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Drama

어둠의 되먹임 _ 스티브, 팀 밀란츠 감독

그냥_ 2026. 1. 10. 06:30
반응형

 

 

# 0.

 

어둠을 우악스럽게 격리하며 악을 되먹임 하는

 

 

 

 

 

 

 

 

팀 밀란츠 감독,

『스티브 :: Steve』입니다.

 

 

 

 

 

# 1.

 

1996년 문제아 학교 스탠튼 우드의 아이들과 교장 스티브다. 아이들은 흔들리는 앵글이 보증하는 것처럼 충동적이고 폭력적이다. 오만하면서 자기혐오적이고, 돌발적이면서 게으른 터라 교직원들은 내내 피로감에 시달린다. 다만 마지막 스티브가 담담히 말하듯 그런 아이들조차 손쉽게 격리될 만큼 단순한 존재가 아니고, 돌멩이를 창문에 던진 샤이와 성실히 동행한 관객은 마침내 그것을 안다. 소년들의 개성은 상이하지만 행위의 목적만큼은 공통된다. 부정하거나 회피하거나 분리하거나 표출함으로써 끊임없이 자신의 어둠을 처리하려는 것이고, 그렇기에 그들의 충동은 사실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과 다름 아니다. 즉, 팀 밀란츠의 영화는 자신의 어둠을 우악스럽게 격리하며 악을 되먹임 하는 개인과, 어둠이 된 개인을 우악스럽게 격리하며 악을 되먹임 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킬리안 머피의 스티브는 소년들을 위한 마지막 보루로, 스탠튼 우드를 설립하고 지탱해 온 인물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성인과 같은 인내심을 보이며 폭설과 욕설이 난무하는 현장을 대화와 유머로 해결하려 애쓴다. 다만 헌신 이면에 자기 파괴적 본성이 숨어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회피적인 그의 기저에는 과거 자동차 사고로 아이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숨어있다. 트라우마는 그를 강력한 진통제와 알코올에 의존하게 만들었고, 결국 약물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마비시킨 채 살아가게 한다. 감독은 스티브가 약해지는 순간과 학생들을 보살피는 모습을 교차해 그가 아이들을 돕는 행위란 결국 자신의 어둠을 속죄하려는 몸부림임을 암시한다. 스티브의 불안은 녹음기로 상징된다.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녹음기는 점점 강박적이고 피학적인 자기 위안의 수단으로 전락하며 스티브의 내면을 투사하고 있다.

 

제이 라이쿠르고의 샤이는 스티브의 젊은 시절, 혹은 그가 구원하지 못한 과거를 투영하는 인물이다. 당장 첫 등장에서 샤이가 스티브의 차 보닛 위에 눕는 건 그가 선생의 트라우마와 밀접하게 관련된 인물이라는 암시다. 어머니의 절연 통보는 사회적 유대감의 소멸로서 그가 세상을 차단하고 음악에 갇혀 완전히 고립되게 만드는 데, 이는 트라우마로 인해 윤리가 소멸된 스티브가 세상을 차단하고 스탠튼 우드에 갇혀 고립된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샤이의 고립감은 헤드폰으로 상징된다. 외부의 소음을 차단함으로써 자신의 세계에 침잠하고 있음을 은유하는 장치로, 끊임없이 자신을 질책하는 스티브의 녹음기와 강하게 대비된다. 자살을 시도한 샤이가 연못에서 걸어 나와 학교에 돌을 던질 때, 스티브는 제압하거나 질책하는 대신 온몸으로 소년을 안는다. 자신의 상처와 아이의 고통을 맞대어 직시하는 치유의 순간이다.

 

 

 

 

 

 

# 2.

 

내내 치고받고 싸우던 소년들이 포옹에 동참하는 결말은 짐짓 아름답지만, 그러함에도 공동체가 가진 최소한의 선의에 불과하다. 여전히 학교는 폐쇄될 것이고, 스티브의 중독은 끝나지 않으며, 샤이는 부모와 절연한 상태다. 영화엔 특별히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현명한 사람도 아둔한 사람도 없다. 어느 누구도 내면의 어둠에 면역되지 않기에 어른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해법은 없다. 전작에서도 그러하듯. 팀 밀란츠는 더러워진 몰골과 충혈된 눈빛의 킬리안 머피를 빌려 담담히 고백할 따름이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 함께 살아가기를 결정했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스티브와 아이들 뿐 아니라 각자의 어둠을 지고 사는 사람들은 물론, 사회 그 자체로까지 두텁게 확장된다.

 

소년들이 내면의 어둠을 폭력으로 격리하는 방식과, 사회가 내부의 어둠을 카메라와 정책의 폭력으로 격리하는 현실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유로 96의 열기에 온 나라가 들떠있지만 스탠튼 우드의 소년들은 그 열기에서 철저히 소외된다. 정부의 사회 서비스 축소로 인해 학교는 재정 지원 중단에 의한 폐쇄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는 교육 현장을 정치 논리로만 접근하는 의원의 가식적인 태도를 통해 날카롭게 표출된다. 문제아들을 교육이란 이름으로 격리하면서도 정작 그들에게 필요한 자원은 삭감하는 국가의 모순이다. 촬영 팀의 '너를 세 단어로 설명해라' 같은 무례한 질문은 주류 사회가 빈곤과 범죄라는 어둠을 얼마나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형태로만 소비하고 있는가 폭로한다. 개인에서 학교로 사회로 확장된 담론은 마침내 시대를 넘는다. 1996년과 별반 다르지 않은 2025년. 여전히 교육 현장은 정치 논리에 휘둘리고 있고 트라우마를 가진 이들은 처벌과 격리로 치부될 따름이다.

 

 

 

 

 

 

# 3.

 

전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침묵을 통해 연설하는 영화라면, 차기작은 소란스러운 연설 안에 숨은 침묵을 지목하는 영화라는 면에서 상반된다. 그럼에도 거대한 사회적 담론은 개인의 차원으로 끌어내리되 그것을 영웅적인 것으로 격상시키는 대신 사소한 개인의 고뇌가 충분히 치열하고 고단함을 지목한다는 면에서 연작이라 이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촬영 감독 로브레히트 헤이바르트의 카메라 워킹은 작품의 정체성이다. 전반부를 지배하는 핸드헬드는 거친 싸움과 스티브의 부단한 움직임을 집요하게 추궁하며, 금세 스탠튼 우드 한복판에 있는 듯한 어지러움을 유발한다. 다큐멘터리 팀의 카메라는 90년대 특유의 낮은 해상도와 노이즈 섞인 VHS 질감으로 묘사되어 작품의 주된 영상미와 충돌, 강한 이질감을 형성하고 있다. 외부자가 소년들을 구경거리로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임과 동시에, 인물들의 내면을 보다 객관적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효과다.

 

클라이맥스에서 선보이는 고속 드론 시퀀스는 다소 실험적이다. 죽음을 충동한 샤이가 겪는 불안과 해방감이 뒤엉킨 감정의 소용돌이를 극단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겠으나, 지나치게 급작스런 기교가 리얼리즘으로 끌고 나가는 작품에서 동떨어진다는 것 또한 쉬이 부정하기는 어렵다.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Netflix, Tving, WatchaPlay, CoupangPlay, Appletv,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 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