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금기를 어기는 욕망, 그 충실함을 시험하는 거울들

니기나 사이풀라에바 감독,
『피델리티 :: Fidelity』입니다.
# 1.
스스로 충실함(Fidelity)을 표방하고 있는 영화는 정작 불성실(Infidelity)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기만인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제목과 서사의 모순은, 이 모든 것이 충실함의 대상을 타인에서 자아로 이동시키려는 전복적인 텍스트임을 암시한다. 쉽게 말해, '당신은 배우자에게 충실한가, 아니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가' 되묻는 것이다. 문득, 부르주아 여성의 억압된 성적 판타지를 통해 계급과 도덕의 이면을 파헤쳤던 고전 세브린느(Belle de Jour, 1967)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루이스 부뉴엘의 그것이 몽환적인 판타지였던 것과 달리, 피델리티는 냉소적이고 임상적인 시선으로 현대인의 고립과 욕망을 관찰한다는 면에서 구분된다.
산부인과 의사 레나는 타인의 생식과 신체를 통제하는 전문가지만, 정작 본인의 몸과 욕망은 남편 세르게이와의 관계에서 소외된다. 감독은 레나의 무채색 일상과 병원이라는 멸균된 공간을 조응시켜 그녀가 겪고 있는 '성적 기아(飢餓)' 상태란 즉발적인 욕구불만을 넘어 존재론적 위기라 주장한다. 즉, 레나에게 외도는 도덕적 타락 이전에 사회적 역할에 짓눌려 거세당한 '감정적 진실(Self-Fidelity)'을 복원하려는 일종의 자가 치료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윤리적으로 옳다거나 정당하다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낭만적이라 포장할 생각도 없다. 단지 여기 본능이 억눌린 인간이 있고, 그 본능이 폭발할 때 어디까지 무모해질 수 있는가 집요하게 파고들 뿐이다.
그래서 레나는 반복적으로 거울을 본다. '너 도대체 누구야.' 낯선 타인이 되어버린 자신을 검열하는 강박적인 자기의식의 은유이자, 영화의 착점이 어디에 있는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치다. 에브게니야 그로모바의 적나라한 노출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의 에로티시즘은 거울 앞의 자아가 느낄 취약성과 동물적 솔직함을 표현하려는 미학적 결단에 가깝고, 그렇기에 그녀의 육체는 손쉬운 눈요깃감이 아닌,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진 인간의 나약한 민낯이 기록될 수 있는 유일한 매체일 따름이다.

# 2.
세르게이는 '열정 없는 섹스는 무의미하다'는 그럴듯한 예술가적 핑계—혹은 낭만주의적 궤변—으로 아내의 요구를 거절한다. 레나의 첫 일탈은 그런 남편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을 향한 공격성은 희석되다, 억압된 자아를 확인하려는 나르시시즘적 탐닉으로 변질된다. 타인의 위선에 대한 신체적 반동이 마침내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버린 '금기에 대한 중독'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이후 그녀의 이중생활은 사회적 자아(의사로서의 윤리와 권위)와의 위태로운 긴장으로 이어지다, 결국 환자 남편과 얽혀 붕괴되는 데 이른다.
하이라이트는 레나의 고백을 마주한 남편의 반응이다.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된 세르게이는 잠깐의 분노 후 기이한 흥분과 호기심을 보인다. 그는 레나에게 디테일을 캐물으며 아내가 '타인의 것'이 되었다는 사실로부터 도착적인 자극을 느낀다. 세르게이에게 레나는 '내 곁에 있는 지루한 아내'일 때는 욕망의 대상이 아니었으나, '다른 남자의 손을 탄 여자'가 되자 비로소 다시 욕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 레나 안에서 발생한 금기에 대한 중독이 마침내 타인에게까지 전염된 순간으로, 감독은 이 섬뜩한 클라이맥스를 통해 제도권 결혼 생활의 충실성과 자기 욕망의 충실성 간의 불일치가 빚어내는 구조적 아이러니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 3.
두 사람이 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은 얼핏 관계의 회복이나 새로운 출발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거짓이다. 이들의 결합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닌, 위태로운 임시 봉합으로서의 도피일 뿐이다. 세르게이가 되찾은 열정은 레나라는 존재가 아닌 그녀가 가져온 금기 위반 서사에 구속되어 있고, 그렇기에 그들의 충실함이란 '신뢰'가 아닌 '공유된 타락'으로 대체된 것에 불과하다. 오프닝에서 무덤한 표정으로 걷던 레나는, 엔딩에 이르러 우연히 마주친 남자들에게 묘한 눈빛을 던진다. 모호한 결말은 그녀의 욕망이 남편과의 관계 개선으로 결코 해소되거나 길들여질 수 없는, 스스로 본질적인 것임을 암시한다. 감독은 인물을 도덕적으로 단죄하거나 교화시키는 손쉬운 길을 거절함으로써, 욕망이 억압된 자아를 어떻게 잠식해 재구성하는가 끝까지 응시하며 관객의 생각을 되묻는다.
러시아 감독의 영화는 도발적인 제목값을 톡톡히 한다. 다만 그 방식이 아주 짓궂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레나의 무책임한 행위에 혀를 차면서도, 한편으론 그녀가 억압된 주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묘한 대리만족과 해방감을 느낄 것이고, 심지어 금기를 어기고 있는 레나의 에로티시즘에 대해 그녀를 가지고 싶은 부도덕한 욕망마저 느낄 것이다. 따라서 관객은 영화를 보는 동안 이미 충실함의 대상을 타인에게 둘 것인가 자신에게 둘 것인가 질문받은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날것의 에너지가 가진 파괴력과 생명력이 투사된 스크린은 곧 거울이다. 관객 저마다의 민낯을 비추는 또 다른 리얼리즘의 거울인 것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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