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1. 단 하나의 이상 현상도 놓치지 말 것.
2. 이상 현상을 발견하면 즉시 되돌아갈 것.
3. 이상 현상이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것.
4. 8번 출구를 통해서 밖으로 나갈 것.

카와무라 겐키 감독,
『8번 출구 :: 8番出口』입니다.
# 1.
흔히 호러 게임이라 알려져 있지만 실은 틀린 그림 찾기식 퍼즐 게임에 가깝다. 플레이 타임은 게임의 규칙을 얼마나 빨리 눈치채냐가 상당 부분 차지하기에 규칙만 알아차리면 그리 오래 걸릴 것도 없다. 아무리 처음으로 돌아간다 한들 어차피 여덟 번만 제대로 맞추면 되는 데다 대부분의 기믹들에 제한시간도 없기 때문이고, 덕분에 어지간히 둔한 사람도 1시간 남짓이면 대충 엔딩을 볼 수 있으니 이례적인 인기와 별개로 작은 게임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많은 게이머들에게 사랑받았던 것은 볼륨 대비 완성도가 그만큼 준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선명한 기획과 직관적인 진행, 익숙하면서도 위화감 드는 공간 디자인,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트릭들의 적절한 배분과, 한번 삐끗하는 순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긴장감, 어느 순간 친해져 버리고 마는 머머리 아저씨의 컬트적 매력 등은 모두 이 게임만의 고유한 매력 포인트다.
여기까지의 설명을 들으면 알겠지만 8번 출구에는 서사가 없다. 무한 반복되는 리미널 스페이스에 떨어졌으니 알아서 돌파하시든가, 싫으면 포기하시든가가 전부다. 따라서 게임을 영화화한다 했을 때 자연스레 길어야 40분 남짓의 단편일 것이라 추측했지만 웬걸. 1시간 30분짜리 장편 영화라 하고 심지어 일본 현지에서부터 호평일색이라 하니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

# 2.
보통의 영화들은 어쨌든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나가기 마련이다. 반면 이 프로젝트는 살덩이(원작 게임)만 덩그러니 있는 상황에서 살이 상하지 않도록 뼈를 집어넣어야 하는 기획이니 특별히 까다로울 법하다. 영화가 찾은 뼈대는 '이상 현상'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는 것이다. 다분히 문제적인 사회적 상황들에 노이즈 캔슬링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과, 그로 인해 반복 재생산되는 부조리를 이상 현상에 은유함과 동시에, 그것을 공적 관계에서 사적 관계로까지 적층시키겠다는 스토리다. 이를 단순히 연설하는 것이 아니라 지하철과 쓰레기 더미의 승강장으로 이미지화하면서도, 그것을 게임의 기믹으로 소화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물론 혹자는 2시간짜리 공익 광고냐는 볼멘소리를 할 만큼 메시지는 특별히 감동적이거나 성찰적이지 않다. 다만 개인적으론 이런 내러티브를 짜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인정해야 한다는 쪽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뼈를 세우고 살을 붙이는 것보다 살이 다치지 않도록 뼈를 집어넣는 게 곱절은 힘들지 않았겠나.
여하튼 적당히 뼈대를 세웠다면 결국 승부처는 구현의 문제다. 카와무라 겐키 감독의 연출은 기대보다 능숙하다. 당장 직관적인 시각적 구현도는 상당히 놀라운 데, 단순히 세트를 미술 하는 것뿐 아니라 집요할 정도로 고스란히 이식된 광원, 앵글, 후편집 등 원작의 분위기를 재현하려 애썼다. 몇몇의 연출자들이 1인칭 게임의 시점을 그대로 이식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것에 반해, 이 영화는 3인칭으로 대체하면서도 미칠듯한 롱테이크와 트래킹 샷으로 절충안을 모색했다는 것도 훌륭하다. 퍼즐 게임은 반드시 오답과 정답이 엇갈려야 하는 장르고, 그것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과제였을 것이다. 감독은 어린아이를 집어넣어 오답과 정답을 하나의 시퀀스 안에 겹쳐 내고 있고, 아이에게 말이 없다는 설정을 얹어 오답을 오답인 상태로 진행될 수 있도록 모색했다는 것도 칭찬할만하다.
부족한 볼륨을 늘릴 겸, 영화의 오리지널리티도 확보할 겸, 코우치 야마토가 연기한 '걷는 남자'의 시퀀스를 과감히 도입한 것도 성공적인 듯 보인다. 같은 상황을 게임하게 되는 수많은 플레이어의 다양성을 영화의 형식으로 소화하기 위한 아이디어였을 것이고, 심지어 여고생을 하나 더 등장시켜 루프가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연쇄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상상하게 하는 것도 경제적인 연출이라 하겠다.

# 3.
굳이 작위적이라 느껴지는 부분이라면 짜증스러울 정도로 콜록대는 주인공의 천식 정도일 텐데, 애초에 이 작품은 답답할 정도의 불편감을 동력으로 하는 영화이니 정체성이라 하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오히려 아득바득 호흡기를 가방에 넣었다 뺏다 한다는 게 살짝 거슬리는 정도. 사실 그보다 더 작위적인 것은 감정선이다.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노골적인 이상현상은 불쾌한 것이 아니라 점차 기분 좋은 날먹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데, 영화 속 주인공은 제자리에 서서 이상현상을 몸으로 받아내고 있고, 스스로 경험한 플레이어들의 감정선과 영화 속 주인공의 감정선이 유리되어 있다는 것은 일부의 관객층을 부분적으로 이탈하게 만든다.
점점 커지는 복도 포스터와 같은 게임 내 인기 기믹들이 조금 더 다채롭게 쓰였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지나가는 기믹들을 이스터에그처럼 몇 개 숨겨뒀더라면, 그래서 게임과 영화 중간의 능동적인 경험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제공했더라면 게임 원작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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