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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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nimation 70

이노센스 (2004, dir. 오시이 마모루): 고스트의 실종

# 0. 구원이라기보다는 잔존에 가깝고, 대안이라기보다는 위안에 가까운 것이지만요. # 1. 마침내 쿠사나기는 인형사와 결합하면서 네트워크적인 존재가 됐어요. 그녀(그)는 분명 존재하지만, 위치할 수도 추적할 수도 없죠. 그래서 쿠사나기의 실종 3년 후를 그린 이노센스의 테마는 거대한 '부재'일 수밖에 없어요. 공각기동대는 고스트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구축된 영화였어요. 인간과 기계, 자아와 타자를 논하던 세기말 SF는 그래서 '고스트는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정직하게 수렴했죠. 클라이맥스 인형사와의 만남은 그 질문에 대한 급진적 재정의를 요구했지만, 어쨌든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의미는 생산되고 있었고, 사유는 진전되고 있었던 거예요. 이노센스는 고스트라는 중심이 이미 부재한 상태, 적어도 무의미할 ..

Film/Animation 2026.04.20

덜 샌드박스 무비 _ 배트맨 닌자 대 야쿠자 리그, 미즈사키 준페이 감독

# 0. 덜 기상천외한 미즈사키 이야기 미즈사키 준페이 감독,『배트맨 닌자 대 야쿠자 리그 :: ニンジャバットマン対ヤクザリーグ』입니다. # 1. 지랄 났던 배트맨 닌자의 속편. 전작의 리뷰에서도 짚었듯 여전히 시리즈의 정체성은 샌드박스의 기상천외함 그 자체다. 유아적 포르노라 부르든 트래쉬 정크푸드라 부르든 알 바 없다. 되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그런 볼멘소리에 괘념키나 할는지 의문. 탄탄한 구조를 갖춘 걸작 '따위'보다 제한 없는 상상력이 낳은 유쾌한 난장을 지향하는 영화에게 황당함은 훈장일 뿐이다. 기성 히어로물의 엄숙주의에 알몸으로 꼬라박는 패기. DC의 IP가 일본 서브컬처의 광기와 만날 때 얻을 수 있는 시너지를 극단까지 밀어붙였다는 것은 여전히 평가받을만하다. 논리적 일..

Film/Animation 2026.04.06

더욱 완벽한 우울 _ 퍼펙트 블루, 곤 사토시 감독

# 0. 힌트는 드라마 제목 곤 사토시 감독,『퍼펙트 블루 :: パーフェクトブルー』입니다. # 1. 양립불가능한 메시지를 동시에 받아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처벌이나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태, 이중 구속, 더블 바인드. 원래의 자아를 지키고 싶은 욕구와, 원하는 자아에 다가가려는 욕망 사이에서 분열하는 모두.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함에 대한 강박과 그로 인한 완벽한 우울. 곤 사토시, 퍼펙트 블루다. 주인공 미마는 순수성을 지키고자 하는 '이상적 자아'와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현실적 자아' 사이에서 갈등한다. 촬영 중 실제 고통을 겪고 있다 믿는다거나, 기억에 없는 살인을 저질렀다 의심하는 등 심각한 이인증에 시달릴 정도다. 농락하며 달아나는 환영은 억압하려 했던 페르소나가 투사..

Film/Animation 2026.02.16

반환점에 서서 _ 붉은 돼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0. 고향으로 돌아온 그를 본 아이들은 돼지, 붉은 돼지 아저씨라 불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붉은 돼지 :: 紅の豚』입니다. # 1. 잿빛 하늘 아래 전우들은 전부 죽었고, 운이 좋아 살아남은 그는 코를 잃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진 흉측한 얼굴. 가실 기미 없는 핏빛 단면을 하고서 고향으로 돌아온 그를 본 동네 아이들은 돼지, 붉은 돼지 아저씨라 불렀다. # 2. 어느덧 1992년. 1941년 제국주의 끝물에 태어난 그림쟁이, 영원히 하늘을 날 것만 같았던 소년의 나이도 오십을 넘었다. 시간은 벌써 그렇게나 흘러버린 것이다. 전쟁의 위험과 전체주의의 광기를 경고하고(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별의 두려움과 대화하는 법을 조언하고(이웃집 토토로), 어른이 된다는 것의 ..

Film/Animation 2026.01.22

샌드박스 무비 _ 배트맨 닌자, 미즈사키 준페이 감독

# 0. 기상천외한 미즈사키 이야기 미즈사키 준페이 감독,『배트맨 닌자 :: ニンジャバットマン』입니다. # 1. 일본 망가의 캐릭터가 인격이라면, 북미 코믹스의 캐릭터는 플랫폼에 가깝다. 매 에피소드마다 매 작가마다 캐릭터가 따로 놀기에 정극과 시트콤의 차이라 이해해도 나쁠 건 없다.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일본 망가와 그로부터 영향받은 한국 만화에 익숙한 독자들이 유독 코믹스를 입문하는 데 버거워하는 이유다. 그래서 코믹스의 캐릭터명은 살아있는 인간의 이름이라기보다 어린 아이 모래상자와 닮앗다. 아주 큰 틀에서의 캐릭터 정체성, 이를테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던 스파이더맨의 주제의식이나, 다크 히어로 배트맨의 내적 모순, 슈퍼맨의 무한한 선량함과 불살주의 정도가 가이드..

Film/Animation 2025.12.06

로맨티시스트 _ 요수도시, 가와지리 요시아키 감독

# 0. 내일 걱정 없는 오늘 저녁의 노래 가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요수도시 :: 妖獣都市』입니다. # 1. 내일 걱정 없는 오늘 저녁의 노래. 이름 모를 누군가가 80년대 일본 시티팝을 듣고서 남겼다는 한 마디다. Stay with me. 일본의 부동산 버블 시기, 겪어보지 않은 사람조차 노스탤지어를 느낄 법한 그 희망적이면서 서정적이었던 시대의 정서를 대신하는 말로 이보다 더 근사한 표현이 있을까. 꿈꾸는 욕망은 모두 이룰 수 있고 바라는 쾌락은 모두 얻을 수 있는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의 도시.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이들은 그 걱정 없는 내일에 마음껏 몸을 던졌을 것이다. 드라마틱하게 쌓아 올려졌던 버블이 증명하듯 말이다. 하지만 세상엔 유난히 걱정 많은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

Film/Animation 2025.11.10

내가 좋은걸요 _ 천년여우, 곤 사토시 감독

# 0. 그를 만나지 못해도 괜찮아요. 왜냐면 나는 그를 쫓아가는 내가 좋은걸요. 곤 사토시 감독,『천년여우 :: 千年女優』입니다. # 1. 감정엔 시제가 없다. 슬프다와 슬펐다를 기호로써 구별할 뿐 슬프다의 감정과 슬펐다의 감정은 구분할 수 없고, 단지 슬픔이란 원형만이 존재할 뿐이다. 감정엔 주어도 없다. 모든 감정은 독점적이기에 나의 슬픔 외에 너의 슬픔은 공존할 수 없고, 너의 슬픔을 전해 듣는 순간 나의 슬픔을 끄집어내어 너의 슬픔이라 이름 붙였을 뿐이다. 그래서 이야기엔 주인이 없다. 이야기는 그 자체로 온전하지 않고 각자에 의해 고유하게 재구성되기에 각각은 침범할 수도 도용될 수도 없는 것이다. 결국 사실과 허구를 구분할 수 없다. 내가 겪은 감정과 겪었던 감정과 들었던 ..

Film/Animation 2025.10.16

거장의 일기장 _ 마녀 배달부 키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0. 매너리즘에서 깨어나 내일을 다짐하는 거장의 일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마녀 배달부 키키 :: 魔女の宅急便』입니다. # 1. 키키에게 비행은 호흡과 같다. 연원을 알 수도, 증명할 필요도, 걱정할 이유도 없는 순수한 것이다. 순진무구한 키키의 자신감은 재능과 자아를 동일시하는 미성숙함에서 비롯된다. '날 수 있는 나'이기에 특별하고, 그 특별함이 언제고 세상을 살아낼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 사랑스러운 어린 마녀의 성장기는 불세출의 천재 애니메이터, 펜 한 자루로 세상을 날아다닌다 믿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담담한 자기 고백이다. 코리코에서의 생활은 '재능은 그저 발현될 뿐'이라는 순진한 세계관을 허용하지 않는다. 재능이 생존을 위한 기능으로 전환되는 생경한 경험들이다. ..

Film/Animation 2025.09.18

참사를 영화할 때의 고민들 _ 빅 피쉬, 박재범 / 김정석 감독

# 0.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박재범 / 김정석 감독,『빅 피쉬 :: Big fish』입니다. # 1. 설득은 형식에서부터 비롯된다. 이미 스톱모션의 물리적 노고가 지속적인 애도와 조응하며 은유로서 기능한다. 클레이의 투박한 질감과 인형의 미세한 떨림은 강력한 물질성을 전달하는데, 관객으로 하여금 고통의 무게를 간접적으로나마 감각하게 하는 효과다. 폭풍우 속에서 노를 젓고 밧줄을 당기는 엄마 요나의 행위는 스크린 뒤 애니메이터의 노동과 겹쳐지며, 잊을 수 없는 상실을 감당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시각적 묘사가 된다. 영화는 언어의 사용을 절제함으로..

Film/Animation 2025.09.12

일단 토스 _ 모노노케 원혼의 재, 나카무라 켄지 감독

# 0. 일단 3장으로 토스하며 턴을 종료한다. 나카무라 켄지 감독,『모노노케 원혼의 재 :: モノノ怪 火鼠』입니다. # 1. 고작 한 편만으로 모든 개성이 지루해졌다 말하는 건 가혹하다. 여전히 강력한 스타일은 반가움과 흥분감을 순식간에 자아낸다. 오리엔탈적이면서도 사이키델릭한 오프닝 음악부터, 들불처럼 번지는 위기를 추적하는 속도감, 평면적 구도를 파헤치는 3차원적 운동성, 전통적인 질감과 현대적인 색감이 교접된 전위적인 미술 모두다. 다만 일련의 스타일은 물론, 오오쿠와 모노노케를 둘러싼 세계관, 약장수의 캐릭터성과 디테일 대부분 이미 아는 것이기에 감흥이 반감됨은 부정할 수 없다. 클라이맥스의 변신만 하더라도 이미 익숙한 모습을 재현하기에 감동은 전작만 못하다. 관객들이 영화에..

Film/Animation 2025.08.22

결함의 미학 _ 달팽이의 회고록, 애덤 엘리엇 감독

# 0. 결핍과 균열과 흉터를 빠짐없이 끌어안는다. 애덤 엘리엇 감독,『달팽이의 회고록 :: Memoir of a Snail』입니다. # 1. '클레이는 손끝으로 보는 영화'라 말한다면 너무 유난스러운 걸까. 애덤 엘리엇의 영화는 다른 클레이 무비들이 그러한 것처럼 눈보다 손끝에 먼저 도달한다. 스크린 위 꿈틀거리는 인형들. 지문과 체온이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는 듯한 점토의 물성. 완벽하게 매끈한 cgi의 범람 속에서 고집스럽고 투박하지만 그렇기에 진솔한 질감을 마주하는 경험에는 분명 대신할 수 없는 감동이 있다. 달팽이의 회고록은 기대한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만지게 하는 영화이고, 이해시키는 서사가 아니라 감각하게 하는 서사이며, 마침내 관철시키는 연설이 아니라 어루만..

Film/Animation 2025.08.04

Lesson 2 _ 화성특급, 제레미 페랑 감독

# 0. 이건 두 번째 레슨 제레미 페랑 감독,『화성특급 :: Mars Express』입니다. # 1. 다수의 고전 SF 및 네오 누아르 작품들과의 연관성은 부정할 수 없고, 딱히 부정할 생각도 없다. 일본어와 영어 대신 프랑스어로 표현된다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익숙한 사이버펑크의 그 모습 그대로다. 다방면에 걸친 디자인적 모티브, 정체성과 관련된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내러티브,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몇몇의 내적 갈등 따위에서 두루 확인할 수 있듯 말이다. 카를로스와 관련된 제일브레이크와 테이크오버, 준과 관련된 백업과 브레인 팜 아이디어는 대표적이다. 카를로스는 로이제커에게는 돈을 벌어줄 상품이고, 유가족에겐 죽은 남편을 연기하는 불쾌한 흉물이며, 거리를 다니는 일반인들에겐 평..

Film/Animation 2025.07.12

음악, 노골적, 성공적 _ 케이팝 데몬 헌터스, 크리스 애펄핸즈 / 매기 강 감독

# 0. 욥마 소다팝! 말 리를 소다팝! 크리스 애펄핸즈 / 매기 강 감독,『케이팝 데몬 헌터스 :: K-Pop Demon Hunters』입니다. # 1. 미리 고백하자면 K팝에 대한 기호는 라이트라는 말조차 무거울 정도로 라이트하다. 굳이 밀어내지는 않지만 굳이 찾아 듣지도 않을 정도의 멀찍한 거리감이랄까. 그럼에도 개성적인 애니메이션에 흥미를 느낀 건 노골적인 프로젝트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항마력이 딸리지 않을까 살짝 걱정하기도 했지만 의외로 영화의 감수성은 생각보다 딥하지 않다. 무난한 로맨틱 코미디의 달달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느낌이라, 혹여나 누군가에 이끌려 뜻하지 않게 보게 된 사람들도 딱히 버겁지는 않을 것이다. 관객 경험은 크게 보고 싶은 것(..

Film/Animation 2025.06.24

코와쿠나이 _ 이웃집 토토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0. 우리 이별이 두렵지만, 이젠 두렵지 않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웃집 토토로 :: となりの トトロ』입니다. # 1. 사춘기 소녀의 호기심과 두려움을 특유의 창의성으로 섬세하게 그린다. 이제 막 자아를 발견하고 탐색하기 시작한 사츠키는 따스한 가족의 보호 아래 세계를 질문하며 성장한다. 크레디트에서 함께 뛰노는 다른 모든 아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언제나 다정한 칸타의 할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어딘가에서 영화를 보고 있을 관객들이 지난날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쓰러질 듯 낡은 집은 이전까지 인지하지 못했던 시간의 흐름이 투영된 세계다. 미처 시간을 인지하지 못하기에 두려워하지도 않았던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지만, 비로소 그 안에 숨어 있던 위화감을 발견한다. 마쿠로 쿠로스..

Film/Animation 2025.05.16

세계관 최강자 _ 천공의 성 라퓨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0. 세게관 속 최강자 말고 세계관 만들기 최강자라는 뜻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천공의 성 라퓨타 :: 天空の城 ラピュタ』입니다. # 1. 을 극장에서 봤던 순간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난쟁이 둘의 눈물겨운 장거리 하이킹, 대단한 걸로 대단한 절대 반지의 존재감, 둘이어도 넷이어도 안될 것만 같은 삼총사의 우정, 스텟을 잘못 찍은 게 분명한 힘법사 간달프와, 뜻하지 않게 작품의 마스코트가 되어버린 골룸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소년의 눈망울을 반짝이게 하는 즐거움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가장 매력적인 건 톨킨에 의해 창조된 세계 그 자체다. 평화로운 호비튼의 언덕에서부터 황량한 운명의 산에 이르기까지. 음습한 팡고른 숲에서부터 폭압적인 아이센가드 탑에 이르기까지. 배수진..

Film/Animation 2025.02.22

경이로운 세계 _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0. 大丈夫、怖くな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바람계곡의 나우시카 :: 風の谷の ナウシカ』입니다. # 1. 온종일 비행하듯 자유롭지만, 마스크 없인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구속적이다. 붉은 눈의 오무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공포, 푸른 눈의 오무는 숲을 지키는 수호자다. 압도적인 곤충은 두렵지만, 가볍고 튼튼한 허물은 요긴한 것이기도 하다. 독을 내뿜는 숲은 스스로를 희생해 땅을 정화하고, 인간은 자신의 죄악을 대신 갚는 줄도 모른 체 숲을 증오하며 불태운다. 평화로운 구름 속엔 매서운 번개가 몰아친다. 바람은 포자를 실어 나르는 무서운 것임과 동시에 막아내는 고결한 것이다. 문명은 풍요의 이유이자 멸망의 이유다. 쌍둥이 여동생을 거둔 줄도 모르고 나우시카를 공격하던 아스벨은 이내 ..

Film/Animation 2025.02.18

점, 선, 면 _ 모노노케 우중망령, 나카무라 켄지 감독

# 0. 차원을 뛰어넘어 메마른 마음에 닿기를 나카무라 켄지 감독,『모노노케 우중망령 :: モノノ怪 唐傘』입니다. # 1. 일본식 전통 화지(和紙) 텍스쳐는 관객을 에도 시대 두루마리 속으로 초대한다. 동시에 적절한 CGI를 활용, 현대적인 개성을 함께 도모하고 있기도 하다. 축제 날짜가 다가올 때마다 미닫이가 닫혔다 열리는 건 대표적이다. 시퀀스를 구분하기 위함도 있겠으나, 극 안에서 밖으로 관객을 밀어냈다 넣었다를 반복해 운동성을 환기하기 위함이다. 이차원적인 작화와 삼차원적인 운동의 결합뿐 아니라 전통적인 질감과 현대적인 표현의 결합 역시 고유의 미감에 기여한다. 배경이 되는 오오쿠의 카리스마와, 오오쿠를 집어삼키는 모노노케의 카리스마, 모노노케를 퇴치하는 약장수의 카리스마, 작..

Film/Animation 2024.12.14

경이로운 순간 _ 와일드 로봇, 크리스 샌더스 감독

# 0. 올해 가장 기억에 남을 순간 중 하나가 아닐까. 크리스 샌더스 감독,『와일드 로봇 :: The Wild Robot』입니다. # 1. 언젠가부터 영화에 완벽이란 말을 붙이는 걸 꺼려함에도 사랑과 재채기처럼 찬사를 가릴 도리가 없다. 올라가는 앤딩 크레디트를 보며 확신한다. 좋은 영화를 많이 본 한 해지만 올해의 애니메이션은 이 작품, 와일드 로봇이다. 특별히 모자라거나 과한 바 없는 영화는 호들갑스런 평가가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 탁월하다. 드림웍스 최고작이란 평가엔 이견의 여지조차 없고, 적당한 시간이 흘러 2020년대에는 어떤 영화들이 만들어졌는가 물었을 때 그 대답 중 하나에 들어가더라도 부족함이 없다. 그때의 인류는 어떤 시점에서 어떤 생각과 어떤 고민 끝에 어떤 성찰을 ..

Film/Animation 2024.11.06

죽음에 관하여 _ 피노키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 0. 고르는 것과 남겨진 것으로 말하는 유한한 생명에 대하여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피노키오 :: Pinocchio』입니다. # 1. 다정한 부자의 이야기는 아들 카를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시작한다. 제페토의 소나무는 카를로의 죽음 위에 피어난 존재고, 피노키오는 다시 그 소나무를 베어 쓰러트린 죽음에서 태어난 존재다. 이후로도 누구와 만나 무슨 일을 겪는가와 별개로 단계마다 피노키오는 죽었다 살아나길 반복한다. 죽지 않는 피노키오가 그럼에도 죽음을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제페토를 죽음으로부터 구하기 위해서다. 생동감 넘치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관한 영화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가 인간이 됨은 돋아난 새살이 아닌 오직 '죽음'으로서 증명된다. 귀뚜라..

Film/Animation 2024.10.12

뚜찌빠찌뽀찌 _ 미니언즈, 카일 볼다 / 피에르 코팽 감독

# 0. 몰리카노~ 마케라로젠보~보케라도빠찌~~~~~~ 오페라도비~~마~~ 키~~~~~~ 카일 볼다 / 피에르 코팽 감독,『미니언즈 :: Minions』입니다. # 1. 자크 드미와 로버트 에거스의 연타로 인한 심신 미약을 벗어나기 위해선 적절한 처방이 필요했고, 그럴때면 다 때려죽이는 액션이나 귀염뽀짝 애니메이션이 딱이다. 오늘의 알약은 Despicable Me, 슈퍼배드의 스핀오프 다. 일루미네이션의 마스코트가 된 미니언들의 시작을 그린 영화는, 사실 빈말로라도 완성도가 높다 말하기 어렵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의 에너지는 충분히 연출되지 못한다. 스칼렛이 미니언을 선택하는 과정은 적당한 액션에 눈가림되어 있을 뿐 태만하다. 영국 여왕의 왕관을 훔친다는 동기는 설득되지 ..

Film/Animation 2024.09.22

꿈과 광기의 세계 _ 영화 너무 좋아 폼포 씨, 히라오 타카유키 감독

# 0. ようこそ。夢と狂気の世界へ。 히라오 타카유키 감독,『영화 너무 좋아 폼포 씨 :: Pompo, The Cinephile』입니다. # 1. 제목처럼 진솔한 영화는 말랑말랑한 표현과 달리 영화 제작의 세계를 진지하게 묘사한다. 우연히 기회를 얻은 젊은 영화인의 이야기 이면엔, 예술과 상업의 균형, 이상과 현실의 조율, 협업과 성장의 가치 등이 폭넓게 다뤄진다.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작품은 비단 영화뿐 아니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통용될 선량한 응원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작품이 정의하는 영화를 만들고 보는 행위의 의의로 환원된다. 폼포는 '날'리우드가 주목하는 천재 프로듀서다. 그녀는 예리한 직관과 산업에 대한 통찰을 가진 인물로, 진과 진의 눈을 빌린 관객들로 하여금 상업..

Film/Animation 2024.09.06

뮤-비 _ 스터질 심프슨의 사운드 & 퓨어리, 마이클 아리아스 감독 외

# 0. 가끔은 이런 류도 나쁘지 않지. 마이클 아리아스 감독 외,『스터질 심프슨의 사운드 & 퓨어리』입니다. # 1. 스터질 심프슨(Sturgill Simpson)은 미국 켄터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할 수도 있지만 21세기 미국 컨트리 음악을 선도하는 뮤지션으로 평가되는 나름 월클이(라고 한)다. 2013년 데뷔 앨범 을 통해 세상에 등장한 후 두 번째 앨범 을 통해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입지를 넓혔다. 연이어 2016년에 발표된 세 번째 앨범 는 그레이 어워드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오른다. 과거 해군 시절 경험과 아버지와의 삶을 녹여낸 것으로 알려진 앨범은, 직전의 두 번째 앨범과 더불어 뮤지션의 최고작으로 평가된다. 아마도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

Film/Animation 2024.08.16

위대한 쇼타임 _ 파프리카, 곤 사토시 감독

# 0. It's the greatest show time! 곤 사토시 감독,『파프리카 :: Paprika』입니다. # 1. 2010년의 무더웠던 여름날.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지만, 당시에는 제법 친했던 녀석과 영화관을 찾았다. 걸작 를 통해 완전히 궤도에 오른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은, 둘이서 영화를 보는 쑥스러움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꿈과 무의식에 대한 독창적인 재해석, 플롯을 루빅스 큐브 가지고 놀듯 한다는 평을 들은 (2010)을 본 후, 홍조 띤 얼굴로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녀석에게 말했던 감상은 지금도 유효하다. "매우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다만 애석하게도 나는 이미 를 봤다." 파프리카는 작품을 만든 곤 사토시조차 모르겠다 말할 정도로 모호하다..

Film/Animation 2024.06.08

오만의 반성문 _ 판타스틱 플래닛, 르네 랄루 감독

# 0. 역사의 단편으로 작성한 오만한 인류의 반성문 르네 랄루 감독,『판타스틱 플래닛 :: La Planete sauvage』입니다. # 1. '1973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라는 소개만으로도 흥미를 부르기 충분하다. 은 멸망한 인류의 후손 옴(Om)이 거대한 파란색 외계인 드라그(Dragg)에게 억압당하는 이야기를 환상적인 미감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프랑스 SF 소설가 스테판 울이 1957년 발표한 소설 을 원작으로 한다. 체코의 이지 트릉카(Jiří Trnka) 스튜디오와, 프랑스 애니메이터 르네 랄루, 롤렌드 토포르의 협업은 그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다. 옴은 인간의 프랑스어 Homme에서 음가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옴의 과거를 기록한 슬라이드는 ..

Film/Animation 2024.05.14

다이브 _ 공각기동대, 오시이 마모루 감독

# 0. 숨 참고 필로소피 다이브 오시이 마모루 감독,『공각기동대 :: 攻殻機動隊』입니다. # 1. 믿고 거른다는 꺼무위키지만 솔직히 씹덕의 영역만큼은 예외입니다. 공각기동대와 관련된 정보를 얻고 싶다면 누군가의 포스팅을 빌릴 바에야 나무위키를 정독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죠.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의 별세를 핑계로 묵은 만화책들을 몰아보다 흘러 흘러 공각기동대를 다시 볼 수 있었는데요. 오래전 감상에 새로운 감상을 조금 더 얹어 주절거리겠지만 어차피 그 감상조차 모조리 나무위키에 있을 게 뻔합니다. 마니아들처럼 시리즈를 전부 찾아볼 정도의 관심도 의리도 없는 제게 공각기동대란 1995년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과 스칼렛 요한슨이 쿠사나기로 열연한 2017년 실사판 정도가 전부라는 것 역시..

Film/Animation 2024.04.02

호수 위의 소년 _ 어웨이,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

# 0. 내 안의 용기와 마주하는 그곳,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 『어웨이 :: Away』입니다. # 1. 기본적으로는 비행기 사고로 인해 불시착한 소년이 미지의 섬에서 맞닥뜨린 거인을 피해 지도 끝에 위치한 마을에 도달하는 어드밴처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할 겁니다. 이 관점에서는 보이는 것은 보이는 그대로, 들리는 것은 들리는 그대로 솔직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황량한 모래사장에 불시착한 사람의 불안과, 정체 모를 거인을 마주하는 순간의 공포와, 포근하고 평화로운 오아시스에서의 안도감을 만끽하면 좋습니다. 작고 사랑스러운 노란 새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바이크의 시동을 걸고 출발할 때의 용기와, 높고 위태로운 다리를 건너는 순간의 긴장과, 거슬러 올라오는..

Film/Animation 2023.12.02

존재의 지평선 _ 썸머 고스트, 라운드로 감독

# 0. 추락하는 삶과 부유하는 죽음의 경계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 라운드로 감독,『썸머 고스트 :: サマーゴースト』입니다. # 1. 피아노 샤랄랄라, 석양 샤랄랄라 하는 짭카이 마코토류 갬성충만 일본 애니메이션입니다. 금수저 모범생, 번지점프 미수범, 금발의 정대만이 모여 여름 방학을 분신사바에 꼬라박습니다. 귀신이랑 4인팟 짜서 익스트림 레저 스포츠 즐기다 보물 찾기에 성공, 경품으로 목걸이를 득템 합니다.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기 전에 정대만은 요단강을 건너고 남은 둘이서 다시 분신사바에 매진하며 막을 내린다는, 고런 내용의 작품이죠. 네 명의 주요 캐릭터는 삶과 죽음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됩니다. 이를테면 토모야는 '살 이유가 없는 사람', 아오이는 '죽고 싶은 사람..

Film/Animation 2023.10.22

어쩌면 그 이상 _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호아킴 도스 산토스 외 2인 감독

# 0. 스파이더맨에게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 어쩌면 그 이상. 호아킴 도스 산토스 / 켐프 파워스 / 저스틴 K. 톰슨 감독,『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입니다. # 1. 스파이더맨하면 뭐가 떠오르실까요. 북미 만화 특유의 역동적인 그림체가 떠오르실 수 있겠죠. 코믹스에 대한 접근성이 높지 않은 한국 관객들은 실사 영화 시리즈들을 먼저 떠올리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화풍으로 그려낸 작품들도 많거니와, 비단 작화가 아니더라도 레고 블록이나 동물, SD풍 데포르메 따위로 변주한 굿즈 상품들도 즐비하죠. 에피소다마다 아예 다른 설정으로 리뉴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 나이도 성격도 능력도 각양각색인 경우도 많습니다. 멀티버스 메타가 성행한 이후론 진짜 막 나가는 ..

Film/Animation 2023.08.20

착각의 늪 _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아론 호바스 / 마이클 젤레닉 감독

# 0. "자기감정에 속기도 하거든요." 아론 호바스 / 마이클 젤레닉 감독,『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 The Super Mario Bros. Movie』입니다. # 1. 이 영화를 리뷰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극장을 나서며 든 첫 번째 생각입니다. 이 작품은 마리오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영화라는 그릇을 빌린 [마리오]였기 때문이죠. 좋게 말하면 칼 같은 손익계산에 힘입은 초정밀 타게팅 상품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박하게 말한다면 팬심에 절대적으로 기대는 서비스 덩어리라 해도 무리는 없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하다못해 마리오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마리오가 벌이는 '이 영화만의 특별한 모험'을 기대한 사람들을 위한 요소는 전무하다 해도 무방합니다. 글자 그대..

Film/Animation 2023.05.18

눈보라빛 향기 _ 플레이온, 고동환 / 송하연 / 강선우 감독

# 0. 그대 모습은 눈보랏빛처럼 살며시 다가왔지~ 고동환, 송하연, 강선우 감독, 『플레이온 :: PLAY ON』입니다. # 1. 최근 왓챠는 단편에 진심입니다. 자의 반 타의 반의 생존전략이긴 하겠지만요. 여하튼 매주 양질의 단편을 10여 편 이상 꾸준히 추가하고 있는데요. 참 잘했어요. 이번 주에는 10분 안쪽의 애니메이션이 왕창 올라왔네요. 30년 차 게임 폐인의 니즈를 자극하는 작품이 보이길래 즐거운 마음으로 골라 보았습니다. # 2. 균형이 돋보이는 말랑말랑 애니메이션입니다. 직관적인 인상은 라이엇의 롤과 블쟈의 하스, 슈퍼셀의 클래시 시리즈의 중간 어딘가의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실제 그런 게임들로부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겠으나, 한국과 일본 등 동양 애니메이터의 표현보다는 ..

Film/Animation 2022.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