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기상천외한 미즈사키 이야기

미즈사키 준페이 감독,
『배트맨 닌자 :: ニンジャバットマン』입니다.
# 1.
일본 망가의 캐릭터가 인격이라면, 북미 코믹스의 캐릭터는 플랫폼이다. 혹은 일본 만화를 선형적 스토리 라인의 RPG라 한다면, 북미 코믹스는 거대한 세계관 안에서 무엇이든 건설하고 파괴할 수 있는 샌드박스 게임이라 표현해도 좋다. 매 에피소드마다, 매 작가마다 캐릭터가 따로 놀기에 역사극과 시트콤의 차이라 이해해도 나쁠 건 없다.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일본 망가와 그로부터 영향받은 한국 만화에 익숙한 독자들이 유독 코믹스를 입문하는 데 버거워하는 이유다.
코믹스의 캐릭터명은 살아있는 인간의 이름이라기보다, '문명'이나 '심시티', 'GTA' 같은 모래상자의 네이밍에 가깝다. 아주 큰 틀에서의 캐릭터 정체성, 이를테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던 스파이더맨의 주제의식이나, 다크 히어로 배트맨의 내적 모순, 슈퍼맨의 무한한 선량함과 불살주의 정도가 가이드로 작동할 뿐이다. 이 최소한의 기본 설정만 유지된다면 나머지 설정은 제멋대로 널 뛰어도 상관없고, 심지어 그럴싸한 이유만 있다면 앞서의 큰 설정조차 위반한다 해서 문제 될 것도 없다.
그래서 망가에선 절대 불가능할 미친 짓거리들이 코믹스에선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운석에 처맞은 공룡이 스파이더맨이 된 세계(Edge of Spider-Verse)도, 배트맨과 조커의 역할이 역전된 세계(Countdown to Final Crisis)도, 슈퍼맨이 소련에 떨어져 스탈린의 후계자가 된 세계(Superman: Red Son)도, 도도한 캡틴 아메리카가 늑대인간이 된 세계(Captain America: Man & Wolf)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그렇기에 까짓 거 고담의 모든 캐릭터들이 냅다 타임워프를 타 닌자와 쇼군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그 제목부터 호방한 미즈사키 준페이의 배트맨 닌자다.

# 2.
따라서 작품의 아이덴티티는 플랫폼으로서의 코믹스가 가진 자유도, 그 자체다. 고담이라는 맵을 봉건 일본으로 갈아 끼우고, 장르 설정을 누아르에서 메카닉 전대물로 바꿔버린 이 괴랄한 선택에 이미 본질이 녹아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작품의 내러티브나 캐릭터성은 물론, 정교한 서사적 현실성, 개연성, 핍진성 따위를 따져 묻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조커가 제6천마왕이 되고, 고릴라 그로드와 포이즌 아이비와 펭귄과 투페이스와 데스스트록이 영주가 되는 것 모두 모래상자를 쥔 창작자가 '이번엔 이렇게 놀아보자' 결정했을 따름이고, 히어로든 빌런이든—당신이 그 캐릭터를 얼마나 애정하는가와 별개로—이 거대한 샌드박스 안에서 자유롭게 흩어지고 뭉치는 가변적인 모래알인 것이다.
화려한 작화와 연출, 호쾌한 액션에도 불구하고, 결국 작품의 핵심적 재미는 기상천외함이다. 마개조 된 일본식 성이 변신 합체 로봇이 되고, 피리 소리에 등나무 갑옷으로 무장한 원숭이 부대가 나타나 맞서고, 다시 박쥐 떼가 나타나 거대 배트맨으로 메가 진화한다는 그 자유도에 기꺼이 몸을 던지는 경험. 위험천만한 롤러코스터를 만들어 승객들을 가지고 논다거나(Rollercoaster Tycoon), 마천루 옥상에서 오토바이 타고 뛰어내린다거나(Grand Theft Auto), 순순히 금을 주지 않는다고 간디가 핵전쟁을 벌인다거나(Sid Meier's Civilization) 할 때의 즐거움과 완벽히 동일한 메커니즘이다.

# 3.
이야기와 세계관이 아무리 널뛰어도, 시각적 스타일이 아무리 날뛰어도 배트맨은 절대 붕괴되지 않는다. 일본 만화의 주인공에게 가면이나 변신이 파워업 이벤트라면 배트맨에게 슈트는 피부 그 자체고, 닌자 복장이든 사무라이 갑옷이든 그 형태(Shape)만 유지된다면 그 안의 배트맨은 훼손될 수 없기 때문이다. 관객은 전에 들어본 적 없는 배트맨을 새로이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온전한 배트맨이고, 그렇기에 배트맨 닌자는 충분히 괜찮은 배트맨 영화다.
작품의 정체성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은 단연 결말이다.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만 소동과 로봇 대전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누구도 죽지 않았고 캐릭터는 변하지 않았으며 모조리 다시 고담으로 돌아왔기에 세계는 아무런 손상이 없다. 캣우먼이 훔쳐온 골동품 하나를 처분하며 영화가 끝나는 순간, 일본에서의 기억은 사소한 추억이 되어 휘발될 것이고, 심지어 다음의 에피소드에서 회상되지조차 않을 것이다. 수시간에 걸쳐 만든 모래성이 들이치는 파도 하나에 휩쓸려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얼마나 자유롭고 또 편리한가.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Netflix, Tving, WatchaPlay, CoupangPlay, Appletv,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 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