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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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개봉 30

그럴 줄 알았다 _ 피해자는 누구인가, 미할 블라슈코 감독

# 0. 전과자인 그 집시 놈이 내 그럴 줄 알았다. 미할 블라슈코 감독, 『피해자는 누구인가 :: Victim』입니다. # 1. 싱글맘 이리나가 부재한 사이 아들 이고르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황급히 체코로 돌아가며 영화는 시작된다. 의식을 찾은 이고르는 '하얀색 피부가 아닌 세 사람'에게 공격당했다 진술하고, 곧 위층의 로마니(집시) 형제가 용의자로 지목되어 체포된다. 이리나는 방송 인터뷰와 정치적 시위를 제안받고 망설이지만, 사건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기라도 한 듯 그녀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전한다. 중반부 이고르가 거짓말을 실토하며 이야기는 크게 전환된다. 여자친구에게 자랑하려다 다친 것이 부끄러워 거짓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정치적 이해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된 상태다. 언론은 연일 사..

Film/Drama 2024.04.16

간택 _ 엘레나, 정민지 감독

# 0. 아니, 솔직히 억울합니다. 정민지 감독, 『엘레나 :: Elena』입니다. # 1. 익숙한 아파트 단지. 우이천 산책로. 맑은 하늘 아래 평화로이 흐르는 강물. 단아한 징검다리. 회색 옷의 주인공. 엘레나. 관객에게 인사하려는 찰나 어깨를 부딪히는 누군가. 사과하지 않고, 옆을 지나는 다른 사람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어깨에 묻은 작은 먼지를 덜어내는 깔끔함. 나 요새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 이름은 순자. 그녀에겐 짝이 없다는 소식을 알아냈어. 친절한 웃음의 순자는 중년의 여성. 다리 아래로 시퀀스가 옮겨간다. 반만 먹고 남겨진 옥수수. 엘레나와 비슷한 회색 옷을 입은 세 명의 친구. 알갱이를 나눠주며 대화한다. 산책하는 개? 사료 먹고 편하게 사는 애들 질투하는 거 아니야?! 에서 센스가 ..

Film/SF & Fantasy 2024.04.08

불안을 다독이는 영화라는 축복 _ 라모나, 안드레아 바그네이 감독

# 0. 안정과 충동 사이에서 불안한 인간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확장되는 시네마 안드레아 바그네이 감독, 『라모나 :: Ramona』입니다. # 1. 주인공은 둘입니다. 하나는 불안한 인간 라모나구요, 둘은 그런 불안한 인간에게 있어 영화의 의미라 할 수 있겠죠. 최대한 있어 보이게끔 말을 굴려보자면 안정과 충동 사이에서 불안한 인간,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확장되는 시네마랄까요. 라모나는 '불안'한 인간입니다. 부정하든 극복하든 분출하든 어떻게든 불안을 처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자, 희망이나 욕망이 아닌 불안에 근거해 행동하는 사람이죠. 고아라는 설정은 최소한의 기반조차 없다는 면에서 불안에 내동댕이 쳐진 인물의 처지를 과장합니다. 구체적 개인임과 동시에 보편적 도시인이기도 합니다. 클래식 음악 위로 비..

Film/Drama 2024.01.24

맑은 하늘의 자화상 _ 어느 멋진 아침, 미아 한센 로브 감독

# 0. 불안한 선택의 미로 끝에 뒤돌아 깨닫는 맑은 하늘의 자화상 미아 한셀 로브 감독, 『어느 멋진 아침 :: One Fine Morning』입니다. # 1. 파리라는 배경, 불안이라는 코드, 걷는다는 이미지는 아녜스 바르다의 같은 작품을 생각나게 합니다. 마침 프랑스 영화이기도 하고, 각각 코린 마르샹과 레아 세두의 존재감으로 견인하는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혹은 삶의 무게에 떠밀린 주인공의 분투를 현실적으로 그린다는 면에서 노아 바움백의 같은 작품이 연상되기도 하는군요. 겉보기에는 주인공 산드라의 고단한 삶을 진중하게 조명하고 독려하는 드라마처럼 보이는데요. 생각하기 따라서 그보다 조금 더 깊은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벤슨 증후군에 걸린 산드라의 아버지 게오르그의 메모에 담긴 ..

Film/Drama 2024.01.12

채린이었다면 _ 지옥만세, 임오정 감독

# 0. 차라리 채린이 주인공이었다면 어땠을까. 임오정 감독, 『지옥만세 :: Hail to Hell』입니다. # 1. 영화는 스스로를 모순된 이미지의 충돌로 소개합니다. 오프닝의 생일 축하한다는 말에 담긴 차가운 폭력은 전시적이죠. '지옥'이라는 부정적 어휘와 '만세'라는 긍정적 어휘를 붙여둔 제목은 작품의 방법론을 데뷔작다운 패기로 선언합니다. 모순된 이미지가 충돌하는 동안 다양한 위계의 딜레마들이 성실하게 적층 됩니다. 삶과 죽음, 낙원과 지옥, 복수와 용서, 고립과 연대, 가해와 피해, 맹신과 불신 등의 딜레마들과 그 딜레마적인 상황에 놓인 인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견인해 나가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두 주인공에게 죽음은 절망이라기보다는 동경에 가까워 보입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뭐랄까요. 지극..

Film/Thriller 2023.12.24

불쾌함의 이유 _ 다섯 번째 흉추, 박세영 감독

# 0. 불쾌하니까 별로라는 감상은 시시합니다. 박세영 감독, 『다섯 번째 흉추 :: The Fifth Thoracic Vertebra』입니다. # 1.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향유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제 아무리 포용적이고 개방적이라 한들) 저마다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편하게는 취향, 조금 더 고상하게 말한다면 감식안(鑑識眼)이라 부르는 것들이죠. 제 스스로 견제하고 점검하는 몇 가지 대전제 중 하나는 '감독은 바보도, 괴물도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비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못 만든 영화라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관객은 보편타당한 근거를 들어 합리적인 수위에서 평가할 권리를 가짐에 분명합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저 감독이란 사람들도 관객..

Film/Thriller 2023.11.28

열린 볼라드 너머 _ 보통의 카스미, 다마다 신야 감독

# 0. 안드로메다에 가지 못해 슬픈 사람은 없어. 다마다 신야 감독, 『보통의 카스미 :: そばかす』입니다. # 1. 카스미는 연애를 하고 싶지도, 그런 감정이 들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정이 있어서는 아니구요, 타고나길 그렇게 태어난 인물이죠. 세상은 그녀의 성향을 이해하기는커녕 존재를 인지하지조차 못합니다. 직장 동료들의 최대 관심사는 언제나 연애고, 엄마는 의무감과 부채의식에 결혼을 닦달하고, 동생은 사랑의 결실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 '모범적인' 임산부죠. 카스미와 세계의 관계는 대표적으로 직업에 은유됩니다. 콜센터 상담사는 매뉴얼에 따라 수행하는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사회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이후 이직하게 되는 어린이집 역시 나이와 무관하게 사랑으로 관계가 이루어지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

Film/Drama 2023.11.04

허무의 얼굴들 _ 이니셰린의 밴시, 마틴 맥도나 감독

# 0. 굳이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허무의 얼굴들 마틴 맥도나 감독, 『이니셰린의 밴시 :: The Banshees of Inisherin』입니다. # 1. 작게는 개인의 인생, 넓게는 역사를 포함한 온 우주를 허무하고 공허한 것으로 규정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는 그 자체로 세계의 허무를 상징한다 할 수 있죠. 영화는 좁게는 두 명, 넓게는 네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데요. 콜린 패럴의 파우릭 설리반, 브렌던 글리슨의 콜름 도허티, 케리 콘던의 시오반 설리반, 배리 키오건의 도미닉 키어니가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은 허무에 대응하는 각기 다른 방식들을 대변합니다. 적극성을 기준으로 나열한다면 가장 소극적인 사람부터 도미닉, 파우릭, 콜름, 시오반의 순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

Film/Drama 2023.10.26

꽃과 손 _ 부화, 한나 버그홀름 감독

# 0. 그 손에 담긴 마음을 들어 보자꾸나. 한나 버그홀름 감독, 『부화 :: Pahanhautoja』입니다. # 1. 호러라기에는 조금 애매합니다. 몇몇의 제한적인 점프스케어가 사실상 전부라 공포 영화를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죠. 오컬트의 분위기에 살짝 발을 담그는 듯도 하지만 이 역시 크리처의 디자인에만 선택적으로 적용될 뿐입니다. 영화는 과보호 환경에서 성장한 사춘기 소녀의 불안을 드라마틱하게 과장한 우화라 보는 것이 차라리 정확합니다. 알레고리는 제법 단편적이고 또 노골적이라 따라가는 것은 편안합니다. 실제 관객이 즐기게 되는 대부분은 미려하고 문학적인 서사 따위가 아닌, 주인공 티니아의 불안과 배우 시이리 솔랄리나의 열연이 차지하고 있죠. 영화는 가족을 '둥지'로 정의합니다...

Film/Horror 2023.09.28

그녀의 고백 _ 흐르는 대로, 치쿠마 야스토모 감독

# 0. 숨겨뒀던 책갈피를 꺼내다. 치쿠마 야스토모 감독, 『흐르는 대로 :: の方へ、流れる』입니다. # 1. 오프닝입니다. 흔들리는 버스 손잡이에 간신히 매달린 손은 연약함과 위태로움 따위를 은유합니다. 창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은 거대한 흐름을 의미합니다. 무엇이 지나간 건지 모를 정도의 빠른 속도와, 흘러가는 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수동성이죠. 이내 여자의 뒷모습이 카메라에 길게 담깁니다. 뒷모습은 숨겨뒀던 솔직한 마음일 수도 혹은 뒤돌아 서있게 만드는 부끄러운 치부일 수도 있을 겁니다. 여자 옆에 한 남자가 섭니다. 여자는 어깨너머로 책을 훔쳐봅니다. 두터운 책의 두께는 사연의 깊이, 몰래 훔쳐보는 것에서는 느슨한 호기심이 발견됩니다. 책갈피입니다. 흘러가던 흐름을 잘라 멈춰 세우는 도구. 삶의 ..

Film/Romance 2023.09.22

팽팽하게 당겨진 원단처럼 _ 아웃핏, 그레이엄 무어 감독

# 0. 팽팽하게 당겨진 원단처럼. 촘촘하게 새겨진 바느질처럼. 단호하게 가르는 가위처럼. 그레이엄 무어 감독, 『아웃핏 :: The Outfit』입니다. # 1. 서스팬스는 팽팽하게 당겨진 원단 같습니다. 내러티브는 촘촘하게 새겨진 바느질 같습니다. 연기는 단호하게 가르는 가위 같습니다. 핏이 딱 떨어지는 정장 같은 고급스러움으로 가득합니다.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들이 만드는 입체적인 스릴러와, 예측을 거부하는 전개 역시 위력적입니다. 그 아래로 잔잔하게 흐르는 시대에 대한 은유는 작품에 유의미한 깊이까지 더하고 있죠. 이 모든 것들을 좁디좁은 양장점 안에 들어선 여섯 남짓의 인물들을 통해 구현했다는 것이야 말로 작품의 가장 큰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바늘', '가위', '총'이라는 세 도..

Film/Thriller 2023.09.12

겁나 높은 곳은 겁나 무섭다 _ 폴: 600미터, 스콧 만 감독

# 0. 사는 건 힘들고, 죽는 건 무섭다. 스콧 만 감독, 『폴: 600미터 :: Fall』입니다. # 1. 암벽 등반 마니아 셋이 있었는데요. 달달한 신혼부부 사이 여자 하나가 꼽사리 낀 모양새군요. 사랑의 암벽 등반을 즐기던 중 남편이 거대 닭둘기에 당해 낙사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눈앞에서 남편 잃은 아내는 폐인이 되고, 같이 벽 타던 친구는 잠적합니다. 긴 시간 괴로움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아내가 남편 따라가기 직전 잠적한 친구가 짜잔 나타나는 데요. 그 사이 인스타와 유튜브를 두루 섭렵한 개막장 관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친구 헌터는 남편 잃은 주인공 베키를 꼬셔 600미터짜리 티브이 타워에 올라가 유해를 뿌리자는 속이 뻔한 제안을 하는데요. 정신 나간 마누라는 그것 참 좋은 아이디어구나..

Film/Thriller 2023.03.16

상생의 역사 _ 아기 코끼리와 노부부, 카르티키 곤살베스 감독

# 0. 필연의 상처를 회복케 하는 상생의 역사 카르티키 곤살베스 감독, 『아기 코끼리와 노부부 :: The Elephant Whisperers』입니다. # 1. 남인도 타밀나두 주에 위치한 무두말라이 호랑이 보호구역.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야생 인접 인도코끼리 캠프, 테파카두 캠프. 그 속에서 '숲의 왕들'이라는 뜻을 가진 카투나야카르 족 사람들이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다큐멘터리는 라구와 암무라는 이름의 두 아기 코끼리를 돌보는 관리인 봄만, 벨리 부부를 중심으로 따라갑니다.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가치는 상생相生입니다. 자연과 생명의 상생이자, 인간과 동물의 상생이며, 부모와 자녀의 상생이자, 노인과 아이의 상생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통할하는 존재와 역사와 ..

엄숙주의의 울타리 너머 _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

# 0. 엄숙주의의 울타리를 호쾌하게 넘는 코미디의 힘 넷플릭스 모큐멘터리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 :: Cunk on Earth』입니다. # 1. 인류의 문명사를 2시간 3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앙상하게 핥아내는 모큐멘터리입니다. 문명 발생에서 시작해 종교, 문화, 근대화를 지나 세계 대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을 유럽인의, 보다 정확히는 영국인의 관점에서 편협하게 전개됩니다만 뭐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지들이 만든 거니까요. 처음엔 필로미나 컹크(Philomena Cunk)가 뭔가 싶었는데요. 코미디언 '다이앤 모건'의 부캐였더라구요. 얼핏 보고선 아이티 크라우드의 캐서린 파킨슨인 줄 알고 살짝 반가웠습니다만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선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찾아봤더니 컹크라는 부케로 ..

Series/Comedy 2023.02.08

마침내 도달한 중도의 평화 _ 3000년의 기다림, 조지 밀러 감독

# 0. 매혹적이고 환상적이며 치명적인 극단들을 소거한 끝에 마침내 도달한 중도의 평화 조지 밀러 감독, 『3000년의 기다림 :: Three Thousand Years of Longing』입니다. # 1. 짝퉁 골동품을 타고 나타나 알리세아를 만난 지니입니다. 소원에 앞서 들려주는 시바 여왕과 귈텐과 제피르의 이야기는, 집착으로서의 매혹이자 극단으로서의 환상이며 비극으로서의 치명입니다. 불신과 맹신. 구속과 자유. 집착과 고독. 욕망과 체념. 과학과 동화. 이야기와 현실. 다양한 위상의 대립항을 놓고 각각의 극단이 가지는 불완전성을 교훈 삼는 세 편의 단막극을 전개합니다. 기나긴 시간과 드넓은 바다에 은유된 원망과 후회와 분노와 집착을 견뎌낸 끝에, 마침내 치우침 없이 도달한 중도의 평화를 그려낸 작품..

Film/SF & Fantasy 2023.02.04

졸작의 관성 _ 정이, 연상호 감독

# 0. 모든 것들에 관성적 접근으로 일관하는 영화에서 단 하나 관성을 벗어난 것이 물리 묘사라는 아이러니 연상호 감독, 『정이 :: JUNG_E』입니다. # 1. 김현주 눈나는 겁나 이쁩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겁나 이쁩니다. 뛰고 구르고 개고생을 해도 말도 안 되게 이쁩니다. 누구는 외모가 미친 듯이 퇴보하고 있는데요. 이 눈나의 미모에만 선택적으로 관성이라도 작동하나 봅니다. 강수연 배우의 카리스마도 반갑습니다. 70년대부터 필모를 두텁게 쌓아온 대배우지만 아무래도 지금의 사람들에겐 여인천하에서의 모습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시겠죠. 오랜만의 복귀작임에도 이번 영화 역시 감정을 터트리는 순간의 눈빛이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에는 여전히 관성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상호 감독입니다. , ..

Film/SF & Fantasy 2023.01.22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ⅱ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ⅰ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 0.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 등을 집필한 장르 문학가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영미권에서는 순수문학가이자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더욱 큰 인물입니다. ... 나무위키가 그렇다네 morgosound.tistory.com # 6. 암시와 복선은 미스터리를 위해 기능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드라마적 기준에서 숨겨지지 않는 악행과 죄책감을 표현하는 메타포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자신의 복수를 숨기는 동시에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함께 묻어 숨기려 했지만 숨길 수 없었고, 그것이 복선이라는 형태로 관객에게 들키고 있다는 것은 곧 랜도르 스스로에게도 자신의 죄책감이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었다는..

Film/Thriller 2023.01.18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ⅰ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 0.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 등을 집필한 장르 문학가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영미권에서는 순수문학가이자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더욱 큰 인물입니다. ... 나무위키가 그렇다네요. 스콧 쿠퍼 감독, 『페일 블루 아이 :: The Pale Blue Eye』입니다. # 1. 포의 이름을 들은 관객은 직관적으로 지적호기심을 최대한 자극하는 고오급 추리물을 기대하기 마련일 텐데요.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감상을 방해하는 성급한 기대가 되고 말았다는 생각입니다. 영화 에서 미스터리는 부차적인 재미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영화 속 미스터리는 삶의 목적을 상실한 길 잃은 주인공의 내면을 세계로 확장시켜 장르적으로 투사한 것에 가깝습니다. 본질은 잔혹한 과거를 가진 한 남자의 깊은 ..

Film/Thriller 2023.01.16

이건 다른 장르입니다만 _ 글래스 어니언, 라이언 존슨 감독

# 0. 형식 위에 수립된 브랜드가 형식을 포기하고 나면 남는 게 뭐지? 라이언 존슨 감독, 『글래스 어니언 :: Glass Onion A Knives Out Mystery』입니다. # 1. 시리즈의 정체성과 연속성이 깔끔하게 휘발, 아니 붕괴되었습니다. 만세. 앞선 의 글에서 정통 후더닛의 매력을 계승하면서도 오답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대신 10분 내외의 작은 질문의 연쇄를 선택한 영리한 작품이라 말씀드렸는데요. 단 두 편 만에 시리즈의 매력과 정체성이 몽땅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형식 위에 수립된 브랜드가 형식을 포기한 셈이라 주인공 블랑의 캐릭터만 공유하는 별개의 작품이라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편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전반부 휘향찬란 돈지랄 눈뽕으로 비비고, 중반부 두 주인공의 추적 어드벤처로 버..

Film/Thriller 2022.12.30

설득의 기술 _ 신의 구부러진 선, 오리올 파울로 감독

# 0. 설득을 하는 데 있어 논리만이 반드시 최선일까? 오리올 파울로 감독, 『신의 구부러진 선 :: Los renglones torcidos de Dios』입니다. # 1. 감독 이름이 익숙합니다. 아, 장인의 오르골이라는 다소 호들갑 떠는 제목과 함께 이야기드린 바 있는 의 감독이었군요. 각기 다른 네 개의 시간대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건의 실체와, 각자의 이익을 위한 편의적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동안의 서스펜스를 즐기는 스릴러였더랬습니다. 제법 탄탄한 밀도의 이야기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관객이 신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없어 수동적인 작품이기도 했다는 평도 함께 드렸던 기억이군요. # 2. 다양한 시점을 이리저리 조립해 미스터리를 만드는 데 능한 감독다운 신작입니다. 독특한 제목처럼..

Film/Thriller 2022.12.22

아이템 원툴 _ 트롤의 습격, 로아 우다우그 감독

# 0. 주제의식만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일관된 주제의식 하나 없이 영화를 만들 수도 없는 법이죠. 로아 우다우그 감독, 『트롤의 역습 :: Troll』입니다. # 1. 클리셰가 많다? 그 수준이 아닙니다. 이 정도면 괴수물 클리셰를 일부러 모아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초반엔 무슨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지 싶어 짜증스럽기도 했습니다만 어느 순간부터 그래 어디까지 가나 보자 싶은 생각에 되려 흥미진진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캐릭터, 서사, 플롯, 설정, 공간, 코미디, 액션, 구도, 묘사, 편집 등등등. 거의 모든 부분들이 30년 지기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가워 영화 내내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물론 타겟층이 명확한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긴 해야 합니다. 등산 마니아 아빠가 ..

Film/Action 2022.12.08

7번방의 노마 _ 블론드,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

# 0. 논란의 작품입니다. 고인 모욕에 대한 이야기도 들리구요. 왜곡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더 크게 들리는 듯합니다. 수위가 세다는 마케팅에 속은 일부의 관객들이 화를 내는 듯한 모양새도 있군요. 혹자는 '마릴린 먼로를 창녀로 만드는 영화'라며 분개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원작 소설에 대한 비판에 조금 더 가깝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과연 그것만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은 충분한 것인가에 다소 의문이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영화를 보고 있으니까요.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 『블론드 :: Blonde』입니다. # 1. 전기 영화란 몇몇의 예외적 시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인물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소개하거나, 간과되기 쉬운 입체성을 재조명하기 마련일 텐데요. 문제의 는 왜곡을 차치하고서라도, 인물의 정체성을 ..

Film/Drama 2022.10.04

통제와 오차 _ 듀얼 : 나를 죽여라, 라일리 스턴즈 감독

# 0. 통제의 교차로에 갇혀버린 삶 오차를 누린 자의 풍요로운 죽음 라일리 스턴즈 감독, 『듀얼 : 나를 죽여라 :: Dual』입니다. # 1.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자신과 같은 유전자의 클론을 만드는 SF적 세계관입니다. 작품은 클론을 '더블'이라 부르죠.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 주인공 '세라'는 자신을 대신할 더블을 구매하기로 결정합니다. 남은 시간 동안 '세라 더블'에게 자신의 습관과 취향과 성향,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따위를 전달하며 대체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10달이 지나도 죽지를 않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세라는 병원을 찾아가는데 의사로부터 불치병이 나았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되찾아야겠다 생각한 세라는 더블을 폐기하기로 하는데요. 이미 너무 많은 ..

Film/SF & Fantasy 2022.09.26

양은 무엇을 보았나 _ 애프터 양, 코고나다 감독

# 0. 목적의 여백을 발견하는 동안 수리되는 자아, 완성되는 가족 코고나다 감독, 『애프터 양 :: After Yang』입니다. # 1. 인간과 인조인간 어쩌구, 뭐 고런 영화입니다. 흔히 스필버그의 A.I. 를 대표적으로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만 개인적으론 이런 류의 영화를 볼 때면 바이센테니얼 맨을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하는데요. 로빈 윌리엄스의 애환이 뒤섞인 듯한 미묘한 표정이 뇌리에 깊이 남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하튼 통상은 교감을 쌓아나가는 과정을 직접적으로 그리기 마련인데요. 이 작품의 특별함은 인조인간을 죽인 후 시작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인조인간을 통한 가치 탐구를 다룬 영화에서 정서의 종착점을 [애정愛情]이 아니라 [애도哀悼]로 설정하겠다는 아이디어는 과연 특별합니다. 중국계 안드..

Film/SF & Fantasy 2022.09.20

폭동 _ 카터, 정병길 감독

# 0. 야한 동영상을 줄여서 '야동'이라 부르던가요. 그럼 폭력 동영상은 '폭동'이라 불러야겠군요. 정병길 감독, 『카터 :: Carter』입니다. # 1. 멜로와 포르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가장 큰 것은 의도의 차이라 해야 할 겁니다. 멜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부신 순간들과, 그 속에서 발견되는 정서의 입체성을 관찰하는 걸 목적으로 합니다. 성애性愛는 결실을 표현하는 다양한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죠. 성애를 적극적으로 연출하는 몇몇 작품들 조차 중요한 것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어루만지는 손길에 담긴 감정의 표현에 있습니다. 파격적인 표현으로 주목을 받았던 같은 작품들만 하더라도 각각의 베드신마다 각기 다른 정서를 구분 지어 표현하는 미학적 성취가 뛰어난 작품이었죠. 반면, 포르노에서..

Film/Action 2022.08.12

가장 낮은 층의 붕괴 _ 비상선언, 한재림 감독

# 0. 뒤집어진 건 영화였구요. 한재림 감독, 『비상선언 :: Emergency Declaration』입니다. # 1. 씨발, ㅈ됐다. 어떡하냐. # 2. 천박하게 말하자면 재난 영화는 위의 두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의 '씨발, ㅈ됐다'는 재난의 심각성을 의미할 테구요, '어떡하냐'는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고군분투를 의미한다 할 수 있겠죠. 영화는 전후반 극명하게 갈리는 평가를 받는 양상인데요. 전반부는 씨발 ㅈ됐다를 열심히 잘 만들어 칭찬받고 있는 것이고, 후반부는 어떡하지를 기만하면서 욕먹고 있는 것이라 이해하면 무난할 겁니다. 끝맺음으로 논란에 놓인 작품을 이야기하는 중이라는 게 아이러니하긴 합니다만, 재난 영화의 결말은 생각보다 자유롭습니다. 어찌어찌 노력한 끝에 다 살아도 좋습..

Film/Drama 2022.08.10

사과해 _ 사람 냄새 이효리, 구교환 / 이옥섭 감독

# 0. 유튜브 지박령이 또 희한한 영상에 얻어걸렸습니다. 구교환 / 이옥섭 감독, 『사람 냄새 이효리 :: Super Star LeeHyori』입니다. # 1. 코피로 혈서 써주며 먹고사는 구교환과 아이들이 돈 많은 이효리 오퍼 받고 신나서 찾아갑니다. 구교환은 트로피에 피 묻히고 이효리는 계단 내려오며 쌍욕 합니다. QR코드 찍어 옛날 테레비 시청하고 햄스터 80마리 택배로 날아와서 학교도 못 간 김에 노숙자로 전직하게 한 거 사과해. 요가하며 트림하는 이효리가 개 잡아먹은 사람 잡아먹었다고 자수합니다. 글자 겁나 많은 혈서 덕에 구교환은 한몫 땡겼겠네요. 부럽다. # 2. 어찌 되었든 언어유희를 활용한 반전 한 방을 향해 가는 작품이라 해야 할 겁니다. 결말에 도달하는 과정은 사회-경제적 계급과 도..

Film/Comedy 2022.08.04

애정결핍 _ 외계+인 1부, 최동훈 감독

# 0. 대체 관객인 내가 영화 속 무엇을 좋아하길 바랬던 걸까. 최동훈 감독, 『외계+인 1부 :: Alienoid part.1』입니다. # 1. 영화만큼 장르라는 말을 많이 쓰는 분야도 없는 것 같습니다. 장르라는 게 뭐예요? 라는 질문에 사람마다 다양한 대답이 가능할 텐데요. 문외한인 저는 관객에게 주고 싶은 감동의 유형 정도로 대충 이해하고 있습니다. 관객을 웃게 하고 싶으면 코미디, 감동시키고 싶으면 드라마, 무섭게 하고 싶으면 호러라는 식이죠. 거기에 어떤 방식으로 어떤 종류의 감동을 줄 것인가라는 세세한 구분이 더해지면 소장르쯤 될 테구요. 다양한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면 퓨전 장르라는 식으로 부를 수 있겠죠. 어찌 되었든 장르물이란 것이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Film/SF & Fantasy 2022.08.02

분풀이 _ 슈퍼 리그 축구의 종말, 칼 힌드마치 감독

# 0.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축구도 좋아합니다. 잘 알지는 못하구요, 아주 아주 아주 라이트 한 팬이죠. 팀은 영국에 위치한 병기창 축구 클럽이라는 곳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구단주는 스탠 크랑키라는 인물인데요. 이 인물이 슈퍼 리그라는 축구의 종말(?)을 불러올 뻔 한 사건의 주범(?) 중 한 명이라 다큐를 보기 전부터 어느 정도 주워들은 바는 있었습니다. 물론 마니아분들이 아시는 것만큼 정확하지는 않겠지만요. 칼 힌드마치 감독, 『슈퍼 리그, 축구의 종말 :: Super Greed, The Fight for Football』입니다. # 1. 레알 회장 페레즈의 주도 하에 15개 메가 클럽 구단주들이 모여 "자잘한 팀들 재끼고 대륙 통합 리그를 만들어 우리끼리 다 해 먹어보자!!!" 라는 목적으로 진행한..

Documentary/Social 2022.07.16

퀄찍누 _ 일장춘몽, 박찬욱 감독

# 0. 아이폰 13 출시를 기념한 애플과 박찬욱 감독의 컬래버레이션 단편입니다. '박찬욱' 감독, 『일장춘몽 :: Life is But a Dream』입니다. # 1. 아이폰 13 프로. 여기저기 호들갑을 떨어대는 게 맘에 안 들어 심술이 잔뜩 나 있었는데요. 스토어에서 실물을 만져보고 항복하고 말았던 친구죠. 사야지 사야지 했습니다만. 돈이 업쪄... ㅠ 어쩔 수 없이 플립 하나를 쿠팡 핫딜로 주은 후 맥북 에어 깡통을 스벅 입장용 방탄조끼로 들이밀며 간신히 연명하고 있습니다. 비참하네요. 주워들은 바로는 갤럭시에 비해 AP 깡성능으로 조질 수 있는 고화질 고프레임 실시간 후처리 퀄리티 등의 동영상 촬영과, 특유의 갬성 색감과 근접 디테일 정도가 비교 우위라는 듯 보이구요. 광각, 망원, 야간 가리지..

Film/SF & Fantasy 2022.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