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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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 68

망각된 순간의 시간들 _ 군다,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감독

# 0. 순간의 가축을 누리기 위해 망각하고 있었던 시간 속 동물들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감독,『군다 :: Gunda』입니다.     # 1. 전향적인 생태주의 실천가로 알려진 호아킨 피닉스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것처럼 목적은 명확하다. 복종적이고 도구적인 가치로만 치부되던 가축과의 관계를 재고하는 다큐멘터리다. 노르웨이의 한 농장에서 태어난 암퇘지와 새끼돼지, 한쪽 다리가 없는 닭, 건장한 소 몇 마리는 작품에 등장하는 전부로, 90분의 런타임을 농장의 동물들에 대한 애정에 정직하게 할애한다. 폭압적으로 단순화되어 버린 존재들의 외면하고 있던 복잡성에 대한 성실하고 끈질긴 조우가 평화롭게 그려진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개성적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에서, 가축은 소비되기 위한 상품..

짓궂은 우연 _ 마리우폴에서의 20일,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감독

# 0. 여기 독재자가 있다.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감독,『마리우폴에서의 20일 :: 20 Days in Mariupol』입니다.     # 1. 한때나마 유능하고 마초적인 모습으로 어필했던 그는 총기를 잃은 지 오래다. 독재자는 편협하고 극단적이며 반복적이고 농축적인 정보만을 탐닉한다. 내뱉는 어휘와 행동들은 이미 정상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 있다. 몇몇의 담화나 전언에서 확인되는 세계에 대한 인식은 망가져도 단단히 망가져 있다. 암약하는 악을 처단해 민족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 주장하지만, 동의하는 사람은 전체주의에 대한 황망한 향수를 가진 몇몇의 노년층 극단주의자들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의 존재야 말로 민족의 안녕을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악이다. 주변에는 직언할 사람 없이..

한겨울에도 듣는 _ 한여름밤의 재즈, 아람 아바키안 / 버트 스턴 감독

# 0. 한여름에만 듣기엔 너무나 아까운 1958년의 노스탤지어        아람 아바키안 / 버트 스턴 감독,『한여름밤의 재즈 :: Jazz on a Summer's Day』입니다.     # 1. 1958년 로드아일랜드 뉴포트에서 열린 재즈 페스티벌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듬해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첫 상영된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작품은, 1999년 미국 의회도서관에 의해 국립영화등록소 보존 대상으로 선정된다. 한국에서는 배급사 찬란에 의해 수입되어 2022년 개봉한다. 덕분에 우리 관객들도 리마스터링 된 귀한 자료를 즐길 수 있었다. 정직한 공연 실황에는 한여름 선선한 밤공기 같은 재즈의 매력이 가득하다. 무대와 이미지에 최대한 집중한 작품은, 관객을 시간과 공간을 넘어 페스티벌의 참여자로..

Documentary/Art 2024.11.30

낙원의 비명 _ 그날, 패러다이스, 드레아 쿠퍼 / 재커리 카네파리 감독

# 0. 검붉은 화마에 집어삼켜진 낙원의 비명        드레아 쿠퍼 / 재커리 카네파리 감독,『그날, 패러다이스 :: Fire in Paradise』입니다.     # 1. 2018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패러다이스(Paradise)에서 벌어진 대규모 산불재해의 기록이다. 이른 아침의 산불은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큰 산불 중 하나로 꼽힌다. 늦가을의 건조한 기후와 강풍에 맞물려 빠르게 번져나간 불길은 당국의 통제를 벗어나 삽시간에 도시를 전소시켰고, 수많은 사람들이 대피하는 가운데 상당 숫자의 인명 피해를 야기했다.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화마의 이름이 캠프파이어라는 아이러니와, 참극이 벌어진 도시의 이름이 패러다이스라는 아이러니는 무자비한 자연 앞에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

Documentary/Social 2024.10.30

거미와 아기새 _ 베나지르를 위한 세 개의 노래, 엘리자베스 미르자에이 감독

# 0. 뭐라도 해 봐야지. 쟤네들은 왜 저렇게 사는 거야?        엘리자베스 미르자에이 / 굴리스탄 미르자에이 감독,『베나지르를 위한 세 개의 노래 :: Three Songs for Benazir』입니다.     # 1. 체념의 미로 속에서 길 잃은 거미다. 좌절의 철장에 갇힌 아기새다. 하늘을 부유하는 감시선은 당사자에겐 고압적인 현실, 관찰자에겐 무신경한 타인이다. 뭐라도 해 봐야지. 쟤네들은 왜 저렇게 사는 거야?라는 속 편한 이야기를 잔혹한 현실을 지켜본 카메라가 물리치는 덴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전쟁 피난민 캠프의 샤이스타와 베나지르는 사랑의 결실을 품은 다정한 신혼이다. 흙벽돌을 만들어 파는 청년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국군에 지원하려 하지만 녹록지 ..

커넥트 _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밴드, T.G. 해링턴 / 대니 클린치 감독

# 0. 결국 음악의 본질은 연결인 것일까        T.G. 해링턴 / 대니 클린치 감독,『프리저베이션 홀 재즈밴드 :: A Tuba to Cuba』입니다.     # 1. 가끔은 치졸한 질투심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외세의 침탈로 인한 역사적 단절, 절멸 수준의 전국 전쟁을 겪으며 스스로 발현된 것보다 수입된 것을 현지화하며 성장한 한국은, 삶의 부분집합으로서의 음악을 향유할 뿐이다. 반면, 굴곡진 근현대사를 성숙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스스로 발현될 만큼 충분히 고립된 뉴올리언스의 음악은 삶의 일부분이 아닌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합집합이다. 우리는 발라드를, 힙합을, 클래식을, 트로트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 재즈는 선택이 아닌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존재와 닿아있는 음악이라니. 그 ..

Documentary/Art 2024.08.06

겁쟁이 _ 스카이워커스, 제프 짐발리스트 감독

# 0. 자신 있게 못하는 늘 숨어만 있는나는 겁쟁이랍니다.        제프 짐발리스트 감독,『스카이워커스 사랑 이야기 :: Skywalkers: A Love Story』입니다.     # 1. 수학은 인간이 구축한 것 중 가장 일관되고 엄정한 논리체계다. 과학, 공학, 경제학 등 정교한 논리구조를 요구하는 학문들이 수학을 일종의 언어로서 필수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다. 흥미로운 것은 엄격한 체계일수록 단 하나의 오류만으로도 손쉽게 붕괴된다는 점이다. 어째 숫자보다 알파벳과 로마자가 더 많이 보이는 방대한 현대 수학조차, 고작 [1+1=3]이라는 잘못된 명제 하나의 침입에 허망하게 무너진다.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가 부조리로 가득한 것은 그릇된 명체 하나를 끌어안는 과정에서 생긴 논리적 오류다. 지붕에 오른..

Documentary/Social 2024.07.26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_ 리틀 걸, 세바스티앙 리프쉬츠 감독

# 0. "사샤는 오랫동안 여자라고 느껴... 아뇨, 느낀 게 아니라 사샤는 여자예요. 남자로 태어난 여자요." 세바스티앙 리프쉬츠 감독, 『리틀 걸 :: Petite Fille』입니다. # 1. 의 소재는 제법 독특한데요.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10글자 넘어가는 괴랄한 소수자성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인공 '사샤'는 생물학적 성별과 정신적 성별의 괴리로 힘들어하는 평범한 트랜스젠더일 뿐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녀가 나중에 커서 여자가 되고 싶다 말하는,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아주 어린 친구라는 것이죠. 퀴어 다큐멘터리도 소주제에 따라 풀어가는 방식은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그 끝은 두 가지 목표로 귀결되기 마련입니다. 주인공의 소수자성에 대한 내적 탐구, 그 과정에서 차별에 맞서 싸우는 사회적..

세 번의 문답 _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권하정 / 김아현 감독

# 0. 우리는 이 가수를 불쑥 찾아갔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를 함께 찍었다. 권하정 / 김아현 감독,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 Notes from the Unknown』입니다. # 1. 관객이 당장 만나게 되는 영화는 한 편이지만 전체 프로젝트를 생각하면 총 세 개의 영상이 존재합니다. 의 뮤직비디오, 의 뮤직비디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려는 다큐멘터리 가 바로 그것이죠. 각각은 그것이 음악이 되었든, 철학이 되었든, 태도가 되었든, 입장이 되었든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의 창작물에 대한 피드백으로서의 성격을 가집니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의도 여하와 무관하게 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일종의 질문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각각의 영상은 그 자체로 온전한 작품임과 동시에 권하정..

다시 만나는 자연 _ 다이에나 케네디, 엘리자베스 캐롤 감독

# 0. 과카몰레(스페인어: Guacamole)는 멕시코 요리의 소스로, 으깬 아보카도에 다진 양파, 토마토, 고추, 라임즙 따위를 넣어 만든다. 콘칩과 유사한 '토토포(Totopo)'라고 하는 튀긴 토르티야 조각으로 퍼서 먹는다. '과카'는 멕시코에서 아보카도를 뜻하는 '아과카테(Aguacate)'에서 온 것이며, '몰레'는 멕시코 원주민 어로 '소스'를 뜻한다. 엘리자베스 캐롤 감독, 『다이애나 케네디 :: Nothing Fancy Diana Kennedy』입니다. # 1. 다이애나 케네디의 전기 다큐멘터리입니다. 멕시코 전통 요리 전문가이자, 다수의 저술 활동을 펼친 작가이기도 한 인물인데요. 독특하게도 태생은 이름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 영국인이죠. 1923년생으로 작품이 공개된 당시에도 이미 아..

피터 싱어의 논증 _ 카우,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

# 0.  Life is a Comedy when seen in long-shot, but a Tragedy in close-up.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카우 :: Cow』입니다.     # 1.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이상함을 느끼셨을까요. 서두의 영문장은 채플린이 말했다 알려진 명언인데요. 사실 순서를 반대로 적어둔 문장입니다. 원본은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비극(tragedy)을 먼저 말한 후에 희극(comedy)으로 매듭짓는 구조였죠. 해당 명언이 대구를 이루는 터라 짐짓 순서를 바꾼다 하더라도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여기실 수도 있을 텐데요. 엄정하게 말하자면 뉘앙스에는 다소 차이가 있..

Documentary/Social 2023.08.24

옮겨 담았을 뿐 _ 밤쉘, 알렉산드라 딘 감독

# 0. '배우라는 인형'에서 '피해자라는 박제'로 옮겨 담았을 뿐. 알렉산드라 딘 감독, 『밤쉘 :: Bombshell: The Hedy Lamarr Story』입니다. # 1. 오스트리아 출신 고전 할리우드 배우 '헤디 라마'의 전기 다큐멘터리입니다. 인기와 미모와 기행과 논란으로만 알려져 있던 그녀의 발명가로서의 재능을 재조명하면서, 동시에 그런 재능이 알려질 수 없었던 시스템의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죠. 본론에 앞서 갈수록 그런 경향이 짙어지는 느낌은 있습니다. 인물이 되었든 사건이 되었든, 탐사의 결과가 아니라 원하는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그 결론을 향해 관객의 등을 밀어대는 다큐멘터리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인상 말이죠. 포스트 트루스라는 제목으로 이야기한 바 있는 씨스피라시..

상생의 역사 _ 아기 코끼리와 노부부, 카르티키 곤살베스 감독

# 0. 필연의 상처를 회복케 하는 상생의 역사 카르티키 곤살베스 감독, 『아기 코끼리와 노부부 :: The Elephant Whisperers』입니다. # 1. 남인도 타밀나두 주에 위치한 무두말라이 호랑이 보호구역.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야생 인접 인도코끼리 캠프, 테파카두 캠프. 그 속에서 '숲의 왕들'이라는 뜻을 가진 카투나야카르 족 사람들이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다큐멘터리는 라구와 암무라는 이름의 두 아기 코끼리를 돌보는 관리인 봄만, 벨리 부부를 중심으로 따라갑니다.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가치는 상생相生입니다. 자연과 생명의 상생이자, 인간과 동물의 상생이며, 부모와 자녀의 상생이자, 노인과 아이의 상생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통할하는 존재와 역사와 ..

애프터 디어 _ 야생동물병원 24시, 다넬 엘펠레그 / 우리엘 시나이 감독

# 0. Dedicated caretaker of people and wildlife. He spread light to all despite his own suffering. 다넬 엘펠레그 / 우리엘 시나이 감독, 『야생동물병원 24시 :: Pere』입니다. # 1. 이스라엘의 야생동물병원입니다. 우리말 제목의 '24시'라는 말처럼 낮도 밤도 따로 없습니다. 사슴에서 하이에나까지, 오리부터 펠리컨까지 가리는 동물도 없습니다. 수많은 동물들이 도움을 받지만 대부분은 생사의 경계에 있습니다. 다수의 의료진 가운데 수의사 아리엘라와, 수석 간호 책임자 슈멀릭을 중심으로 다큐멘터리는 흘러갑니다. 안타깝게도 개봉되기 직전 슈멀릭 씨가 급작스레 사망했다 하는데요. 때문에 슈멀릭에게 바친다라는 애도의 말과 함께 작..

분풀이 _ 슈퍼 리그 축구의 종말, 칼 힌드마치 감독

# 0.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축구도 좋아합니다. 잘 알지는 못하구요, 아주 아주 아주 라이트 한 팬이죠. 팀은 영국에 위치한 병기창 축구 클럽이라는 곳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구단주는 스탠 크랑키라는 인물인데요. 이 인물이 슈퍼 리그라는 축구의 종말(?)을 불러올 뻔 한 사건의 주범(?) 중 한 명이라 다큐를 보기 전부터 어느 정도 주워들은 바는 있었습니다. 물론 마니아분들이 아시는 것만큼 정확하지는 않겠지만요. 칼 힌드마치 감독, 『슈퍼 리그, 축구의 종말 :: Super Greed, The Fight for Football』입니다. # 1. 레알 회장 페레즈의 주도 하에 15개 메가 클럽 구단주들이 모여 "자잘한 팀들 재끼고 대륙 통합 리그를 만들어 우리끼리 다 해 먹어보자!!!" 라는 목적으로 진행한..

Documentary/Social 2022.07.16

호수를 나는 새 _ 내 이름은 졸자야, 곽동철 감독

# 0. 당연히 외국 다큐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한국 감독의 작품이더군요. 왜 하필 타국, 그것도 생소한 몽골의 흐미 가수에게 카메라를 들이민 것일까. 제가 이 다큐멘터리에 흥미가 동한 것은 바로 감독의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왜 굳이 이 아이템으로 작품을 만든걸까 라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들려줄지 궁금했기 때문이죠. 곽동철 감독, 『내 이름은 졸자야 :: My Name is Zolzaya』입니다. # 1. 안개 낀 숲, 고요한 사막, 푸른 호수 위로 잔잔하게 들이치는 파도입니다. 자연의 웅장함을 담아내는 넓은 화각은 자유로움을 은유합니다. 다채로운 풍경은 다양성과 가능성 등을 상징하죠. 사막과 호수의 접경은 역사의 도도한 변화를, 일정한 간격으로 들이치는 파도는 평화로운 방법론과 거스를 수..

쓰레기를 태우는 불 _ 14개의 사과, 미디 지 감독

# 0. 불면증에 시달리는 만달레이의 사업가 왕 신홍에게 한 점쟁이가 수도원에서 14일을 보내라고 조언한다. 자동차와 불룩한 지갑을 뒤로하고 그는 하루에 사과 한 알 만을 먹는 수도승의 삶을 살게 된다. 이는 현재 미얀마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시골의 수도원에 도착한 왕 신홍은 머리를 깎고 붉은 수도복을 입는다. - 2018년 제15회 EBS 국제 다큐영화제 '미디 지' 감독, 『14개의 사과 :: 14 Apples』입니다. # 1. 자동차 안에서 시작됩니다. 차 안은 말끔한데 반해 밖은 먼지가 자욱한 시장통입니다. 분리된 두 공간입니다. 멀쑥한 양복에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쓴 남자입니다. 차에서 내려 과일가게에서 사과를 삽니다. 사과의 원산지를 살핍니다. 필요한 14개만 사며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

Documentary/Social 2022.02.16

그날의 내 기분 _ 의자가 되는 법, 손경화 감독

# 0. 의자가 나오고, 사람도 나오고, 의자가 나오고, 사람도 나오고... 비 오고, 리사이클 의자, 풀 숲, 페이드 아웃, 마천루... 응? 끝이네? '손경화' 감독, 『의자가 되는 법 :: How to Become a Chair』입니다. # 1. 오랜만에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제목은 . 대상의 속성을 면밀히 추적한 후 화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의미를 선별적으로 추출해 사람 사는 방식과 연결 짓는 류의 작품들이 대체로 이런 식의 제목을 가지고 있죠. 예상대로 카메라는 수많은 의자를 담아냅니다. 다른 모양과 다른 목적과 다른 시점과 다른 가치와 다른 사연과 다른 해석을 추적합니다. 의자를 쓰는 다양한 사람들과, 의자가 놓인 다양한 공간들과, 의자를 바라보는 다양한 입장들과, 의자에 부여하는 다양한 견해..

참 어렵죠? _ 밥 로스 행복한 사고, 배신과 탐욕

# 0. 우주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밥 로스'의 일대기에 일상이 지루한 미국인들이 환장할 법한 고소전을 조금 덜고 티타늄 화이트를 섞어 넷플릭스라는 캔버스 위에 펴 바릅니다. 쓱싹쓱싹. 어때요, 참 쉽죠? 『밥 로스 - 행복한 사고, 배신과 탐욕 :: Bob Ross - Happy Accidents, Betrayal & Greed』입니다. # 1. 가 왓챠에 올라올 때만 하더라도 넷플릭스에 이런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어 올라온 줄은 몰랐습니다. 매번 영화를 보고 나면 (내심은 글을 깨작이기 위해서지만) 관련 지식을 쌓는다는 핑계로 이러저러한 정보들을 검색하게 되는데요. 요런 유용한 다큐멘터리가 있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구글링 하는 뻘짓을 면할 수 있었을 텐데요. 다큐멘터리의 구성은 부제 을 고스란히 따라갑..

Documentary/Social 2021.08.30

해피피트 실사판 _ 남극의 귀염둥이, 황제펭귄 이야기

# 0.  더워. 더워. 더워. 더워. 더워. 더워.        BBC earth 제작,『남극의 귀염둥이, 황제펭귄 이야기 :: Snow Chick - A Penguin's Tale』입니다.     # 1.  황제팽귄의 생태를 그린 다큐멘터리입니다. 흔히 펭귄 하면 떠올리실 법한 애들 중 하나인데요. 뭔가 미친놈 같은 눈매에, 고전게임 주인공 같이 생긴 애들은 아델리 펭귄이구요, 멋들어진 턱시도에 노란색 무늬가 고오급스러운 친구들이 바로 황제펭귄입니다. 조지 밀러의 애니메이션 보셨으려나요? 그 영화 실사판이라 생각하시면 무난합니다. 후반부 남극해 넘어 세계관이 확장되기 전까지 주인공 멈블의 성장 과정과 사실상 동일한 서사거든요. 아빠가 혹한 속에서 알을 놓치는 바람에 노래 대신 탭댄스를 마스터해버린..

Gorgeous _ 은발의 패셔니스타, 리나 플리오플라이트 감독

# 0. "뉴욕은 잘 차려입은 여성들에게 가장 좋은 도시예요. 왜냐하면 뉴욕의 대로와 길거리는 런웨이가 될 수 있거든요. 이분들은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무색하게 해요.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만족하며 항상 가장 멋지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외출을 하죠." '리나 플리오플라이트' 감독, 『은발의 패셔니스타 :: Advanced Style』입니다. # 1. 멋지게 뉴욕을 가로지르는 고령 여성들을 촬영하는 작가 '아서 세스 코헨'과, 모델이 되어준 여인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때론 Gorgeous 하게, 때론 Fancy 하게, 때론 Sexy하게 담아냅니다. 관객은 그녀들의 반짝이는 눈에 비친 강렬한 에너지를 통해 삶의 특정한 시점을 규범화된 모습으로 사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인가를 점..

순간들 _ 시바티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앙드릭 뒤졸리에 감독

# 0. "이 지역은 곧 철거돼요. 알잖아요. 여길 싹 허물 거예요. 중국 빈곤층을 보여 주려고 다큐멘터리를 찍나 본데 당신들 생각하곤 달라요. 중국은 이제 빈곤하지 않아요. 그건 가짜 이미지라고요. 당신네 기자들은 뭐든 과장하기 일쑤죠. 촬영해서 이럴 거잖아요. '중국은 가난하다!' 해방 직후 동네도 좋아지고 통나무를 때고 살죠. 중국을 폄하하지 말아요. 내 말 들어요. 당신이 찍는 건 진짜가 아니에요." '앙드릭 뒤졸리에' 감독, 『시바티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 Derniers jours à Shibati』입니다. # 1. 시바티의 사람들 "있잖아. 자기 나라에선 낙오자일 거야. 직업이 없나 보지.", "말조심해. 알아들을 수도 있어.", "내 말 들어봐. 직업이 있는 사람 같으면 대체 여길 왜 왔..

Documentary/Social 2021.06.17

공연장 가고 싶다 _ 샘 스미스 애비 로드 스튜디오 라이브

# 0. 샘 스미스 라이브입니다. 『샘 스미스 애비 로드 스튜디오 라이브 :: 'Sam Smith's Live At Abbey Road Studios』입니다. # 1. 골방에서 영화나 본다면서 웬 라이브냐구요? 그러게요. 한동안 오프라인 문화생활을 거의 하지 못한데 대한 스트레스가 터져 나온 건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콘서트나 뮤지컬을 본 게 대체 언젠지... 코로나가 일상을 참 많이도 파괴했구나 싶은 생각을 새삼 하게 됩니다. 대체로 공연계 쪽은 방역 때문에 공연이 거의 폐쇄되거나 축소됨에 따라 온라인 스트리밍 방식의 공연이나, 공연 영상을 재편집해 서비스하는 식으로 돌파구를 찾는 듯한 인상입니다. 흐름에 맞춰 침체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긍정적 기여를 하기 위해 재능 기부를 하는 아티스트들도 많구요...

Documentary/Art 2021.06.01

알고 기억해달라 _ 홍콩을 위한 전쟁, 로빈 반웰 감독

# 0. 민주화 시위가 넉 달째 이어지고 있다. 비 근무 경찰관들이 탄 차가 주위를 에워싼다. 이 도시는 막 혼란으로 빠지는 중이다. 14살의 어린 시위자가 총탄에 맞아 상처를 입는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어떻게 시위의 도가니에 빠져서 폭력의 현장으로 전락하였는지... 그리고 도대체 언제 끝이 나려나. 이 영화는 그들 인생의 최고의 전쟁을 치르는 중인 다섯 명의 젊은이들의 행적을 좇는다. 시위가 최고조로 치닫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처절히 투쟁한다. 그들의 상대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독재 정권이다. "우린 홍콩의 미래의 결정자가 중국 공산당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어요. 이건 분명 독재 국가와 민주주의와의 대결입니다." 대부분, 체포될 때 신원이 밝혀질까 봐 두려워서..

Documentary/Social 2021.05.03

마취제 _ 고양이의 은밀한 사생활

# 0. 차갑고 무심한 데다 자기중심적인 고양이. 훈련할 수 없는 게으른 털 뭉치. 과연 그럴까요? BBC 다큐멘터리, 고양이의 은밀한 사생활 :: The Secret Life of the Cat 입니다. # 1. "인간에게 강아지만큼이나 친숙한 고양이의 매력을 파헤친다! 전문가의 협조 아래, 고양이 열 마리의 목에 카메라와 GPS를 설치해 이들의 은밀한 일상을 추적한다!!" 라고는 합니다만 뭐 언제나처럼 딱히 은밀하지도 개인적이지도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무난~한 고양이 영화예요. 조목조목 살펴보면 하자가 넘쳐나는 대단히 편의적이고 게으른 구성입니다. 세상 귀여운 고양이들이 잔뜩 나옵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고양이는 쥐뿔 관심 없고 그저 고양이를 좋아하는 '너'의 만족만을 위한 다큐멘터리거든요. 나름 ..

수동 숨쉬기 _ 최후의 호흡, 리처드 다 코스타 / 알렉스 파킨슨 감독

# 0.  북해 해저에 고립된 잠수부 크리스 레몬스의 사고와, 그를 구조하기 위한 동료들의 고군분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입니다.        리처드 다 코스타, 알렉스 파킨슨 감독,『최후의 호흡 :: Last Breath』입니다.     # 1.  잠수 지원선 토파즈가 거친 북해의 격랑에 떠밀립니다. 챔버와 잠수부 사이에 연결된 케이블이 끊어지고 맙니다. 산소 공급은 중단되었고 수면으로 올라올 수도 없고 올라와서도 안 되는 상황. 5분여 밖엔 버티지 못할 산소통 하나에 의지해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깊은 바닷속에서 크리스는 살아남아야 합니다. 작품은 크게 두 개의 파트로 나눠볼 수 있는데요. 1시간 여 까지는 크리스의 약혼녀와 같은 팀 잠수사 데이브 유아사, 던컨 올콕을 비롯한 동료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포스트 트루스 _ 씨스피라시, 알리 타브리지 감독

# 0.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어릴 적부터 중요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무분별한 살생은 일어나선 안될 일이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기 위해 나름대로 모기나 날파리를 잡지 않는 등의 노력을 해 왔습니다만 어느 순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매 순간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알리 타브리지' 감독,『씨스피라시 :: Seaspiracy』입니다.     # 1. 그렇게 사람들의 비참한 죽음을 추적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죽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1년 안에 '사과'를 먹은 적이 있다는 사실 말이죠. 놀라운 일입니다. 취재해 본 바에 따르면 제가 사는 마을에서 발생한 58명의 사망자 중에 57명은 1년 안에 ..

Documentary/Social 2021.04.14

1달러 79센트 _ 러브 송 포 라타샤, 소피아 날리 앨리슨 감독

# 0. 아카데미가 한 달도 남지 않았네요. 이전 같으면 노미네이트 된 작품들을 챙겨보려다 티켓값에 허리가 휘거나 심지어 개봉조차 하지 않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만 코로나로 인해 영화판 헤게모니가 멀티플렉스에서 OTT로 넘어간 덕에(?)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보다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례적으로 이번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 중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작품만 해도 두 자리 수가 훌쩍 넘어가죠. 개꿀. 극한의 반골기질 덕에 남들이 호들갑 떨면 괜히 고까워 외면하기 일쑤입니다만 이상하게 또 이런 건 혹 해서 챙겨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역시 찐따의 취향이란 건 이렇게나 종잡을 수 없죠. 나 같은 런타임 오지게 길고 대충 봐도 겁나 무거워 보이는 작품들에..

Documentary/Social 2021.04.01

좋아서 싫을 수도 있구나 _ 북극의 나누크, 로버트 J. 플래허티 감독

# 0. 분명 이야기가 영화의 전부는 아닙니다. , 같이 음악을 위해 이야기를 과감하게 투자하는 작품들도 있고 아예 , 같은 뮤지컬 영화들도 있죠. 와 같은 작품들은 이야기보다 인물의 구도와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기도 하구요. 처럼 지독할 정도로 정서를 따라가는 작품도 있고 나 같은 영화들은 회화적 스타일로 승부를 보는 이색적인 작품들 또한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영화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를 하나 꼽아야 한다면, 어땠든 이야기라는 것만큼은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저 역시 그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죠. '로버트 J. 플래허티' 감독, 『북극의 나누크 :: Nanook Of The North』입니다. # 1.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의 전부는 아니겠습니다만 그럼에도 가장..

검은색 거울 _ 가버려라 2020년, 앨 캠벨 / 앨리스 머사이어스 감독

# 0. 2020년 한 해 이슈를 망라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블랙 코미디 쇼입니다. 만, 코끼리 냉장고 넣기도 아니고 8760시간이 1시간 남짓의 런타임 안에 정리될 리가 없죠. 미리 말씀드리자면 특별한 의미나 깊이 있는 풍자는 기대하지 않으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저 빌어먹을 2020년을 힘겹게 지나왔을 사람들이 편하게 남 욕하고 놀리는 재미나 누리고 치우는 딱 그 정도 느낌의 킬링 타임 콘텐츠라 이해하시는 편이 적당합니다. '앨 캠벨, '앨리스 머사이어스' 감독, 『가버려라, 2020년 :: Death to 2020』입니다. # 1. '신정원' 감독의 리뷰에서도 말씀드렸듯 코미디야 말로 가장 스포일러에 민감한 장르이기에 최대한 개그 코드에 대한 내용은 말씀드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애초에 해석이 필요할 만..

Documentary/Social 2021.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