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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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98

어지르는 재미 _ 레이더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 0. 세상에서 제일 가슴 뛰는 영화의 어지르는 재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레이더스 :: Raiders of the Lost Ark』입니다. # 1. 첫 편의 제목은 의외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탐험가의 이름이 아니다. '잃어버린 성궤의 침입자'라는 뜻의 양심적인(?) 제목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해리슨 포드가 협업한 영화 레이더스는 1930~40 펄프 픽션과 시리얼 필름의 문법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틀에 성공적으로 이식한 작품이라 평가된다. 복잡하고 심오한 주제의식을 파고들기보다 직관적으로 즐길 수 있는 모험과 액션, 유머, 로맨스 등을 영리하게 조합한 끝에, 위험천만한 상황들을 재치와 용기로 헤쳐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대리만족의 쾌감을 한껏 선사한다. 물론 직관..

Film/Action 2025.05.10

도이치 메트로배니아 _ 엑스테리토리얼, 크리스찬 주버트 감독

# 0. 독일 공무원 중에 가장 서윗한 척하는 더러운 콧수염 크리스찬 주버트 감독,『엑스테리토리얼 :: Exterritorial』입니다. # 1. 영사관에서 벌어진 전직 군인 엄마의 아들 실종 사건은 익숙한 스릴러의 틀 속에서 굴러가는 듯 보인다. 모성으로 무장한 강인한 여성 주인공이 폐쇄된 공간에서 지지고 볶는 동안 겸사겸사 거대한 음모까지 파헤친다는 시놉은 기시감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하지만 실제 영화를 보다 보면 의외로 액션 스릴러 장르에 대한 합의된 기대들이 반복적으로 엇나간다. 그것도 생각보다 자주 말이다. 전통적인 서사 구조로 볼 때, 인물의 갑작스러운 행동 변화나 일부 설정에서의 비약, 플롯 진행을 위해 도구적으로 활용되는 캐릭터 배치 따위는 비판의 소지가 있고, 실제로도..

Film/Action 2025.05.04

메카뽕에 꼬라박으면 _ 퍼시픽 림,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 0. 덕중에 덕은 양덕일지니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퍼시픽 림 :: Pacific Rim』입니다. # 1. 장편 영화 하나를 냅다 메카뽕에 꼬라박으면 어떤 결과물이 만들어질까. 퍼시픽 림이다. 진부한 스토리를 대충 방기한 채 거대 로봇 액션에 몰빵한 영화라는 것엔 호평하는 사람도 혹평하는 사람도 이견이 없겠으나, 다소 둔탁해 보이는 경험에 비해 작품의 시청각적 스펙터클의 스펙트럼은 생각보다 다채롭다. 글에선 그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연출한 메카 영화의 정체성은 어쨌든 예거다. 각각의 예거는 다양성을 위한 다양성의 무작위적 수집이 아닌 대표하는 국가의 문화적 인상, 군사적 역사, 장르적 전통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기체마다 서사 안에서 맡은 바 책임을..

Film/SF & Fantasy 2025.04.28

나에게로의 초대 _ 아메리칸 울트라, 니마 누리자데 감독

# 0. 망가진 내게도 내일이 있을까        니마 누리자데 감독,『아메리칸 울트라 :: American Ultra』입니다.     # 1. 스파이니 울트라니 하는 것들은 본질적이지 않다. Merry me? 로 시작해 Propose 하며 끝나는 영화는, 결혼을 앞둔 커플의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관계 중심적인 보편의 영화들과 달리 남자에게 균형이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 보다 '내가' 결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영화랄까. 따라서 컬트적인 액션 코미디 아래로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를 흘려보내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다시 그 아래 숨겨진 성장 영화라 이해해도 무리는 없다.  도입에서 수사관은 사진을 몇 장 보여준다. 숟가락, 컵라면, ..

Film/Action 2025.03.30

액션의 순정 _ 프로젝트 A, 성룡 감독

# 0. 이미 완성되어 있었던 그의 액션 미학        성룡 감독,『프로젝트 A :: Project A』입니다.     # 1. (1978), (1984), (1985), (1998) 등과 함께 액션스타 성룡을 대표하는 시리즈. 라고는 하지만 인지도가 살짝 부족한 건 사실이다. 딸기코의 소화자가 인상적이었던 취권만큼 개성적이지도 않고 폴리스 스토리나 러시 아워만큼 친숙하지도 않거니와, 일단 특유의 무심한 제목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여타 작품들에 비해 당대 홍콩의 지역색과 시대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작품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아쉬운 인지도와 별개로 작품성만큼은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수많은 영화 팬들이 80년대 홍콩 액션 영화의 명작으로 꼽을 정도. 이전까지 고전적 캐릭터를 기능적으로 수..

Film/Action 2025.03.16

그것도 두 번씩이나 _ 더 캐니언, 스콧 데릭슨 감독

# 0. 굳이 노력해서 더 재미없는 곳을 향해 추락한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스콧 데릭슨 감독,『더 캐니언 :: The Gorge』입니다.     # 1. 영화는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협곡 위, 협곡 아래, 다시 협곡 위다. 첫 번째 파트의 주인공은 인물이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협곡의 실체와 관련된 설정이고, 세 번째 파트에서는 폭탄이다. 내러티브를 인간에서 설정으로, 다시 폭탄으로 추락시키면서 관객의 몰입이 다운그레이드되지 않길 바랐다면 솔직히 미련한 것이고, 애석하게도 감독은 최선을 다해 미련한 길을 내달린다. 전반부는 두 주인공을 관객에게 소개한 후 공간에 안착시키는 과정으로 점철된다. 리바이는 아무런 관계도 추억도 없어 인생의 기반이 없는 사람이다. 반복되는 ptsd는 군사 작..

Film/Action 2025.03.06

범죄의 재구성, 보급형 _ 킬 미 쓰리 타임즈, 크리브 스텐더스 감독

# 0. 이 동네에서 정신병자 집회라도 있냐?        크리브 스텐더스 감독,『킬 미 쓰리 타임즈 :: Kill Me Three Times』입니다.     # 1. 코미디의 심벌이 되어버린 몇몇의 배우가 총 들고 멋있는 척하고 있다면 어지간해선 밥값은 한다. 미모의 테레사 팔머와 앨리스 브라가 사이에 서 있는 미어캣 닮은 저 남자처럼 말이다. 검정 슈트 빼입고 겁나 큰 스코프 달린 저격총 들고 선 남자, 누가 봐도 스티커로 붙인 듯 어울리지 않는 콧수염의 사이먼 페그가 세상 모든 미인을 10분 만에 꼬실 수 있다는 듯 치명적인 표정으로 카메라를 직시하고 있다? 오케이, 일단 합격. 급전이 필요한 도박쟁이 남편과 보험 사기가 천직인 사이코 패스 아내가 등장한다. 은행보다 금고가 편한 분조장 의처증 남편..

Film/Comedy 2025.03.04

정신적 보톡스 _ 백 인 액션, 세스 고든 감독

# 0. 현기증을 유발하는 보톡스 냄새        세스 고든 감독,『백 인 액션 :: Back in Action』입니다.     # 1. 당신은 마피아다. CIA 소속 비밀요원이 조직의 행사에 잠입해 중요한 키를 탈취했다. 열심히 스파이들을 뒤쫓았지만 유능한 요원들을 붙잡는 덴 역부족이다. 다행히도 보스는 스파이들이 타게 될 비행기를 포섭하는 데 성공했고, 당신에게 비행기에 올라 가방 안에 들어있을 키를 회수하라 지시한다. 명령을 받은 당신은 비행기에 탔다. 기다리던 요원들을 능숙하게 제압해 화장실에 집어넣는 데까지 성공했다. 때마침 스파이가 도착했다. 감쪽같은 변장 덕에 당신을 CIA 요원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스파이는, 한껏 방심한 상태로 대화를 나눈다. 자, 여기서 질문.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

Film/Comedy 2025.01.22

흠... 그정둔가 _ 이퀼리브리엄, 커트 위머 감독

# 0. 배꼽이 큰 건지, 배가 작은 건지.        커트 위머 감독,『이퀼리브리엄 :: Equilibrium』입니다.     # 1. 망한 영화라 해야 할지 성공한 영화라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배(영화적 완성도)보다 배꼽(건 카타 액션)이 크다는 것에는 호평하는 사람과 혹평하는 사람 사이에 합의가 있는 듯 하나, 그것이 배가 지나치게 작아서인지 배꼽이 크고 뛰어나서인지는 갑론을박이 있다. 호평하는 사람들은 당시 범람하던 매트릭스의 마이너 카피와 반대되는 방향의 액션 표현을 선보인 것에 점수를 주는 모양새고, 혹평하는 사람들은 어쨌든 박약한 이야기의 완성도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작품의 주제의식은 당시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제법 낡고, 구현 역시 태만하다. 단단히 망한 근미래를 이야기..

Film/Action 2025.01.04

하책의 최대치 _ 콘스탄틴,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

# 0. 빌어먹을 악마에게 법규 날리는 한 해 보내시길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콘스탄틴 :: Constantine』입니다.     # 1. 상책은 근사한 세계 위로 멋들어진 이야기를 펼쳐내는 것이다. 중책은 좋은 이야기를 만들지 못했더라도 세계만큼은 매력적인 경우나, 혹은 그 역이다. 하책은 고유의 이야기도 세계도 구축하지 못한 채 설정 놀음에 빠지는 것인데, 콘스탄틴은 명백히 하책의 영화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이야기라 부를 만한 것은 없다. 전개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독할 정도로 설정 나열에 의존한다. 비장한 기독교적 주제와 기괴한 오컬트적 소재와 수려한 주인공의 미모를 끌어다 비벼보려 하지만, 본질은 그런 것들로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가라앉는 영화를 다..

Film/SF & Fantasy 2025.01.02

니들은 이런 거 배우지 마라 _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스테파노 솔리마 감독

# 0. (담배 한 개비를 꼬나물며)        스테파노 솔리마 감독,『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 Sicario Day of the Soldado』입니다.     # 1. 속편을 만든다는 건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까다로운 일인 듯하다. 전작의 이야기, 설정, 복선, 주제의식, 연출 방향, 캐릭터 해석과의 연결성은 익숙하면서도 새롭다는 이율배반적인 이야기를 꾸려야 하는 사람들에게 골치 아픈 족쇄다. 시리즈 이름에 새겨진 관객이 기대하는 무언가가 먼저 결정되어 있다는 것도 운신의 폭을 크게 제약한다. 혹여 특정한 캐릭터와 관객 사이에 애착관계라도 형성되었다면 큰일이다.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고 배제하면 배제하는 대로 내세우면 내세우는 대로 피곤한 뒷말이 반드시 나온다. 처음부터 속편을 염두..

Film/Action 2024.12.22

역부족 _ 오블리비언, 조셉 코신스키 감독

# 0. 뚜렷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조셉 코신스키 감독,『오블리비언 :: Oblivion』입니다.     # 1. 스토리는 지루하고 메시지는 진부하다. 황량한 지구를 방황하는 톰 크루즈의 영화는, '비단으로 누더기를 만든 듯하다'라던 어느 평론가의 우악스러운 비아냥을 설득력 있는 것으로 만든다. 장르의 바이블과 같은 (1968)나 (1977)까지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인간의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서사로서의 (1999)와 (1982)를 비롯해 (1996), (2005), (1990), (1968) 등 지나치게 유명한 고전 SF의 아이디어가 뭉텅이로 발견되는 경험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각각의 요소는 양적으로만 풍부할 뿐 재해석되지도 재구성되지도 못한 채 전형적인 플롯과 설정을 빌려오는 수준..

Film/SF & Fantasy 2024.12.02

설익은 야심의 결과 _ 나이스 가이즈, 셰인 블랙 감독

# 0.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        셰인 블랙 감독,『나이스 가이즈 :: The Nice Guys』입니다.     # 1. 오역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나이스 가이즈다. 실소조차 나오지 않는 수준 낮은 번역을 나열하는 건 생략한다 하더라도, 영화 자체적으로도 하자가 적지는 않다. 몸값 비싼 두 주연배우의 슬랩스틱과 앵거리 라이스의 귀여움이 단점의 상당 부분을 만회하고 있고, 그 코미디의 리듬에 감화되어 버디물의 매력을 즐겼을 몇몇 관객들의 무난한 호평을 존중하는 것과 별개로 말이다. 포르노 배우의 도발적인 오프닝이 무안하게도, 미스터리 추리극은 힘없이 가족주의 드라마로 주저앉는다. 홀랜드(라이언 고슬링 분)의 직업이 탐정이 맞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미스터리의 짜임새는 빈약하다. (..

Film/Comedy 2024.11.26

북쪽의 사람들 _ 노스맨, 로버트 에거스 감독

# 0. 선량한 복수의 세계로 빨아 당기는 일렁임, 이글거림, 으르렁거림.        로버트 에거스 감독,『노스맨 :: The Northman』입니다.     # 1. 우리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즐기는 동안 올림푸스와 동시에 그런 상상을 만개하던 아고라를 함께 떠올린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으며 인생의 유한함을 고찰하면서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을 했던 그 옛날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자취를 함께 즐긴다. 히브리 신화를 읽는 동안 기독교 교리 아래로 당대 서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상을 상상하고, 단군신화를 배우며 쑥과 마늘의 이야기 이면에 담긴 오래전 한반도에 자리했던 조상들과의 문화적 연결성을 확인한다. 이처럼 신화가 특별한 건 이야기만큼이나 특별한 화자의 세계가 동시에 느껴진다는 것..

Film/Drama 2024.11.18

무슨 짓 _ 더 로버, 데이비드 미쇼 감독

# 0. 세상이 대충 망한 뒤 지금 이 시대에서 건(gun)법으로 나를 막을 자는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미쇼 감독,『더 로버 :: The Rover』입니다.     # 1. 또포칼립스다. 이쯤 되면 망하지 않은 세상이 역으로 잘못된 건가 싶다. 낡은 차량 안에서 간신히 평온을 얻는 남자, 건조한 모래바람 몰아치는 황량한 들판, 정체 모를 중화풍 음악으로 소개되는 호주는,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망해도 단단히 망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수상할 정도로 총을 잘 쏘는 농부 에릭은 가이 피어스가 연기한다. 살아있는 채권 겸 생체 내비게이션 레이는 이제 막 트와일라잇을 벗어던지던 무렵의 로버트 패틴슨이 맡았다. 이기적인 스타일과 과장된 호흡의 느려터진 영화는 미친듯한 호불호를 유발하나, 마..

Film/Action 2024.11.14

시민의 의무 _ 더 커버넌트, 가이 리치 감독

# 0. 가이 리치가 이런 영화도 만들 줄 알았나        가이 리치 감독,『더 커버넌트 :: Guy Ritchie's The Covenant』입니다.     # 1. 자잘한 이야기를 리드미컬하게 썰어 들어가길 즐기던 가이 리치에게 이런 면도 있었던 걸까. 제이크 질렌할과 다르 살림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영화는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굵고 선명한 이야기를 힘껏 끌고 가는 맛이 인상적이다.  보통의 영화에서 큰 선택은 큰 동기에 의해 일어난다. 큰 희생을 통해 큰 우정을 표현한다거나 큰 결단을 통해 큰 신념을 관철하는 식이다. 반면 시작부터 삐걱거렸던 파견 군인과 현지 통역사의 브로맨스는 큰 행동을 움직이게 만드는 작은 동기에 대한 영화다. 감독이 포착하고자 하는 작은 동기란 제목에도 적시된 '계약'으로,..

Film/Action 2024.11.10

호연지기 _ 하드코어 헨리,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

# 0. 다른 영화들의 고민을 초라하게 만드는 호방한 야심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하드코어 헨리 :: Hardcore Henry』입니다.     # 1. 친근한 동네 상영관에서는 모든 영화가 훌륭하지만, 한껏 힘 준 아이맥스에서 봐야 한다면 그래도 이나 , 정도는 봐야 돈값한 느낌이 든다. 문턱을 넘는 것만으로도 시네필이 된 것 같은 소극장에선 의무감으로라도 인디 영화를 봐야만 할 것만 같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인 캠핑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왁자지껄함도 품어 줄 넉넉한 코미디가 좋다. 오붓한 연인들의 자동차 극장에서는 만 한 것이 없다. 만만한 우리 집 거실에선 중간 즈음의 이나 가 방송되어 길 잃은 리모컨을 쉬게 한다. 시골 할머니 집 낡은 브라운관에서는 오래된 홍콩 영화 혹은 가 제격..

Film/Action 2024.10.20

육조거리의 무녀 _ 전, 란, 김상만 감독

# 0. 붉게 타오르는 분노와 푸르게 침몰하는 희망 사이에서 체제를 논할 뻔하다. 김상만 감독,『전, 란 :: Uprising』입니다. # 1. 주인공은 강동원의 천영도, 박정민의 종려도 아니다. 신분제를 포함한 조선의 법도라는 체제(體制)다. 인물들은 체제를 대하는 각기 다른 방식들로 분류되어 배치되어 있고, 액션은 체제에 대응하는 방식들 간의 갈등 관계를 물리적으로 대신할 따름이다. 때문에 보다 보면 전혀 다른 장르임에도 마틴 맥도나의 (2022)가 계속 머리에 맴돈다. 허무를 대하는 각각의 방법론을 개인에 투사해 그 관계를 관찰했던 것과, 본 작이 체제를 대하는 방식은 제법 유사하다. 허무를 놓고 절친이 피 흘리던 영화의 제목을 이니셰린의 벤시라 한다면, 체제를 놓고 절친이 피 ..

Film/Action 2024.10.18

상쾌한 주객전도 _ 메이헴, 조 린치 감독

# 0. 솔직해서 오히려 상쾌한 메시지와 스타일의 주객전도        조 린치 감독,『메이헴 :: Mayhem』입니다.     # 1. 분노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인해 8시간 동안 격리된 회사에서 벌어진 광기의 살육극이다. 모함으로 해고된 변호사 데릭 조(스티븐 연 분)와 부당한 계약의 피해자 멜리나 크로스(사마라 위빙 분)가 협력해 최상층의 메인 빌런 존 타워스(스티븐 브랜드 분)를 무찌른다는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서사다. 영화의 동력은 크게 둘을 꼽을 수 있다. 천민자본주의적이고 성과지상주의적인 기업 문화에 대한 과격한 비판으로서의 액션과, 소모품과 다를 바 없는 직장인에 대한 자조적 연민으로서의 코미디다. 승진을 위해 서로를 밟고 음해하는 불공정한 약육강식에 노출된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과장된 폭..

Film/Action 2024.09.28

캡사이신 우유 _ 렌필드, 크리스 맥케이 감독

# 0. 유리멘탈 현대인을 위한 다정하고 매콤한 캡사이신 우유        크리스 맥케이 감독,『렌필드 :: Renfield』입니다.     # 1. 브램 스토커(Bram Stoker)의 소설 (1897)의 등장인물 렌필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호러, 코미디, 액션, 판타지 영화다. 한창 유행인 리메이크나 리부트가 아닌 보조적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는 것, 특히 외전 격의 이야기 대신 기존 서사를 전복시켜 독자적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에 도전했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영화는 야심에 걸맞게 고전의 고풍스럽고 음습한 분위기를 대신하는 컬트적이고 경쾌한 현대적인 모습이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말이다. 감독은 드라큘라 신화를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와 종속 관계에 대한 알레고리로 재해석한다. 드라큘라와 렌..

Film/Action 2024.09.08

괜찮을 거라는 격려, 마음을 담은 헌사 _ 소스 코드, 덩컨 존스 감독

# 0. Everything is gonna be okay.Thank you for your service.        덩컨 존스 감독,『소스 코드 :: Source Code』입니다.     # 1. 10년도 더 지난 영화의 플롯을 이제와 설명하는 건 지루하다. 러틀리지 박사의 설정놀음을 걷어내고 나면, 결국 통 속의 뇌에다 죽은 사람의 기억을 접붙이기한 후 파생되는 문제들은 평행우주로 돌파했을 뿐이다. 물론 창의적이고 도발적인 발상, 스피디한 편집과 미술적 성취, 제이크 질렌할의 불안과 소명, 미셸 모나한의 사랑스러움, 백투백 홈런을 날리는 듯한 반전 카타르시스는 인정받아 마땅한 것임에 분명하지만 말이다. 다만 의외인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키스신에서 영화를 끝냈으면 좋았을 것이라 이야기..

Film/SF & Fantasy 2024.08.30

당나귀와 코끼리 _ 킬링 소프틀리,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

# 0. 비겁하고 야비한 당나귀이기적하고 잔인한 코끼리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킬링 소프틀리 :: Killing Them Softly』입니다. # 1. 수다스러운 걸쭉한 농담과 드라마틱한 액션 연출의 매력이 분명한 작품이다. 다만 주연이자 제작자이기도 한 브래드 피트가 진단하는 미국에 대한 날 선 시선은 때론 너무 노골적이고 감정적이라 영화를 시시하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 마지막 대사는 문장의 완성도와 별개로 굳이 스스로 말해야 했을까 싶은 것도 사실이다. 버락 오바마의 연설로 시작되는 영화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숨길 생각이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겁 없이 도박장을 턴 두 도둑과 그들을 쫓는 살인청부업자의 네오 누아르지만, 이면엔 부시 말기부터 오바마 초기까지의 혼란스러운 미국..

Film/Action 2024.08.28

회장님 아들인가 _ 크로스, 이명훈 감독

# 0. 쓸데없이 친절한 시대착오적 코미디가 몸 둘 바 모를 정도로 황송하다.        이명훈 감독,『크로스 :: Mission: Cross』입니다.     # 1. 야구에는 지명타자(Designated Hitter, DH)라는 제도가 있다. 특수포지션인 투수들을 부상 위험에서 보호할 겸, 낭비되는 타석도 없앨 겸 대신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말한다. 당연하게도 투수를 대신해 들어가는 DH는 수비부담이 없기에 보통 '타격은 상위타석에 들만큼 탁월하지만 수비에 어려움을 겪는 베테랑 타자'가 서게 된다. 팀 입장에선 에이징 커브가 온 스타 선수의 남은 타격 능력을 뽑아 먹을 수 있으니 이득이고, 선수 입장에선 타자로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으니 역시 이득이다. 무엇보다 한여름 뙤약볕에 더그아웃 그늘에 ..

Film/Action 2024.08.12

패러다임의 탄생 _ 본 슈프리머시, 폴 그린그래스 감독

# 0. 액션은 지금부터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본 슈프리머시 :: The Bourne Supremacy』입니다.     # 1. 기본적으론 정체성 갈등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은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특수요원으로, '냉혹한 과거의 행적'과 '따뜻한 현재의 윤리' 사이에서의 괴리를 물리적으로 치환한 작품이라 요약해도 무리는 없다. 열감으로 비유하자면 는 차가운 내면과 뜨거운 액션의 결합, 은 뜨거운 내면과 뜨거운 액션의 결합, 은 차가운 내면과 차가운 액션의 결합이라 한다면, 시리즈는 뜨거운 내면과 차가운 액션의 결합이라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액션 어드벤처로서 거대한 지배력을 가진 , 코미디 활극으로서의 를 더하면, 이후 어떤 영화가 나오더라도 이 여섯 시리즈가 그리는 육각형 ..

Film/Action 2024.07.18

신화의 탄생 _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조지 밀러 감독

# 0. 신화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조지 밀러 감독,『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 Mad Max Fury Road』입니다.     # 1. 신화란 마땅히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엄마와 할머니와 할머니의 할머니가 태어나기 전부터 당연히 존재하던 것이라고 말이다. 가끔은 충분히 오래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신화냐 볼멘소리를 듣기도 하는 데, 이쯤 되면 시간은 신화가 신화이기 위한 필수적 요건인가 싶기도 하다.  때문인지 몰라도 신화를 다룬 대부분의 영화들은 오랜 시간을 전제한다. (2004)와 같이 신화를 고스란히 재현한 작품은 물론이고, (2011), (2009), (2012)와 같은 재해석한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1994), (2010) 등 현대를 배경으로 풀..

Film/Action 2024.06.26

캐주얼 오리엔탈리즘 _ 러시 아워, 브렛 라트너 감독

# 0. I never told you I didn't. You assumed I didn't.        브렛 라트너 감독,『러시 아워 :: Rush Hour』입니다.     # 1. 개봉 당시는 물론 명절 특선으로도 꾸준히 사랑받은 지만, 받은 사랑에 비해 완성도가 높은 시리즈라 부르기엔 부족함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적지 않은 부분에서 상투적인 클리셰의 조립으로 이루어져 있고, 나 등에서 경험한 바 있는 성룡의 시그니처를 열화 된 방식으로 재연하고 있기에 어떤 면에선 얄팍하다 해도 무리는 없다. 유명하다는('유명한'과 '유명하다는'은 다른 말이다.) 홍콩의 액션스타를 데려다 할리우드의 작법에 쑤셔 넣고 있는 작품은, 이질적인 두 요소를 결합시키겠다는 의도에 걸맞은 화학적 반응을 도출하지 못한 채..

Film/Action 2024.06.20

네 명의 이름은 _ 스턴트맨,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

# 0. 스턴트만큼 영화도 사랑해 주었으면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스턴트맨 :: The Fall Guy』입니다.     # 1. 괜찮을 수 없는 순간에조차 언제나 괜찮아야 했던 나의 오랜 파트너들에게. 사랑을 담아. # 2. 극장을 나서며 느낀 가장 강렬한 정서를 다음과 같이 메모에 옮겼다. 감동은 며칠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감독을 포함, 참여한 모든 이들의 진정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후 그 어떤 비판을 하더라도 말이다.  스턴트맨에 '대한' 영화가 아닌 스턴트맨을 '위한' 영화다. 배우 대신 몸을 던지는 스턴트맨들의 노고와 헌신과 기여, 그에 미치지 못하는 대우에 대한 불만이 알파이자 오메가다. 무수한 액션 영화들의 레퍼런스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가장 밀접하게 연상되는 작품은 셋이..

Film/Action 2024.06.14

진정한 변화 _ 더 배트맨, 매트 리브스 감독

# 0. 이유 없이 우뚝 선 희망의 탄생        매트 리브스 감독,『더 배트맨 :: The Batman』입니다.     # 1. 어둠 속의 히어로는 세 가지 의미다. 스스로 복수(분노의 어둠)의 화신을 자처한다는 것, 자경단이 아닌 범죄자(윤리의 어둠)로 받아들여진다는 것, 가문과 고담의 진실을 모른다(무지의 어둠)는 것이다. 그는 범죄자에겐 공포의 존재일지언정 경찰에겐 핼러윈 코스튬의 또 다른 범법자에 불과하다. 배트맨은 자신을 Vengeance(복수)라 선언하지만 정작 무엇에 대한 복수인지, 누구를 향한 복수인지조차 모른다. 이전의 그 누구보다 초췌하고 미성숙한 로버트 패틴슨의 배트맨은 어둠 속에 갇혀버린 무지의 존재다. 배트맨은 복수자로서 고담의 진실을 갈구한다. 캣우먼이 건네받은 카메라의 붉..

Film/Action 2024.06.12

씨앗은 어디로 틔울까 _ 루퍼, 라이언 존슨 감독

# 0.  화려한 상상과 호쾌한 액션으로 역사를 통찰한다.        라이언 존슨 감독,『루퍼 :: Looper』입니다.     # 1. '선택'이라는 기준에서 보자면 영화는 생각보다 더 단순하다. 자신이 살기 위해 절친을 팔았던 사람이, 아무 연고 없는 세라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야기라고 말이다. 인생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수수밭과 같고,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라는 선택의 과정이다. 조는 방탕하고 쾌락적인 인생에 집착하는 보신주의적 인물로, 삶에 대한 태도는 지하실에 숨겨둔 은괴 가득한 금고가 증언한다. 과거의 조가 세라에게 수수밭을 태워버리자 말하는 대목이 있는 데, 이는 그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다. 불안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신의 내일을 태워버리는 어리석음이고, 그 ..

Film/SF & Fantasy 2024.06.04

어느 초보운전자의 이야기 _ 드라이브, 니콜라스 빈딩 레픈 감독

# 0. 인생을 운영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피로감, 고독감        니콜라스 빈딩 레픈 감독,『드라이브 :: Drive』입니다.     # 1. 를 연출한 덴마크 영화감독 니콜라스 빈딩 레픈이 메가폰을 잡았다. 주연은 감독을 추천한 라이언 고슬링, 그리고 캐리 멀리건이다. 브라이언 크랜스턴, 알버트 브룩스, 오스카 아이삭, 론 펄만 등이 참여한다.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리드미컬한 편집, 배우진의 열연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제64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처음으로 자신의 운전대를 잡아본 사람의 이야기다. 비록 주인공은 능숙한 드라이버지만 말이다.  전반부를 통해 쌓아 올린 주인공의 정체성은 모두 대리만족이라는 공통점 아래에 있다. 비유하자면 운전석이 아닌 보조석에 탄 인물인 것으로..

Film/Action 2024.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