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728x90

코미디 131

뱀파이어 힐스 _ 죽어야 사는 여자,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 0. 50대 중년에겐 두 갈래 길이 있다. 40대처럼 보이려 발버둥 치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죽어야 사는 여자 :: Death Becomes Her』입니다. # 1. 가끔은 아쉽다. 50대 중년에게 '멋진 50대가 된다'라는 선택지는 정녕 없는 걸까. 만약 그런 선택지가 있었다면 40대처럼 보이려 발버둥 치는 사람은 조금 덜 괴롭지 않았을까. 자조적으로 포기해 버린 사람도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예로 든 것일 뿐 비단 50대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젊어 보인다는 말이 칭찬으로 통용되는 것은 세대를 막론한다. 40대는 30대로 보이고 싶어 하고, 30대는 20대로 보이고 싶어 하고, 20대는 10대로 보이고 싶어 한다. 이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은..

Film/SF & Fantasy 2024.04.20

노 아담 플리즈 _ 노 하드 필링스, 진 스텁닛스키 감독

# 0. 아담 샌들러가 꼭 필요한 거야? 진 스텁닛스키 감독, 『노 하드 필링스 :: No Hard Feelings』입니다. # 1. 죽지도 않고 또 오는 게 엿장수만은 아니다. 세상엔 잊을만하면 돌아오는 것이 너무나 많지만, 할리우드식 로맨틱 코미디는 그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수도 없이 반복된 탓에 레시피도 공개된 것과 진배없다. 배경은 보통 휴양지인데 기왕이면 바닷가가 좋다. 부자를 시기하고 부러워하는 서민이 주인공이지만, 연기하는 배우들이 그 시기와 질투의 대상인 백만장자라는 것은 괘념치 않는다.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통속적인데, 철없는 주인공과 비슷한 수준의 친구 하나가 옆에 붙어 코미디를 전담하는 동안 주변을 배회하는 노년의 현자가 틈틈이 교훈을 토해낸다. 영화는 뜬금 이벤트 당첨이나, 우연한 헌..

Film/Comedy 2024.04.18

역치는 차갑다 _ 아가일, 매튜 본 감독

# 0. 킹스맨의 그늘 아래 다소곳이. 매튜 본 감독, 『아가일 :: Argylle』입니다. # 1. 솔직해 집시다. 어차피 대부분은 매튜 본이라는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않습니다. 킹스맨 만든 감독이라 하면 그제야 '아~ 그 사람이야? 나 그거 재미있게 봤어!' 정도의 반응을 볼 수 있겠죠. 관객이 기대할 아가일의 세일즈 포인트 역시 재철 전어처럼 살이 포동포동 올라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라거나, 라데꾸를 날릴 것만 같은 플랫탑 스타일의 근육질 헨리 카빌이 아닌,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던 콜린 퍼스의 슈트핏과 머가리 팡팡 터트리는 액션이라는 '그 맛'의 재해석일 가능성이 99.9%입니다. 이례적으로 성공을 거둔 우리나라 기준, 시크릿 에이전트는 600만이 들었습니다. 전작의 후광에 힘입어..

Film/Action 2024.03.16

유치가 찬란하심 _ 택시, 제라르 삐레 감독

# 0. 겁나 유치(幼稚)하긴 한데요. 그걸 이렇게 찬란(燦爛)하게 만들면 역으로 먹히기도 합니다. 제라르 삐레 감독, 『택시 :: Taxi』입니다. # 1. 혹하는 최신 영화가 잘 없다 보니 연이어 옛날 영화들을 다시 보게 되는군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글에서, 해당 영화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고 싶었지만 검색되는 거라곤 죄다 프랑스의 택시라 아쉽다 말씀하신 분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데요. 시간이 흘러 이 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네요. 다소 익숙지 않은 프랑스 영화임에도 의외로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 작품이긴 합니다만, 글쎄요. 아마 극장에서 보신 분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겁니다. 대부분 OCN이나 Super Action(현 OCN movies2)과 같은 캐이블 채널을 통해 보시지 않았을까요...

Film/Action 2024.02.20

원래 그런 거야 _ 무서운 영화, 키넌 아이보리 웨이언스 감독

# 0. 원래 그런 거야, 인마~ 키넌 아이보리 웨이언스 감독, 『무서운 영화 :: Scary Movie』입니다. # 1.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매년 설추석이면 특수를 노리고 여러 신작들이 개봉되곤 합니다만, 그래도 명절엔 추억의 옛날 영화죠. 2000년에 개봉한 영화를 옛날 영화라 이야기하는 게 어색하긴 한데요. 벌써 2024년이니까요. 세월 참 빠르군요. 개막장 B급 싼마이 코미디 영화 되시겠습니다. 명작의 반열에 오른 이나 007 시리즈를 가지고 논 등과 함께 가장 성공적인 패러디 영화이기도 하죠. 속편은 없다!! 라는 선언이 무색하게 무려 다섯 편에 걸쳐 제작된 시리즈물이기도 한데요. 언제나 그렇듯 첫 편의 용머리 이후로는 지난한 뱀꼬리가 이어지니 굳이 찾아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로부터 2년 ..

Film/Comedy 2024.02.12

루프는 폭발이다 _ 팜 스프링스, 맥스 바바코우 감독

# 0. 갈(喝)! 맥스 바바코우 감독, 『팜 스프링스 :: Palm Springs』입니다. # 1. 루프물에 로맨틱 코미디다 보니 언제나처럼 '그 이름'이 불려 나올 수밖에 없긴 합니다만, 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일부의 평은 썩 정밀하진 않아 보입니다. 모름지기 재해석이라 하려면 주제의식의 발전이 있어야 할 텐데요. 내적 성찰을 통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영혼의 성장을 그렸던 빌 머레이 & 해럴드 레이미스와 달리, 맥스 바바코우는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관계성의 가치와 불안정성을 직시하고 내일을 맞이하는 용기라는 전혀 다른 주제의식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죠. 다만 그럼에도 여타의 모든 루프물과 같이 사랑의 블랙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작품이라는 것은 분명하고, 감독 역시 그 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

Film/SF & Fantasy 2024.02.10

치명적인 무해함 _ 침입자들의 만찬, 미즈노 이타루 감독

# 0. 부조리 위에 펼쳐진 탐욕과 위선을 제압하는 치명적인 무해함 미즈노 이타루 감독, 『침입자들의 만찬 :: 侵入者たちの晩餐』입니다. # 1. 영화는 뻔뻔스럽게 범죄 스릴러를 주장하지만 전반적인 톤은 코미디 어드밴처라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사건이 벌어지는 후지사키 나츠미의 집 역시 현실적 주거 공간이나 차가운 범죄 현장이라기보다는 흥미진진한 던전에 가깝게 연출되어 있죠. 응큼하고 지저분하지만 엉성하고 귀엽기도 한 여섯의 인물들이 각자의 음흉한 목적을 위해 지지고 볶는 하룻밤 소동극입니다. 소동극의 묘미라면 역시나 분투하는 인간들의 소동을 귀엽고 가엽게 그리는 시선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역시 그 온건함에 대단히 충실합니다. 각본가 바카리즈무의 기질이 묻어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죠. 작품을 견인..

Film/Comedy 2024.02.04

가장 사소한 우주 _ 애스터로이드 시티, 웨스 앤더슨 감독

# 0. 그놈은 그냥 돌멩이를 던져분 것이고, 자네들은 그것에 놀라 확 달아난 것이여. 웨스 앤더슨 감독, 『애스터로이드 시티 :: Asteroid City』입니다. # 1. 가장 사소한 우주 영화입니다. 통상의 우주 SF라면 웅대한 우주를 탐험하는 초라한 인간의 대비라는 식으로 풀어가기 마련일 텐데요. 웨스 앤더슨은 독특하게도 스케일의 역전을 시도합니다. 우주의 구조를 도식화해 미니어처처럼 끌고 내려온 후, 관객으로 하여금 이를 내려다보게 만들어 관조적으로 삶과 우주의 원리를 통찰해 볼 것을 제안하는 것이죠. 작품은 연극을 준비하는 무대 뒤 흑백 화면과, 그렇게 실현된 연극의 컬러 화면으로 구분되는 극중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데요. 사실 수많은 관객들이 혼란스러워했던 것처럼 구체적인 레이어는 그보다 ..

Film/Comedy 2024.01.04

배우 양조아 _ K박사의 연구, 박지혜 감독

# 0. 짜릿해! 늘 새로워. 공짜인 게 최고야! 박지혜 감독, 『K박사의 연구』입니다. # 1. 2023년 12월 16일. 예술의 전당에서 라는 이름의 공연영상플랫폼을 오픈합니다. 월 2,500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클래식, 발레, 연극, 오페라, 무용, 국악 등 고품격 콘텐츠를 제공하는 일종의 문화 예술 전용 ott서비스라는 건데요. 심지어 내년 12월까지 1년간의 시범 운영 기간 동안은 무료로 공개된다는군요. 개꿀. 공개된 지 며칠 되지 않아 아직 작품이 많이 걸려있지는 않습니다만, 문외한도 솔깃할 법한 양질의 작품들은 충분해 보입니다. 연극 , , , 라거나, 발레 , , , 국악 등도 흥미롭구요. 클래식 기반의 음악듀오 노래서점의 영상들이라거나, 노부스콰르텟의 다양한 연주들, 혹은 양손프로젝트 단..

Film/SF & Fantasy 2023.12.20

혁신은 없었다 _ 팟 제너레이션, 소피 바르트 감독

# 0. 파스텔 빛 미래에 대한 사소하지 않은 고민들이 잎사귀처럼 차곡차곡 쌓인다. 소피 바르트 감독, 『팟 제너레이션 :: The Pod Generation』입니다. # 1. 아이를 가졌다. 아이를 낳았다. # 2. ...가 영화 속 상황의 전부입니다. 그저 엄마의 자궁 대신 '팟'이라는 이름의 인공자궁에서 아이가 키워질 뿐이죠. 기술적인 문제 혹은 우려는 의도적으로 배제됩니다. 안전상의 걱정 없이 자궁을 온전히 대체할 수 있는 가상의 시스템이 존재한다 가정한 상황에서의 윤리적 문제에 천착한 작품이라는 것이죠. 자연스럽게 중요한 것은 기술이 어디까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일 텐데요. 영화 속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과의 거리를 기준으로 크게 네 단계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가장 낮은 층은 '집에서..

Film/SF & Fantasy 2023.12.10

파스텔색 울타리 _ 스크래퍼, 샬롯 리건 감독

# 0. 혼자라는 오해가 만든 파스텔색 울타리를 사랑스럽게 넘는다. 샬롯 리건 감독, 『스크래퍼 :: Scrapper』입니다. # 1. 큰 틀에서는 가족영화 겸 성장영화라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일찍 엄마를 여읜 열두 살 배기 엄복동 조지와, 뜬금 나타나 아빠라 주장하는 짝퉁 에미넴 제이슨이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식의 가족영화이구요, 동시에 각자 나름의 자기 성찰에 도달한다는 면에서 성장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죠. 비슷한 경우 결말에 이르러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한다는 식으로 흘라가기 마련입니다. 내내 퉁명스럽던 사람들이 팀워크가 요구되는 어떤 극적인 사건을 겪은 끝에, "...아빠...", "...우리 딸..." 뭐 이런 식의 눈물 폭발 엔딩은 익숙하죠. 그렇게 변..

Film/Drama 2023.11.24

시나리오 특강 _ 세븐 싸이코패스, 마틴 맥도나 감독

# 0. 거만한 천재가 들려주는 잔인하고 선량한 시나리오 특강 마틴 맥도나 감독, 『세븐 싸이코패스 :: Seven Psychopaths』입니다. # 1. 마틴 맥도나입니다. 역작 의 감독이자, 얼마 전 글로도 옮긴 바 있는 를 연출한 감독인 데요. 두 작품에 앞서 만들어진 2012년 개봉작이죠. 일반적으론 코미디 범죄 영화라 해야겠습니다만, 아시다시피 메타픽션(Metafiction)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콜린 패럴이 연기한 마티는 극 중 시나리오 작가임과 동시에 감독이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세븐 사이코패스를 집필한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다른 무엇보다 마티(Marty)라는 이름은 누가 보더라도 감독의 이름 마틴(Martin)에서 가져온 애칭이죠. 영화는 로스앤젤..

Film/Comedy 2023.11.22

모닥불 _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 0. 값비싼 자동차를 몰기 위해 뾰족구두에 못은 박았지만, 그럼에도 모닥불은 피어나 얼어붙은 기타리스트를 깨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입니다. # 1. 핀란드의 거장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작품입니다.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함께, 시네필인 척하고 싶을 때 써먹으면 가성비가 무지 좋은 감독이죠. 나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려는 정도를 거명한 후, 차갑고 건조한 미장센, 비정한 세상에 대한 날 선 조소, 투쟁하는 노동자 계급을 향한 다정함, 무성 영화에 대한 동경 따위를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 늘어놓다가, 대화가 끝날 즈음 그의 진가는 작품을 지배하는 서늘한 문제의식보다 그럼에도 결코 잃는 법이 없는 웃음이라는 말과 함께 커피 한 모금 홀짝이며 창밖 멀리를 쳐다보면..

Film/Comedy 2023.11.06

허무의 얼굴들 _ 이니셰린의 밴시, 마틴 맥도나 감독

# 0. 굳이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허무의 얼굴들 마틴 맥도나 감독, 『이니셰린의 밴시 :: The Banshees of Inisherin』입니다. # 1. 작게는 개인의 인생, 넓게는 역사를 포함한 온 우주를 허무하고 공허한 것으로 규정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는 그 자체로 세계의 허무를 상징한다 할 수 있죠. 영화는 좁게는 두 명, 넓게는 네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데요. 콜린 패럴의 파우릭 설리반, 브렌던 글리슨의 콜름 도허티, 케리 콘던의 시오반 설리반, 배리 키오건의 도미닉 키어니가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은 허무에 대응하는 각기 다른 방식들을 대변합니다. 적극성을 기준으로 나열한다면 가장 소극적인 사람부터 도미닉, 파우릭, 콜름, 시오반의 순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

Film/Drama 2023.10.26

문장의 모습, 소리, 그리고 맛 _ 쥐잡이 사내, 웨스 앤더슨 감독

# 0. 그 양반이 얼~마나 뛰어난 문장가였냐면 말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 『쥐잡이 사내 :: The Rat Catcher』입니다. # 1. 로알드 달 원작의 단편입니다. 의 글에서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넷플릭스가 로알드 달 스토리 컴퍼니(RDSC)를 인수한 후 웨스 앤더슨을 섭외해 진행한 네 편의 결과물 중 하나인 작품이죠. 본론에 앞서 프로젝트의 성격을 짚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시도일 겁니다. 감독 입장에서 한꺼번에 영화를 네 편씩이나 만들어야 한다면, 각각의 작품 이전에 프로젝트 자체에 대해서도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테니까요. 비슷한 프로젝트들의 경우 지난 시대의 작가를 새로운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고, 해당 프로젝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

Film/Comedy 2023.10.18

개 같은 날의 저녁 _ 좋은 말, 이용수 감독

# 0. 남의 돈 벌어먹기 힘들어요. 이용수 감독, 『좋은, 말 :: Advice』입니다. # 1. 악의 없는 무례를 견뎌야 하는 사회인의 스트레스를 담백하다면 담백하게, 코믹하다면 코믹하게 그려낸 단편입니다. 하나하나는 사소하지만 쌓이면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이라는 건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너무나 잘 알고 계시겠죠. 그럴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러지 않으려 서로 양보하고 지나가는 사회적 에티켓들이 의뭉스럽게 삐져나와 선을 넘는 순간들. 저 연놈(...)이 일부러 저러는 거라는 걸 뻔히 알고 있어 잔뜩 긁히긴 긁히는 데, 그걸 굳이 입에 올려 탓하는 순간 나만 쪼잔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마냥 티 낼 수 없는 간질간질한 순간들을 흥미롭게 묘사합니다. 일처리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시점에서 ..

Film/Comedy 2023.10.12

z의 감각 _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웨스 앤더슨 감독

# 0. 웨스 앤더슨이 선사하는 기상천외함이란 웨스 앤더슨 감독,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입니다. # 1. 오랜만에 넷플릭스에 걸린 단편입니다. 누가 봐도 '그 이름'이 떠오를 법한 독특한 화면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오이형의 모습은 관객의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죠. 영국의 소설가 로알드 달(Roald Dahl)의 동명 단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인데요. 한편도 아니고 , , 까지 무려 4편이 연달아 공개되었습니다. 참! 잘했어요. 알고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두 해전쯤 로알드 달 스토리 컴퍼니(Roald Dahl Story Company, RDSC)를 넷플릭스가 인수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요. 해당 사업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되겠군요. 혹여 문..

Film/SF & Fantasy 2023.10.02

놀랍게도 전현무 아님 _ 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

# 0. 가시가 있는 것들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구나 후쿠다 유이치 감독, 『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입니다. # 1. 일본의 작가 아오야기 아이토의 동명 단편 소설을 실사화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해당 분야에 조예가 없어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흔히 말하는 라노벨(ライトノベル)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듯한 제목이군요. 대충 찾아보니 나름 시리즈물인 듯합니다. 를 시작으로 본작 , 를 지나 올해 8월 나온 신간의 제목 역시 라고 하는데요. 역시, 여행이라면 시체 하나쯤은 만나야 제맛이죠. 그림 형제의 동화 빨간 모자에서 여행자의 이미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붉은 두건에서 탐정의 이미지를 추출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썩 직관적이고 효과적인 듯 보입니다. 고전적인 테마를 끌고 와 만들어 낸 어릴 적 한..

Film/SF & Fantasy 2023.09.20

패러디와 떡밥 회수 _ 슈퍼 후?, 필립 라쇼 감독

# 0. 패러디와 떡밥 회수. 그게 전부입니다. 진짜루요. 필립 라쇼 감독, 『슈퍼 후? :: Super-héros malgré lui』입니다. # 1. 프랑스 엉아들이 만든 B급 싼마이 패러디 코미디입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스몰 사이즈 팬티 모델 출신 무명 배우입니다. 미쿡 엉아들이 마블 유니버스로 장사하는 게 배 아팠던 돈 많은 프랑스 할머니가 BADMAN이라는 제목의 짝퉁 히어로 영화를 기획합니다. 여차저차 캐스팅되는 데 성공한 주인공은 촬영 중 집으로 돌아가다 사고가 나는데요. 거 참 공교롭게도 몸뚱이는 멀쩡하지만 기억상실에 걸리고 말았죠. 정신 차리고 보니 슈퍼 히어로 옷을 입고 있길래, 어라? 와타시 어쩌면 배드맨이었던 걸지도? 지가 자경단 노릇하던 슈퍼 히어로라 믿은 무명 배우는 돌아다니는 ..

Film/Comedy 2023.09.14

공동체주의자 선언 _ 좀100, 이시다 유스케 감독

# 0. 시즈카는 '구원'하고 코스기는 '배제'한다. 이시다 유스케 감독, 『좀 100: 좀비가 되기 전에 하고 싶은 100가지』입니다. # 1. 애니메이션을 영화화한 작품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일본 좀비 호러라는 말에 혹했을 뿐이었죠. 100이라는 숫자가 흥미를 돋운 면은 있습니다. 좀비 100마리가 덮치려나? 100일? 100시간? 아니면 100분을 버텨야 하나? 백신을 100초 안에 써야 한다는 설정인 건가? 등등의 상상을 했었는데요. 부제가 였더라고요. 아하, 똥꼬 발랄 청춘물이군요. 애니메이션을 영화화한 작품인 줄 몰랐다 말씀드렸는데요.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됩니다. 일본 ANIME 특유의 톤 앤 매너가 영화에 너무 짙게 묻어나고 있거든요. 실제 원작의 존재를 모르..

Film/Action 2023.08.12

가장 날 것의 주성치 _ 당백호점추향, 이력지 감독

# 0. 다시 보니 선녀 같다! 이력지 감독, 『당백호점추향 :: 唐伯虎點秋香』입니다. # 1. 희극지왕 주성치입니다. 성룡과 함께 본인 그 자체로 장르라 인정받는 단 두 명의 배우 중 하나죠. 통상 그를 상회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유덕화나 주윤발, 양조위조차 자기 작품에서 그 정도의 지배력은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분명 의심의 여지없는 대배우이긴 합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인생을 사는 건가 싶을 정도로 논란이 많은 인물이라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말이죠. 주성치의 이름을 들은 보통의 관객들은 아무래도 소림축구나 쿵푸 허슬을 떠올릴 겁니다. 그 소리를 들은 골수팬들은 두 작품도 충분히 좋지만 아무리 그래도 주성치는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으로 이어지는 서유기 시리즈라며 팔짝 뛰는 게 십수 년간 반복된 패턴..

Film/Comedy 2023.07.22

풍성한 가지, 앙상한 줄기 _ 킬링 로맨스, 이원석 감독

# 0. 진짜 독특한 감독이긴 합니다. 솔직히 미친놈 같아요. 이원석 감독, 『킬링 로맨스 :: Killing Romance』입니다. # 1. 다음 씬은 커녕 다음 컷조차 예상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예측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정신 나간 농담들로 100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관객을 붙들어 매는 것을 상상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데요. 그 아이디어를 밀고 나가 이 정도의 결과물을 관철해 냈다는 건 어쨌든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독은 미친놈이 맞는 것 같아요. 코미디라는 게 워낙 기호를 많이 타는 장르라 주관적 감상을 말씀드리는 것에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장 세간의 평을 들여다봐도 호불호가 극심한 듯 보이니까요. 어쨌든 제법 좋았습니다. 혹자는 민망함을 표하기도 하던데요...

Film/Comedy 2023.06.26

성장하는 꿈들의 유쾌한 합주 _ 스쿨 오브 락,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 0. Let's Rock~ Everybody, Let's Rock~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스쿨 오브 락 :: The School of Rock』입니다. # 1. 제목에서처럼 '스쿨'과 '락'에 대한 영화입니다. 스쿨은 [성장]이라는 가치를 공간화합니다. 락은 [꿈]이라는 가치를 청각화합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와 잭 블랙이 정의하는 성장과 꿈은 그 자체만으론 불완전합니다. 호레이스 그린 사립 초등학교의 학생들은 성장을 위한 성장에 매몰된 아이들입니다. 성적과 시험에 기계적으로 반응합니다. 성적에 따라 우쭐하거나 주눅 들거나 삐딱하거나 무기력하는 등 종속되어 있는 모습으로 소개됩니다. 듀이는 성장 없이 꿈만 좇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낭만을 추구하기만 할 뿐, 낭만에 다가가기 위한 어떤 종류의 성실성..

Film/Comedy 2023.06.04

손가락의 방향 _ 이츠 어 디재스터, 토드 버거 감독

# 0. 빌어먹을 세상이 또 망했습니다. 이쯤 되면 망하지 않는 세상이 잘못인 것 같아요. 토드 버거 감독, 『이츠 어 디재스터 :: It's a Disaster』입니다. # 1. 네 쌍의 커플이 커플 브런치라는 이름의 소소한 파티에 참석하는데요. 갑자기 세상이 망했다 합니다. 이유 모를 공격으로 미국 한 복판에 방사능 오염과 신경독 가스가 퍼지게 되고, 파티 중인 집 안에 모조리 고립되어 버렸다는 설정인 것이죠. 나름의 발버둥이랍시고 덕트 테이프를 문틀에 처덕처덕 발라보지만 그 정도로 해결될 리 없습니다. 결국 몇 시간 못가 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된 상황. 사람들이 보이는 각양각색의 발버둥을 수다스러운 대사에 얹어 관찰하는, 고런 느낌적인 느낌의 코미디 영화라 할 수 있겠네요. 방사능이 어쩌..

Film/Comedy 2023.05.06

담음새 _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 딘 플라이셔-캠프 감독

# 0. 평범하고 소소한 아이디어를 비범하고 웅장하게 담아낸다. 딘 플라이셔-캠프 감독,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 :: Marcel the Shell with Shoes On』입니다. # 1.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진 않는데요. 모 유튜브에서 '평론가는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느라 재미는 덜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동진 평론가가 대충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영화에 친숙하지 않은 일반의 관객들은 영화를 두 가지 기준에서 보게 된다. 하나는 스토리, 다른 하나는 연기다. 하지만 영화에는 스토리와 연기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정보들이 있다. 이를 테면 쇼트나 편집, 구도나 플롯 따위의 흔히 연출이라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때론 스토리나 연기가 특출 나지 않음에도 훌륭한 영화들이 있고 그런 영화들 역시..

Film/SF & Fantasy 2023.04.12

다음 영화의 공간 _ 크레이지 컴페티션, 마리아노 콘 / 가스톤 두프라트 감독

# 0. 가짜 바위 아래 앉은 위선과 허세를 조소한 끝에 마주하게 될 다음 영화의 공간 마리아노 콘 / 가스톤 두프라트 감독, 『크레이지 컴페티션 :: Competencia oficial』입니다. # 1. 크레이지 컴페티션을 적당히 번역하자면 '미친듯한 경쟁' 쯤 될 텐데요. 아무래도 격정적인 대립과 갈등이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한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함인 듯 보이죠. 하지만 스페인어 원제는 Competencia oficial. 영어 제목 역시 같은 의미의 Official Competition입니다. 영화제의 경쟁부문 출품작에 대한 은유일 것이라 추측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거겠죠. 결말에서 작중작 을 완성한 롤라와 펠릭스가 브리핑하는 뒤로 영화의 제목과 같은 Official Competition이 떡 ..

Film/Comedy 2023.02.18

엄숙주의의 울타리 너머 _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

# 0. 엄숙주의의 울타리를 호쾌하게 넘는 코미디의 힘 넷플릭스 모큐멘터리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 :: Cunk on Earth』입니다. # 1. 인류의 문명사를 2시간 3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앙상하게 핥아내는 모큐멘터리입니다. 문명 발생에서 시작해 종교, 문화, 근대화를 지나 세계 대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을 유럽인의, 보다 정확히는 영국인의 관점에서 편협하게 전개됩니다만 뭐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지들이 만든 거니까요. 처음엔 필로미나 컹크(Philomena Cunk)가 뭔가 싶었는데요. 코미디언 '다이앤 모건'의 부캐였더라구요. 얼핏 보고선 아이티 크라우드의 캐서린 파킨슨인 줄 알고 살짝 반가웠습니다만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선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찾아봤더니 컹크라는 부케로 ..

Series/Comedy 2023.02.08

급발진 _ 중성화, 김홍기 감독

# 0. 굳이? 갑자기? 그렇게까지? 김홍기 감독, 『중성화 :: DESEX』입니다. # 1. 혜수는 남자 친구와 함께 고양이를 중성화시키러 왔다. 이김에 진절머리 나는 남자 친구와도 끝낼 생각이다. 우연히 담당 수의사가 남자 친구의 옛 애인이었다. 찝찝한 와중에 수술이 끝난 고양이가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2020년 제19회 미장센 단편영화제) # 2.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다시피 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확히는 [성욕]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죠. 스트레스를 표현하는 방식이 '죽이고 싶다'가 아니라 '중성화시켜버리고 싶다'라는 건 구체적 인물과의 갈등이라기보다 성욕 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혜수가 스트레스를 느끼는 성욕이란, 발정을 주체 못 하고 온갖 여자들에게 들이대는 상민..

Film/Comedy 2022.12.02

십자말풀이 _ 뜨거운 녀석들, 에드가 라이트 감독

# 0. Greater Good! 에드가 라이트 감독, 『뜨거운 녀석들 :: Hot Fuzz』입니다. # 1. 코르네토 트릴로지 두 번째 작품입니다. 작년 초 를 다시 보고 난 후 1년 여만에 에드가 라이트군요. 감독의 절친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랑 함께한 트릴로지 중 한 작품이긴 합니다만, 사실 전후의 두 작품과는 결이 제법 다른 영화라 봐야 할 겁니다. 예외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목적지향적인 작품이기 때문이죠. # 2. 딱 잘라 말하자면 [애국자법 디스 영화]입니다. 한창 영미권이 테러에 불안해하던 시기, 공동체의 안전을 명분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는 법인데요. 원래대로라면 외국 법령을 설명드리기 위해 있는 지식 없는 지식 짜내야 했을 테지만, 다행히도 우리에..

Film/Action 2022.11.10

나란 무엇인가 _ 존 말코비치 되기, 스파이크 존즈 감독

# 0. 당신은 어째서 자신이 존 말코비치가 아니라 확신하는 거지? 스파이크 존즈 감독, 『존 말코비치 되기 :: Being John Malkovich』입니다. # 1. "자아의 성질과 영혼의 실존 말이야. 내가 과연 나일까? 말코비치가 말코비치일까?... 이 관문이 얼마나 골치 아픈 형이상학적 문제인지 모르겠어." 영화의 착점을 상징하는 대사이자, 크레이그의 입을 빌린 감독 스스로의 선언과도 같은 대사입니다. 골치 아픈 형이상학적 문제를 다루려는 피곤한 작품이라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 스파이크 존즈가 가장 잘 알고 있죠. 몇몇의 변태 같은 관객을 제외한 대부분은 '골치 아픈 형이상학적 문제'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합니다. 영화 따위 두어 시간 동안의 오락거리 정도면 충분하다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죠. 테마..

Film/SF & Fantasy 2022.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