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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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58

뱀파이어 힐스 _ 죽어야 사는 여자,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 0. 50대 중년에겐 두 갈래 길이 있다. 40대처럼 보이려 발버둥 치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죽어야 사는 여자 :: Death Becomes Her』입니다. # 1. 가끔은 아쉽다. 50대 중년에게 '멋진 50대가 된다'라는 선택지는 정녕 없는 걸까. 만약 그런 선택지가 있었다면 40대처럼 보이려 발버둥 치는 사람은 조금 덜 괴롭지 않았을까. 자조적으로 포기해 버린 사람도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예로 든 것일 뿐 비단 50대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젊어 보인다는 말이 칭찬으로 통용되는 것은 세대를 막론한다. 40대는 30대로 보이고 싶어 하고, 30대는 20대로 보이고 싶어 하고, 20대는 10대로 보이고 싶어 한다. 이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은..

Film/SF & Fantasy 2024.04.20

간택 _ 엘레나, 정민지 감독

# 0. 아니, 솔직히 억울합니다. 정민지 감독, 『엘레나 :: Elena』입니다. # 1. 익숙한 아파트 단지. 우이천 산책로. 맑은 하늘 아래 평화로이 흐르는 강물. 단아한 징검다리. 회색 옷의 주인공. 엘레나. 관객에게 인사하려는 찰나 어깨를 부딪히는 누군가. 사과하지 않고, 옆을 지나는 다른 사람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어깨에 묻은 작은 먼지를 덜어내는 깔끔함. 나 요새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 이름은 순자. 그녀에겐 짝이 없다는 소식을 알아냈어. 친절한 웃음의 순자는 중년의 여성. 다리 아래로 시퀀스가 옮겨간다. 반만 먹고 남겨진 옥수수. 엘레나와 비슷한 회색 옷을 입은 세 명의 친구. 알갱이를 나눠주며 대화한다. 산책하는 개? 사료 먹고 편하게 사는 애들 질투하는 거 아니야?! 에서 센스가 ..

Film/SF & Fantasy 2024.04.08

달디단 _ 웡카, 폴 킹 감독

# 0.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초콜릿 초콜릿 폴 킹 감독, 『웡카 :: Wonka』입니다. # 1. 움파룸파의 것을 훔쳐간 사람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것이 순진한 웡카의 짓이든, 악독한 슬러그워스의 짓이든 괴팍한 주황색 소인은 괘념치 않죠. 웡카는 자신을 찾아온 누구나에게 초콜릿을 만들어 줍니다. 그것이 소버린을 지불한 도시의 사람들이든, 친절을 베푼 누들과 친구들이든, 오만한 피켈그루버든 상관없습니다. 웡카라는 이름을 이정표 삼아 극장을 찾은 관객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웡카를 찾아온 사람들은 누구나 웡카로부터 초콜릿을 선물 받습니다. 영화는 '엄마를 그리워 하는 소년 윌리가, 달콤 백화점에 가게를 차리고 초콜릿 공장을 세운 웡카가 된다'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영화 는 그 자체로 ..

Film/SF & Fantasy 2024.03.20

마른 인간 연구소 _ 우주인, 조한 렌크 감독

# 0.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조한 렌크 감독, 『우주인 :: Spaceman』입니다. # 1. 징그러운 거대 거미와 징그러운 아담 샌들러가 포옹하는 우주 영화입니다. 야로슬라프 칼파르시의 소설 을 원작으로 합니다. 조한 렌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아담 샌들러가 주연으로 열연합니다. 같은 작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많은 양산형 로코물 탓에 비아냥을 많이도 샀던 아담인데요. 넷플릭스와의 계약은 확실히 분기점이 된 듯합니다. 노아 바움백의 와 샤프디 형제의 에 이어 2022년 공개된 까지 필모그래피가 만개하고 있는데요. 정극 연기하는 아담 샌들러에 대한 신뢰가 쌓이는 건 격세지감이라 할 법하죠. 다만, 앞서의 작품들과 이번 은 결이 조금 다르기는 합니다. 익숙한 불안과 폭발보다는 오히려 ..

Film/SF & Fantasy 2024.03.12

루프는 폭발이다 _ 팜 스프링스, 맥스 바바코우 감독

# 0. 갈(喝)! 맥스 바바코우 감독, 『팜 스프링스 :: Palm Springs』입니다. # 1. 루프물에 로맨틱 코미디다 보니 언제나처럼 '그 이름'이 불려 나올 수밖에 없긴 합니다만, 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일부의 평은 썩 정밀하진 않아 보입니다. 모름지기 재해석이라 하려면 주제의식의 발전이 있어야 할 텐데요. 내적 성찰을 통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영혼의 성장을 그렸던 빌 머레이 & 해럴드 레이미스와 달리, 맥스 바바코우는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관계성의 가치와 불안정성을 직시하고 내일을 맞이하는 용기라는 전혀 다른 주제의식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죠. 다만 그럼에도 여타의 모든 루프물과 같이 사랑의 블랙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작품이라는 것은 분명하고, 감독 역시 그 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

Film/SF & Fantasy 2024.02.10

이연복의 피카츄 돈까스 _ 외계+인 2부, 최동훈 감독

# 0. 별 수 있나요. 보긴 봐야죠. 최동훈 감독, 『외계+인 2부 :: Alienoid part.2』입니다. # 1. 한 번에 촬영된 시리즈이니만큼 애정을 주기 힘든 유치한 스타일이라는 전편의 약점은 어쩔 수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편 대비 훨씬 정돈된 티가 나기도 하고, 밀린 숙제를 열심히 해치우고 있고, 코미디의 분량도 크게 늘어 설득력이 압도적으로 개선된 후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코멘트하자면 1부는 짝퉁 전대물, 2부는 짝퉁 어벤저스라 평해도 크게 할 말은 없는 거겠죠. 그러니 많이들 하고 계신 지루한 동어반복은 생략하도록 하구요, 대신 프로젝트 전체에 대한 소감을 짧게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에도 저마다 주인이 있습니다. 모든 영화들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같은 아이돌 립서비스..

Film/SF & Fantasy 2024.01.14

배우 양조아 _ K박사의 연구, 박지혜 감독

# 0. 짜릿해! 늘 새로워. 공짜인 게 최고야! 박지혜 감독, 『K박사의 연구』입니다. # 1. 2023년 12월 16일. 예술의 전당에서 라는 이름의 공연영상플랫폼을 오픈합니다. 월 2,500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클래식, 발레, 연극, 오페라, 무용, 국악 등 고품격 콘텐츠를 제공하는 일종의 문화 예술 전용 ott서비스라는 건데요. 심지어 내년 12월까지 1년간의 시범 운영 기간 동안은 무료로 공개된다는군요. 개꿀. 공개된 지 며칠 되지 않아 아직 작품이 많이 걸려있지는 않습니다만, 문외한도 솔깃할 법한 양질의 작품들은 충분해 보입니다. 연극 , , , 라거나, 발레 , , , 국악 등도 흥미롭구요. 클래식 기반의 음악듀오 노래서점의 영상들이라거나, 노부스콰르텟의 다양한 연주들, 혹은 양손프로젝트 단..

Film/SF & Fantasy 2023.12.20

혁신은 없었다 _ 팟 제너레이션, 소피 바르트 감독

# 0. 파스텔 빛 미래에 대한 사소하지 않은 고민들이 잎사귀처럼 차곡차곡 쌓인다. 소피 바르트 감독, 『팟 제너레이션 :: The Pod Generation』입니다. # 1. 아이를 가졌다. 아이를 낳았다. # 2. ...가 영화 속 상황의 전부입니다. 그저 엄마의 자궁 대신 '팟'이라는 이름의 인공자궁에서 아이가 키워질 뿐이죠. 기술적인 문제 혹은 우려는 의도적으로 배제됩니다. 안전상의 걱정 없이 자궁을 온전히 대체할 수 있는 가상의 시스템이 존재한다 가정한 상황에서의 윤리적 문제에 천착한 작품이라는 것이죠. 자연스럽게 중요한 것은 기술이 어디까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일 텐데요. 영화 속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과의 거리를 기준으로 크게 네 단계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가장 낮은 층은 '집에서..

Film/SF & Fantasy 2023.12.10

미녀와 천사 _ 나의 엔젤, 해리 클레벤 감독

# 0. 역시 피부 좋고 향기 좋으면 반은 먹고 들어갑니다. 해리 클레벤 감독, 『나의 엔젤 :: Mon Ange』입니다. # 1. 판타지 로맨스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내내 홀딱 벗고 다니는 투명인간인데요. 유일하게 입는 옷이라곤 엄마의 빨간 드레스 하나뿐인 노출증 변태죠. 홀로 자식 키우는 엄마가 '나의 엔젤'이라 불렀다고 자기 이름 삼아버린 나르시시스트이기도 한데요. 한국에서 태어나 우리 똥강아지라 불렸으면 졸지에 영화 제목도 우리 똥강아지가 될 뻔했습니다. 후반부 접어들어 오만데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살려 여자 알몸을 훔쳐보기까지 하는데요. 언제 잡혀 들어가도 할 말 없을 문제적 인물임에 틀림이 없죠. 그런데 이런 놈도 연애를 합니다. 결혼하고 애도 낳습니다. 미모의 여자친구랑 같이 데이트도 하고..

Film/SF & Fantasy 2023.10.24

z의 감각 _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웨스 앤더슨 감독

# 0. 웨스 앤더슨이 선사하는 기상천외함이란 웨스 앤더슨 감독,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입니다. # 1. 오랜만에 넷플릭스에 걸린 단편입니다. 누가 봐도 '그 이름'이 떠오를 법한 독특한 화면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오이형의 모습은 관객의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죠. 영국의 소설가 로알드 달(Roald Dahl)의 동명 단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인데요. 한편도 아니고 , , 까지 무려 4편이 연달아 공개되었습니다. 참! 잘했어요. 알고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두 해전쯤 로알드 달 스토리 컴퍼니(Roald Dahl Story Company, RDSC)를 넷플릭스가 인수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요. 해당 사업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되겠군요. 혹여 문..

Film/SF & Fantasy 2023.10.02

놀랍게도 전현무 아님 _ 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

# 0. 가시가 있는 것들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구나 후쿠다 유이치 감독, 『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입니다. # 1. 일본의 작가 아오야기 아이토의 동명 단편 소설을 실사화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해당 분야에 조예가 없어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흔히 말하는 라노벨(ライトノベル)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듯한 제목이군요. 대충 찾아보니 나름 시리즈물인 듯합니다. 를 시작으로 본작 , 를 지나 올해 8월 나온 신간의 제목 역시 라고 하는데요. 역시, 여행이라면 시체 하나쯤은 만나야 제맛이죠. 그림 형제의 동화 빨간 모자에서 여행자의 이미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붉은 두건에서 탐정의 이미지를 추출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썩 직관적이고 효과적인 듯 보입니다. 고전적인 테마를 끌고 와 만들어 낸 어릴 적 한..

Film/SF & Fantasy 2023.09.20

변경의 동물 _ 에브리띵 윌 체인지, 마튼 페지엘 감독

# 0. 수십, 수천 세기가 흘러도 사건이 일어나는 건 현재뿐이다. 마튼 페지엘 감독, 『에브리띵 윌 체인지 :: Everything Will Change』입니다. # 1. 모큐멘터리(Mockumentary), 우리에겐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실 영화들이 있습니다. 연출된 상황극을 다큐멘터리의 기법으로 촬영해 마치 실제 상황처럼 보이도록 만든 작품들이죠. 파라노말 액티비티 같은 파운드 푸티지 물들도 큰 틀에서 모큐멘터리의 일종이라 할 수 있을 테고요. 아파르트헤이트를 은유했던 닐 블롬캠프의 디스트릭트 9이라거나, 딘 플라이셔-캠프의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 한가닥 하는 여배우들이 기싸움하던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 같은 작품들도 있었더랬습니다. 영화 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방법론을 뒤집어 ..

Film/SF & Fantasy 2023.09.08

비상한 야심 _ 만델라 이펙트, 데이빗 가이 레비 감독

# 0. Hello, IT, have you tried turning it off and on again? 데이빗 가이 레비 감독, 『만델라 이펙트 :: The Mandela Effect』입니다. # 1. 만델라 효과(Mandela effect)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실제 하지 않았던 거짓된 기억을 사실인 양 공유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넬슨 만델라가 80년대 즈음 감옥에서 죽었다 기억하는 것에서 유래하는 데요. 실제 만델라는 2013년에 타계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충 80년대 고생스러운 옥살이를 하다 건강 이상설이 나오기도 했으니까 적당히 죽었겠거니 하는 생각들이 반복적으로 유통되다 사실처럼 굳어진 것이라 추측하는 것이 정설이라 합니다. 만델라 효과의 사례는 그 외에도 제법 많..

Film/SF & Fantasy 2023.08.31

옳음과 올바름 _ 패러다이스, 보리스 쿤츠 감독

# 0. 합리의 구심력에 저항하는 윤리의 원심력 SF적 상상력을 끌어내리는 현실의 중력 보리스 쿤츠 감독, 『패러다이스 :: Paradise』입니다. # 1. 수명을 거래하는 SF 영화라면 앤드류 니콜의 이 생각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파과적 상상력과 아만다 사이프리드,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캐스팅으로 이목을 끄는 데까진 성공했었는데요. 태만한 세계관 연출과 어색한 액션, 괴랄한 전개에 방점을 찍는 허무한 결말로 실망스러운 평가를 듣고 만 작품이었죠. 언젠가부터 소재의 자극성과 주연 배우의 미모에 힘입어 [결말 포함] 딱지 붙인 싸구려 유튜브 등지에서 소비되고 있는 듯한데요. 아무리 망작이라지만 썩 가혹하군요. 여하튼 아이템의 창의성이 핵심 동력이라는 점에서 이미 선점한 영화가 있다는 점, 특히 그 영화가..

Film/SF & Fantasy 2023.08.16

대가를 활약으로 대신한 대가 _ 패신저스, 모튼 틸덤 감독

# 0. 생존이 공격받는 상황 앞에 윤리는 얼마나 허약한가. 당위는 얼마나 허무한가. 모튼 틸덤 감독, 『패신저스 :: Passengers』입니다. # 1.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화, 패신저스입니다. 어떤 영화가 윤리적 문제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 단순히 못 만든 영화들에 비해 특히 격앙된 비난을 듣곤 하는데요. 이 작품이 들어야 했던 비난들은 좋은 예라 할 수 있겠죠. 사실 영화를 보고 나면 사람들이 경악하는 게 이해가 가는 소위 '욕 들어먹을 만한' 작품이긴 합니다. 다만 그냥 비난만 할 뿐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를 이야기하는 경우는 잘 보이지 않더라구요. 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듯 영화감독 역시 수많은 직업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들도 평범한 윤리 의식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임에 틀림없죠...

Film/SF & Fantasy 2023.07.26

눈 가리고 아웅 _ 인어공주, 롭 마셜 감독

# 0. 답이 뻔한데 왜들 이러실까. 롭 마셜 감독, 『인어공주 :: The Little Mermaid』입니다. # 1. 인어공주는 결국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와 육지를 오가는 눈부신 붉은 머리와 경쾌한 안다다씨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과 별개로 서너 가지의 딜레마와 그 안에서의 가혹한 선택이라 요약한다 해도 무리는 없는 작품인 것이죠.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첫 번째 딜레마는 다들 아시는 대로 아름다운 [미모]와 인어라는 [운명]입니다. 에릭 왕자와 사랑에 빠진 주인공은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마녀 우르슬라를 찾아가 [다리]를 얻는 데 성공하지만, 대가로 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불하게 되죠. 이후 원작에서는 왕자와의 [사랑]과 물거품이 ..

Film/SF & Fantasy 2023.05.26

담음새 _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 딘 플라이셔-캠프 감독

# 0. 평범하고 소소한 아이디어를 비범하고 웅장하게 담아낸다. 딘 플라이셔-캠프 감독,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 :: Marcel the Shell with Shoes On』입니다. # 1.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진 않는데요. 모 유튜브에서 '평론가는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느라 재미는 덜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동진 평론가가 대충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영화에 친숙하지 않은 일반의 관객들은 영화를 두 가지 기준에서 보게 된다. 하나는 스토리, 다른 하나는 연기다. 하지만 영화에는 스토리와 연기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정보들이 있다. 이를 테면 쇼트나 편집, 구도나 플롯 따위의 흔히 연출이라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때론 스토리나 연기가 특출 나지 않음에도 훌륭한 영화들이 있고 그런 영화들 역시..

Film/SF & Fantasy 2023.04.12

얼음으로 들어가 불로 나온다 _ 디스트릭트 9, 닐 블롬캠프 감독

# 0. 볼 영화가 없다는 건 정확한 표현은 아닐 겁니다. 그저 '지금 영화관에서' 볼 영화가 없을 뿐이죠. 닐 블롬캠프 감독, 『디스트릭트 9 :: District 9』입니다. # 1. 여러분께서 이 글을 언제 읽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2023년 3월 중순인 지금 국내 영화판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강제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재들의 전유물인 것만 같던 슬램덩크가 400만을 훌쩍 돌파하고, 팬이 많은 만큼 중2병이란 꼬리표도 함께 따라다니던 신카이 마코토의 스즈메가 300만을 노리고 있는 요즘이죠. 포스트 코로나의 수혜를 다른 영화도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이 받고 있는 모습이 다소 어색하긴 합니다. 영화로 밥 벌어먹고사는 당사자들에겐 심각한, 한 발짝 떨어진 사람들에겐 신기한 작금의 현상에 대해 갑론..

Film/SF & Fantasy 2023.03.28

한 편의 걸작 두편의 부록 _ 매트릭스, 더 워쇼스키즈 감독

# 0.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송곳니를 이야기하며 인식과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로버트 저메키스의 백 투 더 퓨쳐를 보며 트릴로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의식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이끌더군요. 더 워쇼스키즈, 『매트릭스 :: The Matrix』입니다. # 1. 혹자에겐 거리감 있는 것으로,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허황된 것으로 취급되기도 하는 철학입니다. 특히 실용주의적 성향이 강한 몇몇의 이과적 인간들에겐 더욱 그러한데요. 요런 류의 인간들에게 잘못 걸렸다간 철학뿐 아니라 인문학이라는 분야 전체가 너덜너덜해지기 십상이죠. 인생에서 가장 시니컬하던 시기였던 학창 시절. 성리학의 이기론이니 주기론이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대체 검증 조차 할 수 없는 저딴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걸 넘어, 저..

Film/SF & Fantasy 2023.03.10

할리우드의 모든 것 _ 백 투 더 퓨쳐,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 0. 어차피 분석적인 이야기, 디테일한 비하인드는 검색하면 차고 넘치거니와, 30년도 더 지난 마당에 이제와 새삼스럽기도 합니다. 자세한 건 꺼무위키 찾아보시구요. 오늘은 평소보다 더 어깨 힘을 빼고 소소하게 수다나 떨도록 하죠.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백 투 더 퓨쳐 :: Back to the Future』입니다. # 1. 못해도 십 수 번은 본 것 같은데요. 하하. 또 봤습니다. 이젠 처음 본 게 언젠지도 가물가물한데요. 85년 개봉작이니 영화관에서 보진 않았을 테고. 대충 명절 특선이나 비디오테이프로 처음 봤을 것 같네요. 개봉시기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즈음에 많이들 보셨을 테니 70년대생 분들께 더욱 특별한 영화로 기억되실 겁니다. 적잖은 수의 40대 중반쯤 되는 형님..

Film/SF & Fantasy 2023.03.04

마침내 도달한 중도의 평화 _ 3000년의 기다림, 조지 밀러 감독

# 0. 매혹적이고 환상적이며 치명적인 극단들을 소거한 끝에 마침내 도달한 중도의 평화 조지 밀러 감독, 『3000년의 기다림 :: Three Thousand Years of Longing』입니다. # 1. 짝퉁 골동품을 타고 나타나 알리세아를 만난 지니입니다. 소원에 앞서 들려주는 시바 여왕과 귈텐과 제피르의 이야기는, 집착으로서의 매혹이자 극단으로서의 환상이며 비극으로서의 치명입니다. 불신과 맹신. 구속과 자유. 집착과 고독. 욕망과 체념. 과학과 동화. 이야기와 현실. 다양한 위상의 대립항을 놓고 각각의 극단이 가지는 불완전성을 교훈 삼는 세 편의 단막극을 전개합니다. 기나긴 시간과 드넓은 바다에 은유된 원망과 후회와 분노와 집착을 견뎌낸 끝에, 마침내 치우침 없이 도달한 중도의 평화를 그려낸 작품..

Film/SF & Fantasy 2023.02.04

졸작의 관성 _ 정이, 연상호 감독

# 0. 모든 것들에 관성적 접근으로 일관하는 영화에서 단 하나 관성을 벗어난 것이 물리 묘사라는 아이러니 연상호 감독, 『정이 :: JUNG_E』입니다. # 1. 김현주 눈나는 겁나 이쁩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겁나 이쁩니다. 뛰고 구르고 개고생을 해도 말도 안 되게 이쁩니다. 누구는 외모가 미친 듯이 퇴보하고 있는데요. 이 눈나의 미모에만 선택적으로 관성이라도 작동하나 봅니다. 강수연 배우의 카리스마도 반갑습니다. 70년대부터 필모를 두텁게 쌓아온 대배우지만 아무래도 지금의 사람들에겐 여인천하에서의 모습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시겠죠. 오랜만의 복귀작임에도 이번 영화 역시 감정을 터트리는 순간의 눈빛이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에는 여전히 관성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상호 감독입니다. , ..

Film/SF & Fantasy 2023.01.22

스무고개 _ 더 나은 선택, 제니퍼 팡 감독

# 0. 더쳐스 캐리는 누구인가 제니퍼 팡 감독, 『더 나은 선택 (어드벤테이저스) :: Advantageous』입니다. # 1. 어린 딸과 친구들의 스무고개로 시작됩니다.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 사람. 몇 가지만 빼고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 크루아상과 크랩애플을 먹는 사람. 협력을 해서는 안됩니다. 한 명만이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커닝하면 승자는 없습니다. 질문하고 답하며 수수께끼의 인물 더쳐스 캐리에 대해 고민하던 소녀들의 걸음 맞은편엔 붉은 드레스의 엄마, 아니 엄마 같아 보이지 않는 여자 '그웬'이 반갑게 인사합니다. 영화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반갑게 손 흔드는 이 여자에 대한 스무고개인 것이죠. 작품 초반 경제적 문제에 봉착한 그웬은 전화 속 드래이크라는 존재와 대화를 나누는 데요. 그의 대답..

Film/SF & Fantasy 2023.01.08

넓게 잡고 얕게 판다 _ 보이저스, 닐 버거 감독

# 0. 이렇게 얕을 거라면 왜 우주까지 끌고 가서 그 난리를 피운 거지? 닐 버거 감독, 『보이저스 :: Voyagers』입니다. # 1. 이제는 조금 식상하기까지 한 우주 배경의 사고 실험물입니다. 인간 군상을 집어넣은 가상의 실험실을 만든 후 계를 분리시키기 위해 냅다 우주로 던져버리는 식이죠. 인터스텔라 같은 유명 작품뿐 아니라, 얼마 전 창세기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 같다 말씀드린 바 있는 하이라이프 같은 영화들도 비슷한 접근법을 공유하는 작품이었더랬습니다. 언제나처럼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최후의 희망. 뭐, 고런 식으로다가 적당히 당위를 만드는 과정에서 고증 오류가 듬성듬성 발견되기도 합니다만, 역시나 그런 오류에 집중하는 것은 썩 무의미합니다. 애초에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어드벤처가..

Film/SF & Fantasy 2022.12.16

김치피자탕수육 _ 유로파 리스트, 세바스챤 코르데로 감독

# 0. 파운드 푸티지 베이스에 아마겟돈식 영웅 서사랑 크리쳐 앤딩을 비비면?! 세바스챤 코르데로 감독, 『유로파 리스트 :: Europa Report』입니다. # 1. 이상하겠죠. 실제 이상한데요. 그런데 생각보다는 또 볼만합니다. 명작은커녕 수작도 조금 버겁습니다만 컬트적인 재미가 없다 말하는 것은 그것대로 가혹합니다. 세상 건조하고 차가운 파운드 푸티지에 동료애 넘치는 뜨뜻한 갬성 서사를 더하고, 고증이 핵심인 우주 탐사 SF와 개 뜬금 판타지 크리쳐물을 비벼놨는데 덜컹거리긴 해도 어찌어찌 돌아는 갑니다. 다양한 요소들이 충돌함으로 인한 불가분의 장단점이 매우 뚜렷합니다. 극단적인 퓨전 요리인 탓에 빈말로라도 대중적이라 말할 순 없지만 동시에 좋아하시는 분들은 맛있게 드시기도 하는 김피탕 같은 영화..

Film/SF & Fantasy 2022.12.04

외롭고 버거운 별들의 맞잡은 손 _ 애드 아스트라, 제임스 그레이 감독

# 0. 남을 따라서 살 일이 아니다 네 가슴에 별 하나 숨기고 살아라 끝내 그 별 놓치지 마라 네가 별이 되어라 - 너는 별이다. 나태주 - 제임스 그레이 감독, 『애드 아스트라 :: Ad Astra』입니다. # 1. 우주 SF입니다. 문제적 감독 제임스 그레이가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갈수록 멋있어지는 브래드 피트가 주연 '로이 맥브라이드'를 연기하구요, 맨 인 블랙의 K로 익숙하실 토미 리 존스가 로이의 아버지 '클리포드 맥브라이드'를 맡았습니다.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 '리마'를 이끌던 클리포드는 오래전 실종되었다 합니다. 그를 영웅으로 여긴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우주 비행사로 성장하게 되죠. 그러던 어느 날 해왕성 방면으로부터 전류 급증 현상이 초래되어 지구가 위험에 노출됩니다. 사태에 리마 ..

Film/SF & Fantasy 2022.10.12

통제와 오차 _ 듀얼 : 나를 죽여라, 라일리 스턴즈 감독

# 0. 통제의 교차로에 갇혀버린 삶 오차를 누린 자의 풍요로운 죽음 라일리 스턴즈 감독, 『듀얼 : 나를 죽여라 :: Dual』입니다. # 1.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자신과 같은 유전자의 클론을 만드는 SF적 세계관입니다. 작품은 클론을 '더블'이라 부르죠.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 주인공 '세라'는 자신을 대신할 더블을 구매하기로 결정합니다. 남은 시간 동안 '세라 더블'에게 자신의 습관과 취향과 성향,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따위를 전달하며 대체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10달이 지나도 죽지를 않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세라는 병원을 찾아가는데 의사로부터 불치병이 나았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되찾아야겠다 생각한 세라는 더블을 폐기하기로 하는데요. 이미 너무 많은 ..

Film/SF & Fantasy 2022.09.26

양은 무엇을 보았나 _ 애프터 양, 코고나다 감독

# 0. 목적의 여백을 발견하는 동안 수리되는 자아, 완성되는 가족 코고나다 감독, 『애프터 양 :: After Yang』입니다. # 1. 인간과 인조인간 어쩌구, 뭐 고런 영화입니다. 흔히 스필버그의 A.I. 를 대표적으로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만 개인적으론 이런 류의 영화를 볼 때면 바이센테니얼 맨을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하는데요. 로빈 윌리엄스의 애환이 뒤섞인 듯한 미묘한 표정이 뇌리에 깊이 남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하튼 통상은 교감을 쌓아나가는 과정을 직접적으로 그리기 마련인데요. 이 작품의 특별함은 인조인간을 죽인 후 시작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인조인간을 통한 가치 탐구를 다룬 영화에서 정서의 종착점을 [애정愛情]이 아니라 [애도哀悼]로 설정하겠다는 아이디어는 과연 특별합니다. 중국계 안드..

Film/SF & Fantasy 2022.09.20

나란 무엇인가 _ 존 말코비치 되기, 스파이크 존즈 감독

# 0. 당신은 어째서 자신이 존 말코비치가 아니라 확신하는 거지? 스파이크 존즈 감독, 『존 말코비치 되기 :: Being John Malkovich』입니다. # 1. "자아의 성질과 영혼의 실존 말이야. 내가 과연 나일까? 말코비치가 말코비치일까?... 이 관문이 얼마나 골치 아픈 형이상학적 문제인지 모르겠어." 영화의 착점을 상징하는 대사이자, 크레이그의 입을 빌린 감독 스스로의 선언과도 같은 대사입니다. 골치 아픈 형이상학적 문제를 다루려는 피곤한 작품이라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 스파이크 존즈가 가장 잘 알고 있죠. 몇몇의 변태 같은 관객을 제외한 대부분은 '골치 아픈 형이상학적 문제'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합니다. 영화 따위 두어 시간 동안의 오락거리 정도면 충분하다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죠. 테마..

Film/SF & Fantasy 2022.08.22

애정결핍 _ 외계+인 1부, 최동훈 감독

# 0. 대체 관객인 내가 영화 속 무엇을 좋아하길 바랬던 걸까. 최동훈 감독, 『외계+인 1부 :: Alienoid part.1』입니다. # 1. 영화만큼 장르라는 말을 많이 쓰는 분야도 없는 것 같습니다. 장르라는 게 뭐예요? 라는 질문에 사람마다 다양한 대답이 가능할 텐데요. 문외한인 저는 관객에게 주고 싶은 감동의 유형 정도로 대충 이해하고 있습니다. 관객을 웃게 하고 싶으면 코미디, 감동시키고 싶으면 드라마, 무섭게 하고 싶으면 호러라는 식이죠. 거기에 어떤 방식으로 어떤 종류의 감동을 줄 것인가라는 세세한 구분이 더해지면 소장르쯤 될 테구요. 다양한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면 퓨전 장르라는 식으로 부를 수 있겠죠. 어찌 되었든 장르물이란 것이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Film/SF & Fantasy 2022.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