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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주의의 울타리 너머 _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

그냥_ 2023. 2.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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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엄숙주의의 울타리를 호쾌하게 넘는 코미디의 힘

 

 

 

 

 

 

 

 

넷플릭스 모큐멘터리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 :: Cunk on Earth입니다.

 

 

 

 

 

# 1.

 

인류의 문명사를 2시간 3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앙상하게 핥아내는 모큐멘터리입니다. 문명 발생에서 시작해 종교, 문화, 근대화를 지나 세계 대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을 유럽인의, 보다 정확히는 영국인의 관점에서 편협하게 전개됩니다만 뭐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지들이 만든 거니까요.

 

처음엔 필로미나 컹크(Philomena Cunk)가 뭔가 싶었는데요. 코미디언 '다이앤 모건'의 부캐였더라구요. 얼핏 보고선 아이티 크라우드의 캐서린 파킨슨인 줄 알고 살짝 반가웠습니다만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선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찾아봤더니 컹크라는 부케로 나름 이러저러한 시리즈를 많이 찍어왔던 듯합니다만 지구 반대편에서 그걸 어떻게 다 알겠어요. 내가 처음 보면 신인인 거죠.

 

어쨌든 코미디언이 호스트가 되어 리드하는 역사 모큐멘터리. 어떤 느낌인지 감이 잡히는군요. 뻔뻔한 표정과 실없는 개드립의 반복이라는 형식 아래 특유의 시니컬한 블랙코미디가 소위 '무식한 사람들'의 가려운 부분을 대신 긁어주는 와중에, 그 '무식한 사람들'의 치부까지 슬쩍슬쩍 긁어냅니다. 코드만 맞다면 제법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법한 작품군이죠.

 

 

 

 

 

 

# 2.

 

사실 역사 다큐멘터리는 좋게 말하면 보수적으로, 조금 더 그럴싸하게 말하자면 엄숙주의적인 기조 위에서 만들어지기 마련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학술적 성취에 대한 기록물로서의 의의가 우선시 되기에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정합하고 엄숙한 절차를 거쳤는가를 최대한 검증하고 자랑하는 과정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라는 것이죠. 이런 대단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모였고, 이걸 검증하기 위해 수개월이 넘는 긴 시간을 들였다는 식의 내레이션은 익숙하실 겁니다.

 

좋게 말해서 보수적이라면 나쁘게는 어떻게 말할 거냐구요? 쫄보처럼 만들겠죠. 일련의 시리즈들은 특유의 보수성을 넘어 어떤 면에선 방어적이기까지 한 것 역시 일반적입니다. 정치사회적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어 보이는 부분들은 거론하는 것조차 회피한다거나, 누군지도 모를 다음의 연구자에게 어물쩍 떠넘긴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무 죄도 없는 시청자들에게 니들도 책임이 있으니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속죄하라며 억지를 부리기도 하죠.

 

<컹크 온 어스>의 의의는 쫄보식 엄숙주의의 울타리를 호쾌하게 넘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전문가를 잡아 놓고 성경과 코랄 중에 어떤 게 낫냐 묻는 데 주저함이 없다거나, 미라 만드는 설명을 들어 기네스 펠트로를 냅다 돌린다거나 하는 식이죠. 유적을 이야기하며 이라크는 위험하니까 대신 영국에 있는 걸로 적당히 퉁치자는 것은 시리즈가 엄숙주의를 대하는 방식을 선명히 합니다. 르네상스와 비욘세의 싱글레이디 중 어떤 것이 우수하냐 묻더니만 백인 남성들의 성과가 흑인 여성의 성과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냐 몰아세우는 코미디는 작품의 방향과 가치를 분명히 하죠.

 

 

 

 

 

 

# 3.

 

다만 엄숙주의를 벗어난 만큼, 특히 그 틈을 코미디로 채우고 있는 만큼 정밀도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긴 합니다. 그리고 떨어지는 정밀도에 비례해 관객 스스로 검증된 사실과 개드립을 분간할 것이 강요될 수밖에 없는 거겠죠. 표독스럽게 말하자면 이 시리즈는 이미 모든 것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버라이어티에 불과하다 해도 무리는 없을 겁니다. 제 아무리 페이크 다큐를 표방하고 있다고는 하나 테마가 교양과 연동되어 있는 한, 모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흥미와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취약하다는 것은 분명 치명적이죠.

 

다만 다시 생각해 보면 위의 문제가 단점이 되려면 '모르는 사람도 보는 다큐'와 '아는 사람만 보는 다큐' 사이에서의 이지선다라는 전재가 필요하긴 합니다. 만약 '아무도 안 보는 다큐'와 '그나마 아는 사람이라도 깔깔대며 보는 다큐' 사이에서의 이지선다라면 후자라도 선택한 것이 반드시 단점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거겠죠. 엄정하게 만들어 봤더니 아무도 안 보는 데 나더러 뭐 어쩌라고?라는 불평 앞에 할 말이 없어진달까요.

 

이쯤 되면 학술적 다큐멘터리라는 것의 의의란 무엇일까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어차피 정확한 정보는 학술지를 찾아야지 다큐멘터리는 흥미를 유도해 관련 분야로의 관심을 환기하는 마중물이면 충분하다는 다소 낙관적인 주장도 의미가 있을 테구요. 학문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적당히 부정확한 영역이라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야 하며, 편안한 태도도 어설프게 퍼져나간 잘못된 정보로 인한 사회적 비용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주장 역시 의미는 있을 겁니다. 쉽지 않은 문제군요.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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