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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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 285

한탕 주의 _ 유마 카운티의 끝에서, 프란시스 갈루피 감독

# 0. 죽은 사람들의 한탕주의(主義)와 살아남은 사람의 한탕 주의(注意) 프란시스 갈루피 감독,『유마 카운티의 끝에서 :: The Last Stop in Yuma County』입니다. # 1. 영화는 시작부터 서부극의 문법에 충실하다. 벌판 한가운데 외딴 건물은 서부극 특유의 황량함을 세팅한다. 주요 무대인 레스토랑은 살롱을 계승한 공간이다. 둔탁한 미닫이문이 열리고 문 위에 달린 종이 울릴 때면 마치 총잡이가 살롱 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듯한 인상을 주는 데, 그럴 때마다 미리 자리한 손님들이 외부인을 경계하는 구도는 서부극의 전형적인 긴장감을 정석적으로 조성한다. 바 형태의 카운터를 중심으로 몇몇의 인물들이 대치하거나 흩어지는 활용 또한 서부극의 공간 연출을 답습하는 것이다. 테이..

간절히 평범하려는 자의 쓸쓸함 _ 시스터스 브라더스, 자크 오디아르 감독

# 0. 청산되지 않는 폭력과 부정되지 않는 희망 사이에서 자크 오디아르 감독,『시스터스 브라더스 :: The Sisters Brothers』입니다. # 1. 오랜 시간 서부극은 자신의 신화를 반복해 왔다. 광활하고 황량한 대지와 피도 눈물도 없는 무법의 시대, 이를 개척하거나 지배하려는 마초 영웅의 신화다. 시스터스 브라더스 역시 표면적으로는 익숙한 서부극의 신화를 계승하는 듯 보인다. 1850년대 오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청부 살인업자 형제의 폭력과 파멸을 정직하게 따라간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는 덴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균열의 징후는 제목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Sisters'라는 형제의 성(姓)은 영화의 방향을 조용히 비튼 과정에서 생긴 흉터다. ..

Film/Drama 2025.04.30

메카뽕에 꼬라박으면 _ 퍼시픽 림,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 0. 덕중에 덕은 양덕일지니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퍼시픽 림 :: Pacific Rim』입니다. # 1. 장편 영화 하나를 냅다 메카뽕에 꼬라박으면 어떤 결과물이 만들어질까. 퍼시픽 림이다. 진부한 스토리를 대충 방기한 채 거대 로봇 액션에 몰빵한 영화라는 것엔 호평하는 사람도 혹평하는 사람도 이견이 없겠으나, 다소 둔탁해 보이는 경험에 비해 작품의 시청각적 스펙터클의 스펙트럼은 생각보다 다채롭다. 글에선 그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연출한 메카 영화의 정체성은 어쨌든 예거다. 각각의 예거는 다양성을 위한 다양성의 무작위적 수집이 아닌 대표하는 국가의 문화적 인상, 군사적 역사, 장르적 전통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기체마다 서사 안에서 맡은 바 책임을..

Film/SF & Fantasy 2025.04.28

노스페라투의 신부 _ 노스페라투, 로버트 에거스 감독

# 0. 외로운 우리는 죽음을 결심하지 못하기에 두렵고, 그래서 슬프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노스페라투 :: Nosferatu』입니다. # 1. 혹시 그런 적 있을까. 어둡고 고요한 밤 익숙한 잠자리에 누워 잠에 들려던 찰나. 스스로 내는 한 모금 한 모금의 숨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죽어가고 있음을 선명히 자각하는 경험 말이다. 사랑하는 부모와 친구와 가족 모두 필연적이고 불가역적인 이별에서 벗어날 수 없고, 마침내 나 역시 죽음을 눈앞에 둔 10초 전, 9초 전, 8초 전에 반드시 도달해 그 순간을 선명히 느끼게 될 것이라는 공포. 그럴 때면 두려움에 번쩍 몸을 일으켜 방을 배회하며 스스로에게 간절히 요구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벗어날 수..

Film/Horror 2025.04.26

안부 전화를 해요 _ 줄스, 마크 터틀타웁 감독

# 0. 어떤 영화는 소박해서 훌륭하다. 마크 터틀타웁 감독,『줄스 :: Jules』입니다. # 1. 전형적인 미국의 마을에는 전형적인 미국인 할아버지가 살고 있고 그가 사는 전형적인 미국식 저택 뒤뜰로 전형적인 회색빛 우주선이 추락한다. 다들 뒤뜰에 먹다 남은 외계인 하나쯤은 있을 테니 그리 이상할 것 없는 평범한 이야기다. 요염한 자세로 쓰러진 진지한 표정의 외계인과 그가 타고 온 우주선의 꼬락서니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얼마나 소박한 것인가를 가늠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니 SF가 아니다. 외계인이 초능력으로 강도의 머리통을 폭파시킨다거나, 수상한 노인 둘이서 죽은 고양이 시체 7구를 트렁크에 모은다거나, 검은 옷 빼입은 요원들이 문을 부수고 들이닥치는 등 몇몇의 사소한 장면들만..

Film/Comedy 2025.04.20

브레히트와 세 번의 기적 _ 더 원더, 세바스찬 렐리오 감독

# 0.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세바스찬 렐리오 감독,『더 원더 :: The Wonder』입니다. # 1. 기나긴 역사 속에서 운명은 수차례 인간을 짓밟았고, 19세기 초 아일랜드에 들이닥친 대기근은 유독 가혹한 것으로 기록된다. 터무니없는 결핍에 내동댕이쳐진 인간은 합리적인 대응 따위로는 벗어날 수 없고, 한계에 다다른 인간은 필연적으로 이 모든 위기를 단숨에 해결해 줄 기적에 종착한다. 따라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수많은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기적은 보통 아름다운 것으로, 환상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그것은 그르지 않다.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로 인해 진보된 숱한 역사가 증명함이다. 다만 기적의 대상이 가뭄을..

나에게로의 초대 _ 아메리칸 울트라, 니마 누리자데 감독

# 0. 망가진 내게도 내일이 있을까        니마 누리자데 감독,『아메리칸 울트라 :: American Ultra』입니다.     # 1. 스파이니 울트라니 하는 것들은 본질적이지 않다. Merry me? 로 시작해 Propose 하며 끝나는 영화는, 결혼을 앞둔 커플의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관계 중심적인 보편의 영화들과 달리 남자에게 균형이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 보다 '내가' 결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영화랄까. 따라서 컬트적인 액션 코미디 아래로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를 흘려보내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다시 그 아래 숨겨진 성장 영화라 이해해도 무리는 없다.  도입에서 수사관은 사진을 몇 장 보여준다. 숟가락, 컵라면, ..

Film/Action 2025.03.30

설산에 홀로 헐벗은 듯 _ 레버넌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 0. 실존하는 인간의 생이란 매 순간 가감 없이 선명한 것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 The Revenant』입니다.     # 1. 〖 1823년 8월, 그랜스 강 유역에서 곰에게 습격당해 살해당한 줄 알았던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 휴 글래스가 6주 동안 320km를 이동해 극적으로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입니다. 〗 당시에도 신문 같은 것이 있었다면 대충 이런 식이지 않았을까.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적잖은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느꼈겠으나, 그럼에도 실제 경험한 이에 비하면 심드렁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은 비단 19세기 사람들만의 무신경함이 아니다. 지금도 누군가의 비장한 사건이 두어 문장에 실리는 동안 사람들은 찰나와 같은 감상 끝에 흘려보낸다..

Film/Action 2025.03.20

저스트 베이시스트 _ 온리 걸 인 더 오케스트라, 몰리 오브라이언 감독

# 0. Don’t ask me... I’m just the bass player.        몰리 오브라이언 감독,『온리 걸 인 더 오케스트라 :: The Only Girl in the Orchestra』입니다.     # 1.  내가 오린을 사랑하는 건 오케스트라에서 빛을 내뿜기 때문이다. 오린은 음악에 전적으로 몰입하며 그쪽을 바라볼 때마다 오린도 항상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경이로운 집중력이다. 비결이 뭘까? 우리가 연주하는 모든 곡의 베이스 파트 음을 전부 외웠나? 그건 기적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이다. -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 전설적인 음악가에게 기적이란 찬사를 받은 사람은 오린 오브라이언. 1966년 뉴욕 필하모닉 정규 단원으로 고용된..

게으르고 지루하다 _ 서브스턴스, 코랄리 파르자 감독

# 0. 중독된 것은 미모도 인기도 파괴도 아닌 지적인 게으름        코랄리 파르자 감독,『서브스턴스 :: The Substance』입니다.     # 1. 푸른색 배경에 계란 하나. 노른자에 주사를 꽂자 분열하더니 둘로 나뉜다. 나란히 놓인 노른자 두 개와 흰자의 실루엣은 무언가의 얼굴처럼 보이는데, 그것의 정체는 알 수 없으나 은연중 불쾌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작 서브스턴스의 오프닝이다. 영화는 도입에서 경고하듯 강렬한 이미지를 난사하는 방식으로 일관한다. 비슷한 주제의식을 미리 다뤘던 단편 와는 썩 대조적인 시도다. 쏟아지는 이미지 속에서 함의를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비단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모든 프레임들, 이를테면 광고판이나, 액자, 창문, 통로, 주요하게는 거울까지 모두 각..

Film/Horror 2025.03.08

그것도 두 번씩이나 _ 더 캐니언, 스콧 데릭슨 감독

# 0. 굳이 노력해서 더 재미없는 곳을 향해 추락한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스콧 데릭슨 감독,『더 캐니언 :: The Gorge』입니다.     # 1. 영화는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협곡 위, 협곡 아래, 다시 협곡 위다. 첫 번째 파트의 주인공은 인물이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협곡의 실체와 관련된 설정이고, 세 번째 파트에서는 폭탄이다. 내러티브를 인간에서 설정으로, 다시 폭탄으로 추락시키면서 관객의 몰입이 다운그레이드되지 않길 바랐다면 솔직히 미련한 것이고, 애석하게도 감독은 최선을 다해 미련한 길을 내달린다. 전반부는 두 주인공을 관객에게 소개한 후 공간에 안착시키는 과정으로 점철된다. 리바이는 아무런 관계도 추억도 없어 인생의 기반이 없는 사람이다. 반복되는 ptsd는 군사 작..

Film/Action 2025.03.06

보호자용 _ 사탄의 베이비시터 킬러 퀸, 맥지 감독

# 0. 사춘기사용설명서 [보호자용]        맥지 감독,『사탄의 베이비시터 킬러 퀸 :: The Babysitter Killer Queen』입니다.     # 1. 겁 많은 어린이가 사춘기를 내딛는다는 내용의 따뜻한 성장 영화다. 대체 무슨 의도로 사탄이란 무시무시한 말을 가져다 붙인 건지 모를 고약한 배급사의 모함에 속기 쉽지만 원제는 담백한 베이비시터로, 우리 시대의 로멘티스트, 아리 에스터의 이나 처럼 온 가족 오손도손 함께 보기 좋은 가족 드라마되시겠다. 속편의 부제가 킬러 퀸이라는 게 조금 찝찝하지만 이 역시 오해다. 뮤직비디오 연출자 출신의 감독이 퀸의 팬이었을 뿐이다. 실제 절정부에 다다르면 프레디 머큐리가 부르는 킬러 퀸이 웅장하게 흘러나와 아들과 아버지의 가슴 뭉클한 화해를 서정적으..

Film/Horror 2025.02.14

아동용 _ 사탄의 베이비시터, 맥지 감독

# 0. 사춘기사용설명서 [아동용]        맥지 감독,『사탄의 베이비시터 :: The Babysitter』입니다.     # 1. 호러 코미디의 탈을 쓴 성장 드라마다. 원제목은 로 영미권의 관객들은 엉큼한 10대 소년과 관능적인 베이비시터의 몽정기 정도를 기대했을 테니, 하이틴 로맨스의 탈을 쓴 호러 코미디의 탈을 쓴 성장드라마라는 이중트릭이라 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유약한 12살짜리 주인공이 어찌어찌 악당을 물리친 후 더 이상 베이비시터가 필요하지 않다 말하며 끝나는 영화에서 성장이란 코드를 끌어내는 건 어렵지 않다. 폭력은 감독의 이력처럼 충분히 경쾌하고 스타일리시함에도, 겁 많은 소년이 마주하게 될 다양한 성장의 분기를 도식화한 것에 불과하다. 또래들과 달리 마지막까지 베이비시터..

Film/Horror 2025.02.10

망각된 순간의 시간들 _ 군다,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감독

# 0. 순간의 가축을 누리기 위해 망각하고 있었던 시간 속 동물들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감독,『군다 :: Gunda』입니다.     # 1. 노르웨이의 한 농장에서 태어난 암퇘지와 새끼돼지, 한쪽 다리가 없는 닭, 건장한 소 몇 마리는 작품에 등장하는 전부로, 90분의 런타임을 동물들에 대한 애정에 정직하게 할애한다. 폭압적으로 단순화되어 버린 존재들의 외면하고 있던 복잡성에 대한 성실하고 끈질긴 조우가 평화롭게 그려진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개성적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에서, 가축은 소비되기 위한 상품으로 재해석되기 이전의 자율적 존재로 회귀한다. 전향적인 생태주의 실천가로 알려진 호아킨 피닉스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것처럼 목적은 명확하다. 복종적이고 도구적인 가치로만 치부되던..

Documentary/Social 2025.02.02

노스탤지어의 풍경화 _ 문라이즈 킹덤, 웨스 앤더슨 감독

# 0. 사진이 아닌 그림이고 설명이 아닌 문학이며 대화가 아닌 음악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문라이즈 킹덤 :: Moonrise Kingdom』입니다.     # 1. 사소하다. 뉴 펜잔스 섬의 곳곳도, 카키 스카우트의 야영장도, 낡은 경찰서와 항구도, 사랑의 도피를 떠난 샘과 수지도, 그들의 탐험과 낙원도 모두 작고 사소하다. 웨스 앤더슨은 그 심각성이 사소해 보일 수 있도록 다운스케일링된 이야기를 최대한의 사랑스러움으로 가다듬어 인형의 왕국을 축조한다. 사소함을 역설하는 달뜨는 왕국에서 감독은 무엇을 찾고 싶었던 걸까. 무엇을 담고 싶었던 걸까. 세계는 안전함과 별개로 구속적이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 그러하다. 울타리에 둘러싸인 야영지가 그러하다. 스카우트의 규율과 규율을 증명하는 무..

Film/Comedy 2025.01.30

정신적 보톡스 _ 백 인 액션, 세스 고든 감독

# 0. 현기증을 유발하는 보톡스 냄새        세스 고든 감독,『백 인 액션 :: Back in Action』입니다.     # 1. 당신은 마피아다. CIA 소속 비밀요원이 조직의 행사에 잠입해 중요한 키를 탈취했다. 열심히 스파이들을 뒤쫓았지만 유능한 요원들을 붙잡는 덴 역부족이다. 다행히도 보스는 스파이들이 타게 될 비행기를 포섭하는 데 성공했고, 당신에게 비행기에 올라 가방 안에 들어있을 키를 회수하라 지시한다. 명령을 받은 당신은 비행기에 탔다. 기다리던 요원들을 능숙하게 제압해 화장실에 집어넣는 데까지 성공했다. 때마침 스파이가 도착했다. 감쪽같은 변장 덕에 당신을 CIA 요원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스파이는, 한껏 방심한 상태로 대화를 나눈다. 자, 여기서 질문.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

Film/Comedy 2025.01.22

사랑을 믿어요 _ 더 리젬블런스, 데릭 응우옌 감독

# 0. goodbye son.        데릭 응우옌 감독,『더 리젬블런스 :: The resemblance 』입니다.     # 1. 부부에겐 아들이 있다. 아니,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와의 마찰로 집을 나간 아들은 2년 전 쓸쓸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부모에게 하나뿐인 아들의 상실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혼자만 다른 시간을 사는 화분처럼, 매일 꺼지지 않는 향처럼, 여전히 액자 속에서 웃고 있는 얼굴처럼 말이다. 과거에 정체된 부부는 서비스를 하나 신청한다. 패밀리 렌털 서비스는 가족과 최대한 닮은 배우를 단기 고용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고객들은 치유의 목적으로 신청한다 소개된다. 일종의 연극치료 같은 것이다.  물론 확신은 없다. 제 손으로 장례를 치른 죽은 아들과 닮은 배우를 만..

Film/Drama 2025.01.14

흠... 그정둔가 _ 이퀼리브리엄, 커트 위머 감독

# 0. 배꼽이 큰 건지, 배가 작은 건지.        커트 위머 감독,『이퀼리브리엄 :: Equilibrium』입니다.     # 1. 망한 영화라 해야 할지 성공한 영화라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배(영화적 완성도)보다 배꼽(건 카타 액션)이 크다는 것에는 호평하는 사람과 혹평하는 사람 사이에 합의가 있는 듯 하나, 그것이 배가 지나치게 작아서인지 배꼽이 크고 뛰어나서인지는 갑론을박이 있다. 호평하는 사람들은 당시 범람하던 매트릭스의 마이너 카피와 반대되는 방향의 액션 표현을 선보인 것에 점수를 주는 모양새고, 혹평하는 사람들은 어쨌든 박약한 이야기의 완성도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작품의 주제의식은 당시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제법 낡고, 구현 역시 태만하다. 단단히 망한 근미래를 이야기..

Film/Action 2025.01.04

하책의 최대치 _ 콘스탄틴,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

# 0. 빌어먹을 악마에게 법규 날리는 한 해 보내시길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콘스탄틴 :: Constantine』입니다.     # 1. 상책은 근사한 세계 위로 멋들어진 이야기를 펼쳐내는 것이다. 중책은 좋은 이야기를 만들지 못했더라도 세계만큼은 매력적인 경우나, 혹은 그 역이다. 하책은 고유의 이야기도 세계도 구축하지 못한 채 설정 놀음에 빠지는 것인데, 콘스탄틴은 명백히 하책의 영화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이야기라 부를 만한 것은 없다. 전개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독할 정도로 설정 나열에 의존한다. 비장한 기독교적 주제와 기괴한 오컬트적 소재와 수려한 주인공의 미모를 끌어다 비벼보려 하지만, 본질은 그런 것들로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가라앉는 영화를 다..

Film/SF & Fantasy 2025.01.02

대도시의 고고학 _ 머더리스 브루클린, 에드워드 노튼 감독

# 0. 이야기가 이미지와 뉘앙스를 떠받치지 못한다.        에드워드 노튼 감독,『머더리스 브루클린 :: Motherless Brooklyn』입니다.     # 1. 지금의 뉴욕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 시작을 탐구하려는 영화의 시선은 거침없는 제목처럼 서늘하다. 에드워드 노튼의 1950년 맨해튼은 대립하는 양면성과 그로 인한 고독감으로 요약된다. 풍요와 빈곤이 대립하고, 개발과 파괴가 충돌하는 뉴욕. 사랑과 죽음이 공존하고, 신용과 배신이 교차하는 브루클린. 낮은 자본과 다투고 밤은 낭만에 물드는 도시와, 이를 배회하는 외로운 개인들의 시대라고 말이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내외면이 유리된 모두는 영화 내내 고독하다. 이들은 빠짐없이 뉴욕을 모자이크 하는 조각이라는 면에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뉴저지의 자신감 _ 패밀리 맨, 브렛 라트너 감독

# 0. 자신감 넘치던 그 시절 중산층을 위한 프로파간다        브렛 라트너 감독,『패밀리 맨 :: The Family Man』입니다.     # 1. 나무로 지어진 2층 집에는 적당한 크기의 정원이 딸려있다. 유머러스한 아빠는 익숙한 듯 잔디를 깎고, 아름다운 엄마는 주방에서 펜케이크를 굽는다. 어린 아들은 아빠 옆에서 자전거 타거나 물놀이 하자며 잔망을 떤다. 사춘기 딸은 하이틴 스타의 포스터로 뒤덮인 다락방 침대에서 미래를 꿈꾼다. 할머니는 거실 흔들의자에 누워 스웨터를 뜨고, 멋들어진 페도라를 쓴 할아버지는 낡은 벤치에 앉아 시가를 태운다. 틈틈이 집 앞을 지나가는 친구 가족과 반갑게 인사하는 걸 제외하면 주말마다 맥주를 곁들인 바비큐 파티가 소소한 이벤트의 전부인 나날들. 미국의 시스템이 ..

Film/Comedy 2024.12.24

니들은 이런 거 배우지 마라 _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스테파노 솔리마 감독

# 0. (담배 한 개비를 꼬나물며)        스테파노 솔리마 감독,『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 Sicario Day of the Soldado』입니다.     # 1. 속편을 만든다는 건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까다로운 일인 듯하다. 전작의 이야기, 설정, 복선, 주제의식, 연출 방향, 캐릭터 해석과의 연결성은 익숙하면서도 새롭다는 이율배반적인 이야기를 꾸려야 하는 사람들에게 골치 아픈 족쇄다. 시리즈 이름에 새겨진 관객이 기대하는 무언가가 먼저 결정되어 있다는 것도 운신의 폭을 크게 제약한다. 혹여 특정한 캐릭터와 관객 사이에 애착관계라도 형성되었다면 큰일이다.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고 배제하면 배제하는 대로 내세우면 내세우는 대로 피곤한 뒷말이 반드시 나온다. 처음부터 속편을 염두..

Film/Action 2024.12.22

사그라드는 제국의 선율 _ 클로징 다이너스티, 로이드 리 최 감독

# 0. 팔아선 안될 것들을 파는 동안 사그라드는 제국의 선율        로이드 리 최 감독,『클로징 다이너스티 :: Closing Dynasty』입니다.     # 1. 위력적인 단편의 결말은 두 가지 이미지의 중첩이다. 하나는 퀴니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이 문을 닫는다는 것, 다른 하나는 소녀가 하루종일 벌어들인 돈을 부모님의 금고에 넣었다는 것이다. 전자를 세계에 대한 감독의 진단이라 한다면, 후자는 그 진단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자 원리다. 즉발적인 감동은 제목의 언어유희와 관련된 폐업을 앞둔 다이너스티의 꺼진 간판에 있을지 모르나, 그럼에도 영화의 본질은 소녀가 돈을 버는 방식과 그 이유에 있다. 저연령 빈곤층 이민자라는, 연령과 계급과 신분을 복합적으로 은유하는 퀴니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교..

Film/Drama 2024.12.20

역부족 _ 오블리비언, 조셉 코신스키 감독

# 0. 뚜렷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조셉 코신스키 감독,『오블리비언 :: Oblivion』입니다.     # 1. 스토리는 지루하고 메시지는 진부하다. 황량한 지구를 방황하는 톰 크루즈의 영화는, '비단으로 누더기를 만든 듯하다'라던 어느 평론가의 우악스러운 비아냥을 설득력 있는 것으로 만든다. 장르의 바이블과 같은 (1968)나 (1977)까지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인간의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서사로서의 (1999)와 (1982)를 비롯해 (1996), (2005), (1990), (1968) 등 지나치게 유명한 고전 SF의 아이디어가 뭉텅이로 발견되는 경험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각각의 요소는 양적으로만 풍부할 뿐 재해석되지도 재구성되지도 못한 채 전형적인 플롯과 설정을 빌려오는 수준..

Film/SF & Fantasy 2024.12.02

한겨울에도 듣는 _ 한여름밤의 재즈, 아람 아바키안 / 버트 스턴 감독

# 0. 한여름에만 듣기엔 너무나 아까운 1958년의 노스탤지어        아람 아바키안 / 버트 스턴 감독,『한여름밤의 재즈 :: Jazz on a Summer's Day』입니다.     # 1. 1958년 로드아일랜드 뉴포트에서 열린 재즈 페스티벌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듬해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첫 상영된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작품은, 1999년 미국 의회도서관에 의해 국립영화등록소 보존 대상으로 선정된다. 한국에서는 배급사 찬란에 의해 수입되어 2022년 개봉한다. 덕분에 우리 관객들도 리마스터링 된 귀한 자료를 즐길 수 있었다. 정직한 공연 실황에는 한여름 선선한 밤공기 같은 재즈의 매력이 가득하다. 무대와 이미지에 최대한 집중한 작품은, 관객을 시간과 공간을 넘어 페스티벌의 참여자로..

Documentary/Art 2024.11.30

설익은 야심의 결과 _ 나이스 가이즈, 셰인 블랙 감독

# 0.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        셰인 블랙 감독,『나이스 가이즈 :: The Nice Guys』입니다.     # 1. 오역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나이스 가이즈다. 실소조차 나오지 않는 수준 낮은 번역을 나열하는 건 생략한다 하더라도, 영화 자체적으로도 하자가 적지는 않다. 몸값 비싼 두 주연배우의 슬랩스틱과 앵거리 라이스의 귀여움이 단점의 상당 부분을 만회하고 있고, 그 코미디의 리듬에 감화되어 버디물의 매력을 즐겼을 몇몇 관객들의 무난한 호평을 존중하는 것과 별개로 말이다. 포르노 배우의 도발적인 오프닝이 무안하게도, 미스터리 추리극은 힘없이 가족주의 드라마로 주저앉는다. 홀랜드(라이언 고슬링 분)의 직업이 탐정이 맞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미스터리의 짜임새는 빈약하다. (..

Film/Comedy 2024.11.26

악마의 저주 _ 레디 오어 낫, 맷 베티넬리-올핀 / 타일러 질레트 감독

# 0. 익숙한 통속극을 경쾌한 슬래셔 코미디로 전환하는 능숙한 솜씨        맷 베티넬리-올핀 / 타일러 질레트 감독,『레디 오어 낫 :: Ready or Not』입니다.     # 1. 르 도마스 일가는 엘리트 가문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스테레오 타입의 불안과 불만을 대변한다. 각각의 스트레스는 서로에 대한 미움으로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파국 속에서도 그레이스에 의해 살해된 사람이 없는 이유다. 그레이스의 엘리펀트건이 발사되지 않는 장면은 클리셰를 비트는 장르적 장치임과 동시에, 가족의 파멸과 그녀가 무관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비밀스러운 르 베일에 의한 것도 아니다. 토니는 전통과 계약이 중요한 듯 말하지만 필요하다면 cctv를 켜고, 규칙 밖의 피고용인을 동원하는 데, 모두 자신들을 ..

Film/Horror 2024.11.20

북쪽의 사람들 _ 노스맨, 로버트 에거스 감독

# 0. 선량한 복수의 세계로 빨아 당기는 일렁임, 이글거림, 으르렁거림.        로버트 에거스 감독,『노스맨 :: The Northman』입니다.     # 1. 우리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즐기는 동안 올림푸스와 동시에 그런 상상을 만개하던 아고라를 함께 떠올린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으며 인생의 유한함을 고찰하면서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을 했던 그 옛날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자취를 함께 즐긴다. 히브리 신화를 읽는 동안 기독교 교리 아래로 당대 서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상을 상상하고, 단군신화를 배우며 쑥과 마늘의 이야기 이면에 담긴 오래전 한반도에 자리했던 조상들과의 문화적 연결성을 확인한다. 이처럼 신화가 특별한 건 이야기만큼이나 특별한 화자의 세계가 동시에 느껴진다는 것..

Film/Drama 2024.11.18

무슨 짓 _ 더 로버, 데이비드 미쇼 감독

# 0. 세상이 대충 망한 뒤 지금 이 시대에서 건(gun)법으로 나를 막을 자는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미쇼 감독,『더 로버 :: The Rover』입니다.     # 1. 또포칼립스다. 이쯤 되면 망하지 않은 세상이 역으로 잘못된 건가 싶다. 낡은 차량 안에서 간신히 평온을 얻는 남자, 건조한 모래바람 몰아치는 황량한 들판, 정체 모를 중화풍 음악으로 소개되는 호주는,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망해도 단단히 망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수상할 정도로 총을 잘 쏘는 농부 에릭은 가이 피어스가 연기한다. 살아있는 채권 겸 생체 내비게이션 레이는 이제 막 트와일라잇을 벗어던지던 무렵의 로버트 패틴슨이 맡았다. 이기적인 스타일과 과장된 호흡의 느려터진 영화는 미친듯한 호불호를 유발하나, 마..

Film/Action 2024.11.14

시민의 의무 _ 더 커버넌트, 가이 리치 감독

# 0. 가이 리치가 이런 영화도 만들 줄 알았나        가이 리치 감독,『더 커버넌트 :: Guy Ritchie's The Covenant』입니다.     # 1. 자잘한 이야기를 리드미컬하게 썰어 들어가길 즐기던 가이 리치에게 이런 면도 있었던 걸까. 제이크 질렌할과 다르 살림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영화는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굵고 선명한 이야기를 힘껏 끌고 가는 맛이 인상적이다.  보통의 영화에서 큰 선택은 큰 동기에 의해 일어난다. 큰 희생을 통해 큰 우정을 표현한다거나 큰 결단을 통해 큰 신념을 관철하는 식이다. 반면 시작부터 삐걱거렸던 파견 군인과 현지 통역사의 브로맨스는 큰 행동을 움직이게 만드는 작은 동기에 대한 영화다. 감독이 포착하고자 하는 작은 동기란 제목에도 적시된 '계약'으로,..

Film/Action 2024.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