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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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영화 69

잊음으로써 완성되는 _ 더 문, 덩컨 존스 감독

# 0. 잊음으로써 완성되는 소모되는 가장의 서글픔        덩컨 존스 감독,『더 문 :: Moon』입니다.     # 1.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처럼 가장의 삶을 은유한 휴머니즘 드라마다. 클론의 사용기간 3년은 일생을 축약하는 것으로도, 쏜살처럼 지나버린 듯한 당사자의 인식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소소한 이목을 끌었던 기지의 이름 [사랑(SARANG)]은 자신의 헌신이 사랑의 또 다른 방식이라 되뇌는 간절함이다. 그것을 굳이 생소한 한국어로 적은 건 익숙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쑥스러움을 은유한다. 달리는 러닝머신은 지루한 일상의 반복, 같은 자리를 맴도는 무력감, 내달리고 싶은 무의식적 욕망을 두루 은유하는 친근한 메타포다.  나무로 조각한 모형은 고단함 끝에 보상이 있으리라는 기대다..

Film/SF & Fantasy 2024.12.18

원리를 찾아라 _ 레이어 레이크, 매튜 본 감독

# 0. 넘는 것과 넘겨지는 것의 차이        매튜 본 감독,『레이어 케이크 :: Layer Cake』입니다.     # 1. 마약과 혈흔이 낭자한 누아르의 제목은 레이어 케이크. 여러 겹의 시트 사이에 크림이나 잼을 쌓은 익숙한 디저트다. 영화는 원작자 J. J. 코널리가 이름 붙인 것처럼,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했던 가이 리치의 초기작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복잡 다난한 레이어가 켜켜이 쌓여 있는 듯하다. 범죄 조직의 내부 구조가 그러하고, 여타 조직들 간의 관계도 그러하다. 사건은 각기 다른 파편화된 소동의 적층으로 연계되어 있고, 플롯은 그것을 다시 최대한 얇게 저며 쌓아 나가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감독은 주인공의 이름을 숨긴다. 크레디트에서조차 XXXX로 표기하는 건 명백한 의도다. 통상적인 영..

시민의 의무 _ 더 커버넌트, 가이 리치 감독

# 0. 가이 리치가 이런 영화도 만들 줄 알았나        가이 리치 감독,『더 커버넌트 :: Guy Ritchie's The Covenant』입니다.     # 1. 자잘한 이야기를 리드미컬하게 썰어 들어가길 즐기던 가이 리치에게 이런 면도 있었던 걸까. 제이크 질렌할과 다르 살림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영화는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굵고 선명한 이야기를 힘껏 끌고 가는 맛이 인상적이다.  보통의 영화에서 큰 선택은 큰 동기에 의해 일어난다. 큰 희생을 통해 큰 우정을 표현한다거나 큰 결단을 통해 큰 신념을 관철하는 식이다. 반면 시작부터 삐걱거렸던 파견 군인과 현지 통역사의 브로맨스는 큰 행동을 움직이게 만드는 작은 동기에 대한 영화다. 감독이 포착하고자 하는 작은 동기란 제목에도 적시된 '계약'으로,..

Film/Action 2024.11.10

시간과 격려 _ 라스트 버스, 질리스 맥키넌 감독

# 0. 맞닥뜨리는 죽음에서 받아들이는 죽음으로        질리스 맥키넌 감독,『라스트 버스 :: The Last Bus』입니다.     # 1. 시작과 출발이 정해진 노인의 여행은 무릇 인생을 은유하기 마련이나, 티모시 스폴의 이야기는 다소 이질적이다. 아내의 죽음에서 시작해 자신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면에서, 탄생에서 죽음까지 훑어나가는 '인생'보다는 '죽음'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것에 가깝다. 또한 죽음에도 서사가 있으며, 출발점으로서의 죽음과 도착점으로서의 죽음이 달리 존재함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입에서부터 그러하듯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관한 것이다. 브리튼섬 서남단 랜즈엔드(Lands' End)에서 시작된 사랑이 동북단 존 오그로츠(John o' Groats)로 숨어든 것은 눈에 넣..

Film/Drama 2024.11.02

어쩔 수 없는 악 _ 필스, 존 S. 베어드 감독

# 0. 어쩔 수 없는 악은 어찌해야 하나        존 S. 베어드 감독,『필스 :: Filth』입니다.     # 1. 으로 익히 알려진 스코티시 소설가 어빈 웰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익숙한 부패 경찰의 범죄 스릴러 위로 양극성장애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내면을 심도 있게 그린다. 1인극에 준할 정도로 작품을 혼자 견인하게 되는 주인공 브루스 로버트슨은 제임스 맥어보이가 연기했다. (2017) 못지않은 폭발력으로 표현된 정신적 문제에 시달리는 경찰의 이야기는, 현실과 착란과 윤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에게 흥미로움과 불쾌감을 동시에 제공한다. 다소 어지러운 표현에도 불구하고 플롯의 방향은 간명하다. 주인공의 내면을 파고들며 입체성을 보강해 악행의 원리에 다가가는 것이다. 캐릭터라는 원인을 먼저..

규범을 회의하는 두 개의 눈 _ 가여운 것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 0. 바라보는 눈과, 바라보는 눈을 바라보는 눈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가여운 것들 :: Poor Things』입니다.     # 1. 요르고스 란티모스다. 여지없이 과격하고 기괴한 스타일이지만, 진정 궁금한 것은 이번엔 또 어떤 관념에 도전하고 있을까라는 것이다. (2009)를 통해 언어와 사고 체계의 상관관계를 재고하고, (2015)를 통해 자아와 관계의 함의를 탐구했던 감독은, 야심 찬 엠마 스톤과 함께 규범과 사상을 회의한다. 단순히 규범을 어기는 일탈이 아니다. 규범을 어기는 것은 기존의 규범에 반하는 형태로 종속된 새로운 규범을 실천함이고, 이는 그가 어떤 명분과 대안을 제시하는 지와 무관하게 여전히 규범적이다. 란티모스는 규범이라는 것 그 자체에 대해 가치중립적으로 주목하고..

Film/Drama 2024.10.08

두려운 자의 품격 _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맷 브라운 감독

# 0. 고통이 두려워 신을 부정하는 자와 고통이 두려워 신을 갈망하는 자 사이에서의 품격        맷 브라운 감독,『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 Freud's Last Session』입니다.     # 1. 은 미국의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Mark St. Germain)이 아몬드 M. 니콜리 주니어(Armand M. Nicholi Jr.)의 저서 에서 영감을 얻어 쓴 희곡이다.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계기로 영국이 전면전을 선포하며 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겸 기독교 호교론자 C. S. 루이스(C. S. Lewis)가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파크컴퍼니가 ..

Film/Drama 2024.09.04

이카루스의 거울 _ 리플리스 게임, 릴리아나 카바니 감독

# 0.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릴리아나 카바니 감독,『리플리스 게임 :: Ripley's Game』입니다.     # 1.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심리 스릴러다. 맷 데이먼의 (1999)가 알랭 들롱의 (1960)의 그늘에 가려진 수작이라면, 이 작품은 그 그늘에조차 들어가지 못한 비운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으나, 제법 흥미로운 중년의 톰 리플리를 만날 수 있다는 면에서 일정한 의의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연은 존 말코비치가 맡았다. 사근사근한 목소리의 톰 리플리는 50대 중반의 세련된 사기꾼이자 냉혈한 살인마다. 오프닝의 사건을 통해 한몫을 챙긴 톰은 이탈리아 시골에서 은퇴 생활을 즐기는 듯 보이지만 내면엔 갈등과 복잡성이 가득하다. 하이스미스의 원작들이..

마지막 질문 _ 미스터 홈즈, 빌 콘돈 감독

# 0. 위대한 배우가 위대한 탐정을 빌려 던진 마지막 질문        빌 콘돈 감독,『미스터 홈즈 :: Mr. Holmes』입니다.     # 1. 93세의 셜록 홈즈와 함께 기억과 현실의 경계를 탐험한다. 위대한 탐정의 이름에 묘수풀이식 미스터리 추리극을 기대하기 쉬우나, 인간 정신의 복잡성과 노화의 의미를 다룬 영화라는 면에서 의외성이 있다. 영화는 과거 사건의 전말을 중심으로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추리 장르의 관습을 탈피, 새로운 서사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논리와 감성, 과거와 현재, 기억과 망각, 사실과 창작의 대비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지적이면서 동시에 감성적인 탐구다. 다만, 그 의외성에 관객이 동의해 줄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이후 이야기하게 될 주제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홈즈의 ..

개미굴 _ 고스포드 파크, 로버트 알트먼 감독

# 0. 개미굴을 관찰하는 건 개미의 역사와 본성을 알기 위함이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고스포드 파크 :: Gosford Park』입니다.     # 1. 거장 로버트 올트먼은 2001년작 를 통해 관객을 100여 년 전 영국 상류층의 세계로 초대한다. 하나같이 꼬장꼬장한 귀족들의 차량이 줄지어 들어오는 동안 카메라는 보이지 않는 손님이 되어 끔찍한 주말 파티의 현장으로 스며든다. 쏟아지는 비를 지나 웅장한 문을 넘어 마주하는 미로와 같은 복도는 그 자체로 제국주의의 한계와 불안한 미래를 앞둔 1930년대 영국의 단면이다. 저택의 내부는 과시적인 우아함으로 가득하다. 눈 둘 곳을 정하기 힘들 만큼 정교하게 꾸며진 장식, 교양과 위선을 연기하는 귀족들의 화려한 의상, 정중하면서도 기계적으로 ..

세안 _ 피그,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

# 0. 그의 여행은 결국 마지막 세안에 도달하기 위함이었나.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피그 :: pig』입니다.     # 1. 거지 꼴을 한 왕년의 슈퍼스타가 납치당한 돼지를 찾는 이야기는 이목을 끌기 충분하다. 일부는 돼지 버전의 이냐는 둥의 짓궂은 농담을 던지기도 했지만 섣부른 오해다. 젊은 미국인 감독의 데뷔작은 창작자로서의 야심과 별개로 그렇게까지 장르적이지 않다. 처절한 추격전이나 끔찍한 결말, 최소한의 정돈된 결착 따위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일부 액션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물의 내면을 세심하게 매만지는 감정적인 드라마라 소개하는 것이 적절하다. 호흡은 일관되게 느리고 고요하며 진중하다. 심오하고 애처로우며 다소 피학적이기도 하다. 쳅터의 구성에서부터 그러하..

악역을 사는 사람은 없다 _ 캐시트럭, 가이 리치 감독

# 0. 세상에 악역을 사는 사람은 없다.        가이 리치 감독,『캐시트럭 :: Wrath of Man』입니다.     # 1. 가이 리치와 제이슨 스타뎀의 재결합이다. , , 로 검증된 두 사람의 협업은 이목을 끌기 충분했지만, 그보다 더 주목을 끈 것은 16년의 공백이다. 각자의 시간 동안 두 사람 모두 나름의 성업적 성취에 도달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있는 법이다. 스타뎀은 (이젠 놀림감이 되기까지 하는) 특유의 발성과 노출을 곁들인 액션에 갇혀 버렸고, 리치는 몇몇의 프로젝트를 지나는 동안 초기 스타일의 활력이 둔화되었다. 직전작 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찾으려는 가이 리치는, 기세를 이어 이견의 여지없는 페르소나에게 프러포즈한다. 영화 은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의 이야기지만 마치 미스..

Film/Action 2024.04.28

오스카가 또 _ 디 애프터, 미산 해리먼 감독

# 0.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미산 해리먼 감독, 『디 애프터 :: The After』입니다. # 1. 나이지리아계 영국인 사회 운동가 겸 사진작가인 미산 해리먼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2015년 개봉된 영화 에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연기한 데이비드 오예로워가 주인공 다요 역으로 참여합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18분짜리 단편 영화인데요. 올해 아카데미 단편영화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이기도 하니, 시상식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제목을 들어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수상은 웨스 앤더슨의 가 차지합니다.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작품이었죠. 묻지 마 테러의 참상 이후를 그립니다. 전반적으로 평이하고 예측가능한 전개이지만 사안의 심각성과 시의성이 관객을 안정적으로 몰입하게 합니다. 테러로 아내와 ..

Film/Drama 2024.03.18

역치는 차갑다 _ 아가일, 매튜 본 감독

# 0. 킹스맨의 그늘 아래 다소곳이. 매튜 본 감독, 『아가일 :: Argylle』입니다. # 1. 솔직해 집시다. 어차피 대부분은 매튜 본이라는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않습니다. 킹스맨 만든 감독이라 하면 그제야 '아~ 그 사람이야? 나 그거 재미있게 봤어!' 정도의 반응을 볼 수 있겠죠. 관객이 기대할 아가일의 세일즈 포인트 역시 재철 전어처럼 살이 포동포동 올라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라거나, 라데꾸를 날릴 것만 같은 플랫탑 스타일의 근육질 헨리 카빌이 아닌,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던 콜린 퍼스의 슈트핏과 머가리 팡팡 터트리는 액션이라는 '그 맛'의 재해석일 가능성이 99.9%입니다. 이례적으로 성공을 거둔 우리나라 기준, 시크릿 에이전트는 600만이 들었습니다. 전작의 후광에 힘입어..

Film/Action 2024.03.16

혁신은 없었다 _ 팟 제너레이션, 소피 바르트 감독

# 0. 파스텔 빛 미래에 대한 사소하지 않은 고민들이 잎사귀처럼 차곡차곡 쌓인다. 소피 바르트 감독, 『팟 제너레이션 :: The Pod Generation』입니다. # 1. 아이를 가졌다. 아이를 낳았다. # 2. ...가 영화 속 상황의 전부입니다. 그저 엄마의 자궁 대신 '팟'이라는 이름의 인공자궁에서 아이가 키워질 뿐이죠. 기술적인 문제 혹은 우려는 의도적으로 배제됩니다. 안전상의 걱정 없이 자궁을 온전히 대체할 수 있는 가상의 시스템이 존재한다 가정한 상황에서의 윤리적 문제에 천착한 작품이라는 것이죠. 자연스럽게 중요한 것은 기술이 어디까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일 텐데요. 영화 속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과의 거리를 기준으로 크게 네 단계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가장 낮은 층은 '집에서..

Film/SF & Fantasy 2023.12.10

파스텔색 울타리 _ 스크래퍼, 샬롯 리건 감독

# 0. 혼자라는 오해가 만든 파스텔색 울타리를 사랑스럽게 넘는다. 샬롯 리건 감독, 『스크래퍼 :: Scrapper』입니다. # 1. 큰 틀에서는 가족영화 겸 성장영화라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일찍 엄마를 여읜 열두 살 배기 엄복동 조지와, 뜬금 나타나 아빠라 주장하는 짝퉁 에미넴 제이슨이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식의 가족영화이구요, 동시에 각자 나름의 자기 성찰에 도달한다는 면에서 성장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죠. 비슷한 경우 결말에 이르러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한다는 식으로 흘라가기 마련입니다. 내내 퉁명스럽던 사람들이 팀워크가 요구되는 어떤 극적인 사건을 겪은 끝에, "...아빠...", "...우리 딸..." 뭐 이런 식의 눈물 폭발 엔딩은 익숙하죠. 그렇게 변..

Film/Drama 2023.11.24

시나리오 특강 _ 세븐 싸이코패스, 마틴 맥도나 감독

# 0. 거만한 천재가 들려주는 잔인하고 선량한 시나리오 특강 마틴 맥도나 감독, 『세븐 싸이코패스 :: Seven Psychopaths』입니다. # 1. 마틴 맥도나입니다. 역작 의 감독이자, 얼마 전 글로도 옮긴 바 있는 를 연출한 감독인 데요. 두 작품에 앞서 만들어진 2012년 개봉작이죠. 일반적으론 코미디 범죄 영화라 해야겠습니다만, 아시다시피 메타픽션(Metafiction)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콜린 패럴이 연기한 마티는 극 중 시나리오 작가임과 동시에 감독이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세븐 사이코패스를 집필한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다른 무엇보다 마티(Marty)라는 이름은 누가 보더라도 감독의 이름 마틴(Martin)에서 가져온 애칭이죠. 영화는 로스앤젤..

Film/Comedy 2023.11.22

z의 감각 _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웨스 앤더슨 감독

# 0. 웨스 앤더슨이 선사하는 기상천외함이란 웨스 앤더슨 감독,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입니다. # 1. 오랜만에 넷플릭스에 걸린 단편입니다. 누가 봐도 '그 이름'이 떠오를 법한 독특한 화면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오이형의 모습은 관객의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죠. 영국의 소설가 로알드 달(Roald Dahl)의 동명 단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인데요. 한편도 아니고 , , 까지 무려 4편이 연달아 공개되었습니다. 참! 잘했어요. 알고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두 해전쯤 로알드 달 스토리 컴퍼니(Roald Dahl Story Company, RDSC)를 넷플릭스가 인수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요. 해당 사업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되겠군요. 혹여 문..

Film/SF & Fantasy 2023.10.02

피터 싱어의 논증 _ 카우,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

# 0.  Life is a Comedy when seen in long-shot, but a Tragedy in close-up.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카우 :: Cow』입니다.     # 1.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이상함을 느끼셨을까요. 서두의 영문장은 채플린이 말했다 알려진 명언인데요. 사실 순서를 반대로 적어둔 문장입니다. 원본은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비극(tragedy)을 먼저 말한 후에 희극(comedy)으로 매듭짓는 구조였죠. 해당 명언이 대구를 이루는 터라 짐짓 순서를 바꾼다 하더라도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여기실 수도 있을 텐데요. 엄정하게 말하자면 뉘앙스에는 다소 차이가 있..

Documentary/Social 2023.08.24

압박과 환희가 교차하는 완성의 순간 _ 보일링 포인트, 필립 바랜티니 감독

# 0.  주인공은 단연 촬영입니다. 인물이든 환경이든 사건이든 요리든 그 무엇이 되었든 촬영 방식에 우선하지는 못합니다.       필립 바랜티니 감독,『보일링 포인트 :: Boiling Point』입니다.     # 1. 보일링 포인트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나 롱 테이크(Long take)일 텐데요. 본론에 앞서 테이크(Take)가 뭔지부터 가볍게 짚고 가도 좋겠죠. 다음백과는 '중간에 끊지 않고 촬영한 하나의 연속적인 화면 단위를 지칭하는 용어'라 설명하는 데요. 대충 카메라 녹화 셔터를 한번 누른 후 정지를 위해 다시 셔터를 누르는 사이를 의미하는 촬영의 최소 단위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하겠네요.  쇼트(Shot)라는 말도 비슷한 의미로 쓰이곤 하는데요. 테이크는 촬영 용어, 쇼트는 편집 용어입니다...

Film/Drama 2023.07.14

성장하는 꿈들의 유쾌한 합주 _ 스쿨 오브 락,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 0. Let's Rock~ Everybody, Let's Rock~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스쿨 오브 락 :: The School of Rock』입니다. # 1. 제목에서처럼 '스쿨'과 '락'에 대한 영화입니다. 스쿨은 [성장]이라는 가치를 공간화합니다. 락은 [꿈]이라는 가치를 청각화합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와 잭 블랙이 정의하는 성장과 꿈은 그 자체만으론 불완전합니다. 호레이스 그린 사립 초등학교의 학생들은 성장을 위한 성장에 매몰된 아이들입니다. 성적과 시험에 기계적으로 반응합니다. 성적에 따라 우쭐하거나 주눅 들거나 삐딱하거나 무기력하는 등 종속되어 있는 모습으로 소개됩니다. 듀이는 성장 없이 꿈만 좇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낭만을 추구하기만 할 뿐, 낭만에 다가가기 위한 어떤 종류의 성실성..

Film/Comedy 2023.06.04

십자말풀이 _ 뜨거운 녀석들, 에드가 라이트 감독

# 0. Greater Good! 에드가 라이트 감독, 『뜨거운 녀석들 :: Hot Fuzz』입니다. # 1. 코르네토 트릴로지 두 번째 작품입니다. 작년 초 를 다시 보고 난 후 1년 여만에 에드가 라이트군요. 감독의 절친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랑 함께한 트릴로지 중 한 작품이긴 합니다만, 사실 전후의 두 작품과는 결이 제법 다른 영화라 봐야 할 겁니다. 예외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목적지향적인 작품이기 때문이죠. # 2. 딱 잘라 말하자면 [애국자법 디스 영화]입니다. 한창 영미권이 테러에 불안해하던 시기, 공동체의 안전을 명분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는 법인데요. 원래대로라면 외국 법령을 설명드리기 위해 있는 지식 없는 지식 짜내야 했을 테지만, 다행히도 우리에..

Film/Action 2022.11.10

뉘앙스 ⅱ _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뉘앙스 ⅰ _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0. 대상(Her)이 주체(She)가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어른의 사랑 - 영화평론가 이동진, 그녀(Her) 한줄평 - 토드 헤인즈 감독, 『캐롤 :: Carol』입니다. # 1. 창살과 함께 영화는 시작됩니다. 감독은 자morgosound.tistory.com  # 6. '안심이 되냐'는 물음에 캐롤은 놀라운 사람이라 답하며 회피합니다. 두려운 게 있다면, 도와줄 것이 있다면 청하라는 말에는 단호하게 두려운 것이 없다 말하죠. 여행 캐리어는 캐롤의 깊고 은밀한 내면을 의미합니다. 그 속에 숨겨둔 총을 보여준 다음 두려움에 대한 대화를 풀어내게끔 편집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캐롤은 내면에 두려움을 숨기고 있으며 그 두려움이 [총]이라는 아이템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

Film/Romance 2022.10.22

뉘앙스 ⅰ _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 0. 대상(Her)이 주체(She)가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어른의 사랑        토드 헤인즈 감독,『캐롤 :: Carol』입니다.     # 1. 창살과 함께 시작됩니다. 감독은 자신이 펼쳐놓으려는 이야기를 똑같은 모양의 틀이 군집된 창살로 정의합니다. 거칠고 건조한 철제 질감과 오밀조밀한 구성은 단절감이나 통제력 따위의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암시합니다. 정체성을 제약하는 압박감과 획일성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기본적으론 짙은 정서의 멜로 영화입니다만 못지않은 드라마적 깊이를 겸비한 작품인 것이죠. 다양한 형태의 [프레임]으로 풀어낸 작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대표적으로 창문을 꼽을 수 있을 테죠.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프레임을 점유하기도 빼앗기기도 합니다. 정신적인 순간에..

Film/Romance 2022.10.20

분풀이 _ 슈퍼 리그 축구의 종말, 칼 힌드마치 감독

# 0.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축구도 좋아합니다. 잘 알지는 못하구요, 아주 아주 아주 라이트 한 팬이죠. 팀은 영국에 위치한 병기창 축구 클럽이라는 곳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구단주는 스탠 크랑키라는 인물인데요. 이 인물이 슈퍼 리그라는 축구의 종말(?)을 불러올 뻔 한 사건의 주범(?) 중 한 명이라 다큐를 보기 전부터 어느 정도 주워들은 바는 있었습니다. 물론 마니아분들이 아시는 것만큼 정확하지는 않겠지만요. 칼 힌드마치 감독, 『슈퍼 리그, 축구의 종말 :: Super Greed, The Fight for Football』입니다. # 1. 레알 회장 페레즈의 주도 하에 15개 메가 클럽 구단주들이 모여 "자잘한 팀들 재끼고 대륙 통합 리그를 만들어 우리끼리 다 해 먹어보자!!!" 라는 목적으로 진행한..

Documentary/Social 2022.07.16

처녀보살의 살풀이 _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에드가 라이트 감독

# 0.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장르로 장난치려고 만든 영화'라 한다면, 베이비 드라이버를 '음악 가지고 놀려고 만든 영화'라 한다면, 이 영화는 '촬영 연출하려고 만든 영화'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 『라스트 나잇 인 소호 :: Last Night in Soho』입니다. # 1. 타란티노 감독이 제목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유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우디 앨런의 가 함께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목뿐 아니라 재미의 측면에서도 두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매력적이지만 허구적이기도 한 과거 황금기의 도시를 재현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의 동력을 얻는다는 점에서 유사한 방법론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우디 앨런이 그린 1920년대 파리도 아름답습니다만,..

Film/Horror 2022.06.16

트롤리 딜레마 _ 아이 인 더 스카이, 개빈 후드 감독

# 0. Q. 광차가 운행 중 이상이 생겨 제어 불능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대로는 선로에 서 있는 5명이 치여 죽고 맙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반이 전철기의 옆에 있고, 전철기를 돌리면 전차를 다른 선로로 보냄으로써 5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른 선로에 1명이 있어서 그 사람이 치여 죽고 맙니다. 어느 쪽도 대피할 시간은 없습니다. 이때 도덕적 관점에서 이반이 전철기를 돌리는 것이 허용됩니까? 요약하자면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죽여도 되는가라는 문제다.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는 1명을 희생해서라도 5명을 구해야 하지만, 의무론을 따르면 누군가를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되기에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 위키 백과 광차 문제 (鑛車問題, trolley problem) 중에서..

거기서 거기 _ 내가 잠들기 전에, 로완 조페 감독

# 0.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예요.        '로완 조페' 감독,『내가 잠들기 전에 :: Before I Go to Sleep』입니다.     # 1.  슈퍼스타 캐스팅에 마케팅을 올인합니다. 관객을 혹하게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극적이지만 너무 난해하지는 않은 직관적인 설정이 작품의 동력이 됩니다. 인물 구도와 상황 전개는 지극히 단조롭지만 불륜과 치정 따위의 통속적 아이템들이 맛있고 몸에 해로운 인공적 매운맛을 더합니다. 마냥 클리셰라 욕하기에는 찝찝하고 클래식이라 합리화하기도 애매한 그 중간 어딘가의 익숙한 플롯입니다. 지나고 보면 이상하기 그지없는 개연성 붕괴가 속출하지만 관람하는 동안엔 적당히 자극적인 묘사와 배우진의 열연에 가려 크게 걸리적거리지 않습니다.  몸값과 인지도 순에..

환생 했나? _ 스탈린이 죽었다!, 아만도 이아누치 감독

# 0. 죽은 줄 알았는데 말이죠. '아만도 이아누치' 감독, 『스탈린이 죽었다! :: The Death of Stalin』입니다. # 1. 역사적-정치적 사건의 내막과 암투를 다루는 작품들의 리뷰란 결국 장학 퀴즈 식으로 귀결되기 마련입니다. 저지른 악행들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비참한 죽음, 스스로 만든 권위가 골든 타임을 놓치게 만드는 아이러니, 고상 떠는 취미와 대조되는 지저분한 실금, 독살을 의심해 의사들을 모조리 숙청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진료의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어리석음, 모함하고 비위 맞추는 데에만 능한 간신들과, 능력에 어울리지 않는 휘향 찬란한 직함과, 웃옷을 가득 채운 무수한 훈장의 요청 등이 실제로도 그러했답니다~ 라는 식이죠. 거기다 진중한 정치사극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골려먹기..

Film/Comedy 2022.02.28

가웨인 교향곡 _ 그린 나이트, 데이빗 로워리 감독

# 0. 무엇 다움의 의미.        '데이빗 로워리' 감독,『그린 나이트 :: The Green Knight』입니다.     # 1.세상엔 영화를 곱씹어 자기 생각을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과 대화하기 위해 지금껏 블로그를 하고 있고 이 글 역시 마찬가지죠. 제게 있어 다행스러운 것은 감독의 전작 가 예방주사가 되어주었다는 점입니다. 이후 리뷰를 통해 이야기하게 될 상징들에 대한 해석 중 상당 부분은 고스트 스토리를 즐기는 동안 연습한 것에 도움받은 것들이었죠. 두 작품 모두 '삶의 가치와 죽음의 의미'라는 비슷한 주제의식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거든요.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 전설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아니, '이라고' 합니다.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 누구나 냉장고엔 먹다 남은..

Film/SF & Fantasy 2022.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