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간교한 뱀의 혓바닥을 단호히 뿌리쳐야 한다.

『선악과를 탐한 자의 추방과 교훈』
# 1.
태초에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의 모든 풍요를 허락했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큼은 엄격히 금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게 되리라는 경고였다. 허나 간교한 뱀이 나타나 그것을 먹으면 죽는 것이 아니라 눈이 밝아져 신과 같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 유혹했다. 그 말이 탐스러웠던 하와와 아담은 결국 금기를 어겼고, 곧 자신들이 벌거벗었음을 깨달아 수치심에 몸을 숨겼다. 신의 추궁에 아담은 여자가 주어 먹었다 핑계를 댔고, 하와는 뱀이 꾀어 먹었다 변명했다. 이에 신은 뱀에게 배로 기어 다니며 흙을 먹는 저주를, 하와에게는 출산의 고통을, 아담에게는 평생 땀 흘려 일해야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있다는 가혹한 징벌을 내린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이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탐하여 영생할까 염려한 신은, 그들을 에덴 밖으로 추방해 버린다. 창세기다.
2025년 12월 6일 배우 조진웅이 은퇴를 선언한다. 스스로 은퇴라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상 퇴출이다. 세간의 반응은 경악스러운 과거 행적과 직업 선택의 자유, 교화와 응보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고, 구태여 그것이 의미 없다 낮잡아볼 생각은 없다. 다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거슬리는 것은 조금 다른 지점이다. 근년동안 조진웅이 걸어온 아슬아슬한 행보다.

# 2.
단연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은 한번 살기 힘든 타인의 삶을 마음껏 대신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순식간에 의사가 될 수도, 율사가 될 수도, 석학이 될 수도 있고, 과거로 돌아가 위인이 될 수도, 미래로 날아가 전설이 될 수도, 신화로 이동해 영웅이 될 수도 있는 직업. 그렇기에 배우에게 있어 별다른 노력 없이 타인의 삶이 전제되는 공간이자, 그것을 뒷받침해 줄 편리한 보조, 심지어 이후의 전개까지 모조리 안전한 촬영장은 낙원과 다를 바 없다. 필요하다면 홀딱 벗고 다닐 수 있는 것도 비슷하고 말이다.
하지만 에덴이 그러하듯 촬영장에도 금기가 있다. '배역의 정체성'이란 선악과에 손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밀도 높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드라마틱하게 재구성된 배역의 캐릭터성이란 너무나도 탐스러운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촬영장 밖으로까지 가져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금기다. 보통의 배우들은 그것의 위험성을 직감으로 안다. 현실에는 내가 맡은 배역의 캐릭터성을 지탱해 줄 실력도, 환경도, 스탭도, 시나리오도 없으니까. 일례로 슬의생이 아무리 사랑받는다 한들 전미도는 의사가 될 수도 없고 될 생각도 없다. 마찬가지로 범죄도시가 아무리 사랑받는다 한들 마동석은 형사가 될 수도 없고 될 생각도 없다. 기껏해야 소소한 배우개그나 상업광고의 모티브 정도로만 쓰일 뿐이고, 그 이상 선을 넘는 순간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엄격히 견제되는 이유다.
역으로 악역을 맡은 배우의 인격과 도덕성이 철저히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배우와 배역은 완전히 분리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공공의 적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 조규환을 맡은 이성재가 광고 계약을 잃었다거나, 왔다! 장보리에서 연민정 역을 훌륭하게 소화한 이유리가 촬영 중 행인에게 욕먹은 일화 등이 문화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던 시기의 반성으로 회고되는 것처럼 말이다.

# 3.
문제의 조진웅이다. 그는 근년동안 대단히 적극적으로 배역의 당위를 배우 자신의 윤리로 이전시켰고, 이는 촬영장의 선악과를 입에 문 것과 다를 바 없다. 명량, 암살, 대장 김창수와 같은 민족주의 항일영화에 참여하며 연기한 독립운동가의 캐릭터성과, 시그널을 비롯한 몇몇 작품에서 쌓은 형사의 캐릭터성을 적극적으로 '훔쳐 먹은' 그는, 마침내 스스로 정의론을 설파하기에 이른다. 잘못은 잘못이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거나, 내 차례가 온다면 기꺼이 독립운동에 나설 것이라 연설하는 것을 넘어,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에 국민 특사 운운하며 나선다거나, 광복 80주년 경축식에 주요 인사로 참여하는 식이다. 뭇사람들은 치명적인 과거 행적에 집중하는 듯 하지만, 필자는 설령 그에게 소년범이란 과거가 없었다 하더라도 시기의 문제일 뿐 몰락은 예정된 것이라 평가한다. 배역의 권위를 자신의 명예로 치환한다는 것은 곧 스스로 빌려온 위인의 윤리를 지키며 살 것이 요구된다는 것인데, 평범한 자연인이 특정 가치를 의인화하고 있는 초인의 삶을 완벽히 산다는 게 가능할 리 없다.
그렇다면 그에게 선악과를 탐해라 유혹한 뱀은 누구일까. 그가 금기를 베어뭄으로써 이익을 본 사람들일 것이다. 물론 스스로 정의감에 도취된 본인도 재미를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이 구조에서 아무런 리스크 없이 이익을 본 사람들은 따로 있다. 배우가 꺼내 온 픽션 속 배역의 도덕성을 현실에서 다시 이전받은 사람들. 지금 조진웅에게, 여태껏 당신이 선악과를 먹은 것은 오히려 칭찬받아야 할 일이라며 이겨내라, 돌아와라, 그래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유용한 인형이 되어달라 유혹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남겨진 배우들이라도 통렬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앞으로도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품, 그중에서도 정의를 설파하는 작품들은 만들어질 것이고, 그럴때면 배역을 소화한 당신에게도 교활한 뱀이 꼬일 수 있다. 스스로 캐릭터의 현현이 되어 명예를 드높이고 겸사겸사 내게도 나눠달라는 간악한 혓바닥이다. 모범적인 대답은 단호하게 꺼져라 말하는 것이다. 배우를 직업으로 선택한 당신에게 연기라는 낙원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일 테니까.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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