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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Drama

비루한 당신의 노고에 건배 _ 흑백요리사 2

그냥_ 2026. 1. 1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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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늦은 밤. 오늘도 비루한 당신의 노고에 건배.

 

 

 

 

 

 

 

 

넷플릭스 버라이어티 시리즈,

『흑백요리사 2 :: Culinary Class Wars Season 2』입니다.

 

 

 

 

 

# 1.

 

흑백과 계급 운운한다는 것은 자칫 '위너'와 '루저'를 낙인찍는 것으로 비칠 수 있고, 이는 예능 프로그램에게 큰 부담일 수밖에 없기에 초기 제작진은 '유명'과 '무명'으로 대신하려 했다. 일례로 잔뜩 욕을 먹었던 시즌1의 장사 미션도 흑과 백을 잘 팔리는 유명가게와 안 팔리는 무명가게로 규정했기 때문이고, 인플루언서를 부른 것 역시 유명과 무명이라는 테마에서 파생된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이다. 하지만 20대 80의 비율로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흑수저들과 그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백수저들의 구도는 관객을 위너와 루저의 대립으로 이해하게 만들기 충분했는데, 흥미로운 점은 관객들이 그것에 윤리적 이물감을 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루저라 '멸시'하는 것은 경계하더라도, 루저를 '지목'하는 것은 싫어하지 않는다. 제작진은 교훈을 얻었고, 후속작에는 그 교훈이 생생하게 묻어있다.

 

그래서 두 번째 시즌은 흑수저 라인업부터 크게 달라진다. '저분은 뭐 하는 분이세요?'가 아니라 '어? 저 사람이 왜 흑수저야?'라는 반응들이다. 백수저들이 보기에 그들의 '경력'이나 '실력'은 전혀 흑수저가 아니었겠지만 상관없다. 새로운 시즌의 흑수저는 '무명 요리사'가 아닌 '루저 요리사'이기 때문이다. 요리과학자 신동민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그의 분자요리를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므로 루저다. 프렌치 파파 타미 리가 아무리 동료들에게 인정받는다 한들 한동안 커리어를 내려놓았기에 루저다. 중식폭주족 신계숙이 아무리 실력자라 한들 그녀는 JTBC가 아닌 EBS에 나왔으므로 루저고, 키친 보스 김호윤이 아무리 다재다능하다 한들 올리브 쇼 이후 자리잡지 못했으니 루저다.

 

 

 

 

 

 

# 2.

 

이전의 시즌이 그러했듯 수많은 루저들이 재기를 위해 출연했고 쓰러졌다. 과정에서 히든 백수저라는 이름 하에 최강록과 김도윤이 재도전하는 데, 하얀색 옷을 입은 둘의 사정은 사실 흑수저보다 처량하다. 단순히 심사위원 만장일치를 받아야 한다는 평가 기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흑수저들이 백수저들의 눈요기가 되는 동안, 히든 백수저인 둘은 그런 흑수저들의 눈요기가 되어 응원의 형태를 빌린 연민을 받게 되기 때문이고, 본디 유명하지 않은 루저보다 유명한 루저가 더 비참한 법이다. 결과적으로 김도윤은 고배를 마셨고, 최강록은 생존한다. 이 순간 최강록은 아주 기기묘묘한 포지션에 놓인다. 백수저이면서 동시에 흑수저만 못한 회색지대의 존재, 회색수저다.

 

프랜차이즈의 시그니처 블라인드 미션이 이어진다. 혹자는 시각적인 요소도 맛인데 눈을 가리는 미션이 그것을 퇴색시킨다 평하기도 하고 그것은 납득가능한 주장이나 본질은 아니다. 본질은 루저들에게 '당신이 루저인 이유'를 명시한다는 것에 있다. 블라인드 미션에서 탈락한 루저들은 항변할 방법이 없다. 상대도 본인이 골랐고 메뉴도 스스로 골랐고 원하는 대로 요리해 그것을 완벽한 블라인드로 평가받았으니까. 그나마 그 주제가 나올 줄 몰랐다 정도가 가련한 루저들의 손에 제작진이 쥐어준 최소한의 배려일 따름이다.

 

흑과 백으로 나눈 팀 미션. 여타 출연자들에게 팀전은 넷플릭스에서 본 흥미로운 미션이었겠지만, 최강록에겐 자신을 루저로 만든 패배의 공간으로 인지된다. 제자리를 뱅글뱅글 도는 수레바퀴와 그것을 돌리는 사람의 장난스러운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의 손에 들린 루저의 운명을 은유하는 듯도 하다.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은 세 번째 요리를 평가받는 순간이다. 심사위원은 전 시즌의 탑7으로 채워지게 되는데, 여타 출연자들은 '선배님'이 오셨다 말한다. 그저 먼저 출연했을 뿐인 동등한 위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강록에겐 자신이 루저가 된 무대의 위너가 나타난 것이고, 그들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의 생사를 다시 결정한다는 것은 곧 그가 여전히 루저라는 것을 상기시키게 만든다. 마치 번듯한 레스토랑을 가지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다른 셰프들과 대비되는, 자기 식당이 변변찮은 최강록의 처지처럼 말이다. 이 지점에서 미션의 이름은 다시 한번 흥미롭다. 히든. 히든은 숨겨진 것이라는 의미고,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 아닌 숨겨진 것이 본질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최강록의 본질은 여전히 루저이고 그것은 몇몇의 예능에 나온다 한들 지워지지 않고 히든 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 결과는 한 표 차 승리지만 승리는 아니다. 간신한 회생일 따름이다.

 

 

 

 

 

 

# 3.

 

다음 미션은 둘씩 짝지은 연합전이다. 최강록은 김성운과 짝을 짓는 데, 결과적으로 직행에 실패한다. 직후 키친이 회전하며 같은 팀 파트너를 상대할 것이 요구된다. 퍼니시먼트, 처벌이다. 루저는 처벌을 받게 되고 그것을 감수해야 하는 존재다. 최강록은 새로운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 팀전에서 파트너의 색채를 지우는 방식으로 요리한다. 아무리 뛰어난 동료라 한들 누군가의 파트너십에는 실패하기에 혼자 헤쳐나갈 수밖에 없는, 최강록 본인의 히든 된 고독이 끄집어내어 진 시퀀스다.

 

결승진출자 한 명을 우선 결정하게 되는 무한 요리 천국이다. 루저와 위너의 이분법적 세계에서 당연하게도 천국은 위너와 같은 말이다. 이곳에서 최강록은 철저히 위너가 되는 방식을 선택한다.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진 이미지. '조림'이고, 그것은 단순한 요리법이 아닌 요리사 최강록이 위너가 될 방법이자, 그것을 최강록 본인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전의 숫기 없는 모습과 달리 대단히 엔터테인하게 자신의 조림 요리를 소개하는 것도 그래서 흥미로운 부분. 루저 최강록은 성공의 방정식대로 요리해 기라성 같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위너가 된다. 홀로 상석에 앉아 지옥에 떨어진 루저들, 과거의 나이자 또 다른 나들을 내려다보게 된 최강록은 사색한다. 이곳은 천국인 걸까.

 

 

 

 

 

 

# 4.

 

마지막 결승전, 나를 위한 요리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요리괴물 이하성과의 대결은 마치 거액의 빚을 지고 마셰코에 도전했던,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던 과거 최강록과의 대결처럼 보인다. 이하성이 자신의 유년기 드라마를 화려한 테크닉과 기하학적 플레이팅으로 상품화하는 동안, 최강록은 나를 위해서까지 조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며 맑은 국물요리를 낸다. 애매한 닭뼈 쪼가리. 팔리지 않은 깨두부. 남은 우니와 호박잎. 늦은 밤 실패한 가게의 정체성을 한 땀 한 땀 긁어모은 끝에 스스로 루저로 회귀하는 것이다.

 

흑백요리사의 경연 시스템은 100명이 출연해 1등 한 명을 가리는 시스템이다. 달리 말하자면 1명의 위너를 만들기 위해 99명을 루저로 만드는 시스템이라 표현해도 틀리지 않다. 그러나 우승자 최강록이 스스로 루저를 선택함으로써 흑백요리사 2의 요리사 100명은 모두 루저가 된다. 식탁에 앉은 최강록은 자신의 사색을 담담히 내려놓는다. 모두가 루저가 되어버린 이 경쟁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손종원의 별 2개와 후덕죽의 경이로운 경력과 선재의 글로벌한 명성에 마치 레이저 휘날리는 세트장처럼 매료되었겠으나, 그들조차 무수히 많은 순간 실패한 사람들이고 앞으로도 실패할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각각의 라운드에서 떨어진 요리사들을 마치 명패를 내려놓는 내리막길처럼 처량하다 생각했겠으나, 그들조차 무수히 많은 순간 고민해 나아간 사람들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위너도, 루저도 없다. 단지 우리 모두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존재일 따름이다. 우리의 비루한 인생은 그런 고단함을 쓸쓸히 짊어지는 것이고, 위너와 루저를 전제한 세계의 정상에 올라 그 모두를 해체한 최강록이 내린 결론이란, 자신은 이전에도 이후로도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과, 나와 같이 고단한 사람들을 따뜻한 음식으로 다독이는 사람이 요리사라는 것이다. 마침내 요리사뿐 아니라. 화면 너머 스스로 루저라 생각하고 있을 비루하고 고단한 당신을 위해 뚜껑이 빨간 소주를 한 잔 나눠 마신다는 이야기. 다시 도전하길 잘한 회색수저의 이야기다. end.

 

# +5.

 

여담으로 어쩌면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이 꿈꾼 이상향은 이런 결말이 아니었을까. 영화를 사랑하는 본인에게도 시린 말이지만. 역시 제아무리 공들인다 한들 창작은 현실을 이길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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