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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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55

소외된 자 기댈 곳 믿음뿐일지니 _ 신세계로부터, 최정민 감독

# 0.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최정민 감독, 『신세계로부터 :: From the New World』입니다. # 1. 화신교 교주 신택과 신도 명선은 탈북자입니다. 화신교란 화신님을 믿음으로 모시면 죽은 사람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 교리를 가진 작은 종교죠. 신택은 신도를 모으기 위해, 명선은 죽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경남 고성의 한 마을에 정착하는 데요. 그 과정에서 벌어진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을 서늘하게 그린 미스터리 오컬트 드라마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주인공 명선은 배우 정하담이 맡았습니다. 독립영화 쪽에서는 착실히 인지도를 쌓고 있는 배우인데요. 대중에겐 에서 질곡동 살인사건의 용의자 홍산호의 연인으로 익숙하지 않으실까 싶군요. 작품의 전개는 비틀린 부조리로 점철됩니다. 탈북자가 자유..

Film/Drama 2024.01.22

사람은 없다 _ 포퓰레이션 제로, 줄리언 T. 파인더 감독

# 0. "다큐멘터리는 진실과 리얼리티를 추구합니다." 줄리언 T. 파인더 감독, 『포퓰레이션 제로 :: Population Zero』입니다. # 1. 오래전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드웨인 넬슨이라는 사람에 의해 데이비드, 코디, 토마스라는 세 청년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사건이었죠. 용의자 드웨인은 순순히 범행을 자백하는데요. 정작 재판의 결과는 무혐의로 끝나고, 드웨인은 자유인의 신분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작품의 전반부는 세 청년의 유가족들이 보이는 절절한 인터뷰 영상들로 채워져 있죠. 연방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헌법은 사건이 벌어질 경우 해당 사건이 벌어진 주에서 재판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재판은 다시 해당 지역에 소속된 사람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에 의해 재판받도록 정해져..

Film/Thriller 2023.11.08

놀랍게도 전현무 아님 _ 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

# 0. 가시가 있는 것들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구나 후쿠다 유이치 감독, 『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입니다. # 1. 일본의 작가 아오야기 아이토의 동명 단편 소설을 실사화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해당 분야에 조예가 없어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흔히 말하는 라노벨(ライトノベル)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듯한 제목이군요. 대충 찾아보니 나름 시리즈물인 듯합니다. 를 시작으로 본작 , 를 지나 올해 8월 나온 신간의 제목 역시 라고 하는데요. 역시, 여행이라면 시체 하나쯤은 만나야 제맛이죠. 그림 형제의 동화 빨간 모자에서 여행자의 이미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붉은 두건에서 탐정의 이미지를 추출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썩 직관적이고 효과적인 듯 보입니다. 고전적인 테마를 끌고 와 만들어 낸 어릴 적 한..

Film/SF & Fantasy 2023.09.20

하우프루빗 _ 포커페이스, 라이언 존슨 / 나타샤 리온 감독

# 0. 누가 범인인가 (who done it?)의 미스터리를 대신하는 어떻게 범인을 밝힐 것인가 (how prove it?)의 서스펜스 라이언 존슨 / 나타샤 리온 감독, 『포커페이스 :: Poker Face』입니다. # 1. 을 본 사람치고 니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오뉴블을 제법 재미있게 본 저 역시 나타샤 리온은 썩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여유롭고 정겹고 온화하면서 동시에 세상에서 서너 발짝 떨어진 듯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특유의 톤이 매력적인 배우죠.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장르물로 만들어버리는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헤어스타일과 허스키한 목소리도 멋지구요. 다만 그녀의 캐스팅만을 근거로 작품을 고르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선구안이 좋은 배우는 못 되거든요. 시리즈를 크게 기대했던..

Series/Thriller 2023.08.04

그저 최선을 다할 뿐 _ 검찰 측 증인, 빌리 와일더 감독

# 0. 우리가 재판을 받아들이는 건 완벽해서가 아니라 최선이기 때문일 뿐이야. 빌리 와일더 감독, 『검찰 측 증인 :: Witness for the Prosecution』입니다. # 1. 최고의 추리 소설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최고의 영화감독 중 하나인 빌리 와일더가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세 명의 주연은 찰스 로튼, 타이런 파워, 그리고 마렌느 디트리흐가 연기합니다. 라인업 살벌하죠. 물론 70년 후의 관객에까지 전달되는 고전 명작들이 대부분 그러하긴 하지만요. 인간의 이기적인 추악한 욕망이 물고 물리는 동안의 긴장감을 지적 호기심으로 견인하는 법정 스릴러입니다. 감독의 명성에 걸맞은 밀도 높은 각본과 다소 복잡할 수도 있었을 스토리를 편안하게 전달하는 연출의 묘가, ..

Film/Thriller 2023.07.19

정체와 요행의 미스터리 _ 9명의 번역가, 레지 루앙사르 감독

# 0. 왜 문학이어야 했을까. 왜 번역이어야 했을까. 레지 루앙사르 감독, 『9명의 번역가 :: Les Traducteurs』입니다. # 1. 장르와 소재의 연동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대부분의 설정은 걸맞은 권위를 부여받지 못합니다. 문학과 번역이라는 코드는 작품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왜 문학이어야 했는지, 왜 번역이어야 했는지에 대한 설득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죠. 어떤 수학 난제가 있고 그걸 풀어낸 누군가가 있어 이를 검토하기 위해 전문가를 모아뒀다 가정해 봅시다. 사실 진짜 난제를 풀어낸 건 무명의 젊은 친구였고, 그가 스승의 복수를 위해 검토팀에 잠입했다 하더라도 이야기가 굴러가는 데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겁니다. 혹은 회사 병합을 하는 데 관련된 기밀이 있어 관계자들이 밀실에 모..

Film/Thriller 2023.02.28

카타르시스 _ 조지타운, 크리스토프 왈츠 감독

# 0. 그리스어로 정화를 의미하며, 마음속에 쌓여 있던 불안, 우울 긴장, 등의 응어리진 감정이 풀리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이러한 정화작용을 비극에서 등장인물의 비극적인 상황이나 비참함을 보고 마음에 있던 응어리나 슬픔이 해소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쾌감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카타르시스는 비극에서 비참한 모습이 해소된 이후에만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로 이를 표현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을 수 있다. - 카타르시스 [κάθαρσις / Catharsis] - 크리스토프 왈츠 감독, 『조지타운 :: Georgetown』입니다. # 1. '그' 크리스토프 왈츠 맞습니다. 바스터즈에서의 한스 란다, 장고에서의 닥터 슐츠로 익숙하실 오스..

Film/Thriller 2023.02.10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ⅱ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ⅰ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 0.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 등을 집필한 장르 문학가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영미권에서는 순수문학가이자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더욱 큰 인물입니다. ... 나무위키가 그렇다네 morgosound.tistory.com # 6. 암시와 복선은 미스터리를 위해 기능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드라마적 기준에서 숨겨지지 않는 악행과 죄책감을 표현하는 메타포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자신의 복수를 숨기는 동시에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함께 묻어 숨기려 했지만 숨길 수 없었고, 그것이 복선이라는 형태로 관객에게 들키고 있다는 것은 곧 랜도르 스스로에게도 자신의 죄책감이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었다는..

Film/Thriller 2023.01.18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ⅰ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 0.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 등을 집필한 장르 문학가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영미권에서는 순수문학가이자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더욱 큰 인물입니다. ... 나무위키가 그렇다네요. 스콧 쿠퍼 감독, 『페일 블루 아이 :: The Pale Blue Eye』입니다. # 1. 포의 이름을 들은 관객은 직관적으로 지적호기심을 최대한 자극하는 고오급 추리물을 기대하기 마련일 텐데요.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감상을 방해하는 성급한 기대가 되고 말았다는 생각입니다. 영화 에서 미스터리는 부차적인 재미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영화 속 미스터리는 삶의 목적을 상실한 길 잃은 주인공의 내면을 세계로 확장시켜 장르적으로 투사한 것에 가깝습니다. 본질은 잔혹한 과거를 가진 한 남자의 깊은 ..

Film/Thriller 2023.01.16

이건 다른 장르입니다만 _ 글래스 어니언, 라이언 존슨 감독

# 0. 형식 위에 수립된 브랜드가 형식을 포기하고 나면 남는 게 뭐지? 라이언 존슨 감독, 『글래스 어니언 :: Glass Onion A Knives Out Mystery』입니다. # 1. 시리즈의 정체성과 연속성이 깔끔하게 휘발, 아니 붕괴되었습니다. 만세. 앞선 의 글에서 정통 후더닛의 매력을 계승하면서도 오답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대신 10분 내외의 작은 질문의 연쇄를 선택한 영리한 작품이라 말씀드렸는데요. 단 두 편 만에 시리즈의 매력과 정체성이 몽땅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형식 위에 수립된 브랜드가 형식을 포기한 셈이라 주인공 블랑의 캐릭터만 공유하는 별개의 작품이라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편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전반부 휘향찬란 돈지랄 눈뽕으로 비비고, 중반부 두 주인공의 추적 어드벤처로 버..

Film/Thriller 2022.12.30

미스터리 체리피킹 _ 나이브스 아웃, 라이언 존슨 감독

# 0. 크리스마스엔 역시 살인이지 라이언 존슨 감독, 『나이브스 아웃 :: Knives Out』입니다. # 1. 영화를 검색하다 보면 '후더닛'이라는 키워드가 함께 뜨는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Who done it? 을 들리는 대로 옮겨놓은 건데요. 미스터리 사건 속 수수께끼를 풀어 진범을 찾아내는 플롯의 추리물의 별칭 정도로 이해하시면 무난합니다. 은 아주 오랜만에 나온 후더닛 무비, 그것도 어설픈 퓨전 따위를 곁들이지 않은 정통 후더닛의 특성을 정석적으로 따라가는 작품이죠. 무고한 것이 확실한 주인공과 그의 누명을 벗기고 진실을 밝혀내는 섹도시발 천재 탐정 vs 진범의 정체와 트릭이라는 형식을 빌린 작가 간의 흥미진진 머리싸움입니다. 상황과 공간을 폐쇄적으로 제한한 후 몇몇의 용의자를 특정해 이..

Film/Thriller 2022.12.28

설득의 기술 _ 신의 구부러진 선, 오리올 파울로 감독

# 0. 설득을 하는 데 있어 논리만이 반드시 최선일까? 오리올 파울로 감독, 『신의 구부러진 선 :: Los renglones torcidos de Dios』입니다. # 1. 감독 이름이 익숙합니다. 아, 장인의 오르골이라는 다소 호들갑 떠는 제목과 함께 이야기드린 바 있는 의 감독이었군요. 각기 다른 네 개의 시간대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건의 실체와, 각자의 이익을 위한 편의적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동안의 서스펜스를 즐기는 스릴러였더랬습니다. 제법 탄탄한 밀도의 이야기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관객이 신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없어 수동적인 작품이기도 했다는 평도 함께 드렸던 기억이군요. # 2. 다양한 시점을 이리저리 조립해 미스터리를 만드는 데 능한 감독다운 신작입니다. 독특한 제목처럼..

Film/Thriller 2022.12.22

집탈출 게임 _ 런, 아니쉬 차칸티 감독

# 0. 방탈출 게임을 테마로 영화를 뽑으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아니쉬 차칸티 감독, 『런 :: Run』입니다. # 1. 빌런의 정체와 내막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기대하시면 곤란합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스테이지 탈출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타임어택 퍼즐 게임의 경험에 훨씬 가까운 작품이죠. 실제 전개를 보면 방이면 방, 복도면 복도, 계단이면 계단, 약국이면 약국, 지하실이면 지하실. 각 공간을 스테이지 단위로 칼같이 구분한 후 그 공간의 미션을 풀 수 있는 명확한 해법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장르적 측면에서 엄마의 존재는 주인공을 정신적으로 압박하는 카리스마 빌런이라기보다는, 정해진 시간 안에 방을 탈출하도록 주인공의 등을 떠미는 게임의 조건, 째깍째깍 조여 오는 모래..

Film/Thriller 2022.11.26

7번방의 노마 _ 블론드,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

# 0. 논란의 작품입니다. 고인 모욕에 대한 이야기도 들리구요. 왜곡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더 크게 들리는 듯합니다. 수위가 세다는 마케팅에 속은 일부의 관객들이 화를 내는 듯한 모양새도 있군요. 혹자는 '마릴린 먼로를 창녀로 만드는 영화'라며 분개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원작 소설에 대한 비판에 조금 더 가깝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과연 그것만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은 충분한 것인가에 다소 의문이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영화를 보고 있으니까요.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 『블론드 :: Blonde』입니다. # 1. 전기 영화란 몇몇의 예외적 시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인물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소개하거나, 간과되기 쉬운 입체성을 재조명하기 마련일 텐데요. 문제의 는 왜곡을 차치하고서라도, 인물의 정체성을 ..

Film/Drama 2022.10.04

처녀보살의 살풀이 _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에드가 라이트 감독

# 0.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장르로 장난치려고 만든 영화'라 한다면, 베이비 드라이버를 '음악 가지고 놀려고 만든 영화'라 한다면, 이 영화는 '촬영 연출하려고 만든 영화'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 『라스트 나잇 인 소호 :: Last Night in Soho』입니다. # 1. 타란티노 감독이 제목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유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우디 앨런의 가 함께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목뿐 아니라 재미의 측면에서도 두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매력적이지만 허구적이기도 한 과거 황금기의 도시를 재현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의 동력을 얻는다는 점에서 유사한 방법론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우디 앨런이 그린 1920년대 파리도 아름답습니다만,..

Film/Horror 2022.06.16

어둠 속의 등불 _ 더 위치, 로버트 에거스 감독

# 0. 곽도원 대신 안야 테일러 조이가 나오는 곡성이 있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 『더 위치 :: THE VVITCH』입니다. # 1. 미국으로 이민 간 영국인 가족이 마을에 정착하지 못하고 추방됩니다. 없이 사는 와중에 금슬이 좋았던 부부는 애를 다섯이나 낳지만 줄초상 납니다. 막둥이는 까꿍 하다 행방불명 되구요, 쌍둥이 동생은 염소 밥 되고 엄마 찌찌는 까마귀 밥 되고 아빠는 흑염소한테 몸통 박치기 당하지만 큰 아들은 겁나 이쁜 누나랑 뽀뽀하고 죽어 여한이 없는지 하나님께 땡큐 합니다. 가족 잃고 실의에 빠진 미모의 큰 언니는 홀딱 벗고 댄스 동호회에 가입한 후 하하호호 웃으며 승천한다는 내용의 훈훈한 영화죠. # 2. 믿음에 대한 영화들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허황된 믿음으로 ..

Film/Horror 2022.04.20

거기서 거기 _ 내가 잠들기 전에, 로완 조페 감독

# 0.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예요. '로완 조페' 감독, 『내가 잠들기 전에 :: Before I Go to Sleep』입니다. # 1. 슈퍼스타 캐스팅에 마케팅을 올인합니다. 관객을 혹하게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극적이지만 너무 난해하지는 않은 직관적인 설정이 작품의 동력이 됩니다. 인물 구도와 상황 전개는 지극히 단조롭지만 불륜과 치정 따위의 통속적 아이템들이 맛있고 몸에 해로운 인공적 매운맛을 더합니다. 마냥 클리셰라 욕하기에는 찝찝하고 클래식이라 합리화하기도 애매한 그 중간 어딘가의 익숙한 플롯입니다. 지나고 보면 이상하기 그지없는 개연성 붕괴가 속출하지만 관람하는 동안엔 적당히 자극적인 묘사와 배우진의 열연에 가려 크게 걸리적거리지 않습니다. 몸값과 인지도 순에 따라 주연과 조연의 ..

Film/Thriller 2022.04.02

닫힌 방, 열린 서사 _ 더 룸, 크리스티앙 볼크망 감독

# 0.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크리스티앙 볼크망' 감독, 『더 룸 :: The Room』입니다. # 1. 전능한 신과 도전하는 인간의 판타지 통제하는 부모와 일탈하는 아이의 드라마 스토커 살인마와 사냥감의 스릴러 # 2. 하나의 공간에 중첩된 세 층위의 이야기입니다. 일방향적 서사 속에서 세 캐릭터 모두 각자의 주제에서는 주연으로, 서로의 주제에서는 조연으로 기능합니다. 신과 인간의 서사 구조에서 관객은 셰인의 입장이 됩니다. 가족주의 서사에서는 케이트에 교감합니다. 스릴러의 기준에서는 멧과 정서적으로 밀착되는 식이죠. 나 혼자만 레벨업식 유치찬란 양판소 설정에서 출발한 영화는 방에서 태어난 아이 셰인과 정신병원에 수감된 존 도의 등장에 힘입어 ..

Film/Thriller 2022.03.22

의심에 대하여 _ 다우트,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

# 0. "쉽게 내린 선택에 대한 대가는 미래에 치르게 되죠." '존 패트린 셰인리' 감독, 『다우트 :: Doubt』입니다. # 1. 의심(Doubt)은 대상의 불확실성을 자신의 확신으로 예단하는 기작입니다. 아귀는 고니의 패를 직접 보지 못하기에 의심할 수 있었던 것이구요. 동시에, 보지도 않은 고니의 패에 손모가지를 걸 수 있었던 건 고니가 장난질을 했을 거라는 자기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죠. 타인은 모호하게 부도덕하고 나는 분명하게 도덕적이다. 모순적이고, 그래서 이기적인 감정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교회'와 '학교'입니다. 교회는 교리와 위계에 지배받는 단호한 공간입니다. 학교는 당위의 존재들을 위한 도덕적 공간이죠. 단호한 공간에서 벌어진 일조차 이렇게나 불확실합니다. 도덕적 공간에서 조차 윤..

Film/Drama 2022.03.07

아이러니 _ 클로버필드 10번지, 댄 트라첸버그 감독

# 0. "야. 이거 재밌냐?" "... 클로버필드 봤어?" "아니. 안 봤는데." "... 뭔 내용인지도 모르고?" "응. 몰라." "그럼 봐. 재밌어." '댄 트라첸버그' 감독, 『클로버필드 10번지 :: 10 Cloverfield Lane』입니다. # 1. 아이러니한 영화입니다. 스핀오프 격의 작품인데 오히려 원작에 대해 전혀 모르고 봐야 재미있는 영화거든요. 대부분 재난 영화들은 재난의 성격이 명확한 가운데 그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액션과 퍼즐을 즐기는 식으로 전개되는데요. 이 작품은 이례적으로 재난의 성격뿐 아니라 발생 여부조차 한참 동안 모호합니다. 그리고 그 모호함을 온전히 즐기는데 원작에 대한 배경지식이 심각한 방해가 되기 때문이죠. # 2. 정통 미스터리 스릴러라면 벙커 안에서의 이야기를..

Film/Thriller 2021.08.12

랩탑 무비 _ 블레어 위치, 다니엘 미릭 / 에두아르도 산체스 감독

# 0. 시리즈를 연이어 보다 보니 문득 요런 류의 영화가 땡기더라구요. '다니엘 미릭', '에두아르도 산체스' 감독, 『블레어 위치 :: The Blair Witch Project』입니다. # 1. 코시국이라 곤란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어지간하면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편이 좋습니다. 호러든 코미디든 드라마든 멜로든 스릴러든. 압도적인 스크린 크기가 주는 박력과 디테일한 화질, 전문가들이 세심하게 설계한 음향 등 감독의 의도에 최적화되어 있는 환경이 주는 경험의 퀄리티는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죠. 오가는 데 필요한 유무형의 비용이 만만치 않고 집 안 소파에 비해 좌석도 불편하며 다른 무엇보다 에티켓을 담보할 수 없는 불특정 다수와 함께 볼 수밖에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좋아하시는..

Film/Horror 2021.07.19

번뇌와 번민에 빠진 건 누구? _ 제8일의 밤, 김태형 감독

# 0. 애매하게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기보단 각 잡고 하나를 제대로 하는 편이 낫습니다. 특히나 데뷔작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영화는 크게 불교, 오컬트, 범죄 스릴러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요. 안타깝게도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작동하지 못하는데 그 원인은 각각의 코드가 서로의 발목을 붙잡기 때문인 듯 보입니다. '김태형' 감독, 『제8일의 밤 :: The 8th Night』입니다. # 1. 시작과 동시에 부처님은 눈깔 뽑기 장인이 됩니다. 흔히 불교 하면 떠올릴법한 자비나 참선 등의 이미지와 배치된 다소 폭력적인 설정이지만, 뭐 그럴 수 있죠. 감독은 이 부분의 문제를 후반부 관념화를 통해 극복합니다. 빨간 눈깔은 번뇌하는 눈, 검은 눈깔은 번민하는 눈이라는 건데요. 확실히 이 토대에서라면..

Film/Horror 2021.07.07

사장님, 스릴러 1인분 추가요 _ 침입자, 손원평 감독

# 0. 주인공은 보통 두 명입니다. 멜로라면 20대를 캐스팅하겠지만 중량감도 조금 필요한 스릴러에선 30~40대 배우를 섭외하는 게 정석이죠. 한 명은 영화 내내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서사적으로든 잡으러 다닐 테구요. 나머지 한 명은 영화 내내 도망 다닐 겁니다. 둘 중 한 명은 놀래키는 역할, 다른 한 명은 놀라는 역할일 텐데요. 도망가는 쪽이 놀랄 수도 있고 쫓기는 쪽이 놀랄 수도 있습니다. 요 정도는 감독의 재량이죠. '손원평' 감독, 『침입자 :: intruder』입니다. # 1. 도망가는 애는 싸움을 겁나 잘하든 돈이 겁나 많든 머리가 겁나 좋든 쪽수가 겁나 많든 아니면 아싸리 만능약이 있든. 뭐가 되었든 특별한 능력이 있어 저게 말이 돼? 싶은 난관들을 아주 손쉽게 돌파합니다. 쫓아가는 ..

Film/Thriller 2021.06.25

직업병 _ 사라진 시간, 정진영 감독

# 0. 문소리 감독은 를 통해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의 치열한 현실과 페이소스를 묘사합니다. 김윤석 감독은 을 통해 배우의 시선에서 캐릭터를 해석하는 방식을 풍부하게 표현합니다. 그리고 정진영 감독 역시 지금 이야기하려는 영화 을 통해 배우가 필연적으로 겪게 될 정체성 갈등을 전개합니다. 배우, 특히 배테랑 배우가 영화를 만들면 첫 작품에서 배우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정진영' 감독, 『사라진 시간 :: Me and Me』입니다. # 1. 영화 초반 이영은 세 인격에 빙의됩니다. 돌아가신 수혁의 어머니와 코미디언 이주일, 레슬러 역도산이죠. 얼핏 세 인물은 아무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백종렬 감독의 처럼 저녁이면 랜덤 하게 찾아오는 각기 다른 인격의 예시인..

Film/Drama 2021.06.23

주인공만 3명 _ 조안, 김지산 / 유정수 감독

# 0. 이젠 제법 익숙한 소셜 미디어 까는 영화입니다. '김지산', '유정수' 감독, 『조안 :: Joan』입니다. # 1. 일반적으로 떠올릴 법한 소셜 미디어의 비판적 문제의식을 소집해 하나의 이야기 속에 녹여낸 단편입니다. 제프 올롭스키의 나, 츠노 메구미의 와 유사한 문제의식 위로 불쾌하고 섬뜩한 미스터리 호러의 장르적 재미를 살짝 더한 작품 정도로 이해하시면 적당하겠군요. 영화에는 총 세 인물이 등장합니다. 조안과, 소개팅남, 그리고 이름 모를 내레이터죠. 이야기는 조안이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 데이팅 어플을 통해 새로운 남자와 소개팅한다는 내용입니다. 그 과정을 소셜 미디어의 의인화로서 내레이터가 전개하는 구성이죠. 각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소셜 미디어의 폐해를 비판적으로 대변합니다. '조안'..

Film/Thriller 2021.05.26

미장센의 배신 _ 우먼 인 윈도, 조 라이트 감독

# 0. 미장센이 어쩌구... 메타포가 저쩌구... '조 라이트' 감독, 『우먼 인 윈도 :: The Woman In The Window』입니다. # 1. 요즘의 영화들 특히 과 의 웨스 앤더슨이나, 와 의 박찬욱 감독의 그것처럼 엄격한 규칙과 과감하면서 관능적인 색감이 만들어내는 인공적 미감의 미장센이 대두된 이후, 영화판의 메타가 마치 누가 더 아름다운 미장센을 뽐내느냐를 경쟁하는 카드게임화 되어버린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오프닝에서 주인공이 가운데 있으니 1점! 화면을 두꺼운 선이 가로지르고 있으니 1점! 하는 식으로 말이죠. 물론 기하학적 구도에 대한 감화가 쉽게 되는 탓에 온갖 리뷰를 미장센에 대한 호들갑으로 떡칠하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희극적이기는 하지만요. # 2. 이 영화 역시 ..

Film/Thriller 2021.05.20

통제력의 상실 _ 리틀 조,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

# 0. 꽃가루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연인과 꽃구경하는 대신 고고하고 시크한 싱글 라이프를 택한 이유죠. 애인 사귈 능력은 되냐구요? 그게 중요한가요? 누가 너랑 사귀겠냐구요? 손님, 싸울래요?!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 『리틀 조 :: Little Joe』입니다. # 1. 굳이 말하자면 공포 스릴러 영화... 이긴 한데요. 솔직히 무섭다기보다는 '찝찝한 영화' 쪽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각기 다른 세 층위의 정서가 하나의 이야기 속에 중첩되어 있는데, 그 실체는 구체적 공포보다는 일련의 과정이 낳게 될 미래에 대한 잠재적 공포에 닿아있기 때문이죠. 가장 표면의 테마라 한다면, 역시 유전자 조작 기술과 과학자의 윤리적 일탈로 인한 리스크가 될 테구요. 그다음은 확인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강요된 판단과 ..

Film/Thriller 2021.05.10

설명충이 반전물을 만들면 _ 대최면술사, 진정도 감독

# 0. 엄청 극단적인 영화입니다. 진짜 괜찮은 시나리오인데 진짜 못 만들었거든요. 반전 미스터리 스릴러를 만들기엔 감독이 너~~무 소심하고 너~~무 순박하고 너~~무 착합니다. 진정도 감독, 『대최면술사 :: 催眠大師』입니다. # 1. 캐릭터 괴랄합니다. 디렉팅을 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신과 의사랑 환자가 상담하는 영환데 톤은 무협물에 맞춰져 있습니다. 논리와 호소로 대화하고 소통해도 모자랄 판에 주인공 둘이서 몸만 안 썼다 뿐 영화 내내 싸우고 있죠. 연기, 과장되고 어색합니다. 볼살 빵빵한 동안의 계란 머리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센 척을 하는데 이렇게 말해 미안하지만 그냥 웃기기만 합니다. 책상에 다리 올리고 신문 펴 보는 등장 씬은 감독의 부실한 연출 역량을 가늠케 하기 충분하죠. 그나마..

Film/Thriller 2021.05.04

악마인 듯 악마아닌 악마같은 너어어 _ 나인 마일즈 다운, 앤소니 월러 감독

# 0. 악마인 듯 악마 아닌 악마 같은 너어어 바람인 듯 바람 아닌 바람 같은 나아아 '앤소니 월러' 감독, 『나인 마일즈 다운 :: Nine Miles Down』입니다. # 1. "덮어놓고 반전 한방 딱! 보고 미친 듯이 달려가는 영화입니다. 주머니 사정을 가늠케 하는 지극히 단출한 세트와, 이를 가리면서 최대한의 가성비를 뽑기 위한 다양한 광원과 화각의 연출. 그리 비싼 개런티를 지불하지는 않았을 것만 같은 많아야 세명 안쪽의 주인공 라인업과 이들의 개인기를 사골처럼 쥐어짜는 걸로 간신히 버티는 수다스러운 진행. 2/3 지점에서 터지는 반전 한방과 그 반전을 최대한 거창한 것으로 포장하기 위한 후반부 호들갑으로 채워집니다. 작품의 성패는 당연히 반전의 퀄리티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 반전만 확실하다면..

Film/Thriller 2021.03.31

탐정놀이의 목적 _ 레베카, 벤 휘틀리 감독

# 0. 히치콕 감독의 리뷰 말미에 말씀드린 대로 불필요한 선입견 없이 기대를 가지고 작품을 보려 노력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기대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는 레베카가 아닙니다. '벤 휘틀리' 감독, 『레베카 :: Rebecca』입니다. # 1. 히치콕 감독의 작품이 원작으로서 완벽하기에 이후 창작되는 는 모두 1940년 작품 속 설정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식의 순혈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레베카가 아니다라는 표현은 레베카라는 인물의 존재를 극의 중심에 놓고 전개되는 영화가 아니라는 뜻이죠. 이 영화는 오히려 입니다. 릴리 제임스가 연기한 '나' 말이죠. 영화에는 무수히 많은 부실함이 발견되는데요. 그 대부분은 이야기는 레베카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

Film/Thriller 2021.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