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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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182

숨을 참는다 _ 맘말, 레베카 달리 감독

# 0. 깊은 물속에서 숨을 참는다        레베카 달리 감독,『맘말 :: Mammal』입니다.     # 1. 감독은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 이혼녀와 가출 청소년의 이야기를 포유류(哺乳類)라 명명한다. 두 주인공의 이면에 담긴 종 단위 본성을 싸늘한 시선으로 관조하기 위함이다. 흥미로운 것은 동물 일반이 아닌 굳이 좁은 범위의 포유류로 특정한다는 것이다. 포유류는 젖먹이 동물로, 수컷과 암컷이 새끼를 낳으면 암컷이 유선에서 분비된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는 방식을 특징한다. 즉, 영화는 젖을 먹이고 싶은 암컷의 본성과, 번식하고자 하는 수컷의 본성에 대한 것이다. 인상적인 오프닝처럼 '물'은 작품을 장악하고 있는 핵심적인 메타포다. 당연하게도 물은 영화의 착점으로서 포유류의 본성을 의미한다. 수..

Film/Drama 2025.01.20

사랑을 믿어요 _ 더 리젬블런스, 데릭 응우옌 감독

# 0. goodbye son.        데릭 응우옌 감독,『더 리젬블런스 :: The resemblance 』입니다.     # 1. 부부에겐 아들이 있다. 아니,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와의 마찰로 집을 나간 아들은 2년 전 쓸쓸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부모에게 하나뿐인 아들의 상실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혼자만 다른 시간을 사는 화분처럼, 매일 꺼지지 않는 향처럼, 여전히 액자 속에서 웃고 있는 얼굴처럼 말이다. 과거에 정체된 부부는 서비스를 하나 신청한다. 패밀리 렌털 서비스는 가족과 최대한 닮은 배우를 단기 고용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고객들은 치유의 목적으로 신청한다 소개된다. 일종의 연극치료 같은 것이다.  물론 확신은 없다. 제 손으로 장례를 치른 죽은 아들과 닮은 배우를 만..

Film/Drama 2025.01.14

사그라드는 제국의 선율 _ 클로징 다이너스티, 로이드 리 최 감독

# 0. 팔아선 안될 것들을 파는 동안 사그라드는 제국의 선율        로이드 리 최 감독,『클로징 다이너스티 :: Closing Dynasty』입니다.     # 1. 위력적인 단편의 결말은 두 가지 이미지의 중첩이다. 하나는 퀴니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이 문을 닫는다는 것, 다른 하나는 소녀가 하루종일 벌어들인 돈을 부모님의 금고에 넣었다는 것이다. 전자를 세계에 대한 감독의 진단이라 한다면, 후자는 그 진단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자 원리다. 즉발적인 감동은 제목의 언어유희와 관련된 폐업을 앞둔 다이너스티의 꺼진 간판에 있을지 모르나, 그럼에도 영화의 본질은 소녀가 돈을 버는 방식과 그 이유에 있다. 저연령 빈곤층 이민자라는, 연령과 계급과 신분을 복합적으로 은유하는 퀴니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교..

Film/Drama 2024.12.20

실망입니다 _ 더 납작 엎드릴게요, 김은영 감독

# 0. 기대가 배신되면 관객은 반드시 실망한다.        김은영 감독,『더 납작 엎드릴게요 :: Will you please stop, please』입니다.     # 1. 사람은 누구나 선입견을 가지고 있고 영화를 대하는 관객 역시 다르지 않다. 제목의 개성이든, 시놉시스의 창의성이든, 감독의 스타일이든, 배우의 명성이든, 박스오피스의 성적이든, 작품의 규모든 그 근거가 뭐가 됐든 말이다. 이때의 선입견은 다시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예측이고 다른 하나는 기대다. 예를 들어 조커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 가정할 때 '배트맨도 나오지 않을까?'라는 것은 예측이고 '겁나 멋진 조커가 나를 가슴 뛰게 하겠구나!'라는 건 기대다. 예측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예측한 대로 배트맨이 나온다 해서 문제 될 ..

Film/Drama 2024.11.28

북쪽의 사람들 _ 노스맨, 로버트 에거스 감독

# 0. 선량한 복수의 세계로 빨아 당기는 일렁임, 이글거림, 으르렁거림.        로버트 에거스 감독,『노스맨 :: The Northman』입니다.     # 1. 우리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즐기는 동안 올림푸스와 동시에 그런 상상을 만개하던 아고라를 함께 떠올린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으며 인생의 유한함을 고찰하면서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을 했던 그 옛날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자취를 함께 즐긴다. 히브리 신화를 읽는 동안 기독교 교리 아래로 당대 서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상을 상상하고, 단군신화를 배우며 쑥과 마늘의 이야기 이면에 담긴 오래전 한반도에 자리했던 조상들과의 문화적 연결성을 확인한다. 이처럼 신화가 특별한 건 이야기만큼이나 특별한 화자의 세계가 동시에 느껴진다는 것..

Film/Drama 2024.11.18

단단해지기 _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이시바시 유호 감독

# 0. 단단해지기를(을) 사용했다!효과는 굉장했다!        이시바시 유호 감독,『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 朝がくるとむなしくなる』입니다.     # 1. 평범하게 소박한 이이츠카의 이야기는 솔직함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에게 당연하고 평화로울 아침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애써 커튼을 당기듯 스스로 거짓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거짓이란 타인을 향한 거짓과 자신을 향한 거짓을 모두 의미한다. 흔히 모든 거짓은 이기적이라 생각하지만 오해다.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있다 숨기는 거짓말은 유리한 것이지만, 그런 자신의 인생에서 채워진 것으로서의 대견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건 불리한 거짓말이다. 대부분의 거짓말이 유리함에도 어떤 거짓말들이 그렇지 않은 건, 그들에겐 거짓이 아플지언정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방..

Film/Drama 2024.11.12

시간과 격려 _ 라스트 버스, 질리스 맥키넌 감독

# 0. 맞닥뜨리는 죽음에서 받아들이는 죽음으로        질리스 맥키넌 감독,『라스트 버스 :: The Last Bus』입니다.     # 1. 시작과 출발이 정해진 노인의 여행은 무릇 인생을 은유하기 마련이나, 티모시 스폴의 이야기는 다소 이질적이다. 아내의 죽음에서 시작해 자신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면에서, 탄생에서 죽음까지 훑어나가는 '인생'보다는 '죽음'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것에 가깝다. 또한 죽음에도 서사가 있으며, 출발점으로서의 죽음과 도착점으로서의 죽음이 달리 존재함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입에서부터 그러하듯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관한 것이다. 브리튼섬 서남단 랜즈엔드(Lands' End)에서 시작된 사랑이 동북단 존 오그로츠(John o' Groats)로 숨어든 것은 눈에 넣..

Film/Drama 2024.11.02

길 잃은 남자 _ 고립된 남자, 바실리스 카추피스 감독

# 0.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바실리스 카추피스 감독,『고립된 남자 :: Inside』입니다.     # 1. 고백하자면 나는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보는 동안 적어도 두어 번 이상 길을 잃었다. 이후의 글은 그 과정만을 간신히 옮긴 것이다.  자, 일단 스릴러는 아니다. 주인공은 처음 보는 늙은 도둑이고, 그의 위기를 걱정해야 할 동인이 없는 상황에서 긴장은 성립할 수가 없다. 호화로운 펜트하우스에 갇혀 말라죽어가는 윌렘 데포를 보며 안타까워할 사람보다는 연기에 감탄할 사람이 훨씬 많을 거라 예상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실험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작위적 환경과, 감상을 어지럽히는 난해한 암시 탓에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면의 알레고리를 탐색하게 되는 데, 감독은 그 부분에서 ..

Film/Drama 2024.10.14

규범을 회의하는 두 개의 눈 _ 가여운 것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 0. 바라보는 눈과, 바라보는 눈을 바라보는 눈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가여운 것들 :: Poor Things』입니다.     # 1. 요르고스 란티모스다. 여지없이 과격하고 기괴한 스타일이지만, 진정 궁금한 것은 이번엔 또 어떤 관념에 도전하고 있을까라는 것이다. (2009)를 통해 언어와 사고 체계의 상관관계를 재고하고, (2015)를 통해 자아와 관계의 함의를 탐구했던 감독은, 야심 찬 엠마 스톤과 함께 규범과 사상을 회의한다. 단순히 규범을 어기는 일탈이 아니다. 규범을 어기는 것은 기존의 규범에 반하는 형태로 종속된 새로운 규범을 실천함이고, 이는 그가 어떤 명분과 대안을 제시하는 지와 무관하게 여전히 규범적이다. 란티모스는 규범이라는 것 그 자체에 대해 가치중립적으로 주목하고..

Film/Drama 2024.10.08

그녀 _ 행복, 아녜스 바르다 감독

# 0. 모든 면에서 그녀, 아녜스 바르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행복 :: Le bonheur』입니다.     # 1. 남자 프랑수아는 도덕적으로 파탄한 인물임에 분명하나 그것은 전혀 논쟁적이지 않은 것이기에 매몰되는 것은 시시하다. 오히려 외도보다 중요한 것은 외도하는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작품이 이질적인 것은 프랑수아의 외도에도 불구하고 아내에 대한 불만이나 권태, 불성실을 연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전히 아내와 가족을 사랑하고 그로부터 큰 행복을 얻고 있지만, 새로운 여자 에밀리로 인해 추가적인 행복을 얻을 수 있었고, 그것이 행복의 총량을 증진시켰을 뿐이라는 식이다. 프랑수아를 정의하자면 '지극히 행복지향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인생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라는 명제를..

Film/Drama 2024.10.02

통제하는 눈빛과 다그치는 목소리 _ 황혼의 빛,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 0. 코이스티넨.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황혼의 빛 :: Lights in the Dusk』입니다.     # 1. 소외된 인간을 향한 연민과, 인간 소외를 강요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고유한 스타일로 풀어내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2006년작이다. 네오리얼리즘적 전통에 특유의 북유럽 감성을 더해 새로운 영화 언어를 창조했다 평가되는 감독은, 언제나 북유럽 노동자의 구체적 현실을 배경으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주변화된 인간을 담백하게 건조하게, 그럼에도 섬세하게 포착한다. 브레히트나 소격효과 같은 식상한 이름을 빌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구나 위화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의 필모그래피는 이질적이다. 작품의 연대를 추측하는 게 힘들 정도의 미니멀리즘은 비단 이야기뿐 아니라 캐..

Film/Drama 2024.09.24

두려운 자의 품격 _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맷 브라운 감독

# 0. 고통이 두려워 신을 부정하는 자와 고통이 두려워 신을 갈망하는 자 사이에서의 품격        맷 브라운 감독,『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 Freud's Last Session』입니다.     # 1. 은 미국의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Mark St. Germain)이 아몬드 M. 니콜리 주니어(Armand M. Nicholi Jr.)의 저서 에서 영감을 얻어 쓴 희곡이다.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계기로 영국이 전면전을 선포하며 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겸 기독교 호교론자 C. S. 루이스(C. S. Lewis)가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파크컴퍼니가 ..

Film/Drama 2024.09.04

그리움에 대하여 _ 이름 없는 다방에서, 정수지 감독

# 0. 이제 다시는 싫어. 웃는 것도 싫어졌네.이제 다시는 싫어. 웃는 것도 싫어졌네.        정수지 감독,『이름 없는 다방에서 :: Heyday』입니다.     # 1. 레트로 잡지와 오려 모은 스크랩. 십수 년은 더 돌아갈 금성사 선풍기. 한 장씩 뜯어 넘기는 달력. 엔틱 가구와 레이스 커튼. 둥근 다이얼의 전화기. 무자비한 괘종시계. 푹신하면서 불편했던 신기한 소파. 이젠 생소해져 버린 커피 배달.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던 보자기. 때 묻은 팔토시. 분홍색 머리띠. 노란색 드레스. 노른자 한 알 곁들인 모닝커피. 200자 원고지 위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 꼬깃한 종이에 수기로 쓴 주소. 팔각 성냥. 담배 연기. 이 모든 것들로 어우러진 1986년의 이름 없는 다방. 우리의 다방은 당신의 스타벅..

Film/Drama 2024.09.02

추락하는 조각상 _ 맨 오브 마스크, 알베르 뒤퐁텔 감독

# 0. 국가는 죽은 용사의 조각상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        알베르 뒤퐁텔 감독,『맨 오브 마스크 :: Au revoir la-haut』입니다.     # 1. 콧수염이 유독 잘 어울리는 알베르 뒤퐁텔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는, 피에르 르메트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알베르와 에두아르의 이야기로, 전쟁의 무자비함과 그보다 더 참혹한 이후를 탐구하며, 심미적 아름다움과 감동적인 스토리텔링, 유려한 블랙 코미디를 두루 선사한다. 매드 아티스트의 예술적 요소와 채플린을 연상시키는 듯한 블랙 코미디의 절묘한 조화는 작품의 매력이다. 감독은 전후 프랑스 사회의 위선과 부조리, 생존자들의 투쟁과 몰락을 예술적으로 풍자적으로 그려낸다. 연출은 놀라운 상상력과 감각으로 전쟁..

Film/Drama 2024.08.08

상상하는 것 _ 번개가 떨어졌다, 김지홍 감독

# 0. 영화란 나의 불완전함을 치열하게 상상하는 것이다.        김지홍 감독,『번개가 떨어졌다 :: Lightning Fell』입니다.     # 1. 번개에 맞아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깨어난 남자가 역할 대행 서비스를 신청한다는 내용의 영화는, 불행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 이면에 영화에 대한 영화로 보인다. 실제 영화 속에 담긴 장면들은 남자가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여자와 함께 연기하는 순간들로 점철된다. 캐스팅과 디렉팅과 리허설과 본 촬영이 축약된 모습은 미니멀리즘적인 마이크로 시네마다. 영화 속에 실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배우 최기욱은 번개 맞은 남자를 연기할 뿐 남자가 아니다. 고등학생을 연기하는 남자는 고등학생이 아니다. 그가 기억하는 누나와의 기억이 정확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후반부..

Film/Drama 2024.08.04

신세계 _ 사운드 오브 메탈, 다리우스 마더

# 0. 적외선을 보지 못해 불행한 사람은 없다.        다리우스 마더 감독,『사운드 오브 메탈 :: Sound of Metal』입니다.     # 1. 여자친구와 투어 중인 드러머 루빈(리즈 아메드)은 어느 날 거짓말처럼 청력을 잃는다. 드럼 사운드도, 연인 루(올리비아 쿡)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 그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비보를 전달받은 밴드의 후원인은 청각장애인 커뮤니티 운영자 조(폴 레이시)를 소개한다. 조의 공동체는 재활시설이라기보다는 장애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공간에 가깝지만, 루빈의 눈에 비친 그곳은 원형으로 둘러앉은 마약중독자 모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정한 조는 루빈에게 커뮤니티에서의 생활을 제안하는 대신 루를 포함한 이전 세계와의 단절을 요구한다. 두 사람은 크게 고민하지..

Film/Drama 2024.06.18

예술가의 끝인사 _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알랭 레네 감독

# 0. 예술가는 끝인사마저 이렇게 눈부신가.        알랭 레네 감독,『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 You Haven't Seen Anything Yet』입니다.     # 1.작가 앙투앙의 비보에 13명의 배우가 초대된다. 다정하게 손님을 맞은 집사는 유언이라며 영상을 하나 보여준다. 화면을 향해 걸어 나오는 이는 거짓말처럼 해맑은 앙투앙이다. 이미 죽은 앙투앙은 친구들에게 경의를 표한 후 부탁을 하나 청한다. 자신이 쓴 연극 를 젊은 예술가들이 다시 연기하려 하는데, 리허설 영상을 보여줄 테니 가부(可否)를 대신 결정해 달라는 것이다. 장례에 참석한 배우 모두는 과거에 에 참여한 연기자들이었다. 배우들은 리허설 영상을 보다 말고 자신의 에우리디케를 선보인다. 객석은 삽시간에 무대가 된..

Film/Drama 2024.05.26

죄 많은 그녀 _ 보속, 양재준 감독

# 0. 보속(補贖, Satisfactio)은 죄인이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의 성사 가운데 하나인 고해성사를 보고 나서 실천하는 속죄 행위⁽¹⁾를 말한다.        양재준 감독,『보속 :: Sinner』입니다.     # 1. 성당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성아(강서희)는 우연히 지갑을 주웠고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지만 돌려주지 않았다. 미워하는 사람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를 고해한 그녀는 신부로부터 이틀 간의 봉사를 보속으로 내려받는다. 좋은 일을 하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배려 없는 화장실 청소는 신도들을 불편케 한다. 밥을 산다 해도 사람들은 께름칙하다. 술을 강권하는 것도 불편하다. 결제를 하려 하지만 잔고가 부족해 다른 사람이 대신 계산한다. 술에 취한 나연(박세재)을 ..

Film/Drama 2024.05.24

낮은, 낮에, 낮이 _ 서울의 낮은, 정수진 감독

# 0. 어린 시절의 가정 폭력으로 매일 악몽에 시달리던 여자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시도는 실패하고, 도리어 견적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한 특수청소 회사에 들어가 청소부가 된다.        정수진 감독,『서울의 낮은 :: The Noon of Seoul』입니다.     # 1. 말 맛이 좋다. 제목 말이다. 고독사를 소재로 한 영화는 그 제목처럼 '낮은' 곳의 이야기다. 각자의 사연으로 고립된 끝에 외롭게 명을 달리 한 사람들, 그래서 구조의 목소리가 사회적 경제적 의미의 수직적 깊이 때문에라도 위에 닿지 않는 사람들은 영화가 정의하는 고독사다. 시간으로서의 낮이기도 하다. 의외로 주택가는 '낮에' 더 한산하다. 다들 학교나 직장에 가고 나면 때론 한산하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하..

Film/Drama 2024.05.18

인생의 대관람차 _ 내가 그리웠니, 이경원 감독

# 0. 그립다 그리워 그립다 그리워        이경원 감독,『내가 그리웠니 :: AKA 5JO』입니다.     # 1. 독립 영화에 출연한 신인 배우가 갑자기 뜰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소년 가장이 가족을 건사하듯 라이징 스타의 명성에 이끌려 초기 작품들이 건져 올려지곤 한다. 2019년에 개봉한 단편 는 SNL의 주기자로 사랑받은 배우 주현영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이경원 감독, 조정민, 주현영 주연의 영화는 옴니버스 장편 의 수록작 중 하나다. 은퇴한 랩 스타 오조와 그의 오랜 팬 현영이 우연히 대관람차 같은 칸에 탄다. 처음엔 머쓱하니 불편해하던 오조는 현영의 호의에 서서히 마음을 열며, 음악을 관둘 수밖에 없었던 아픈 과거를 털어놓는다. 불행한 유년기로부터 도피하듯 선택한 랩 스타라는 정체성에..

Film/Drama 2024.05.08

사라짐, 그 응답의 부재 _ 일 부코,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감독

# 0. "그 사라짐, 그 응답의 부재가 저에게 매우 강한 감정을 줬습니다."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감독,『일 부코 :: il buco』입니다.     # 1. 이탈리아 감독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의 연출작이다. 제7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으로, 심사위원장 봉준호와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가 극찬한 작품으로 소소한 이목을 끌었다. 전작 을 촬영하며 겪은 일화는 10년 후 신작의 계기가 되었다 한다. 칼라브리아 지역의 시장에게 남부 이탈리아 산악 지역과 동굴을 소개받은 예술가는 처음엔 회의적이었으나 구멍 속으로 돌을 던지자마자 강한 영감을 받았다 회고한다. "바닥이 너무 깊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라짐, 그 응답의 부재가 저에게 ..

Film/Drama 2024.04.30

그럴 줄 알았다 _ 피해자는 누구인가, 미할 블라슈코 감독

# 0. 전과자인 그 집시 놈이 내 그럴 줄 알았다. 미할 블라슈코 감독, 『피해자는 누구인가 :: Victim』입니다. # 1. 싱글맘 이리나가 부재한 사이 아들 이고르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황급히 체코로 돌아가며 영화는 시작된다. 의식을 찾은 이고르는 '하얀색 피부가 아닌 세 사람'에게 공격당했다 진술하고, 곧 위층의 로마니(집시) 형제가 용의자로 지목되어 체포된다. 이리나는 방송 인터뷰와 정치적 시위를 제안받고 망설이지만, 사건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기라도 한 듯 그녀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전한다. 중반부 이고르가 거짓말을 실토하며 이야기는 크게 전환된다. 여자친구에게 자랑하려다 다친 것이 부끄러워 거짓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정치적 이해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된 상태다. 언론은 연일 사..

Film/Drama 2024.04.16

Sunburn _ 미드 90, 조나 힐 감독

# 0. 스케이트 보드를 왜 타는 거냐는 물음에 답하며 조나 힐 감독, 『미드 90 :: mid90s』입니다. # 1. 스케이트보딩을 다룬 영화들은 보드의 미학을 작품 안에 끌고 들어와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존재하는 듯하다. 래리 클락의 , 구스 반 산트의 , 크리스털 모젤의 과 같은 영화들이 그러하듯 말이다. 영화에서 주로 활용되는 보드는 상당히 모순적인 활동이다. 무모하면서 무기력하다. 자유로우면서 구속적이다. 개인적이면서 계급적이고, 낭비적이면서 가난하다. 투쟁적이면서 도피적이고, 공격적이면서 비굴하며, 강인한 척하지만 나약하고, 물리적이지만 정신적이다. 화려한 트릭이 무색하게 내내 같은 공간을 맴돈다. 앞으로 나가는 듯 보이지만 정확히는 멈춤에 저항하는 것에 가깝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친 ..

Film/Drama 2024.04.12

오스카가 또 _ 디 애프터, 미산 해리먼 감독

# 0.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미산 해리먼 감독, 『디 애프터 :: The After』입니다. # 1. 나이지리아계 영국인 사회 운동가 겸 사진작가인 미산 해리먼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2015년 개봉된 영화 에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연기한 데이비드 오예로워가 주인공 다요 역으로 참여합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18분짜리 단편 영화인데요. 올해 아카데미 단편영화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이기도 하니, 시상식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제목을 들어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수상은 웨스 앤더슨의 가 차지합니다.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작품이었죠. 묻지 마 테러의 참상 이후를 그립니다. 전반적으로 평이하고 예측가능한 전개이지만 사안의 심각성과 시의성이 관객을 안정적으로 몰입하게 합니다. 테러로 아내와 ..

Film/Drama 2024.03.18

에펠탑의 뒤편 _ 오 머시!, 아르노 데플레솅 감독

# 0. 어두운 밤 보다 더 어두운 에펠탑의 뒤편 아르노 데플레솅 감독, 『오 머시! :: Oh Mercy!』입니다. # 1. 통상 영화 속 사건과 인물은 창작된 것이라며 도망갈 길을 열어두기 마련인데요. 되려 등장하는 모든 사건은 소소한 것이든 큰 비극이든 실화라 강조하며 시작됩니다. 실존하는 문제를 강하게 지적하는 고발성 작품이라는 것이죠. 배경인 프랑스 루베(Roubaix)는 감독 데플리솅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강한 비판 아래로 자전적이고 온화한 시선이 함께 느껴지는 독특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밥 딜런의 앨범(Oh Mercy(1989))으로부터 끌고 들어온 듯한 영화의 제목은, 도시의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숙연한 기도로서 감독의 지향을 엿보게 하죠. 오프닝의 선언처럼 전반..

Film/Drama 2024.03.10

노을이 지난 후에도 _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미야케 쇼 감독

# 0. 처연하고 찬란한 노을이 지난 후에도 이어져 나갈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미야케 쇼 감독,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 ケイコ 目を澄ませて』입니다. # 1. 오가와 케이코. 도쿄 아라카와구 출생. 선천적 감음 난청으로 양쪽 귀가 모두 들리지 않는다. 2019년 프로복서 라이선스 취득. 데뷔전 1라운드 1분 52초 KO 승리. 선천적 청각장애인 여성 복서 오가사와라 케이코의 자서전 를 원작으로 합니다. 청각장애인 여성 복서라는 캐릭터가 목적의 전부였다면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요. 감독은 구태여 영화라는 형식을 선택하고 있죠. 비슷한 경우 왜 굳이 그녀의 이야기를 영화로 각색한 걸까. 조금 더 정밀하게 질문하자면 감독은 그녀의 인생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있는가. 에 대한 대답을 탐미해 보는 ..

Film/Drama 2024.02.26

이슬 _ 은교, 정지우 감독

# 0. 시들어 메마른 꽃은 꿀을 탐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이슬을 탐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정지우 감독, 『은교 :: Eungyo』입니다. # 1.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얼마나 다른 사람일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10년 전에 비해 나는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된 걸까 하고 말이죠. 아무래도 타향살이 고학생이었던 당시보다 주머니 사정은 조금 나아졌습니다. 본업에서의 직무능력이나 위기가 있을 때 되새겨볼 경험치도 조금은 늘었죠. 상황에 맞춰 어른 연기를 하는 것에도 조금은 익숙해진 듯합니다만, 그 정도를 제외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졸업반 선배가 되어 스무 살 신입생 앞에서 억지 조언을 짜내던 순간의 기분과, 삼십 대 중반이 되어 사회초년생 후배들 앞에서 어른 흉내를 내는 지금의 기분은 크게..

Film/Drama 2024.02.18

낡은 선풍기의 표정 _ 패닝, 전예진 감독

# 0. 무더운 여름날, 시각장애인 해담은 고장 난 선풍기를 고치기 위해 수리기사를 부른다. 전예진 감독, 『패닝 :: Fanning』입니다. # 1. 해담은 시각장애인입니다. 낡은 선풍기가 고장 났다는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파생된 몇몇의 사건들과, 그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주인공의 감정을 진지하면서도 담백하게 그려낸 작품이죠. 서사를 들여다보기 앞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배치와 구도'입니다. 선풍기를 단순히 소재로 소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전체로 확장시키려는 듯 보이거든요. 수리기사, 윗집여자, 집주인. 세 명의 침입자들은 공통적으로 거실 중앙을 차지합니다. 해담은 수리기사의 시퀀스 동안에는 3시 방향의 침실에, 윗집여자의 시퀀스 동안에는 7시 방향의 거실 구석에, 집주인의 ..

Film/Drama 2024.01.30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_ 믿을 수 있는 사람, 곽은미 감독

# 0. 박한영은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까. 곽은미 감독, 『믿을 수 있는 사람 :: A Tour Guide』입니다. # 1. 정착을 꿈꾸는 20대 이방인 한영의 서울 생존기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믿음'이라는 개념에 대한 고찰이기도 합니다. 믿음은 통상 신뢰, 신앙, 신념, 신용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데요. 작품에서는 신뢰와 신용을 선택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신뢰는 개인 간 주고받는 다정함에 대한 기대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겁니다. 신용은 사회인으로서 합의된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는 도리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죠. 영화는 북한을 신용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로, 탈북민은 신용을 경험해 보지 못해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한국을 외국인 손님들에게 소개하는 일이 영광스럽..

Film/Drama 2024.01.26

불안을 다독이는 영화라는 축복 _ 라모나, 안드레아 바그네이 감독

# 0. 안정과 충동 사이에서 불안한 인간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확장되는 시네마 안드레아 바그네이 감독, 『라모나 :: Ramona』입니다. # 1. 주인공은 둘입니다. 하나는 불안한 인간 라모나구요, 둘은 그런 불안한 인간에게 있어 영화의 의미라 할 수 있겠죠. 최대한 있어 보이게끔 말을 굴려보자면 안정과 충동 사이에서 불안한 인간,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확장되는 시네마랄까요. 라모나는 '불안'한 인간입니다. 부정하든 극복하든 분출하든 어떻게든 불안을 처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자, 희망이나 욕망이 아닌 불안에 근거해 행동하는 사람이죠. 고아라는 설정은 최소한의 기반조차 없다는 면에서 불안에 내동댕이 쳐진 인물의 처지를 과장합니다. 구체적 개인임과 동시에 보편적 도시인이기도 합니다. 클래식 음악 위로 비..

Film/Drama 2024.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