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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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nimation 47

다이브 _ 공각기동대, 오시이 마모루 감독

# 0. 숨 참고 필로소피 다이브 오시이 마모루 감독, 『공각기동대 :: 攻殻機動隊』입니다. # 1. 믿고 거른다는 꺼무위키지만 솔직히 씹덕의 영역만큼은 예외입니다. 공각기동대와 관련된 정보를 얻고 싶다면 누군가의 포스팅을 빌릴 바에야 나무위키를 정독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죠.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의 별세를 핑계로 묵은 만화책들을 몰아보다 흘러 흘러 공각기동대를 다시 볼 수 있었는데요. 오래전 감상에 새로운 감상을 조금 더 얹어 주절거리겠지만 어차피 그 감상조차 모조리 나무위키에 있을 게 뻔합니다. 마니아들처럼 시리즈를 전부 찾아볼 정도의 관심도 의리도 없는 제게 공각기동대란 1995년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과 스칼렛 요한슨이 쿠사나기로 열연한 2017년 실사판 정도가 전부라는 것 역시 감안하셔야겠네요...

Film/Animation 2024.04.02

호수 위의 소년 _ 어웨이,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

# 0. 내 안의 용기와 마주하는 그곳,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 『어웨이 :: Away』입니다. # 1. 기본적으로는 비행기 사고로 인해 불시착한 소년이 미지의 섬에서 맞닥뜨린 거인을 피해 지도 끝에 위치한 마을에 도달하는 어드밴처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할 겁니다. 이 관점에서는 보이는 것은 보이는 그대로, 들리는 것은 들리는 그대로 솔직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황량한 모래사장에 불시착한 사람의 불안과, 정체 모를 거인을 마주하는 순간의 공포와, 포근하고 평화로운 오아시스에서의 안도감을 만끽하면 좋습니다. 작고 사랑스러운 노란 새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바이크의 시동을 걸고 출발할 때의 용기와, 높고 위태로운 다리를 건너는 순간의 긴장과, 거슬러 올라오는..

Film/Animation 2023.12.02

존재의 지평선 _ 썸머 고스트, 라운드로 감독

# 0. 추락하는 삶과 부유하는 죽음의 경계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 라운드로 감독, 『썸머 고스트 :: サマーゴースト』입니다. # 1. 피아노 샤랄랄라, 석양 샤랄랄라 하는 짭카이 마코토류 갬성충만 일본 애니메이션입니다. 금수저 모범생, 번지점프 미수범, 금발의 정대만이 모여 여름 방학을 분신사바에 꼬라박습니다. 귀신이랑 4인팟 짜서 익스트림 레저 스포츠 즐기다 보물 찾기에 성공, 경품으로 목걸이를 득템 합니다.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기 전에 정대만은 요단강을 건너고. 남은 둘이서 다시 분신사바에 매진하며 막을 내린다는, 고런 내용의 작품이죠. # 2. 네 명의 주요 캐릭터는 삶과 죽음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됩니다. 이를테면 토모야는 '살 이유가 없는 사람', 아오이는 '죽고 싶은 사람', 료..

Film/Animation 2023.10.22

어쩌면 그 이상 _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호아킴 도스 산토스 외 2인 감독

# 0. 스파이더맨에게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 어쩌면 그 이상. 호아킴 도스 산토스 / 켐프 파워스 / 저스틴 K. 톰슨 감독,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입니다. # 1. 스파이더맨하면 뭐가 떠오르실까요. 북미 만화 특유의 역동적인 그림체가 떠오르실 수 있겠죠. 코믹스에 대한 접근성이 높지 않은 한국 관객들은 실사 영화 시리즈들을 먼저 떠올리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화풍으로 그려낸 작품들도 많거니와, 비단 작화가 아니더라도 레고 블록이나 동물, SD풍 데포르메 따위로 변주한 굿즈 상품들도 즐비하죠. 에피소다마다 아예 다른 설정으로 리뉴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 나이도 성격도 능력도 각양각색인 경우도 많습니다. 멀티버스 메타가 성행한 이후론 진짜 막 나가는 모양새입니다. 빌런이..

Film/Animation 2023.08.20

착각의 늪 _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아론 호바스 / 마이클 젤레닉 감독

# 0. "자기감정에 속기도 하거든요." 아론 호바스 / 마이클 젤레닉 감독,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 The Super Mario Bros. Movie』입니다. # 1. 이 영화를 리뷰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 2. 극장을 나서며 든 첫 번째 생각입니다. 이 작품은 마리오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영화라는 그릇을 빌린 [마리오]였기 때문이죠. 좋게 말하면 칼 같은 손익계산에 힘입은 영리한 초정밀 타게팅 상품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박하게 말한다면 팬심에 절대적으로 기대는 서비스 덩어리라 해도 무리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냥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하다못해 마리오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마리오가 벌이는 '이 영화만의 특별한 모험'을 기대한 사람들을 위한 요소는 그냥 전무하다 해도 무방..

Film/Animation 2023.05.18

눈보라빛 향기 _ 플레이온, 고동환 / 송하연 / 강선우 감독

# 0. 그대 모습은 눈보랏빛처럼 살며시 다가왔지~ 고동환, 송하연, 강선우 감독, 『플레이온 :: PLAY ON』입니다. # 1. 최근 왓챠는 단편에 진심입니다. 자의 반 타의 반의 생존전략이긴 하겠지만요. 여하튼 매주 양질의 단편을 10여 편 이상 꾸준히 추가하고 있는데요. 참 잘했어요. 이번 주에는 10분 안쪽의 애니메이션이 왕창 올라왔네요. 30년 차 게임 폐인의 니즈를 자극하는 작품이 보이길래 즐거운 마음으로 골라 보았습니다. # 2. 균형이 돋보이는 말랑말랑 애니메이션입니다. 직관적인 인상은 라이엇의 롤과 블쟈의 하스, 슈퍼셀의 클래시 시리즈의 중간 어딘가의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실제 그런 게임들로부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겠으나, 한국과 일본 등 동양 애니메이터의 표현보다는 ..

Film/Animation 2022.07.0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외로움 _ 별의 목소리, 신카이 마코토 감독

# 0. 감독의 날것 그대로를 맛보고 싶다면 언제나 데뷔작 만한 게 없죠. '신카이 마코토' 감독, 『별의 목소리 :: ほしのこえ』입니다. # 1.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놓으며 스펙트럼을 과시하는 감독들도 있습니다만, 자신의 작품 세계를 하나의 브랜드처럼 만들어 반복적으로 가다듬고 심화시키는 감독들도 있습니다. 때론 지루하다거나 심지어 자기 복제 아니냐라는 가혹한 평을 듣기도 하지만 대신 필모그래피를 천천히 따라가는 동안 한 인간의 철학과 깊이 있게 소통하는 감동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매력이죠. '신카이 마코토'는 대표적인 감독 중 하나라 할 법합니다. 그중에서도 데뷔작 는 작품 철학의 원형이라 할 수 있겠죠. 심각하게 못생긴 인물 작화 정도를 제외하면(...) 이후 반복적으로 발견하게 되..

Film/Animation 2022.01.29

12월 26일 _ 유령신부, 팀 버튼 감독

# 0. 박싱 데이(Boxing Day) 또는 성 스테파노의 날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12월 26일)을 가리키는 말로, 많은 영연방 국가에서 크리스마스와 함께 휴일로 정하여 성탄 연휴로 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영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공휴일로 정하고 있다. 독일, 스웨덴 등에서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라고 단순하게 부른다. - 위키백과 [박싱데이] 중에서 - '팀 버튼' 감독, 『유령신부 :: Corpse Bride』입니다. # 1. 헨리 셀릭의 을, 팀 버튼의 내면을 구성하는 다양한 자아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소개드린 바 있습니다. 행복(크리스마스)을 선사하는 산타클로스가 되고 싶었던 팀 버튼(잭 스캘링턴)이 사람들에게 선택받지 못하자 분노(우기부기)에 휩싸이지만, 결국 분노를 제압하고 내면 깊은 ..

Film/Animation 2022.01.15

우와... _ 킥-하트,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 0. 중 마지막 단편이자, 이 옴니버스의 존재 이유입니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킥-하트 :: キックハート』입니다. # 1. 감각을 극대화하는 표현들 간의 균형. 거친 팬 선으로 그려낸 과격한 묘사와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탁월한 미감. 노골적인 퇴폐 안에 담긴 지독한 솔직함과 솔직함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순간의 폭발력. 고아원을 돕는 가면 레슬러라는 무던한 클리셰와, 등장인물의 정서를 사디즘과 마조히즘으로 치환하는 도발적 해석을 병렬적으로 연결 짓는 발상. 단 한 컷도 낭비하지 않는 고밀도 전개와 단 1초도 낭비하지 않는 끈끈한 작풍과 사운드. 지저분하게 남기는 바 없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끝맛까지. 짧은 런타임이 무색할 만큼 인상적인 완성도의 작품입니다. 어렵고 난해한 길을 고유의 스타일로 ..

Film/Animation 2021.10.01

핑퐁 _ 거미 소녀, 카이야 토시히사 감독

# 0. 중 두 번째 단편입니다. '카이야 토시히사' 감독, 『거미 소녀 :: わすれなぐも』입니다. # 1. 앞선 에 비하면 훨씬 말랑말랑한 작품입니다. 옴니버스 중간에 낀 작품 종특이죠. 흔히 제페니메이션하면 크게 세 부류를 떠올리실 텐데요. 허무주의적인 건조한 메시지와 절제된 감정 표현 중심의 작품들이 있을 테구요. 사이버 펑크나 스팀 펑크스러운 세계관 위에 특유의 꿈도 희망도 없는 음울한 밀레니엄 감성을 끼얹은 작품들을 꼽을 수도 있겠죠. 그치만 대부분은 짧은 호흡의 상업적 공식에 충실한 점프식 소년만화들의 애니메이션을 떠올리실 겁니다. 지금의 이 작품 역시 세 번째 범주를 충실히 따라가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 2. 익숙한 일본풍 요괴 전설을 삽화 형식으로 소개한 후 현대 배경의 두 주인공..

Film/Animation 2021.09.29

소녀의 선택 _ 피그테일, 이타츠 요시미 감독

# 0. 오랜만에 옴니버스, 그것도 애니메이션이군요. 중 첫 번째 단편입니다. '이타츠 요시미' 감독, 『피그테일 :: Pigtails』입니다. # 1. 푸른 들판 한가운데 놓인 외딴집입니다. [평온]과 [고립]이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시작부터 위화감을 조성합니다. 소녀는 빨래를 널고 있습니다. 빨래집게들이 다투는군요. 오래된 붉은 것들과 새로운 하얀 것들의 대립입니다. 오래된 것들로부터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읽힙니다. 새로운 것들은 낡은 것들을 존중 없이 배타합니다. 결국엔 서로를 파괴하는 단절로 이어집니다. 부서진 두 빨래집게를 맞대는 피그 테일의 소녀. 소녀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을 잇는 사람입니다. 칫솔입니다. 모가 상해버린 오래된 낡은 칫솔 두 개가 꽂힌 컵에 새로운 칫솔 하나가 더해집니다..

Film/Animation 2021.09.25

세상이 창조되던 순간까지 _ 키리쿠와 마녀, 미셸 오슬로 감독

# 0. 벨기에 영화인데 배경은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입니다. 감독이 유년기를 아프리카에서 보냈다는 말이 있던데 정확한지는 모르겠군요. 그 덕분인지 인종차별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벨기에 답지 않게 차별적 - 단정적 시선이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참 잘했어요. '미셸 오슬로' 감독, 『키리쿠와 마녀 :: Kirikou et la Sorciere』입니다. # 1. 애니메이션 동화입니다. 다양한 세부 장르들 가운데서도 특히 고전적이고 토속적인 톤의 작품입니다. 문학적 은유나 기하학적 구도의 표현이 풍부한 현대 작가주의적 영화들과는 달리 고전 영화들의 그것처럼 메시지는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되어 있습니다. 선입견 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흔히 아프리카 토속 문화 예술하면 떠올릴 법한 특유의 분위기가 매우 잘..

Film/Animation 2021.07.03

음란마귀 테스트 _ 아, 이성환 감독

# 0. (삐슝빠슝) 충격!! 무섭고 야한 레고 영화가 있다?!?!?! '이성환' 감독, 『아 :: Ah』입니다. # 1.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입니다. 5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꼬꼬마들이 좋아할 법한 서른 개 남짓의 레고 블록이 이리저리 조합됩니다만, 그 속엔 섹스와 범죄와 폭력과 총기와 전쟁과 사고와 SF 등의 과격한 표현이 난무합니다. 분명 블록들은 그저 특정한 좌표 위에 배치되어 있을 뿐입니다. 각기 다른 색깔의 레고 블록들은 상호 교류하는 바 없이 자신의 공간만을 중립적으로 점유하고 있죠. 실제 영화를 프레임 단위로 멈춰 보면, 의 오마주인 듯한 노골적 형상의 기계 로봇 정도를 제외하면 의미를 읽을 수 없는 표현이 다분합니다. 스스로 과격함을 만들지 않고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라는 등급으로 완성..

Film/Animation 2021.06.07

그대가 원하면 _ 언어의 정원, 신카이 마코토 감독

# 0. なるかみの すこしとよみて さしくもり あめもふらぬか きみをとどめむ なるかみの すこしとよみて ふらずとも わはとどまらむ いもしとどめば 하늘에 천둥이 여리게 울리니 드리운 구름에 비라도 오려나. 당신을 붙드네. 하늘에 천둥이 여리게 울리고 비님이 안 와도 이 몸은 있겠네. 그대가 원하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 『언어의 정원 :: 言の葉の庭』입니다. # 1. 스타일이나 장르와 무관하게 일정 궤도 이상에 오른 감독 대부분은 상당한 수준의 치밀함과 합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때론 중2병이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감성적인 작품을 하는 신카이 마코토 역시 예외는 아니죠. 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히나 논리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감히, 엄격한 형식논리 안에서 벌어지는 이분법적 구조라 정의한다 ..

Film/Animation 2021.06.05

습작의 정석 _ 쇼트피스, 모리모토 코지 감독 외 4인

# 0. 한 마디로 깔끔하게 소개할 수 있을 작품입니다. 그림 즐기는 영화. 며칠 전 에서 메시지고 나발이고 연기를 즐기시라 말씀드렸는데요. 이 작품은 메시지고 나발이고 영상미를 즐기시라 말씀드려야겠네요. '모리모토 코지' 감독 외 4인, 『쇼트피스 :: ショート・ピース』입니다. # 1. '모리모토 코지' 감독 특유의 아방가르드한 오프닝입니다. 신사 앞에 엎드린 소녀가 토깽이 따라가더니 신시사이저 음악에 맞춰 옷 갈아입습니다. 언제나처럼 뭔 의미인지는 쥐뿔 모르겠습니다만 언제나처럼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거겠죠. 특유의 가슴 뛰게 하는 분위기와 이미지, 그거면 충분합니다. 이어 '모리타 슈헤이' 감독의 , '오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의 , '안도 히로아키' 감독의 , '카토키 하지메' 감독의 의 네 ..

Film/Animation 2021.05.06

Like a Frame _ 수브니어 애니메이션, 강민지 감독

# 0. like a flame~ you got music and the rhythm burning in my mind~ can't let go, you pull me deeper~ (i'm) dropping like the melting snow. you want it all~ don't wanna fall~ you got me just the same. all i know, your passion burns me like a flame~ '강민지' 감독, 『수브니어 애니메이션 :: Souvenir Animation』입니다. # 1. 수학에서는 을, 두 점 사이를 최단거리로 잇는 점들의 집합이라 정의합니다. 같은 기준에서 은, 특정한 두 시점을 잇는 '순간'들의 집합이라 말할 수 있겠죠. 과거와 현재,..

Film/Animation 2021.04.27

인형의 집은 정답이 아냐 _ 마루 밑 아리에티,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

# 0. 토토로 받고! 아리에티 더!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 『마루 밑 아리에티 :: 借りぐらしの アリエッティ』입니다. # 1. 며칠 전 를 리뷰하며 에 관한 영화라 말씀드렸습니다. 유년기에 경험할 수 있는 '무서운 경험들'을 소집한 후, 그 무서움을 한 발짝 넘어서게 만들었던 '용기'의 구체화로서 '토토로'와 교감하는 영화라고 말이죠. 같은 기준에서라면 이 영화는 에 대한 영화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새삼 지브리의 작품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 구체적이고 편안한 정서를 하나 딱 짚어 풍부한 상상력으로 감싸 안는 이야기를 참 맛깔나게 잘 만든다는 생각입니다. 작중 인물들은 모두 파편화되어 있는 소위 '외로운 존재들'입니다. 부모가 일찍 이혼한 탓에 아버지는 거의 본 적도 없고 엄마마저 바빠 보기..

Film/Animation 2021.04.20

무섭지 않아 _ 이웃집 토토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0. 감독의 수많은 명작 중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심지어 이 영화를 인생 영화로 꼽으시는 분들도 적지 않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이웃집 토토로 :: となりの トトロ』입니다. # 1.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을 안정적인 소재, 뛰어난 완성도의 작품입니다. 만, 의외로 "무슨 이야기의 영화야?" 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음... 아빠랑 딸 둘이 시골집에 이사 가서... '토토로'라는 다람쥔지 뭔지 모를 푹신한 애를 만나는 데... 아니, 엄마 있어, 근데 아파서 병원에 있지. 어쨌든, 음... 나중에 고양이 모양 버스도 나오고... 아니, 그냥 니가 직접 봐! 진짜 재밌어!" 라는 식으로 얼버무려 본 분들 제법 있으실 테죠. 생각해 보면 당연합니다. 사실상 ..

Film/Animation 2021.04.15

안경을 흘러내리는 그림자 _ 할아버지 할머니의 봄, 박재인 감독

# 0. 살찐 고양이입니다. 녀석, 선풍기에 발이라도 넣었던 듯 붕대가 메여 있네요. 초여름의 기분 좋은 족욕입니다. 쓰다듬 듯 커튼을 흔드는 바람입니다. 빵 종이의 바스락 거림입니다. 화분을 어루만지는 햇살입니다. 녹아내려 달그락 흔들리는 설탕입니다. 안경을 흘러내리는 그림자입니다. '박재인' 감독, 『할아버지 할머니의 봄 :: Our Spring』입니다. # 1. 문득 올려다보는 가을의 높은 하늘입니다. 책장에서 삐져나오는 낙엽입니다. 소담하게 나누는 차 한잔입니다. 겨울의 바게트와 수프. 오늘의 저녁거리는 고구마 대신 단호박입니다. 매일같이 산책하던 길에 걸터앉아 즐기는 가을의 낙엽. 한점 한점 나눠 먹는 샤부샤부. 눈사람의 코가 되어버린 당근입니다. 남겨진 발자국입니다. 신중하게 고르는 수박. 조..

Film/Animation 2021.04.13

일생 ⅱ _ 붉은 거북, 미카엘 뒤독 더 빗 감독

이전글 : 일생 ⅰ _ 붉은 거북, 미카엘 뒤독 더 빗 감독 # 0. 고요하면서 웅장합니다. 섬세하면서 장엄합니다. 간결하면서 화려하고, 차분하면서 격렬합니다. 명료하지만 동시에 대단히 치밀하고, 단순하지만 더없이 디테일하기도 합니다. 누구도 아무 morgosound.tistory.com # 14. 첫 번째, 두 번째 장까지의 영화 전반부는 문학적 - 미학적인 파트였다 한다면, 지금부터의 후반부는 상대적으로 직설적이며 서사적입니다. 심미적인 시퀀스의 퀄리티와는 별개로, 전반부와 같은 구성이 영화 끝까지 계속 이어졌다면 제법 피곤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관객 경험을 고려한 영리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군요. 세 번째 장은 입니다. 부부 사이에 아이가 태어납니다. 아이는 섬에서 태어난 최초의 인간, 외로움의 ..

Film/Animation 2021.01.22

일생 ⅰ _ 붉은 거북, 미카엘 뒤독 더 빗 감독

# 0. 고요하면서 웅장합니다. 섬세하면서 장엄합니다. 간결하면서 화려하고, 차분하면서 격렬합니다. 명료하지만 동시에 대단히 치밀하고, 단순하지만 더없이 디테일하기도 합니다. 누구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편안한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함의는 깊을 사색을 필연적으로 요구합니다. '미카엘 뒤독 더 빗' 감독, 『붉은 거북 :: La tortue rouge』입니다. # 1. 언어는 논리입니다. 체계입니다. 계산적일 수밖에 없으며, 정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 아무리 창의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약속된 어휘가 허락한 사고의 틀을 벗어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화에 음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는 것 ..

Film/Animation 2021.01.20

'거의' 완벽한 단편 _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윌 맥코맥 감독

# 0. "굉장히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영화인데... 다들 아실 거라 믿어요... 너무 크~은 단점을 갖고 있어요. 그 큰~ 단점이 장점들을 다 먹어요(?)" '윌 맥코맥', '마이클 고비어' 감독,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 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입니다. # 1. 거의 완벽한 단편입니다. 감수성을 자극하는 펜선의 질감이 인상적입니다. 화풍은 특별히 과장되지도 특별히 빈곤하지도 않아 정서와 서사에 편안하게 안착하도록 돕습니다. 물리적인 움직임과 이면에 담긴 심정을 표현한 그림자가 분리되지 않고 한데 어우러지는 연출은 능숙합니다. 현실의 공간과, 기억 속 공간과, 심리적 공간을 문학적으로 넘나들고 교차하고 어우러지는 모습이 유려합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분노와 스..

Film/Animation 2020.11.27

아이 착해 _ 클라우스, 세르지오 파블로스 감독

# 0. 매년 한두 편씩은 꼬박꼬박 나오는 겨울겨울 한 분위기의 편안편안하고 선량선량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철딱서니 없는 금수저 '제스퍼'의 개과천선이라는 개인 서사에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신화적 서사를 적절히 엮어낸 순진무구한 동화죠. 안정적인 이야기와 편안한 전개, 귀엽고 아기자기한 캐릭터들과 선량한 주제의식. 네 축의 든든한 기반 위에 펼쳐지는 풍부한 영상 구성과 장엄하면서도 섬세한 음악을 즐기는. 전형적인 디즈니식 성공 모델을 차용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세르지오 파블로스' 감독, 『클라우스 :: La leyenda de Klaus』입니다. # 1. 장난감 만드는 목수의 이름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 익숙합니다. 의심을 확신으로 키우는 풍성한 흰 수염의 배불뚝이 외모. 주인공이 드나드는 굴뚝과, 뒤에..

Film/Animation 2020.11.14

소품집 _ 톰과 제리 헐리우드 가다!!!, 윌리엄 해나 / 조셉 바베라 감독

# 0. 2018년 개봉한 『톰과 제리』 시리즈의 극장판입니다. 극. 장. 판... 네, 기대감이 바닥을 뚫고 내려갈 법하죠. 애니메이션 시리즈 극장판이라 하면 보통 주인공 캐릭터들만 뚝 떼서 가져 올뿐 본작의 매력이나 작법, 설정을 개무시한 채 지 마음대로 만든 영화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톰과 제리』가 뛰어다니는 동안 당연히 나와야 할 찰진 음악은 온 데 간데없고 그 빈자리를 쥐와 고양이가 되지도 않은 목소리로 치는 대사가 메우고 자빠져 있는 걸 보면 작품과 하등 상관없는 관객마저 모욕을 당하고 있는 기분이 들게 됩니다. 만, 극장판에 대한 걱정은 MGM 로고 속 사자가 해치웠으니 안심하라구! '윌리엄 해나', '조셉 바베라' 감독, 『톰과 제리, 헐리우드 가다!!! :: TOM AND JERRY』..

Film/Animation 2020.09.08

방트키 _ 라바 아일랜드 무비, 안병욱 감독

# 0. 국산 애니메이션 의 스핀오프 시리즈 의 극장판입니다만... '안병욱' 감독, 『라바 아일랜드 무비 :: The Larva Island Movie』입니다. # 1. 말로만 극장판이지 사실상 본편 에피소드들의 요약 편집본에 가깝습니다. 이미 를 보신 분이라면 충분히 지루할 수 있을 정도라 굳이 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좋다 말씀드릴 수 있을 정도죠. 물론 어차피 정주행 하신 분들이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궁금해서라도 보실 테지만요. 주요 내용 대부분은 본편에서 통으로 가져오긴 합니다만, 그래도 말미에 아일랜드 이후 레드와 옐로우가 어디 정착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 정도가 조금의 위안은 될 수 있겠네요. 아무래도 망망대해 한가운데 놓인 외딴섬이라 오리지널 시리즈 특유의 어두침침하고 꿉꿉하고 지..

Film/Animation 2020.07.31

어... 모르겠다 _ 사이좋게, 차지훈 감독

# 0. 포스터는 피에타Pietà 의 패러디로 보입니다. 흔히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하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끌어안고 슬피 우는 성모의 모습을 묘사한 기독교 예술의 테마 중 하나죠. 그런데... 피에타가 이 단편이랑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죠? '차지훈' 감독, 『사이좋게 :: Be nice to each other』입니다. # 1. 실사 영화에서는 '우연'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촬영하는 순간 감독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새가 한 마리 날아갈 수 있죠. 스탭이 가져온 소품 연필이 감독의 의도와 무관하게 우연히 특정한 색깔일 수도 있구요. 경제적인 문제로 공간 섭외나 연출에 있어 대안이 없었을 수도 있고, 배역에 몰입한 배우가 내지른 즉흥적인 애드리브가 유야무야 영화에 쓰이기도 ..

Film/Animation 2020.07.29

너무 단순한 은유는 직설만 못하다 _ 그림자 도둑, 김희예 감독

# 0. 너무 단순한 은유는 직설만 못하다 라는 제가 방금 대충 만든 명제의 훌륭한 예라 할 법합니다. '김희예' 감독, 『그림자 도둑 :: Shadow Thief』입니다. # 1. '화창한 날씨, 화려한 마천루' 아래 행복한 '인형'이 등장하는 'TV 채용 광고'와, 그걸 보고 있는 어두컴컴하고 삭막한 '지하철' 속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비슷한 외모, 비슷한 스타일'의 사람들은 외향과 대조되는 각기 다른 모양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옮겨지죠. 면접장에서 주인공은 열심히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채용은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자의 모양에 의해 결정되게 됩니다. '규격화된 모양'에 맞춰 그림자를 억지로 '늘리고 조으고' 묶는 동안 주인공은 자신의 '한계'와 '..

Film/Animation 2020.07.13

허무한 이미지, 건조한 메시지 _ 9 : 나인, 셰인 액커 감독

# 0. 멋들어진 시각적, 철학적 이미지 몇 개만으로 80분짜리 장편 영화를 비벼보려 합니다만 에이...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있나요. '셰인 액커' 감독, 『9 : 나인』입니다. # 1. 감독이 뭘 하고 싶었던 건지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1. 심미적 디자인의 봉제인형 몇 개가 고군분투하는 코즈믹 호러 풍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 위로, 2. 거대 기계를 상대로 다양한 직업군의 파티가 레이드를 뛰는 액션 어드벤처를 장르적 동력으로 삼아, 3. 각 캐릭터에 투영된 인간 본연의 철학적 가치들의 본질과 소중함을 역설하겠다. 는, 뭐 고런 영화죠. # 2. 문제는 이게 전부라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3개의 중심축을 엮어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하는 데 실패합니다. 상징은 상징에 머물러..

Film/Animation 2020.07.03

크리스마스는 누구였을까 _ 팀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헨리 셀릭 감독

# 0. 왜 영화를 이렇게 보는 걸까요. 모르긴 몰라도 영화를 해괴망측하게 제멋대로 보는 것만큼은 우주 최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에서도, 『잭은 무슨 짓을 했는가』에서도 그러더니만 이번에도 영 이상하게 보이는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전 이 영화를 팀 버튼의 인사이드 아웃으로 읽었습니다. '헨리 셀릭' 감독,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 Tim Burton's The Nightmare Before Christmas』입니다. # 1. 팀 버튼이 직접 디렉팅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의 드로잉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답게 특유의 기괴하면서도 사랑스러운 표현이 가득합니다. 고어 표현과 강한 대조를 이루는 순수성, 순수성보다 더 깊은 곳에서 흐르는 서정성이 인상적입니다. 편안한 이야기 구..

Film/Animation 2020.06.24

Σ(゚Д゚;) _ (OO), 오서로 감독

# 0. ┌──────┓ │ (OO) ≈≈ │ └──────┛ Σ(゚Д゚;) Σ(゚Д゚;) Σ(゚Д゚;) Σ(゚Д゚;) '오서로' 감독, 『(OO)』입니다. # 1. 말초적 감각 하나조차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언어'에게 보내는 '애니메이션'의 조롱입니다.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콧가를 수차례 매만지게 만드는 온갖 느낌들과 그 순간 마다마다의 개인적인 기억들이 주마등이 되어 미친 듯한 템포로 관객 머릿속을 내달립니다. 강렬하면서 동시에 치밀히 배합된 색감과, 오브젝트들의 드라마틱한 움직임, 상태에 따라 섬세하게 구분된 표현의 질감과 음향의 활용이 컷마다의 고유한 감각과 대단한 밀착감으로 구현됩니다. 절대적 감각과, 상대적 느낌과, 주관적 기분을 쉴 새 없이 넘나 듭니다. 눈 깜짝..

Film/Animation 2020.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