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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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개봉 109

그렇게 어른이 된다 _ 보이, 호르헤 M. 폰타나 감독

# 0. 그날 이후, 내가 알던 모든 것이 달라졌다        호르헤 M. 폰타나 감독,『보이 :: Boi』입니다.     # 1. 이름은 보이. 마지막 스펠링은 i다. 짓궂은 농담에 익숙하다는 듯 y가 아니라 답하지만 사실 그렇기에 y다. 누가 보더라도 보이가 아니라면 질문받을 일도 답할 필요도 없다. 영화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다시피 거대한 분기를 눈앞에 둔 소년의 성장 영화다. 전반부는 인물의 미숙함과 미숙한 존재가 느낄 당혹스러움을 다방면에서 묘사하고 있고, 후반부는 방황하던 소년이 몇몇의 타협과 결심 끝에 자신의 자아를 조금씩 되찾아가는 과정으로 귀결된다. 생소한 스페인 영화는 다각도에 걸친 메타포를 과격한 내러티브에 얹어 불친절하게 묘사하지만, 로네츠의 명곡을 번안한 를 비롯한 ost, 고..

대도시의 고고학 _ 머더리스 브루클린, 에드워드 노튼 감독

# 0. 이야기가 이미지와 뉘앙스를 떠받치지 못한다.        에드워드 노튼 감독,『머더리스 브루클린 :: Motherless Brooklyn』입니다.     # 1. 지금의 뉴욕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 시작을 탐구하려는 영화의 시선은 거침없는 제목처럼 서늘하다. 에드워드 노튼의 1950년 맨해튼은 대립하는 양면성과 그로 인한 고독감으로 요약된다. 풍요와 빈곤이 대립하고, 개발과 파괴가 충돌하는 뉴욕. 사랑과 죽음이 공존하고, 신용과 배신이 교차하는 브루클린. 낮은 자본과 다투고 밤은 낭만에 물드는 도시와, 이를 배회하는 외로운 개인들의 시대라고 말이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내외면이 유리된 모두는 영화 내내 고독하다. 이들은 빠짐없이 뉴욕을 모자이크 하는 조각이라는 면에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빚지지 않는 편안함 _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

# 0. 수중엔 100만 원밖에 없다. 이병헌 감독,『극한직업 :: Extreme Job』입니다. # 1. 부모님께 150만 원짜리 안마의자를 선물하려 하는 데 수중엔 100만 원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단순하게는 부업을 하면 된다. 힘들고 피곤하겠지만 정직하게 50만 원어치 더 일해서 소득을 늘릴 수만 있다면야 뭐, 이상적이다. 아니면 부모님께 50만 원을 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당신을 위한 선물이니 말이다. 양해를 구할 염치가 필요하긴 하겠지만, 나중에 150만 원짜리 안마의자를 돌려드리면 기뻐하실 게 분명하다. 상황을 조금 바꿔보자. 이번엔 영화감독이다. 당신의 시나리오 초안엔 100만큼의 재미가 담겨있지만 관객에게 150만큼의 재미를 선사하려 한다. 어떻게 하..

Film/Comedy 2024.11.24

악마의 저주 _ 레디 오어 낫, 맷 베티넬리-올핀 / 타일러 질레트 감독

# 0. 익숙한 통속극을 경쾌한 슬래셔 코미디로 전환하는 능숙한 솜씨        맷 베티넬리-올핀 / 타일러 질레트 감독,『레디 오어 낫 :: Ready or Not』입니다.     # 1. 르 도마스 일가는 엘리트 가문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스테레오 타입의 불안과 불만을 대변한다. 각각의 스트레스는 서로에 대한 미움으로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파국 속에서도 그레이스에 의해 살해된 사람이 없는 이유다. 그레이스의 엘리펀트건이 발사되지 않는 장면은 클리셰를 비트는 장르적 장치임과 동시에, 가족의 파멸과 그녀가 무관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비밀스러운 르 베일에 의한 것도 아니다. 토니는 전통과 계약이 중요한 듯 말하지만 필요하다면 cctv를 켜고, 규칙 밖의 피고용인을 동원하는 데, 모두 자신들을 ..

Film/Horror 2024.11.20

낙원의 비명 _ 그날, 패러다이스, 드레아 쿠퍼 / 재커리 카네파리 감독

# 0. 검붉은 화마에 집어삼켜진 낙원의 비명        드레아 쿠퍼 / 재커리 카네파리 감독,『그날, 패러다이스 :: Fire in Paradise』입니다.     # 1. 2018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패러다이스(Paradise)에서 벌어진 대규모 산불재해의 기록이다. 이른 아침의 산불은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큰 산불 중 하나로 꼽힌다. 늦가을의 건조한 기후와 강풍에 맞물려 빠르게 번져나간 불길은 당국의 통제를 벗어나 삽시간에 도시를 전소시켰고, 수많은 사람들이 대피하는 가운데 상당 숫자의 인명 피해를 야기했다.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화마의 이름이 캠프파이어라는 아이러니와, 참극이 벌어진 도시의 이름이 패러다이스라는 아이러니는 무자비한 자연 앞에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

Documentary/Social 2024.10.30

시그니처 아웃렛의 속셈 _ 데드 돈 다이, 짐 자무쉬 감독

# 0. 아 씨발, XXX 죽이고 싶네.        짐 자무쉬 감독,『데드 돈 다이 ::The Dead Don't Die』입니다.     # 1. 자필 서명을 뜻하던 시그니처(Signature)는 '개인이나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변별하게 하는 모든 것'으로 점차 그 의미가 확장되는 듯하다. 고급 의류 브랜드의 대표 라인업이나 디자인에 엄격한 몇몇의 공산품은 물론, 파인 다이닝의 시그니처 메뉴, 스포츠 스타의 시그니처 무브, 셀러비리티의 시그니처 픽 등은 좋은 예다. 유사한 의미에서 영화에도 수많은 시그니처가 존재한다. 멀리는 채플린의 콧수염과 버스터 키튼의 무표정부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웨스턴, 히치콕의 돌리 줌, 브루스 윌리스의 존 맥클레인, 웨스 앤더슨의 스타일과 에드가 라이트의 편집에 이르기까지 ..

Film/Comedy 2024.10.10

Papa, just killed a man _ 라이트하우스, 로버트 에거스 감독

# 0. 아빠. 방금 사람을 죽였어요.        로버트 에거스 감독,『라이트하우스 :: The Lighthouse』입니다.     # 1. 데뷔작 (2015) 보다 더 난감한 상징과 피학적 연출로 돌아온 호러다. 특유의 절망적인 각본과 음습한 묘사는 여전하다. 습기 가득한 공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캐릭터, 인물을 포획하는 화면, 신화적 모티브를 재구성한 스타일, 타협 없이 투철한 형식미는 지독하다. 두 주인공을 극단적 공간에 붙들어 매는 중력과 그 반동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원 없이 뿜어내는 배우의 열연, 최대치의 비장미를 더하는 흑백의 미술은 다소의 호불호와 별개로 이견이 없을 강점이다. 호러로 소개하긴 했지만 관객을 직접 자극하는 류는 아니다. 두 주인공, 특히 젊은 등대지기 에프라임 윈슬로(로버..

Film/Horror 2024.09.20

뮤-비 _ 스터질 심프슨의 사운드 & 퓨어리, 마이클 아리아스 감독 외

# 0. 가끔은 이런 류도 나쁘지 않지.        마이클 아리아스 감독 외,『스터질 심프슨의 사운드 & 퓨어리』입니다.     # 1. 스터질 심프슨(Sturgill Simpson)은 미국 켄터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할 수도 있지만 21세기 미국 컨트리 음악을 선도하는 뮤지션으로 평가되는 나름 월클이(라고 한)다.  2013년 데뷔 앨범 을 통해 세상에 등장한 후 두 번째 앨범 을 통해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입지를 넓혔다. 연이어 2016년에 발표된 세 번째 앨범 는 그레이 어워드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오른다. 과거 해군 시절 경험과 아버지와의 삶을 녹여낸 것으로 알려진 앨범은, 직전의 두 번째 앨범과 더불어 뮤지션의 최고작으로 평가된다. 아마도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

Film/Animation 2024.08.16

상상하는 것 _ 번개가 떨어졌다, 김지홍 감독

# 0. 영화란 나의 불완전함을 치열하게 상상하는 것이다.        김지홍 감독,『번개가 떨어졌다 :: Lightning Fell』입니다.     # 1. 번개에 맞아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깨어난 남자가 역할 대행 서비스를 신청한다는 내용의 영화는, 불행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 이면에 영화에 대한 영화로 보인다. 실제 영화 속에 담긴 장면들은 남자가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여자와 함께 연기하는 순간들로 점철된다. 캐스팅과 디렉팅과 리허설과 본 촬영이 축약된 모습은 미니멀리즘적인 마이크로 시네마다. 영화 속에 실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배우 최기욱은 번개 맞은 남자를 연기할 뿐 남자가 아니다. 고등학생을 연기하는 남자는 고등학생이 아니다. 그가 기억하는 누나와의 기억이 정확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후반부..

Film/Drama 2024.08.04

신세계 _ 사운드 오브 메탈, 다리우스 마더 감독

# 0. 적외선을 보지 못해 불행한 사람은 없다. 다리우스 마더 감독,『사운드 오브 메탈 :: Sound of Metal』입니다. # 1. 여자친구와 투어 중인 드러머 루빈(리즈 아메드)은 어느 날 거짓말처럼 청력을 잃는다. 드럼 사운드도, 연인 루(올리비아 쿡)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 그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비보를 전달받은 밴드의 후원인은 청각장애인 커뮤니티 운영자 조(폴 레이시)를 소개한다. 조의 공동체는 재활시설이라기보다는 장애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공간에 가깝지만, 루빈의 눈에 비친 그곳은 원형으로 둘러앉은 마약중독자 모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정한 조는 루빈에게 커뮤니티에서의 생활을 제안하는 대신 루를 포함한 이전 세계와의 단절을 요구한다. 두 사람은 크게 고민하지..

Film/Drama 2024.06.18

인생의 대관람차 _ 내가 그리웠니, 이경원 감독

# 0. 그립다 그리워 그립다 그리워        이경원 감독,『내가 그리웠니 :: AKA 5JO』입니다.     # 1. 독립 영화에 출연한 신인 배우가 갑자기 뜰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소년 가장이 가족을 건사하듯 라이징 스타의 명성에 이끌려 초기 작품들이 건져 올려지곤 한다. 2019년에 개봉한 단편 는 SNL의 주기자로 사랑받은 배우 주현영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이경원 감독, 조정민, 주현영 주연의 영화는 옴니버스 장편 의 수록작 중 하나다. 은퇴한 랩 스타 오조와 그의 오랜 팬 현영이 우연히 대관람차 같은 칸에 탄다. 처음엔 머쓱하니 불편해하던 오조는 현영의 호의에 서서히 마음을 열며, 음악을 관둘 수밖에 없었던 아픈 과거를 털어놓는다. 불행한 유년기로부터 도피하듯 선택한 랩 스타라는 정체성에..

Film/Drama 2024.05.08

Sunburn _ 미드 90, 조나 힐 감독

# 0. 스케이트 보드를 왜 타는 거냐는 물음에 답하며 조나 힐 감독, 『미드 90 :: mid90s』입니다. # 1. 스케이트보딩을 다룬 영화들은 보드의 미학을 작품 안에 끌고 들어와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존재하는 듯하다. 래리 클락의 , 구스 반 산트의 , 크리스털 모젤의 과 같은 영화들이 그러하듯 말이다. 영화에서 주로 활용되는 보드는 상당히 모순적인 활동이다. 무모하면서 무기력하다. 자유로우면서 구속적이다. 개인적이면서 계급적이고, 낭비적이면서 가난하다. 투쟁적이면서 도피적이고, 공격적이면서 비굴하며, 강인한 척하지만 나약하고, 물리적이지만 정신적이다. 화려한 트릭이 무색하게 내내 같은 공간을 맴돈다. 앞으로 나가는 듯 보이지만 정확히는 멈춤에 저항하는 것에 가깝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친 ..

Film/Drama 2024.04.12

에펠탑의 뒤편 _ 오 머시!, 아르노 데플레솅 감독

# 0. 어두운 밤 보다 더 어두운 에펠탑의 뒤편 아르노 데플레솅 감독, 『오 머시! :: Oh Mercy!』입니다. # 1. 통상 영화 속 사건과 인물은 창작된 것이라며 도망갈 길을 열어두기 마련인데요. 되려 등장하는 모든 사건은 소소한 것이든 큰 비극이든 실화라 강조하며 시작됩니다. 실존하는 문제를 강하게 지적하는 고발성 작품이라는 것이죠. 배경인 프랑스 루베(Roubaix)는 감독 데플리솅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강한 비판 아래로 자전적이고 온화한 시선이 함께 느껴지는 독특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밥 딜런의 앨범(Oh Mercy(1989))으로부터 끌고 들어온 듯한 영화의 제목은, 도시의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숙연한 기도로서 감독의 지향을 엿보게 하죠. 오프닝의 선언처럼 전반..

Film/Drama 2024.03.10

결혼 바이럴 _ 조립, 신택수 감독

# 0. 여름밤, 부부는 완수해야 할 과제가 있다. (2019년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신택수 감독, 『조립 :: assembly』입니다. # 1. 감독은 평범한 사람들의 결혼 생활이라는 것을 크게 세 가지 감정으로 규정합니다. 비좁다. 피로하다. 그럼에도 사랑한다. # 2. 창백한 도시는 피로감을 상징합니다. 멀찌감치 지나는 지하철을 내려다보는 구도로 담아 그들의 삶을 작고 소소한 것으로 연출합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트인 공간을 걷는 장면은 의식적으로 생략됩니다. 곧장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에 인물을 집어넣고 그마저도 구석에 몰아 고립시킵니다. 인물을 거울에 반사시켜 안 그래도 좁은 공간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킵니다. 지쳐 고개를 숙이는 순간 거울 너머 함께 고..

Film/Romance 2023.12.14

호수 위의 소년 _ 어웨이,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

# 0. 내 안의 용기와 마주하는 그곳,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 『어웨이 :: Away』입니다. # 1. 기본적으로는 비행기 사고로 인해 불시착한 소년이 미지의 섬에서 맞닥뜨린 거인을 피해 지도 끝에 위치한 마을에 도달하는 어드밴처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할 겁니다. 이 관점에서는 보이는 것은 보이는 그대로, 들리는 것은 들리는 그대로 솔직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황량한 모래사장에 불시착한 사람의 불안과, 정체 모를 거인을 마주하는 순간의 공포와, 포근하고 평화로운 오아시스에서의 안도감을 만끽하면 좋습니다. 작고 사랑스러운 노란 새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바이크의 시동을 걸고 출발할 때의 용기와, 높고 위태로운 다리를 건너는 순간의 긴장과, 거슬러 올라오는..

Film/Animation 2023.12.02

독의 도미노 _ 뱀에 물린 자들, 안토니 예롄 감독

# 0. 유혹에 못 이겨 무너져 내리는 윤리의 도미노 안토니 예롄 감독, 『뱀에 물린 자들 :: Inherit the Viper』입니다. # 1. 84분짜리 짤막한 인디 영화입니다. 우연히 생긴 자투리 시간을 태울 겸 포스터가 느낌 있길래 골랐죠. 대충 검색을 해 봤는데요. 리뷰는커녕 그 흔한 한줄평조차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아무리 소소하다지만 블로그를 굴리는 입장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영화를 굳이 글로 옮긴다는 건 바보짓임에 분명한데요. 그럼에도 남들 가는 길 똑같이 가면 왠지 지는 것만 같은 홍대병자들에게 요런 영화들이란 마치 뱀에 물린 것만 같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이런 류의 마이너 한 외화들이 수입되는 경우 제목이 제대로 번역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솔직히 미련합니다. 그냥 그러려니..

내가 너의 장례식에 갈게 _ 테스와 보낸 여름, 스티븐 바우터루드 감독

# 0. 인생의 모든 순간에서 함께 자라고 함께 추억하는 우리 스티븐 바우터루드 감독, 『테스와 보낸 여름 :: Mijn bijzonder rare week met Tess』입니다. # 1. 가족 여행을 온 '샘'이 휴가지에서 만난 '테스'와 보낸 1주일입니다. 평화롭고 귀엽고 안전한 가족 영화 혹은 어린이 영화라 소개해도 무리는 없을 작품이죠. 영화는 어디로 튈지 모를 아이들의 하루가 다른 성장기이자, 사랑하는 사람들과 추억을 쌓아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성장기이며, 이들의 휴가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반추하게 될 우리들의 성장기입니다. 아이들은 유치하지만 심오하고, 섬세하지만 거침이 없습니다. 전반부의 모호한 전개는 그 자체로 아이들의 세계를 은유합니다. 감독은 샘과 테스를 묘사함에 있어 각기 다른 방법론..

Film/Drama 2023.10.20

세 번의 외출 _ 37초, 히카리 감독

# 0. 네온사인 어지러운 밤. 바람이 시원한 바다. 초록이 숨 쉬는 태국. 세 번의 외출 끝에 처음으로 돌아온 진정한 나의 집. 히카리 감독, 『37초 :: 37 セカンズ』입니다. # 1. 성장 영화입니다. 미숙하던 주인공이 서너 가지의 안전한 해프닝을 겪은 후 내면의 성장에 도달하고, 겸사겸사 주변인들도 함께 성장한다는 류의 전형적인 일본식 성장 영화죠. 뇌성마비 후유증이 있는 장애인을 주인공 삼았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을 테구요, 장애인의 성적 자각이 성장의 모멘텀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 역시 주요한 특징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글의 제목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서사는 크게 '세 번의 외출'로 요약할 수 있는 데요. 본격적인 외출을 이야기하기 앞서 출발점으로서의 집에 대해 짚고 가..

Film/Drama 2023.10.16

개 같은 날의 저녁 _ 좋은 말, 이용수 감독

# 0. 남의 돈 벌어먹기 힘들어요.        이용수 감독,『좋은, 말 :: Advice』입니다.     # 1. 악의 없는 무례를 견뎌야 하는 사회인의 스트레스를 담백하다면 담백하게, 코믹하다면 코믹하게 그려낸 단편입니다. 하나하나는 사소하지만 쌓이면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이라는 건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너무나 잘 알고 계시겠죠. 그럴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러지 않으려 서로 양보하고 지나가는 사회적 에티켓들이 의뭉스럽게 삐져나와 선을 넘는 순간들. 저 연놈(...)이 일부러 저러는 거라는 걸 뻔히 알고 있어 잔뜩 긁히긴 긁히는 데, 그걸 굳이 입에 올려 탓하는 순간 나만 쪼잔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마냥 티 낼 수 없는 간질간질한 순간들을 흥미롭게 묘사합니다. 일처리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

Film/Comedy 2023.10.12

다시 만나는 자연 _ 다이에나 케네디, 엘리자베스 캐롤 감독

# 0. 과카몰레(스페인어: Guacamole)는 멕시코 요리의 소스로, 으깬 아보카도에 다진 양파, 토마토, 고추, 라임즙 따위를 넣어 만든다. 콘칩과 유사한 '토토포(Totopo)'라고 하는 튀긴 토르티야 조각으로 퍼서 먹는다. '과카'는 멕시코에서 아보카도를 뜻하는 '아과카테(Aguacate)'에서 온 것이며, '몰레'는 멕시코 원주민 어로 '소스'를 뜻한다. 엘리자베스 캐롤 감독, 『다이애나 케네디 :: Nothing Fancy Diana Kennedy』입니다. # 1. 다이애나 케네디의 전기 다큐멘터리입니다. 멕시코 전통 요리 전문가이자, 다수의 저술 활동을 펼친 작가이기도 한 인물인데요. 독특하게도 태생은 이름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 영국인이죠. 1923년생으로 작품이 공개된 당시에도 이미 아..

비상한 야심 _ 만델라 이펙트, 데이빗 가이 레비 감독

# 0. Hello, IT, have you tried turning it off and on again? 데이빗 가이 레비 감독, 『만델라 이펙트 :: The Mandela Effect』입니다. # 1. 만델라 효과(Mandela effect)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실제 하지 않았던 거짓된 기억을 사실인 양 공유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넬슨 만델라가 80년대 즈음 감옥에서 죽었다 기억하는 것에서 유래하는 데요. 실제 만델라는 2013년에 타계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충 80년대 고생스러운 옥살이를 하다 건강 이상설이 나오기도 했으니까 적당히 죽었겠거니 하는 생각들이 반복적으로 유통되다 사실처럼 굳어진 것이라 추측하는 것이 정설이라 합니다. 만델라 효과의 사례는 그 외에도 제법 많..

Film/SF & Fantasy 2023.08.31

정체와 요행의 미스터리 _ 9명의 번역가, 레지 루앙사르 감독

# 0. 왜 문학이어야 했을까. 왜 번역이어야 했을까.        레지 루앙사르 감독, 『9명의 번역가 :: Les Traducteurs』입니다.     # 1. 장르와 소재의 연동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대부분의 설정은 걸맞은 권위를 부여받지 못합니다. 문학과 번역이라는 코드는 작품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왜 문학이어야 했는지, 왜 번역이어야 했는지에 대한 설득이 크게 부족합니다. 어떤 수학 난제가 있고 그걸 풀어낸 누군가가 있어 이를 검토하기 위해 전문가를 모아뒀다 가정해 봅시다. 사실 진짜 난제를 풀어낸 건 무명의 젊은 친구였고, 그가 스승의 복수를 위해 검토팀에 잠입했다 하더라도 이야기가 굴러가는 데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겁니다. 혹은 회사 병합을 하는 데 관련된 기밀이 있어 관계자들..

카타르시스 _ 조지타운, 크리스토프 왈츠 감독

# 0. 그리스어로 정화를 의미하며, 마음속에 쌓여 있던 불안, 우울 긴장, 등의 응어리진 감정이 풀리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이러한 정화작용을 비극에서 등장인물의 비극적인 상황이나 비참함을 보고 마음에 있던 응어리나 슬픔이 해소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쾌감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카타르시스는 비극에서 비참한 모습이 해소된 이후에만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로 이를 표현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을 수 있다. - 카타르시스 [κάθαρσις / Catharsis] - 크리스토프 왈츠 감독, 『조지타운 :: Georgetown』입니다. # 1. '그' 크리스토프 왈츠 맞습니다. 바스터즈에서의 한스 란다, 장고에서의 닥터 슐츠로 익숙하실 오스..

미스터리 체리피킹 _ 나이브스 아웃, 라이언 존슨 감독

# 0. 크리스마스엔 역시 살인이지 라이언 존슨 감독, 『나이브스 아웃 :: Knives Out』입니다. # 1. 영화를 검색하다 보면 '후더닛'이라는 키워드가 함께 뜨는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Who done it? 을 들리는 대로 옮겨놓은 건데요. 미스터리 사건 속 수수께끼를 풀어 진범을 찾아내는 플롯의 추리물의 별칭 정도로 이해하시면 무난합니다. 은 아주 오랜만에 나온 후더닛 무비, 그것도 어설픈 퓨전 따위를 곁들이지 않은 정통 후더닛의 특성을 정석적으로 따라가는 작품이죠. 무고한 것이 확실한 주인공과 그의 누명을 벗기고 진실을 밝혀내는 섹도시발 천재 탐정 vs 진범의 정체와 트릭이라는 형식을 빌린 작가 간의 흥미진진 머리싸움입니다. 상황과 공간을 폐쇄적으로 제한한 후 몇몇의 용의자를 특정해 이..

급발진 _ 중성화, 김홍기 감독

# 0. 굳이? 갑자기? 그렇게까지? 김홍기 감독, 『중성화 :: DESEX』입니다. # 1. 혜수는 남자 친구와 함께 고양이를 중성화시키러 왔다. 이김에 진절머리 나는 남자 친구와도 끝낼 생각이다. 우연히 담당 수의사가 남자 친구의 옛 애인이었다. 찝찝한 와중에 수술이 끝난 고양이가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2020년 제19회 미장센 단편영화제) # 2.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다시피 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확히는 [성욕]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죠. 스트레스를 표현하는 방식이 '죽이고 싶다'가 아니라 '중성화시켜버리고 싶다'라는 건 구체적 인물과의 갈등이라기보다 성욕 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혜수가 스트레스를 느끼는 성욕이란, 발정을 주체 못 하고 온갖 여자들에게 들이대는 상민..

Film/Comedy 2022.12.02

여름바다라는 풍경화 _ 여름바다에 뜨는 가벼운 것들, 조혜린 감독

# 0. 겨울바다 사진이 여름바다 그림 속으로 풍덩 조혜린 감독, 『여름바다에 뜨는 가벼운 것들』 입니다. # 1. 퀴어 코드의 로맨스 영화입니다. 대체로 정체성을 자각하지 못한 주인공이 정체성을 탐색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정체성을 인지하고 있으나 모종의 이유로 그것을 인정하거나 표현하기 주저하는 사람들이 용기를 얻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인데요. 도입에 등장하는 전 애인 수영의 청첩장과 같은 코드를 생각한다면 후자에 조금 더 가까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다만 보다 보면 뭐랄까요. 퀴어는 그냥 소재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하게 됩니다. 영화에서의 퀴어란 두려움에 못 이겨 마음속 깊이 끌어안고 침전해 있는 무언가로 대체되어도 별 지장이 없거든요. 심지어 사랑이라는 정서조차 그렇게까지 본질..

Film/Romance 2022.10.30

외롭고 버거운 별들의 맞잡은 손 _ 애드 아스트라, 제임스 그레이 감독

# 0. 남을 따라서 살 일이 아니다 네 가슴에 별 하나 숨기고 살아라 끝내 그 별 놓치지 마라 네가 별이 되어라 - 너는 별이다. 나태주 - 제임스 그레이 감독, 『애드 아스트라 :: Ad Astra』입니다. # 1. 우주 SF입니다. 문제적 감독 제임스 그레이가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갈수록 멋있어지는 브래드 피트가 주연 '로이 맥브라이드'를 연기하구요, 맨 인 블랙의 K로 익숙하실 토미 리 존스가 로이의 아버지 '클리포드 맥브라이드'를 맡았습니다.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 '리마'를 이끌던 클리포드는 오래전 실종되었다 합니다. 그를 영웅으로 여긴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우주 비행사로 성장하게 되죠. 그러던 어느 날 해왕성 방면으로부터 전류 급증 현상이 초래되어 지구가 위험에 노출됩니다. 사태에 리마 ..

Film/SF & Fantasy 2022.10.12

헤어졌어 _ 연기, 김경래 감독

# 0. 헤어졌어.갑자기? 왜 헤어져요?        김경래 감독,『연기 :: While you play』입니다.     # 1. 무수히 많은 연습으로 이뤄진 이별, 무수히 많은 이별로 도달한 사랑입니다. 이별을 연기하는 동안 시간도, 환경도, 성격도, 상황도, 해석도, 심지어 입장까지도 계속해서 뒤바뀝니다. 테이크를 굳이 숨기지 않는 등 오롯이 타인을 연기하는 가상의 행위임을 명확히 합니다. 하지만 그런 표피적인 것들과 무관하게 정서는 단일한 방향으로 깊어만 갑니다. 사랑이죠. 절정부 포차를 나선 후, 헤어지자 말하는 순간의 상대와 키스하는 순간의 상대는 다른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이고, 그 말을 하는 남자 역시 다른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입니다. 입맞춤에 화들짝 놀라는 여자 역시 이별을 원하는 사람이지만..

Film/Romance 2022.09.02

보수주의자의 이민정책 _ 불편한 동거, 아우스틸두르 키아르탄스도티르 감독

# 0. 어쨌든 용기 있는 작품이라는 것만큼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우스틸두르 키아르탄스도티르 감독, 『불편한 동거 :: Tryggð』입니다. # 1. 이민에 대한 영화입니다. 노골적인 한국어 제목처럼 아이슬란드인 주인공이 이민자 가족을 세입자로 들여 '동거'하는 동안 생기는 '불편한' 갈등을 풀어낸 작품이죠. 원제는 보증 혹은 보증금 정도를 뜻하는 아이슬란드어 Tryggð인데요. 신용, 부채, 상환, 위계, 위력 따위의 개념이 복합적으로 녹아있음을 문학적으로 활용한 제목이라는 면에서 한국어 제목은 다소 아쉽다 해야 할 겁니다. 국내에서의 인지도가 다소 부족한 나라의 영화들을 수입할 때 되지도 않은 부제를 덕지덕지 달거나 반대로 너무 단편적으로 네이밍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자신이 없으면 그냥 직..

Film/Drama 2022.08.08

스포일러 _ 비바리움, 로르칸 피네간 감독

# 0. 흥미로운 아이디어. 재치 있는 스토리. 감각적인 연출. 자해적 플롯. 로르칸 피네간 감독, 『비바리움 :: Vivarium』입니다. # 1. 흥미로운 아이디어입니다. 뻐꾸기의 탁란(托卵, 어떤 새가 다른 종류의 새의 집에 알을 낳아 대신 품어 기르도록 하는 일)에 착안하는 것이죠. 인간을 기생종을 키우게 된 숙주의 상황으로 몰아넣어 보자는 상상은 썩 유쾌합니다. 본능 앞에 스스로 자연의 법칙 밖의 존재라 자만하던 인간의 무기력함을 냉소적으로 조망한다는 아이디어는, 존재론적 회의를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호러물로서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죠. 재치 있는 스토리입니다. 보금자리를 찾던 두 주인공을 그 자체로 거대한 생태적 운명을 은유하는 마을 '욘더'에 묶어두는 방식은 기대보다 더 충실합..

Film/Horror 2022.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