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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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61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_ 리틀 걸, 세바스티앙 리프쉬츠 감독

# 0. "사샤는 오랫동안 여자라고 느껴... 아뇨, 느낀 게 아니라 사샤는 여자예요. 남자로 태어난 여자요." 세바스티앙 리프쉬츠 감독, 『리틀 걸 :: Petite Fille』입니다. # 1. 의 소재는 제법 독특한데요.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10글자 넘어가는 괴랄한 소수자성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인공 '사샤'는 생물학적 성별과 정신적 성별의 괴리로 힘들어하는 평범한 트랜스젠더일 뿐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녀가 나중에 커서 여자가 되고 싶다 말하는,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아주 어린 친구라는 것이죠. 퀴어 다큐멘터리도 소주제에 따라 풀어가는 방식은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그 끝은 두 가지 목표로 귀결되기 마련입니다. 주인공의 소수자성에 대한 내적 탐구, 그 과정에서 차별에 맞서 싸우는 사회적..

세 번의 문답 _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권하정 / 김아현 감독

# 0. 우리는 이 가수를 불쑥 찾아갔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를 함께 찍었다. 권하정 / 김아현 감독,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 Notes from the Unknown』입니다. # 1. 관객이 당장 만나게 되는 영화는 한 편이지만 전체 프로젝트를 생각하면 총 세 개의 영상이 존재합니다. 의 뮤직비디오, 의 뮤직비디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려는 다큐멘터리 가 바로 그것이죠. 각각은 그것이 음악이 되었든, 철학이 되었든, 태도가 되었든, 입장이 되었든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의 창작물에 대한 피드백으로서의 성격을 가집니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의도 여하와 무관하게 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일종의 질문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각각의 영상은 그 자체로 온전한 작품임과 동시에 권하정..

다시 만나는 자연 _ 다이에나 케네디, 엘리자베스 캐롤 감독

# 0. 과카몰레(스페인어: Guacamole)는 멕시코 요리의 소스로, 으깬 아보카도에 다진 양파, 토마토, 고추, 라임즙 따위를 넣어 만든다. 콘칩과 유사한 '토토포(Totopo)'라고 하는 튀긴 토르티야 조각으로 퍼서 먹는다. '과카'는 멕시코에서 아보카도를 뜻하는 '아과카테(Aguacate)'에서 온 것이며, '몰레'는 멕시코 원주민 어로 '소스'를 뜻한다. 엘리자베스 캐롤 감독, 『다이애나 케네디 :: Nothing Fancy Diana Kennedy』입니다. # 1. 다이애나 케네디의 전기 다큐멘터리입니다. 멕시코 전통 요리 전문가이자, 다수의 저술 활동을 펼친 작가이기도 한 인물인데요. 독특하게도 태생은 이름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 영국인이죠. 1923년생으로 작품이 공개된 당시에도 이미 아..

피터 싱어의 논증 _ 카우,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

# 0. Life is a "Comedy" when seen in long-shot, but a "Tragedy" in close-up.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 『카우 :: Cow』입니다. # 1.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이상함을 느끼셨을까요. 서두의 영문장은 채플린이 말했다 알려진 명언인데요. 사실 순서를 반대로 적어둔 문장입니다. 원본은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비극(tragedy)을 먼저 말한 후에 희극(comedy)으로 매듭짓는 구조였죠. 해당 명언이 대구를 이루는 터라 짐짓 순서를 바꾼다 하더라도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여기실 수도 있을 텐데요. 엄정하게 말하자면 뉘앙스에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Documentary/Social 2023.08.24

옮겨 담았을 뿐 _ 밤쉘, 알렉산드라 딘 감독

# 0. '배우라는 인형'에서 '피해자라는 박제'로 옮겨 담았을 뿐. 알렉산드라 딘 감독, 『밤쉘 :: Bombshell: The Hedy Lamarr Story』입니다. # 1. 오스트리아 출신 고전 할리우드 배우 '헤디 라마'의 전기 다큐멘터리입니다. 인기와 미모와 기행과 논란으로만 알려져 있던 그녀의 발명가로서의 재능을 재조명하면서, 동시에 그런 재능이 알려질 수 없었던 시스템의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죠. 본론에 앞서 갈수록 그런 경향이 짙어지는 느낌은 있습니다. 인물이 되었든 사건이 되었든, 탐사의 결과가 아니라 원하는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그 결론을 향해 관객의 등을 밀어대는 다큐멘터리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인상 말이죠. 포스트 트루스라는 제목으로 이야기한 바 있는 씨스피라시..

상생의 역사 _ 아기 코끼리와 노부부, 카르티키 곤살베스 감독

# 0. 필연의 상처를 회복케 하는 상생의 역사 카르티키 곤살베스 감독, 『아기 코끼리와 노부부 :: The Elephant Whisperers』입니다. # 1. 남인도 타밀나두 주에 위치한 무두말라이 호랑이 보호구역.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야생 인접 인도코끼리 캠프, 테파카두 캠프. 그 속에서 '숲의 왕들'이라는 뜻을 가진 카투나야카르 족 사람들이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다큐멘터리는 라구와 암무라는 이름의 두 아기 코끼리를 돌보는 관리인 봄만, 벨리 부부를 중심으로 따라갑니다.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가치는 상생相生입니다. 자연과 생명의 상생이자, 인간과 동물의 상생이며, 부모와 자녀의 상생이자, 노인과 아이의 상생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통할하는 존재와 역사와 ..

엄숙주의의 울타리 너머 _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

# 0. 엄숙주의의 울타리를 호쾌하게 넘는 코미디의 힘 넷플릭스 모큐멘터리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 :: Cunk on Earth』입니다. # 1. 인류의 문명사를 2시간 3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앙상하게 핥아내는 모큐멘터리입니다. 문명 발생에서 시작해 종교, 문화, 근대화를 지나 세계 대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을 유럽인의, 보다 정확히는 영국인의 관점에서 편협하게 전개됩니다만 뭐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지들이 만든 거니까요. 처음엔 필로미나 컹크(Philomena Cunk)가 뭔가 싶었는데요. 코미디언 '다이앤 모건'의 부캐였더라구요. 얼핏 보고선 아이티 크라우드의 캐서린 파킨슨인 줄 알고 살짝 반가웠습니다만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선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찾아봤더니 컹크라는 부케로 ..

Series/Comedy 2023.02.08

애프터 디어 _ 야생동물병원 24시, 다넬 엘펠레그 / 우리엘 시나이 감독

# 0. Dedicated caretaker of people and wildlife. He spread light to all despite his own suffering. 다넬 엘펠레그 / 우리엘 시나이 감독, 『야생동물병원 24시 :: Pere』입니다. # 1. 이스라엘의 야생동물병원입니다. 우리말 제목의 '24시'라는 말처럼 낮도 밤도 따로 없습니다. 사슴에서 하이에나까지, 오리부터 펠리컨까지 가리는 동물도 없습니다. 수많은 동물들이 도움을 받지만 대부분은 생사의 경계에 있습니다. 다수의 의료진 가운데 수의사 아리엘라와, 수석 간호 책임자 슈멀릭을 중심으로 다큐멘터리는 흘러갑니다. 안타깝게도 개봉되기 직전 슈멀릭 씨가 급작스레 사망했다 하는데요. 때문에 슈멀릭에게 바친다라는 애도의 말과 함께 작..

분풀이 _ 슈퍼 리그 축구의 종말, 칼 힌드마치 감독

# 0.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축구도 좋아합니다. 잘 알지는 못하구요, 아주 아주 아주 라이트 한 팬이죠. 팀은 영국에 위치한 병기창 축구 클럽이라는 곳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구단주는 스탠 크랑키라는 인물인데요. 이 인물이 슈퍼 리그라는 축구의 종말(?)을 불러올 뻔 한 사건의 주범(?) 중 한 명이라 다큐를 보기 전부터 어느 정도 주워들은 바는 있었습니다. 물론 마니아분들이 아시는 것만큼 정확하지는 않겠지만요. 칼 힌드마치 감독, 『슈퍼 리그, 축구의 종말 :: Super Greed, The Fight for Football』입니다. # 1. 레알 회장 페레즈의 주도 하에 15개 메가 클럽 구단주들이 모여 "자잘한 팀들 재끼고 대륙 통합 리그를 만들어 우리끼리 다 해 먹어보자!!!" 라는 목적으로 진행한..

Documentary/Social 2022.07.16

호수를 나는 새 _ 내 이름은 졸자야, 곽동철 감독

# 0. 당연히 외국 다큐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한국 감독의 작품이더군요. 왜 하필 타국, 그것도 생소한 몽골의 흐미 가수에게 카메라를 들이민 것일까. 제가 이 다큐멘터리에 흥미가 동한 것은 바로 감독의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왜 굳이 이 아이템으로 작품을 만든걸까 라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들려줄지 궁금했기 때문이죠. 곽동철 감독, 『내 이름은 졸자야 :: My Name is Zolzaya』입니다. # 1. 안개 낀 숲, 고요한 사막, 푸른 호수 위로 잔잔하게 들이치는 파도입니다. 자연의 웅장함을 담아내는 넓은 화각은 자유로움을 은유합니다. 다채로운 풍경은 다양성과 가능성 등을 상징하죠. 사막과 호수의 접경은 역사의 도도한 변화를, 일정한 간격으로 들이치는 파도는 평화로운 방법론과 거스를 수..

쓰레기를 태우는 불 _ 14개의 사과, 미디 지 감독

# 0. 불면증에 시달리는 만달레이의 사업가 왕 신홍에게 한 점쟁이가 수도원에서 14일을 보내라고 조언한다. 자동차와 불룩한 지갑을 뒤로하고 그는 하루에 사과 한 알 만을 먹는 수도승의 삶을 살게 된다. 이는 현재 미얀마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시골의 수도원에 도착한 왕 신홍은 머리를 깎고 붉은 수도복을 입는다. - 2018년 제15회 EBS 국제 다큐영화제 '미디 지' 감독, 『14개의 사과 :: 14 Apples』입니다. # 1. 자동차 안에서 시작됩니다. 차 안은 말끔한데 반해 밖은 먼지가 자욱한 시장통입니다. 분리된 두 공간입니다. 멀쑥한 양복에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쓴 남자입니다. 차에서 내려 과일가게에서 사과를 삽니다. 사과의 원산지를 살핍니다. 필요한 14개만 사며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

Documentary/Social 2022.02.16

그날의 내 기분 _ 의자가 되는 법, 손경화 감독

# 0. 의자가 나오고, 사람도 나오고, 의자가 나오고, 사람도 나오고... 비 오고, 리사이클 의자, 풀 숲, 페이드 아웃, 마천루... 응? 끝이네? '손경화' 감독, 『의자가 되는 법 :: How to Become a Chair』입니다. # 1. 오랜만에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제목은 . 대상의 속성을 면밀히 추적한 후 화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의미를 선별적으로 추출해 사람 사는 방식과 연결 짓는 류의 작품들이 대체로 이런 식의 제목을 가지고 있죠. 예상대로 카메라는 수많은 의자를 담아냅니다. 다른 모양과 다른 목적과 다른 시점과 다른 가치와 다른 사연과 다른 해석을 추적합니다. 의자를 쓰는 다양한 사람들과, 의자가 놓인 다양한 공간들과, 의자를 바라보는 다양한 입장들과, 의자에 부여하는 다양한 견해..

참 어렵죠? _ 밥 로스 행복한 사고, 배신과 탐욕

# 0. 우주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밥 로스'의 일대기에 일상이 지루한 미국인들이 환장할 법한 고소전을 조금 덜고 티타늄 화이트를 섞어 넷플릭스라는 캔버스 위에 펴 바릅니다. 쓱싹쓱싹. 어때요, 참 쉽죠? 『밥 로스 - 행복한 사고, 배신과 탐욕 :: Bob Ross - Happy Accidents, Betrayal & Greed』입니다. # 1. 가 왓챠에 올라올 때만 하더라도 넷플릭스에 이런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어 올라온 줄은 몰랐습니다. 매번 영화를 보고 나면 (내심은 글을 깨작이기 위해서지만) 관련 지식을 쌓는다는 핑계로 이러저러한 정보들을 검색하게 되는데요. 요런 유용한 다큐멘터리가 있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구글링 하는 뻘짓을 면할 수 있었을 텐데요. 다큐멘터리의 구성은 부제 을 고스란히 따라갑..

Documentary/Social 2021.08.30

해피피트 실사판 _ 남극의 귀염둥이, 황제펭귄 이야기

# 0. 더워. 더워. 더워. 더워. 더워. 더워. 더워. 더워... BBC earth 제작, 『남극의 귀염둥이, 황제펭귄 이야기 :: Snow Chick - A Penguin's Tale』입니다. # 1. 황제팽귄의 생태를 그린 다큐멘터리입니다. 흔히 펭귄 하면 떠올리실 법한 애들 중 하나인데요. 뭔가 미친놈 같은 눈매에, 고전게임 주인공 같이 생긴 애들은 '아델리 펭귄'이구요. 멋들어진 턱시도에 노란색 무늬가 고오급스러운 친구들이 바로 황제펭귄입니다. '조지 밀러'의 애니메이션 보셨으려나요? 그 영화 실사판이라 생각하시면 무난합니다. 후반부 남극해 넘어 세계관이 확장되기 전까지 주인공 '멈블' 성장 과정과 사실상 동일한 서사거든요. 아빠가 혹한 속에서 알을 놓치는 바람에 노래 대신 탭댄스를 마스터해버..

Gorgeous _ 은발의 패셔니스타, 리나 플리오플라이트 감독

# 0. "뉴욕은 잘 차려입은 여성들에게 가장 좋은 도시예요. 왜냐하면 뉴욕의 대로와 길거리는 런웨이가 될 수 있거든요. 이분들은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무색하게 해요.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만족하며 항상 가장 멋지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외출을 하죠." '리나 플리오플라이트' 감독, 『은발의 패셔니스타 :: Advanced Style』입니다. # 1. 멋지게 뉴욕을 가로지르는 고령 여성들을 촬영하는 작가 '아서 세스 코헨'과, 모델이 되어준 여인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때론 Gorgeous 하게, 때론 Fancy 하게, 때론 Sexy하게 담아냅니다. 관객은 그녀들의 반짝이는 눈에 비친 강렬한 에너지를 통해 삶의 특정한 시점을 규범화된 모습으로 사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인가를 점..

순간들 _ 시바티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앙드릭 뒤졸리에 감독

# 0. "이 지역은 곧 철거돼요. 알잖아요. 여길 싹 허물 거예요. 중국 빈곤층을 보여 주려고 다큐멘터리를 찍나 본데 당신들 생각하곤 달라요. 중국은 이제 빈곤하지 않아요. 그건 가짜 이미지라고요. 당신네 기자들은 뭐든 과장하기 일쑤죠. 촬영해서 이럴 거잖아요. '중국은 가난하다!' 해방 직후 동네도 좋아지고 통나무를 때고 살죠. 중국을 폄하하지 말아요. 내 말 들어요. 당신이 찍는 건 진짜가 아니에요." '앙드릭 뒤졸리에' 감독, 『시바티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 Derniers jours à Shibati』입니다. # 1. 시바티의 사람들 "있잖아. 자기 나라에선 낙오자일 거야. 직업이 없나 보지.", "말조심해. 알아들을 수도 있어.", "내 말 들어봐. 직업이 있는 사람 같으면 대체 여길 왜 왔..

Documentary/Social 2021.06.17

알고 기억해달라 _ 홍콩을 위한 전쟁, 로빈 반웰 감독

# 0. 민주화 시위가 넉 달째 이어지고 있다. 비 근무 경찰관들이 탄 차가 주위를 에워싼다. 이 도시는 막 혼란으로 빠지는 중이다. 14살의 어린 시위자가 총탄에 맞아 상처를 입는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어떻게 시위의 도가니에 빠져서 폭력의 현장으로 전락하였는지... 그리고 도대체 언제 끝이 나려나. 이 영화는 그들 인생의 최고의 전쟁을 치르는 중인 다섯 명의 젊은이들의 행적을 좇는다. 시위가 최고조로 치닫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처절히 투쟁한다. 그들의 상대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독재 정권이다. "우린 홍콩의 미래의 결정자가 중국 공산당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어요. 이건 분명 독재 국가와 민주주의와의 대결입니다." 대부분, 체포될 때 신원이 밝혀질까 봐 두려워서..

Documentary/Social 2021.05.03

마취제 _ 고양이의 은밀한 사생활

# 0. 차갑고 무심한 데다 자기중심적인 고양이. 훈련할 수 없는 게으른 털 뭉치. 과연 그럴까요? BBC 다큐멘터리, 고양이의 은밀한 사생활 :: The Secret Life of the Cat 입니다. # 1. "인간에게 강아지만큼이나 친숙한 고양이의 매력을 파헤친다! 전문가의 협조 아래, 고양이 열 마리의 목에 카메라와 GPS를 설치해 이들의 은밀한 일상을 추적한다!!" 라고는 합니다만 뭐 언제나처럼 딱히 은밀하지도 개인적이지도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무난~한 고양이 영화예요. 조목조목 살펴보면 하자가 넘쳐나는 대단히 편의적이고 게으른 구성입니다. 세상 귀여운 고양이들이 잔뜩 나옵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고양이는 쥐뿔 관심 없고 그저 고양이를 좋아하는 '너'의 만족만을 위한 다큐멘터리거든요. 나름 ..

수동 숨쉬기 _ 최후의 호흡, 리처드 다 코스타 / 알렉스 파킨슨 감독

# 0. 북해 해저에 고립된 잠수부 크리스 레몬스의 사고와, 그를 구조하기 위한 동료들의 고군분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입니다. '리처드 다 코스타', '알렉스 파킨슨' 감독, 『최후의 호흡 :: Last Breath』입니다. # 1. 잠수 지원선 '토파즈'가 거친 북해의 격랑에 떠밀립니다. 챔버와 잠수부 사이에 연결된 케이블이 끊어지고 맙니다. 산소 공급은 중단되었고 수면으로 올라올 수도 없고 올라와서도 안 되는 상황. 5분여 밖엔 버티지 못할 산소통 하나에 의지해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깊은 바닷속에서, 크리스는 살아남아야 합니다. 작품은 크게 두 개의 파트로 나눠볼 수 있는데요. 1시간 여 까지는, 크리스의 약혼녀와 같은 팀 잠수사 데이브 유아사, 던컨 올콕을 비롯한 동료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전개됩..

포스트 트루스 _ 씨스피라시, 알리 타브리지 감독

# 0.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어릴 적부터 중요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무분별한 살생은 일어나선 안될 일이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기 위해 나름대로 모기나 날파리를 잡지 않는 등의 노력을 해 왔습니다만 어느 순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매 순간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사람들의 비참한 죽음을 추적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죽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1년 안에 '사과'를 먹은 적이 있다는 사실 말이죠. 놀라운 일입니다. 취재해 본 바에 따르면 제가 사는 마을에서 발생한 58명의 사망자 중에 57명은 1년 안에 사과를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나머지 한 명 역시 3년 안에 사과를 먹은 적 있다는 증언을 확보했죠...

Documentary/Social 2021.04.14

1달러 79센트 _ 러브 송 포 라타샤, 소피아 날리 앨리슨 감독

# 0. 아카데미가 한 달도 남지 않았네요. 이전 같으면 노미네이트 된 작품들을 챙겨보려다 티켓값에 허리가 휘거나 심지어 개봉조차 하지 않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만 코로나로 인해 영화판 헤게모니가 멀티플렉스에서 OTT로 넘어간 덕에(?)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보다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례적으로 이번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 중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작품만 해도 두 자리 수가 훌쩍 넘어가죠. 개꿀. 극한의 반골기질 덕에 남들이 호들갑 떨면 괜히 고까워 외면하기 일쑤입니다만 이상하게 또 이런 건 혹 해서 챙겨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역시 찐따의 취향이란 건 이렇게나 종잡을 수 없죠. 나 같은 런타임 오지게 길고 대충 봐도 겁나 무거워 보이는 작품들에..

Documentary/Social 2021.04.01

좋아서 싫을 수도 있구나 _ 북극의 나누크, 로버트 J. 플래허티 감독

# 0. 분명 이야기가 영화의 전부는 아닙니다. , 같이 음악을 위해 이야기를 과감하게 투자하는 작품들도 있고 아예 , 같은 뮤지컬 영화들도 있죠. 와 같은 작품들은 이야기보다 인물의 구도와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기도 하구요. 처럼 지독할 정도로 정서를 따라가는 작품도 있고 나 같은 영화들은 회화적 스타일로 승부를 보는 이색적인 작품들 또한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영화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를 하나 꼽아야 한다면, 어땠든 이야기라는 것만큼은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저 역시 그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죠. '로버트 J. 플래허티' 감독, 『북극의 나누크 :: Nanook Of The North』입니다. # 1.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의 전부는 아니겠습니다만 그럼에도 가장..

검은색 거울 _ 가버려라 2020년, 앨 캠벨 / 앨리스 머사이어스 감독

# 0. 2020년 한 해 이슈를 망라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블랙 코미디 쇼입니다. 만, 코끼리 냉장고 넣기도 아니고 8760시간이 1시간 남짓의 런타임 안에 정리될 리가 없죠. 미리 말씀드리자면 특별한 의미나 깊이 있는 풍자는 기대하지 않으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저 빌어먹을 2020년을 힘겹게 지나왔을 사람들이 편하게 남 욕하고 놀리는 재미나 누리고 치우는 딱 그 정도 느낌의 킬링 타임 콘텐츠라 이해하시는 편이 적당합니다. '앨 캠벨, '앨리스 머사이어스' 감독, 『가버려라, 2020년 :: Death to 2020』입니다. # 1. '신정원' 감독의 리뷰에서도 말씀드렸듯 코미디야 말로 가장 스포일러에 민감한 장르이기에 최대한 개그 코드에 대한 내용은 말씀드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애초에 해석이 필요할 만..

Documentary/Social 2021.01.23

몽마르트 파파'즈 썬 _ 몽마르트 파파, 민병우 감독

# 0. 아버지는 소싯적 낚시를 참 좋아하셨습니다. 보통 남편이 낚시를 좋아하면 가정생활이 순탄치 않다고들 합니다만 다행스럽게도 저희 어머니는 텐트 안에서 과일 도시락을 까먹으며 라디오를 듣거나 선선한 바람 맞으며 천천히 바닷가 거니는 걸 즐기시는 분이셨기에 갈등은 없었죠. 유별난 아버지 덕분에 저의 유년기를 담은 사진과 영상들은 대부분 멀리 수평선과 방파제, 부둣가에 떠내려온 불가사리를 배경으로 한 것들이었습니다. 벌써 수십 년도 더 된 이야기이지만 지금까지도 가족들이 모일 때면 가끔 찾아보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곤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희 집 홈비디오를 생판 남인 여러분이 보셔도 재미있을까요?! '민병우' 감독, 『몽마르트 파파 :: Montmartre de Papa』입니다. # 1. 가장으로서 ..

나의 의미 _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 에드 퍼킨스 감독

# 0. 사고로 기억을 잃은 '알렉스'. 쌍둥이 형제의 과거를 대신 기억하는 '마커스'. 알렉스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싶어 합니다. 마커스는 잊고 싶은 기억을 덮어두고 싶어 합니다. 오래도록 미뤄왔던 두 사람의 만남과 대화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숨겨진 유년기를 다루는 작품이니만큼 사건의 실체를 알고 보면 감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일종의 반전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글을 읽기 앞서 영화를 먼저 보실 것을 권합니다. '에드 퍼킨스' 감독,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 :: Tell Me Who I Am』입니다. # 1. 당사자에겐 외람된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부모의 도덕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시시합니다. 설마 하니 알렉스 마커스 형제 부모의 비도덕..

고오급 화면보호기 _ 무빙 아트, 루이 슈워츠버그 제작

# 0. 정적인 분위기의 자연 다큐멘터리 시리즈입니다. '루이 슈워츠버그' 제작, 『무빙 아트 :: Moving Art』입니다. # 1. 회차에 따라 시즌에 따라, 대양이나 꽃, 숲, 폭포와 같은 특정한 자연물을 중심으로도 아이슬란드, 아프리카, 훗카이도와 같은 지역으로도 앙코르와트나 코사무이, 마추핏추와 같은 유적이나 문화권으로도 구성됩니다만 그래봐야 작품에 대한 감독의 개입은 구성물을 느슨하게 엮어내는 테마, 그뿐입니다. 기껏해야 오프닝 귀퉁이에 남겨둔 한마디 문장이 전부입니다. 피사체의 미려한 모습을 담아내는 풍성한 구도입니다. 현장음을 최대한 선명하게 담아내는 가운데 이를 효과적으로 조력하는 음악입니다. 고요하고 장엄한 분위기만이 존재합니다. 심장의 박동을 최대한 늦추고, 호흡을 최대한 깊게 만드..

삭제하시겠습니까? _ 소셜 딜레마, 제프 올롭스키 감독

# 0. 무수히 많은 하자로 점철된 인격임에도 그나마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만한 장점이라면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블로그질을 시작하며 글을 간단히 소개하는 트위터,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꾸린 적은 있습니다만 그마저도 더 이상 업데이트하고 있지 않죠. 참 잘했어요. 박수 세 번 짝짝짝. '제프 올롭스키' 감독, 『소셜 딜레마 :: The Social Dilemma』입니다. # 1. 다다익선 多多益善. 일반적으로 소통은 언제나 긍정적인 것이라 생각됩니다. 정보를 공유하는 것 역시 언제나 긍정적인 것이라 생각됩니다. 보다 많은 소통과 보다 많은 정보의 공유는 사람들의 시야를 풍부하게 만들고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게 만들어 사회를 보다 평화롭고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는 건 오랜 시간 동안..

Documentary/Social 2020.09.24

멀리 _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 현진식 감독

# 0. 빨리 말고, 먼저 말고, 잘 말고, 그저 멀리. 멀리멀리. 지희 씨의 노래는 멀리멀리. '현진식' 감독,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 :: Free My Soul, Free My Song』입니다. # 1. 기타리스트 '김지희'씨의 다큐멘터리입니다. 우연히 접하게 된 기타와 사랑에 빠진 스물넷의 소녀. '정성하'와 '앤디 맥키'를 동경하는 새내기 기타리스트. 아직은 겁도 많지만 엄마의 뒷모습을 마음으로 연주하는 멋진 딸. 늘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무대 위에서라면 강단 있게 곡을 완주하는 아티스트. 열 마디 말 대신 음악과 밝은 웃음으로 소통하는 그녀는 지적 장애인입니다. # 2. 쓸데없이 부자연스러운 비극이나 연출된 희극 없이 담담히 흘러가는 맛이 좋은 다큐멘터리입니다. 다소 느리기도 하고 때론..

Documentary/Art 2020.09.17

다름을 이야기하는 틀린 영화 _ 존의 컨택트, 매튜 킬립 감독

# 0. 다름과 틀림은 다르다는 상식을, 다름과 틀림을 혼용하는 건 틀렸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입니다. 머나먼 우주 너머 다른 존재들과의 접촉을 꿈꾸는 '존'은 분명 평범과는 거리가 먼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틀린' 삶을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매튜 킬립' 감독, 『존의 컨택트 :: John Was Trying to Contact Aliens』입니다. # 1. 목표는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전부인 것은 아닙니다. 뒤따르는 부나 명예, 인정, 성취, 흔적 따위의 결과물들 역시 중요한 동기가 되곤 하죠. 하지만 '존'의 목표에는 이와 같은 부산물 혹은 불순물이 없습니다. 그의 삶은 형식논리적인 면에서 부나 명예는커녕 최소한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는 행동으로 점철됩..

정의란 무엇인가 _ 오버 데어, 장민승 감독

# 0.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아시나요. 저도 분위기에 휩쓸려 그 책과 『완벽에 대한 반론』에, 왠지 제목이 비슷한 '셸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까지 한꺼번에 샀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세 권 모두 절반정도 읽다 덮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죠. 책장에 꽂아두면 제법 폼이 나는 책들이라는 것만으로도 돈이 아까운 친구들은 아니니까요. 두껍고 묵직한 덕에 북앤드로도 쏠쏠합니다. 하지만 이글에서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정의는 '센델' 교수의 Justice가 아닙니다. Definition이죠. 지금 낚시하는 거냐구요? 맞는데요? 너 이자식 이과냐구요? 그것도 맞는데요? '장민승' 감독, 『오버 데어 :: over there』입니다. # 1. 오..

Documentary/Art 2020.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