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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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162

초상(Portrait) _ 소피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나인 안티코 감독

# 0. 제대로 배우지 않아 엉망이지만 그래서 개성적인 우리들 나인 안티코 감독,『소피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 Playlist』입니다. # 1. 프랑스의 만화가 나인 안티코의 감독 데뷔작은 파편화된 청춘의 일상을 만화가 특유의 독특한 리듬으로 그린다. 원제 'Playlist'가 그러하듯, 영화는 주인공 소피가 마주하는 삶의 여러 문제들—불안정한 직업과 미래, 복잡 다난한 대인 관계, 갑작스러운 건강 이슈, 열악한 주거 환경 등—을 예측 불가능하게 뒤섞인 트랙처럼 불규칙하게 배치한다. 감독의 만화가적 기질이 반영된 듯 일련의 분절적 구성은 단순히 시간순의 줄거리 나열이 아닌, 소피가 체감하는 현실의 무질서함과 미래의 불확실함, 그로 인한 내면의 혼란을 복합적으로 암시한다. ..

Film/Comedy 2025.05.06

안부 전화를 해요 _ 줄스, 마크 터틀타웁 감독

# 0. 어떤 영화는 소박해서 훌륭하다. 마크 터틀타웁 감독,『줄스 :: Jules』입니다. # 1. 전형적인 미국의 마을에는 전형적인 미국인 할아버지가 살고 있고 그가 사는 전형적인 미국식 저택 뒤뜰로 전형적인 회색빛 우주선이 추락한다. 다들 뒤뜰에 먹다 남은 외계인 하나쯤은 있을 테니 그리 이상할 것 없는 평범한 이야기다. 요염한 자세로 쓰러진 진지한 표정의 외계인과 그가 타고 온 우주선의 꼬락서니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얼마나 소박한 것인가를 가늠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니 SF가 아니다. 외계인이 초능력으로 강도의 머리통을 폭파시킨다거나, 수상한 노인 둘이서 죽은 고양이 시체 7구를 트렁크에 모은다거나, 검은 옷 빼입은 요원들이 문을 부수고 들이닥치는 등 몇몇의 사소한 장면들만..

Film/Comedy 2025.04.20

간귀 _ 데드 탤런트 소사이어티, 존 쉬 감독

# 0. 맛은 평범하지만 간은 귀신같이 맞췄다.        존 쉬 감독,『데드 탤런트 소사이어티 :: Dead Talents Society』입니다.     # 1. (1989)를 대화하다 보면 꼭 따라붙는 이야기가 있다. 제목에 대한 비하인드다. Dead Poets는 죽은 시인이라기보다는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과 같이 오래전에 죽은 옛날 시인에 가깝고, Society는 모임이나 협회를 뜻하는 것이기에 '고전 시인 협회' 정도가 적당함에도 그것을 냅다 직역하며 생긴 오역이라고 말이다. 다만 세태를 두루 관조하는 면이 없잖아 있었던 내러티브와, 특유의 비장한 뉘앙스가 작품이 받은 사랑에 보탬이 되었다는 아이러니를 첨언하면 대충 교양 있는 스몰 토크가 완성된다.  의 제목은..

Film/Comedy 2025.04.04

나에게로의 초대 _ 아메리칸 울트라, 니마 누리자데 감독

# 0. 망가진 내게도 내일이 있을까        니마 누리자데 감독,『아메리칸 울트라 :: American Ultra』입니다.     # 1. 스파이니 울트라니 하는 것들은 본질적이지 않다. Merry me? 로 시작해 Propose 하며 끝나는 영화는, 결혼을 앞둔 커플의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관계 중심적인 보편의 영화들과 달리 남자에게 균형이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 보다 '내가' 결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영화랄까. 따라서 컬트적인 액션 코미디 아래로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를 흘려보내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다시 그 아래 숨겨진 성장 영화라 이해해도 무리는 없다.  도입에서 수사관은 사진을 몇 장 보여준다. 숟가락, 컵라면, ..

Film/Action 2025.03.30

액션의 순정 _ 프로젝트 A, 성룡 감독

# 0. 이미 완성되어 있었던 그의 액션 미학        성룡 감독,『프로젝트 A :: Project A』입니다.     # 1. (1978), (1984), (1985), (1998) 등과 함께 액션스타 성룡을 대표하는 시리즈. 라고는 하지만 인지도가 살짝 부족한 건 사실이다. 딸기코의 소화자가 인상적이었던 취권만큼 개성적이지도 않고 폴리스 스토리나 러시 아워만큼 친숙하지도 않거니와, 일단 특유의 무심한 제목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여타 작품들에 비해 당대 홍콩의 지역색과 시대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작품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아쉬운 인지도와 별개로 작품성만큼은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수많은 영화 팬들이 80년대 홍콩 액션 영화의 명작으로 꼽을 정도. 이전까지 고전적 캐릭터를 기능적으로 수..

Film/Action 2025.03.16

범죄의 재구성, 보급형 _ 킬 미 쓰리 타임즈, 크리브 스텐더스 감독

# 0. 이 동네에서 정신병자 집회라도 있냐?        크리브 스텐더스 감독,『킬 미 쓰리 타임즈 :: Kill Me Three Times』입니다.     # 1. 코미디의 심벌이 되어버린 몇몇의 배우가 총 들고 멋있는 척하고 있다면 어지간해선 밥값은 한다. 미모의 테레사 팔머와 앨리스 브라가 사이에 서 있는 미어캣 닮은 저 남자처럼 말이다. 검정 슈트 빼입고 겁나 큰 스코프 달린 저격총 들고 선 남자, 누가 봐도 스티커로 붙인 듯 어울리지 않는 콧수염의 사이먼 페그가 세상 모든 미인을 10분 만에 꼬실 수 있다는 듯 치명적인 표정으로 카메라를 직시하고 있다? 오케이, 일단 합격. 급전이 필요한 도박쟁이 남편과 보험 사기가 천직인 사이코 패스 아내가 등장한다. 은행보다 금고가 편한 분조장 의처증 남편..

Film/Comedy 2025.03.04

모범적인 연착륙 _ 핸섬가이즈, 남동협 감독

# 0. 능숙하고 매끈하게 안착한 오컬트 코미디의 모범사례        남동협 감독,『핸섬가이즈 :: Handsome Guys』입니다.     # 1. 호평을 받았던 (2010)을 리메이크한 영화는 잘 짜인 미국식 장르 영화의 맛을 훌륭한 현지화로 이식하는 데 성공한다. 이민재 감독의 (2019)이나 신정원 감독의 (2020)과 비슷한 야심을 가진 작품으로, 개인적으론 두 작품보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 평가하고 있고 세간의 평도 크게 다르진 않은 듯하다. 거친 표현을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당장 포스터만 봐도 안다. 유달리 세월을 정통으로 처맞은 이성민과 이희준의 섹도시발 표정을 보고도 주먹구구식으로 흘러가는 병맛 코미디 외에 다른 장르를 기대했다면 그건 관객이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놀란 건 표현..

Film/Comedy 2025.02.26

보호자용 _ 사탄의 베이비시터 킬러 퀸, 맥지 감독

# 0. 사춘기사용설명서 [보호자용]        맥지 감독,『사탄의 베이비시터 킬러 퀸 :: The Babysitter Killer Queen』입니다.     # 1. 겁 많은 어린이가 사춘기를 내딛는다는 내용의 따뜻한 성장 영화다. 대체 무슨 의도로 사탄이란 무시무시한 말을 가져다 붙인 건지 모를 고약한 배급사의 모함에 속기 쉽지만 원제는 담백한 베이비시터로, 우리 시대의 로멘티스트, 아리 에스터의 이나 처럼 온 가족 오손도손 함께 보기 좋은 가족 드라마되시겠다. 속편의 부제가 킬러 퀸이라는 게 조금 찝찝하지만 이 역시 오해다. 뮤직비디오 연출자 출신의 감독이 퀸의 팬이었을 뿐이다. 실제 절정부에 다다르면 프레디 머큐리가 부르는 킬러 퀸이 웅장하게 흘러나와 아들과 아버지의 가슴 뭉클한 화해를 서정적으..

Film/Horror 2025.02.14

아동용 _ 사탄의 베이비시터, 맥지 감독

# 0. 사춘기사용설명서 [아동용]        맥지 감독,『사탄의 베이비시터 :: The Babysitter』입니다.     # 1. 호러 코미디의 탈을 쓴 성장 드라마다. 원제목은 로 영미권의 관객들은 엉큼한 10대 소년과 관능적인 베이비시터의 몽정기 정도를 기대했을 테니, 하이틴 로맨스의 탈을 쓴 호러 코미디의 탈을 쓴 성장드라마라는 이중트릭이라 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유약한 12살짜리 주인공이 어찌어찌 악당을 물리친 후 더 이상 베이비시터가 필요하지 않다 말하며 끝나는 영화에서 성장이란 코드를 끌어내는 건 어렵지 않다. 폭력은 감독의 이력처럼 충분히 경쾌하고 스타일리시함에도, 겁 많은 소년이 마주하게 될 다양한 성장의 분기를 도식화한 것에 불과하다. 또래들과 달리 마지막까지 베이비시터..

Film/Horror 2025.02.10

노스탤지어의 풍경화 _ 문라이즈 킹덤, 웨스 앤더슨 감독

# 0. 사진이 아닌 그림이고 설명이 아닌 문학이며 대화가 아닌 음악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문라이즈 킹덤 :: Moonrise Kingdom』입니다.     # 1. 사소하다. 뉴 펜잔스 섬의 곳곳도, 카키 스카우트의 야영장도, 낡은 경찰서와 항구도, 사랑의 도피를 떠난 샘과 수지도, 그들의 탐험과 낙원도 모두 작고 사소하다. 웨스 앤더슨은 그 심각성이 사소해 보일 수 있도록 다운스케일링된 이야기를 최대한의 사랑스러움으로 가다듬어 인형의 왕국을 축조한다. 사소함을 역설하는 달뜨는 왕국에서 감독은 무엇을 찾고 싶었던 걸까. 무엇을 담고 싶었던 걸까. 세계는 안전함과 별개로 구속적이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 그러하다. 울타리에 둘러싸인 야영지가 그러하다. 스카우트의 규율과 규율을 증명하는 무..

Film/Comedy 2025.01.30

정신적 보톡스 _ 백 인 액션, 세스 고든 감독

# 0. 현기증을 유발하는 보톡스 냄새        세스 고든 감독,『백 인 액션 :: Back in Action』입니다.     # 1. 당신은 마피아다. CIA 소속 비밀요원이 조직의 행사에 잠입해 중요한 키를 탈취했다. 열심히 스파이들을 뒤쫓았지만 유능한 요원들을 붙잡는 덴 역부족이다. 다행히도 보스는 스파이들이 타게 될 비행기를 포섭하는 데 성공했고, 당신에게 비행기에 올라 가방 안에 들어있을 키를 회수하라 지시한다. 명령을 받은 당신은 비행기에 탔다. 기다리던 요원들을 능숙하게 제압해 화장실에 집어넣는 데까지 성공했다. 때마침 스파이가 도착했다. 감쪽같은 변장 덕에 당신을 CIA 요원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스파이는, 한껏 방심한 상태로 대화를 나눈다. 자, 여기서 질문.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

Film/Comedy 2025.01.22

뉴저지의 자신감 _ 패밀리 맨, 브렛 라트너 감독

# 0. 자신감 넘치던 그 시절 중산층을 위한 프로파간다        브렛 라트너 감독,『패밀리 맨 :: The Family Man』입니다.     # 1. 나무로 지어진 2층 집에는 적당한 크기의 정원이 딸려있다. 유머러스한 아빠는 익숙한 듯 잔디를 깎고, 아름다운 엄마는 주방에서 펜케이크를 굽는다. 어린 아들은 아빠 옆에서 자전거 타거나 물놀이 하자며 잔망을 떤다. 사춘기 딸은 하이틴 스타의 포스터로 뒤덮인 다락방 침대에서 미래를 꿈꾼다. 할머니는 거실 흔들의자에 누워 스웨터를 뜨고, 멋들어진 페도라를 쓴 할아버지는 낡은 벤치에 앉아 시가를 태운다. 틈틈이 집 앞을 지나가는 친구 가족과 반갑게 인사하는 걸 제외하면 주말마다 맥주를 곁들인 바비큐 파티가 소소한 이벤트의 전부인 나날들. 미국의 시스템이 ..

Film/Comedy 2024.12.24

설익은 야심의 결과 _ 나이스 가이즈, 셰인 블랙 감독

# 0.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        셰인 블랙 감독,『나이스 가이즈 :: The Nice Guys』입니다.     # 1. 오역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나이스 가이즈다. 실소조차 나오지 않는 수준 낮은 번역을 나열하는 건 생략한다 하더라도, 영화 자체적으로도 하자가 적지는 않다. 몸값 비싼 두 주연배우의 슬랩스틱과 앵거리 라이스의 귀여움이 단점의 상당 부분을 만회하고 있고, 그 코미디의 리듬에 감화되어 버디물의 매력을 즐겼을 몇몇 관객들의 무난한 호평을 존중하는 것과 별개로 말이다. 포르노 배우의 도발적인 오프닝이 무안하게도, 미스터리 추리극은 힘없이 가족주의 드라마로 주저앉는다. 홀랜드(라이언 고슬링 분)의 직업이 탐정이 맞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미스터리의 짜임새는 빈약하다. (..

Film/Comedy 2024.11.26

빚지지 않는 편안함 _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

# 0. 수중엔 100만 원밖에 없다. 이병헌 감독,『극한직업 :: Extreme Job』입니다. # 1. 부모님께 150만 원짜리 안마의자를 선물하려 하는 데 수중엔 100만 원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단순하게는 부업을 하면 된다. 힘들고 피곤하겠지만 정직하게 50만 원어치 더 일해서 소득을 늘릴 수만 있다면야 뭐, 이상적이다. 아니면 부모님께 50만 원을 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당신을 위한 선물이니 말이다. 양해를 구할 염치가 필요하긴 하겠지만, 나중에 150만 원짜리 안마의자를 돌려드리면 기뻐하실 게 분명하다. 상황을 조금 바꿔보자. 이번엔 영화감독이다. 당신의 시나리오 초안엔 100만큼의 재미가 담겨있지만 관객에게 150만큼의 재미를 선사하려 한다. 어떻게 하..

Film/Comedy 2024.11.24

독의 촉감 _ 독, 웨스 앤더슨 감독

# 0. 결국 뱀에 물리고만 의사였다.        웨스 앤더슨 감독,『독 :: Poison』입니다.     # 1. 넷플릭스가 주도하고 웨스 앤더슨이 연출한 4편의 로알드 달 단편 프로젝트 중 하나다. 에서 자유로운 이야기의 역동성을, 에서 절륜한 문장력의 위력을 증명했던 감독은 을 통해 간결한 이야기로 녹여낸 인간 탐구를 서늘한 촉감으로 구현한다.  인도 땅에서 인도 뱀의 위협을 피해 인도 의사의 도움을 받게 된 영국 군인 해로 포프의 이야기다. 해리의 부름을 받은 우즈와 함께 영화는 시작되는 데 이후로도 우즈는 사건의 관찰자로서 화자를 겸한다. 침대에 곧게 누은 해리는 배 위에 치명적인 독을 가진 우산뱀이 잠들어 있어 옴짝달싹할 수 없다. 깜짝 놀란 우즈는 잠시의 혼란 끝에 의사 간더바이에게 도움을..

Film/Comedy 2024.10.24

시그니처 아웃렛의 속셈 _ 데드 돈 다이, 짐 자무쉬 감독

# 0. 아 씨발, XXX 죽이고 싶네.        짐 자무쉬 감독,『데드 돈 다이 ::The Dead Don't Die』입니다.     # 1. 자필 서명을 뜻하던 시그니처(Signature)는 '개인이나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변별하게 하는 모든 것'으로 점차 그 의미가 확장되는 듯하다. 고급 의류 브랜드의 대표 라인업이나 디자인에 엄격한 몇몇의 공산품은 물론, 파인 다이닝의 시그니처 메뉴, 스포츠 스타의 시그니처 무브, 셀러비리티의 시그니처 픽 등은 좋은 예다. 유사한 의미에서 영화에도 수많은 시그니처가 존재한다. 멀리는 채플린의 콧수염과 버스터 키튼의 무표정부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웨스턴, 히치콕의 돌리 줌, 브루스 윌리스의 존 맥클레인, 웨스 앤더슨의 스타일과 에드가 라이트의 편집에 이르기까지 ..

Film/Comedy 2024.10.10

규범을 회의하는 두 개의 눈 _ 가여운 것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 0. 바라보는 눈과, 바라보는 눈을 바라보는 눈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가여운 것들 :: Poor Things』입니다.     # 1. 요르고스 란티모스다. 여지없이 과격하고 기괴한 스타일이지만, 진정 궁금한 것은 이번엔 또 어떤 관념에 도전하고 있을까라는 것이다. (2009)를 통해 언어와 사고 체계의 상관관계를 재고하고, (2015)를 통해 자아와 관계의 함의를 탐구했던 감독은, 야심 찬 엠마 스톤과 함께 규범과 사상을 회의한다. 단순히 규범을 어기는 일탈이 아니다. 규범을 어기는 것은 기존의 규범에 반하는 형태로 종속된 새로운 규범을 실천함이고, 이는 그가 어떤 명분과 대안을 제시하는 지와 무관하게 여전히 규범적이다. 란티모스는 규범이라는 것 그 자체에 대해 가치중립적으로 주목하고..

Film/Drama 2024.10.08

뚜찌빠찌뽀찌 _ 미니언즈, 카일 볼다 / 피에르 코팽 감독

# 0. 몰리카노~ 마케라로젠보~보케라도빠찌~~~~~~ 오페라도비~~마~~ 키~~~~~~        카일 볼다 / 피에르 코팽 감독,『미니언즈 :: Minions』입니다.     # 1. 자원과 기술이 흘러넘치는 시대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굳이, 억지로 일부러 아득바득 흑백 영화를 만든다면 만든 놈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미친놈일 가능성이 높다. 시간을 쓰는 사랑과 기다림의 의의, 죄책감과 남성성의 프로이트적 분석을 그린 영화를 두 편 연속 보고 나면,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쉬어갈 필요가 생긴다.  자크 드미와 로버트 에거스의 연타로 인한 심신 미약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선 적절한 처방이 필요했고, 그럴 때면 다 때려죽이는 액션 혹은 귀염뽀짝 애니메이션이 딱이다. 오늘의 알약은 D..

Film/Animation 2024.09.22

나는 거절한다 _ 욕망의 모호한 대상, 루이스 브뉘엘 감독

# 0. 당신이 원하는 것을 주면 당신은 절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루이스 브뉘엘 감독『욕망의 모호한 대상 :: That Obscure Object of Desire』입니다.     # 1. 거장 루이스 브뉘엘(Luis Buñuel, 1900-1983)의 유작이다. 피에르 루이(Pierre Louys)의 (1898)를 원작으로 한다. 주인공은 중년의 부호 마티유(페르난도 레이 분), 매혹적인 여인 콘치타(카롤 부케/안젤라 몰리나 분)다. 주요 플롯은 집착적 사랑을 기망당한 마티유가 기차 안 사람들에게 고발하는 동안의 플래시백이다. 영화는 제목처럼 욕망의 본질을 탐구한다. 욕망의 주체와 타인의 대상화, 결핍 및 폭력과의 관계성 따위를 특유의 초현실주의적 문법과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풀어낸 걸..

Film/Comedy 2024.09.12

캡사이신 우유 _ 렌필드, 크리스 맥케이 감독

# 0. 유리멘탈 현대인을 위한 다정하고 매콤한 캡사이신 우유        크리스 맥케이 감독,『렌필드 :: Renfield』입니다.     # 1. 브램 스토커(Bram Stoker)의 소설 (1897)의 등장인물 렌필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호러, 코미디, 액션, 판타지 영화다. 한창 유행인 리메이크나 리부트가 아닌 보조적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는 것, 특히 외전 격의 이야기 대신 기존 서사를 전복시켜 독자적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에 도전했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영화는 야심에 걸맞게 고전의 고풍스럽고 음습한 분위기를 대신하는 컬트적이고 경쾌한 현대적인 모습이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말이다. 감독은 드라큘라 신화를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와 종속 관계에 대한 알레고리로 재해석한다. 드라큘라와 렌..

Film/Action 2024.09.08

하늘을 보는 사람 _ 노 맨스 랜드, 다니스 타노비치 감독

# 0.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이 없는 세계        다니스 타노비치 감독,『노 맨스 랜드 :: No Man's Land』입니다.     # 1. 보스니아 전쟁의 역학관계를 비무장지대에 고립된 인물들로 치환한 실험극으로, 전쟁의 참상과 부조리를 염세적 시선에서 내려다본 일종의 우화다. 보스니아 지원병 치키, 세르비아 군 신참 니노, 지뢰 위에 붙잡힌 체라의 이야기는 자조적인 블랙 코미디와 전쟁 드라마로서의 균형이 돋보인다.  세계 각지, 특히 1세계 밖의 전쟁 당사자가 느낄 감각을 일반론적으로 통찰한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 한국의 외교적 입지 상 1세계적 관점에서 세계사를 교육받게 되는 데, 그것을 재고하게 만든다는 것은 이색적인 경험으로, 이는 접근이 쉬운 영미권 외의 영화를 애써 찾아볼 때 얻을..

Film/Comedy 2024.08.24

회장님 아들인가 _ 크로스, 이명훈 감독

# 0. 쓸데없이 친절한 시대착오적 코미디가 몸 둘 바 모를 정도로 황송하다.        이명훈 감독,『크로스 :: Mission: Cross』입니다.     # 1. 야구에는 지명타자(Designated Hitter, DH)라는 제도가 있다. 특수포지션인 투수들을 부상 위험에서 보호할 겸, 낭비되는 타석도 없앨 겸 대신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말한다. 당연하게도 투수를 대신해 들어가는 DH는 수비부담이 없기에 보통 '타격은 상위타석에 들만큼 탁월하지만 수비에 어려움을 겪는 베테랑 타자'가 서게 된다. 팀 입장에선 에이징 커브가 온 스타 선수의 남은 타격 능력을 뽑아 먹을 수 있으니 이득이고, 선수 입장에선 타자로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으니 역시 이득이다. 무엇보다 한여름 뙤약볕에 더그아웃 그늘에 ..

Film/Action 2024.08.12

이자나미 _ 인피니트 맨, 휴 설리번 감독

# 0. 금단의 환술을 벗어날 방법은 초콜릿과 꽃 한 송이        휴 설리번 감독,『인피니트 맨 :: The Infinite Man』입니다.     # 1. 시간과 자아의 복잡한 관계를 독특한 시각으로 탐구한 영화 은 제1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프로그래머 추천작 중 하나다. 가난하지만 재기 발랄한 호주 감독은 황량한 들판에 놓인 폐모텔 한 채와, 독특하다는 말도 부족한 이상한 인물 셋을 동원해 난해한 시간 여행 패러독스 속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천재과학자 딘은 괴팍한 완벽주의자다. 연인 라나와의 황홀했던 기념일을 벽에 걸린 액자처럼 완벽하게 재현하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풍화된 세계는 딘의 집착을 허락하지 않는다. 완벽했어야 할 기념일이 최악의 하루로 치달아버린 것에 좌절한 딘은 ..

Film/SF & Fantasy 2024.07.30

개미굴 _ 고스포드 파크, 로버트 알트먼 감독

# 0. 개미굴을 관찰하는 건 개미의 역사와 본성을 알기 위함이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고스포드 파크 :: Gosford Park』입니다.     # 1. 거장 로버트 올트먼은 2001년작 를 통해 관객을 100여 년 전 영국 상류층의 세계로 초대한다. 하나같이 꼬장꼬장한 귀족들의 차량이 줄지어 들어오는 동안 카메라는 보이지 않는 손님이 되어 끔찍한 주말 파티의 현장으로 스며든다. 쏟아지는 비를 지나 웅장한 문을 넘어 마주하는 미로와 같은 복도는 그 자체로 제국주의의 한계와 불안한 미래를 앞둔 1930년대 영국의 단면이다. 저택의 내부는 과시적인 우아함으로 가득하다. 눈 둘 곳을 정하기 힘들 만큼 정교하게 꾸며진 장식, 교양과 위선을 연기하는 귀족들의 화려한 의상, 정중하면서도 기계적으로 ..

잘 자요 _ 드림 시나리오,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

# 0. 잘 자요.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드림 시나리오 :: Dream Scenario』입니다.     # 1. 정갈한 머리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매일밤 꿈속에 나타나 당신을 지긋이 바라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 니콜라스 케이지의 꿈을 수많은 세상 사람들이 똑같이 꾼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심지어 갑자기 꿈속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도발적 상상의 판타지 영화 는 (2002)로 데뷔한 크리스토퍼 보글리의 차기작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 역시 창의적인 설정과 도발적인 표현, 유쾌한 코미디 이면엔 알싸한 풍자가 가득하다. 주연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맡았다. (2021)에서 보여줬던 과격하고 야생적인 모습과 대조되는 소심하고 찌질한 연기를..

Film/Comedy 2024.07.10

이유와 방법 _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 아리안 감독

# 0.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아리안 루이-세즈 플루프 감독,『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입니다.     # 1. 사람을 불쌍히 여겨 피를 빨지 못하는 뱀파이어 사샤와,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죽고 싶은 인간 폴의 이야기다. 굶주린 그녀를 위해 대신 죽어주겠다는 폴이지만 마음 여린 사샤는 소년을 헤치지 못한다. 대신 소년에게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하자 말하는데, 그러면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피를 빨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년은 자신을 괴롭히던 또래들과 이를 방치하던 교사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고, 마지막으로 메인 빌런인 앙리에게 복수하려 하지만 역으로 된통 당하고 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샤는 순간 이성을 잃고 앙리를 공격, 처음으로 사람을 ..

Film/Comedy 2024.07.04

현대영화 _ 킬 룸, 니콜 페이온 감독

# 0. 어. 느새. 부터. 미. 술~~ 은 안 멋져.        니콜 페이온 감독,『킬 룸 :: The Kill Room』입니다.     # 1. 현대미술이 영화에 머리채를 잡히는 건 연례행사다. 끝없이 관념적으로 뻗어나가는 현대미술 일체를 스노비즘(snobbism)으로 치부하거나, 부자들의 친목 모임 뒤에 숨겨진 재산 은닉과 탈세에 복무하는 시종이라 조롱하는 식이다. 때문에 제 아무리 이런저런 킬링포인트를 추가한다 하더라도 큰 틀에서의 작동은 죄다 거기서 거기다. 예술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이 대충 만든 작품을 미끼로 던져 놓은 후, 그 황당한 작품에 허망한 형용을 난사하는 업계를 조소하는 구조로 흘러간다. 코미디언 장동민이 잭슨 폴록의 드리핑을 흉내 낸 그림에 미학자 진중권이 진땀 흘렸던 모 예능을..

Film/Comedy 2024.07.02

죽거나 혹은 미치거나 _ 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 구스웍스 감독

# 0. 글리치 프로덕션(Glitch Productions)을 아시나요?        구스웍스 감독,『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 :: The Amazing Digital Circus』입니다.     # 1. 닐 블룸캠프의 오츠 스튜디오 이후 오랜만에 스튜디오 소개글이다. 물론 하꼬 블로거 따위가 '소개'하기엔 지나치게 월클이지만 말이다.  글리치 프로덕션(Glitch Productions)은 다채롭고 개성적인 디자인, 매콤한 블랙 코미디, 재기 발랄한 스토리로 미래지향적인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호주 국적의 인디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초기작 (2019)와 (2021) 이후, 미국의 애니메이터 리암 빅커스(Liam Vickers)가 총괄로 합류한 (2021)으로 도약한 글리치는, 작년 또 다른 애니메이터 쿠퍼..

Series/Animation 2024.06.28

캐주얼 오리엔탈리즘 _ 러시 아워, 브렛 라트너 감독

# 0. I never told you I didn't. You assumed I didn't.        브렛 라트너 감독,『러시 아워 :: Rush Hour』입니다.     # 1. 개봉 당시는 물론 명절 특선으로도 꾸준히 사랑받은 지만, 받은 사랑에 비해 완성도가 높은 시리즈라 부르기엔 부족함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적지 않은 부분에서 상투적인 클리셰의 조립으로 이루어져 있고, 나 등에서 경험한 바 있는 성룡의 시그니처를 열화 된 방식으로 재연하고 있기에 어떤 면에선 얄팍하다 해도 무리는 없다. 유명하다는('유명한'과 '유명하다는'은 다른 말이다.) 홍콩의 액션스타를 데려다 할리우드의 작법에 쑤셔 넣고 있는 작품은, 이질적인 두 요소를 결합시키겠다는 의도에 걸맞은 화학적 반응을 도출하지 못한 채..

Film/Action 2024.06.20

개판 _ 스트레이스, 조쉬 그린바움 감독

# 0.  대체 무슨 짓을 해야 유기견 이야기로 19금을 받을 수 있는 거지?!        조쉬 그린바움 감독,『스트레이스 :: Strays』입니다.     # 1. 누구에게나 감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수천 편 이상의 영화를 보다 보면 (매번 적중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지간하면 견적이 보인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가 복수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로 소개된 넷플릭스 영화에 큰 기대를 걸 정도로 미련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봤던 것은 딱 하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짓을 해야 이 소재로 19금을, 호러도 아닌 코미디로 19금을 받을 수 있었던 걸까. 확인 끝에 찾은 대답은 음담패설이다. 사랑스러운 네 마리의 강아지 위로 섹스와 성기와 마약과 기타 등등의 이야기가 ..

Film/Comedy 2024.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