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잃어버린 프런티어 정신을 찾아 뉴욕으로 돌아온 카우보이

데이빗 코엡 감독,
『프리미엄 러쉬 :: Premium Rush』입니다.
# 1.
'스케이트보딩을 다룬 영화들은 보드의 미학을 작품 안에 끌고 들어와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이 존재하는 듯하다.' 미드 90의 글을 시작했던 문장이다. 데이빗 코엡의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프리미엄 러쉬에서 픽시(Fixed-gear Bike, Fixie)의 미학은 다른 어떤 요소들보다 우선한다. 거추장스러운 브레이크1가 제거된 싱글 기어 바이크의 속성은, 영화의 리듬, 캐릭터의 철학, 나아가 작품의 세계관 전체를 규정하고 지배한다.
일반적인 자전거와 달리 픽시는 뒷바퀴의 회전과 페달의 움직임이 직결된 자전거다. 말인즉 탑승자의 의도가 기어 변속기나 브레이크 패드라는 중간 매개를 거치지 않고, 곧장 바퀴의 회전과 정지 등 즉각적인 운동으로 전환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영화 속 와일리의 라이딩은 인간이 도구를 '조작'하는 행위라기보다 도구가 인간 신체의 일부로 확장되는 '사이보그적 합일'에 가깝다. 코엡은 픽시가 가진 이 원초적 동기화를 통해 현대의 탈것들이 잃어버린 순수한 운동의 쾌락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엔진의 소음 대신 거친 숨소리가, GPS의 연산 대신 날선 직감이, 차가운 에어컨 대신 허벅지 근육의 터질듯한 열기가 스크린을 가득 메우고 있고, 이는 대체하기 힘든 개성임에 분명하다.
픽시의 미학은 주인공의 실존적 태도로까지 확장된다. 멈추려 하면 관성에 튕겨 나갈 수밖에 없는 픽시의 물리 법칙은 멈춰 서는 순간 도태되거나 포획되는 현대인의 현실을 역설하고 있고, 그렇기에 라이더에게 픽시란 죽음을 향한 질주가 아닌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와일리에게 픽시는 뉴욕이라는 미로를 끊임없이 공략하고 돌파해야 할 전술적 공간으로 재해석하게 만드는 것이기에, '브레이크는 죽음이다'라는 대사는 안전장치와 보험, 타협으로 점철된 현대 사회 시스템을 거부하겠다는 일종의 프런티어 정신에 가깝다.

# 2.
와일리의 픽시가 내달리는 뉴욕은 구조적으로 모순된 공간이다. 맨해튼은 화려한 마천루의 숲으로 낭만화되는 대신, 철저하게 구획되고 통제된 수직의 감옥으로 묘사되어 있고, 하물며 센트럴 파크조차 내달리는 것이 금지된 통제의 공간이긴 매한가지다. 계획가들이 설계한 바둑판 모양의 그리드, 일방통행 표지판, 엄격한 신호 체계는 시민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전략(Strategy)을 대변한다. 이 견고한 통제망 안에서 금융 엘리트나 최고급 세단에 탑승한 권력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철저하게 고립되고 정체된다. 그들은 사회적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을지언정, 물리적으로는 꽉 막힌 도로와 엘리베이터라는 수직의 튜브에 갇혀 한 발자국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이러한 정체의 공간을 찢어발기는 와일리의 '수평적 횡단'이다. 그는 통제 전략으로서의 사회적 합의를 보란 듯이 위반한다. 역주행하고, 인도로 뛰어들며, 차량과 차량 사이를 파고든다. 권력이 그어놓은 선(Line)을 무시하고 도시 전체를 자신의 면(Plane)으로 확장해 버리는 게릴라이자, 도시의 혈관을 강제로 뚫어내는 아나키스트다. 값비싼 차를 탄 악당은 도로에 갇혀 무력하게 클락션을 울려대고, 저렴한 자전거를 탄 노동자가 자유롭게 도시를 유영한다는 역설은, 자본주의 심장 뉴욕의 계급 구조를 통렬하게 비웃고 있다.
따라서 부패 경찰 바비 먼데이는 익숙한 범죄 스릴러의 악당이라기보다 시스템의 대리자로서 기능한다. 마이클 셰넌으로서는 이례적인 희극적 연기 톤은, 유연한 유체와 같은 와일리를 고체의 규율로 막아서려는 시도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가 묘사하기 위한 의도된 과장이다. 영화가 전개됨에 따라 먼데이 형사는 소속과 직책, 법 등을 앞세워 와일리를 몰아붙이는데, 그와 함께 뉴욕은 더 이상 현대적인 도시가 아닌 질서가 무너진 황야로 변모한다.

# 3.
그래서 프리미엄 러쉬는 대단히 흥미롭게도 서부극이다. 와일리의 허리춤에 감겨있던 강철 체인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서부극 총잡이의 채찍과 리볼버가 디졸브 된다. 매캐한 담배 연기와 땀 냄새가 진동하는 배차 사무소는 사실상 무법자들의 살롱(Saloon)과 다를 바 없고, 그곳에서 하달되는 배달 지령과 니마의 영수증은 현상금 의뢰서와 마찬가지다. 감독은 작품을 통해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더 시티, 뉴욕 한복판에 서부극의 야성을 불러들인다. 그렇기에 와일리의 무리들은 이 시대 마지막 카우보이인 것이다.
코엡은 서부극의 구조를 빌린 이 현대 활극이 단순한 1차원적 레이싱으로 전락하지 않게 하기 위해 플래시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태생적으로 직선적일 수밖에 없는 서사에 최소한의 입체성을 보강하기 위함일 것이다. 과거의 사연을 반복적으로 보강하는 플롯으로 인해 와일리의 페달링은 단순한 배달 노동에서 타인의 구원으로 격상되긴 하지만, 브레이크 없이 내달려라 말하는 영화의 미학과 사실상 브레이크처럼 작동하는 플래시백의 방법론이 충돌하는 감이 있고, 무엇보다 레이싱의 속도감이 지속적으로 유보된다는 것은 아쉬울 수 있는 지점이다.
수직으로 쌓아 올린 권력을 무너트린 것은 취약한 자전거들의 수평적 연대다. 클라이맥스 장면이다. 제각각의 이익으로 경쟁하던 라이더들이 순식간에 결집하는 결말은 작품의 공간 정치학과 장르적 카타르시스가 결합되는 순간이다. 개별적으로는 차량에 치이고 무시당하던 약한 존재들이 몰려드는 장면은, 서부극에서 기병대가 도착해 전세를 역전시키던 영웅 서사를 도시 하부 구조를 담당하는 노동 계급의 연대로 비틀어낸다. 유연하게 흐르던 유체들이 단단하게 경직된 고체를 에워싸 압도하는 승리는, 평범한 관객들에게 공간을 향유함으로써 권력을 전복시키는 듯한 통쾌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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