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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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118

다이브 _ 공각기동대, 오시이 마모루 감독

# 0. 숨 참고 필로소피 다이브 오시이 마모루 감독, 『공각기동대 :: 攻殻機動隊』입니다. # 1. 믿고 거른다는 꺼무위키지만 솔직히 씹덕의 영역만큼은 예외입니다. 공각기동대와 관련된 정보를 얻고 싶다면 누군가의 포스팅을 빌릴 바에야 나무위키를 정독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죠.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의 별세를 핑계로 묵은 만화책들을 몰아보다 흘러 흘러 공각기동대를 다시 볼 수 있었는데요. 오래전 감상에 새로운 감상을 조금 더 얹어 주절거리겠지만 어차피 그 감상조차 모조리 나무위키에 있을 게 뻔합니다. 마니아들처럼 시리즈를 전부 찾아볼 정도의 관심도 의리도 없는 제게 공각기동대란 1995년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과 스칼렛 요한슨이 쿠사나기로 열연한 2017년 실사판 정도가 전부라는 것 역시 감안하셔야겠네요...

Film/Animation 2024.04.02

소유를 사유하다 _ 돌로레스, 마이클 로젠 감독

# 0. 박제가 되어 버린 그녀를 아시오? 마이클 로젠 감독, 『돌로레스 :: Dolores』입니다. # 1. 소유욕이라는 감정을 탐구하고 탐미합니다. 미리 구분해야 할 것은 감독이 탐구하고자 하는 소유욕이란 썩 중립적이라는 점입니다. 인간 게오르그가 탐욕적이고 망상적이고 지저분하고 추악하고 짜증스러운 인간이라는 것과 별개로 말이죠. 모형 제작자로서의 순수한 장인정신이라거나, 종이비행기 날리는 소년에게 모형을 건네는 다정함, 돌로레스의 생일날 그녀의 아버지를 본 딱 인형을 선물하는 섬세함, 병든 동생을 걱정하고 챙기는 모습 따위를 숨기지 않고 있으니까요. 감독이 이해하는 게오르그는 관객의 생각보다 훨씬 순수합니다. 순수하게 악할 뿐이죠. 감독은 욕망하는 게오르그를 단죄하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Film/Thriller 2024.03.22

치명적인 무해함 _ 침입자들의 만찬, 미즈노 이타루 감독

# 0. 부조리 위에 펼쳐진 탐욕과 위선을 제압하는 치명적인 무해함 미즈노 이타루 감독, 『침입자들의 만찬 :: 侵入者たちの晩餐』입니다. # 1. 영화는 뻔뻔스럽게 범죄 스릴러를 주장하지만 전반적인 톤은 코미디 어드밴처라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사건이 벌어지는 후지사키 나츠미의 집 역시 현실적 주거 공간이나 차가운 범죄 현장이라기보다는 흥미진진한 던전에 가깝게 연출되어 있죠. 응큼하고 지저분하지만 엉성하고 귀엽기도 한 여섯의 인물들이 각자의 음흉한 목적을 위해 지지고 볶는 하룻밤 소동극입니다. 소동극의 묘미라면 역시나 분투하는 인간들의 소동을 귀엽고 가엽게 그리는 시선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역시 그 온건함에 대단히 충실합니다. 각본가 바카리즈무의 기질이 묻어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죠. 작품을 견인..

Film/Comedy 2024.02.04

미움받을 용기 _ 앰뷸런스, 알레산드로 톤다 감독

# 0. 이슬람을 혐오하는 제노포비아라 비난받는다 하더라도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악당이라 음해당한다 하더라도 알레산드로 톤다 감독, 『앰뷸런스 :: The Shift』입니다. # 1. 브뤼셀의 한 학교에서 벌어진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자살 폭탄 테러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테러리즘에 대해 탐구하는 작품 특성상 이후 앰뷸런스가 내달리게 되는 브뤼셀은 단순히 벨기에의 수도라기보다는, 유럽 사회 전체를 대신한다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겠죠. 테러범은 겉보기엔 평범한 두 명의 학생인데요. 즉사한 한 명과 달리 다른 한 명은 감쪽같이 사라지게 되는 데, 알고 봤더니 피해자로 오인되어 앰뷸런스에 실려 빠져나갔다는 전개입니다. 의식을 차린 테러리스트는 자신의 몸에 두른 폭탄을 내보이며 구급대원 이자벨과 아다모를 위협하게..

Film/Thriller 2023.12.18

불쾌함의 이유 _ 다섯 번째 흉추, 박세영 감독

# 0. 불쾌하니까 별로라는 감상은 시시합니다. 박세영 감독, 『다섯 번째 흉추 :: The Fifth Thoracic Vertebra』입니다. # 1.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향유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제 아무리 포용적이고 개방적이라 한들) 저마다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편하게는 취향, 조금 더 고상하게 말한다면 감식안(鑑識眼)이라 부르는 것들이죠. 제 스스로 견제하고 점검하는 몇 가지 대전제 중 하나는 '감독은 바보도, 괴물도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비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못 만든 영화라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관객은 보편타당한 근거를 들어 합리적인 수위에서 평가할 권리를 가짐에 분명합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저 감독이란 사람들도 관객..

Film/Thriller 2023.11.28

블루 얼럿 _ 더 킬러, 데이비드 핀처 감독

# 0. 봉준호의 진단에 답하는 데이비드 핀처의 서슬 푸른 경고 데이비드 핀처 감독, 『더 킬러 :: The Killer』입니다. # 1. 아무래도 킬러 영화들은 '킬러에게 표적이 된 사람의 서스펜스'라거나 '킬러가 엮인 특별한 사건의 스릴러'이기 마련일 텐데요. 본 작품은 제목에서처럼 킬러가 직업인 사람의 멘탈리티를 중심으로 풀어나갑니다. 혹자는 이야기가 심심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듯도 보이지만, 주인공의 생각과 감각을 추적하는 데 최대한 집중할 뿐 그 외의 타깃이나 사건은 중요하지 않기에 의도적으로 비워두고 있다 판단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위플래시와 라라랜드로 익숙하실 데미안 셔젤의 영화 중에 이라는 작품이 있죠.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을 탐구하고 체험하는 것에 최대한 집중하는 작품이기에, 그가 경험하..

Film/Thriller 2023.11.18

독의 도미노 _ 뱀에 물린 자들, 안토니 예롄 감독

# 0. 유혹에 못 이겨 무너져 내리는 윤리의 도미노 안토니 예롄 감독, 『뱀에 물린 자들 :: Inherit the Viper』입니다. # 1. 84분짜리 짤막한 인디 영화입니다. 우연히 생긴 자투리 시간을 태울 겸 포스터가 느낌 있길래 골랐죠. 대충 검색을 해 봤는데요. 리뷰는커녕 그 흔한 한줄평조차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아무리 소소하다지만 블로그를 굴리는 입장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영화를 굳이 글로 옮긴다는 건 바보짓임에 분명한데요. 그럼에도 남들 가는 길 똑같이 가면 왠지 지는 것만 같은 홍대병자들에게 요런 영화들이란 마치 뱀에 물린 것만 같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이런 류의 마이너 한 외화들이 수입되는 경우 제목이 제대로 번역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솔직히 미련합니다. 그냥 그러려니..

Film/Thriller 2023.10.28

안전막 없는 트램펄린 _ 풀타임, 에리크 그라벨 감독

# 0. 그 어린 엄마는 잘 지내고 있을까 에리크 그라벨 감독, 『풀타임 :: À plein temps』입니다. # 1. 싱글맘의 고단하고 치열한 일상을 스릴러의 긴박감으로 그려낸 드라마입니다. 이야기에 특별함은 없고 이야기를 즐기는 영화도 아닙니다. 캐릭터성이 강한 주인공을 탐구하는 류의 이야기도 아니구요, 연출에서 강한 개성이 발견되는 작품도 아닙니다. 영화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싱글맘을 상정한 후 그녀의 평범한 일상에 치밀하게 집요하게 접근합니다. 두 아이를 혼자 키워내는 싱글맘이 느낄 법한 감정들, 이를테면 압박감이나, 고독감, 피로감, 조바심 따위를 해체해 각기 다른 현실적 레이어로 흩뿌려 투영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감독은 싱글맘의 스트레스를 주인공의 감정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

Film/Thriller 2023.10.14

분명한 퇴보 _ 발레리나, 이충현 감독

# 0. 넷플릭스 산 K-액션 누아르의 익숙한 그 냄새 이충현 감독, 『발레리나 :: Ballerina』입니다. # 1. 1시간 30여분 내내 과장된 스타일과 피상적인 이미지가 범람합니다. 분홍색과 민트색 네온사인, 네 병의 술과 다른 색깔 빨대, 발레슈즈가 담긴 선물상자, 비밀스러운 sns 대화, 줄 달린 이어폰의 갬성, 잔뜩 기울이다 못해 심심하면 뒤집어지는 화면, 부담스러운 클로즈 업, 어지러운 공간 미술, 착란을 유발하는 눈뽕 테러와, 주요 세일즈포인트였을 GRAY의 사운드까지. 이 무지막지한 물량공세는 그 자체로 진입장벽처럼 느껴질 지경입니다. 누군가 정신이 없다며 중도에 낙오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죠. 그렇게 쏟아부은 이미지 모두는 '모순적인 형용'과 '대결적인 관계'로 구축됩니다. ..

Film/Action 2023.10.08

모성 만세 _ 노웨어, 알베르트 핀토 감독

# 0. 눈부신 모성을 우러르는 눈물겹고 집요하고 처절하고 지독한 신화적 예찬 알베르트 핀토 감독, 『노웨어 :: Nowhere』입니다. # 1. 요 며칠 깜냥에 맞지 않는 어려운 영화를 연이어 보았는데요. 모처럼 날로 먹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나이스. 모성 만세! 모성에 대한 영화라 말하기도 뭣한 게 그냥 모성이 전부입니다. 아빠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엄마 최고예요 엄마 사랑해요 노래를 부르는 작품이죠. 제한적인 영화라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노골적입니다. '연약한 여자'였던 주인공이 '강인한 엄마'로서의 모성을 각성한다는 내용이고, 영화는 그 목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일련의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폭력적인 장치들, 이를 테면 위험천만한 컨테이너에..

Film/Thriller 2023.10.06

하우프루빗 _ 포커페이스, 라이언 존슨 / 나타샤 리온 감독

# 0. 누가 범인인가 (who done it?)의 미스터리를 대신하는 어떻게 범인을 밝힐 것인가 (how prove it?)의 서스펜스 라이언 존슨 / 나타샤 리온 감독, 『포커페이스 :: Poker Face』입니다. # 1. 을 본 사람치고 니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오뉴블을 제법 재미있게 본 저 역시 나타샤 리온은 썩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여유롭고 정겹고 온화하면서 동시에 세상에서 서너 발짝 떨어진 듯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특유의 톤이 매력적인 배우죠.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장르물로 만들어버리는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헤어스타일과 허스키한 목소리도 멋지구요. 다만 그녀의 캐스팅만을 근거로 작품을 고르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선구안이 좋은 배우는 못 되거든요. 시리즈를 크게 기대했던..

Series/Thriller 2023.08.04

압박과 환희가 교차하는 완성의 순간 _ 보일링 포인트, 필립 바랜티니 감독

# 0. 주인공은 단연 촬영입니다. 인물이든 환경이든 사건이든 요리든 그 무엇이 되었든 촬영 방식에 우선하지는 못합니다. 필립 바랜티니 감독, 『보일링 포인트 :: Boiling Point』입니다. # 1. 보일링 포인트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나 롱 테이크(Long take)일 텐데요. 본론에 앞서 테이크(Take)가 뭔지부터 가볍게 짚고 가도 좋겠죠. 다음백과에서 제공하는 김광철 씨의 저서 영화사전은 '중간에 끊지 않고 촬영한 하나의 연속적인 화면 단위를 지칭하는 용어'라 설명하는 데요. 대충 카메라 녹화 셔터를 한번 누른 후 정지를 위해 다시 셔터를 누르는 사이를 의미하는 촬영의 최소 단위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하겠네요. 쇼트(Shot)라는 말도 비슷한 의미로 쓰이곤 하는데요. 테이크는 촬영 용어, 쇼트..

Film/Drama 2023.07.14

피해망상의 주인 _ 웨더링, 메갈린 에치쿤워크 감독

# 0. 피해망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메갈린 에치쿤워크 감독, 『웨더링 :: Weathering』입니다. # 1. 확실히 넷플릭스는 단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단편을 낼 거라면 차라리 시리즈를 선호하는 편인데요. 체류시간을 최대한 길게 뽑아내자는 운영방침에 반하기 때문인 거겠죠. 그럼에도 가끔씩은 단편을 제작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단편은 왓챠에서 주로 본다지만 외국 단편은 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소소하게나마 제작되는 넷플릭스산 단편들은 생각보다 더 쏠쏠합니다. 아이를 유산하게 된 엄마가 느끼는 자책감과 트라우마를 조명하는 작품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겁니다. 병원과 집을 오가는 각각의 장면들은 실제 일어난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인공 '제미나'를 짓누르는 가혹한 감정들의 시각적 ..

Film/Thriller 2023.06.30

닌쟈리 방방 _ 존 윅 시리즈,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 0. 연작의 신작이 나올 때면 기계적으로 예전 영화들을 몰아보게 되는데요. 이번엔 존 윅이군요. 최근 들어 매트릭스도 그렇고 백 투 더 퓨쳐도 그렇고 오래전 시리즈를 하나의 글로 뭉개서 수다를 떠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이런 것도 썩 나쁘지 않다 싶기도 합니다. 보고 싶은 신작의 리스트가 밀린다는 점만 빼면 말이죠.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존 윅 :: John Wick』입니다. # 1. 이러나저러나 존 윅의 핵심 키워드는 분노입니다. 존나 센 주인공이 빡쳐서 모조리 죽여버리는 액션 영화라는 정의에 이렇게나 무식하게 들어맞는 작품도 또 없죠. 비슷한 감정선을 가지는 대부분의 영화들은 빈 컵을 준비한 후 물을 담는 과정을 성실하게 묘사하는 방식으로 풀어갑니다. 담기는 물(스트레스)의 양으로 분노의..

Film/Action 2023.04.20

얼음으로 들어가 불로 나온다 _ 디스트릭트 9, 닐 블롬캠프 감독

# 0. 볼 영화가 없다는 건 정확한 표현은 아닐 겁니다. 그저 '지금 영화관에서' 볼 영화가 없을 뿐이죠. 닐 블롬캠프 감독, 『디스트릭트 9 :: District 9』입니다. # 1. 여러분께서 이 글을 언제 읽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2023년 3월 중순인 지금 국내 영화판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강제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재들의 전유물인 것만 같던 슬램덩크가 400만을 훌쩍 돌파하고, 팬이 많은 만큼 중2병이란 꼬리표도 함께 따라다니던 신카이 마코토의 스즈메가 300만을 노리고 있는 요즘이죠. 포스트 코로나의 수혜를 다른 영화도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이 받고 있는 모습이 다소 어색하긴 합니다. 영화로 밥 벌어먹고사는 당사자들에겐 심각한, 한 발짝 떨어진 사람들에겐 신기한 작금의 현상에 대해 갑론..

Film/SF & Fantasy 2023.03.28

겁나 높은 곳은 겁나 무섭다 _ 폴: 600미터, 스콧 만 감독

# 0. 사는 건 힘들고, 죽는 건 무섭다. 스콧 만 감독, 『폴: 600미터 :: Fall』입니다. # 1. 암벽 등반 마니아 셋이 있었는데요. 달달한 신혼부부 사이 여자 하나가 꼽사리 낀 모양새군요. 사랑의 암벽 등반을 즐기던 중 남편이 거대 닭둘기에 당해 낙사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눈앞에서 남편 잃은 아내는 폐인이 되고, 같이 벽 타던 친구는 잠적합니다. 긴 시간 괴로움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아내가 남편 따라가기 직전 잠적한 친구가 짜잔 나타나는 데요. 그 사이 인스타와 유튜브를 두루 섭렵한 개막장 관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친구 헌터는 남편 잃은 주인공 베키를 꼬셔 600미터짜리 티브이 타워에 올라가 유해를 뿌리자는 속이 뻔한 제안을 하는데요. 정신 나간 마누라는 그것 참 좋은 아이디어구나..

Film/Thriller 2023.03.16

정체와 요행의 미스터리 _ 9명의 번역가, 레지 루앙사르 감독

# 0. 왜 문학이어야 했을까. 왜 번역이어야 했을까. 레지 루앙사르 감독, 『9명의 번역가 :: Les Traducteurs』입니다. # 1. 장르와 소재의 연동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대부분의 설정은 걸맞은 권위를 부여받지 못합니다. 문학과 번역이라는 코드는 작품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왜 문학이어야 했는지, 왜 번역이어야 했는지에 대한 설득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죠. 어떤 수학 난제가 있고 그걸 풀어낸 누군가가 있어 이를 검토하기 위해 전문가를 모아뒀다 가정해 봅시다. 사실 진짜 난제를 풀어낸 건 무명의 젊은 친구였고, 그가 스승의 복수를 위해 검토팀에 잠입했다 하더라도 이야기가 굴러가는 데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겁니다. 혹은 회사 병합을 하는 데 관련된 기밀이 있어 관계자들이 밀실에 모..

Film/Thriller 2023.02.28

야망의 초상 _ 맥베스의 비극, 조엘 코엔 감독

# 0. 빛의 캔버스 위, 잠식하는 그림자로 그려낸 살아 움직이는 야망의 초상 조엘 코엔 감독, 『맥베스의 비극 :: The Tragedy of Macbeth』입니다. # 1.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입니다. 4대 비극 중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래도 오셀로 덕에 꼴등은 면한 친구죠. 누구나 냉장고엔 먹다 남은 트러플이라도 있는 듯 맥베스를 읽은 것처럼 말하지만, 현실은 햄릿조차 인용하기 만만찮은 세상이니 익숙지 않으신 분들이 많으리라 가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겁니다. 영화 이야기에 앞서 대충의 줄거리 정도는 환기하고 시작하는 것도 괜찮은 거겠죠. 스코틀랜드의 장군이자 왕족이자 글라미스의 영주 맥베스입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친구 뱅코와 왕에게 돌아가는 데 광야에서 마녀를 만나 예언을 듣습니다..

Film/Thriller 2023.01.30

호다다닥 샥샥 _ 요짐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 0. 명절엔 영화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요짐보 :: 用心棒』입니다. # 1. 명절 특선 하면 고전 액션 영화들을 많이 봤던 기억입니다. 특히 대표적인 것이라면 성룡의 영화들을 꼽을 수 있겠죠. 아무리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 년에 두어 번은 성룡을 보게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성룡의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더랬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점점 신작들이 특선으로 골라지는 듯한데요. 이젠 그 주기가 짧아지다 못해 불과 몇 개월 전에 개봉한 최신작이 풀리는 지경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당장 이번 설만 하더라도 지난여름 개봉했던 와 를 안방에서 즐길 수 있었죠. 저는 정가 다 주고 영화관에서 봤는데요. 내심 서운하네요. 서운한 와중에 문득, 당장 손실을 줄이기 위해 타 플랫폼..

Film/Action 2023.01.26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ⅱ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ⅰ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 0.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 등을 집필한 장르 문학가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영미권에서는 순수문학가이자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더욱 큰 인물입니다. ... 나무위키가 그렇다네 morgosound.tistory.com # 6. 암시와 복선은 미스터리를 위해 기능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드라마적 기준에서 숨겨지지 않는 악행과 죄책감을 표현하는 메타포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자신의 복수를 숨기는 동시에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함께 묻어 숨기려 했지만 숨길 수 없었고, 그것이 복선이라는 형태로 관객에게 들키고 있다는 것은 곧 랜도르 스스로에게도 자신의 죄책감이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었다는..

Film/Thriller 2023.01.18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ⅰ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 0.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 등을 집필한 장르 문학가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영미권에서는 순수문학가이자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더욱 큰 인물입니다. ... 나무위키가 그렇다네요. 스콧 쿠퍼 감독, 『페일 블루 아이 :: The Pale Blue Eye』입니다. # 1. 포의 이름을 들은 관객은 직관적으로 지적호기심을 최대한 자극하는 고오급 추리물을 기대하기 마련일 텐데요.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감상을 방해하는 성급한 기대가 되고 말았다는 생각입니다. 영화 에서 미스터리는 부차적인 재미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영화 속 미스터리는 삶의 목적을 상실한 길 잃은 주인공의 내면을 세계로 확장시켜 장르적으로 투사한 것에 가깝습니다. 본질은 잔혹한 과거를 가진 한 남자의 깊은 ..

Film/Thriller 2023.01.16

이건 다른 장르입니다만 _ 글래스 어니언, 라이언 존슨 감독

# 0. 형식 위에 수립된 브랜드가 형식을 포기하고 나면 남는 게 뭐지? 라이언 존슨 감독, 『글래스 어니언 :: Glass Onion A Knives Out Mystery』입니다. # 1. 시리즈의 정체성과 연속성이 깔끔하게 휘발, 아니 붕괴되었습니다. 만세. 앞선 의 글에서 정통 후더닛의 매력을 계승하면서도 오답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대신 10분 내외의 작은 질문의 연쇄를 선택한 영리한 작품이라 말씀드렸는데요. 단 두 편 만에 시리즈의 매력과 정체성이 몽땅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형식 위에 수립된 브랜드가 형식을 포기한 셈이라 주인공 블랑의 캐릭터만 공유하는 별개의 작품이라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편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전반부 휘향찬란 돈지랄 눈뽕으로 비비고, 중반부 두 주인공의 추적 어드벤처로 버..

Film/Thriller 2022.12.30

미스터리 체리피킹 _ 나이브스 아웃, 라이언 존슨 감독

# 0. 크리스마스엔 역시 살인이지 라이언 존슨 감독, 『나이브스 아웃 :: Knives Out』입니다. # 1. 영화를 검색하다 보면 '후더닛'이라는 키워드가 함께 뜨는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Who done it? 을 들리는 대로 옮겨놓은 건데요. 미스터리 사건 속 수수께끼를 풀어 진범을 찾아내는 플롯의 추리물의 별칭 정도로 이해하시면 무난합니다. 은 아주 오랜만에 나온 후더닛 무비, 그것도 어설픈 퓨전 따위를 곁들이지 않은 정통 후더닛의 특성을 정석적으로 따라가는 작품이죠. 무고한 것이 확실한 주인공과 그의 누명을 벗기고 진실을 밝혀내는 섹도시발 천재 탐정 vs 진범의 정체와 트릭이라는 형식을 빌린 작가 간의 흥미진진 머리싸움입니다. 상황과 공간을 폐쇄적으로 제한한 후 몇몇의 용의자를 특정해 이..

Film/Thriller 2022.12.28

넓게 잡고 얕게 판다 _ 보이저스, 닐 버거 감독

# 0. 이렇게 얕을 거라면 왜 우주까지 끌고 가서 그 난리를 피운 거지? 닐 버거 감독, 『보이저스 :: Voyagers』입니다. # 1. 이제는 조금 식상하기까지 한 우주 배경의 사고 실험물입니다. 인간 군상을 집어넣은 가상의 실험실을 만든 후 계를 분리시키기 위해 냅다 우주로 던져버리는 식이죠. 인터스텔라 같은 유명 작품뿐 아니라, 얼마 전 창세기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 같다 말씀드린 바 있는 하이라이프 같은 영화들도 비슷한 접근법을 공유하는 작품이었더랬습니다. 언제나처럼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최후의 희망. 뭐, 고런 식으로다가 적당히 당위를 만드는 과정에서 고증 오류가 듬성듬성 발견되기도 합니다만, 역시나 그런 오류에 집중하는 것은 썩 무의미합니다. 애초에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어드벤처가..

Film/SF & Fantasy 2022.12.16

김치피자탕수육 _ 유로파 리스트, 세바스챤 코르데로 감독

# 0. 파운드 푸티지 베이스에 아마겟돈식 영웅 서사랑 크리쳐 앤딩을 비비면?! 세바스챤 코르데로 감독, 『유로파 리스트 :: Europa Report』입니다. # 1. 이상하겠죠. 실제 이상한데요. 그런데 생각보다는 또 볼만합니다. 명작은커녕 수작도 조금 버겁습니다만 컬트적인 재미가 없다 말하는 것은 그것대로 가혹합니다. 세상 건조하고 차가운 파운드 푸티지에 동료애 넘치는 뜨뜻한 갬성 서사를 더하고, 고증이 핵심인 우주 탐사 SF와 개 뜬금 판타지 크리쳐물을 비벼놨는데 덜컹거리긴 해도 어찌어찌 돌아는 갑니다. 다양한 요소들이 충돌함으로 인한 불가분의 장단점이 매우 뚜렷합니다. 극단적인 퓨전 요리인 탓에 빈말로라도 대중적이라 말할 순 없지만 동시에 좋아하시는 분들은 맛있게 드시기도 하는 김피탕 같은 영화..

Film/SF & Fantasy 2022.12.04

집탈출 게임 _ 런, 아니쉬 차칸티 감독

# 0. 방탈출 게임을 테마로 영화를 뽑으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아니쉬 차칸티 감독, 『런 :: Run』입니다. # 1. 빌런의 정체와 내막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기대하시면 곤란합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스테이지 탈출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타임어택 퍼즐 게임의 경험에 훨씬 가까운 작품이죠. 실제 전개를 보면 방이면 방, 복도면 복도, 계단이면 계단, 약국이면 약국, 지하실이면 지하실. 각 공간을 스테이지 단위로 칼같이 구분한 후 그 공간의 미션을 풀 수 있는 명확한 해법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장르적 측면에서 엄마의 존재는 주인공을 정신적으로 압박하는 카리스마 빌런이라기보다는, 정해진 시간 안에 방을 탈출하도록 주인공의 등을 떠미는 게임의 조건, 째깍째깍 조여 오는 모래..

Film/Thriller 2022.11.26

습기와 그늘 _ 매혹당한 사람들, 소피아 코폴라

# 0. 똬리 틀고 돌아보는 뱀. 이름 모를 버섯의 군락. 습기. 그늘. 그리고 매혹이란 이름의 독. 소피아 코폴라 감독, 『매혹당한 사람들 :: The Beguiled』입니다. # 1. 1864년 전쟁으로 인해 모두가 떠난 인적 드문 마을. 심각한 다리 부상으로 죽음 직전 상태에 놓인 군인 '존'이 구조되고, 7명의 여자들만 살고 있는 비밀스러운 대저택에 머물게 된다. 유혹하는 여인 '미스 마사'부터 사로잡힌 처녀 '에드위나', 도발적인 10대 소녀 '알리시아'까지 매혹적인 손님의 등장은 그녀들의 숨겨진 욕망을 뒤흔들고, 살아남으려는 '존'의 위험한 선택은 모든 것을 어긋나게 만드는데... # 2. 기본적으론 제목에서처럼 [유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잘생긴 남정네 하나를 두고..

Film/Thriller 2022.11.06

통제와 오차 _ 듀얼 : 나를 죽여라, 라일리 스턴즈 감독

# 0. 통제의 교차로에 갇혀버린 삶 오차를 누린 자의 풍요로운 죽음 라일리 스턴즈 감독, 『듀얼 : 나를 죽여라 :: Dual』입니다. # 1.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자신과 같은 유전자의 클론을 만드는 SF적 세계관입니다. 작품은 클론을 '더블'이라 부르죠.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 주인공 '세라'는 자신을 대신할 더블을 구매하기로 결정합니다. 남은 시간 동안 '세라 더블'에게 자신의 습관과 취향과 성향,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따위를 전달하며 대체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10달이 지나도 죽지를 않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세라는 병원을 찾아가는데 의사로부터 불치병이 나았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되찾아야겠다 생각한 세라는 더블을 폐기하기로 하는데요. 이미 너무 많은 ..

Film/SF & Fantasy 2022.09.26

나를 찾...았네? _ 올웨이즈 샤인, 소피아 타칼 감독

# 0. 서론만 덩그러니 소피아 타칼 감독, 『올웨이즈 샤인 :: Always Shine』입니다. # 1. 배우를 꿈꾸던 두 친구가 있었는데요. 한 명은 잘 나가고 한 명은 못 나가게 되면서 사이가 멀어집니다. 잘 나가는 애는 매 작품마다 벗는 것 때문에 콤플렉스가 있는 것으로 소개되는데요. 어차피 휘발되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두 친구는 우정을 회복하기 위해 여행을 가기로 하는데요. 그래 놓고 여행 내내 서로 염장을 지르는 띠꺼운 짓만 골라합니다. 잘 나가는 애는 그래도 잘 나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생각 없는 소리 툭툭 내뱉어 친구의 열등감을 자극하긴 하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훨씬 포용적이고 사교적입니다. 못 나가는 애 역시 못 나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대한 모든 것들을 고깝게 보는 사람의..

Film/Thriller 2022.09.04

교환살인은 거들 뿐 _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누구나 없애고 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설마 없애고 싶은 사람이 한 명도 없으셨어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열차 안의 낯선 자들 :: Strangers On A Train』입니다. # 1. 교환 살인 [交換殺人] 알리바이를 만들고 동기를 숨기기 위해 둘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의 상대를 교환해 대신 죽이는 행위. 고전 명화 하면 가장 먼저 따라붙는 말은 역시나 '교환 살인'일 텐데요. 그렇다고 메인 테마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껏해야 모티브 정도에 불과하죠. 교환 살인이 메인 테마가 되려면 알리바이가 완벽한 듯한 몇몇의 별건들 사이 인과를 파훼하는 '추리극'이라는 식으로 가는 것이 합당합니다만, 이 작품은 애초에 교환 살인이 완성되지도 않을뿐더러, 사건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전개의 방..

Film/Thriller 2022.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