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알려주고 도와주는 캐릭터에서 지적하고 평가하는 캐릭터로
『캐릭터 위기에 봉착한 스타 사업가의 오너리스크』
# 1.
연일 부정적 기사가 이어진다.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언론의 상투적 비방이라기엔 커뮤니티의 반응도 유튜브 댓글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사업가 겸 방송인 백종원 씨다. 영화를 즐기다 보니 인간사 내러티브의 측면에서 보는 못된 관성이 있는 데 이번엔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백종원의 인지도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함께 시작되었다 해도 틀리지 않다. 초기의 백종원은 철저하게 '알려주고 도와주는 캐릭터'로 기억한다. 가난한 연인들에게 깻잎으로 모히또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이었고, 자취생에게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이었으며, 한 푼 아쉬운 주부들에게 처치 곤란한 떡국떡으로 기름 떡볶이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이었다. 옥상으로 쫓겨나 발 만지는 거 아니냐는 농담에 화들짝 놀라는 사람이었고, 요플레 뚜껑을 핥아먹냐는 농담에 부자 아닙니다 손사래를 치던 사람이었으며, 사랑하는 아내를 잘 봐달라 고백하는 사람이자, 그런 아내가 게임 마우스를 찾았다는 소식에 시무룩해하는 사람이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의 그는 그의 실제 성정과 별개로 적어도 캐릭터의 측면에선 철저하게 무해한 사람이었고, 따라서 대중은 그에게 요구할 것도 되물을 것도 없었다. 일련의 캐릭터성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작품이 바로 <집밥 백선생>이다. 당시의 그는 연예인들에게 요리시키고 심사하는 사람이 아닌 요리를 도와주고 작은 것에 칭찬하는 역할, 밥 먹여주는 역할이었다. 최근 몇 년의 프로그램들을 생각하면 이쪽이 오히려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다.
# 2.
기념비적인 마리텔로부터 3년, 방송인 백종원은 본인의 대표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다. 초기의 골목식당은 골목에서 장사하는 소상공인을 컨설팅하는 콘셉트이었고 이때까지의 백종원은 그래도 알려주고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모든 예능이 그러하듯 회차가 늘어짐에 따라 식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제작진에겐 높아진 시청자의 역치를 충족할 추가적인 자극이 필요했고, 특정 시점부터 각기 다른 스타일의 ‘빌런’이라는 출연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으로 서서히 변모한다.
백종원의 캐릭터는 '알려주고 도와주는 사람'에서 '지적하고 평가하는 사람'으로 수정되기 시작한다. 자신의 실수에 너스레 떨며 음료수 서비스로 주던 장사꾼에서 니 인생이 망할까 그런다 역정 내는 성공한 사업가로의 변화다. 그것이 의도된 것인지 의도되지 않은 것인지 의식한 것인지 의식하지 않은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중요하지 않다. 프로그램은 점진적으로 노골적으로 변화하고 있었고, 그 프로그램을 선택한 사람도 변화된 캐릭터를 수행한 사람도 백종원 본인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옳고 그름과 별개로 방송은 다수 시청자에게 그렇게 보였다면 그런 것인 비정한 세계다.
직후 백종원이 출연하는 방송의 성격들 역시 캐릭터 변화와 연동되어 달라지기 시작한다. 불과 몇 년 만에, 집밥을 알려주던 백선생에서 장사천재임을 과시하는 백사장이 되었다는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큰 범주에서 같은 요리 예능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사실 대단히 드라마틱한 변화다. 전자는 알려주고 도와주는 캐릭터의 프로그램이라 한다면, 후자의 <장사천재 백사장>은 지적하고 평가하는 캐릭터에게 ‘네가 지적하고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어디 한번 보자’라는 프로그램에 가깝다. 주인공의 호감도가 견인하는 시청률의 아래로 대중들은 이미 이전과 달리 묻고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몇몇의 경연 프로그램을 지나 2024년 센세이셔널한 반향의 <흑백요리사>를 통해 누적된 캐릭터성은 정점을 찍는다. 자신은 요리하는 장사꾼이지 셰프는 아니라 겸손하게 말하던 사람은, 값비싼 정장을 빼입고 대한민국 최고의 3스타 셰프와 나란히 단상에 올라 유수의 스타 셰프들과 세계적인 중식 대가와 한식 명장을 내려다보며 당락을 결정하는 법관이 된다. 작은 불씨 하나에도 삽시간에 타버릴 마른 장작이 산떠미처럼 쌓인 순간이다.
# 3.
사실 억울할 것도 없다. 너는 그렇게 잘났냐라는 질문은 모든 평가하는 사람들의 숙명이다. 당장 레스토랑 모수를 다녀온 사람들 역시 심사위원으로서의 안성재의 기준을 무의식 중에 기준점 삼아 식사를 즐기긴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고기는 이븐 하게 익은 걸까. 채소의 익힘 정도는 적절한가. 꽃장식 같이 쓸데없는 게 있지는 않나. 안성재가 떨어트린 그 셰프의 레스토랑보다 여기서의 경험이 그렇게 더 뛰어난가 등등. 그것을 통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레스토랑 하나 정도는 본인의 실력과 직업윤리만 확고하다면 물리적으로 관리 가능할 수 있고, 대중의 반응을 미루어보건대 안성재 셰프는 훌륭히 평판을 방어하고 있는 듯하다.
반면 백종원은 수많은 프랜차이즈의 대표다. 지적하고 평가하던 백종원을 향해 백종원의 기준에서 지적하고 평가하는 상황에서 자연인 백종원의 윤리나 능력과 별개로 그가 벌인 사업 규모는 개인이 통제 가능한 규모도 범위도 아니다. 기존에도 호오가 있었던 홍콩반점에서부터 최근의 빽햄 논란까지의 본질은 캐릭터의 변화와 사업 모델의 불일치다. 제로 리스크 로우 리턴의 ‘알려주고 도와주는 캐릭터’에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지적하고 평가하는 캐릭터’로 전환한 데 대한 캐릭터의 위험이 오너리스크의 형태로 프랜차이즈에까지 번지는 양상인 것이다. 고향 예산에서의 야심과 더 본의 상장을 하이 리턴의 상징과 같은 사건이라 한다면, 작금의 주가 하락과 대중적 피난은 예정된 하이 리스크의 수순에 불과하다.
어렵더라도 이전의 리스크가 적은 캐릭터로 돌아가 불만을 수습했어야 했지만 관성을 뿌리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백종원은 일련의 문제들을 ‘지적하고 평가하는 캐릭터’로서 대처하고 만다. 개별 프랜차이즈의 담당자를 불러 지적하고 각 점포의 점주들을 평가했다. 빽햄의 합리성을 평가하고 불만하는 사람들의 오류를 지적했다. 자신과 자신의 왼손을 분리해 나쁜 짓을 한 왼손을 꾸짖는 듯한 괴상한 상황, 자신이 호통쳤던 소상공인들의 말을 스스로 답습하는 민망한 상황. 충분히 응축된 장작은 삽시간에 불타올랐고, 집어삼킨 불길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4.
여기까지 생각이 흘러오는 동안 이동진과 장항준과 박찬욱을 떠올렸다. 스타 평론가 이동진은 직업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고 그의 평론 중 몇몇은 필요에 따라 지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대신 이동진은 스스로 영화를 찍지 않으며 영화인에 대한 보편적인 존중을 반복적으로 환기한다. 때문에 평가하는 이동진에 의해 평가되는 것은 이동진의 평론이 전부고, 다소 강박적이고 보수적인 개인의 성향과 맞물려 통제력을 유지한 채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예능인으로 더욱 친숙한 장항준의 감독으로서의 필모그래피는 변변찮은 것이 사실이나 적어도 그는 초기의 백종원처럼 한없이 무해한 인물이다. 특유의 너스레로 스스로를 낮추는 그는, 설령 영화 이야기를 하더라도 다른 감독의 작품을 소개하고 감상할 뿐이다. <기억의 밤>이나 <리바운드>를 특별히 가혹하게 평가받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박찬욱은 데뷔전 평론가로 활동했지만, 감독 데뷔를 염두에 두었기에 애초부터 한국영화에 대해선 평론하지 않았다 알려진다. 덕분에 평론가 이력에도 안정적으로 데뷔할 수 있었고 이는 그의 미학을 자유롭게 표현할 다양한 근거 중 하나가 되었다.
각기 다른 캐릭터의 세 사람은 얻기 위해 포기했다는 면에서만큼은 공통된다. 이동진은 평론가로서의 직업윤리를 지탱하기 위해 작품 활동의 가능성이나 영화인과의 관계를 일부 희생했다. 장항준은 적극적인 방송활동에도 창작자으로서의 비평적 시각을 숨기며 때때로 바보와 한량을 자처했다. 박찬욱 역시 저술에 적힌 외화에 대한 평가에 미루어 알 수 있듯 신랄한 견해를 가졌음에도 그것을 절제하고 통제했다.
백종원은 마치 장항준처럼 방송에 출연해, 이동진처럼 평가하며, 박찬욱보다 곱절은 더 많이 작품을 찍어내는 셈으로,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손해 보거나 희생하지 않았다. 방송과 명성과 사업, 모든 것을 가지려던 그는 수년간 미뤄뒀던 비용을 값비싼 이자까지 얹어 지불할 위기에 놓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임에도,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위기 앞에서 난관을 슬기롭게 타계할 수 있을까.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Netflix, Tving, WatchaPlay, CoupangPlay, Appletv,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 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