징과 피학적 연출로 돌아온 호러다. 특유의 절망적인 각본과 음습한 묘사는 여전하다. 습기 가득한 공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캐릭터, 인물을 포획하는 화면, 신화적 모티브를 재구성한 스타일, 타협 없이 투철한 형식미는 지독하다. 두 주인공을 극단적 공간에 붙들어 매는 중력과 그 반동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원 없이 뿜어내는 배우의 열연, 최대치의 비장미를 더하는 흑백의 미술은 다소의 호불호와 별개로 이견이 없을 강점이다. 호러로 소개하긴 했지만 관객을 직접 자극하는 류는 아니다. 두 주인공, 특히 젊은 등대지기 에프라임 윈슬로(로버..

Horror 2024.09.20 0

최면은 세 번이었습니다만 _ 악마와의 토크쇼, 케인즈 형제 감독

# 0. 도대체 언제부터... 내가 최면을 걸지 않았다고 착각한 거지?        캐머런 케언스, 콜린 케언스 감독『악마와의 토크쇼 :: Late Night with the Devil』입니다.     # 1. 내레이터의 보이스오버가 주인공 잭 델로이의 배경을 설명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그는 인기 심야 토크쇼의 진행자로 능력과 야망을 겸비한 인물이지만, 전설적인 진행자 자니 카슨(Johnny Carson, 1925-2005)의 뒤에 가려진 만년 이인자다. 급작스런 아내의 죽음으로 극심한 슬럼프를 겪은 그는, 재기를 위해 오컬트 에피소드를 기획하며 승부수를 던진다. 사이비 종교의 생존자 릴리, 심령술사 크리스투, 초심리학자 준 로스-미첼, 트릭 파괴자 카마이클의 라인업은 영원히 역사에 남을 에피소드를 예고..

Horror 2024.05.22 0

트리뷰트 _ 황혼에서 새벽까지,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

# 0. 그 모든 의미에서 흘러넘치는 유쾌하고 자유로운 펄프 픽션의 피비린내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 『황혼에서 새벽까지 :: From Dusk till Dawn』입니다. # 1. 처음은 케이블 티브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폭력과 섹스와 유흥이 조합된 말초적 쾌락이 이렇게까지 과격하게 펼쳐질 수 있구나라는 감상은, 한 떨기 가녀린 소년에게 충분히 충격적인 것이었죠. 그렇게 한동안 잊고 지냈었는데요. 적당히 이런저런 경험이 쌓일 만큼 나이를 먹은 후 다시 볼 기회가 있었고. 지금은, 좋은 영화라는 평이 현학적인 작품들만 독점적으로 향유하는 것이라 여기던 고정관념을 깨부숴 준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괴상한 영화가 이렇게나 재미있다면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라는 고민이 며칠은 머릿속에서 ..

Horror 2023.11.16 0

꽃과 손 _ 부화, 한나 버그홀름 감독

# 0. 그 손에 담긴 마음을 들어 보자꾸나. 한나 버그홀름 감독, 『부화 :: Pahanhautoja』입니다. # 1. 호러라기에는 조금 애매합니다. 몇몇의 제한적인 점프스케어가 사실상 전부라 공포 영화를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죠. 오컬트의 분위기에 살짝 발을 담그는 듯도 하지만 이 역시 크리처의 디자인에만 선택적으로 적용될 뿐입니다. 영화는 과보호 환경에서 성장한 사춘기 소녀의 불안을 드라마틱하게 과장한 우화라 보는 것이 차라리 정확합니다. 알레고리는 제법 단편적이고 또 노골적이라 따라가는 것은 편안합니다. 실제 관객이 즐기게 되는 대부분은 미려하고 문학적인 서사 따위가 아닌, 주인공 티니아의 불안과 배우 시이리 솔랄리나의 열연이 차지하고 있죠. 영화는 가족을 '둥지'로 정의합니다...

Horror 2023.09.28 0

Com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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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의 촉감 _ 독, 웨스 앤더슨 감독

# 0. 결국 뱀에 물리고만 의사였다.        웨스 앤더슨 감독,『독 :: Poison』입니다.     # 1. 넷플릭스가 주도하고 웨스 앤더슨이 연출한 4편의 로알드 달 단편 프로젝트 중 하나다. 에서 자유로운 이야기의 역동성을, 에서 절륜한 문장력의 위력을 증명했던 감독은 을 통해 간결한 이야기로 녹여낸 인간 탐구를 서늘한 촉감으로 구현한다.  인도 땅에서 인도 뱀의 위협을 피해 인도 의사의 도움을 받게 된 영국 군인 해로 포프의 이야기다. 해리의 부름을 받은 우즈와 함께 영화는 시작되는 데 이후로도 우즈는 사건의 관찰자로서 화자를 겸한다. 침대에 곧게 누은 해리는 배 위에 치명적인 독을 가진 우산뱀이 잠들어 있어 옴짝달싹할 수 없다. 깜짝 놀란 우즈는 잠시의 혼란 끝에 의사 간더바이에게 도움을..

Comedy 2024.10.24 0

시그니처 아웃렛의 속셈 _ 데드 돈 다이, 짐 자무쉬 감독

# 0. 아 씨발, XXX 죽이고 싶네.        짐 자무쉬 감독,『데드 돈 다이 ::The Dead Don't Die』입니다.     # 1. 자필 서명을 뜻하던 시그니처(Signature)는 '개인이나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변별하게 하는 모든 것'으로 점차 그 의미가 확장되는 듯하다. 고급 의류 브랜드의 대표 라인업이나 디자인에 엄격한 몇몇의 공산품은 물론, 파인 다이닝의 시그니처 메뉴, 스포츠 스타의 시그니처 무브, 셀러비리티의 시그니처 픽 등은 좋은 예다. 유사한 의미에서 영화에도 수많은 시그니처가 존재한다. 멀리는 채플린의 콧수염과 버스터 키튼의 무표정부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웨스턴, 히치콕의 돌리 줌, 브루스 윌리스의 존 맥클레인, 웨스 앤더슨의 스타일과 에드가 라이트의 편집에 이르기까지 ..

Comedy 2024.10.10 0

나는 거절한다 _ 욕망의 모호한 대상, 루이스 브뉘엘 감독

# 0. 당신이 원하는 것을 주면 당신은 절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루이스 브뉘엘 감독『욕망의 모호한 대상 :: That Obscure Object of Desire』입니다.     # 1. 거장 루이스 브뉘엘(Luis Buñuel, 1900-1983)의 유작이다. 피에르 루이(Pierre Louys)의 (1898)를 원작으로 한다. 주인공은 중년의 부호 마티유(페르난도 레이 분), 매혹적인 여인 콘치타(카롤 부케/안젤라 몰리나 분)다. 주요 플롯은 집착적 사랑을 기망당한 마티유가 기차 안 사람들에게 고발하는 동안의 플래시백이다. 영화는 제목처럼 욕망의 본질을 탐구한다. 욕망의 주체와 타인의 대상화, 결핍 및 폭력과의 관계성 따위를 특유의 초현실주의적 문법과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풀어낸 걸..

Comedy 2024.09.12 0

하늘을 보는 사람 _ 노 맨스 랜드, 다니스 타노비치 감독

# 0.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이 없는 세계        다니스 타노비치 감독,『노 맨스 랜드 :: No Man's Land』입니다.     # 1. 보스니아 전쟁의 역학적 관계를 비무장지대에 고립된 인물들로 치환한 실험극으로, 전쟁의 참상과 부조리를 염세적인 시선에서 내려다보는 일종의 우화다. 보스니아 지원병 치키, 세르비아 군 신참 니노, 지뢰 위에 붙잡힌 체라의 이야기는 자조적인 블랙 코미디와 전쟁 드라마로서의 균형이 돋보인다.  세계 각지, 특히 제1 세계 밖의 전쟁 당사자가 느낄 감각을 일반론적으로 통찰한다는 면에서 그 의의가 있다. 한국의 외교적 입지 상 1 세계적 관점에서 세계사를 교육받게 되는 데, 그것을 재고하게 만든다는 것은 이색적인 경험으로, 이는 접근이 쉬운 영미권 외의 영화를 애써..

Comedy 2024.08.24 0

잘 자요 _ 드림 시나리오,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

# 0. 잘 자요.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드림 시나리오 :: Dream Scenario』입니다.     # 1. 정갈한 머리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매일밤 꿈속에 나타나 당신을 지긋이 바라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 니콜라스 케이지의 꿈을 수많은 세상 사람들이 똑같이 꾼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심지어 갑자기 꿈속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도발적 상상의 판타지 영화 는 (2002)로 데뷔한 크리스토퍼 보글리의 차기작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 역시 창의적인 설정과 도발적인 표현, 유쾌한 코미디 이면엔 알싸한 풍자가 가득하다. 주연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맡았다. (2021)에서 보여줬던 과격하고 야생적인 모습과 대조되는 소심하고 찌질한 연기를..

Comedy 2024.07.10 0

이유와 방법 _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 아리안 감독

# 0.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아리안 루이-세즈 플루프 감독,『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입니다.     # 1. 사람을 불쌍히 여겨 피를 빨지 못하는 뱀파이어 사샤와,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죽고 싶은 인간 폴의 이야기다. 굶주린 그녀를 위해 대신 죽어주겠다는 폴이지만 마음 여린 사샤는 소년을 헤치지 못한다. 대신 소년에게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하자 말하는데, 그러면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피를 빨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년은 자신을 괴롭히던 또래들과 이를 방치하던 교사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고, 마지막으로 메인 빌런인 앙리에게 복수하려 하지만 역으로 된통 당하고 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샤는 순간 이성을 잃고 앙리를 공격, 처음으로 사람을 ..

Comedy 2024.07.04 0

현대영화 _ 킬 룸, 니콜 페이온 감독

# 0. 어. 느새. 부터. 미. 술~~ 은 안 멋져.        니콜 페이온 감독,『킬 룸 :: The Kill Room』입니다.     # 1. 현대미술이 영화에 머리채를 잡히는 건 연례행사다. 끝없이 관념적으로 뻗어나가는 현대미술 일체를 스노비즘(snobbism)으로 치부하거나, 부자들의 친목 모임 뒤에 숨겨진 재산 은닉과 탈세에 복무하는 시종이라 조롱하는 식이다. 때문에 제 아무리 이런저런 킬링포인트를 추가한다 하더라도 큰 틀에서의 작동은 죄다 거기서 거기다. 예술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이 대충 만든 작품을 미끼로 던져 놓은 후, 그 황당한 작품에 허망한 형용을 난사하는 업계를 조소하는 구조로 흘러간다. 코미디언 장동민이 잭슨 폴록의 드리핑을 흉내 낸 그림에 미학자 진중권이 진땀 흘렸던 모 예능을..

Comedy 2024.07.02 0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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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짓 _ 더 로버, 데이비드 미쇼 감독

# 0. 세상이 대충 망한 뒤 지금 이 시대에서 건(gun)법으로 나를 막을 자는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미쇼 감독,『더 로버 :: The Rover』입니다.     # 1. 또포칼립스다. 이쯤 되면 망하지 않은 세상이 역으로 잘못된 건가 싶다. 낡은 차량 안에서 간신히 평온을 얻는 남자, 건조한 모래바람 몰아치는 황량한 들판, 정체 모를 중화풍 음악으로 소개되는 호주는,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망해도 단단히 망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수상할 정도로 총을 잘 쏘는 농부 에릭은 가이 피어스가 연기한다. 살아있는 채권 겸 생체 내비게이션 레이는 이제 막 트와일라잇을 벗어던지던 무렵의 로버트 패틴슨이 맡았다. 이기적인 스타일과 과장된 호흡의 느려터진 영화는 미친듯한 호불호를 유발하나, 마..

Action 2024.11.14 0

시민의 의무 _ 더 커버넌트, 가이 리치 감독

# 0. 가이 리치가 이런 영화도 만들 줄 알았나        가이 리치 감독,『더 커버넌트 :: Guy Ritchie's The Covenant』입니다.     # 1. 자잘한 이야기를 리드미컬하게 썰어 들어가길 즐기던 가이 리치에게 이런 면도 있었던 걸까. 제이크 질렌할과 다르 살림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영화는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굵고 선명한 이야기를 힘껏 끌고 가는 맛이 인상적이다. 보통의 영화에서 큰 선택은 큰 동기에 의해 일어난다. 큰 희생을 통해 큰 우정을 표현한다거나 큰 결단을 통해 큰 신념을 관철하는 식이다. 반면 시작부터 삐걱거렸던 파견 군인과 현지 통역사의 브로맨스는 큰 행동을 움직이게 만드는 작은 동기에 대한 영화다.  영화가 포착하는 작은 동기란 제목에도 적시된 '계약'으로, 상대적..

Action 2024.11.10 0

호연지기 _ 하드코어 헨리,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

# 0. 다른 영화들의 고민을 초라하게 만드는 호방한 야심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하드코어 헨리 :: Hardcore Henry』입니다.     # 1. 친근한 동네 상영관에서는 모든 영화가 훌륭하지만, 한껏 힘 준 아이맥스에서 봐야 한다면 그래도 이나 , 정도는 봐야 돈값한 느낌이 든다. 문턱을 넘는 것만으로도 시네필이 된 것 같은 소극장에선 의무감으로라도 인디 영화를 봐야만 할 것만 같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인 캠핑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왁자지껄함도 품어 줄 넉넉한 코미디가 좋다. 오붓한 연인들의 자동차 극장에서는 만 한 것이 없다.  만만한 우리 집 거실에선 중간 즈음의 이나 가 방송되어 길 잃은 리모컨을 쉬게 한다. 시골 할머니 집 낡은 브라운관에서는 오래된 홍콩 영화 혹은 가 제..

Action 2024.10.20 0

육조거리의 무녀 _ 전, 란, 김상만 감독

# 0. 붉게 타오르는 분노와 푸르게 침몰하는 희망 사이에서 체제를 논할 뻔하다.        김상만 감독,『전, 란 :: Uprising』입니다.     # 1. 주인공은 강동원의 천영도, 박정민의 종려도 아니다. 신분제를 포함한 조선의 법도라는 체제(體制)다. 인물들은 체제를 대하는 각기 다른 방식들로 분류되어 배치되어 있고, 액션은 체제에 대응하는 방식들 간의 갈등 관계를 물리적으로 대신할 따름이다. 때문에 보다 보면 전혀 다른 장르임에도 마틴 맥도나의 (2022)가 계속 머리에 맴돈다. 허무를 대하는 각각의 방법론을 개인에 투사해 그 관계를 관찰했던 것과, 본 작이 체제를 대하는 방식은 제법 유사하다. 허무를 놓고 절친이 피 흘리던 영화의 제목을 이니셰린의 벤시라 한다면, 체제를 놓고 절친이 피 ..

Action 2024.10.18 0

상쾌한 주객전도 _ 메이헴, 조 린치 감독

# 0. 솔직해서 오히려 상쾌한 메시지와 스타일의 주객전도        조 린치 감독,『메이헴 :: Mayhem』입니다.     # 1. 분노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인해 8시간 동안 격리된 회사에서 벌어진 광기의 살육극이다. 모함으로 해고된 변호사 데릭 조(스티븐 연 분)와 부당한 계약의 피해자 멜리나 크로스(사마라 위빙 분)가 협력해 최상층의 메인 빌런 존 타워스(스티븐 브랜드 분)를 무찌른다는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서사다. 영화의 동력은 크게 둘을 꼽을 수 있다. 천민자본주의적이고 성과지상주의적인 기업 문화에 대한 과격한 비판으로서의 액션과, 소모품과 다를 바 없는 직장인에 대한 자조적 연민으로서의 코미디다. 승진을 위해 서로를 밟고 음해하는 불공정한 약육강식에 노출된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과장된 폭..

Action 2024.09.28 0

캡사이신 우유 _ 렌필드, 크리스 맥케이 감독

# 0. 유리멘탈 현대인을 위한 다정하고 매콤한 캡사이신 우유        크리스 맥케이 감독,『렌필드 :: Renfield』입니다.     # 1. 브램 스토커(Bram Stoker)의 소설 (1897)의 등장인물 렌필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호러, 코미디, 액션, 판타지 영화다. 한창 유행인 리메이크나 리부트가 아닌 보조적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는 것, 특히 외전 격의 이야기 대신 기존 서사를 전복시켜 독자적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에 도전했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영화는 야심에 걸맞게 고전의 고풍스럽고 음습한 분위기를 대신하는 컬트적이고 경쾌한 현대적인 모습이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말이다. 감독은 드라큘라 신화를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와 종속 관계에 대한 알레고리로 재해석한다. 드라큘라와 렌..

Action 2024.09.08 0

당나귀와 코끼리 _ 킬링 소프틀리,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

# 0. 비겁하고 야비한 당나귀이기적하고 잔인한 코끼리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킬링 소프틀리 :: Killing Them Softly』입니다.     # 1. 버락 오바마의 연설로 시작되는 영화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숨길 생각이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겁 없이 도박장을 턴 두 도둑과 그들을 쫓는 살인청부업자의 네오 누아르지만, 이면엔 부시 말기부터 오바마 초기까지의 혼란스러운 미국 사회를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로 가득하다. 수다스러운 걸쭉한 농담과 드라마틱한 액션 연출의 매력이 분명한 작품이다. 다만 주연이자 제작자이기도 한 브래드 피트가 진단하는 미국에 대한 날 선 시선은 때론 너무 노골적이고 감정적이라 영화를 시시하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 마지막 대사는 문장의 완성도와 별개로 굳이 ..

Action 2024.08.28 0

SF &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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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을 거라는 격려, 마음을 담은 헌사 _ 소스 코드, 덩컨 존스 감독

# 0. Everything is gonna be okay.Thank you for your service.        덩컨 존스 감독,『소스 코드 :: Source Code』입니다.     # 1. 10년도 더 지난 영화의 플롯을 이제와 설명하는 건 지루하다. 러틀리지 박사의 설정놀음을 걷어내고 나면, 결국 통 속의 뇌에다 죽은 사람의 기억을 접붙이기한 후 파생되는 문제들은 평행우주로 돌파했을 뿐이다. 물론 창의적이고 도발적인 발상, 스피디한 편집과 미술적 성취, 제이크 질렌할의 불안과 소명, 미셸 모나한의 사랑스러움, 백투백 홈런을 날리는 듯한 반전 카타르시스는 인정받아 마땅한 것임에 분명하지만 말이다. 다만 의외인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키스신에서 영화를 끝냈으면 좋았을 것이라 이야기..

SF & Fantasy 2024.08.30 0

이자나미 _ 인피니트 맨, 휴 설리번 감독

# 0. 금단의 환술을 벗어날 방법은 초콜릿과 꽃 한 송이        휴 설리번 감독,『인피니트 맨 :: The Infinite Man』입니다.     # 1. 시간과 자아의 복잡한 관계를 독특한 시각으로 탐구한 영화 은 제1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프로그래머 추천작 중 하나다. 가난하지만 재기 발랄한 호주 감독은 황량한 들판에 놓인 폐모텔 한 채와, 독특하다는 말도 부족한 이상한 인물 셋을 동원해 난해한 시간 여행 패러독스 속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천재과학자 딘은 괴팍한 완벽주의자다. 연인 라나와의 황홀했던 기념일을 벽에 걸린 액자처럼 완벽하게 재현하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풍화된 세계는 딘의 집착을 허락하지 않는다. 완벽했어야 할 기념일이 최악의 하루로 치달아버린 것에 좌절한 딘은 ..

SF & Fantasy 2024.07.30 0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 _ 마션, 리들리 스콧 감독

# 0. I'm pretty much fucked.That's my considered opinion.Fucked.        리들리 스콧 감독,『마션 :: The Martian』입니다.     # 1.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 희대의 명문으로 시작하는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마션은 주인공의 숙고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시작된다. 우주 탐사 중 예기치 못한 폭풍으로 홀로 화성에 남겨진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우주 모험을 넘어 인간의 생존 의지와 연대의 가치를 탐구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장르를 선언적으로 보여준다. 일상적인 탐사대의 활동이 갑작스러운 모래폭풍으로 인해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장면은, 관객을 긴장감 ..

SF & Fantasy 2024.07.24 0

쉬운 길 찾기 _ 로봇이 아닙니다., 강예솔 감독

# 0. 쉬운 길을 어려운 일인 양 주행한다.        강예솔 감독,『로봇이 아닙니다. :: I’m not a Robot.』입니다.     # 1. 문장형의 제목은 썩 익숙하다. reCAPTCHA 테스트의 문구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리캡챠는 봇을 필터링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되지만, 오히려 인간이 로봇이 아님을 시험받는 구조로 짜인 테스트다. 역설적이게도 시행하는 인간의 인간스러운 선택과 인간스러운 움직임을 심사하는 주체는 온전히 프로그램이고 말이다. 목적이 목적이니만큼 리캡챠를 누르다 보면 애매한 시험들도 자주 만나게 된다. 계단을 누르라는 데 살짝 삐져나온 칸은 골라야 하는 걸까, 고르지 않아야 하는 걸까. 표지판을 골라야 하는 데 표지판의 봉은 골라야 하는 걸까, 고르지 않아야 하는 걸..

SF & Fantasy 2024.07.06 0

씨앗은 어디로 틔울까 _ 루퍼, 라이언 존슨 감독

# 0.  화려한 상상과 호쾌한 액션으로 역사를 통찰한다.        라이언 존슨 감독,『루퍼 :: Looper』입니다.     # 1. '선택'이라는 기준에서 보자면 영화는 생각보다 더 단순하다. 자신이 살기 위해 절친을 팔았던 사람이, 아무 연고 없는 세라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야기라고 말이다. 인생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수수밭과 같고,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라는 선택의 과정이다. 조는 방탕하고 쾌락적인 인생에 집착하는 보신주의적 인물로, 삶에 대한 태도는 지하실에 숨겨둔 은괴 가득한 금고가 증언한다. 과거의 조가 세라에게 수수밭을 태워버리자 말하는 대목이 있는 데, 이는 그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다. 불안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신의 내일을 태워버리는 어리석음이고, 그 ..

SF & Fantasy 2024.06.04 0

뱀파이어 힐스 _ 죽어야 사는 여자,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 0. 50대 중년에겐 두 갈래 길이 있다. 40대처럼 보이려 발버둥 치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죽어야 사는 여자 :: Death Becomes Her』입니다. # 1. 가끔은 아쉽다. 50대 중년에게 '멋진 50대가 된다'라는 선택지는 정녕 없는 걸까. 만약 그런 선택지가 있었다면 40대처럼 보이려 발버둥 치는 사람은 조금 덜 괴롭지 않았을까. 자조적으로 포기해 버린 사람도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예로 든 것일 뿐 비단 50대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젊어 보인다는 말이 칭찬으로 통용되는 것은 세대를 막론한다. 40대는 30대로 보이고 싶어 하고, 30대는 20대로 보이고 싶어 하고, 20대는 10대로 보이고 싶어 한다. 이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은..

SF & Fantasy 2024.04.20 0

간택 _ 엘레나, 정민지 감독

# 0. 아니, 솔직히 억울합니다. 정민지 감독, 『엘레나 :: Elena』입니다. # 1. 익숙한 아파트 단지. 우이천 산책로. 맑은 하늘 아래 평화로이 흐르는 강물. 단아한 징검다리. 회색 옷의 주인공. 엘레나. 관객에게 인사하려는 찰나 어깨를 부딪히는 누군가. 사과하지 않고, 옆을 지나는 다른 사람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어깨에 묻은 작은 먼지를 덜어내는 깔끔함. 나 요새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 이름은 순자. 그녀에겐 짝이 없다는 소식을 알아냈어. 친절한 웃음의 순자는 중년의 여성. 다리 아래로 시퀀스가 옮겨간다. 반만 먹고 남겨진 옥수수. 엘레나와 비슷한 회색 옷을 입은 세 명의 친구. 알갱이를 나눠주며 대화한다. 산책하는 개? 사료 먹고 편하게 사는 애들 질투하는 거 아니야?! 에서 센스가 ..

SF & Fantasy 2024.04.08 0

D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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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의 사람들 _ 노스맨, 로버트 에거스 감독

# 0. 선량한 복수의 세계로 빨아 당기는 일렁임, 이글거림, 으르렁거림.        로버트 에거스 감독,『노스맨 :: The Northman』입니다.     # 1. 우리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즐기는 동안 올림푸스와 동시에 그런 상상을 만개하던 아고라를 함께 떠올린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으며 인생의 유한함을 고찰하면서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을 했던 그 옛날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자취를 함께 즐긴다. 히브리 신화를 읽는 동안 기독교 교리 아래로 당대 서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상을 상상하고, 단군신화를 배우며 쑥과 마늘의 이야기 이면에 담긴 오래전 한반도에 자리했던 조상들과의 문화적 연결성을 확인한다. 이처럼 신화가 특별한 건 이야기만큼이나 특별한 화자의 세계가 동시에 느껴진다는 것..

Drama 2024.11.18 1

단단해지기 _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이시바시 유호 감독

# 0. 단단해지기를(을) 사용했다!효과는 굉장했다!        이시바시 유호 감독,『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 朝がくるとむなしくなる』입니다.     # 1. 평범하게 소박한 이이츠카의 이야기는 솔직함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에게 당연하고 평화로울 아침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애써 커튼을 당기듯 스스로 거짓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거짓이란 타인을 향한 거짓과 자신을 향한 거짓을 모두 의미한다. 흔히 모든 거짓은 이기적이라 생각하지만 오해다.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있다 숨기는 거짓말은 유리한 것이지만, 그런 자신의 인생에서 채워진 것으로서의 대견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건 불리한 거짓말이다. 대부분의 거짓말이 유리함에도 어떤 거짓말들이 그렇지 않은 건, 그들에겐 거짓이 아플지언정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방..

Drama 2024.11.12 0

시간과 격려 _ 라스트 버스, 질리스 맥키넌 감독

# 0. 맞닥뜨리는 죽음에서 받아들이는 죽음으로        질리스 맥키넌 감독,『라스트 버스 :: The Last Bus』입니다.     # 1. 시작과 출발이 정해진 노인의 여행은 무릇 인생을 은유하기 마련이나, 티모시 스폴의 이야기는 다소 이질적이다. 아내의 죽음에서 시작해 자신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면에서, 탄생에서 죽음까지 훑어나가는 '인생'보다는 '죽음'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것에 가깝다. 또한 죽음에도 서사가 있으며, 출발점으로서의 죽음과 도착점으로서의 죽음이 달리 존재함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입에서부터 그러하듯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관한 것이다. 브리튼섬 서남단 랜즈엔드(Lands' End)에서 시작된 사랑이 동북단 존 오그로츠(John o' Groats)로 숨어든 것은 눈에 넣..

Drama 2024.11.02 0

길 잃은 남자 _ 고립된 남자, 바실리스 카추피스 감독

# 0.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바실리스 카추피스 감독,『고립된 남자 :: Inside』입니다.     # 1. 고백하자면 나는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보는 동안 적어도 두어 번 이상 길을 잃었다. 이후의 글은 그 과정만을 간신히 옮긴 것이다.  자, 일단 스릴러는 아니다. 주인공은 처음 보는 늙은 도둑이고, 그의 위기를 걱정해야 할 동인이 없는 상황에서 긴장은 성립할 수가 없다. 호화로운 펜트하우스에 갇혀 말라죽어가는 윌렘 데포를 보며 안타까워할 사람보다는 연기에 감탄할 사람이 훨씬 많을 거라 예상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실험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작위적 환경과, 감상을 어지럽히는 난해한 암시 탓에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면의 알레고리를 탐색하게 되는 데, 감독은 그 부분에서 ..

Drama 2024.10.14 0

규범을 회의하는 두 개의 눈 _ 가여운 것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 0. 바라보는 눈과, 바라보는 눈을 바라보는 눈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가여운 것들 :: Poor Things』입니다.     # 1. 요르고스 란티모스다. 여지없이 과격하고 기괴한 스타일이지만, 진정 궁금한 것은 이번엔 또 어떤 관념에 도전하고 있을까라는 것이다. (2009)를 통해 언어와 사고 체계의 상관관계를 재고하고, (2015)를 통해 자아와 관계의 함의를 탐구했던 감독은, 야심 찬 엠마 스톤과 함께 규범과 사상을 회의한다. 단순히 규범을 어기는 일탈이 아니다. 규범을 어기는 것은 기존의 규범에 반하는 형태로 종속된 새로운 규범을 실천함이고, 이는 그가 어떤 명분과 대안을 제시하는 지와 무관하게 여전히 규범적이다. 란티모스는 규범이라는 것 그 자체에 대해 가치중립적으로 주목하고..

Drama 2024.10.08 0

그녀 _ 행복, 아녜스 바르다 감독

# 0. 모든 면에서 그녀, 아녜스 바르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행복 :: Le bonheur』입니다.     # 1. 남자 프랑수아는 도덕적으로 파탄한 인물임에 분명하나 그것은 전혀 논쟁적이지 않은 것이기에 매몰되는 것은 시시하다. 오히려 외도보다 중요한 것은 외도하는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작품이 이질적인 것은 프랑수아의 외도에도 불구하고 아내에 대한 불만이나 권태, 불성실을 연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전히 아내와 가족을 사랑하고 그로부터 큰 행복을 얻고 있지만, 새로운 여자 에밀리로 인해 추가적인 행복을 얻을 수 있었고, 그것이 행복의 총량을 증진시켰을 뿐이라는 식이다. 프랑수아를 정의하자면 '지극히 행복지향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인생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라는 명제를..

Drama 2024.10.02 0

통제하는 눈빛과 다그치는 목소리 _ 황혼의 빛,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 0. 코이스티넨.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황혼의 빛 :: Lights in the Dusk』입니다.     # 1. 소외된 인간을 향한 연민과, 인간 소외를 강요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고유한 스타일로 풀어내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2006년작이다. 네오리얼리즘적 전통에 특유의 북유럽 감성을 더해 새로운 영화 언어를 창조했다 평가되는 감독은, 언제나 북유럽 노동자의 구체적 현실을 배경으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주변화된 인간을 담백하게 건조하게, 그럼에도 섬세하게 포착한다. 브레히트나 소격효과 같은 식상한 이름을 빌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구나 위화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의 필모그래피는 이질적이다. 작품의 연대를 추측하는 게 힘들 정도의 미니멀리즘은 비단 이야기뿐 아니라 캐..

Drama 2024.09.24 0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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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사랑의 빛과 어둠 _ 롤라, 자크 드미 감독

# 0.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 _ 작가 이기주        자크 드미 감독,『롤라 :: Lola』입니다.     # 1. 진부한 표현이지만.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것이다. 고약한 사랑은 제멋대로 나타나 제멋대로 싹트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처지인지, 사랑받는 사람이 어떤 처지인지에도 관심은 없다. 우연히 들린 출장지에서, 우연히 걷던 길가에서, 우연히 찾은 서점에서 만난 사람과 언제든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당장 다음 출항지로 떠나야 하는 수병의 사정도, 급작스레 직장을 잃고 해외로 나가게 된 백수의 사정도, 7년씩이나 아내를 찾아올 수 없었던 남자의 사정도 아랑곳 않는다.  그때와 다른 시간에 만났더라면 우리의 사랑은 달랐을까. 그때와 다른 곳에서 시작했더라..

Romance 2024.09.16 0

감독놀음 _ 은밀한 공범, 죠죠 히데오 감독

# 0. 평범한 소재로 비범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있지만,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내다 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죠죠 히데오 감독, 『은밀한 공범 :: 恋のいばら』입니다. # 1. 은 수입사가 지어 붙인 이름입니다. 원제는 恋のいばら. 그러니까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군요. 참고로 영어 제목은 Thorns of Beauty인데요. 이쪽이 그나마 더 직역에 가까운 번역이기는 합니다. 실제 영화의 핵심은 '가시'로 은유된 각자의 마음에 있다는 면에서, 관계 중심적인 뉘앙스가 강한 '공범'이라는 우리말 제목은 썩 정밀해 보이지는 않죠. 양가적 감정에 놓인 두 여자의 갈등을 그린 작품입니다. 원제에 긍부정이 배치되는 두 개념을 접붙여둔 이유죠. 모모는 켄타로에게 집착과 파괴를 함께 느낍니다. 수차례 복제하고 ..

Romance 2024.03.30 0

도메크의 망원경 _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 0. 마그다의 정신을 들여다보는 도메크의 망원경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 A Short Film About Love』입니다. # 1. 어지간한 변태가 아니고서야 이름 외우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생소하신 분들도 이나, 시리즈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그 작품들 만든 동유럽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이죠. 30여 년 전, 성경의 십계를 주제로 각색 제작된 데칼로그(Dekalog)라는 폴란드 Tv시리즈가 있었는데요. 그중 6번째, 간음을 주제로 한 에피소드에 분량을 추가 개봉한 작품입니다. 관음은 작품의 핵심적인 설정입니다. 멀리는 히치콕의 이창, 가까이는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에 이르기까지 엿보기는 에로스를 다룬..

Romance 2024.03.04 0

결혼 바이럴 _ 조립, 신택수 감독

# 0. 여름밤, 부부는 완수해야 할 과제가 있다. (2019년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신택수 감독, 『조립 :: assembly』입니다. # 1. 감독은 평범한 사람들의 결혼 생활이라는 것을 크게 세 가지 감정으로 규정합니다. 비좁다. 피로하다. 그럼에도 사랑한다. # 2. 창백한 도시는 피로감을 상징합니다. 멀찌감치 지나는 지하철을 내려다보는 구도로 담아 그들의 삶을 작고 소소한 것으로 연출합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트인 공간을 걷는 장면은 의식적으로 생략됩니다. 곧장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에 인물을 집어넣고 그마저도 구석에 몰아 고립시킵니다. 인물을 거울에 반사시켜 안 그래도 좁은 공간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킵니다. 지쳐 고개를 숙이는 순간 거울 너머 함께 고..

Romance 2023.12.14 0

푸른 밤의 사색 _ 여섯 개의 밤, 최창환 감독

# 0. 모든 여행은 여행자가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목적지가 있다. 최창환 감독, 『여섯 개의 밤 :: The Layover』입니다. # 1. 오스트리아 철학자 마틴 부버의 글귀와 함께 시작됩니다. 해당 글귀를 인용함은,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여행자로 규정한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작품을 통해 탐구하고자 하는 바가 눈에 드러나는 목표가 아닌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목적지'라는 것에 있음을 의미하는 거겠죠. 알 수 없다는 것은 통제 불가능한 불확실성을 의미할 텐데요. 예측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개인의 나약함으로도, 계획 밖의 영역에 대한 가능성과 풍요로움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영화가 탐구하려는 목적지란 것이 문자 그대로의 장소라거나 성취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타인과 함께 하는 ..

Romance 2023.11.12 0

헤어진 그녀와의 인터뷰 _ 선우와 익준, 양익준 감독

# 0. 찰나의 감정마저 이토록 두터운데 양익준 감독, 『선우와 익준 :: Sunwoo and Ikjune』입니다. # 1. 선우와 익준은 함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자, 9년을 만난 연인입니다. 두 사람은 익숙함과 별개로 지나온 긴 시간만큼의 차이를 가지고 있고, 이는 오프닝에서부터 시선, 표정, 자세, 동선, 걸음의 속도, 배경 등 다양한 표현을 통해 부드럽게 은유됩니다. 오늘은 여자 수인이 남자 재석에게 이별을 고하는 신을 촬영하는 날. 두 사람은 완만한 오르막을 무겁게 걸으며 잠시 후 있을 촬영에 대해 논의합니다. 선우는 헤어지자 말하는 여자 수인을 두둔합니다. 익준은 그런 수인의 잔인함을 지적합니다. 촬영이 진행되고 감독 선우는 배우들과 대화를 나누는 데요. 수인 역의 진서는 되려 수인이 비겁한 ..

Romance 2023.10.10 2

그녀의 고백 _ 흐르는 대로, 치쿠마 야스토모 감독

# 0. 숨겨뒀던 책갈피를 꺼내다. 치쿠마 야스토모 감독, 『흐르는 대로 :: の方へ、流れる』입니다. # 1. 오프닝입니다. 흔들리는 버스 손잡이에 간신히 매달린 손은 연약함과 위태로움 따위를 은유합니다. 창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은 거대한 흐름을 의미합니다. 무엇이 지나간 건지 모를 정도의 빠른 속도와, 흘러가는 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수동성이죠. 이내 여자의 뒷모습이 카메라에 길게 담깁니다. 뒷모습은 숨겨뒀던 솔직한 마음일 수도 혹은 뒤돌아 서있게 만드는 부끄러운 치부일 수도 있을 겁니다. 여자 옆에 한 남자가 섭니다. 여자는 어깨너머로 책을 훔쳐봅니다. 두터운 책의 두께는 사연의 깊이, 몰래 훔쳐보는 것에서는 느슨한 호기심이 발견됩니다. 책갈피입니다. 흘러가던 흐름을 잘라 멈춰 세우는 도구. 삶의 ..

Romance 2023.09.22 0

Ani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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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순간 _ 와일드 로봇, 크리스 샌더스 감독

# 0. 올해 가장 경이로운 순간 중 하나가 아닐까.        크리스 샌더스 감독,『와일드 로봇 :: The Wild Robot』입니다.     # 1. 언젠가부터 영화에 완벽이란 말을 붙이는 걸 꺼려함에도, 숨겨지지 않는 사랑과 재채기처럼 찬사를 가릴 도리가 없다. 올라가는 앤딩 크레디트를 보며 확신한다. 언제나처럼 좋은 영화를 많이 본 한 해지만 올해의 애니메이션은 이 작품, 와일드 로봇이다.  특별히 모자라거나 과한 바 없는 영화는 완벽이란 평가가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 탁월하다. 드림웍스 최고작이란 평가엔 이견의 여지조차 없고, 적당한 시간이 흘러 2020년대에는 어떤 영화들이 만들어졌는가 물었을 때 그 대답에 들어가더라도 부족함이 없다. 그때의 인류는 어떤 시점에서 어떤 생각과 어떤 고민 끝에..

Animation 2024.11.06 0

죽음에 관하여 _ 피노키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 0. 고르는 것과 남겨진 것으로 말하는 유한한 생명에 대하여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피노키오 :: Pinocchio』입니다.      # 1. 생동감 넘치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관한 영화다. 다정한 부자의 이야기는 아들 카를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시작한다. 제페토의 소나무는 카를로의 죽음 위에 피어난 존재고, 피노키오는 다시 그 소나무를 베어 쓰러트린 죽음에서 태어난 존재다. 이후로도 누구와 만나 무슨 일을 겪는가와 별개로 단계마다 피노키오는 죽었다 살아나길 반복한다. 죽지 않는 피노키오가 그럼에도 죽음을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제페토를 죽음으로부터 구하기 위해서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가 인간이 됨은 돋아난 새살이 아닌 오직 '죽음'으로서 증명된다. 귀뚜라..

Animation 2024.10.12 0

뚜찌빠찌뽀찌 _ 미니언즈, 카일 볼다 / 피에르 코팽 감독

# 0. 몰리카노~ 마케라로젠보~보케라도빠찌~~~~~~ 오페라도비~~마~~ 키~~~~~~        카일 볼다 / 피에르 코팽 감독,『미니언즈 :: Minions』입니다.     # 1. 자원과 기술이 흘러넘치는 시대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굳이, 억지로 일부러 아득바득 흑백 영화를 만든다면 만든 놈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미친놈일 가능성이 높다. 시간을 쓰는 사랑과 기다림의 의의, 죄책감과 남성성의 프로이트적 분석을 그린 영화를 두 편 연속 보고 나면,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쉬어갈 필요가 생긴다.  자크 드미와 로버트 에거스의 연타로 인한 심신 미약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선 적절한 처방이 필요했고, 그럴 때면 다 때려죽이는 액션 혹은 귀염뽀짝 애니메이션이 딱이다. 오늘의 알약은 D..

Animation 2024.09.22 0

꿈과 광기의 세계 _ 영화 너무 좋아 폼포 씨, 히라오 타카유키 감독

# 0. ようこそ。夢と狂気の世界へ。        히라오 타카유키 감독,『영화 너무 좋아 폼포 씨 :: Pompo, The Cinephile』입니다.     # 1. 제목처럼 진솔한 영화는 말랑말랑한 표현과 달리 영화 제작의 세계를 진지하게 묘사한다. 우연히 기회를 얻은 젊은 영화인의 이야기 이면엔, 예술과 상업의 균형, 이상과 현실의 조율, 협업과 성장의 가치 등이 폭넓게 다뤄진다.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작품은 비단 영화뿐 아니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통용될 선량한 응원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작품이 정의하는 영화를 만들고 보는 행위의 의의로 환원된다. 폼포는 '날'리우드가 주목하는 천재 프로듀서다. 그녀는 예리한 직관과 산업에 대한 통찰을 가진 인물로, 진과 진의 눈을 빌린 관객들로 하여금 상업..

Animation 2024.09.06 2

뮤-비 _ 스터질 심프슨의 사운드 & 퓨어리, 마이클 아리아스 감독 외

# 0. 가끔은 이런 류도 나쁘지 않지.        마이클 아리아스 감독 외,『스터질 심프슨의 사운드 & 퓨어리』입니다.     # 1. 스터질 심프슨(Sturgill Simpson)은 미국 켄터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할 수도 있지만 21세기 미국 컨트리 음악을 선도하는 뮤지션으로 평가되는 나름 월클이(라고 한)다.  2013년 데뷔 앨범 을 통해 세상에 등장한 후 두 번째 앨범 을 통해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입지를 넓혔다. 연이어 2016년에 발표된 세 번째 앨범 는 그레이 어워드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오른다. 과거 해군 시절 경험과 아버지와의 삶을 녹여낸 것으로 알려진 앨범은, 직전의 두 번째 앨범과 더불어 뮤지션의 최고작으로 평가된다. 아마도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

Animation 2024.08.16 0

위대한 쇼타임 _ 파프리카, 곤 사토시 감독

# 0. It's the greatest show time!        곤 사토시 감독,『파프리카 :: Paprika』입니다.     # 1. 2010년의 무더웠던 여름날.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지만, 당시에는 제법 친했던 녀석과 영화관을 찾았다. 걸작 를 통해 완전히 궤도에 오른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은, 둘이서 영화를 보는 쑥스러움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꿈과 무의식에 대한 독창적인 재해석, 플롯을 루빅스 큐브 가지고 놀듯 한다⁽¹⁾는 평을 들은 (2010)을 본 후, 홍조 띤 얼굴로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녀석에게 말했던 감상은 지금도 유효하다.  "매우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다만 애석하게도 나는 이미 를 봤다." 파프리카는 작품을 만든 곤 사토시조차 모르겠다 말할 정도로 모..

Animation 2024.06.08 0

오만의 반성문 _ 판타스틱 플래닛, 르네 랄루 감독

# 0. 역사의 단편으로 작성한 오만한 인류의 반성문        르네 랄루 감독,『판타스틱 플래닛 :: La Planete sauvage』입니다.     # 1. '1973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라는 소개만으로도 흥미를 부르기 충분하다. 은 멸망한 인류의 후손 옴(Om)이 거대한 파란색 외계인 드라그(Dragg)에게 억압당하는 이야기를 환상적인 미감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프랑스 SF 소설가 스테판 울이 1957년 발표한 소설 을 원작으로 한다. 체코의 이지 트릉카(Jiří Trnka) 스튜디오와, 프랑스 애니메이터 르네 랄루, 롤렌드 토포르의 협업은 그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다. 옴은 인간의 프랑스어 Homme에서 음가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옴의 과거를 기록한 슬라이드는 ..

Animation 2024.05.14 0

Docu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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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비명 _ 그날, 패러다이스, 드레아 쿠퍼 / 재커리 카네파리 감독

# 0. 검붉은 화마에 집어삼켜진 낙원의 비명        드레아 쿠퍼 / 재커리 카네파리 감독,『그날, 패러다이스 :: Fire in Paradise』입니다.     # 1. 2018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패러다이스(Paradise)에서 벌어진 대규모 산불재해의 기록이다. 이른 아침의 산불은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큰 산불 중 하나로 꼽힌다. 늦가을의 건조한 기후와 강풍에 맞물려 빠르게 번져나간 불길은 당국의 통제를 벗어나 삽시간에 도시를 전소시켰고, 수많은 사람들이 대피하는 가운데 상당 숫자의 인명 피해를 야기했다.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화마의 이름이 캠프파이어라는 아이러니와, 참극이 벌어진 도시의 이름이 패러다이스라는 아이러니는 무자비한 자연 앞에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

Social 2024.10.30 0

거미와 아기새 _ 베나지르를 위한 세 개의 노래, 엘리자베스 미르자에이 감독

# 0. 뭐라도 해 봐야지. 쟤네들은 왜 저렇게 사는 거야?        엘리자베스 미르자에이 / 굴리스탄 미르자에이 감독,『베나지르를 위한 세 개의 노래 :: Three Songs for Benazir』입니다.     # 1. 체념의 미로 속에서 길 잃은 거미다. 좌절의 철장에 갇힌 아기새다. 하늘을 부유하는 감시선은 당사자에겐 고압적인 현실, 관찰자에겐 무신경한 타인이다. 뭐라도 해 봐야지. 쟤네들은 왜 저렇게 사는 거야?라는 속 편한 이야기를 잔혹한 현실을 지켜본 카메라가 물리치는 덴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전쟁 피난민 캠프의 샤이스타와 베나지르는 사랑의 결실을 품은 다정한 신혼이다. 흙벽돌을 만들어 파는 청년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국군에 지원하려 하지만 녹록지 ..

Historical 2024.09.14 0

커넥트 _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밴드, T.G. 해링턴 / 대니 클린치 감독

# 0. 결국 음악의 본질은 연결인 것일까        T.G. 해링턴 / 대니 클린치 감독,『프리저베이션 홀 재즈밴드 :: A Tuba to Cuba』입니다.     # 1. 가끔은 치졸한 질투심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외세의 침탈로 인한 역사적 단절, 절멸 수준의 전국 전쟁을 겪으며 스스로 발현된 것보다 수입된 것을 현지화하며 성장한 한국은, 삶의 부분집합으로서의 음악을 향유할 뿐이다. 반면, 굴곡진 근현대사를 성숙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스스로 발현될 만큼 충분히 고립된 뉴올리언스의 음악은 삶의 일부분이 아닌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합집합이다. 우리는 발라드를, 힙합을, 클래식을, 트로트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 재즈는 선택이 아닌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존재와 닿아있는 음악이라니. 그 ..

Art 2024.08.06 0

겁쟁이 _ 스카이워커스, 제프 짐발리스트 감독

# 0. 자신 있게 못하는 늘 숨어만 있는나는 겁쟁이랍니다.        제프 짐발리스트 감독,『스카이워커스 사랑 이야기 :: Skywalkers: A Love Story』입니다.     # 1. 수학은 인간이 구축한 것 중 가장 일관되고 엄정한 논리체계다. 과학, 공학, 경제학 등 정교한 논리구조를 요구하는 학문들이 수학을 일종의 언어로서 필수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다. 흥미로운 것은 엄격한 체계일수록 단 하나의 오류만으로도 손쉽게 붕괴된다는 점이다. 어째 숫자보다 알파벳과 로마자가 더 많이 보이는 방대한 현대 수학조차, 고작 [1+1=3]이라는 잘못된 명제 하나의 침입에 허망하게 무너진다.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가 부조리로 가득한 것은 그릇된 명체 하나를 끌어안는 과정에서 생긴 논리적 오류다. 지붕에 오른..

Social 2024.07.26 0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_ 리틀 걸, 세바스티앙 리프쉬츠 감독

# 0. "사샤는 오랫동안 여자라고 느껴... 아뇨, 느낀 게 아니라 사샤는 여자예요. 남자로 태어난 여자요." 세바스티앙 리프쉬츠 감독, 『리틀 걸 :: Petite Fille』입니다. # 1. 의 소재는 제법 독특한데요.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10글자 넘어가는 괴랄한 소수자성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인공 '사샤'는 생물학적 성별과 정신적 성별의 괴리로 힘들어하는 평범한 트랜스젠더일 뿐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녀가 나중에 커서 여자가 되고 싶다 말하는,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아주 어린 친구라는 것이죠. 퀴어 다큐멘터리도 소주제에 따라 풀어가는 방식은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그 끝은 두 가지 목표로 귀결되기 마련입니다. 주인공의 소수자성에 대한 내적 탐구, 그 과정에서 차별에 맞서 싸우는 사회적..

Humanism 2024.04.06 0

세 번의 문답 _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권하정 / 김아현 감독

# 0. 우리는 이 가수를 불쑥 찾아갔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를 함께 찍었다. 권하정 / 김아현 감독,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 Notes from the Unknown』입니다. # 1. 관객이 당장 만나게 되는 영화는 한 편이지만 전체 프로젝트를 생각하면 총 세 개의 영상이 존재합니다. 의 뮤직비디오, 의 뮤직비디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려는 다큐멘터리 가 바로 그것이죠. 각각은 그것이 음악이 되었든, 철학이 되었든, 태도가 되었든, 입장이 되었든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의 창작물에 대한 피드백으로서의 성격을 가집니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의도 여하와 무관하게 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일종의 질문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각각의 영상은 그 자체로 온전한 작품임과 동시에 권하정..

Humanism 2023.12.26 0

다시 만나는 자연 _ 다이에나 케네디, 엘리자베스 캐롤 감독

# 0. 과카몰레(스페인어: Guacamole)는 멕시코 요리의 소스로, 으깬 아보카도에 다진 양파, 토마토, 고추, 라임즙 따위를 넣어 만든다. 콘칩과 유사한 '토토포(Totopo)'라고 하는 튀긴 토르티야 조각으로 퍼서 먹는다. '과카'는 멕시코에서 아보카도를 뜻하는 '아과카테(Aguacate)'에서 온 것이며, '몰레'는 멕시코 원주민 어로 '소스'를 뜻한다. 엘리자베스 캐롤 감독, 『다이애나 케네디 :: Nothing Fancy Diana Kennedy』입니다. # 1. 다이애나 케네디의 전기 다큐멘터리입니다. 멕시코 전통 요리 전문가이자, 다수의 저술 활동을 펼친 작가이기도 한 인물인데요. 독특하게도 태생은 이름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 영국인이죠. 1923년생으로 작품이 공개된 당시에도 이미 아..

Humanism 2023.09.2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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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혹은 미치거나 _ 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 구스웍스 감독

# 0. 글리치 프로덕션(Glitch Productions)을 아시나요?        구스웍스 감독,『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 :: The Amazing Digital Circus』입니다.     # 1. 닐 블룸캠프의 오츠 스튜디오 이후 오랜만에 스튜디오 소개글이다. 물론 하꼬 블로거 따위가 '소개'하기엔 지나치게 월클이지만 말이다.  글리치 프로덕션(Glitch Productions)은 다채롭고 개성적인 디자인, 매콤한 블랙 코미디, 재기 발랄한 스토리로 미래지향적인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호주 국적의 인디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초기작 (2019)와 (2021) 이후, 미국의 애니메이터 리암 빅커스(Liam Vickers)가 총괄로 합류한 (2021)으로 도약한 글리치는, 작년 또 다른 애니메이터 쿠퍼..

Animation 2024.06.28 0

하우프루빗 _ 포커페이스, 라이언 존슨 / 나타샤 리온 감독

# 0. 누가 범인인가 (who done it?)의 미스터리를 대신하는 어떻게 범인을 밝힐 것인가 (how prove it?)의 서스펜스 라이언 존슨 / 나타샤 리온 감독, 『포커페이스 :: Poker Face』입니다. # 1. 을 본 사람치고 니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오뉴블을 제법 재미있게 본 저 역시 나타샤 리온은 썩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여유롭고 정겹고 온화하면서 동시에 세상에서 서너 발짝 떨어진 듯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특유의 톤이 매력적인 배우죠.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장르물로 만들어버리는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헤어스타일과 허스키한 목소리도 멋지구요. 다만 그녀의 캐스팅만을 근거로 작품을 고르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선구안이 좋은 배우는 못 되거든요. 시리즈를 크게 기대했던..

Mystery & Thriller 2023.08.04 0

사이다의 성분 _ 피지컬 100, 사이렌 불의 섬

# 0. 왜 재미있는 거지? 넷플릭스 버라이어티 시리즈, 『피지컬 100, 사이렌 불의 섬』입니다. # 1. 그놈의 K-타령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일부의 호들갑이 나름 이해가 갈 정도로 영상 콘텐츠들의 글로벌 시장 확대가 두드러진 근년이긴 했습니다. 이젠 이야기하는 것조차 지치는 기생충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들 뿐 아니라, 킹덤에서 시작해 오징어 게임의 메가히트로까지 이어진 웰메이드 드라마 시리즈,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가벼운 로맨스 드라마들도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요. 최근엔 예능까지 주목받는 듯한 양상이죠. 최근 BTS의 뷔를 섭외해 해외 시장에 도전 의지를 비친 바 있는 나영석 PD의 서진이네는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해야 할 겁니다. 그중에는 개인적으로도 흥미로웠던,..

Action 2023.06.06 0

엄숙주의의 울타리 너머 _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

# 0. 엄숙주의의 울타리를 호쾌하게 넘는 코미디의 힘 넷플릭스 모큐멘터리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 :: Cunk on Earth』입니다. # 1. 인류의 문명사를 2시간 3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앙상하게 핥아내는 모큐멘터리입니다. 문명 발생에서 시작해 종교, 문화, 근대화를 지나 세계 대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을 유럽인의, 보다 정확히는 영국인의 관점에서 편협하게 전개됩니다만 뭐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지들이 만든 거니까요. 처음엔 필로미나 컹크(Philomena Cunk)가 뭔가 싶었는데요. 코미디언 '다이앤 모건'의 부캐였더라구요. 얼핏 보고선 아이티 크라우드의 캐서린 파킨슨인 줄 알고 살짝 반가웠습니다만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선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찾아봤더니 컹크라는 부케로 ..

Comedy 2023.02.08 0

근본으로의 회귀 _ 러브, 데스, +로봇 시즌 3

# 0. 회초리의 효과는 굉장했다!!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시즌 3 :: Love, Death + Robots Vol. 3』입니다. # 1. 어울리지 않게 15세로 간을 봤던 지난 시즌은 결국 혹평으로 마무리되고 말았습니다. ⑴ 스타일리시한 화풍과 다이내믹한 액션으로 빚어낸 뛰어난 영상미. ⑵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아이템을 과감하게 동원하는 참신한 서사. ⑶ 허무와 냉소를 테마로 한 철학적 주제의식이라는 세 축이 모조리 흔들리며 죽도 밥도 아닌 시즌이 되고 말았다 말씀드린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군요. 로튼 50%가 무너지며 회초리를 세게 맞은 효과가 굉장했나 봅니다. 전 시즌에 훼손된 평판을 복구하려는 듯 첫 번째 시즌에서 호평받았던 장점들을 노골적으로 답습합니다. 특히 호러와 액션 묘..

Animation 2022.05.26 2

수집형 RPG _ 퓨어 시즌 1, 채널 4 제작

# 0. 선명한 아이템이 있다. 선명한 아이템만 있다. 채널 4 드라마, 『퓨어 :: PURE』입니다. # 1. 선명한 아이템이 있습니다. 성 강박장애를 다룬 드라마군요. 일상에서 실시간으로 소집되는 정보를 최대한 자극적인 형태의 성적 메시지로 재구성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저 사람과의 잠자리는 어떨까?' 라는 정도의 수위는 아득히 넘어섭니다. 대상에 대한 분별 능력 역시 전혀 작동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춘기 즈음을 지나며 거치게 되는, 자신이 가진 성적 지향성을 구분하고 해석하고 정의하는 일체의 작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관객에게 시리즈를 소개하는 첫 번째 화의 첫 번째 시퀀스로, 기념일을 맞은 부모가 자신 혹은 타인과 변태적 성애를 나누는 상상을 연..

Drama 2021.09.17 0

참 쉽죠? _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

# 0. 전설의 레전드가 왓챠에 올라왔군요. PBS 예술 교양 프로그램 시리즈,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 :: The Joy of Painting』입니다. # 1. 문득 반갑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리 큰 기대를 하진 않는 듯한 미묘한 태도로 1화를 보기 시작합니다. 두어 편 보다 말겠지 생각했는데요. 어디 보자...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서브 모니터에 16화 이 흘러나오고 있군요. 언제 잠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부드럽고 차분한 김세한 성우의 목소리, 뾰족한 산과 침엽수와 호수의 무한복제가 만들어 내는 시간이 멈춘듯한 목가적 이미지, VHS 비디오 대여점이 주름잡던 시절의 그것과 같은 낡은 화질, 그리고 한없이 따뜻하고 선량한 메시지입니다만 재미있어요. 이걸 내가 왜 재미있어하고 있는지 모르겠..

Art 2021.08.26 0

Bla-b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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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배우지 못해서

# 0. 한국인에게 당할 줄 몰랐다.        『갈등을 배우지 못해서』     # 1. 가 연일 화제다. 이후 오랜만에 만나게 된 요리 예능은 필자 역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20명의 스타셰프와 80명의 은둔고수가 뒤엉켜 자웅을 겨룬다는 콘셉트의 버라이어티 쇼는 걸출한 캐스팅, 컬트적 캐릭터, 각각의 드라마에 힘입어 폭발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다만 1차 공개분(1회~4회)까지만 하더라도 호평 일색이었던 것과 달리 점점 비판도 늘어가는 듯한 모양새다. 2차 공개분(5회~7회)의 팀전에서 드러난 다소의 혼란을 지나, 3차 공개분(8회~10회)의 장사 미션룰은 인간성을 기망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크게 받고 있는 데, 불쾌감을 표하는 사람들의 지적은 개인적으로도 무리 없이 동의하게 된다...

Bla-bla-bla 2024.10.04 0

천사의 속삭임

# 0.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울어라, 영화관 혼자 울 것이다.        『천사의 속삭임』     # 1. 배우 최민식은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특유의 소탈한 말투로 나라도 티켓값이 부담스럽겠다 말한다. 녹록지 않은 관객의 주머니 사정을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그럼에도 만드는 이들이 작가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지적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평론가 이동진은 을 비평해 달라는 팬들의 짓궂은 농담에 살려달라는 유머러스한 답변을 남겼다. 충성도 높은 수많은 어린이 관객들과 컬트적 현상에 호기심을 느낀 몇몇의 일반 관객층에 힘입어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도전하는 하츄핑에 대한 영화팬들의 반응은 유쾌하면서 일견 자조적이다. 얼핏 무관해 보이는 두 사건은 결국 영화계의 위기를 접..

Bla-bla-bla 2024.08.22 0

20세기 소년의 회상

# 0. 2024년 3월 1일. 조산명(鳥山 明) 선생이 향년 68세의 일기로 타계하셨습니다. 『20세기 소년의 회상』 # 1. 그날따라 유난히 낯설게 느껴지는 서재. 먼지 소복한 귀퉁이에서 묵혀지고 있던 드래곤볼을 담담히 읽어나갔죠. 인이 박힐 정도로 많이도 봤던 익숙한 그림체와 익숙한 캐릭터와 익숙한 대사들은 책을 읽는 건지 책 위를 미끄러지는 건지 모를 정도로 책장을 넘기게 만듭니다. 둔하게 읽으리라는 다짐이 무색하게도 한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야속한 42권의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양반의 비보임에도 많은 분들이 소감 하시듯 참 헛헛하더군요. 문화의 본질이란 결국 연결인 걸까요. 그러고 보면 영화 개봉을 겸해 다시 읽은 슬램덩크도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것도 작년 1월..

Bla-bla-bla 2024.03.26 0

야만의 세월, 도마 위에 오른다는 것

# 0. 배우 이선균 씨가 향년 4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야만의 세월, 도마 위에 오른다는 것』 # 1. 이원석 감독의 를 이야기하며 연기 정말 잘한다 감탄했었는데요. 그것이 마지막 코멘트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제와 구태여 사건의 추이를 값싸게 나열할 생각은 없습니다. 고인의 사생활에 대해 가타부타 윤리적 가치판단을 한다거나, 수사도 종결된 마당에 혐의와 관련된 가치판단을 할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저 쓸쓸한 마지막에 '헛헛하니 아쉽다' 정도의 끝인사를 놓아두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사실 보름 전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글을 쓸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것이 소위 어그로를 끌어 검색량을 늘리기에는 나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약간의 텀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

Bla-bla-bla 2024.01.06 0

빼앗긴 호러에도 여름은 오는가

# 0.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텐트폴까지는 고사하더라도 어째 호러가 한편도 없네? 『빼앗긴 호러에도 여름은 오는가』 # 1. 2023 여름 텐트폴은 류승완 감독의 밀수, 김성훈 감독의 비공식작전, 김용화 감독의 더 문,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입니다. 티켓값이 만만찮은 요즘인 데요. 없는 살림에 전부 극장에서 봤다는 것이 내심 스스로 대견스럽군요. 티켓값에 반비례한 관객의 인내심이 점점 낮아지는 탓에 스코어는 더 엄격하고 냉정해지는 듯합니다. 밀수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제 예상보다 조금 더 선전하는 것 같구요, 비공식작전과 더 문은 손익분기점을 크게 밑도는 모양새인데요. 갈수록 흥행 성적과 작품성의 괴리가 좁혀지는 듯한 느낌도 있군요. 밀수와 비공식작전은 공통적으로 충무로 특유의 안전제일..

Bla-bla-bla 2023.08.28 0

도박을 포기한 관객들과 다음 영화의 풍경

# 0. 개별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 조금 넓은 영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가급적 블로그에 이런 류의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았는데요. 그래도 새로운 영화가 제작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은 팬에게도 뼈 아프다는 점에서 한 번쯤 고민하고 넘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유럽 영화, 아시아 영화, 중동 영화, 남미 영화. 온갖 영화 다 보는 터라 자막에 크게 거리낄 것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기왕이면 자막 없는 영화가 보기 편한 것이 당연합니다. 기왕이면 우리 정서를 배경으로 한 우리말 나오는 우리 영화가 좋은 건 인지상정이죠. 『도박을 포기한 관객들과 다음 영화의 풍경』 # 1. 한국 영화의 침체를 놓고 다양한 진단들이 나오는 듯 보입니다. 관객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Bla-bla-bla 2023.04.1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