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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시네마의 몸짓 _ 너는 나를 불태워, 마티아스 피녜이로 감독

그냥_ 2026. 1.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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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텍스트의 공백을 달콤쌉싸름하게 어루만지는 시네마의 몸짓

 

 

 

 

 

 

 

 

마티아스 피녜이로 감독,

『너는 나를 불태워 :: Tú me abrasas』입니다.

 

 

 

 

 

# 1.

 

체사레 파베제의 1947년 희곡 '레우코와의 대화' 중 '바다거품' 장을 각색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텍스트가 이미지로 변이 되는 과정에서 소멸한 언어가 현대적 육체를 얻어 재탄생되는 모습을 탐구하는, 말로만 들어도 골치 아픈 영화되시겠다. 시인 사포와 님프 브리토마르티스는 사랑과 죽음과 욕망에 대해 대화하는데, 피녜이로는 파베제의 정적인 텍스트를 시각적 음절로 분해한 후, 16mm 필름에 얹어 독서라는 행위 자체를 영화적 경험으로 번역하고 있다.

 

사포는 실연의 고통으로 바다에 몸 던진 시인, 브리토마르티스는 미노스의 추격을 피해 절벽에서 뛰어내린 님프다. 둘은 같은 공간에 도달하나 에너지는 판이하다. 사포는 죽음으로 망각을 갈구하지만, 바다가 자신을 집어삼키는 대신 욕망의 유체 속을 헤엄치게 만든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이는 박물관의 조각상, 고정된 텍스트, 슬픈 표정 등의 시각적 이미지에 대응한다. 한편, 브리토마르티스는 삶의 순환과 변화를 수용하고 있고, 이는 바다의 거품으로 변하는 운명을 인정함을 의미한다. 넘실대는 파도와, 풍성한 거품, 웃는 얼굴과 움직이는 물체 따위다. 감독은 두 존재의 대화 사이에 사포의 실제 시 구절을 삽입함으로써 일련의 텍스트를 '개화'시킨다. 사포를 실연에 빠진 슬픈 여인이란 프레임에 가두는 대신 그녀의 창조적 본질을 복원하기 위함일 것이다. 피녜이로는 사포의 시를 통해 음악적 리듬감을 부여하고 있고, 말미암아 텍스트는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여배우들의 목소리와 신체를 매개로 지금 박동하는 유기체가 된다.

 

 

 

 

 

 

# 2.

 

두드러진 특징은 파편화다. 이를테면 이미지를 마치 시각적 음절(Visual Syllables)로 취급하는 것이다. 감독은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을 인위적으로 결합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산세바스티안에서 촬영된 파도가 마르델플라타의 절벽으로 컷 되고, 다시 아테네의 그림자로 연결되는 식이다. 공간의 전위는 인물들이 처한 유령적인 상태를 시각화함으로써 고전적 사실주의를 파괴하고 있고, 관객은 (비유하자면) 편집의 바느질 자국을 목격함으로써 영화의 세계가 파편들의 인위적 조합임을 끊임없이 주지받는다. 16mm 볼렉스 카메라는 작품의 촉각적인 질감을 결정한다. 아날로그 필름의 거친 입자와 따뜻한 색감은 관객이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만지는 듯한 공감각적 경험을 제공하고 있고. 특유의 기계적 제한과 핸드헬드의 흔들림 역시 작품이 완벽하게 통제된 허구의 세계가 아닌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삶의 파편임을 시사하고 있다.

 

제목 Tú me abrasas은 분석의 예시다. 감독은 단어 하나하나에 이미지를 부여, 텍스트의 불확실성과 의미의 중첩을 시도한다. 가령 Tú(너)는 흔들리는 건물의 이미지에 붙여, 너라는 대상이 고정되지 않고 요동치는 불안정한 존재임을 암시한다. Me(나를)은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는 조급한 손가락으로, 좌절된 욕망, 혹은 일방적인 요청이라는 위치를 시각화한다. Abrasas(태우다)는 가장 재미있는데 불이 아닌 흐르는 수돗물이 배수구를 빠져나가는 이미지다. 타오르는 열정으로서의 연소가 아니라, 소모되고 낭비되는 물의 흐름으로 욕망을 재정립하려는 시도다. 또한 사포는 레즈비언의 에로스를 달콤쌉싸름함(Glukupikron)이라 정의했는데, 피녜이로는 이 모순된 형용을 시각적 병치로 대신한다. 꿀이라는 단어가 들릴 때면 화면에는 짠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식이다. 감각의 충돌은 욕망이 가진 이중성 —기쁨과 고통, 소유와 상실—을 감각하게 만들어 고대 그리스 서정시의 정신이 현대 시네마의 문법으로 말미암아 되살아나게 하려는 시도다. 일련의 텍스트와 이미지의 결합은 스페니쉬와 잉글리시의 틈새에서 관객에게 시각적 단어 맞추기 놀이에 참여할 것을 적극 권유한다. 앞서 말로만 들어도 골치 아픈 영화라 말한 이유다.

 

 

 

 

 

 

# 3.

 

그 사이. 고전의 텍스트와 영화의 이미지 사이에서 발견되는 현대적 서사의 조각이다. 연인에게 쫓겨난 생물학 전공 학생의 이야기다. 학생은 도어록의 비밀번호가 바뀌는 바람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곤경에 처하는 데, 이 짧은 에피소드는 사포와 브리토마르티스가 겪은 거부된 욕망과 배제의 테마를 현대의 일상성 안으로 끌어들인다. 즉, 학생의 처지는 신화 속 인물들이 처한 유령적 상태와 다름 아닌 것으로, 일련의 서브플롯 역시 파편의 형태로만 제공되는 이유다. 영화는 그녀의 이야기를 자세히 보여주지 않기에 관객은 몇몇의 단서만으로 그녀를 추측할 수밖에 없고, 이는 역사적 연속성에 얹어 텍스트의 불확실성을 동시에 탐구하게 한다.

 

애초에 텍스트에 관한 탐구이므로 보충은 각주에 의해 이루어진다. 빈번하게 흐름을 끊는 자막과 내레이션이다. 칼립소에 대한 신화적 해석, 트로이 전쟁의 배경, 사포의 시가 전달된 과정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 따위다. 일련의 각주들은 두 주인공뿐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정보가 상호 간섭하게 함으로써 감정적 몰입을 끊어 영화에 대한 분석적인 태도를 견지하게 만들고, 무엇보다 독서라는 행위 자체를 영화미학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작중 책을 읽는 손이나, 단어에 밑줄을 긋는 행위, 페이지를 넘기는 샷 모두 관객으로 하여금 이 영화를 보지 말고 읽으라 말하는 것과 다름 아니기에 각주는 영화를 보는 행위를 지적 탐구이자 능동적인 독서 경험으로 변모시키는 셈이다.

 

각주 중 하나는 박테리아와 관련된 것으로 바다거품을 생명의 비옥함과 연결해 설명한다. 사랑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사포의 비극적 바다를 끊임없이 미생물이 증식하는 역동적 공간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다. 사포가 갈구했던 망각으로서의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브리토마르티스적 변이와 재생만이 있을 뿐이란 통찰은 뜻밖의 활기를 불어넣는다. 고전과 고통받는 예술가의 신화에 대한 막연한 낭만화를 거절하려는 피녜이로의 일관된 의지가 발견되는 대목이다.

 

 

 

 

 

 

# 4.

 

내내 허공과 텍스트를 거쳐 각자의 내면을 바라보던 사포와 브리토마르티스는 비로소 마주 본다. 시선의 반환은 욕망의 대상이 사라진 뒤의 고독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연결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찾는, 예술적 결론이다. 배우들은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느낌보다, 두 존재가 시공간을 초월해 조우하는 것만 같은 감각을 강조한다. 고정된 자아를 버리고 타자와 바다, 마침내 스스로 거품이 되는 것이다.

 

작품은 텍스트를 이미지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과 오독, 그 틈바구니에서 피어나는 가능성을 두루 예찬한다. 앞서 단어 맞추기 놀이라 말했듯, 전통적 의미에서의 각색에서 벗어나 원전의 파편을 가지고 노는, 그래서 그 어떤 영화보다 유희적인 작품이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답 없는 질문들로 가득한 영화는 사포가 왜 죽었는지, 파베제가 왜 자살했는지에 대해 어떠한 대답도 내놓을 생각이 없다. 단지 그들의 언어가 남긴 조각들을 스크린의 해변 위에 흩뿌린 후, 관객들이 그 조각을 하나하나 집어 자신만의 달콤쌉싸름한 욕망을 매만지게 만들 뿐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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