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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Thriller

하우프루빗 _ 포커페이스, 라이언 존슨 / 나타샤 리온 감독

그냥_ 2023. 8.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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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누가 범인인가 (who done it?)의 미스터리를 대신하는

어떻게 범인을 밝힐 것인가 (how prove it?)의 서스펜스

 

 

 

 

 

 

 

 

라이언 존슨 / 나타샤 리온 감독,

『포커페이스 :: Poker Face입니다.

 

 

 

 

 

# 1.

 

<Orange is The New Black>을 본 사람치고 니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오뉴블을 제법 재미있게 본 저 역시 나타샤 리온은 썩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여유롭고 정겹고 온화하면서 동시에 세상에서 서너 발짝 떨어진 듯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특유의 톤이 매력적인 배우죠.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장르물로 만들어버리는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헤어스타일과 허스키한 목소리도 멋지구요. 다만 그녀의 캐스팅만을 근거로 작품을 고르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선구안이 좋은 배우는 못 되거든요.

 

시리즈를 크게 기대했던 건 역시나 '라이언 존슨'이라는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스타워즈 팬들이 학을 떼는 인물이라는 것은 십분 이해합니다만, 복고적 후더닛 무비의 재미를 살린 수작 <나이브스 아웃>이나, 샤말란식 터미네이터라는 평을 들었던 <루퍼> 같은 작품들을 재미있게 본 사람들에겐 그의 손을 거쳤다는 미스터리 추리극에 일정한 기대감을 가지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는 일이죠.

 

 

 

 

 

 

# 2.

 

시리즈를 수입한 왓챠 역시 전작에서 이룬 감독의 명성에 주목하는 듯합니다. 드라마 버전의 나이브스 아웃이라는 식으로 홍보하는 듯한 모양새인데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정확한 표현이냐 하면 그것도 애매하긴 합니다. 범죄 추리물이긴 한데 범인과 내막을 추적하는 전통적 후더닛과는 정반대의 접근법을 가진 작품이거든요. 시리즈는 모든 에피소드에 있어 범인뿐 아니라 범죄 행각, 경우에 따라선 범죄 동기까지 모조리 공개한 후 시간을 되짚어가는 플롯을 가집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하는 대신 이미 알고 있는 범죄의 내막을 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증명하고 설득할 것인가 라는 지적 호기심을 동력 삼아 끌고 나가는 작품인 것이죠. 그리고 일련의 플롯은 다시 작품 고유의 설정과 만나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이루게 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우선 그 설정이라는 것을 살펴봐야 할 텐데요. 바로 주인공 찰리의 '거짓말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죠. 사실 그녀의 능력은 미스터리물로서는 밸런스 붕괴에 가까운 설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홈즈의 추리력과 같은 천재 캐릭터의 비현실적 권능으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찰리의 검증은 무조건적인 진실이라 합의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에, 범인을 탐색하는 나(관객)의 추리는 아무리 노력해 봐야 부정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찰리의 능력과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충돌하는 상황은 일련의 역행 플롯으로 인해 해소됩니다. 관객에겐 영상의 형태로 범인을 먼저 알려주고 곧이어 찰리에겐 능력을 통해 범인을 지목하게 한 후. 찰리는 내막을 파해치는 시간의 순방향으로, 관객은 내막을 검증해 나가는 플롯의 역방향으로 다가가다 가운데서 만나는 순간 범인을 단죄하며 카타르시스가 작동한다는 것이 드라마 <포커페이스>의 핵심 원리라 할 수 있는 것이죠.

 

 

 

 

 

 

# 3.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장르적 재미는 '미스터리'에서 '서스펜스'로 대체됩니다. 찰리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져봐야 이미 사건의 실체를 눈으로 본 관객보다는 불완전한 정보를 가질 수밖에 없고, 그 차이로 말미암아 서스펜스가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직 확신을 가지지 못한 찰리가 방금 사람을 죽인 범인 앞에서 자신의 추리를 줄줄 읊으며 긴장을 유발하는 장면은 각 에피소드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습니다. 서스펜스는 감각적인 장르적 재미를, 찰리가 풀어나가는 논리적 추론은 이성적인 지적 재미를 낳게 되고 두 가지 재미가 핑퐁처럼 교차하는 리듬이 인상적입니다. 일련의 원리는 개별 에피소드뿐 아니라 10화에 걸친 시즌 전체에도 통일되게 적용됩니다. 9화까지 진행되던 이야기가 10화에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연출은 충분히 위력적이죠.

 

이 같은 경험의 반복은 스쳐 지나는 사소한 떡밥들과 인물들에게도 일정한 집중을 할애할 것을 요구한 후 충실히 보상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집중을 붙들어 매는 데 기여합니다. 강력한 지적 호기심을 특유의 경쾌한 리듬과 단단한 시나리오, 응큼한 떡밥들로 조립하는 감각은 과연 나이브스 아웃에서의 재미를 부분적으로 떠올리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할 수 있겠죠.

 

 

 

 

 

 

# 4.

 

나이브스 아웃에서처럼 복고적 장르 특유의 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도 순간순간 클리셰를 얄밉게 피해나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범인과 피해자 관계가 선제적으로 결정된 이야기임에도 각 에피소드마다 나름의 반전이 준비되어 있어 의외성을 부여한다는 점도 훌륭하죠. 회차마다 정석적인 테마가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데요. <야간 근무>는 cctv 트릭, <스톨>은 밀실 살인, <메탈 안에 잠들다>는 사고 위장, <원숭이 쇼>는 알리바이 조작, <죽음의 무대를 떠나다>는 공동정범이라는 식이죠. 각각 추리물에 친숙한 관객들이라면 익숙하지 않을 수 없는 복고적 테마들이라는 점에서 이 모든 것들이 오래 전 펄프 픽션에서나 볼 법한 시리얼 필름을 하나씩 소비하는 듯한 감각도 있습니다. 과격한 타이포그래피는 일련의 복고적 분위기에 특별히 기여하기도 하구요. 때문에 몇몇 장면들을 보노라면 나이브스 아웃보다 오히려 타란티노의 향기가 어렴풋이 나는 듯도 하달까요.

 

그 외에 요소요소 등장하는 60'-70' 히피 문화와 컨츄리 뮤직, 펑크 락 등을 로드 무비에 얹어 내달리게 만듦으로써 그 자체로 20세기 후반 미국 남부 대중문화를 거대한 향수 혹은 오마주처럼 훑고 지나가는 맛도 있습니다. 콜로이 세비니를 비롯해 엘렌 바킨, 체리 존스, 주디스 라이트, 닉 놀테, 론 펄먼과 같은 B급 영화 등지에서 활약한 원로 배우들을 캐스팅해 그들이 주축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준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다이내믹한 카메라 연출과 몇몇의 스타일리시한 표현, 미국 남부 특유의 자연주의적 색감, 산뜻하고 경쾌한 리듬, 뛰어난 말맛의 위트 있는 대사들은 그 자체로 작품의 완성도를 일정 부분 증명합니다.

 

 

 

 

 

 

# 5.

 

진실을 꿰뚫어 보는 선량한 주인공이 끊임없이 고립되고 쫓긴다는 점, 특히 마지막 화에서 가족으로부터도 거부당한다는 점에서 진실과 선량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듯한 페이소스도 작품엔 녹아 있는데요.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 느낌은 라이언 존슨의 흔적이라기보다는 공동 연출자 나타샤 리온의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합니다.

 

배우 얘기가 나온 김에 카메오는 정말 화려합니다. 불안과 불확실성을 연기하는 에이드리언 브로디를 시작으로, 광기와 가증스러움을 섬뜩하게 소화하는 체리 존스, 능글 맞고 재수 없는 사이코패스 조셉 고든래빗, 그 외에 팀 브레이크 넬슨, 사이먼 헬버그에 이르기까지 눈부신 배우진은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었을 시리즈에 쏠쏠한 입체감을 선사합니다.

 

<리틀 드러머 걸>이나 <카지노>처럼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의 형식만 빌린 초장편 영화는 아닙니다. 얼핏 말씀드린 펄프 픽션을 보는 것과 같은 훨씬 전통적인 에피소드 중심의 시리즈물에 가깝죠. 1화에서 확보한 중량감이 2화에서 급격히 가벼워지는 탓에 집중이 흔들리기도 하는데요. 실망하지 마시고 따라가신다면 5화 즈음부터 점점 크레셴도 되는 서스펜스를 흥미롭게 즐기실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라이언 존슨 / 나타샤 리온 감독, <포커페이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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