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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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ction 59

도이치 메트로배니아 _ 엑스테리토리얼, 크리스찬 주버트 감독

# 0. 독일 공무원 중에 가장 서윗한 척하는 더러운 콧수염 크리스찬 주버트 감독,『엑스테리토리얼 :: Exterritorial』입니다. # 1. 영사관에서 벌어진 전직 군인 엄마의 아들 실종 사건은 익숙한 스릴러의 틀 속에서 굴러가는 듯 보인다. 모성으로 무장한 강인한 여성 주인공이 폐쇄된 공간에서 지지고 볶는 동안 겸사겸사 거대한 음모까지 파헤친다는 시놉은 기시감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하지만 실제 영화를 보다 보면 의외로 액션 스릴러 장르에 대한 합의된 기대들이 반복적으로 엇나간다. 그것도 생각보다 자주 말이다. 전통적인 서사 구조로 볼 때, 인물의 갑작스러운 행동 변화나 일부 설정에서의 비약, 플롯 진행을 위해 도구적으로 활용되는 캐릭터 배치 따위는 비판의 소지가 있고, 실제로도..

Film/Action 2025.05.04

나에게로의 초대 _ 아메리칸 울트라, 니마 누리자데 감독

# 0. 망가진 내게도 내일이 있을까        니마 누리자데 감독,『아메리칸 울트라 :: American Ultra』입니다.     # 1. 스파이니 울트라니 하는 것들은 본질적이지 않다. Merry me? 로 시작해 Propose 하며 끝나는 영화는, 결혼을 앞둔 커플의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관계 중심적인 보편의 영화들과 달리 남자에게 균형이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 보다 '내가' 결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영화랄까. 따라서 컬트적인 액션 코미디 아래로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를 흘려보내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다시 그 아래 숨겨진 성장 영화라 이해해도 무리는 없다.  도입에서 수사관은 사진을 몇 장 보여준다. 숟가락, 컵라면, ..

Film/Action 2025.03.30

설산에 홀로 헐벗은 듯 _ 레버넌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 0. 실존하는 인간의 생이란 매 순간 가감 없이 선명한 것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 The Revenant』입니다.     # 1. 〖 1823년 8월, 그랜스 강 유역에서 곰에게 습격당해 살해당한 줄 알았던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 휴 글래스가 6주 동안 320km를 이동해 극적으로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입니다. 〗 당시에도 신문 같은 것이 있었다면 대충 이런 식이지 않았을까.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적잖은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느꼈겠으나, 그럼에도 실제 경험한 이에 비하면 심드렁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은 비단 19세기 사람들만의 무신경함이 아니다. 지금도 누군가의 비장한 사건이 두어 문장에 실리는 동안 사람들은 찰나와 같은 감상 끝에 흘려보낸다..

Film/Action 2025.03.20

액션의 순정 _ 프로젝트 A, 성룡 감독

# 0. 이미 완성되어 있었던 그의 액션 미학        성룡 감독,『프로젝트 A :: Project A』입니다.     # 1. (1978), (1984), (1985), (1998) 등과 함께 액션스타 성룡을 대표하는 시리즈. 라고는 하지만 인지도가 살짝 부족한 건 사실이다. 딸기코의 소화자가 인상적이었던 취권만큼 개성적이지도 않고 폴리스 스토리나 러시 아워만큼 친숙하지도 않거니와, 일단 특유의 무심한 제목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여타 작품들에 비해 당대 홍콩의 지역색과 시대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작품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아쉬운 인지도와 별개로 작품성만큼은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수많은 영화 팬들이 80년대 홍콩 액션 영화의 명작으로 꼽을 정도. 이전까지 고전적 캐릭터를 기능적으로 수..

Film/Action 2025.03.16

그것도 두 번씩이나 _ 더 캐니언, 스콧 데릭슨 감독

# 0. 굳이 노력해서 더 재미없는 곳을 향해 추락한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스콧 데릭슨 감독,『더 캐니언 :: The Gorge』입니다.     # 1. 영화는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협곡 위, 협곡 아래, 다시 협곡 위다. 첫 번째 파트의 주인공은 인물이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협곡의 실체와 관련된 설정이고, 세 번째 파트에서는 폭탄이다. 내러티브를 인간에서 설정으로, 다시 폭탄으로 추락시키면서 관객의 몰입이 다운그레이드되지 않길 바랐다면 솔직히 미련한 것이고, 애석하게도 감독은 최선을 다해 미련한 길을 내달린다. 전반부는 두 주인공을 관객에게 소개한 후 공간에 안착시키는 과정으로 점철된다. 리바이는 아무런 관계도 추억도 없어 인생의 기반이 없는 사람이다. 반복되는 ptsd는 군사 작..

Film/Action 2025.03.06

흠... 그정둔가 _ 이퀼리브리엄, 커트 위머 감독

# 0. 배꼽이 큰 건지, 배가 작은 건지.        커트 위머 감독,『이퀼리브리엄 :: Equilibrium』입니다.     # 1. 망한 영화라 해야 할지 성공한 영화라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배(영화적 완성도)보다 배꼽(건 카타 액션)이 크다는 것에는 호평하는 사람과 혹평하는 사람 사이에 합의가 있는 듯 하나, 그것이 배가 지나치게 작아서인지 배꼽이 크고 뛰어나서인지는 갑론을박이 있다. 호평하는 사람들은 당시 범람하던 매트릭스의 마이너 카피와 반대되는 방향의 액션 표현을 선보인 것에 점수를 주는 모양새고, 혹평하는 사람들은 어쨌든 박약한 이야기의 완성도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작품의 주제의식은 당시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제법 낡고, 구현 역시 태만하다. 단단히 망한 근미래를 이야기..

Film/Action 2025.01.04

니들은 이런 거 배우지 마라 _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스테파노 솔리마 감독

# 0. (담배 한 개비를 꼬나물며)        스테파노 솔리마 감독,『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 Sicario Day of the Soldado』입니다.     # 1. 속편을 만든다는 건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까다로운 일인 듯하다. 전작의 이야기, 설정, 복선, 주제의식, 연출 방향, 캐릭터 해석과의 연결성은 익숙하면서도 새롭다는 이율배반적인 이야기를 꾸려야 하는 사람들에게 골치 아픈 족쇄다. 시리즈 이름에 새겨진 관객이 기대하는 무언가가 먼저 결정되어 있다는 것도 운신의 폭을 크게 제약한다. 혹여 특정한 캐릭터와 관객 사이에 애착관계라도 형성되었다면 큰일이다.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고 배제하면 배제하는 대로 내세우면 내세우는 대로 피곤한 뒷말이 반드시 나온다. 처음부터 속편을 염두..

Film/Action 2024.12.22

무슨 짓 _ 더 로버, 데이비드 미쇼 감독

# 0. 세상이 대충 망한 뒤 지금 이 시대에서 건(gun)법으로 나를 막을 자는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미쇼 감독,『더 로버 :: The Rover』입니다.     # 1. 또포칼립스다. 이쯤 되면 망하지 않은 세상이 역으로 잘못된 건가 싶다. 낡은 차량 안에서 간신히 평온을 얻는 남자, 건조한 모래바람 몰아치는 황량한 들판, 정체 모를 중화풍 음악으로 소개되는 호주는,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망해도 단단히 망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수상할 정도로 총을 잘 쏘는 농부 에릭은 가이 피어스가 연기한다. 살아있는 채권 겸 생체 내비게이션 레이는 이제 막 트와일라잇을 벗어던지던 무렵의 로버트 패틴슨이 맡았다. 이기적인 스타일과 과장된 호흡의 느려터진 영화는 미친듯한 호불호를 유발하나, 마..

Film/Action 2024.11.14

시민의 의무 _ 더 커버넌트, 가이 리치 감독

# 0. 가이 리치가 이런 영화도 만들 줄 알았나        가이 리치 감독,『더 커버넌트 :: Guy Ritchie's The Covenant』입니다.     # 1. 자잘한 이야기를 리드미컬하게 썰어 들어가길 즐기던 가이 리치에게 이런 면도 있었던 걸까. 제이크 질렌할과 다르 살림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영화는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굵고 선명한 이야기를 힘껏 끌고 가는 맛이 인상적이다.  보통의 영화에서 큰 선택은 큰 동기에 의해 일어난다. 큰 희생을 통해 큰 우정을 표현한다거나 큰 결단을 통해 큰 신념을 관철하는 식이다. 반면 시작부터 삐걱거렸던 파견 군인과 현지 통역사의 브로맨스는 큰 행동을 움직이게 만드는 작은 동기에 대한 영화다. 감독이 포착하고자 하는 작은 동기란 제목에도 적시된 '계약'으로,..

Film/Action 2024.11.10

호연지기 _ 하드코어 헨리,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

# 0. 다른 영화들의 고민을 초라하게 만드는 호방한 야심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하드코어 헨리 :: Hardcore Henry』입니다.     # 1. 친근한 동네 상영관에서는 모든 영화가 훌륭하지만, 한껏 힘 준 아이맥스에서 봐야 한다면 그래도 이나 , 정도는 봐야 돈값한 느낌이 든다. 문턱을 넘는 것만으로도 시네필이 된 것 같은 소극장에선 의무감으로라도 인디 영화를 봐야만 할 것만 같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인 캠핑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왁자지껄함도 품어 줄 넉넉한 코미디가 좋다. 오붓한 연인들의 자동차 극장에서는 만 한 것이 없다. 만만한 우리 집 거실에선 중간 즈음의 이나 가 방송되어 길 잃은 리모컨을 쉬게 한다. 시골 할머니 집 낡은 브라운관에서는 오래된 홍콩 영화 혹은 가 제격..

Film/Action 2024.10.20

육조거리의 무녀 _ 전, 란, 김상만 감독

# 0. 붉게 타오르는 분노와 푸르게 침몰하는 희망 사이에서 체제를 논할 뻔하다.        김상만 감독,『전, 란 :: Uprising』입니다.     # 1. 주인공은 강동원의 천영도, 박정민의 종려도 아니다. 신분제를 포함한 조선의 법도라는 체제(體制)다. 인물들은 체제를 대하는 각기 다른 방식들로 분류되어 배치되어 있고, 액션은 체제에 대응하는 방식들 간의 갈등 관계를 물리적으로 대신할 따름이다. 때문에 보다 보면 전혀 다른 장르임에도 마틴 맥도나의 (2022)가 계속 머리에 맴돈다. 허무를 대하는 각각의 방법론을 개인에 투사해 그 관계를 관찰했던 것과, 본 작이 체제를 대하는 방식은 제법 유사하다. 허무를 놓고 절친이 피 흘리던 영화의 제목을 이니셰린의 벤시라 한다면, 체제를 놓고 절친이 피 ..

Film/Action 2024.10.18

상쾌한 주객전도 _ 메이헴, 조 린치 감독

# 0. 솔직해서 오히려 상쾌한 메시지와 스타일의 주객전도        조 린치 감독,『메이헴 :: Mayhem』입니다.     # 1. 분노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인해 8시간 동안 격리된 회사에서 벌어진 광기의 살육극이다. 모함으로 해고된 변호사 데릭 조(스티븐 연 분)와 부당한 계약의 피해자 멜리나 크로스(사마라 위빙 분)가 협력해 최상층의 메인 빌런 존 타워스(스티븐 브랜드 분)를 무찌른다는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서사다. 영화의 동력은 크게 둘을 꼽을 수 있다. 천민자본주의적이고 성과지상주의적인 기업 문화에 대한 과격한 비판으로서의 액션과, 소모품과 다를 바 없는 직장인에 대한 자조적 연민으로서의 코미디다. 승진을 위해 서로를 밟고 음해하는 불공정한 약육강식에 노출된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과장된 폭..

Film/Action 2024.09.28

캡사이신 우유 _ 렌필드, 크리스 맥케이 감독

# 0. 유리멘탈 현대인을 위한 다정하고 매콤한 캡사이신 우유        크리스 맥케이 감독,『렌필드 :: Renfield』입니다.     # 1. 브램 스토커(Bram Stoker)의 소설 (1897)의 등장인물 렌필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호러, 코미디, 액션, 판타지 영화다. 한창 유행인 리메이크나 리부트가 아닌 보조적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는 것, 특히 외전 격의 이야기 대신 기존 서사를 전복시켜 독자적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에 도전했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영화는 야심에 걸맞게 고전의 고풍스럽고 음습한 분위기를 대신하는 컬트적이고 경쾌한 현대적인 모습이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말이다. 감독은 드라큘라 신화를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와 종속 관계에 대한 알레고리로 재해석한다. 드라큘라와 렌..

Film/Action 2024.09.08

당나귀와 코끼리 _ 킬링 소프틀리,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

# 0. 비겁하고 야비한 당나귀이기적하고 잔인한 코끼리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킬링 소프틀리 :: Killing Them Softly』입니다.     # 1. 버락 오바마의 연설로 시작되는 영화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숨길 생각이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겁 없이 도박장을 턴 두 도둑과 그들을 쫓는 살인청부업자의 네오 누아르지만, 이면엔 부시 말기부터 오바마 초기까지의 혼란스러운 미국 사회를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로 가득하다. 수다스러운 걸쭉한 농담과 드라마틱한 액션 연출의 매력이 분명한 작품이다. 다만 주연이자 제작자이기도 한 브래드 피트가 진단하는 미국에 대한 날 선 시선은 때론 너무 노골적이고 감정적이라 영화를 시시하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 마지막 대사는 문장의 완성도와 별개로 굳이 ..

Film/Action 2024.08.28

회장님 아들인가 _ 크로스, 이명훈 감독

# 0. 쓸데없이 친절한 시대착오적 코미디가 몸 둘 바 모를 정도로 황송하다.        이명훈 감독,『크로스 :: Mission: Cross』입니다.     # 1. 야구에는 지명타자(Designated Hitter, DH)라는 제도가 있다. 특수포지션인 투수들을 부상 위험에서 보호할 겸, 낭비되는 타석도 없앨 겸 대신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말한다. 당연하게도 투수를 대신해 들어가는 DH는 수비부담이 없기에 보통 '타격은 상위타석에 들만큼 탁월하지만 수비에 어려움을 겪는 베테랑 타자'가 서게 된다. 팀 입장에선 에이징 커브가 온 스타 선수의 남은 타격 능력을 뽑아 먹을 수 있으니 이득이고, 선수 입장에선 타자로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으니 역시 이득이다. 무엇보다 한여름 뙤약볕에 더그아웃 그늘에 ..

Film/Action 2024.08.12

패러다임의 탄생 _ 본 슈프리머시, 폴 그린그래스 감독

# 0. 액션은 지금부터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본 슈프리머시 :: The Bourne Supremacy』입니다.     # 1. 기본적으론 정체성 갈등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은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특수요원으로, '냉혹한 과거의 행적'과 '따뜻한 현재의 윤리' 사이에서의 괴리를 물리적으로 치환한 작품이라 요약해도 무리는 없다. 열감으로 비유하자면 는 차가운 내면과 뜨거운 액션의 결합, 은 뜨거운 내면과 뜨거운 액션의 결합, 은 차가운 내면과 차가운 액션의 결합이라 한다면, 시리즈는 뜨거운 내면과 차가운 액션의 결합이라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액션 어드벤처로서 거대한 지배력을 가진 , 코미디 활극으로서의 를 더하면, 이후 어떤 영화가 나오더라도 이 여섯 시리즈가 그리는 육각형 ..

Film/Action 2024.07.18

신화의 탄생 _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조지 밀러 감독

# 0. 신화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조지 밀러 감독,『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 Mad Max Fury Road』입니다.     # 1. 신화란 마땅히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엄마와 할머니와 할머니의 할머니가 태어나기 전부터 당연히 존재하던 것이라고 말이다. 가끔은 충분히 오래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신화냐 볼멘소리를 듣기도 하는 데, 이쯤 되면 시간은 신화가 신화이기 위한 필수적 요건인가 싶기도 하다.  때문인지 몰라도 신화를 다룬 대부분의 영화들은 오랜 시간을 전제한다. (2004)와 같이 신화를 고스란히 재현한 작품은 물론이고, (2011), (2009), (2012)와 같은 재해석한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1994), (2010) 등 현대를 배경으로 풀..

Film/Action 2024.06.26

캐주얼 오리엔탈리즘 _ 러시 아워, 브렛 라트너 감독

# 0. I never told you I didn't. You assumed I didn't.        브렛 라트너 감독,『러시 아워 :: Rush Hour』입니다.     # 1. 개봉 당시는 물론 명절 특선으로도 꾸준히 사랑받은 지만, 받은 사랑에 비해 완성도가 높은 시리즈라 부르기엔 부족함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적지 않은 부분에서 상투적인 클리셰의 조립으로 이루어져 있고, 나 등에서 경험한 바 있는 성룡의 시그니처를 열화 된 방식으로 재연하고 있기에 어떤 면에선 얄팍하다 해도 무리는 없다. 유명하다는('유명한'과 '유명하다는'은 다른 말이다.) 홍콩의 액션스타를 데려다 할리우드의 작법에 쑤셔 넣고 있는 작품은, 이질적인 두 요소를 결합시키겠다는 의도에 걸맞은 화학적 반응을 도출하지 못한 채..

Film/Action 2024.06.20

네 명의 이름은 _ 스턴트맨,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

# 0. 스턴트만큼 영화도 사랑해 주었으면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스턴트맨 :: The Fall Guy』입니다.     # 1. 괜찮을 수 없는 순간에조차 언제나 괜찮아야 했던 나의 오랜 파트너들에게. 사랑을 담아. # 2. 극장을 나서며 느낀 가장 강렬한 정서를 다음과 같이 메모에 옮겼다. 감동은 며칠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감독을 포함, 참여한 모든 이들의 진정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후 그 어떤 비판을 하더라도 말이다.  스턴트맨에 '대한' 영화가 아닌 스턴트맨을 '위한' 영화다. 배우 대신 몸을 던지는 스턴트맨들의 노고와 헌신과 기여, 그에 미치지 못하는 대우에 대한 불만이 알파이자 오메가다. 무수한 액션 영화들의 레퍼런스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가장 밀접하게 연상되는 작품은 셋이..

Film/Action 2024.06.14

진정한 변화 _ 더 배트맨, 매트 리브스 감독

# 0. 이유 없이 우뚝 선 희망의 탄생        매트 리브스 감독,『더 배트맨 :: The Batman』입니다.     # 1. 어둠 속의 히어로는 세 가지 의미다. 스스로 복수(분노의 어둠)의 화신을 자처한다는 것, 자경단이 아닌 범죄자(윤리의 어둠)로 받아들여진다는 것, 가문과 고담의 진실을 모른다(무지의 어둠)는 것이다. 그는 범죄자에겐 공포의 존재일지언정 경찰에겐 핼러윈 코스튬의 또 다른 범법자에 불과하다. 배트맨은 자신을 Vengeance(복수)라 선언하지만 정작 무엇에 대한 복수인지, 누구를 향한 복수인지조차 모른다. 이전의 그 누구보다 초췌하고 미성숙한 로버트 패틴슨의 배트맨은 어둠 속에 갇혀버린 무지의 존재다. 배트맨은 복수자로서 고담의 진실을 갈구한다. 캣우먼이 건네받은 카메라의 붉..

Film/Action 2024.06.12

무지의 지 _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드니 빌뇌브 감독

# 0. 모른다는 것을 안다.        드니 빌뇌브 감독,『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 Sicario』입니다.     # 1. 자신만만한 젊은이는 선언한다. "사람은 초록이다." 그가 아는 아무개들 모두 초록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연두를 만난다. 잠시 당황한 그는 초록색 계열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하루는 푸른색을 만난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청록의 무리라 수정한다. 붉은색 사람을 만나며 혼란에 빠진다. 사람은 색인가 보다 후퇴한다. 시간이 흘러 어릴 적 초록색이었던 아무개가 노란색이 되어 있음에 당황한다. 사람의 색은 변하기도 하는 것인가. 파란색인 줄 알았던 누군가는 원래부터 보라색이었고,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처음으로 돌아가 자신의 판단부터 의심한다. 그리고 마침내 투명의 ..

Film/Action 2024.05.30

어느 초보운전자의 이야기 _ 드라이브, 니콜라스 빈딩 레픈 감독

# 0. 인생을 운영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피로감, 고독감        니콜라스 빈딩 레픈 감독,『드라이브 :: Drive』입니다.     # 1. 를 연출한 덴마크 영화감독 니콜라스 빈딩 레픈이 메가폰을 잡았다. 주연은 감독을 추천한 라이언 고슬링, 그리고 캐리 멀리건이다. 브라이언 크랜스턴, 알버트 브룩스, 오스카 아이삭, 론 펄만 등이 참여한다.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리드미컬한 편집, 배우진의 열연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제64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처음으로 자신의 운전대를 잡아본 사람의 이야기다. 비록 주인공은 능숙한 드라이버지만 말이다.  전반부를 통해 쌓아 올린 주인공의 정체성은 모두 대리만족이라는 공통점 아래에 있다. 비유하자면 운전석이 아닌 보조석에 탄 인물인 것으로..

Film/Action 2024.05.16

거지의 왕 _ 무장원 소걸아, 진가상 감독

# 0. 당신이 영명하여 국태민안하다면 거지가 있을 턱이 없잖소.        진가상 감독,『무장원 소걸아 :: King of Beggars』입니다.     # 1. 한번 보면 멈출 수 없다. 의 이야기다. 무협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절정에 달한 개그감으로 풀어낸 주성치의 활극은, 압도적인 여래신장과 아방의 막대사탕으로 끝난다. 아니, 끝나는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쿵푸 허슬의 앤딩을 차지한 사람은 신조협려도 절대고수도 아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낯익은 거지의 능청스러운 중고책 영업이다. 어린 싱을 만났을 때와 똑같은 얼굴의 늙지 않는 거지는, 사실 쿵푸 허슬이 개봉한 당시의 12년 전에도 같은 얼굴이었다. 에서 성룡의 스승으로 열연한 원소전의 아들이자 무술감독이기도 한 배우 원상인은 에서도 주인..

Film/Action 2024.05.06

악역을 사는 사람은 없다 _ 캐시트럭, 가이 리치 감독

# 0. 세상에 악역을 사는 사람은 없다.        가이 리치 감독,『캐시트럭 :: Wrath of Man』입니다.     # 1. 가이 리치와 제이슨 스타뎀의 재결합이다. , , 로 검증된 두 사람의 협업은 이목을 끌기 충분했지만, 그보다 더 주목을 끈 것은 16년의 공백이다. 각자의 시간 동안 두 사람 모두 나름의 성업적 성취에 도달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있는 법이다. 스타뎀은 (이젠 놀림감이 되기까지 하는) 특유의 발성과 노출을 곁들인 액션에 갇혀 버렸고, 리치는 몇몇의 프로젝트를 지나는 동안 초기 스타일의 활력이 둔화되었다. 직전작 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찾으려는 가이 리치는, 기세를 이어 이견의 여지없는 페르소나에게 프러포즈한다. 영화 은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의 이야기지만 마치 미스..

Film/Action 2024.04.28

타블로이드의 구독자 _ 젠틀맨, 가이 리치 감독

# 0. Ladies and Gentlemen, Please Welcome.        가이 리치 감독,『젠틀맨 :: The Gentlemen』입니다.     # 1. 가이 리치가 돌아왔다. 신작 이야기가 아니다. 스타일의 복원. 즉, 셜록 홈스, 킹 아서, 알라딘을 돌아 무려 12년 만에 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줄 작품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뜻이다. 낡은 술집 귀퉁이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허풍 가득한 이야기가 타란티노스러운 리드미컬한 플롯 위에 펼쳐진다. 화려한 수사학적 과장으로 가득한 묘사, 현란한 촬영과 편집의 기교도 충만하다. 위선적 교양이 지저분한 액션으로 탄로 나는 시퀀스의 완급은 능숙하다. 애드거 라이트의 그것만큼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누가 보더라..

Film/Action 2024.04.24

역치는 차갑다 _ 아가일, 매튜 본 감독

# 0. 킹스맨의 그늘 아래 다소곳이. 매튜 본 감독, 『아가일 :: Argylle』입니다. # 1. 솔직해 집시다. 어차피 대부분은 매튜 본이라는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않습니다. 킹스맨 만든 감독이라 하면 그제야 '아~ 그 사람이야? 나 그거 재미있게 봤어!' 정도의 반응을 볼 수 있겠죠. 관객이 기대할 아가일의 세일즈 포인트 역시 재철 전어처럼 살이 포동포동 올라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라거나, 라데꾸를 날릴 것만 같은 플랫탑 스타일의 근육질 헨리 카빌이 아닌,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던 콜린 퍼스의 슈트핏과 머가리 팡팡 터트리는 액션이라는 '그 맛'의 재해석일 가능성이 99.9%입니다. 이례적으로 성공을 거둔 우리나라 기준, 시크릿 에이전트는 600만이 들었습니다. 전작의 후광에 힘입어..

Film/Action 2024.03.16

유치가 찬란하심 _ 택시, 제라르 삐레 감독

# 0. 겁나 유치(幼稚)하긴 한데요. 그걸 이렇게 찬란(燦爛)하게 만들면 역으로 먹히기도 합니다. 제라르 삐레 감독, 『택시 :: Taxi』입니다. # 1. 혹하는 최신 영화가 잘 없다 보니 연이어 옛날 영화들을 다시 보게 되는군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글에서, 해당 영화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고 싶었지만 검색되는 거라곤 죄다 프랑스의 택시라 아쉽다 말씀하신 분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데요. 시간이 흘러 이 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네요. 다소 익숙지 않은 프랑스 영화임에도 의외로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 작품이긴 합니다만, 글쎄요. 아마 극장에서 보신 분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겁니다. 대부분 OCN이나 Super Action(현 OCN movies2)과 같은 캐이블 채널을 통해 보시지 않았을까요...

Film/Action 2024.02.20

분명한 퇴보 _ 발레리나, 이충현 감독

# 0. 넷플릭스 산 K-액션 누아르의 익숙한 그 냄새 이충현 감독, 『발레리나 :: Ballerina』입니다. # 1. 1시간 30여분 내내 과장된 스타일과 피상적인 이미지가 범람합니다. 분홍색과 민트색 네온사인, 네 병의 술과 다른 색깔 빨대, 발레슈즈가 담긴 선물상자, 비밀스러운 sns 대화, 줄 달린 이어폰의 갬성, 잔뜩 기울이다 못해 심심하면 뒤집어지는 화면, 부담스러운 클로즈 업, 어지러운 공간 미술, 착란을 유발하는 눈뽕 테러와, 주요 세일즈포인트였을 GRAY의 사운드까지. 이 무지막지한 물량공세는 그 자체로 진입장벽처럼 느껴질 지경입니다. 누군가 정신이 없다며 중도에 낙오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죠. 그렇게 쏟아부은 이미지 모두는 '모순적인 형용'과 '대결적인 관계'로 구축됩니다. ..

Film/Action 2023.10.08

공동체주의자 선언 _ 좀100, 이시다 유스케 감독

# 0. 시즈카는 '구원'하고 코스기는 '배제'한다.        이시다 유스케 감독,『좀 100: 좀비가 되기 전에 하고 싶은 100가지』입니다.     # 1. 애니메이션을 영화화한 작품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일본 좀비 호러라는 말에 혹했을 뿐이었죠. 100이라는 숫자가 흥미를 돋운 면은 있습니다. 좀비 100마리가 덮치려나? 100일? 100시간? 아니면 100분을 버텨야 하나? 백신을 100초 안에 써야 한다는 설정인 건가? 등등의 상상을 했었는데요. 부제가 였더라고요. 아하, 똥꼬 발랄 청춘물이군요. 애니메이션을 영화화한 작품인 줄 몰랐다 말씀드렸는데요.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됩니다. 일본 ANIME 특유의 톤 앤 매너가 영화에 너무 짙게 묻어나고 있거든요. 실제 ..

Film/Action 2023.08.12

개연성 (물리) _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 0. 톰 크루즈 자연사 기원 2437일 차 톰 크루즈 주연,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입니다. # 1. 문득 근 몇 년 동안 재미있게 본 액션 영화가 거의 없구나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굳이 꼽자면 시카리오? 장르를 조금 더 넓히면 킹스맨 정도 될까요. 특별히 장르 편식이 있지는 않는데요.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나름의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액션 장르가 줄 수 있을 법한 재미는 이미 거의 다 맛봤기 때문이었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과격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액션이란 장르는, 액션 어드벤처의 바이블 , 영국식 간지 첩보 액션의 대명사 , 21세기 액션 연출의 아버지 , 사실주의 총기 액션의 끝 , 소장르 성룡의 대표작 , 그리고 스턴트 액션의 정점 가 이미 대부분 정의했다는..

Film/Action 2023.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