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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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 259

악마의 저주 _ 레디 오어 낫, 맷 베티넬리-올핀 / 타일러 질레트 감독

# 0. 익숙한 통속극을 경쾌한 슬래셔 코미디로 전환하는 능숙한 솜씨        맷 베티넬리-올핀 / 타일러 질레트 감독,『레디 오어 낫 :: Ready or Not』입니다.     # 1. 르 도마스 일가는 엘리트 가문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스테레오 타입의 불안과 불만을 대변한다. 각각의 스트레스는 서로에 대한 미움으로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파국 속에서도 그레이스에 의해 살해된 사람이 없는 이유다. 그레이스의 엘리펀트건이 발사되지 않는 장면은 클리셰를 비트는 장르적 장치임과 동시에, 가족의 파멸과 그녀가 무관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비밀스러운 르 베일에 의한 것도 아니다. 토니는 전통과 계약이 중요한 듯 말하지만 필요하다면 cctv를 켜고, 규칙 밖의 피고용인을 동원하는 데, 모두 자신들을 ..

Film/Horror 2024.11.20

북쪽의 사람들 _ 노스맨, 로버트 에거스 감독

# 0. 선량한 복수의 세계로 빨아 당기는 일렁임, 이글거림, 으르렁거림.        로버트 에거스 감독,『노스맨 :: The Northman』입니다.     # 1. 우리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즐기는 동안 올림푸스와 동시에 그런 상상을 만개하던 아고라를 함께 떠올린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으며 인생의 유한함을 고찰하면서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을 했던 그 옛날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자취를 함께 즐긴다. 히브리 신화를 읽는 동안 기독교 교리 아래로 당대 서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상을 상상하고, 단군신화를 배우며 쑥과 마늘의 이야기 이면에 담긴 오래전 한반도에 자리했던 조상들과의 문화적 연결성을 확인한다. 이처럼 신화가 특별한 건 이야기만큼이나 특별한 화자의 세계가 동시에 느껴진다는 것..

Film/Drama 2024.11.18

무슨 짓 _ 더 로버, 데이비드 미쇼 감독

# 0. 세상이 대충 망한 뒤 지금 이 시대에서 건(gun)법으로 나를 막을 자는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미쇼 감독,『더 로버 :: The Rover』입니다.     # 1. 또포칼립스다. 이쯤 되면 망하지 않은 세상이 역으로 잘못된 건가 싶다. 낡은 차량 안에서 간신히 평온을 얻는 남자, 건조한 모래바람 몰아치는 황량한 들판, 정체 모를 중화풍 음악으로 소개되는 호주는,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망해도 단단히 망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수상할 정도로 총을 잘 쏘는 농부 에릭은 가이 피어스가 연기한다. 살아있는 채권 겸 생체 내비게이션 레이는 이제 막 트와일라잇을 벗어던지던 무렵의 로버트 패틴슨이 맡았다. 이기적인 스타일과 과장된 호흡의 느려터진 영화는 미친듯한 호불호를 유발하나, 마..

Film/Action 2024.11.14

시민의 의무 _ 더 커버넌트, 가이 리치 감독

# 0. 가이 리치가 이런 영화도 만들 줄 알았나        가이 리치 감독,『더 커버넌트 :: Guy Ritchie's The Covenant』입니다.     # 1. 자잘한 이야기를 리드미컬하게 썰어 들어가길 즐기던 가이 리치에게 이런 면도 있었던 걸까. 제이크 질렌할과 다르 살림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영화는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굵고 선명한 이야기를 힘껏 끌고 가는 맛이 인상적이다. 보통의 영화에서 큰 선택은 큰 동기에 의해 일어난다. 큰 희생을 통해 큰 우정을 표현한다거나 큰 결단을 통해 큰 신념을 관철하는 식이다. 반면 시작부터 삐걱거렸던 파견 군인과 현지 통역사의 브로맨스는 큰 행동을 움직이게 만드는 작은 동기에 대한 영화다.  영화가 포착하는 작은 동기란 제목에도 적시된 '계약'으로, 상대적..

Film/Action 2024.11.10

가족 모임은 집에서 _ 트랩,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 0. 때가 되긴 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트랩 :: Trap』입니다.     # 1. 원래 샤말란의 영화가 그렇다. 참신한 판타지 아이디어와 과격한 반전 플롯 아래로 강력한 가족주의 드라마를 깔아 두는 것이다. 걸작 (1999)에서부터 망작 (2010)에 이르기까지 어긋나는 법이 없다. 문제는 아이디어와 드라마를 접합하는 퀄리티에 기복이 심하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마음처럼 풀리지 않을 때면 어린아이처럼 되지도 않는 억지까지 부려댄다는 점이다. 부활을 알렸던 (2015)로부터 얼추 10년. 쿨타임이 돌 때가 되긴 했다. 안 좋은 의미에서의 샤말란 말이다. (2016), (2019), (2021), (2023)까지 챙기는 시늉이라도 했던 최소한의 완성도는 신작과 함께 장렬히 무..

경이로운 순간 _ 와일드 로봇, 크리스 샌더스 감독

# 0. 올해 가장 경이로운 순간 중 하나가 아닐까.        크리스 샌더스 감독,『와일드 로봇 :: The Wild Robot』입니다.     # 1. 언젠가부터 영화에 완벽이란 말을 붙이는 걸 꺼려함에도, 숨겨지지 않는 사랑과 재채기처럼 찬사를 가릴 도리가 없다. 올라가는 앤딩 크레디트를 보며 확신한다. 언제나처럼 좋은 영화를 많이 본 한 해지만 올해의 애니메이션은 이 작품, 와일드 로봇이다.  특별히 모자라거나 과한 바 없는 영화는 완벽이란 평가가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 탁월하다. 드림웍스 최고작이란 평가엔 이견의 여지조차 없고, 적당한 시간이 흘러 2020년대에는 어떤 영화들이 만들어졌는가 물었을 때 그 대답에 들어가더라도 부족함이 없다. 그때의 인류는 어떤 시점에서 어떤 생각과 어떤 고민 끝에..

Film/Animation 2024.11.06

낙원의 비명 _ 그날, 패러다이스, 드레아 쿠퍼 / 재커리 카네파리 감독

# 0. 검붉은 화마에 집어삼켜진 낙원의 비명        드레아 쿠퍼 / 재커리 카네파리 감독,『그날, 패러다이스 :: Fire in Paradise』입니다.     # 1. 2018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패러다이스(Paradise)에서 벌어진 대규모 산불재해의 기록이다. 이른 아침의 산불은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큰 산불 중 하나로 꼽힌다. 늦가을의 건조한 기후와 강풍에 맞물려 빠르게 번져나간 불길은 당국의 통제를 벗어나 삽시간에 도시를 전소시켰고, 수많은 사람들이 대피하는 가운데 상당 숫자의 인명 피해를 야기했다.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화마의 이름이 캠프파이어라는 아이러니와, 참극이 벌어진 도시의 이름이 패러다이스라는 아이러니는 무자비한 자연 앞에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

Documentary/Social 2024.10.30

카타르시스 _ 아일린,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 0.  콤플렉스의 교도소. 트라우마의 지하실. 성탄절의 카타르시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아일린 :: Eileen』입니다.     # 1. (2017)를 통해 억눌린 욕망과 반동을 서슬 푸른 광기로 그려낸 감독은, 차기작에서도 음습하고 내밀한 욕구를 억누르며 사는 여인 아일린에게 주목한다. 주인공 역은 세상의 모든 불안을 담고 있는 듯한 눈망울의 토마신 맥킨지가 맡았다. 레베카 역은 매 순간 관객의 시선을 장악하는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다. 오테사 모시페그의 원작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윌리엄 올드로이드는 뛰어난 두 배우와의 협업을 통해 엄격하고 배타적인 환경과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내면 사이 유리된 자아의 혼란을, 급작스러운 범죄 사건에 얹어 탐구한다. 아일린은 보수적인 1960년대 미국 ..

독의 촉감 _ 독, 웨스 앤더슨 감독

# 0. 결국 뱀에 물리고만 의사였다.        웨스 앤더슨 감독,『독 :: Poison』입니다.     # 1. 넷플릭스가 주도하고 웨스 앤더슨이 연출한 4편의 로알드 달 단편 프로젝트 중 하나다. 에서 자유로운 이야기의 역동성을, 에서 절륜한 문장력의 위력을 증명했던 감독은 을 통해 간결한 이야기로 녹여낸 인간 탐구를 서늘한 촉감으로 구현한다.  인도 땅에서 인도 뱀의 위협을 피해 인도 의사의 도움을 받게 된 영국 군인 해로 포프의 이야기다. 해리의 부름을 받은 우즈와 함께 영화는 시작되는 데 이후로도 우즈는 사건의 관찰자로서 화자를 겸한다. 침대에 곧게 누은 해리는 배 위에 치명적인 독을 가진 우산뱀이 잠들어 있어 옴짝달싹할 수 없다. 깜짝 놀란 우즈는 잠시의 혼란 끝에 의사 간더바이에게 도움을..

Film/Comedy 2024.10.24

너 홀로 집에 _ 맨 인 더 다크, 페드 알바레즈 감독

# 0. 더 이상 삶이 편리하지 않은 너 홀로 집에        페드 알바레즈 감독,『맨 인 더 다크 :: Don't Breathe』입니다.     # 1. 집주인과 침입자의 대치는 생각보다 흔한 플롯이나, 그중에서도 특히 (1990)의 영향을 크게 받은 듯하다. 고전 명작 를 리메이크한 바 있는 페드 알바레즈 감독의 영화는, 전반적으로 나 홀로 집에로부터 큰 틀을 가져오되 세부 설정을 모조리 뒤집어 놓은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의 핵심 재미가 인물의 관계보다 제한된 조건을 활용한 기믹인 것은 더없이 좋은 증거다. 기믹에 걸려 넘어지는 타인을 보면 코미디고, 기믹에 걸려 넘어지는 게 내가 되면 호러일 뿐이다. 어린아이 혼자 있는 집에 어른이 침입했던 것은 노인의 집에 미성숙한 소년이 침입하는 것으로 뒤바..

Film/Horror 2024.10.22

호연지기 _ 하드코어 헨리,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

# 0. 다른 영화들의 고민을 초라하게 만드는 호방한 야심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하드코어 헨리 :: Hardcore Henry』입니다.     # 1. 친근한 동네 상영관에서는 모든 영화가 훌륭하지만, 한껏 힘 준 아이맥스에서 봐야 한다면 그래도 이나 , 정도는 봐야 돈값한 느낌이 든다. 문턱을 넘는 것만으로도 시네필이 된 것 같은 소극장에선 의무감으로라도 인디 영화를 봐야만 할 것만 같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인 캠핑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왁자지껄함도 품어 줄 넉넉한 코미디가 좋다. 오붓한 연인들의 자동차 극장에서는 만 한 것이 없다.  만만한 우리 집 거실에선 중간 즈음의 이나 가 방송되어 길 잃은 리모컨을 쉬게 한다. 시골 할머니 집 낡은 브라운관에서는 오래된 홍콩 영화 혹은 가 제..

Film/Action 2024.10.20

Fuxxing Man _ 조커 폴리 아 되, 토드 필립스 감독

# 0. 그 ㅈ같았던 영화를 위한 사소한 변호        토드 필립스 감독,『조커 폴리 아 되 :: Joker Folie à Deux』입니다.     # 1. 당황스러운 영화다. 전작을 호평한 사람들이 느꼈을 이질적인 인상은 평가와 별개로 부정할 수 없다. 더 잘 만든 영화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전작, 1편이다. 담백하게 그쪽이 완성도가 더 높다. 개인적으로도 영화는 상당히 양가적인 감정으로 즐겼다. 대단히 ㅈ같은 영화이면서, 그렇기에 흥미로운 영화라는 것이 솔직한 양심이다. 리뷰한다면 내적인 디테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당장은 어색할 듯하다. 언젠가 적당한 시기가 있지 않을까. 뮤지컬 영화인 탓에 (2016)가 함께 거론되곤 하는 데, 사실 방법론적으로는 같은 감독의 (201..

죽음에 관하여 _ 피노키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 0. 고르는 것과 남겨진 것으로 말하는 유한한 생명에 대하여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피노키오 :: Pinocchio』입니다.      # 1. 생동감 넘치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관한 영화다. 다정한 부자의 이야기는 아들 카를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시작한다. 제페토의 소나무는 카를로의 죽음 위에 피어난 존재고, 피노키오는 다시 그 소나무를 베어 쓰러트린 죽음에서 태어난 존재다. 이후로도 누구와 만나 무슨 일을 겪는가와 별개로 단계마다 피노키오는 죽었다 살아나길 반복한다. 죽지 않는 피노키오가 그럼에도 죽음을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제페토를 죽음으로부터 구하기 위해서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가 인간이 됨은 돋아난 새살이 아닌 오직 '죽음'으로서 증명된다. 귀뚜라..

Film/Animation 2024.10.12

시그니처 아웃렛의 속셈 _ 데드 돈 다이, 짐 자무쉬 감독

# 0. 아 씨발, XXX 죽이고 싶네.        짐 자무쉬 감독,『데드 돈 다이 ::The Dead Don't Die』입니다.     # 1. 자필 서명을 뜻하던 시그니처(Signature)는 '개인이나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변별하게 하는 모든 것'으로 점차 그 의미가 확장되는 듯하다. 고급 의류 브랜드의 대표 라인업이나 디자인에 엄격한 몇몇의 공산품은 물론, 파인 다이닝의 시그니처 메뉴, 스포츠 스타의 시그니처 무브, 셀러비리티의 시그니처 픽 등은 좋은 예다. 유사한 의미에서 영화에도 수많은 시그니처가 존재한다. 멀리는 채플린의 콧수염과 버스터 키튼의 무표정부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웨스턴, 히치콕의 돌리 줌, 브루스 윌리스의 존 맥클레인, 웨스 앤더슨의 스타일과 에드가 라이트의 편집에 이르기까지 ..

Film/Comedy 2024.10.10

상쾌한 주객전도 _ 메이헴, 조 린치 감독

# 0. 솔직해서 오히려 상쾌한 메시지와 스타일의 주객전도        조 린치 감독,『메이헴 :: Mayhem』입니다.     # 1. 분노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인해 8시간 동안 격리된 회사에서 벌어진 광기의 살육극이다. 모함으로 해고된 변호사 데릭 조(스티븐 연 분)와 부당한 계약의 피해자 멜리나 크로스(사마라 위빙 분)가 협력해 최상층의 메인 빌런 존 타워스(스티븐 브랜드 분)를 무찌른다는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서사다. 영화의 동력은 크게 둘을 꼽을 수 있다. 천민자본주의적이고 성과지상주의적인 기업 문화에 대한 과격한 비판으로서의 액션과, 소모품과 다를 바 없는 직장인에 대한 자조적 연민으로서의 코미디다. 승진을 위해 서로를 밟고 음해하는 불공정한 약육강식에 노출된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과장된 폭..

Film/Action 2024.09.28

뚜찌빠찌뽀찌 _ 미니언즈, 카일 볼다 / 피에르 코팽 감독

# 0. 몰리카노~ 마케라로젠보~보케라도빠찌~~~~~~ 오페라도비~~마~~ 키~~~~~~        카일 볼다 / 피에르 코팽 감독,『미니언즈 :: Minions』입니다.     # 1. 자원과 기술이 흘러넘치는 시대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굳이, 억지로 일부러 아득바득 흑백 영화를 만든다면 만든 놈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미친놈일 가능성이 높다. 시간을 쓰는 사랑과 기다림의 의의, 죄책감과 남성성의 프로이트적 분석을 그린 영화를 두 편 연속 보고 나면,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쉬어갈 필요가 생긴다.  자크 드미와 로버트 에거스의 연타로 인한 심신 미약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선 적절한 처방이 필요했고, 그럴 때면 다 때려죽이는 액션 혹은 귀염뽀짝 애니메이션이 딱이다. 오늘의 알약은 D..

Film/Animation 2024.09.22

캡사이신 우유 _ 렌필드, 크리스 맥케이 감독

# 0. 유리멘탈 현대인을 위한 다정하고 매콤한 캡사이신 우유        크리스 맥케이 감독,『렌필드 :: Renfield』입니다.     # 1. 브램 스토커(Bram Stoker)의 소설 (1897)의 등장인물 렌필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호러, 코미디, 액션, 판타지 영화다. 한창 유행인 리메이크나 리부트가 아닌 보조적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는 것, 특히 외전 격의 이야기 대신 기존 서사를 전복시켜 독자적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에 도전했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영화는 야심에 걸맞게 고전의 고풍스럽고 음습한 분위기를 대신하는 컬트적이고 경쾌한 현대적인 모습이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말이다. 감독은 드라큘라 신화를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와 종속 관계에 대한 알레고리로 재해석한다. 드라큘라와 렌..

Film/Action 2024.09.08

두려운 자의 품격 _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맷 브라운 감독

# 0. 고통이 두려워 신을 부정하는 자와 고통이 두려워 신을 갈망하는 자 사이에서의 품격        맷 브라운 감독,『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 Freud's Last Session』입니다.     # 1. 은 미국의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Mark St. Germain)이 아몬드 M. 니콜리 주니어(Armand M. Nicholi Jr.)의 저서 에서 영감을 얻어 쓴 희곡이다.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계기로 영국이 전면전을 선포하며 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겸 기독교 호교론자 C. S. 루이스(C. S. Lewis)가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파크컴퍼니가 ..

Film/Drama 2024.09.04

괜찮을 거라는 격려, 마음을 담은 헌사 _ 소스 코드, 덩컨 존스 감독

# 0. Everything is gonna be okay.Thank you for your service.        덩컨 존스 감독,『소스 코드 :: Source Code』입니다.     # 1. 10년도 더 지난 영화의 플롯을 이제와 설명하는 건 지루하다. 러틀리지 박사의 설정놀음을 걷어내고 나면, 결국 통 속의 뇌에다 죽은 사람의 기억을 접붙이기한 후 파생되는 문제들은 평행우주로 돌파했을 뿐이다. 물론 창의적이고 도발적인 발상, 스피디한 편집과 미술적 성취, 제이크 질렌할의 불안과 소명, 미셸 모나한의 사랑스러움, 백투백 홈런을 날리는 듯한 반전 카타르시스는 인정받아 마땅한 것임에 분명하지만 말이다. 다만 의외인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키스신에서 영화를 끝냈으면 좋았을 것이라 이야기..

Film/SF & Fantasy 2024.08.30

당나귀와 코끼리 _ 킬링 소프틀리,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

# 0. 비겁하고 야비한 당나귀이기적하고 잔인한 코끼리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킬링 소프틀리 :: Killing Them Softly』입니다.     # 1. 버락 오바마의 연설로 시작되는 영화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숨길 생각이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겁 없이 도박장을 턴 두 도둑과 그들을 쫓는 살인청부업자의 네오 누아르지만, 이면엔 부시 말기부터 오바마 초기까지의 혼란스러운 미국 사회를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로 가득하다. 수다스러운 걸쭉한 농담과 드라마틱한 액션 연출의 매력이 분명한 작품이다. 다만 주연이자 제작자이기도 한 브래드 피트가 진단하는 미국에 대한 날 선 시선은 때론 너무 노골적이고 감정적이라 영화를 시시하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 마지막 대사는 문장의 완성도와 별개로 굳이 ..

Film/Action 2024.08.28

뮤-비 _ 스터질 심프슨의 사운드 & 퓨어리, 마이클 아리아스 감독 외

# 0. 가끔은 이런 류도 나쁘지 않지.        마이클 아리아스 감독 외,『스터질 심프슨의 사운드 & 퓨어리』입니다.     # 1. 스터질 심프슨(Sturgill Simpson)은 미국 켄터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할 수도 있지만 21세기 미국 컨트리 음악을 선도하는 뮤지션으로 평가되는 나름 월클이(라고 한)다.  2013년 데뷔 앨범 을 통해 세상에 등장한 후 두 번째 앨범 을 통해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입지를 넓혔다. 연이어 2016년에 발표된 세 번째 앨범 는 그레이 어워드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오른다. 과거 해군 시절 경험과 아버지와의 삶을 녹여낸 것으로 알려진 앨범은, 직전의 두 번째 앨범과 더불어 뮤지션의 최고작으로 평가된다. 아마도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

Film/Animation 2024.08.16

신의 주사위 놀이 _ 똑똑똑,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 0. 뭐시 중헌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똑똑똑 :: Knock at the Cabin』입니다.     # 1. 언제 봐도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바티스타와 그의 팔뚝만 한 귀여운 소녀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영화, 이다. 영화는 원천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떡밥과, 사실상 떡밥의 의인화나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쉴 새 없이 던진다. 그렇다면 그렇구나 하는 수밖에 없는 일방적인 세계관과, 늘 관객보다 두어 발짝 앞질러가는 불친절한 전개는 언제나와 같은 샤말란이다. 인류의 운명을 거론하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침입자 무리, 단란한 가족 중 한 명이 희생해야 70억 인류를 살릴 수 있다는 우악스러운 설정, 피해자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 스스로 자해하는 아이러니, 작지만 구체적..

커넥트 _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밴드, T.G. 해링턴 / 대니 클린치 감독

# 0. 결국 음악의 본질은 연결인 것일까        T.G. 해링턴 / 대니 클린치 감독,『프리저베이션 홀 재즈밴드 :: A Tuba to Cuba』입니다.     # 1. 가끔은 치졸한 질투심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외세의 침탈로 인한 역사적 단절, 절멸 수준의 전국 전쟁을 겪으며 스스로 발현된 것보다 수입된 것을 현지화하며 성장한 한국은, 삶의 부분집합으로서의 음악을 향유할 뿐이다. 반면, 굴곡진 근현대사를 성숙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스스로 발현될 만큼 충분히 고립된 뉴올리언스의 음악은 삶의 일부분이 아닌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합집합이다. 우리는 발라드를, 힙합을, 클래식을, 트로트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 재즈는 선택이 아닌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존재와 닿아있는 음악이라니. 그 ..

Documentary/Art 2024.08.06

이카루스의 거울 _ 리플리스 게임, 릴리아나 카바니 감독

# 0.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릴리아나 카바니 감독,『리플리스 게임 :: Ripley's Game』입니다.     # 1.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심리 스릴러다. 맷 데이먼의 (1999)가 알랭 들롱의 (1960)의 그늘에 가려진 수작이라면, 이 작품은 그 그늘에조차 들어가지 못한 비운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으나, 제법 흥미로운 중년의 톰 리플리를 만날 수 있다는 면에서 일정한 의의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연은 존 말코비치가 맡았다. 사근사근한 목소리의 톰 리플리는 50대 중반의 세련된 사기꾼이자 냉혈한 살인마다. 오프닝의 사건을 통해 한몫을 챙긴 톰은 이탈리아 시골에서 은퇴 생활을 즐기는 듯 보이지만 내면엔 갈등과 복잡성이 가득하다. 하이스미스의 원작들이..

겁쟁이 _ 스카이워커스, 제프 짐발리스트 감독

# 0. 자신 있게 못하는 늘 숨어만 있는나는 겁쟁이랍니다.        제프 짐발리스트 감독,『스카이워커스 사랑 이야기 :: Skywalkers: A Love Story』입니다.     # 1. 수학은 인간이 구축한 것 중 가장 일관되고 엄정한 논리체계다. 과학, 공학, 경제학 등 정교한 논리구조를 요구하는 학문들이 수학을 일종의 언어로서 필수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다. 흥미로운 것은 엄격한 체계일수록 단 하나의 오류만으로도 손쉽게 붕괴된다는 점이다. 어째 숫자보다 알파벳과 로마자가 더 많이 보이는 방대한 현대 수학조차, 고작 [1+1=3]이라는 잘못된 명제 하나의 침입에 허망하게 무너진다.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가 부조리로 가득한 것은 그릇된 명체 하나를 끌어안는 과정에서 생긴 논리적 오류다. 지붕에 오른..

Documentary/Social 2024.07.26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 _ 마션, 리들리 스콧 감독

# 0. I'm pretty much fucked.That's my considered opinion.Fucked.        리들리 스콧 감독,『마션 :: The Martian』입니다.     # 1.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 희대의 명문으로 시작하는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마션은 주인공의 숙고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시작된다. 우주 탐사 중 예기치 못한 폭풍으로 홀로 화성에 남겨진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우주 모험을 넘어 인간의 생존 의지와 연대의 가치를 탐구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장르를 선언적으로 보여준다. 일상적인 탐사대의 활동이 갑작스러운 모래폭풍으로 인해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장면은, 관객을 긴장감 ..

Film/SF & Fantasy 2024.07.24

마지막 질문 _ 미스터 홈즈, 빌 콘돈 감독

# 0. 위대한 배우가 위대한 탐정을 빌려 던진 마지막 질문        빌 콘돈 감독,『미스터 홈즈 :: Mr. Holmes』입니다.     # 1. 93세의 셜록 홈즈와 함께 기억과 현실의 경계를 탐험한다. 위대한 탐정의 이름에 묘수풀이식 미스터리 추리극을 기대하기 쉬우나, 인간 정신의 복잡성과 노화의 의미를 다룬 영화라는 면에서 의외성이 있다. 영화는 과거 사건의 전말을 중심으로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추리 장르의 관습을 탈피, 새로운 서사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논리와 감성, 과거와 현재, 기억과 망각, 사실과 창작의 대비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지적이면서 동시에 감성적인 탐구다. 다만, 그 의외성에 관객이 동의해 줄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이후 이야기하게 될 주제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홈즈의 ..

패러다임의 탄생 _ 본 슈프리머시, 폴 그린그래스 감독

# 0. 액션은 지금부터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본 슈프리머시 :: The Bourne Supremacy』입니다.     # 1. 기본적으론 정체성 갈등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은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특수요원으로, 냉혹한 과거의 행적과 따뜻한 현재의 윤리 사이의 괴리에 느끼는 고통과 불안을 물리적으로 치환한 작품이라 요약해도 큰 무리는 없다. 열감으로 비유하자면, 는 차가운 내면과 뜨거운 액션의 결합, 은 뜨거운 내면과 뜨거운 액션의 결합, 은 차가운 내면과 차가운 액션의 결합이라 한다면, 시리즈는 뜨거운 내면과 차가운 액션의 결합이라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액션 어드벤처로서 거대한 지배력을 가진 , 코미디 활극으로서의 를 더하면, 이후 어떤 영화가 나오더라도 이 여섯 시리즈가..

Film/Action 2024.07.18

잘 자요 _ 드림 시나리오,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

# 0. 잘 자요.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드림 시나리오 :: Dream Scenario』입니다.     # 1. 정갈한 머리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매일밤 꿈속에 나타나 당신을 지긋이 바라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 니콜라스 케이지의 꿈을 수많은 세상 사람들이 똑같이 꾼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심지어 갑자기 꿈속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도발적 상상의 판타지 영화 는 (2002)로 데뷔한 크리스토퍼 보글리의 차기작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 역시 창의적인 설정과 도발적인 표현, 유쾌한 코미디 이면엔 알싸한 풍자가 가득하다. 주연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맡았다. (2021)에서 보여줬던 과격하고 야생적인 모습과 대조되는 소심하고 찌질한 연기를..

Film/Comedy 2024.07.10

현대영화 _ 킬 룸, 니콜 페이온 감독

# 0. 어. 느새. 부터. 미. 술~~ 은 안 멋져.        니콜 페이온 감독,『킬 룸 :: The Kill Room』입니다.     # 1. 현대미술이 영화에 머리채를 잡히는 건 연례행사다. 끝없이 관념적으로 뻗어나가는 현대미술 일체를 스노비즘(snobbism)으로 치부하거나, 부자들의 친목 모임 뒤에 숨겨진 재산 은닉과 탈세에 복무하는 시종이라 조롱하는 식이다. 때문에 제 아무리 이런저런 킬링포인트를 추가한다 하더라도 큰 틀에서의 작동은 죄다 거기서 거기다. 예술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이 대충 만든 작품을 미끼로 던져 놓은 후, 그 황당한 작품에 허망한 형용을 난사하는 업계를 조소하는 구조로 흘러간다. 코미디언 장동민이 잭슨 폴록의 드리핑을 흉내 낸 그림에 미학자 진중권이 진땀 흘렸던 모 예능을..

Film/Comedy 2024.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