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결국 이 모든 것은 극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
『컨택트 :: Arrival』입니다.
# 1.
서사의 초점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다. 다방면의 존재론적 질문들로 견인하는 부단히 지적인 SF다. 그래서 드니 빌뇌브의 야심이란 지독할 정도의 침착성과 인내심으로, 언어의 본질과 인간의 인지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사색을 향해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대체로 퍼스트 컨택트 장르들은 외계종과의 통신 문제를 불편으로 치부하거나, 혹은 바벨 피쉬1와 같은 마법적인 장치를 통해 언어학적 논의를 배제해 왔다. 한편 컨택트는 외계어 습득 자체를 영화의 핵심 줄거리로 삼아 언어학을 전면에 부각한다. 특히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은 작품의 핵심 전제다. 언어가 인간이 세계를 지각하는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로, 7년 앞서 <송곳니>를 통해 제안된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언어결정론적 문제의식을 우주적인 형태로 발산시킨 꼴이다. 간단히 하자면 특정 언어(헵타포드어)를 습득함으로써 사용자가 실제로 시간을 다르게 인식하고 심지어 미래를 볼 수 있게 된다는 전개다.
영화 언어로 구현된 헵타포드어는 다분히 시각적인 문자(Logograms)다. 시작과 끝이 없는 원형(圓形)은 문장을 넘어 하나의 사상을 포괄하는 것으로, 시간의 선형성을 따르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를 한 번에 지각하는 헵타포드의 인지 구조와, 그 너머 영화의 방법론과 작품 철학 전체를 반영하고 있다.

# 2.
헵타포드들이 지구에 온 목적은 3,000년 후 자신들을 돕게 하기 위해 지구인에게 자신들의 언어, 즉 선물(Gift)을 주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 선물을 무기(Weapon)로 오해하고 분열하다 군사 행동을 취하기 직전에 몰린다. 과정에서 언어는 인류의 인지 구조와 세계관을 통째로 바꾸는 드라마틱한 인식 전환 장치로서 역할한다. 헵타포드어를 습득해 미래를 보게 된 언어학자 루이즈는 마침내 미래의 정보를 현재의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는 무기로써 활용하고, 개인의 능력을 초월적으로 확장시킨 언어를 통한 인지적 변형은, 다시 지구적 갈등을 해결하는 범인류적 계기로 나아가며 소통의 담론으로 확장된다.
테드 창의 원작이 언어학에 깊이 천착한 것과 달리, 드니 빌뇌브는 시제에서 파생된 시간문제에 조금 더 몰두하고 있다. 시간을 선형적이고 순차적인 사건의 연속으로 인지하는 것을 우리의 언어체계가 그러하기 때문이라 규정한 후, 새로운 언어를 통해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다발적으로 공존하는 유동적인 비선형적 차원으로 격상시킨다. 다만 그런 세계를 주장하기만 하는 것은 시시하다. 모름지기 영화는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작품이 제안하는 동시성을 영화의 서사 구조로 확장, 선형성을 탈피하고 순환적으로 구성된 플롯을 조직한다. 이 모든 이야기조차 '시작되는 곳에서 끝나고,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방식으로 복잡한 시간 이론을 감각하게 하기 위함이다.

# 3.
영화 내내 삽입되는 루이즈와 딸 한나2의 장면들은, 전통적인 서사 문법상 과거의 기억(Flashback)으로 인식되게끔 연출되어 있고, 감독은 일관되게 루이즈의 개인적인 슬픔과 상실을 암시하며 관객의 드라마적 몰입을 유도한다. 그러나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이 장면들 모두 루이즈가 외계어를 습득하여 얻은 미래의 기억(Flashforward)3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 순간 관객은 익숙한 선형적 시간관의 전복을 경험하게 되는데, 일련의 비선형적 배치로 인한 충격은 루이즈의 학습 과정과 정확히 일치되는 것이다. 관객은 루이즈와 마찬가지로 시간의 순서가 뒤섞인 혼란스러운 인지적 공간에 놓이게 되며, 이를 통해 루이즈의 캐릭터와 그녀가 겪는 새로운 존재 방식에 대한 감정적 연결을 획득한다.
마침내 미래를 알게 된 루이즈는 이안과 결혼해 딸 한나를 낳아 기르지만 결국 어린 딸이 희귀병으로 사망할 운명이라는 것을 미리 인식한다. 비극적인 미래를 알면서도 그것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실존주의적 질문이다. 그녀는 고통과 상실이 필연적으로 수반될 것임을 알면서도, 다가올 기쁨과 슬픔으로 이루어진 전체의 삶을 포용해 운명을 걷는다. 고통이 없는 삶을 선택하는 대신 고통을 포함한 전체 시간성을 사랑하는 새로운 형태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고스트 스토리>와 <그린나이트>의 데이빗 로워리4가 '우리는 왜 어차피 사라질 텐데도 불구하고 역사를 만들어 가는가'라는 회의적인 물음에 대한 답으로 제안한 능동적 허무주의와도 일부 맥이 닿아있다. 그렇게 쌓아온 역사라는 것이 이렇게나 눈부시지 않냐는 대답, 인생과 세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것(Non Zero Sum Game)이다.

# 4.
SF로서는 크게 이례적인 미니멀한 작품은 결국 무수한 중첩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중첩되어 있고, 기억과 경험과 기대가 중첩되어 있으며, 탄생과 삶과 죽음이 중첩되어 있고, 미장센과 몽타주와 플롯이 하나의 방법론으로 중첩되어 있다. 과학자와 언어학자의 관계와 두 헵타포드가 중첩되어 있고, 딸 한나와 죽은 헵타포드 에벗이 중첩되어 있으며, 사무실의 커뮤니티와 범지구적 외교 관계가 중첩되어 있고, 마침내 테드 창의 발상과 드니 빌뇌브의 구현과 관객의 현실이 중첩된다.
작품의 원제는 어라이벌(Arrival). 끝내 도착한 것은 외계인과 타인뿐 아니라, 이 모든 의미에서 각기 분리되어 있다 인지하고 있었던 것들을 하나로 중첩해 인지하게 된 '나'다. 따라서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송곳니가 스스로 관객 입안 송곳니로 작동하였듯, 컨택트는 스스로 관객 개개인에게 헵타포드다. 익숙해서 편안하지만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게 만들었던 중력의 공간을 벗어나 호기심과 공포심이 뒤엉킨 어두운 통로를 건너 빛나는 장막에 손을 뻗은 루이즈는, 어두운 영화관에 걸어 들어와 오염되지 않기 위해 싸매고 있던 편견의 방호복을 벗고 빛나는 스크린에 기꺼이 손을 뻗은 관객과 같고, 이 영화라는 새로운 헵타포드어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두 억겁의 시간을 초월해 본질을 고찰하는 신인류가 된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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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글러스 애덤스의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등장하는 물고기. 외계 종족 간 통역기로 쓰이는 존재다. [본문으로]
- 딸(Hannah)의 이름이 회문인 것도 흥미롭다. [본문으로]
- '예언'이 아닌 '기억'이다. 미래와 기억의 형용모순이야 말로 영화의 본질에 닿아있다. [본문으로]
- 한 그루의 사과나무 _ 고스트 스토리, 데이빗 로워리 감독, 가웨인 교향곡 _ 그린 나이트, 데이빗 로워리 감독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