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멀고 가깝다는 인식만이 있을 뿐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 A HOUSE OF DYNAMITE』입니다.
# 1.
세상 대부분의 것들이 그러하듯 영화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겠지만, 쉽게는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가져오는 것'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이때의 '멀리 있는 것'이란 <인디펜던스 데이>나 <투모로우> 같은 특별한 상황일 수도, <노스맨>이나 <맥베스>처럼 재해석된 역사일 수도 있고, <인터스텔라>나 <매드맥스>처럼 미래의 상상이어도 좋다. <그래비티>나 <매트릭스>처럼 이질적인 세계일 수도, <기생충>이나 <올드보이>처럼 특수한 관계나 환경, <파프리카>나 <욕망의 모호한 대상>처럼 어떠한 인식일 수도 있고, 때때로 <언더 더 스킨>이나 <시저는 죽어야 한다> 같은 영화조차 특정한 철학이나 사상을 현현해 가까이 옮긴 것이라 해설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반전주의 영화 역시 다음의 정의를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1917> 모두 접근은 다를지언정 핵심은 관객과 멀리 떨어져 있는 전쟁을 눈앞으로 가져와 경각심을 주는 것이고, 그 생생함에 압도된 관객들은 몇몇의 감동적인 드라마와 쫄깃한 스펙터클에 얹어 '역시 전쟁은 나쁜 거야'라는 타당한 감상을 가지고 극장을 나선다. 인간의 마음은 빛과 닮아서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옅어지기에 멀수록 희미할 수밖에 없고, 멀리 있어 옅었던 무언가를 가까이 옮긴다는 것은 사려 깊은 이해를 도모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는 예술의 본질에도 닿아있는 것이다.
<허트 로커>와 <제로 다크 서티>를 연출한 캐서린 비글로우의 신작 역시 마찬가지다. 상호확증파괴가 평화로운 일상을 지지해 줄 것이라는 피상적 믿음으로 저 멀리 미뤄뒀을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고작 20여분의 거리로 드라마틱하게 옮긴다. 사소한 고민, 사소한 권태와 함께 평범하게 출근하던 각각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패닉에 빠지는 것을 본 대부분의 관객들은 아마도, 특유의 사실적인 묘사와 긴장감 넘치는 연출에 힘입어 정석적인 반전주의 감상을 가져 나올 것이다. 다만 의아한 것은, 그것만이 목적의 전부였다면 굳이 똑같은 사건을 세 번 반복하고 있는 번거로운 플롯이 설명되지 않는다. 감독은 대체 왜 이런 선택을 한 걸까.

# 2.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가져온다는 것은 먼 것과 가까운 것이 구분되어 존재함을 전제한다. 가령 손쉽게 집 앞 편의점은 가깝고 달은 멀다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세상에 객관적으로 먼 것과 객관적으로 가까운 것은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편의점이 스스로 가까운 것도 달이 스스로 먼 것도 아니다. 당장 그 옛날 암스트롱에겐 달이 발디디고 있는 가까운 것, 편의점은 까마득히 먼 것이지 않았겠나. 캐서린 비글로우는 이 지점을 파고들어 먼 것을 가까이 가져오는 것을 넘어 아예 거리라는 것을 부정하려는 듯 보인다. 먼 것을 가까이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멀고 가까운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저 멀고 가깝다는 인식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세 개의 부는 별개로 돌아가는 듯 하지만 명확한 상관관계에 있다. 관객과의 거리다. 상황실의 올리비아 워커 대령과 알래스카 포트 그릴리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1부 <완만해진 기울기>는 실무진, 제이크 베링턴 국가안보 부보좌관과 앤소니 브래디 대령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2부 <총알로 총알 맞히기>는 중간관리자, 미합중국 대통령과 국방장관 리드 베이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3부 <다이너마이트로 가득 찬 집>은 최종책임자를 다루고 있고, 각각은 보편의 관객들로부터 멀어지는 순서다. 하지만 영화가 묘사하는 각각은 모두 동등하게 관객과 가깝다. 익숙한 가족과 연인의 관계, 북적이는 권태로운 출근길, 그것을 이겨내려는 다정한 농담과 스낵, 신발 속에 들어 있는 공룡 장난감과 캐비닛의 뽀로로 인형, 서먹한 자녀와의 어색한 대화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아내의 목소리처럼 말이다.
가령 현실의 내가 있고 나로부터 조금 먼 실무진과 더 먼 중간관리자와 가장 먼 최종책임자가 있다면, 적어도 그들은 그에 반비례해 전쟁으로부터는 가까워야 하고, 그러할 것이라 평범한 사람들은 믿는다. '나는 전쟁을 잘 모르지만 군인들은 나보다 전쟁에 친숙하겠지.', '대통령과 국방장관이라면 훨씬 더 전쟁에 담대하겠지.' 하지만 영화가 묘사하는 이들은 모두 동등하게 전쟁과 멀다. 마치 상대론에서 어떤 관찰자가 보더라도 빛의 속도는 동등한 것처럼 같은 인식을 공유하는 우리 모두의 거리는 동등한 것이다.

# 3.
의미를 구분해야 한다. 멀리 있는 대단한 사람들도 사실 나랑 별반 다를 바 없다 말하는 평범한 공감 드라마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영화였다면 굳이 이런 작위적이고 반복적인 플롯을 활용할 이유가 없고, 적당히 2부와 3부를 결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작품은 오히려 멀고 가깝다는 주관적인 인식 그 자체에 도전하고 있다. 관객은 1부의 주인공과 2부의 주인공과 3부의 주인공을 똑같은 거리감으로 느끼게 되는 데,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1부를 보는 동안엔 영상 통화 너머 2부, 3부의 사람들이 멀게 느껴지고, 2부를 보는 동안에는 1부, 3부의 사람들이, 3부를 보는 동안에는 1부, 2부의 사람들이 멀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모두 직전까지 나와 같은 가까운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심지어 영화 내내 적성적인 악당이라 가정한 러시아의 장관조차 막상 합리적이고, 그래서 다를 바 없이 가깝게 느낀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의 가족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보안 규정을 어기거나 모호하게 기밀을 유출하고, 심지어 책임자인 장관은 헬기를 부르는 등 전횡하기도 한다. '멀리' 있던 기존의 관객이라면 자신의 본분을 어긴 이기적인 행동이라 분노했어야 하지만, 영화로 말미암아 등장인물들과 가까이 다가간 후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심지어 엄마의 전화를 받은 남편이 빨리 차를 몰아 달아나길 바라거나,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라는 것을 모른 채 오디션 나서는 딸을 안타까워한다. 지정생존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부당하게 살아남은 특권층이라 받아들일 수도 있으나, 사실 그들의 사정이라 해서 조금도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영화를 보고 나면 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은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하우스'라는 단어의 친숙한 거리감과, '다이너마이트'라는 단어의 머나먼 거리감을 접붙여 둔 이유다. 두 개념을 이질적이라 느끼는 것 자체가 우리가 얼마나 현실을 매 순간 인위적인 거리감으로 왜곡해 인식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 4.
따라서 작품은 단순히 반전주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을 넘어 세계를 인식하는 틀 자체를 지적한다. 기울기가 점차 완만해지고 있음에도, 총알로 총알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 눈앞에 있음에도, 다이너마이트로 가득 찬 집에 들어앉아 있음에도 편의에 따라 거리를 재단하는 태도 그 자체가 바로 위기의 본질이라고 말이다. 이후를 보여주지 않는 엔딩이 남긴 것은 핵전쟁에 대한 공포심이 아닌,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멀다' 치부하며 살아왔는가에 대한 서늘한 자각이다. 그것은 비단 전쟁에 대한 경각심이나 국제 외교뿐 아니라 보편적인 삶의 원리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가치다.
끝내 이 모든 논의들은 라쇼몽을 떠올리게 한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걸작이 객관적인 진실이란 없고 모든 인간은 자신을 윤색한다 말하는 영화였던 것처럼, 캐서린 비글로우의 영화 역시 객관적인 진실이란 없고 모든 인간은 자신에게 편리한 거리감으로 세상을 윤색한다 말하고 있다.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Netflix, Tving, WatchaPlay, CoupangPlay, Appletv,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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