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728x90

범죄 43

타블로이드의 구독자 _ 젠틀맨, 가이 리치 감독

# 0. Ladies and Gentlemen, Please Welcome.        가이 리치 감독,『젠틀맨 :: The Gentlemen』입니다.     # 1. 가이 리치가 돌아왔다. 신작 이야기가 아니다. 스타일의 복원. 즉, 셜록 홈스, 킹 아서, 알라딘을 돌아 무려 12년 만에 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줄 작품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뜻이다. 낡은 술집 귀퉁이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허풍 가득한 이야기가 타란티노스러운 리드미컬한 플롯 위에 펼쳐진다. 화려한 수사학적 과장으로 가득한 묘사, 현란한 촬영과 편집의 기교도 충만하다. 위선적 교양이 지저분한 액션으로 탄로 나는 시퀀스의 완급은 능숙하다. 애드거 라이트의 그것만큼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누가 보더라..

Film/Action 2024.04.24

에펠탑의 뒤편 _ 오 머시!, 아르노 데플레솅 감독

# 0. 어두운 밤 보다 더 어두운 에펠탑의 뒤편 아르노 데플레솅 감독, 『오 머시! :: Oh Mercy!』입니다. # 1. 통상 영화 속 사건과 인물은 창작된 것이라며 도망갈 길을 열어두기 마련인데요. 되려 등장하는 모든 사건은 소소한 것이든 큰 비극이든 실화라 강조하며 시작됩니다. 실존하는 문제를 강하게 지적하는 고발성 작품이라는 것이죠. 배경인 프랑스 루베(Roubaix)는 감독 데플리솅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강한 비판 아래로 자전적이고 온화한 시선이 함께 느껴지는 독특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밥 딜런의 앨범(Oh Mercy(1989))으로부터 끌고 들어온 듯한 영화의 제목은, 도시의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숙연한 기도로서 감독의 지향을 엿보게 하죠. 오프닝의 선언처럼 전반..

Film/Drama 2024.03.10

시나리오 특강 _ 세븐 싸이코패스, 마틴 맥도나 감독

# 0. 거만한 천재가 들려주는 잔인하고 선량한 시나리오 특강 마틴 맥도나 감독, 『세븐 싸이코패스 :: Seven Psychopaths』입니다. # 1. 마틴 맥도나입니다. 역작 의 감독이자, 얼마 전 글로도 옮긴 바 있는 를 연출한 감독인 데요. 두 작품에 앞서 만들어진 2012년 개봉작이죠. 일반적으론 코미디 범죄 영화라 해야겠습니다만, 아시다시피 메타픽션(Metafiction)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콜린 패럴이 연기한 마티는 극 중 시나리오 작가임과 동시에 감독이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세븐 사이코패스를 집필한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다른 무엇보다 마티(Marty)라는 이름은 누가 보더라도 감독의 이름 마틴(Martin)에서 가져온 애칭이죠. 영화는 로스앤젤..

Film/Comedy 2023.11.22

사람은 없다 _ 포퓰레이션 제로, 줄리언 T. 파인더 감독

# 0. "다큐멘터리는 진실과 리얼리티를 추구합니다." 줄리언 T. 파인더 감독, 『포퓰레이션 제로 :: Population Zero』입니다. # 1. 오래전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드웨인 넬슨이라는 사람에 의해 데이비드, 코디, 토마스라는 세 청년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사건이었죠. 용의자 드웨인은 순순히 범행을 자백하는데요. 정작 재판의 결과는 무혐의로 끝나고, 드웨인은 자유인의 신분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작품의 전반부는 세 청년의 유가족들이 보이는 절절한 인터뷰 영상들로 채워져 있죠. 연방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헌법은 사건이 벌어질 경우 해당 사건이 벌어진 주에서 재판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재판은 다시 해당 지역에 소속된 사람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에 의해 재판받도록 정해져..

Film/Thriller 2023.11.08

독의 도미노 _ 뱀에 물린 자들, 안토니 예롄 감독

# 0. 유혹에 못 이겨 무너져 내리는 윤리의 도미노 안토니 예롄 감독, 『뱀에 물린 자들 :: Inherit the Viper』입니다. # 1. 84분짜리 짤막한 인디 영화입니다. 우연히 생긴 자투리 시간을 태울 겸 포스터가 느낌 있길래 골랐죠. 대충 검색을 해 봤는데요. 리뷰는커녕 그 흔한 한줄평조차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아무리 소소하다지만 블로그를 굴리는 입장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영화를 굳이 글로 옮긴다는 건 바보짓임에 분명한데요. 그럼에도 남들 가는 길 똑같이 가면 왠지 지는 것만 같은 홍대병자들에게 요런 영화들이란 마치 뱀에 물린 것만 같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이런 류의 마이너 한 외화들이 수입되는 경우 제목이 제대로 번역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솔직히 미련합니다. 그냥 그러려니..

Film/Thriller 2023.10.28

팽팽하게 당겨진 원단처럼 _ 아웃핏, 그레이엄 무어 감독

# 0. 팽팽하게 당겨진 원단처럼. 촘촘하게 새겨진 바느질처럼. 단호하게 가르는 가위처럼. 그레이엄 무어 감독, 『아웃핏 :: The Outfit』입니다. # 1. 서스팬스는 팽팽하게 당겨진 원단 같습니다. 내러티브는 촘촘하게 새겨진 바느질 같습니다. 연기는 단호하게 가르는 가위 같습니다. 핏이 딱 떨어지는 정장 같은 고급스러움으로 가득합니다.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들이 만드는 입체적인 스릴러와, 예측을 거부하는 전개 역시 위력적입니다. 그 아래로 잔잔하게 흐르는 시대에 대한 은유는 작품에 유의미한 깊이까지 더하고 있죠. 이 모든 것들을 좁디좁은 양장점 안에 들어선 여섯 남짓의 인물들을 통해 구현했다는 것이야 말로 작품의 가장 큰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바늘', '가위', '총'이라는 세 도..

Film/Thriller 2023.09.12

카타르시스 _ 조지타운, 크리스토프 왈츠 감독

# 0. 그리스어로 정화를 의미하며, 마음속에 쌓여 있던 불안, 우울 긴장, 등의 응어리진 감정이 풀리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이러한 정화작용을 비극에서 등장인물의 비극적인 상황이나 비참함을 보고 마음에 있던 응어리나 슬픔이 해소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쾌감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카타르시스는 비극에서 비참한 모습이 해소된 이후에만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로 이를 표현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을 수 있다. - 카타르시스 [κάθαρσις / Catharsis] - 크리스토프 왈츠 감독, 『조지타운 :: Georgetown』입니다. # 1. '그' 크리스토프 왈츠 맞습니다. 바스터즈에서의 한스 란다, 장고에서의 닥터 슐츠로 익숙하실 오스..

Film/Thriller 2023.02.10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ⅱ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ⅰ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 0.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 등을 집필한 장르 문학가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영미권에서는 순수문학가이자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더욱 큰 인물입니다. ... 나무위키가 그렇다네 morgosound.tistory.com # 6. 암시와 복선은 미스터리를 위해 기능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드라마적 기준에서 숨겨지지 않는 악행과 죄책감을 표현하는 메타포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자신의 복수를 숨기는 동시에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함께 묻어 숨기려 했지만 숨길 수 없었고, 그것이 복선이라는 형태로 관객에게 들키고 있다는 것은 곧 랜도르 스스로에게도 자신의 죄책감이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었다는..

Film/Thriller 2023.01.18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ⅰ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 0.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 등을 집필한 장르 문학가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영미권에서는 순수문학가이자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더욱 큰 인물입니다. ... 나무위키가 그렇다네요. 스콧 쿠퍼 감독, 『페일 블루 아이 :: The Pale Blue Eye』입니다. # 1. 포의 이름을 들은 관객은 직관적으로 지적호기심을 최대한 자극하는 고오급 추리물을 기대하기 마련일 텐데요.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감상을 방해하는 성급한 기대가 되고 말았다는 생각입니다. 영화 에서 미스터리는 부차적인 재미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영화 속 미스터리는 삶의 목적을 상실한 길 잃은 주인공의 내면을 세계로 확장시켜 장르적으로 투사한 것에 가깝습니다. 본질은 잔혹한 과거를 가진 한 남자의 깊은 ..

Film/Thriller 2023.01.16

이건 다른 장르입니다만 _ 글래스 어니언, 라이언 존슨 감독

# 0. 형식 위에 수립된 브랜드가 형식을 포기하고 나면 남는 게 뭐지? 라이언 존슨 감독, 『글래스 어니언 :: Glass Onion A Knives Out Mystery』입니다. # 1. 시리즈의 정체성과 연속성이 깔끔하게 휘발, 아니 붕괴되었습니다. 만세. 앞선 의 글에서 정통 후더닛의 매력을 계승하면서도 오답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대신 10분 내외의 작은 질문의 연쇄를 선택한 영리한 작품이라 말씀드렸는데요. 단 두 편 만에 시리즈의 매력과 정체성이 몽땅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형식 위에 수립된 브랜드가 형식을 포기한 셈이라 주인공 블랑의 캐릭터만 공유하는 별개의 작품이라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편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전반부 휘향찬란 돈지랄 눈뽕으로 비비고, 중반부 두 주인공의 추적 어드벤처로 버..

Film/Thriller 2022.12.30

교환살인은 거들 뿐 _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누구나 없애고 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설마 없애고 싶은 사람이 한 명도 없으셨어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열차 안의 낯선 자들 :: Strangers On A Train』입니다. # 1. 교환 살인 [交換殺人] 알리바이를 만들고 동기를 숨기기 위해 둘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의 상대를 교환해 대신 죽이는 행위. 고전 명화 하면 가장 먼저 따라붙는 말은 역시나 '교환 살인'일 텐데요. 그렇다고 메인 테마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껏해야 모티브 정도에 불과하죠. 교환 살인이 메인 테마가 되려면 알리바이가 완벽한 듯한 몇몇의 별건들 사이 인과를 파훼하는 '추리극'이라는 식으로 가는 것이 합당합니다만, 이 작품은 애초에 교환 살인이 완성되지도 않을뿐더러, 사건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전개의 방..

Film/Thriller 2022.08.30

부서진 안경과 사라진 첼로 _ 돈을 갖고 튀어라, 우디 앨런 감독

# 0. 로트와일러가 되고 싶었던 치와와의 유쾌한 모험 우디 앨런 감독, 『돈을 갖고 튀어라 :: Take The Money And Run』입니다. # 1. 애니홀, 맨해튼, 카이로의 붉은 장미, 브로드웨이를 쏴라, 미드나잇 인 파리 등으로 익숙하실 우디 앨런의 두 번째 연출작입니다. 국내 영화로도 패러디될 만큼 유명한 제목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우디 앨런의 연출작인 줄은 모르셨던 분들이 계시던데요. 냉소적이면서 서정적이기도 한 후기 작품들에 비해 초기 작품들은 이질적일 정도로 노골적인 코미디물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감독 고유의 언어유희와, 채플린으로 대표되는 20세기 초 슬랩스틱 무성영화 작법의 오마주, 백신 부작용이랍시고 랍비를 들이미는 식의 막무가내 개드립을 적절히 엮어 낸 수작 코미디죠...

Film/Comedy 2022.06.30

Yah~? _ 파고, 코엔 형제 감독

# 0. Yah~! 코엔 형제 감독, 『파고 :: Fargo』입니다. # 1. , , 등으로 익숙하실 코엔 형제의 1996년작 범죄 영화입니다. 와 에 이어 세 번째로 코엔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요. 새삼 하나같이 마이너 한 작품들만 고르는 걸 보니 별난 인간이긴 한가 봅니다. 자동차 세일즈맨 '제리'입니다. 빚 청산하겠답시고 자기 마누라 납치를 사주한 인물이죠. 덜떨어진 사위를 못 미더워하는 부자 장인에게 몸값을 뜯어내려고 이 모든 사단을 벌인 등신입니다. 딴 돈의 반을 약속받은 납치범 '칼'과 '게어'가 등장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웃기게 생긴 스티브 부세미가 영화 내내 능숙하게 수다를 떨죠. 계획대로 납치를 하나 싶었건만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살인을 벌이게 되며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갑니다. ..

Film/Thriller 2022.05.08

나초와 발가락 _ 데스 프루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 0. 긁어모으는 동안의 흥분. 집어던지는 순간의 쾌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데스 프루프 :: Death Proof』입니다. # 1. 주문에 맞춰 정확히 배합된 칵테일을 내놓는 바텐더 '워렌'처럼 감독 '타란티노'는 관객의 기대에 정확히 부합하는 환상적 배합의 보상을 선사합니다. 존~~~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역시 타란티노 죠. 뭐랄까요. 참 동물적인 영화입니다. 관객들, 특히 남성 관객들로부터 스스로 동물이라는 것을 폭력적으로 고백케 만들려는 듯한 작품이랄까요. 영화를 보다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허울에 갇혀 잊고 있었던, 그저 DNA에 새겨진 유전자 지도에 따라 배열된 단백질 덩어리 속 호르몬의 화학적 기작이 만든 본능 덩어리임을 새삼 상기하게 됩니다. 제 아무리 거창한 이유로 치..

Film/Action 2021.11.02

바보에게 바보가 _ 스몰 타임 크룩스, 우디 엘런 감독

# 0. He is arrogant. Like all people with timid personalities, his arrogance is ­unlimited. Anybody who speaks quietly and shrivels up in company is unbelievably ­arrogant. He acts shy, but he’s not. He’s scared. He hates himself, and he loves himself, a very tense situation. To me, it’s the most embarrassing thing in the world—a man who presents himself at his worst to get laughs, in order to f..

Film/Comedy 2021.07.29

미장센의 배신 _ 우먼 인 윈도, 조 라이트 감독

# 0. 미장센이 어쩌구... 메타포가 저쩌구... '조 라이트' 감독, 『우먼 인 윈도 :: The Woman In The Window』입니다. # 1. 요즘의 영화들 특히 과 의 웨스 앤더슨이나, 와 의 박찬욱 감독의 그것처럼 엄격한 규칙과 과감하면서 관능적인 색감이 만들어내는 인공적 미감의 미장센이 대두된 이후, 영화판의 메타가 마치 누가 더 아름다운 미장센을 뽐내느냐를 경쟁하는 카드게임화 되어버린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오프닝에서 주인공이 가운데 있으니 1점! 화면을 두꺼운 선이 가로지르고 있으니 1점! 하는 식으로 말이죠. 물론 기하학적 구도에 대한 감화가 쉽게 되는 탓에 온갖 리뷰를 미장센에 대한 호들갑으로 떡칠하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희극적이기는 하지만요. # 2. 이 영화 역시 ..

Film/Thriller 2021.05.20

원 히트 원더의 딜레마 _ 낙원의 밤, 박훈정 감독

# 0. 감정이든 행위든 합리성이 부재하다 느끼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겉멋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겉멋이냐 간지냐를 구분짓는 건 사소한 디테일을 물고 늘어지는 식의 개연성 진단과는 무관합니다. 오히려 직관의 영역에 가깝죠. '박훈정' 감독, 『낙원의 밤 :: Night in Paradise』입니다. # 1. 엄태구 입니다. 역시 멋있어요. 감독 생각하면 당연히 범죄 누아르일 테고 당연하다는 듯 양복 입은 주인공의 멋있는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시한부 설정의 이부 누나가 때마침 생일인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조카를 데리고 등장합니다. 어째 벌써부터 지루하네요. 다행히 전개는 초고속으로 이뤄집니다. 주인공은 역시나 조폭이구요. 도 회장이라는 경쟁자가 있다는군요. 사랑해 마지않는 누나와 조카가 석동출 당하고, 빡..

Film/Thriller 2021.04.12

냉동 고추 바사삭 _ 11:14, 그렉 마크스 감독

# 0. 우연과 필연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스릴 넘치면서 유쾌한 킬링 타임용 오락 영화. '그렉 마크스' 감독, 『11:14』입니다. # 1. 본 영화도 몇 편 안 되는 주제에 구미를 당기는 작품이 없다고 투덜거리면서 온종일 영화 목록을 뒤지는 건 바로 이런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일 겁니다. 대작의 화려함이나 걸작의 유려함은 없지만 대신 세상 잃을 것 없는 놈들의 자유분방함과 창의적인 발상, 도발적인 전개로 함께 놀아보자 덤비는 이런 영화들 말이죠. # 2. 이게 바로 킬링 타임용 오락 영화입니다. 제작비만 오지게 때려 박았을 뿐 이야기는 클리셰 대충 비벼 만들어 놓고선 "영화는 영화일 뿐이잖아?" 라거나, "킬링 타임용 영화가 이만하면 됐지!" 라 말하는 감독들의 엉덩이를 시원하게 걷어 차는 것만 같은..

Film/Comedy 2021.03.03

인싸식 영화관람법 _ 저수지의 개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 0. 사흘 전 올린 리뷰에 뜬금없이 베아트릭스 키도를 거론한 건 우연이 아닙니다. 갑자기 꽂혀서 타란티노를 정주행하고 있었거든요. 현재 , , , , , 은 왓챠에서, 는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왜 때문인지 은 양쪽 모두에서 서비스하고 있구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넷플릭스에 가 걸려 있었던 덕에 두 OTT 플랫폼만으로도 를 제외한 타란티노를 모조리 볼 수 있었습니다만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군요. 범인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누가 되었든 순순히 할리우드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게 좋을 겁니다. 면도칼을 든 미스터 블론드를 만나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저수지의 개들 :: Reservoir Dogs』입니다. # 1. 익히 알려진 타란티노. 그중..

Film/Thriller 2021.02.27

더 클래식 _ 12인의 성난 사람들, 시드니 루멧 감독

# 0. 짧게 하겠습니다. 얼른 써 놓고 자기 전에 한번 더 볼꺼거든요. '시드니 루멧' 감독, 『12인의 성난 사람들 :: 12 Angry Men』입니다. # 1. 명성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만,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도 제법 오랫동안 미뤄뒀던 영화입니다. 고전 영화도 나름대로의 맛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특유의 이물감이 관람을 짐짓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연출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만 하더라도 부분적으로나마 어색한 점이 느껴될 정도니,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거라 봐야 할 겁니다. # 2. 하지만 이 영화는 다릅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작품입니다. 대부분의 고전영화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뭘 하고 싶었는지는 충분히 유추할 수 있으나 기술적-경제적 한계 ..

Film/Thriller 2021.02.20

아담 샌들러 홈커밍 _ 머더 미스터리, 카일 뉴어첵 감독

# 0. 아담 샌들러 + 제니퍼 애니스턴입니다. 전형적인 미국식 말장난 코미디물이라는 거죠. '카일 뉴어첵' 감독, 『머더 미스터리 :: Murder Mystery』입니다. # 1. 말장난 코미디이자 대리만족 포르노입니다. 범접할 수 없는 경제력을 가진 부호들 한복판에 떨어진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평범한 중산층 커플'이 그들 수준의 부를 맘껏 누리는 걸 보며 대리만족을 즐기는 영화죠. 여기서 멈추면 영화가 끝나고 난 후 부러움과 질투심, 열패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만 남게 될테니 끝나기 전에 현실로 돌아와 으쓱할 수 있도록 부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한방 먹이며 자존감을 회복할 겁니다. 그 한방이라는 것은 언제나 돈보다 더 의미 있는 가치를 역설하는 훈계질로 귀결될 가능성이 클테죠. # 2. 세부적인 방..

Film/Comedy 2020.11.15

싸가지 _ 에놀라 홈즈, 해리 브래드비어 감독

# 0. 무례합니다. 영화가 싸가지가 없어요. 메시지, 보다 정확히는 특정한 이념을 위해 서사와 캐릭터와 표현과 연출 심지어 관객 경험까지 복무시키는 영화입니다. 이럴 거면 왜 굳이 힘들게 영화를 하나요. 그냥 시민운동을 하시지. '해리 브래드비어' 감독, 『에놀라 홈즈 :: Enola Holmes』입니다. # 1. 현시대의 성갈등에 대한 개개인의 가치판단 여하와는 별개로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자기실현은 충분히 창작자의 구미를 당길법한 소재임엔 분명합니다. 윌리엄 올드로이드의 『레이디 맥베스』와 같은 영화들은 다시 봐도 강렬하고 매혹적이죠. 하지만 당위만으론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가치를 어떻게 쟁취하고 실현하고 설득할 것인가가 본질이죠. 드라마의 감동은 특정 가치와 메시지를 쟁취하는 치..

Film/Thriller 2020.09.26

히치콕의 고양이 -2- _ 39계단,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이전글 : 히치콕의 고양이 -1- [39계단,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10. 좁은 공간에서 속도감 있게 몰아붙이는 전개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더 이상은 넌센스죠. 감독은 의도적으로 대조적인 도시 외곽으로 장소를 옮깁니다. 역동적인 어드벤처에서 적막 속 스릴러로의 이동이군요. 하지만 그럼에도 '해석의 차이'라는 작품의 테마는 일관되게 유지됩니다. 농가에서 역시 각 인물들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기준은 모두 다릅니다. '해니'의 머릿속은 자신을 쫓는 경찰들로 가득합니다. 아낙은 매정한 남편과는 달리 잘생기고 신사적인 '해니'에 대한 이성적 호감에 기반한 막연한 선의를 가지고 있죠. 남편은 이들을 불륜에 빠진 남녀라 오해하고 있구요. # 11. '해니'가 경찰의 추격이라는 물리적 압박에 집중하는 ..

Film/Thriller 2020.09.16

히치콕의 고양이 -1- _ 39계단,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슈뢰딩거의 고양이(Schrödinger's cat)는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비판하기 위하여 슈뢰딩거(E. Schrödinger, 1887-1961)가 1935년 고안한 사고 실험이다. 중첩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양자 대상이 측정장치(일반적으로는, 인과적으로 연결된 고전 대상)를 함께 고려하면 결국 측정장치도 중첩을 일으켜야 한다는 역설이다. 중첩된 파동 함수가 측정하는 순간 환원된다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출처 [물리학백과 : 슈뢰딩거의 고양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39계단 :: The 39 Steps』입니다. # 1. 사실 없는 해석은 무의미합니다. 해석되지 않은 사실은 지루합니다. 사건은 개인적 입장에 따른 주관적 관점을 통해 해석되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생명력을 가집니다. ..

Film/Thriller 2020.09.15

토끼와 여우 _ 프로젝트 파워, 헨리 유스트 / 아리엘 슐만 감독

# 0. 센스로 비비는 민첩케 '조셉 고든 래빗'이 영화 내내 빵야빵야 악당들 죽입니다. 올 스텟 만능형 군인 '제이미 폭스'가 영화 내내 투닥투닥 악당들을 때립니다. 학교 땡땡이치고 마약 밀매를 일삼는 중범죄자지만 심성만은 착한 차세대 래퍼 '도미니크 피시백'이 서폿을 뜁니다. 끝~~~~~ '헨리 유스트', '아리엘 슐만' 감독, 『프로젝트 파워 :: Project Power』입니다. # 1. 믿기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만 정말 그게 전부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는 없어요. 인물들이 어떤 가치나 철학을 표상하고 있다거나, 단단한 기반의 플롯을 감싸는 내러티브를 즐긴다거나, 시나리오를 지배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다거나, 독창적인 캐릭터성과 배우의 연기력을 즐긴다거나, 심미적이고 은유적인 세계관이나 미장..

Film/Action 2020.09.04

할리우드산 마살라 _ 센트럴 인텔리전스, 로슨 마샬 터버 감독

# 0. '마살라'라 불리는 영화들이 있죠. 3시간 여에 달하는 무지막지하게 긴 런타임 동안 이쁜 누나야들과 느끼한 오빠야들이 심심하면 떼거지로 뛰쳐나와 칼군무를 추고 콧수염 휘날리는 멋쟁이 주인공이 펼치는 물리법칙 따위 깔끔하게 무시한 초현실적 액션이 난무하는 가운데 청춘 남녀의 선정적 연애담과 3대 4대를 넘나드는 대가족의 끈적한 유대감과 별을 보고 점을 치는 원시 신앙에 대한 절대적 신봉 따위의 토속적이고 또 통속적인 아이템들로부터 절대 벗어나지 않는. 흔히 '인도 영화'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법한 장르물들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로슨 마샬 터버' 감독, 『센트럴 인텔리전스 :: Central Intelligence』입니다. # 1. 우리 관객들의 눈엔 다소 조악해 보이지만 사실 마살라 영화들의 괴..

Film/Comedy 2020.07.01

왜 이러는 걸까 ⅱ _ 라스트 데이스 오브 아메리칸 크라임, 올리비에 메가톤 감독

왜 이러는 걸까 ⅰ _ 라스트 데이스 오브 아메리칸 크라임, 올리비에 메가톤 감독 # 0. 적지 않은 영화들을 봐오는 동안 얕게 이해한 영화들도 잘못 이해한 영화들도 많았습니다만, 그래도 뭐 하자는 건지조차 모르겠다 싶었던 영화는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아무래도 morgosound.tistory.com # 6. '잭 모건'이라는 아저씨가 등장합니다. 집채만 한 성조기 때문에 대단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역시나 중요한 인물은 아닙니다. API 관리도 하는데 우회 프로그램도 같이 파는... 공무원 아저씨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WARNING 사이트 우회하는 VPN 같은 거 말이죠. 비밀 남친이 부패 공무원을 만나 쇼핑하는 동안 우리의 MIT 출신 천재 해커 누나는 위조지폐를 만들며 '선수 입장' 각..

Film/Action 2020.06.16

왜 이러는 걸까 ⅰ _ 라스트 데이스 오브 아메리칸 크라임, 올리비에 메가톤 감독

# 0. 적지 않은 영화들을 봐오는 동안 얕게 이해한 영화들도 잘못 이해한 영화들도 많았습니다만, 그래도 뭐 하자는 건지조차 모르겠다 싶었던 영화는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아무래도 이 영화가 그 첫 번째가 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왜 이러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올리비에 메가톤' 감독, 『라스트 데이스 오브 아메리칸 크라임 :: The Last Days of American Crime』입니다. # 1. 대체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캐릭터와는 무관하게 X나 느끼한 말투로 허세를 부리는 데 대체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캐릭터들을 다 소개받기도 전에 항마력이 남아나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거의 모든 대사는 도치되어 있거나 문학적 수사로 떡칠되어 있습니다. 거의..

Film/Action 2020.06.15

본격! 리듬! 액션! _ 베이비 드라이버, 에드가 라이트 감독

# 0. 쉴 새 없이 가슴을 두드리는 비트와, 몸을 떨게 만드는 엔진 소리와, 마초적인 배기음의 성대한 응대와 함께 엑셀레이터를 힘껏 당기는 두 시간 동안의 레이스입니다. 누가 감히 영화는 이야기라 그랬던가요. 그림이라 그랬던가요. 이 영화의 주인공은 화려한 드라이빙 스킬로 관객을 레이싱의 매력에 빠트리는 베이비 '안셀 엘고트'도, 수틀리면 샷건부터 갈기고 보는 힙하고 잘생긴 뱃 '제이미 폭스'도, 각기 다른 큐티애교와 섹도시발을 동시에 선보이는 데보라 '릴리 제임스'와 달링 '에이사 곤살레스'도, 연기 잘하는 두 쓰레기도 아닌 음악 그 자체입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 『베이비 드라이버 :: Baby Driver』입니다. # 1. 음악이 플롯과 시퀀스, 공간, 카메라 워크에 대사까지 모조리 장악하는..

Film/Action 2020.05.03

줄리아 폭스 ⅱ_ 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감독

줄리아 폭스 -1- [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감독] # 0. 매운 닭발을 스스로 사 먹어 놓고 매워서 별로라고 별점 테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람쥐통에 제 발로 올라 놓고 멀미가 심해 쓰레기라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morgosound.tistory.com # 10. 복잡 미묘한 감각적 연출과 별개로 메시지 자체는 명쾌합니다.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라. 남의 가능성에 자기 인생을 걸었다간 패가망신한다. 가 그것이죠. '하워드'가 베팅하는 대상은 언제나 타인의 가능성입니다. 그는 경제적인 문제를 돌려 막기 식 부채의 불안정성으로 대처합니다. 세공조차 되지 않은 블랙 오팔에 위기 극복을 전적으로 기대고 있구요. 전문 평가사가 매긴 십만여 달러보다는 정체모를 감정사의 백만 불 ..

Film/Thriller 2020.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