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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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개봉 50

상쾌한 주객전도 _ 메이헴, 조 린치 감독

# 0. 솔직해서 오히려 상쾌한 메시지와 스타일의 주객전도        조 린치 감독,『메이헴 :: Mayhem』입니다.     # 1. 분노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인해 8시간 동안 격리된 회사에서 벌어진 광기의 살육극이다. 모함으로 해고된 변호사 데릭 조(스티븐 연 분)와 부당한 계약의 피해자 멜리나 크로스(사마라 위빙 분)가 협력해 최상층의 메인 빌런 존 타워스(스티븐 브랜드 분)를 무찌른다는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서사다. 영화의 동력은 크게 둘을 꼽을 수 있다. 천민자본주의적이고 성과지상주의적인 기업 문화에 대한 과격한 비판으로서의 액션과, 소모품과 다를 바 없는 직장인에 대한 자조적 연민으로서의 코미디다. 승진을 위해 서로를 밟고 음해하는 불공정한 약육강식에 노출된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과장된 폭..

Film/Action 2024.09.28

꿈과 광기의 세계 _ 영화 너무 좋아 폼포 씨, 히라오 타카유키 감독

# 0. ようこそ。夢と狂気の世界へ。        히라오 타카유키 감독,『영화 너무 좋아 폼포 씨 :: Pompo, The Cinephile』입니다.     # 1. 제목처럼 진솔한 영화는 말랑말랑한 표현과 달리 영화 제작의 세계를 진지하게 묘사한다. 우연히 기회를 얻은 젊은 영화인의 이야기 이면엔, 예술과 상업의 균형, 이상과 현실의 조율, 협업과 성장의 가치 등이 폭넓게 다뤄진다.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작품은 비단 영화뿐 아니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통용될 선량한 응원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작품이 정의하는 영화를 만들고 보는 행위의 의의로 환원된다. 폼포는 '날'리우드가 주목하는 천재 프로듀서다. 그녀는 예리한 직관과 산업에 대한 통찰을 가진 인물로, 진과 진의 눈을 빌린 관객들로 하여금 상업..

Film/Animation 2024.09.06

죄 많은 그녀 _ 보속, 양재준 감독

# 0. 보속(補贖, Satisfactio)은 죄인이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의 성사 가운데 하나인 고해성사를 보고 나서 실천하는 속죄 행위⁽¹⁾를 말한다.        양재준 감독,『보속 :: Sinner』입니다.     # 1. 성당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성아(강서희)는 우연히 지갑을 주웠고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지만 돌려주지 않았다. 미워하는 사람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를 고해한 그녀는 신부로부터 이틀 간의 봉사를 보속으로 내려받는다. 좋은 일을 하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배려 없는 화장실 청소는 신도들을 불편케 한다. 밥을 산다 해도 사람들은 께름칙하다. 술을 강권하는 것도 불편하다. 결제를 하려 하지만 잔고가 부족해 다른 사람이 대신 계산한다. 술에 취한 나연(박세재)을 ..

Film/Drama 2024.05.24

낮은, 낮에, 낮이 _ 서울의 낮은, 정수진 감독

# 0. 어린 시절의 가정 폭력으로 매일 악몽에 시달리던 여자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시도는 실패하고, 도리어 견적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한 특수청소 회사에 들어가 청소부가 된다.        정수진 감독,『서울의 낮은 :: The Noon of Seoul』입니다.     # 1. 말 맛이 좋다. 제목 말이다. 고독사를 소재로 한 영화는 그 제목처럼 '낮은' 곳의 이야기다. 각자의 사연으로 고립된 끝에 외롭게 명을 달리 한 사람들, 그래서 구조의 목소리가 사회적 경제적 의미의 수직적 깊이 때문에라도 위에 닿지 않는 사람들은 영화가 정의하는 고독사다. 시간으로서의 낮이기도 하다. 의외로 주택가는 '낮에' 더 한산하다. 다들 학교나 직장에 가고 나면 때론 한산하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하..

Film/Drama 2024.05.18

악역을 사는 사람은 없다 _ 캐시트럭, 가이 리치 감독

# 0. 세상에 악역을 사는 사람은 없다.        가이 리치 감독,『캐시트럭 :: Wrath of Man』입니다.     # 1. 가이 리치와 제이슨 스타뎀의 재결합이다. , , 로 검증된 두 사람의 협업은 이목을 끌기 충분했지만, 그보다 더 주목을 끈 것은 16년의 공백이다. 각자의 시간 동안 두 사람 모두 나름의 성업적 성취에 도달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있는 법이다. 스타뎀은 (이젠 놀림감이 되기까지 하는) 특유의 발성과 노출을 곁들인 액션에 갇혀 버렸고, 리치는 몇몇의 프로젝트를 지나는 동안 초기 스타일의 활력이 둔화되었다. 직전작 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찾으려는 가이 리치는, 기세를 이어 이견의 여지없는 페르소나에게 프러포즈한다. 영화 은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의 이야기지만 마치 미스..

Film/Action 2024.04.28

소외된 자 기댈 곳 믿음뿐일지니 _ 신세계로부터, 최정민 감독

# 0.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최정민 감독, 『신세계로부터 :: From the New World』입니다. # 1. 화신교 교주 신택과 신도 명선은 탈북자입니다. 화신교란 화신님을 믿음으로 모시면 죽은 사람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 교리를 가진 작은 종교죠. 신택은 신도를 모으기 위해, 명선은 죽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경남 고성의 한 마을에 정착하는 데요. 그 과정에서 벌어진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을 서늘하게 그린 미스터리 오컬트 드라마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주인공 명선은 배우 정하담이 맡았습니다. 독립영화 쪽에서는 착실히 인지도를 쌓고 있는 배우인데요. 대중에겐 에서 질곡동 살인사건의 용의자 홍산호의 연인으로 익숙하지 않으실까 싶군요. 작품의 전개는 비틀린 부조리로 점철됩니다. 탈북자가 자유..

Film/Drama 2024.01.22

세 번의 문답 _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권하정 / 김아현 감독

# 0. 우리는 이 가수를 불쑥 찾아갔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를 함께 찍었다. 권하정 / 김아현 감독,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 Notes from the Unknown』입니다. # 1. 관객이 당장 만나게 되는 영화는 한 편이지만 전체 프로젝트를 생각하면 총 세 개의 영상이 존재합니다. 의 뮤직비디오, 의 뮤직비디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려는 다큐멘터리 가 바로 그것이죠. 각각은 그것이 음악이 되었든, 철학이 되었든, 태도가 되었든, 입장이 되었든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의 창작물에 대한 피드백으로서의 성격을 가집니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의도 여하와 무관하게 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일종의 질문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각각의 영상은 그 자체로 온전한 작품임과 동시에 권하정..

배우 양조아 _ K박사의 연구, 박지혜 감독

# 0. 짜릿해! 늘 새로워. 공짜인 게 최고야! 박지혜 감독, 『K박사의 연구』입니다. # 1. 2023년 12월 16일. 예술의 전당에서 라는 이름의 공연영상플랫폼을 오픈합니다. 월 2,500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클래식, 발레, 연극, 오페라, 무용, 국악 등 고품격 콘텐츠를 제공하는 일종의 문화 예술 전용 ott서비스라는 건데요. 심지어 내년 12월까지 1년간의 시범 운영 기간 동안은 무료로 공개된다는군요. 개꿀. 공개된 지 며칠 되지 않아 아직 작품이 많이 걸려있지는 않습니다만, 문외한도 솔깃할 법한 양질의 작품들은 충분해 보입니다. 연극 , , , 라거나, 발레 , , , 국악 등도 흥미롭구요. 클래식 기반의 음악듀오 노래서점의 영상들이라거나, 노부스콰르텟의 다양한 연주들, 혹은 양손프로젝트 단..

Film/SF & Fantasy 2023.12.20

존재의 지평선 _ 썸머 고스트, 라운드로 감독

# 0. 추락하는 삶과 부유하는 죽음의 경계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 라운드로 감독, 『썸머 고스트 :: サマーゴースト』입니다. # 1. 피아노 샤랄랄라, 석양 샤랄랄라 하는 짭카이 마코토류 갬성충만 일본 애니메이션입니다. 금수저 모범생, 번지점프 미수범, 금발의 정대만이 모여 여름 방학을 분신사바에 꼬라박습니다. 귀신이랑 4인팟 짜서 익스트림 레저 스포츠 즐기다 보물 찾기에 성공, 경품으로 목걸이를 득템 합니다.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기 전에 정대만은 요단강을 건너고. 남은 둘이서 다시 분신사바에 매진하며 막을 내린다는, 고런 내용의 작품이죠. # 2. 네 명의 주요 캐릭터는 삶과 죽음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됩니다. 이를테면 토모야는 '살 이유가 없는 사람', 아오이는 '죽고 싶은 사람', 료..

Film/Animation 2023.10.22

안전막 없는 트램펄린 _ 풀타임, 에리크 그라벨 감독

# 0. 그 어린 엄마는 잘 지내고 있을까 에리크 그라벨 감독, 『풀타임 :: À plein temps』입니다. # 1. 싱글맘의 고단하고 치열한 일상을 스릴러의 긴박감으로 그려낸 드라마입니다. 이야기에 특별함은 없고 이야기를 즐기는 영화도 아닙니다. 캐릭터성이 강한 주인공을 탐구하는 류의 이야기도 아니구요, 연출에서 강한 개성이 발견되는 작품도 아닙니다. 영화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싱글맘을 상정한 후 그녀의 평범한 일상에 치밀하게 집요하게 접근합니다. 두 아이를 혼자 키워내는 싱글맘이 느낄 법한 감정들, 이를테면 압박감이나, 고독감, 피로감, 조바심 따위를 해체해 각기 다른 현실적 레이어로 흩뿌려 투영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감독은 싱글맘의 스트레스를 주인공의 감정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

헤어진 그녀와의 인터뷰 _ 선우와 익준, 양익준 감독

# 0. 찰나의 감정마저 이토록 두터운데 양익준 감독, 『선우와 익준 :: Sunwoo and Ikjune』입니다. # 1. 선우와 익준은 함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자, 9년을 만난 연인입니다. 두 사람은 익숙함과 별개로 지나온 긴 시간만큼의 차이를 가지고 있고, 이는 오프닝에서부터 시선, 표정, 자세, 동선, 걸음의 속도, 배경 등 다양한 표현을 통해 부드럽게 은유됩니다. 오늘은 여자 수인이 남자 재석에게 이별을 고하는 신을 촬영하는 날. 두 사람은 완만한 오르막을 무겁게 걸으며 잠시 후 있을 촬영에 대해 논의합니다. 선우는 헤어지자 말하는 여자 수인을 두둔합니다. 익준은 그런 수인의 잔인함을 지적합니다. 촬영이 진행되고 감독 선우는 배우들과 대화를 나누는 데요. 수인 역의 진서는 되려 수인이 비겁한 ..

Film/Romance 2023.10.10

패러디와 떡밥 회수 _ 슈퍼 후?, 필립 라쇼 감독

# 0. 패러디와 떡밥 회수. 그게 전부입니다. 진짜루요. 필립 라쇼 감독, 『슈퍼 후? :: Super-héros malgré lui』입니다. # 1. 프랑스 엉아들이 만든 B급 싼마이 패러디 코미디입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스몰 사이즈 팬티 모델 출신 무명 배우입니다. 미쿡 엉아들이 마블 유니버스로 장사하는 게 배 아팠던 돈 많은 프랑스 할머니가 BADMAN이라는 제목의 짝퉁 히어로 영화를 기획합니다. 여차저차 캐스팅되는 데 성공한 주인공은 촬영 중 집으로 돌아가다 사고가 나는데요. 거 참 공교롭게도 몸뚱이는 멀쩡하지만 기억상실에 걸리고 말았죠. 정신 차리고 보니 슈퍼 히어로 옷을 입고 있길래, 어라? 와타시 어쩌면 배드맨이었던 걸지도? 지가 자경단 노릇하던 슈퍼 히어로라 믿은 무명 배우는 돌아다니는 ..

Film/Comedy 2023.09.14

변경의 동물 _ 에브리띵 윌 체인지, 마튼 페지엘 감독

# 0. 수십, 수천 세기가 흘러도 사건이 일어나는 건 현재뿐이다. 마튼 페지엘 감독, 『에브리띵 윌 체인지 :: Everything Will Change』입니다. # 1. 모큐멘터리(Mockumentary), 우리에겐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실 영화들이 있습니다. 연출된 상황극을 다큐멘터리의 기법으로 촬영해 마치 실제 상황처럼 보이도록 만든 작품들이죠. 파라노말 액티비티 같은 파운드 푸티지 물들도 큰 틀에서 모큐멘터리의 일종이라 할 수 있을 테고요. 아파르트헤이트를 은유했던 닐 블롬캠프의 디스트릭트 9이라거나, 딘 플라이셔-캠프의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 한가닥 하는 여배우들이 기싸움하던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 같은 작품들도 있었더랬습니다. 영화 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방법론을 뒤집어 ..

Film/SF & Fantasy 2023.09.08

피터 싱어의 논증 _ 카우,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

# 0.  Life is a Comedy when seen in long-shot, but a Tragedy in close-up.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카우 :: Cow』입니다.     # 1.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이상함을 느끼셨을까요. 서두의 영문장은 채플린이 말했다 알려진 명언인데요. 사실 순서를 반대로 적어둔 문장입니다. 원본은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비극(tragedy)을 먼저 말한 후에 희극(comedy)으로 매듭짓는 구조였죠. 해당 명언이 대구를 이루는 터라 짐짓 순서를 바꾼다 하더라도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여기실 수도 있을 텐데요. 엄정하게 말하자면 뉘앙스에는 다소 차이가 있..

Documentary/Social 2023.08.24

압박과 환희가 교차하는 완성의 순간 _ 보일링 포인트, 필립 바랜티니 감독

# 0.  주인공은 단연 촬영입니다. 인물이든 환경이든 사건이든 요리든 그 무엇이 되었든 촬영 방식에 우선하지는 못합니다.       필립 바랜티니 감독,『보일링 포인트 :: Boiling Point』입니다.     # 1. 보일링 포인트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나 롱 테이크(Long take)일 텐데요. 본론에 앞서 테이크(Take)가 뭔지부터 가볍게 짚고 가도 좋겠죠. 다음백과는 '중간에 끊지 않고 촬영한 하나의 연속적인 화면 단위를 지칭하는 용어'라 설명하는 데요. 대충 카메라 녹화 셔터를 한번 누른 후 정지를 위해 다시 셔터를 누르는 사이를 의미하는 촬영의 최소 단위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하겠네요.  쇼트(Shot)라는 말도 비슷한 의미로 쓰이곤 하는데요. 테이크는 촬영 용어, 쇼트는 편집 용어입니다...

Film/Drama 2023.07.14

풍성한 가지, 앙상한 줄기 _ 킬링 로맨스, 이원석 감독

# 0. 진짜 독특한 감독이긴 합니다. 솔직히 미친놈 같아요. 이원석 감독, 『킬링 로맨스 :: Killing Romance』입니다. # 1. 다음 씬은 커녕 다음 컷조차 예상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예측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정신 나간 농담들로 100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관객을 붙들어 매는 것을 상상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데요. 그 아이디어를 밀고 나가 이 정도의 결과물을 관철해 냈다는 건 어쨌든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독은 미친놈이 맞는 것 같아요. 코미디라는 게 워낙 기호를 많이 타는 장르라 주관적 감상을 말씀드리는 것에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장 세간의 평을 들여다봐도 호불호가 극심한 듯 보이니까요. 어쨌든 제법 좋았습니다. 혹자는 민망함을 표하기도 하던데요...

Film/Comedy 2023.06.26

아이슬란드의 몽타주 _ 램, 발디마르 요한손 감독

# 0. 흥미롭습니다. 이야기는 단순함에도 여러 가지 알레고리가 동시에 읽히거든요. 순리와 부정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이민과 혼혈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될 여지도 있어 보입니다. 기독교 신화의 비틀린 재해석 같은 맛도 있군요. 발디마르 요한손 감독, 『램 :: Dýrið』입니다. # 1. 우선 첫 번째, 순리와 부정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볼까요. 작품은 스스로를 [프레임]으로 소개한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해당 코드를 강조합니다. 양 한 마리씩 들어있는 울타리라거나, 공간을 위계로 구분 짓는 긴 복도, 안팎을 분리하는 문틀과 창문틀, 하다 못해 부부가 타고 다니는 트랙터 운전석까지 모두 프레임이죠. 심지어 잉그바르와 마리아의 집이라거나 최종적으로 아이슬란드의 대자연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이 모든..

Film/Drama 2023.06.22

담음새 _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 딘 플라이셔-캠프 감독

# 0. 평범하고 소소한 아이디어를 비범하고 웅장하게 담아낸다.        딘 플라이셔-캠프 감독,『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 :: Marcel the Shell with Shoes On』입니다.     # 1.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진 않는데요. 모 유튜브에서 '평론가는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느라 재미는 덜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동진 평론가가 대충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영화에 친숙하지 않은 일반의 관객들은 영화를 두 가지 기준에서 보게 된다. 하나는 스토리, 다른 하나는 연기다. 하지만 영화에는 스토리와 연기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정보들이 있다. 이를 테면 쇼트나 편집, 구도나 플롯 따위의 흔히 연출이라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때론 스토리나 연기가 특출 나지 않음에도 훌륭한 영화들이 있..

Film/SF & Fantasy 2023.04.12

다음 영화의 공간 _ 크레이지 컴페티션, 마리아노 콘 / 가스톤 두프라트 감독

# 0. 가짜 바위 아래 앉은 위선과 허세를 조소한 끝에 마주하게 될 다음 영화의 공간 마리아노 콘 / 가스톤 두프라트 감독, 『크레이지 컴페티션 :: Competencia oficial』입니다. # 1. 크레이지 컴페티션을 적당히 번역하자면 '미친듯한 경쟁' 쯤 될 텐데요. 아무래도 격정적인 대립과 갈등이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한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함인 듯 보이죠. 하지만 스페인어 원제는 Competencia oficial. 영어 제목 역시 같은 의미의 Official Competition입니다. 영화제의 경쟁부문 출품작에 대한 은유일 것이라 추측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거겠죠. 결말에서 작중작 을 완성한 롤라와 펠릭스가 브리핑하는 뒤로 영화의 제목과 같은 Official Competition이 떡 ..

Film/Comedy 2023.02.18

야망의 초상 _ 맥베스의 비극, 조엘 코엔 감독

# 0. 빛의 캔버스 위, 잠식하는 그림자로 그려낸 살아 움직이는 야망의 초상        조엘 코엔 감독,『맥베스의 비극 :: The Tragedy of Macbeth』입니다.     # 1.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입니다. 4대 비극 중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이지만 오셀로 덕에 꼴등은 면한 친구죠. 누구나 냉장고엔 먹다 남은 트러플이라도 있는 듯 맥베스를 읽은 것처럼 말하지만, 현실은 햄릿조차 인용하기 만만찮은 세상이니 익숙지 않으신 분들이 많으리라 가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겁니다. 본론에 앞서 대충의 줄거리 정도는 환기하고 시작하는 것도 괜찮은 거겠죠. 스코틀랜드의 장군이자 왕족이자 글라미스의 영주 맥베스입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친구 뱅코와 왕에게 돌아가는 데 광야에서 마녀를 만나 예언을 듣습..

넓게 잡고 얕게 판다 _ 보이저스, 닐 버거 감독

# 0. 이렇게 얕을 거라면 왜 우주까지 끌고 가서 그 난리를 피운 거지? 닐 버거 감독, 『보이저스 :: Voyagers』입니다. # 1. 이제는 조금 식상하기까지 한 우주 배경의 사고 실험물입니다. 인간 군상을 집어넣은 가상의 실험실을 만든 후 계를 분리시키기 위해 냅다 우주로 던져버리는 식이죠. 인터스텔라 같은 유명 작품뿐 아니라, 얼마 전 창세기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 같다 말씀드린 바 있는 하이라이프 같은 영화들도 비슷한 접근법을 공유하는 작품이었더랬습니다. 언제나처럼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최후의 희망. 뭐, 고런 식으로다가 적당히 당위를 만드는 과정에서 고증 오류가 듬성듬성 발견되기도 합니다만, 역시나 그런 오류에 집중하는 것은 썩 무의미합니다. 애초에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어드벤처가..

Film/SF & Fantasy 2022.12.16

미결로 완성될 영원의 바다 _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 0.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며 제목 잘 지었다 싶은 작품은 드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JSA는 JSA구요. 올드보이는 원작 제목이었죠. 박쥐나 스토커, 아가씨 모두 완성도와 별개로 특색 있는 제목은 아니었습니다. 기껏해야 복수는 나의 것이나 친절한 금자씨 정도가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창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 봐야 거기까지죠.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창작을 하나 꼽으라 한다면 저는 제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찬욱 감독, 『헤어질 결심 :: Decision to Leave』입니다. # 1. 헤어지면 됩니다. 그냥 헤어지면 됩니다. 헤어지는 데에는 결정決定이면 충분하죠. 하지만 영화의 제목은 헤어질 결심決心.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왜 결심..

Film/Romance 2022.07.12

처녀보살의 살풀이 _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에드가 라이트 감독

# 0.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장르로 장난치려고 만든 영화'라 한다면, 베이비 드라이버를 '음악 가지고 놀려고 만든 영화'라 한다면, 이 영화는 '촬영 연출하려고 만든 영화'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 『라스트 나잇 인 소호 :: Last Night in Soho』입니다. # 1. 타란티노 감독이 제목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유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우디 앨런의 가 함께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목뿐 아니라 재미의 측면에서도 두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매력적이지만 허구적이기도 한 과거 황금기의 도시를 재현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의 동력을 얻는다는 점에서 유사한 방법론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우디 앨런이 그린 1920년대 파리도 아름답습니다만,..

Film/Horror 2022.06.16

결기 _ 매미, 윤대원 감독

# 0. 결말의 한방이 만든 박력으로 승부를 보는 영화라면 이 정도 결기는 있어야 합니다. 윤대원 감독, 『매미 :: Cicada』입니다. # 1. 일정한 리듬의 건조한 사운드가 끊임없이 어디론가 끌려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와 몰입을 연출합니다. 계단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오는 그녀는 갓 땅 위로 올라선 매미. 옆으로 걷는 주인공 뒤의 난간이 정확히 목에 걸리는 그림이 관객을 더욱 불안하게 합니다. 익숙해 보이는 듯한 장소에 자리를 잡습니다. 얼굴 위로 홍등가와 여성성 따위를 의미하는 붉은빛과, 처연함과 남성성 따위를 의미하는 푸른빛이 겹쳐 떨어집니다. 그녀는 트랜스젠더 매춘부군요. 스쳐 지나는 경찰차는 추측에 확신을 더합니다. 운전을 하는 남자입니다. 오른손을 빨대가 꽂힌 음료에 얹어두는 모습은 여자가 사..

Film/Drama 2022.05.28

샤말란의 올드 _ 올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 0. 히치콕 감독하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실까요. 아무래도 현기증이려나요. 욕실 씬의 사이코일 수도 있겠네요. 북북서로도 기가 막히죠. 레베카도 좋았구요. 39계단도 재미있었습니다. 최근엔 사보타주를 봤는데요. 역시나 흥미진진하더군요. 눈매가 매력적인 리즈 시절의 실비아 시드니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거장의 필모그래피답게 하나 같이 좋은 작품들입니다만 그 가운데 저는 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물론 히치콕이고 나발이고 여신 그레이스 캘리가 나오기 때문인 게 맞습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올드 :: Old』입니다.     # 1. 미스터리 스릴러 반전 영화입니다. 이젠 그러려니 하게 되죠. 샤말란의 영화를 보면서 다른 장르를 기대하는 건 미련한 짓이니까요. 보나 마나 ⑴ 소수의 주..

불꽃놀이 _ 티탄,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

# 0. 검은 하늘. 폭력으로 쏘아 올린 화약. 형형색색의 폭발. 불의 에너지, 빛의 파괴. 찰나 같은 속도감. 사그라들고 난 후의 허무함.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 『티탄 :: Titane』입니다. # 1. '내가 지금 뭘 본건가'라는 관람평은 썩 훌륭합니다. '네가 지금 뭘 본거 같냐' 묻는 영화이기 때문이죠. 알렉시아는 알렉시아가 아닙니다. 아드리앵은 아드리앵이 아닙니다. 여자이지만 여자라 할 수 없고 남자이지만 남자인 것도 아닙니다. 제3의 성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 어떻게도 정의할 수가 없죠. 여자를 사랑하지만 동성애자는 아닙니다. 남자를 사랑하지만 이성애자도 아니죠. 메카노필리아지만 온전히 메카노필리아인 것은 아닙니다. 범성애자도 아니구요. 아들도 아니고 딸도 아닙니다. 평범하던 사람은 이상..

가웨인 교향곡 _ 그린 나이트, 데이빗 로워리 감독

# 0. 무엇 다움의 의미.        '데이빗 로워리' 감독,『그린 나이트 :: The Green Knight』입니다.     # 1.세상엔 영화를 곱씹어 자기 생각을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과 대화하기 위해 지금껏 블로그를 하고 있고 이 글 역시 마찬가지죠. 제게 있어 다행스러운 것은 감독의 전작 가 예방주사가 되어주었다는 점입니다. 이후 리뷰를 통해 이야기하게 될 상징들에 대한 해석 중 상당 부분은 고스트 스토리를 즐기는 동안 연습한 것에 도움받은 것들이었죠. 두 작품 모두 '삶의 가치와 죽음의 의미'라는 비슷한 주제의식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거든요.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 전설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아니, '이라고' 합니다.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 누구나 냉장고엔 먹다 남은..

Film/SF & Fantasy 2022.01.20

잔인한 거짓말 _ 블루해피니스, 이제훈 감독

# 0. 취업 준비 중인 찬영이 우연한 기회로 트레이더 친구를 만나 주식에 빠져들면서 생기는 변화를 그린 작품입니다.        '이제훈' 감독,『블루 해피니스』입니다.     # 1. 찬영은 20대 취준생 일반을 대변합니다. 구체적 개인의 특별한 서사라기보다는 세대 및 경제 계층에 대한 코드로 읽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따라서 이후 글에선 이름 대신 '남자'라 칭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인물이 처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화려한 도시 아래 비어있는 도로는 겉보기엔 화려해 보여도 속은 비어있는 인격의 공허함을 표현합니다. 보닛 너머 훔쳐보는 앵글은 비루한 현실을 은유합니다. 화려한 도시를 지나 비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는 차량을 구태여 정면에서 담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듯 보이지만 제자리에 멈춰서 있..

Film/Drama 2022.01.11

초록빛 하루 _ 반디, 최희서 감독

# 0. 인내 끝에 숨어있음을 깨닫는 초록빛 하루 '최희서' 감독, 『반디』입니다. # 1. 공들여 담아낸 반딧불을 연탄불에 연결합니다. '소영'이 연탄불에 데이는 장면은 반딧불에 데이는 것과도 같습니다. 덴다는 것은 고통이자 두려움입니다. 몸을 사리는 이유는 임신, 지키고자 하는 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사라진 것은 사라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라지는 것에 데이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군요. 사실 영화는 내내 '숨어있음'을 주인공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남편이 말하는 반디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어있는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말하는 아들도 집 안에 숨어 있습니다. 삭막하기만 한 서울의 아파트 단지 뒤엔 푸르른 녹음이 숨어 있습니다. 딸은 아빠가 아빠의 방 곳곳에 숨어있음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Film/Drama 2022.01.10

관찰과 연구 _ 재방송, 손석구 감독

# 0. 익숙치 않은 듯 불편해 보이는 양복. 물병을 하늘 높이 집어던지는 장난기. 짧게 멘 붉은색 백팩. 무더운 날의 오르막길. 거친 숨소리. 비 오듯 쏟아지는 땀. "저 왔어요. 이모!" '손석구' 감독, 『재방송』입니다. # 1. Unframed입니다. 드라마 물에서 예상할 수 있는 관습적인 클리셰에 얽매이지 않고자 하는 감독의 의지가 명확히 전달됩니다. 의도적으로 비튼 클리셰 파괴를 위한 클리셰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극을 쓰는 사람의 편의보다는, 캐릭터의 진짜 모습을 치열하게 관찰하고 연구했음이 스크린을 넘어 전달된다는 뜻이죠. 말하는 사람의 입을 배려한 티가 역력한 대사들입니다. 만지는 사람의 손을 배려한 티가 역력한 소품들입니다. 움직이는 사람의 몸을 배려한 티가 역력한 공간들입니다. 보는..

Film/Drama 2022.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