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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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개봉 79

헤어지는 중입니다 _ 휴먼 보이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 0. 예술로 사색한다는 것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휴먼 보이스 :: The Human Voice』입니다.     # 1. 폭이 넓은 붉은 드레스의 틸다 스윈튼이다. 건조한 스튜디오를 걸어 의자에 앉는다. 창백해서 더욱 미술적인 마스크 위로 강한 그림자가 떨어진다. 검은색 드레스로 갈아입은 배우는 다시 스튜디오를 가로지른다. 오프닝이다. 푸른 정장의 여자는 도끼를 산다. 영수증은 거절. 교환할 일은 없다. 볼일을 마친 여자는 키우는 개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집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그림들을 뒤로한 채. 개는 줄지은 여행가방의 냄새를 맡는다. 여자는 4년간 사귀었던 애인과 사흘 전에 헤어졌다. 책과 앨범을 정리한 그녀는 스튜디오의 콘크리트 벽이 눈앞에 펼쳐진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운다. ..

Film/Drama 2025.03.24

보호자용 _ 사탄의 베이비시터 킬러 퀸, 맥지 감독

# 0. 사춘기사용설명서 [보호자용]        맥지 감독,『사탄의 베이비시터 킬러 퀸 :: The Babysitter Killer Queen』입니다.     # 1. 겁 많은 어린이가 사춘기를 내딛는다는 내용의 따뜻한 성장 영화다. 대체 무슨 의도로 사탄이란 무시무시한 말을 가져다 붙인 건지 모를 고약한 배급사의 모함에 속기 쉽지만 원제는 담백한 베이비시터로, 우리 시대의 로멘티스트, 아리 에스터의 이나 처럼 온 가족 오손도손 함께 보기 좋은 가족 드라마되시겠다. 속편의 부제가 킬러 퀸이라는 게 조금 찝찝하지만 이 역시 오해다. 뮤직비디오 연출자 출신의 감독이 퀸의 팬이었을 뿐이다. 실제 절정부에 다다르면 프레디 머큐리가 부르는 킬러 퀸이 웅장하게 흘러나와 아들과 아버지의 가슴 뭉클한 화해를 서정적으..

Film/Horror 2025.02.14

해석과 권력 _ 피사체, 하태민 감독

# 0. 해석할 수 있는 권력에 반기를 들다        하태민 감독,『피사체 :: Subject』입니다.     # 1.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해서 매번 눈에 불을 켜고 사진을 찍는 건 아니다. 단지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짐을 느끼는 게 즐겁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주변의 사물들을 조금 더 몰입해서 보게 되는 데, 그것이 마치 세상의 해상도를 높이는 듯한 착각을 준달까. 처음엔 건물, 꽃, 간판, 장식, 음식 따위만 찍어도 즐겁다. 점점 구도나 화각, 렌즈, 보정도 달리해보고, 같은 사물이 빛의 드라마틱한 효과에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에 매료되는 것도 즐겁지만, 결국엔 예정된 갈증에 도달한다. 역동성이 없는 사진들을 돌려 보는 동안의 공허함. 살아있는 사람의 ..

Film/Horror 2025.01.26

그리움에 대하여 _ 이름 없는 다방에서, 정수지 감독

# 0. 이제 다시는 싫어. 웃는 것도 싫어졌네.이제 다시는 싫어. 웃는 것도 싫어졌네.        정수지 감독,『이름 없는 다방에서 :: Heyday』입니다.     # 1. 레트로 잡지와 오려 모은 스크랩. 십수 년은 더 돌아갈 금성사 선풍기. 한 장씩 뜯어 넘기는 달력. 엔틱 가구와 레이스 커튼. 둥근 다이얼의 전화기. 무자비한 괘종시계. 푹신하면서 불편했던 신기한 소파. 이젠 생소해져 버린 커피 배달.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던 보자기. 때 묻은 팔토시. 분홍색 머리띠. 노란색 드레스. 노른자 한 알 곁들인 모닝커피. 200자 원고지 위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 꼬깃한 종이에 수기로 쓴 주소. 팔각 성냥. 담배 연기. 이 모든 것들로 어우러진 1986년의 이름 없는 다방. 우리의 다방은 당신의 스타벅..

Film/Drama 2024.09.02

커넥트 _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밴드, T.G. 해링턴 / 대니 클린치 감독

# 0. 결국 음악의 본질은 연결인 것일까        T.G. 해링턴 / 대니 클린치 감독,『프리저베이션 홀 재즈밴드 :: A Tuba to Cuba』입니다.     # 1. 가끔은 치졸한 질투심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외세의 침탈로 인한 역사적 단절, 절멸 수준의 전국 전쟁을 겪으며 스스로 발현된 것보다 수입된 것을 현지화하며 성장한 한국은, 삶의 부분집합으로서의 음악을 향유할 뿐이다. 반면, 굴곡진 근현대사를 성숙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스스로 발현될 만큼 충분히 고립된 뉴올리언스의 음악은 삶의 일부분이 아닌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합집합이다. 우리는 발라드를, 힙합을, 클래식을, 트로트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 재즈는 선택이 아닌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존재와 닿아있는 음악이라니. 그 ..

Documentary/Art 2024.08.06

타블로이드의 구독자 _ 젠틀맨, 가이 리치 감독

# 0. Ladies and Gentlemen, Please Welcome.        가이 리치 감독,『젠틀맨 :: The Gentlemen』입니다.     # 1. 가이 리치가 돌아왔다. 신작 이야기가 아니다. 스타일의 복원. 즉, 셜록 홈스, 킹 아서, 알라딘을 돌아 무려 12년 만에 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줄 작품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뜻이다. 낡은 술집 귀퉁이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허풍 가득한 이야기가 타란티노스러운 리드미컬한 플롯 위에 펼쳐진다. 화려한 수사학적 과장으로 가득한 묘사, 현란한 촬영과 편집의 기교도 충만하다. 위선적 교양이 지저분한 액션으로 탄로 나는 시퀀스의 완급은 능숙하다. 애드거 라이트의 그것만큼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누가 보더라..

Film/Action 2024.04.24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_ 리틀 걸, 세바스티앙 리프쉬츠 감독

# 0. "사샤는 오랫동안 여자라고 느껴... 아뇨, 느낀 게 아니라 사샤는 여자예요. 남자로 태어난 여자요." 세바스티앙 리프쉬츠 감독, 『리틀 걸 :: Petite Fille』입니다. # 1. 의 소재는 제법 독특한데요.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10글자 넘어가는 괴랄한 소수자성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인공 '사샤'는 생물학적 성별과 정신적 성별의 괴리로 힘들어하는 평범한 트랜스젠더일 뿐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녀가 나중에 커서 여자가 되고 싶다 말하는,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아주 어린 친구라는 것이죠. 퀴어 다큐멘터리도 소주제에 따라 풀어가는 방식은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그 끝은 두 가지 목표로 귀결되기 마련입니다. 주인공의 소수자성에 대한 내적 탐구, 그 과정에서 차별에 맞서 싸우는 사회적..

루프는 폭발이다 _ 팜 스프링스, 맥스 바바코우 감독

# 0. 갈(喝)! 맥스 바바코우 감독, 『팜 스프링스 :: Palm Springs』입니다. # 1. 루프물에 로맨틱 코미디다 보니 언제나처럼 '그 이름'이 불려 나올 수밖에 없긴 합니다만, 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일부의 평은 썩 정밀하진 않아 보입니다. 모름지기 재해석이라 하려면 주제의식의 발전이 있어야 할 텐데요. 내적 성찰을 통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영혼의 성장을 그렸던 빌 머레이 & 해럴드 레이미스와 달리, 맥스 바바코우는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관계성의 가치와 불안정성을 직시하고 내일을 맞이하는 용기라는 전혀 다른 주제의식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죠. 다만 그럼에도 여타의 모든 루프물과 같이 사랑의 블랙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작품이라는 것은 분명하고, 감독 역시 그 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

Film/SF & Fantasy 2024.02.10

낡은 선풍기의 표정 _ 패닝, 전예진 감독

# 0. 무더운 여름날, 시각장애인 해담은 고장 난 선풍기를 고치기 위해 수리기사를 부른다. 전예진 감독, 『패닝 :: Fanning』입니다. # 1. 해담은 시각장애인입니다. 낡은 선풍기가 고장 났다는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파생된 몇몇의 사건들과, 그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주인공의 감정을 진지하면서도 담백하게 그려낸 작품이죠. 서사를 들여다보기 앞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배치와 구도'입니다. 선풍기를 단순히 소재로 소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전체로 확장시키려는 듯 보이거든요. 수리기사, 윗집여자, 집주인. 세 명의 침입자들은 공통적으로 거실 중앙을 차지합니다. 해담은 수리기사의 시퀀스 동안에는 3시 방향의 침실에, 윗집여자의 시퀀스 동안에는 7시 방향의 거실 구석에, 집주인의 ..

Film/Drama 2024.01.30

극한신파 _ 3일의 휴가, 육상효 감독

# 0. 지금까지 이런 엄마는 없었다. 이것은 모성인가 학대인가. 예에~ 3일의 휴가입니다~ 육상효 감독, 『3일의 휴가 Our Season』입니다. # 1. " 한평생 딸을 위해 희생하다 혼자 쓸쓸하게 죽은 엄마가 딸이 정신병 걸린 걸 알고 죽어서까지 힐 넣어주고 사라진다. " 영화는 위의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그나마의 전개도 마지막 10여 분에 바짝 몰려 있는 터라, 예정된 결말에 도달하기까지의 지난한 시간들은 감정적 이완과 수축의 반복이라는 단조로운 구성으로 점철되어 있죠. 이때의 수축이라 함은, 엄마는 희생하고 딸은 대못 박는 회상장면들을 통해 관객을 심정적으로 옥죄는 것을 말하구요, 이완은 밥 먹는 장면과 조연들에게 기계적으로 배분된 몇몇의 코미디를 통해 느슨하게 풀어주는 과정을 뜻합니다. ..

Film/Drama 2024.01.08

미움받을 용기 _ 앰뷸런스, 알레산드로 톤다 감독

# 0. 이슬람을 혐오하는 제노포비아라 비난받는다 하더라도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악당이라 음해당한다 하더라도 알레산드로 톤다 감독, 『앰뷸런스 :: The Shift』입니다. # 1. 브뤼셀의 한 학교에서 벌어진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자살 폭탄 테러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테러리즘에 대해 탐구하는 작품 특성상 이후 앰뷸런스가 내달리게 되는 브뤼셀은 단순히 벨기에의 수도라기보다는, 유럽 사회 전체를 대신한다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겠죠. 테러범은 겉보기엔 평범한 두 명의 학생인데요. 즉사한 한 명과 달리 다른 한 명은 감쪽같이 사라지게 되는 데, 알고 봤더니 피해자로 오인되어 앰뷸런스에 실려 빠져나갔다는 전개입니다. 의식을 차린 테러리스트는 자신의 몸에 두른 폭탄을 내보이며 구급대원 이자벨과 아다모를 위협하게..

떡볶이도 해주라 _ 문경이네 집, 김수현 감독

# 0. 편안한 표현들로 편견을 포착해 나가는 각본의 힘 김수현 감독, 『문경이네 집 :: The House of MunGyeong』입니다. # 1. 편견에 대한 영화입니다. 핵심적인 미장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겁니다. 하나는 편견에 대한 박약한 근거로서의 '냄새'와 관련된 코드들. 담배라거나 화장품, 양말 등이 될 테구요. 다른 하나는 편견으로 인한 차별로서의 '단절'과 관련된 코드들. 보호의 영역으로서의 인도와 배타의 영역으로서의 차도, 횡단보도를 아슬아슬하게 건너고 건너지 못하는 모습, 그 앞을 가로지르는 가드레일의 단절감, 모범생 반장과 노는 친구들의 대비라거나, 자동차를 타고 집에 가는 주인공 채진과 혼자 걸어가는 친구 문경 등이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이미지가 응집된 '문경이..

Film/Drama 2023.12.04

반칙 _ 토토리!, 아릴 외스틴 오문센 / 실리에 살로몬센 감독

# 0. 자연과 인물의 위력이 완성도를 무시한다.         아릴 외스틴 오문센 / 실리에 살로몬센 감독,『토토리! 우리 둘만의 여름 :: Tottori! Sommeren Vi Var Alene』입니다.     # 1. 딸아이 둘 데리고 캠핑 떠난 안전불감증 아빠가 아내가 알았으면 곱게 죽지 못할 대형 사고를 친 걸 9살짜리 첫째와 5살짜리 둘째가 2박 3일간 나는 자연인이다 찍으면서 수습한다는 내용의 효도 영화입니다. 진짜루요.  사실 이야기만 떼어놓고 보면 제법 가혹하고 엉성하고 심지어 나태합니다. 떨어지면 어쩌려는 건지 싶은 높다란 나무에 맨몸으로 불쑥 올라간다거나, 맨손으로 물고기 낚아보겠다고 까불다 개천에 빠진다거나, 절벽에서 겁도 없이 뒷걸음질 치다 추락하는 등 아빠는 못 죽어 안달 난 듯..

Film/Drama 2023.11.02

빛 좋은 개살구 _ 밤이 되었습니다, 이형구 감독

# 0. 일주일 내내 영화를 한 편도 안 본 건 진짜 몇 년 만인 것 같은데요. 성역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존과 악마 사냥꾼 하던 가닥을 이어받아 회칼 도적을 키웠는데요. 증오의 딸 릴리트를 무찌른 후 레벨 70 언저리까지만 하더라도 참 꿀잼이었죠. 이후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폐사 구간에 접어들던 차에, 몹팩 축소 패치에 정타를 처맞고 현타가 오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혐리자드께서 전 세계 블빠들의 성토를 죄다 씹고 계시니 별 수 있나요. 다시 영화로 돌아와야죠. 그래도 불 끈 방에서 어두침침한 화면만 보던 게 익숙해진 겸 호러를 찾았습니다. 시작은 가볍게 단편으로 골라도 나쁘지 않겠죠. 이형구 감독, 『밤이 되었습니다 :: Black out _ Mafia game』입니다. # 1. 어떤 영..

Film/Horror 2023.06.18

집탈출 게임 _ 런, 아니쉬 차칸티 감독

# 0. 방탈출 게임을 테마로 영화를 뽑으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아니쉬 차칸티 감독,『런 :: Run』입니다.     # 1. 빌런의 정체와 내막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기대하시면 곤란합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스테이지 탈출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타임어택 퍼즐 게임의 경험에 훨씬 가까운 작품이죠. 실제 전개를 보면 방이면 방, 복도면 복도, 계단이면 계단, 약국이면 약국, 지하실이면 지하실. 각 공간을 스테이지 단위로 칼같이 구분한 후 그 공간의 미션을 풀 수 있는 명확한 해법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장르적 측면에서 엄마의 존재는 주인공을 정신적으로 압박하는 카리스마 빌런이라기보다는, 정해진 시간 안에 방을 탈출하도록 주인공의 등을 떠미는 게임의 조건, 째깍째..

데니시 어벤저스 _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 앤더스 토마스 옌센 감독

# 0. 빌어먹을. 우리한테 대체 무슨 원한이 있는 건데!        앤더스 토마스 옌센 감독,『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 :: Retfærdighedens ryttere』입니다.     # 1. 포스터만 보면 겁나 멋진 매즈 미켈슨이 총 다다다다 쏘고 모가지 꽉 하고 꺾는 섹도시발 영화처럼 보이는데요. 맞습니다. 어쨌든 특수부대 출신 주인공이 영화 내내 인상 겁나 쓰고 나쁜 놈들 도륙내고 있구요. 액션의 폭발력이 영화를 끌고 나가는 동력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죠. 다만, 횡스크롤 게임처럼 적 보스를 향해 스테이지를 클리어해 나가는 단방향식 총기 액션 영화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되려 다른 측면에서의 볼륨이 의외로 풍부해 깜짝 놀라게 되는 작품이죠. ⑴ 확증 편향과 음모론, 감시 사회..

Film/Action 2022.11.14

눈보라빛 향기 _ 플레이온, 고동환 / 송하연 / 강선우 감독

# 0. 그대 모습은 눈보랏빛처럼 살며시 다가왔지~ 고동환, 송하연, 강선우 감독, 『플레이온 :: PLAY ON』입니다. # 1. 최근 왓챠는 단편에 진심입니다. 자의 반 타의 반의 생존전략이긴 하겠지만요. 여하튼 매주 양질의 단편을 10여 편 이상 꾸준히 추가하고 있는데요. 참 잘했어요. 이번 주에는 10분 안쪽의 애니메이션이 왕창 올라왔네요. 30년 차 게임 폐인의 니즈를 자극하는 작품이 보이길래 즐거운 마음으로 골라 보았습니다. # 2. 균형이 돋보이는 말랑말랑 애니메이션입니다. 직관적인 인상은 라이엇의 롤과 블쟈의 하스, 슈퍼셀의 클래시 시리즈의 중간 어딘가의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실제 그런 게임들로부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겠으나, 한국과 일본 등 동양 애니메이터의 표현보다는 ..

Film/Animation 2022.07.02

호수를 나는 새 _ 내 이름은 졸자야, 곽동철 감독

# 0. 당연히 외국 다큐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한국 감독의 작품이더군요. 왜 하필 타국, 그것도 생소한 몽골의 흐미 가수에게 카메라를 들이민 것일까. 제가 이 다큐멘터리에 흥미가 동한 것은 바로 감독의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왜 굳이 이 아이템으로 작품을 만든걸까 라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들려줄지 궁금했기 때문이죠. 곽동철 감독, 『내 이름은 졸자야 :: My Name is Zolzaya』입니다. # 1. 안개 낀 숲, 고요한 사막, 푸른 호수 위로 잔잔하게 들이치는 파도입니다. 자연의 웅장함을 담아내는 넓은 화각은 자유로움을 은유합니다. 다채로운 풍경은 다양성과 가능성 등을 상징하죠. 사막과 호수의 접경은 역사의 도도한 변화를, 일정한 간격으로 들이치는 파도는 평화로운 방법론과 거스를 수..

실패한 성장의 대가 _ 늑대소년 테디, 뤼도비크 부케르마 외 1 감독

# 0. 성장 영화라고 하면 미성숙한 개인이 내적 갈등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성숙해 보다 행복하고 풍요로운 인생의 발판을 마련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텐데요. 정의에서부터 미루어 알 수 있다시피 기본적으론 해피 엔딩이기 마련입니다. 결과가 성장과 행복으로 귀결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성장 서사라 부를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성장이라는 것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누구나 행복한 낙원은 어린아이 동화 속 이야기죠. '뤼도비크 부케르마', '조랑 부케르마' 감독, 『늑대소년 테디 :: Teddy』입니다. # 1. 영화 는 기본적으로 성장 영화의 틀을 따라갑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의 신체적, 정서정, 정신적 변화를 늑대 인간이라는 과격한 형태로 과장하는 우화죠...

Film/SF & Fantasy 2022.04.08

포트폴리오 _ 하트어택, 이충현 감독

# 0. 그림은 이쁩니다. 이성경은 더 이쁩니다. 진짜 겁나 이쁩니다. '이충현' 감독, 『하트어택 :: HEART ATTACK』입니다. # 1. 사랑하는 사람의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 위해 100번의 시간을 돌리는 여자의 이야기 # 2. ... 라고 하네요. 루프물입니다. 언제나 이쁜 이성경이 보드 타다 자빠져 코피 흘립니다. 애매하게 잘생긴 외쿡인이 어색한 연기력 뽐내며 농구합니다. 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첫눈에 반하게 되는데요. 저런. 외쿡인 형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 마비로 승천할 팔자라고 합니다. 시간 능력자인 듯한 여자는 시간을 되돌려 남자를 살리려 하는데요. 100번이나 시도했지만 낭낭하게 실패하고 맙니다. 실망한 여자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뽀뽀를 하구요. ..

Film/SF & Fantasy 2022.03.29

왓포드 역배 _ 습도 다소 높음, 고봉수 감독

# 0. 무더위의 짜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라면 [습도 높음] 정도로도 충분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작품의 제목은 습도 [다소] 높음.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죠. '고봉수' 감독, 『습도 다소 높음 :: The rain comes soon』입니다. # 1. 영화관을 공습하는 빌런들의 영화입니다. 영화판을 사수하는 어벤저스의 영화입니다. 이율배반적인 설정이 캐릭터 쇼에 풍성함을 더합니다. 에어컨도 돌아가지 않는 텅 빈 영화관을 박봉에 홀로 지키는 '찰스'를 모두가 무자비하게 괴롭힘에도, 마냥 불쾌한 것이 아니라 찡하고 짠한 건 본질적으로 이들이 미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죠. 각각은 영화 상영이라는 사건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일상, 이를테면 아르바이트라거나 소개팅, 결혼 준비, 무료 음료수 따위를..

Film/Comedy 2022.01.12

붉은 날 _ 슬라롬, 샤를렌느 파비에 감독

# 0. 새하얀 설원을 가르는 붉은 날. * 날² [명사] _ 연장의 가장 얇고 날카로운 부분. 베거나 찍거나 깎거나 파거나 뚫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샤를렌느 파비에' 감독, 『슬라롬 :: Slalom』입니다. # 1. 서사는 날카롭고 직선적입니다. 숨겨진 비밀 따위의 과장된 변주 없이 날 것 그대로를 전개합니다. 시니컬해 보일 정도의 선명성이 드라마가 작동하기 위한 높은 몰입도를 정석적으로 설득합니다. 프랑스 영화는 이 강단이 참 매력적이죠. 미성년자 성폭행이란 소재는 충격적이지만 핵심은 아닙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에서 특별히 문제적인 개인이 특별히 문제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건 종종 일어나는 일이며 그걸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건 감독도 알고 있습니다. 영화가 주목하는..

Film/Drama 2021.12.02

겁쟁이의 기억법 _ 애플, 크리스토스 니코우 감독

# 0. 인물을 고립시킵니다. 화면 끝으로 강하게 밀어냅니다. 스크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큰 거울과 등지고 앉은 남자입니다. 머리 위나 뒤를 최대한 넓게 잡은 구도와, 멍하니 흐릿한 초점의 표정 연기가 남자의 머릿속을 공간에 던져 시각화합니다. 이 영화는 거울 속에 온전히 갇혀버린 남자의 이야기군요. 집을 나서 거리를 걷습니다. 줄지은 검은색 차량과 단조로운 패턴의 건물이 남자의 걸음에 방향성과 연속성을 부여합니다. 차 앞에 기억을 잃은 누군가가 주저앉아 있습니다. 일련의 시퀀스는 이후 남자가 걷게 될 선택을 압축적으로 은유합니다. 일정한 방향으로 연속되던 시간을 거칠게 단절하는 기억 상실입니다. '크리스토스 니코우' 감독, 『애플 :: Mila』입니다. # 1. 반전 영화입니다. 언제나의 반전 영화들처..

Film/Drama 2021.11.28

베이비의 죽음 _ 시바 베이비, 엠마 셀리그만 감독

# 0. 욕 아닙니다. '엠마 셀리그만' 감독, 『시바 베이비 :: Shiva Baby』입니다. # 1. [시바 Shiva]는 유대교식 장례문화의 일종으로 친인척이 사망한 경우 Aninut이라는 이름의 장례 절차를 치른 후 가지게 되는 7일간의 애도기간을 뜻합니다. 애초에 시바라는 말부터가 히브리어로 숫자 7을 뜻하죠. 솔직히 저나 여러분이나 피차 처음 들으셨을 겁니다. 어지간해선 한국인이 유대교 문화에 익숙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엄밀하게는 '장례 후 고인을 보내는 동안의 마음가짐을 정돈하는 기간'이라고는 합니다만, 우리 입장에선 그냥 장례식과 동의어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 영화를 즐기시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 2. 어쨌든 시바가 열렸습니다.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참석..

Film/Comedy 2021.09.11

영화에 대한 한숨 _ 낯설고 먼, 트라본 프리 / 마틴 데스몬드 로 감독

# 0. 역사에 대한 울분. 영화에 대한 한숨 ★★✩✩✩이동진, 영화 한줄평      트라본 프리, 마틴 데스몬드 로 감독,『낯설고 먼 :: Two Distant Strangers』입니다.     # 1.  인종차별, 그중에서도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을 다룬 영화입니다. 시작부터 등장하는 제임스 볼드윈이라는 저명인사의 이름과, 경찰이 주인공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며 떠올리게 될 조지 플로이드라는 이름이 작품의 메시지를 분명히 하죠. 유색인종에게만 차별적으로 작동하는 공권력의 폭력적 사례를 모아 루프 속에 갇힌 한 인간에게 소집시켜 극으로 재구성합니다. 귀여운 강아지의 모습이 본래의 평온한 일상을 은유합니다. 미모의 여성 페리와의 하룻밤이 설레는 매일을 상징합니다. 흑인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였던 제임스..

Film/Drama 2021.08.10

뒤풀이 _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리모트,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

# 0. 앙코르까지 했으면 이젠 뒤풀이를 해야겠죠. 앙코르 _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스핀오프, 나카이즈미 유야 감독 # 0. 보통 맛있는 음식은 두 번 먹어도 맛있습니다. 처음 먹을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말이죠. '나카이즈미 유야' 감독,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스핀오프 할리우드 대작전! カメラ を止めるな! morgosound.tistory.com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리모트 대작전! :: カメラ を止めるな! リモート大作戦!』입니다. # 1. 도전적인 프로젝트성 단편입니다. 언제나와같이 극중극 역시 같은 제목의 프로젝트성 단편이죠.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 진행되던 2020년 일본, '히라구시' 감독에게 원격으로 영화를 만들어 볼 것을 제안한 것으로 시작..

Film/Comedy 2021.07.15

누군가의 평범 _ 점보, 조이 위톡 감독

# 0. 사물을 사랑하는 오브젝토필리아 Objectophilia, 그중에서도 특히 기계를 사랑하는 메카노필리아 Mechanophilia에 대한 영화입니다. 사용성이나 수집욕 혹은 지적 욕구 등으로 기기를 즐기는 IT 덕후들이나 애인과의 성적 페티시를 충족하기 위한 기계 소품을 탐닉하는 사람들이 아닌 아예 기계 그 자체를 성적으로 사랑하는 도착증을 말합니다. '조이 위톡' 감독, 『점보 :: Jumbo』입니다. # 1. 기계를 사랑하는 여자 '잔'입니다. A.I. 탑재된 로봇형 기계 아니구요. 그냥 쌩기계(...), 놀이동산 어트랙션을 사랑하게 된 사람이죠. 히치콕 감독은 "드라마란 지루한 부분을 잘라낸 인생이다. Drama is life with the dull parts cut out." 라 말하는데요..

Film/Drama 2021.07.01

공연장 가고 싶다 _ 샘 스미스 애비 로드 스튜디오 라이브

# 0. 샘 스미스 라이브입니다. 『샘 스미스 애비 로드 스튜디오 라이브 :: 'Sam Smith's Live At Abbey Road Studios』입니다. # 1. 골방에서 영화나 본다면서 웬 라이브냐구요? 그러게요. 한동안 오프라인 문화생활을 거의 하지 못한데 대한 스트레스가 터져 나온 건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콘서트나 뮤지컬을 본 게 대체 언젠지... 코로나가 일상을 참 많이도 파괴했구나 싶은 생각을 새삼 하게 됩니다. 대체로 공연계 쪽은 방역 때문에 공연이 거의 폐쇄되거나 축소됨에 따라 온라인 스트리밍 방식의 공연이나, 공연 영상을 재편집해 서비스하는 식으로 돌파구를 찾는 듯한 인상입니다. 흐름에 맞춰 침체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긍정적 기여를 하기 위해 재능 기부를 하는 아티스트들도 많구요...

Documentary/Art 2021.06.01

미장센의 배신 _ 우먼 인 윈도, 조 라이트 감독

# 0. 미장센이 어쩌구... 메타포가 저쩌구... '조 라이트' 감독, 『우먼 인 윈도 :: The Woman In The Window』입니다. # 1. 요즘의 영화들 특히 과 의 웨스 앤더슨이나, 와 의 박찬욱 감독의 그것처럼 엄격한 규칙과 과감하면서 관능적인 색감이 만들어내는 인공적 미감의 미장센이 대두된 이후, 영화판의 메타가 마치 누가 더 아름다운 미장센을 뽐내느냐를 경쟁하는 카드게임화 되어버린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오프닝에서 주인공이 가운데 있으니 1점! 화면을 두꺼운 선이 가로지르고 있으니 1점! 하는 식으로 말이죠. 물론 기하학적 구도에 대한 감화가 쉽게 되는 탓에 온갖 리뷰를 미장센에 대한 호들갑으로 떡칠하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희극적이기는 하지만요. # 2. 이 영화 역시 ..

알고 기억해달라 _ 홍콩을 위한 전쟁, 로빈 반웰 감독

# 0. 민주화 시위가 넉 달째 이어지고 있다. 비 근무 경찰관들이 탄 차가 주위를 에워싼다. 이 도시는 막 혼란으로 빠지는 중이다. 14살의 어린 시위자가 총탄에 맞아 상처를 입는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어떻게 시위의 도가니에 빠져서 폭력의 현장으로 전락하였는지... 그리고 도대체 언제 끝이 나려나. 이 영화는 그들 인생의 최고의 전쟁을 치르는 중인 다섯 명의 젊은이들의 행적을 좇는다. 시위가 최고조로 치닫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처절히 투쟁한다. 그들의 상대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독재 정권이다. "우린 홍콩의 미래의 결정자가 중국 공산당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어요. 이건 분명 독재 국가와 민주주의와의 대결입니다." 대부분, 체포될 때 신원이 밝혀질까 봐 두려워서..

Documentary/Social 2021.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