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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세월, 도마 위에 오른다는 것

그냥_ 2024. 1.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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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배우 이선균 씨가 향년 4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야만의 세월, 도마 위에 오른다는 것』

 

 

 

 

 

# 1.

 

이원석 감독의 <킬링 로맨스>를 이야기하며 연기 정말 잘한다 감탄했었는데요. 그것이 마지막 코멘트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제와 구태여 사건의 추이를 값싸게 나열할 생각은 없습니다. 고인의 사생활에 대해 가타부타 윤리적 가치판단을 한다거나, 수사도 종결된 마당에 혐의와 관련된 가치판단을 할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저 쓸쓸한 마지막에 '헛헛하니 아쉽다' 정도의 끝인사를 놓아두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사실 보름 전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글을 쓸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것이 소위 어그로를 끌어 검색량을 늘리기에는 나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약간의 텀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스스로 잘 모르는 사건에 대해 조심스럽기도 하거니와, 영화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일련의 비극을 그런 식으로 소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파주>와 <옥희의 영화>와 <화차>와 <내 아내의 모든 것>과 <우리 선희>와 <끝까지 간다>와 <성난 변호사>와 <기생충>과 <킬링 로맨스>와 <잠>을 재미있게 본 사람이 차릴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랄까요. 새삼 짧은 시간임에도 좋은 작품을 많이 한 배우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군요.

 

비단 누구라 하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무섭고 서글픈 일이지만, 유명인의 죽음은 짐짓 멀리 있는 듯 착각하던 죽음을 눈앞에 가져다 두는 듯해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함을 생각하면 그 감정이 유별난 누군가만의 것은 아닌 거겠죠. 비슷한 류의 일이 벌어지면 적지 않은 혼란과 그보다 많은 루머에 들끓다 적당히 열감이 가라앉고 나면, 소집되는 화두는 결국 둘입니다. 하나는 범인을 찾는 식의 책임 공방, 둘은 연예인의 프라이버시 논쟁인데요. 이번에도 양상이 다르진 않은 듯 보입니다.

 

 

 

 

 

 

# 2.

 

사건의 흐름은 과격하기 짝이 없었던 것임에 분명합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야만'이라는 수사가 결코 과하지 않은 것이었죠. 필수불가결한 범죄사실 소명을 넘어 소위 '그렇게 대해도 되는' 사람을 링 위에 올려 난도질하는 모습은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깊이와 무관하게 관계된 모든 인물들이 스스로를 부끄러워할 만한 상황에서 일부는 자신의 반성을 고백하기도, 일부는 타인의 반성을 촉구하기도 하는 모습인데요. 결국 책임 소재의 끝은 아래로 흐르고 흘러 대중이라는 바다에 고이는 듯 보이죠.

 

원론적인 면에서 이 논쟁이 매번 지난한 평행선을 그리는 것은 각자가 생각하는 '평범한 대중'이 제각각이기 때문일 겁니다. 포털 사이트나 저녁 뉴스에 스쳐 지나는 헤드라인 정도만 본 후 혀 몇 번 차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대중이라 생각하는 누군가는 책임을 본인에게 돌리는 것에 황당함을 느낄 테구요. 알고리즘을 타고 들어가며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탐닉하고 주변 사람들과 가십 하는 사람들이 대중 일반을 대변한다 생각하는 누군가는 숨길 수 없는 분노를 느꼈을 테니까요. 쉽지 않은 이야기죠.

 

다만 옳고 그름 이전에, 이 모든 일을 수요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대중의 탓으로 돌리는 것에 '의미가 있나'라는 고민은 해봄직합니다. 모두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말처럼 모두의 책임이란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말과 다를 바 없는 것일 텐데요. 이 같은 접근은 결국 문제의 본질을 비극적인 공유지에 매립해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죠. 일례로 같은 논리를 확장하면 우리는 모든 부정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겁니다. 정치인의 부패는 그런 정치인을 뽑은 대중의 탓, 기업인의 비리는 그런 기업인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와 계속 제품을 구매해 주는 소비자 탓이라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을 테니까요. 대중을 향한 손쉬운 힐난에 가장 이익을 보는 건 다름 아닌 수요의 핑계 뒤에 숨어 부정확하고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보도를 일삼았던 언론이라는 것은 분명 지적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펜대 뒤에 숨어 있는 수사기관의 비겁함 역시 지적되어야 합니다.

 

 

 

 

 

 

# 3.

 

공인의 개념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화두도 가볍지는 않습니다. 당장 이 주제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말은 가수 김C의 "나의 이혼이 당신의 어디를 아프게 했냐" 라는 한 마디입니다. 답하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은 데요. 가십이라는 것의 속성과 가십에 강한 중력을 느끼는 사람들의 본성을 지극히 친숙하고 직관적인 언어로 관통하는 맛이 있기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다만, 그의 일갈은 동의를 구하는 데 실패합니다. 그가 방송을 통해 가정적인 면모를 은연중 내비친 것도 엄연한 사실이고, 그러한 이미지가 (설령 그의 의도와 무관하다 하더라도) 상업적으로 판매된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니까요. 그의 음악을 순애적이고 진솔한 화자가 부르는 것이라 믿었던 청자들이, 사실 그러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아픈' 일임에 분명합니다. 여행 예능을 다니며 가족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던 출연자의 진정성을 믿었던 시청자들이, 사실 그러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역시 '아픈' 일임에 분명합니다.

 

막연하게 최대한의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방어적인 주장은 뒤집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불륜 따위의 추문이 아니라 기부와 같은 선행이라고 말이죠. 추문이 그러하듯 선행 역시 콘텐츠와 하등 무관하다는 면에서 대단히 사적인 일임에 분명합니다. 만약 유명인의 사생활을 기계적으로 분리해 보호해 달라 주장하고자 한다면, 동일한 기준에서 선행 역시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부당하다' 주장해야 합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생활을 겸손하게 사양하는 경우는 있어도 그것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주장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거저 얻은 이익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죠.

 

김C의 반대쪽 끝으로 가면 배우 고현정이 후배 배두나와 나눴다는 대화도 기억이 납니다. 씨네 21에서 진행한 인터뷰였는 데요. "도마 위에 오를 때는 난도질당하려고 올라간 건데 막상 난도질당하면 막 아프다고 하잖아. 그게 싫으면 아예 도마 위에 올라가지 말아야지." 라는 말이었죠. 이쪽의 이야기 역시 마냥 무시할 수 없는 논리를 갖추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마냥 긍정하기에는 스스로의 치부를 애써 합리화하는 듯한 윤리적 가책이 엄습합니다. 도마에 오른 건 그들의 사정이고, 그 도마에 오른 존재를 어떻게 난도질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일 테니까요. 타인을 비난할 권리라는 형용모순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선명하게 실존하는 비극과 부조리를 몇 마디 명제를 엮어 정당화한다 해서 마냥 답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역시 쉽지 않은 문제죠.

 

 

김C는 "내 이혼이 당신의 어디를 아프게 했냐"고 묻는다

의도하지 않은 공백기 동안 김C는 나름 잘 살았다.

www.huffingtonpost.kr

 

고현정의 ‘쪽’ - 배두나가 이러리라고 누가 알겠어요?

고현정_혹시 주변에서 지칠 만도 한데 매번 같은 대목에서 화를 낸다고 하지 않아? (웃음) 어쩌면 현장에서 여배우한테 사람들이 바라는 건 다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평소 촬영장에서

www.cine21.com

 

 

 

 

 

# 4.

 

그리고 2023년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남자 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이원종은 '야만의 세월'이라는 다소 격앙된 표현을 동원해 울분을 삼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몇몇의 마초적인 배역에도 불구하고 자연인으로서는 여유로운 호인의 웃음으로 익숙한 인물에게서 나온 표현이라 더욱 놀라운 것이었더랬죠. 이 같은 수상소감을 빌린 이선균에 대한 추모는 박성웅, 이상엽을 비롯한 다수의 동료 배우들을 통해 이어졌습니다.

 

동료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했던 것으로 익히 알려진 고인에 대한 추모의 진정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만, 그것과 별개로 해당 수상소감을 들으며 느낀 것은 강한 위화감이 뒤엉킨 모순된 감정이었더랬습니다. 한 연예인의 Privacy가 지켜지지 못함으로 인한 비극을 다름 아닌 가장 Public한 형식으로 애도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어두운 부조리극이 완성되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죠. 자연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캐릭터로서의 상품성을 구분할 수 없는 셀러브리티의 태생적 모순과, 프라이버시의 영역과 콘텐츠의 영역을 구분할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태생적 한계가 적나라하게 전시되는 듯한 모습이었달까요. 눈부신 조명 아래 황금빛 트로피를 들고 이선균을 추모하던 그 순간의 이원종은 과연 프라이빗한 인물인가, 퍼블릭한 인물인가라는 딜레마는 숙연한 고민에 빠지게 합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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