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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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Mystery & Thriller 101

가족 모임은 집에서 _ 트랩,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 0. 때가 되긴 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트랩 :: Trap』입니다.     # 1. 원래 샤말란의 영화가 그렇다. 참신한 판타지 아이디어와 과격한 반전 플롯 아래로 강력한 가족주의 드라마를 깔아 두는 것이다. 걸작 (1999)에서부터 망작 (2010)에 이르기까지 어긋나는 법이 없다. 문제는 아이디어와 드라마를 접합하는 퀄리티에 기복이 심하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마음처럼 풀리지 않을 때면 어린아이처럼 되지도 않는 억지까지 부려댄다는 점이다. 부활을 알렸던 (2015)로부터 얼추 10년. 쿨타임이 돌 때가 되긴 했다. 안 좋은 의미에서의 샤말란 말이다. (2016), (2019), (2021), (2023)까지 챙기는 시늉이라도 했던 최소한의 완성도는 신작과 함께 장렬히 무..

어쩔 수 없는 악 _ 필스, 존 S. 베어드 감독

# 0. 어쩔 수 없는 악은 어찌해야 하나        존 S. 베어드 감독,『필스 :: Filth』입니다.     # 1. 으로 익히 알려진 스코티시 소설가 어빈 웰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익숙한 부패 경찰의 범죄 스릴러 위로 양극성장애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내면을 심도 있게 그린다. 1인극에 준할 정도로 작품을 혼자 견인하게 되는 주인공 브루스 로버트슨은 제임스 맥어보이가 연기했다. (2017) 못지않은 폭발력으로 표현된 정신적 문제에 시달리는 경찰의 이야기는, 현실과 착란과 윤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에게 흥미로움과 불쾌감을 동시에 제공한다. 다소 어지러운 표현에도 불구하고 플롯의 방향은 간명하다. 주인공의 내면을 파고들며 입체성을 보강해 악행의 원리에 다가가는 것이다. 캐릭터라는 원인을 먼저..

카타르시스 _ 아일린,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 0.  콤플렉스의 교도소. 트라우마의 지하실. 성탄절의 카타르시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아일린 :: Eileen』입니다.     # 1. (2017)를 통해 억눌린 욕망과 반동을 서슬 푸른 광기로 그려낸 감독은, 차기작에서도 음습하고 내밀한 욕구를 억누르며 사는 여인 아일린에게 주목한다. 주인공 역은 세상의 모든 불안을 담고 있는 듯한 눈망울의 토마신 맥킨지가 맡았다. 레베카 역은 매 순간 관객의 시선을 장악하는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다. 오테사 모시페그의 원작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윌리엄 올드로이드는 뛰어난 두 배우와의 협업을 통해 엄격하고 배타적인 환경과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내면 사이 유리된 자아의 혼란을, 급작스러운 범죄 사건에 얹어 탐구한다. 아일린은 보수적인 1960년대 미국 ..

Fuxxing Man _ 조커 폴리 아 되, 토드 필립스 감독

# 0. 그 ㅈ같았던 영화를 위한 사소한 변호        토드 필립스 감독,『조커 폴리 아 되 :: Joker Folie à Deux』입니다.     # 1. 당황스러운 영화다. 전작을 호평한 사람들이 느꼈을 이질적인 인상은 평가와 별개로 부정할 수 없다. 더 잘 만든 영화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전작, 1편이다. 담백하게 그쪽이 완성도가 더 높다. 개인적으로도 영화는 상당히 양가적인 감정으로 즐겼다. 대단히 ㅈ같은 영화이면서, 그렇기에 흥미로운 영화라는 것이 솔직한 양심이다. 리뷰한다면 내적인 디테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당장은 어색할 듯하다. 언젠가 적당한 시기가 있지 않을까. 뮤지컬 영화인 탓에 (2016)가 함께 거론되곤 하는 데, 사실 방법론적으로는 같은 감독의 (201..

전갈과 개구리 _ 올드보이, 박찬욱 감독

# 0. 짐승으로 태어나 버린 외로운 존재들        박찬욱 감독,『올드보이 :: Old Boy』입니다.     # 1. 박찬욱에게 인간은 이성과 본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외롭고 괴로운 존재다. 이때의 이성이란 논리나 도덕, 문화, 규칙, 격식, 교양 등 인간이 스스로 만든 온갖 규범을 통할한다. 본성은 사랑, 믿음, 증오, 폭력, 모멸, 질투 등 근원을 알 수 없는 마음의 변화를 모두 포괄한다.  인간은 이성을 활용해 본성을 통제함으로써 스스로 동물과 구분되는 특별한 존재라 주장하지만, 박찬욱에게 이는 스스로 고결하다 느끼기 위해 만든 허구적 신화에 불과하다. 팬들에게 흔히 복수 3부작이라 일컬어지는 (2002), (2003), (2005)는 물론 (2009)와 (2016), 최근의 (2018)과 (..

신의 주사위 놀이 _ 똑똑똑,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 0. 뭐시 중헌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똑똑똑 :: Knock at the Cabin』입니다.     # 1. 언제 봐도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바티스타와 그의 팔뚝만 한 귀여운 소녀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영화, 이다. 영화는 원천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떡밥과, 사실상 떡밥의 의인화나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쉴 새 없이 던진다. 그렇다면 그렇구나 하는 수밖에 없는 일방적인 세계관과, 늘 관객보다 두어 발짝 앞질러가는 불친절한 전개는 언제나와 같은 샤말란이다. 인류의 운명을 거론하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침입자 무리, 단란한 가족 중 한 명이 희생해야 70억 인류를 살릴 수 있다는 우악스러운 설정, 피해자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 스스로 자해하는 아이러니, 작지만 구체적..

진실함에 대하여 _ 리스본행 야간열차, 빌레 아우구스트 감독

# 0. 진실한 정신과 관계, 그 무한한 가능성을 향한 낭만의 열차        빌레 아우구스트 감독,『리스본행 야간여행 :: Night Train to Lisbon』입니다.     # 1. 2013년에 개봉한 미스터리 스릴러 는 파스칼 메르시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감독은 빌레 아우구스트이며,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인공을 맡았다.  스위스의 고전문헌학 교수 그레고리우스가 우연히 빨간 코트의 여인을 구한 후, 그녀가 남긴 책 한 권을 계기로 리스본행 열차에 오르며 영화는 시작된다. 코트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책 의 저자 아마데우 드 프라두에게 큰 호기심을 느낀 교수는 수업도 내팽개친 채 충동적으로 그의 삶을 추적한다. 저자의 집을 찾은 그레고리우스는 여전히 저택을 지키는 여동생을 시작으로 아마데우의..

이카루스의 거울 _ 리플리스 게임, 릴리아나 카바니 감독

# 0.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릴리아나 카바니 감독,『리플리스 게임 :: Ripley's Game』입니다.     # 1.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심리 스릴러다. 맷 데이먼의 (1999)가 알랭 들롱의 (1960)의 그늘에 가려진 수작이라면, 이 작품은 그 그늘에조차 들어가지 못한 비운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으나, 제법 흥미로운 중년의 톰 리플리를 만날 수 있다는 면에서 일정한 의의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연은 존 말코비치가 맡았다. 사근사근한 목소리의 톰 리플리는 50대 중반의 세련된 사기꾼이자 냉혈한 살인마다. 오프닝의 사건을 통해 한몫을 챙긴 톰은 이탈리아 시골에서 은퇴 생활을 즐기는 듯 보이지만 내면엔 갈등과 복잡성이 가득하다. 하이스미스의 원작들이..

마지막 질문 _ 미스터 홈즈, 빌 콘돈 감독

# 0. 위대한 배우가 위대한 탐정을 빌려 던진 마지막 질문        빌 콘돈 감독,『미스터 홈즈 :: Mr. Holmes』입니다.     # 1. 93세의 셜록 홈즈와 함께 기억과 현실의 경계를 탐험한다. 위대한 탐정의 이름에 묘수풀이식 미스터리 추리극을 기대하기 쉬우나, 인간 정신의 복잡성과 노화의 의미를 다룬 영화라는 면에서 의외성이 있다. 영화는 과거 사건의 전말을 중심으로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추리 장르의 관습을 탈피, 새로운 서사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논리와 감성, 과거와 현재, 기억과 망각, 사실과 창작의 대비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지적이면서 동시에 감성적인 탐구다. 다만, 그 의외성에 관객이 동의해 줄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이후 이야기하게 될 주제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홈즈의 ..

개미굴 _ 고스포드 파크, 로버트 알트먼 감독

# 0. 개미굴을 관찰하는 건 개미의 역사와 본성을 알기 위함이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고스포드 파크 :: Gosford Park』입니다.     # 1. 거장 로버트 올트먼은 2001년작 를 통해 관객을 100여 년 전 영국 상류층의 세계로 초대한다. 하나같이 꼬장꼬장한 귀족들의 차량이 줄지어 들어오는 동안 카메라는 보이지 않는 손님이 되어 끔찍한 주말 파티의 현장으로 스며든다. 쏟아지는 비를 지나 웅장한 문을 넘어 마주하는 미로와 같은 복도는 그 자체로 제국주의의 한계와 불안한 미래를 앞둔 1930년대 영국의 단면이다. 저택의 내부는 과시적인 우아함으로 가득하다. 눈 둘 곳을 정하기 힘들 만큼 정교하게 꾸며진 장식, 교양과 위선을 연기하는 귀족들의 화려한 의상, 정중하면서도 기계적으로 ..

무지의 지 _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드니 빌뇌브 감독

# 0. 모른다는 것을 안다.        드니 빌뇌브 감독,『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 Sicario』입니다.     # 1. 자신만만한 젊은이는 선언한다. "사람은 초록이다." 그가 아는 아무개들 모두 초록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연두를 만난다. 잠시 당황한 그는 초록색 계열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하루는 푸른색을 만난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청록의 무리라 수정한다. 붉은색 사람을 만나며 혼란에 빠진다. 사람은 색인가 보다 후퇴한다. 시간이 흘러 어릴 적 초록색이었던 아무개가 노란색이 되어 있음에 당황한다. 사람의 색은 변하기도 하는 것인가. 파란색인 줄 알았던 누군가는 원래부터 보라색이었고,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처음으로 돌아가 자신의 판단부터 의심한다. 그리고 마침내 투명의 ..

서글픈 정신승리 _ 나이트 플라이트, 웨스 크레이븐 감독

# 0. 고도로 발달한 정신승리는 정신치료와 구분할 수 없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나이트 플라이트 :: Red-Eye』입니다.     # 1. 와 로 유명한 웨스 크레이븐의 2005년 작이다. 한평생 호러만 깎은 장인의 이름에 많은 사람들이 정통 호러를 예상했으나, 의외로 전형적인 범죄 액션 스릴러물이다. 당시 그를 좋아하던 일부의 팬들은 실망을 표하기도 했는데, 사실은 명예로운 죽음이다. 장르 선택과 별개로 완성도부터 부실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스릴러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영화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창작하지도, 충분한 긴장감을 연출하지도 못한다. 흔한 비행기 테러의 클리셰를 따라가는 동안 사투는 지루한 버전의 로 전락한다. 리사(레이첼 맥아담스)의 행동은 최선이라기보다는 대책 없는 ..

세안 _ 피그,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

# 0. 그의 여행은 결국 마지막 세안에 도달하기 위함이었나.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피그 :: pig』입니다.     # 1. 거지 꼴을 한 왕년의 슈퍼스타가 납치당한 돼지를 찾는 이야기는 이목을 끌기 충분하다. 일부는 돼지 버전의 이냐는 둥의 짓궂은 농담을 던지기도 했지만 섣부른 오해다. 젊은 미국인 감독의 데뷔작은 창작자로서의 야심과 별개로 그렇게까지 장르적이지 않다. 처절한 추격전이나 끔찍한 결말, 최소한의 정돈된 결착 따위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일부 액션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물의 내면을 세심하게 매만지는 감정적인 드라마라 소개하는 것이 적절하다. 호흡은 일관되게 느리고 고요하며 진중하다. 심오하고 애처로우며 다소 피학적이기도 하다. 쳅터의 구성에서부터 그러하..

소유를 사유하다 _ 돌로레스, 마이클 로젠 감독

# 0. 박제가 되어 버린 그녀를 아시오?        마이클 로젠 감독,『돌로레스 :: Dolores』입니다.     # 1. 소유욕이라는 감정을 탐구하고 탐미합니다. 미리 구분해야 할 것은 감독이 탐구하고자 하는 소유욕이란 썩 중립적이라는 점입니다. 인간 게오르그가 탐욕적이고 망상적이고 지저분하고 추악하고 짜증스러운 인간이라는 것과 별개로 말이죠. 모형 제작자로서의 순수한 장인정신이라거나, 종이비행기 날리는 소년에게 모형을 건네는 다정함, 돌로레스의 생일날 그녀의 아버지를 본 딴 인형을 선물하는 세심함, 병든 동생을 걱정하고 챙기는 모습 따위를 숨기지 않고 있으니까요. 감독이 이해하는 게오르그는 관객의 생각보다 훨씬 순수합니다. 순수하게 악할 뿐이죠. 감독은 욕망하는 게오르그를 단죄하는 것에는 아무런..

차라리 채린이었다면 _ 지옥만세, 임오정 감독

# 0. 차라리 채린이 주인공이었다면 어땠을까.        임오정 감독,『지옥만세 :: Hail to Hell』입니다.     # 1. 영화는 스스로를 모순된 이미지의 충돌로 소개합니다. 오프닝의 생일 축하한다는 말에 담긴 차가운 폭력은 전시적이죠. '지옥'이라는 부정적 어휘와 '만세'라는 긍정적 어휘를 붙여둔 제목은 작품의 방법론을 데뷔작다운 패기로 선언합니다. 모순된 이미지가 충돌하는 동안 다양한 위계의 딜레마들이 성실하게 적층 됩니다. 삶과 죽음, 낙원과 지옥, 복수와 용서, 고립과 연대, 가해와 피해, 맹신과 불신 등의 딜레마들과 그 딜레마적인 상황에 놓인 인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견인해 나가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두 주인공에게 죽음은 절망이라기보다는 동경에 가까워 보입니다. 두 사람의 모습..

미움받을 용기 _ 앰뷸런스, 알레산드로 톤다 감독

# 0. 이슬람을 혐오하는 제노포비아라 비난받는다 하더라도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악당이라 음해당한다 하더라도 알레산드로 톤다 감독, 『앰뷸런스 :: The Shift』입니다. # 1. 브뤼셀의 한 학교에서 벌어진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자살 폭탄 테러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테러리즘에 대해 탐구하는 작품 특성상 이후 앰뷸런스가 내달리게 되는 브뤼셀은 단순히 벨기에의 수도라기보다는, 유럽 사회 전체를 대신한다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겠죠. 테러범은 겉보기엔 평범한 두 명의 학생인데요. 즉사한 한 명과 달리 다른 한 명은 감쪽같이 사라지게 되는 데, 알고 봤더니 피해자로 오인되어 앰뷸런스에 실려 빠져나갔다는 전개입니다. 의식을 차린 테러리스트는 자신의 몸에 두른 폭탄을 내보이며 구급대원 이자벨과 아다모를 위협하게..

불쾌함의 이유 _ 다섯 번째 흉추, 박세영 감독

# 0. 불쾌하니까 별로라는 감상은 시시합니다. 박세영 감독, 『다섯 번째 흉추 :: The Fifth Thoracic Vertebra』입니다. # 1.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향유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제 아무리 포용적이고 개방적이라 한들) 저마다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편하게는 취향, 조금 더 고상하게 말한다면 감식안(鑑識眼)이라 부르는 것들이죠. 제 스스로 견제하고 점검하는 몇 가지 대전제 중 하나는 '감독은 바보도, 괴물도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비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못 만든 영화라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관객은 보편타당한 근거를 들어 합리적인 수위에서 평가할 권리를 가짐에 분명합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저 감독이란 사람들도 관객..

블루 얼럿 _ 더 킬러, 데이비드 핀처 감독

# 0. 봉준호의 진단에 답하는 데이비드 핀처의 서슬 푸른 경고 데이비드 핀처 감독, 『더 킬러 :: The Killer』입니다. # 1. 아무래도 킬러 영화들은 '킬러에게 표적이 된 사람의 서스펜스'라거나 '킬러가 엮인 특별한 사건의 스릴러'이기 마련일 텐데요. 본 작품은 제목에서처럼 킬러가 직업인 사람의 멘탈리티를 중심으로 풀어나갑니다. 혹자는 이야기가 심심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듯도 보이지만, 주인공의 생각과 감각을 추적하는 데 최대한 집중할 뿐 그 외의 타깃이나 사건은 중요하지 않기에 의도적으로 비워두고 있다 판단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위플래시와 라라랜드로 익숙하실 데미안 셔젤의 영화 중에 이라는 작품이 있죠.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을 탐구하고 체험하는 것에 최대한 집중하는 작품이기에, 그가 경험하..

사람은 없다 _ 포퓰레이션 제로, 줄리언 T. 파인더 감독

# 0. "다큐멘터리는 진실과 리얼리티를 추구합니다." 줄리언 T. 파인더 감독, 『포퓰레이션 제로 :: Population Zero』입니다. # 1. 오래전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드웨인 넬슨이라는 사람에 의해 데이비드, 코디, 토마스라는 세 청년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사건이었죠. 용의자 드웨인은 순순히 범행을 자백하는데요. 정작 재판의 결과는 무혐의로 끝나고, 드웨인은 자유인의 신분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작품의 전반부는 세 청년의 유가족들이 보이는 절절한 인터뷰 영상들로 채워져 있죠. 연방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헌법은 사건이 벌어질 경우 해당 사건이 벌어진 주에서 재판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재판은 다시 해당 지역에 소속된 사람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에 의해 재판받도록 정해져..

독의 도미노 _ 뱀에 물린 자들, 안토니 예롄 감독

# 0. 유혹에 못 이겨 무너져 내리는 윤리의 도미노 안토니 예롄 감독, 『뱀에 물린 자들 :: Inherit the Viper』입니다. # 1. 84분짜리 짤막한 인디 영화입니다. 우연히 생긴 자투리 시간을 태울 겸 포스터가 느낌 있길래 골랐죠. 대충 검색을 해 봤는데요. 리뷰는커녕 그 흔한 한줄평조차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아무리 소소하다지만 블로그를 굴리는 입장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영화를 굳이 글로 옮긴다는 건 바보짓임에 분명한데요. 그럼에도 남들 가는 길 똑같이 가면 왠지 지는 것만 같은 홍대병자들에게 요런 영화들이란 마치 뱀에 물린 것만 같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이런 류의 마이너 한 외화들이 수입되는 경우 제목이 제대로 번역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솔직히 미련합니다. 그냥 그러려니..

안전막 없는 트램펄린 _ 풀타임, 에리크 그라벨 감독

# 0. 그 어린 엄마는 잘 지내고 있을까 에리크 그라벨 감독, 『풀타임 :: À plein temps』입니다. # 1. 싱글맘의 고단하고 치열한 일상을 스릴러의 긴박감으로 그려낸 드라마입니다. 이야기에 특별함은 없고 이야기를 즐기는 영화도 아닙니다. 캐릭터성이 강한 주인공을 탐구하는 류의 이야기도 아니구요, 연출에서 강한 개성이 발견되는 작품도 아닙니다. 영화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싱글맘을 상정한 후 그녀의 평범한 일상에 치밀하게 집요하게 접근합니다. 두 아이를 혼자 키워내는 싱글맘이 느낄 법한 감정들, 이를테면 압박감이나, 고독감, 피로감, 조바심 따위를 해체해 각기 다른 현실적 레이어로 흩뿌려 투영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감독은 싱글맘의 스트레스를 주인공의 감정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

모성 만세 _ 노웨어, 알베르트 핀토 감독

# 0. 눈부신 모성을 우러르는 눈물겹고 집요하고 처절하고 지독한 신화적 예찬 알베르트 핀토 감독, 『노웨어 :: Nowhere』입니다. # 1. 요 며칠 깜냥에 맞지 않는 어려운 영화를 연이어 보았는데요. 모처럼 날로 먹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나이스. 모성 만세! 모성에 대한 영화라 말하기도 뭣한 게 그냥 모성이 전부입니다. 아빠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엄마 최고예요 엄마 사랑해요 노래를 부르는 작품이죠. 제한적인 영화라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노골적입니다. '연약한 여자'였던 주인공이 '강인한 엄마'로서의 모성을 각성한다는 내용이고, 영화는 그 목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일련의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폭력적인 장치들, 이를 테면 위험천만한 컨테이너에..

팽팽하게 당겨진 원단처럼 _ 아웃핏, 그레이엄 무어 감독

# 0. 팽팽하게 당겨진 원단처럼. 촘촘하게 새겨진 바느질처럼. 단호하게 가르는 가위처럼. 그레이엄 무어 감독, 『아웃핏 :: The Outfit』입니다. # 1. 서스팬스는 팽팽하게 당겨진 원단 같습니다. 내러티브는 촘촘하게 새겨진 바느질 같습니다. 연기는 단호하게 가르는 가위 같습니다. 핏이 딱 떨어지는 정장 같은 고급스러움으로 가득합니다.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들이 만드는 입체적인 스릴러와, 예측을 거부하는 전개 역시 위력적입니다. 그 아래로 잔잔하게 흐르는 시대에 대한 은유는 작품에 유의미한 깊이까지 더하고 있죠. 이 모든 것들을 좁디좁은 양장점 안에 들어선 여섯 남짓의 인물들을 통해 구현했다는 것이야 말로 작품의 가장 큰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바늘', '가위', '총'이라는 세 도..

그저 최선을 다할 뿐 _ 검찰 측 증인, 빌리 와일더 감독

# 0. 우리가 재판을 받아들이는 건 완벽해서가 아니라 최선이기 때문일 뿐이야. 빌리 와일더 감독, 『검찰 측 증인 :: Witness for the Prosecution』입니다. # 1. 최고의 추리 소설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최고의 영화감독 중 하나인 빌리 와일더가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세 명의 주연은 찰스 로튼, 타이런 파워, 그리고 마렌느 디트리흐가 연기합니다. 라인업 살벌하죠. 물론 70년 후의 관객에까지 전달되는 고전 명작들이 대부분 그러하긴 하지만요. 인간의 이기적인 추악한 욕망이 물고 물리는 동안의 긴장감을 지적 호기심으로 견인하는 법정 스릴러입니다. 감독의 명성에 걸맞은 밀도 높은 각본과 다소 복잡할 수도 있었을 스토리를 편안하게 전달하는 연출의 묘가, ..

피해망상의 주인 _ 웨더링, 메갈린 에치쿤워크 감독

# 0. 피해망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메갈린 에치쿤워크 감독, 『웨더링 :: Weathering』입니다. # 1. 확실히 넷플릭스는 단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단편을 낼 거라면 차라리 시리즈를 선호하는 편인데요. 체류시간을 최대한 길게 뽑아내자는 운영방침에 반하기 때문인 거겠죠. 그럼에도 가끔씩은 단편을 제작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단편은 왓챠에서 주로 본다지만 외국 단편은 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소소하게나마 제작되는 넷플릭스산 단편들은 생각보다 더 쏠쏠합니다. 아이를 유산하게 된 엄마가 느끼는 자책감과 트라우마를 조명하는 작품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겁니다. 병원과 집을 오가는 각각의 장면들은 실제 일어난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인공 '제미나'를 짓누르는 가혹한 감정들의 시각적 ..

겁나 높은 곳은 겁나 무섭다 _ 폴: 600미터, 스콧 만 감독

# 0. 사는 건 힘들고, 죽는 건 무섭다. 스콧 만 감독, 『폴: 600미터 :: Fall』입니다. # 1. 암벽 등반 마니아 셋이 있었는데요. 달달한 신혼부부 사이 여자 하나가 꼽사리 낀 모양새군요. 사랑의 암벽 등반을 즐기던 중 남편이 거대 닭둘기에 당해 낙사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눈앞에서 남편 잃은 아내는 폐인이 되고, 같이 벽 타던 친구는 잠적합니다. 긴 시간 괴로움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아내가 남편 따라가기 직전 잠적한 친구가 짜잔 나타나는 데요. 그 사이 인스타와 유튜브를 두루 섭렵한 개막장 관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친구 헌터는 남편 잃은 주인공 베키를 꼬셔 600미터짜리 티브이 타워에 올라가 유해를 뿌리자는 속이 뻔한 제안을 하는데요. 정신 나간 마누라는 그것 참 좋은 아이디어구나..

정체와 요행의 미스터리 _ 9명의 번역가, 레지 루앙사르 감독

# 0. 왜 문학이어야 했을까. 왜 번역이어야 했을까.        레지 루앙사르 감독, 『9명의 번역가 :: Les Traducteurs』입니다.     # 1. 장르와 소재의 연동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대부분의 설정은 걸맞은 권위를 부여받지 못합니다. 문학과 번역이라는 코드는 작품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왜 문학이어야 했는지, 왜 번역이어야 했는지에 대한 설득이 크게 부족합니다. 어떤 수학 난제가 있고 그걸 풀어낸 누군가가 있어 이를 검토하기 위해 전문가를 모아뒀다 가정해 봅시다. 사실 진짜 난제를 풀어낸 건 무명의 젊은 친구였고, 그가 스승의 복수를 위해 검토팀에 잠입했다 하더라도 이야기가 굴러가는 데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겁니다. 혹은 회사 병합을 하는 데 관련된 기밀이 있어 관계자들..

카타르시스 _ 조지타운, 크리스토프 왈츠 감독

# 0. 그리스어로 정화를 의미하며, 마음속에 쌓여 있던 불안, 우울 긴장, 등의 응어리진 감정이 풀리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이러한 정화작용을 비극에서 등장인물의 비극적인 상황이나 비참함을 보고 마음에 있던 응어리나 슬픔이 해소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쾌감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카타르시스는 비극에서 비참한 모습이 해소된 이후에만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로 이를 표현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을 수 있다. - 카타르시스 [κάθαρσις / Catharsis] - 크리스토프 왈츠 감독, 『조지타운 :: Georgetown』입니다. # 1. '그' 크리스토프 왈츠 맞습니다. 바스터즈에서의 한스 란다, 장고에서의 닥터 슐츠로 익숙하실 오스..

야망의 초상 _ 맥베스의 비극, 조엘 코엔 감독

# 0. 빛의 캔버스 위, 잠식하는 그림자로 그려낸 살아 움직이는 야망의 초상 조엘 코엔 감독, 『맥베스의 비극 :: The Tragedy of Macbeth』입니다. # 1.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입니다. 4대 비극 중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래도 오셀로 덕에 꼴등은 면한 친구죠. 누구나 냉장고엔 먹다 남은 트러플이라도 있는 듯 맥베스를 읽은 것처럼 말하지만, 현실은 햄릿조차 인용하기 만만찮은 세상이니 익숙지 않으신 분들이 많으리라 가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겁니다. 영화 이야기에 앞서 대충의 줄거리 정도는 환기하고 시작하는 것도 괜찮은 거겠죠. 스코틀랜드의 장군이자 왕족이자 글라미스의 영주 맥베스입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친구 뱅코와 왕에게 돌아가는 데 광야에서 마녀를 만나 예언을 듣습니다..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ⅱ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ⅰ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 0.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 등을 집필한 장르 문학가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영미권에서는 순수문학가이자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더욱 큰 인물입니다. ... 나무위키가 그렇다네 morgosound.tistory.com # 6. 암시와 복선은 미스터리를 위해 기능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드라마적 기준에서 숨겨지지 않는 악행과 죄책감을 표현하는 메타포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자신의 복수를 숨기는 동시에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함께 묻어 숨기려 했지만 숨길 수 없었고, 그것이 복선이라는 형태로 관객에게 들키고 있다는 것은 곧 랜도르 스스로에게도 자신의 죄책감이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