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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종의 기원 _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그냥_ 2026. 2.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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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Some of them want to use you,

Some of them want to get used by you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 :: Kinds of Kindness』입니다.

 

 

 

 

 

# 1.

 

물론 친절 혹은 다정함의 종류라 직역하는 것이 무난하다. 다만 Kind는 때때로 종이라는 의미로도 쓰이기에, 제목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는 친절이라는 종(種, Species)으로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호모 코미스(Homo Comis, 친절한 인간)쯤 될까. 현생 인류란 다정함을 정체성으로 하는 유인원이고, 그것이 호모 에렉투스나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생물학적 분류에 가까운 것이라면, 우리 종의 특성은 유전자 결정적이라 주장한다는 면에서 요르고스 란티모스치곤 상당히 단정적인, 그래서 염세적인 제목이라 하겠다. 해당 추측에 따라 제목의 Kind가 중의적으로 Species를 대신하는 것이라면, 영화는 종적 차원에서 '친절함이란 종'에 대한 생태학적 연구를 옴니버스의 형태로 재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이해하며 감상한다.

 

The Death of R.M.F. 상사 레이먼드에게 모든 것을 통제받는 남자 로버트의 이야기다. 그는 보상으로 호화로운 저택, 안락한 가정 따위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만, 누구나 느끼다시피 그보다 의미심장한 것은 선물이다. 1984년 존 매켄로가 망가뜨린 라켓과, 아일톤 세나가 썼던 그을린 헬멧은 일련의 통제와 요구가 로버트를 파괴와 실패로부터 지켜주고 있다는 가스라이팅과 같고, 매일밤 읽는 안나 카레니나는 같은 의미에 대한 조금 더 노골적인 암시다. 높은 고층 빌딩의 사무실, 날카로운 모서리에서 내려다보는 앵글과 움추러든 구도는 인물의 상황을 시각적으로 명시한다. 그러던 어느 날. 레이먼드는 로버트에게 사람을 차로 치여 죽일 것을 요구하고, 오랜 시간 레이먼드를 충실히 따랐던 로버트는 크게 갈등한다.

 

 

 

 

 

 

# 2.

 

반복적으로 첫 에피소드에 겹쳐 보이는 부모-자식 관계다. 젊고 아름다운 비비안은 아들의 눈에 비친 어머니, 늙고 단호한 레이먼드의 모습은 아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이미지라고 말이다. 부모는 나름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아이의 눈에는 그저 야자수를 죽이는 바구미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막연하다. 부모가 아들에게 자신의 방에 들어오는 예법을 연습시키는 건 흔한 일이고, 무엇보다 아직 부모로부터 미숙하다 판단된 자녀의 번식이 통제되는 건 썩 자연스러운 일이다. 쓸데없이 구체적인 10년을 버텼다는 말도 유년기 10대와 적당히 맞아떨어지는 부분. 그렇다면 R.M.F. 를 죽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 것일까. 작중 맥거핀처럼 보이는 R.M.F. 는 개체와 구분되는 '종의 동물적 본성'을 구체화한 것이라 추측한다. 부모는 일정한 나이에 도달한 자식에게 진정한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가 될 수 있도록 내면의 본성적인 무언가를 살해할 것을 요구하고,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성장기에 저항과 패배를 경험하며 길들여진다는 의미다.

 

아들이 부모의 요구를 거절하자 아버지는 다정함을 피딩하는 것을 그만둔다. 그것은 자녀에게 잔혹하고 공포스럽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다던 레이먼드는 실제 집도 차도 내버려 두지만 망가진 라켓만은 가져가는데, 이는 그것이 부모의 다정함 아래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 안심하는 아들의 마음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아내 사라 또한 부모의 통제가 자연스럽게 나를 데려다 주리라 믿었던 안락한 미래를 상징하기에 아버지를 따라 떠나버릴 수밖에 없다. 자유를 얻은 자식은 아버지에게 배운 방법을 답습해 자신의 순수성을 찾아 나선다. 손을 다친 척하는 대신 실제 다리를 부러트리는 것처럼 말이다. 리타는 호화 호텔에 어울리는 건축가가 아니라 고작 시내 안경점 직원이고, 그녀의 프로필은 아버지에 의해 디자인된 미래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충분히 훌륭하기에, 리타는 로버트의 '친절에 길들여지지 않은 미래', 즉 R.M.F. 를 살해하지 않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대변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레이먼드에게 같은 지시를 받았음이 밝혀진다. 리타 또한 부모의 친절에 통제되는 사람이고, 세상의 모든 이가 부모로부터 요구받아 R.M.F. 를 살해한 결과라면, 어린 아들이 느낄 감정은 오직 소외감뿐이다. 만약 리타와의 사랑도 로버트를 부모로부터 통제받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한다면 굳이 레이먼드, 즉 아버지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 로버트는 수동적으로 선물 받았던 부러진 라켓을 스스로 되찾음으로써 부모의 품으로 돌아간다.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무엇보다 잔인하게 R.M.F. 를 살해한 그는 포근하고 서글픈 부모의 침대 사이에 눕는다. 아버지는 우리 아들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어머니는 자장가를 부른다는 결말. 퇴행이다.

 

 

 

 

 

 

# 3.

 

R.M.F. is Flying. 영원할 것만 같았던 부모의 보호도 당연히 영원할 수 없다. 장성한 청년은 겉보기에 제복 입은 경찰처럼 건실하지만, 그는 통제와 요구라는 친절함을 피딩하던 부모가 부재한 결핍에 시달린다. R.M.F. 를 차로 치어 살해한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는 독립한 직후 그 통제의 반동으로 카오스적인 상태다. 일련의 심리가 드라마틱하게 과장된 것이 바로 그룹 섹스 동영상. 남자의 내면은 자신의 본성(다니엘)과, 어머니의 흔적(마사)과, 리타에 대한 그리움(리즈)과, 안정적 삶에 대한 욕망(닐)이 뒤엉켜 서로를 게걸스럽게 탐닉하는 상태다.

 

마침내 집을 떠났던 리즈가 돌아오지만 그녀는 다니엘이 간절히 기다렸던 그녀, 즉 리타가 아니다. 그 사이 발도 커버렸고, 피우지 않던 담배를 피우며, 쾌락적인 초콜릿을 탐닉하고, 천박하게 섹스를 요구하는 '오염된' 리즈다. 다니엘은 리즈에게 손가락을 달라 하고 리즈는 손가락을 잘라준다. 간을 먹고 싶다 말하자 간을 빼고 죽는다. 자신의 요구를 거절함으로써 레이먼드가 틀렸다는 걸 증명해야 할 리즈가 다니엘의 부탁을 모두 들어준 후 죽어버린 결말. 직후 문을 두드리며 돌아온 엠마 스톤은 리즈가 아닌 '존재할 수 없는 리타'다. 대안적이고 착란적인 삶을 선택한 데이브들은 이미 개와 다를 바 없고, 개체는 개가 되었지만 '종'은 날아오른다. Flying.

 

 

 

 

 

# 4.

 

R.M.F. Eats a Sandwich. 통제로부터 발아한 친절이 자기 불신을 거쳐 결벽적인 맹신으로 진화하는 동안, R.M.F를 살해하고 리즈를 거절한 아들의 내면은 이미 리타의 것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중심 화자 에밀리를 엠마 스톤이 다시 연기한 이유이자, 더벅머리가 되어버린 앤드류가 조수석으로 밀려나버린 이유다. 마찬가지로 그녀가 되어버린 그에게 남은 안식은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것이자 첫 번째 에피소드의 아내에게 돌아가는 것이기에 오미는 윌렘 대포가, 아카는 홍 차우가 연기할 수밖에 없다.

 

에밀리는 약에 취해 남편과 원치 않는 잠자리를 가지고 만다. 낙원에서 추방당한 불결해져 버린 에밀리가 돌아갈 방법은 완벽하게 순수하고 기적적인 존재, 안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뿐이다. 우여곡절 끝에 안나를 발견한 에밀리. 폭력적으로 납치된 안나는 기적을 행하지만 하필 그 대상은 죽은 R.M.F. 였고, 그를 살리는 것을 끝으로 안나는 허망하게 죽는다. 초월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향해 그리고 스스로를 향해 통제하고 사육하고 요구하고 갈망하지만 그래봤자 끈적한 소스를 옷에 덕지덕지 묻히는 평범하게 지저분한 짐승일 뿐이라는 결말. 그 허무한 대조다.

 

영화 내내 개체는 고통스럽지만 단지 종의 확장만이 있을 뿐이다. R.M.F. 를 살리네 마네 의미를 부여하지만 종의 실체는 아무 생각 없이 배를 채우고 있을 뿐이다. 란티모스는 인간을 규격화함으로써 다정함이란 기괴한 종의 태동과 변이와 완성을 구현하고 있고, 자신의 환상을 지키기 위해 타인과 스스로를 난도질하다 마침내 의미 없는 기적에 눈멀어 본질을 보지 못하는 종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누군가에게 지배당하거나 지배하는, '다정함'의 굴레 없이 생존할 수 없는 기생적인 종의 기원인 것이다.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Netflix, Tving, WatchaPlay, CoupangPlay, Appletv,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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