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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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개봉 36

스무고개 _ 더 나은 선택, 제니퍼 팡 감독

# 0. 더쳐스 캐리는 누구인가 제니퍼 팡 감독, 『더 나은 선택 (어드벤테이저스) :: Advantageous』입니다. # 1. 어린 딸과 친구들의 스무고개로 시작됩니다.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 사람. 몇 가지만 빼고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 크루아상과 크랩애플을 먹는 사람. 협력을 해서는 안됩니다. 한 명만이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커닝하면 승자는 없습니다. 질문하고 답하며 수수께끼의 인물 더쳐스 캐리에 대해 고민하던 소녀들의 걸음 맞은편엔 붉은 드레스의 엄마, 아니 엄마 같아 보이지 않는 여자 '그웬'이 반갑게 인사합니다. 영화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반갑게 손 흔드는 이 여자에 대한 스무고개인 것이죠. 작품 초반 경제적 문제에 봉착한 그웬은 전화 속 드래이크라는 존재와 대화를 나누는 데요. 그의 대답..

Film/SF & Fantasy 2023.01.08

뉘앙스 ⅱ _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뉘앙스 ⅰ _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 0. 대상(Her)이 주체(She)가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어른의 사랑 - 영화평론가 이동진, 그녀(Her) 한줄평 - 토드 헤인즈 감독, 『캐롤 :: Carol』입니다. # 1. 창살과 함께 영화는 시작됩니다. 감독은 자 morgosound.tistory.com # 6. 테레즈의 '안심이 되냐'는 물음에 캐롤은 놀라운 사람이라 답하며 회피합니다. 두려운 게 있다면, 도와줄 것이 있다면 청하라는 말에는 단호하게 두려운 것이 없다 말하죠. 여행 캐리어는 캐롤의 깊고 은밀한 내면을 의미합니다. 그 속에 숨겨둔 총을 보여준 다음 두려움에 대한 대화를 풀어내게끔 편집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캐롤은 내면에 두려움을 숨기고 있으며 그 두려움이 [총]이라는 아이템으로 연결되..

Film/Romance 2022.10.22

뉘앙스 ⅰ _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 0. 대상(Her)이 주체(She)가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어른의 사랑 - 영화평론가 이동진, 그녀(Her) 한줄평 - 토드 헤인즈 감독, 『캐롤 :: Carol』입니다. # 1. 창살과 함께 영화는 시작됩니다. 감독은 자신이 펼쳐놓으려는 이야기의 환경을 똑같은 모양의 틀이 군집된 창살로 정의합니다. 거칠고 건조한 철제 질감과 오밀조밀한 구성은 단절감이나 통제력 따위의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암시합니다. 정체성을 제약하는 압박감과 획일성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기본적으론 짙은 정서의 멜로 영화입니다만 못지않은 드라마적 깊이를 겸비한 작품인 것이죠. 다양한 형태의 [프레임]을 징검다리 삼아 풀어낸 작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대표적으로 창문을 꼽을 수 있을 테죠.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

Film/Romance 2022.10.20

혼자 강한 사람은 없단다 _ 룸, 레니 애브라함슨 감독

# 0. 스토리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론 화자의 시점과 작가의 관점, 이를 통할하는 서술의 방식이 때론 더 많은 것들을 말하기도 하죠. 이 영화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스토리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납치 범죄극에 불과하지만 해결을 앞당겨 사건 이후의 시간에 30분을 더 투자하겠다는 사소한 선택에 힘입어 전혀 다른 이미지와 메시지의 작품으로 승화됩니다. 레니 애브라함슨 감독, 『룸 :: Room』입니다. # 1. 보통의 납치 범죄극은 납치된 주인공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겪는가에 대한 묘사와, 이를 겪는 동안 주인공이 느낄 불안과 공포, 심리적 한계에 다다르는 순간 감행하게 되는 탈출의 스펙터클로 풀어내기 마련입니다.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하는 어드벤처가 될 수도 있고, 악당에게..

Film/Drama 2022.07.24

수박 겉 핥기 _ 이퀄스, 드레이크 도레무스 감독

# 0. 수박 겉을 핥습니다. 심지어 천~천히 핥습니다. 드레이크 도레무스 감독, 『이퀄스 :: Equals』입니다. # 1. 빌어먹을 세상이 또 멸망했습니다. 만세. 어찌어찌 멸망했다 하는 데 자세히 모르셔도 무방합니다. 어쨌든 망했다는 것만 알아도 충분하죠. 기성의 국제 사회는 깡그리 망하고 '선진국'과 '반도국'으로 이분화된 세상입니다. 선진국은 불필요한 소모를 유발하는 것으로 취급된 감정을 제거함으로써 근로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 인간들의 사회입니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평준화를 의미하는 '이퀄'이라 불리죠. 반도국은 현생 인류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입니다. 선진국의 이퀄들은 그들을 (지극히 이퀄의 관점에 따라) '결함인'이라 부릅니다. 감독은 감정의 제거라는 폭력적 방법론을..

Film/Romance 2022.07.08

트롤리 딜레마 _ 아이 인 더 스카이, 개빈 후드 감독

# 0. Q. 광차가 운행 중 이상이 생겨 제어 불능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대로는 선로에 서 있는 5명이 치여 죽고 맙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반이 전철기의 옆에 있고, 전철기를 돌리면 전차를 다른 선로로 보냄으로써 5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른 선로에 1명이 있어서 그 사람이 치여 죽고 맙니다. 어느 쪽도 대피할 시간은 없습니다. 이때 도덕적 관점에서 이반이 전철기를 돌리는 것이 허용됩니까? 요약하자면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죽여도 되는가라는 문제다.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는 1명을 희생해서라도 5명을 구해야 하지만, 의무론을 따르면 누군가를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되기에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 위키 백과 광차 문제 (鑛車問題, trolley problem) 중에서..

Film/Thriller 2022.05.16

소피의 반례 _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팀 블레이크 넬슨 감독

# 0. 제목에 교수 나오고 강의 나오면 대부분 철학과 교수의 인생 강의입니다. 다른 학과 교수님들은 반성하세요. 당신들이 강의를 안 해서 이렇게 관객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팀 블레이크 넬슨 감독,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 Anesthesia』입니다. # 1. 현실에선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슈퍼 엘리트지만 영화에서만큼은 흔해 빠진 콜림비아 대학 교수, 월터입니다. 나오는 족족 인자한 표정으로 쓸데없이 어려운 이야기를 쏟아내지만 다행스럽게도 짙은 눈썹이 개성적인 샘 워터스톤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개별적 사건들의 옴니버스로 시작해 이들이 점차 연결되는 과정으로 전개됩니다. 암에 걸린 까칠한 엄마를 둔 가족이 등장합니다. 대마와 섹스를 좋아하는 헛똑똑이 잼민이가 ..

Film/Drama 2022.04.30

말뚝 _ 매니페스토, 율리안 로제펠트 감독

# 0. 선언입니다. 말뚝을 때려 박는 듯한 작품이랄까요. 율리안 로제펠트 감독, 『매니페스토 :: Manifesto』입니다. # 1. 부랑자, 앵커, 리포터, 추도문을 읽는 여인, 교사, 어머니, 증권사 직원, 공사 인부, 인형사, CEO, 가수, 안무가, 실험실 직원. 극단적 환경에 노출된 극단적 견해를 가진 13명의 사람들과 그들의 입에 얹은 괴기한 대사가 케이트 블란쳇에 의해 연기됩니다. 여기서의 '극단'이란 통상적 의미에서의 폭력성 따위를 내포하지는 않습니다. 각각의 사조를 이룰 만큼 자기 확신이 강한 존재들만이 가질 수 있는 '선명성'을 의미하죠. 뭐, 당연합니다. 다다이즘이니 미니멀리즘이니 도그마 95니 하는 알게 모르게 한 번쯤은 들어봤을 네임드 선언을 대사 삼아 읊고 있으니까요. # 2...

Film/Drama 2022.04.24

어둠 속의 등불 _ 더 위치, 로버트 에거스 감독

# 0. 곽도원 대신 안야 테일러 조이가 나오는 곡성이 있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 『더 위치 :: THE VVITCH』입니다. # 1. 미국으로 이민 간 영국인 가족이 마을에 정착하지 못하고 추방됩니다. 없이 사는 와중에 금슬이 좋았던 부부는 애를 다섯이나 낳지만 줄초상 납니다. 막둥이는 까꿍 하다 행방불명 되구요, 쌍둥이 동생은 염소 밥 되고 엄마 찌찌는 까마귀 밥 되고 아빠는 흑염소한테 몸통 박치기 당하지만 큰 아들은 겁나 이쁜 누나랑 뽀뽀하고 죽어 여한이 없는지 하나님께 땡큐 합니다. 가족 잃고 실의에 빠진 미모의 큰 언니는 홀딱 벗고 댄스 동호회에 가입한 후 하하호호 웃으며 승천한다는 내용의 훈훈한 영화죠. # 2. 믿음에 대한 영화들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허황된 믿음으로 ..

Film/Horror 2022.04.20

레아 세두 화보집 _ 어느 하녀의 일기, 브느와 자코 감독

# 0. 집사랑 눈 맞은 하녀가 주인집 털고 런하는 이야기입니다. 농담하지 말라구요? 감동 실화입니다만? 브느와 자코 감독, 『어느 하녀의 일기 :: Journal d'une femme de chambre』입니다. # 1. 좋게 말하면 당당하고 나쁘게 말하면 꼬장꼬장한 '셀레스틴'이라는 이름의 하녀가 시골 마을에 취업해 적당히 착취적이고 적당히 고생스러운 직업 생활을 보내다 15년 간 충직한 집사 행세를 했던 '조세프'라는 남자와 눈 맞아 불꽃 섹스를 즐긴 후 고가의 은식기 세트 낭낭하게 털어 부둣가 술집 마담으로 전직하는 이야기입니다. 중간중간 셀레스틴의 과거 회상과 이웃들과의 담소, 처참한 살인 사건 따위가 자극적으로 묘사되긴 하지만 주요 서사만큼은 말씀드린 것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죠. 이야기..

Film/Drama 2022.04.16

양털 깎기 _ 램스, 그리무르 하코나르손 감독

# 0. "형, 도와줘." "괜찮아질 거다. 동생아." '그리무르 하코나르손' 감독, 『램스 :: Hrútar』입니다. # 1. 40년 동안 삐진 양치기 노년 형제가 파산 위기를 맞아 극적 화해하고, 눈 내리는 산에 양 풀러 갔다가 이글루 안에서 홀딱 벗고 끌어안는 영화입니다. # 2. 모두가 양을 치는 아이슬란드의 어느 시골 마을에 스크래피(Scrapie), 우리 말로는 진전병이라 불리는 치명적인 동물 전염병이 돌게 됩니다. 방제를 위해선 인근의 모든 양을 도축하고 시설과 도구까지 모조리 폐기해야 합니다. 축사를 다시 꾸리려면 최소 2년 여의 시간이 소요될 텐데요. 보상금으론 그동안의 생활을 담보할 수 없고, 방제가 끝난다 하더라도 전염병이 다시 돌지 말라는 보장 역시 어디에도 없습니다. 평생 양을 키..

Film/Drama 2022.01.26

같은 개, 다른 목줄 _ 엘 모비미엔토, 벤자민 나이쉬타트 감독

# 0. 1835년, 지도자를 잃은 아르헨티나는 혼돈 그 자체였다. 야심 찬 세뇨르는 고립된 남부 사막 팜파스로 자신의 거점을 옮겨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만드는 실험에 착수한다. 질서와 규율로 사람들을 통제하던 세뇨르는 공포의 독재자로 서서히 거듭난다. (제16회 전주 국제영화제) '벤자민 나이쉬타트' 감독, 『엘 모비미엔토 :: El Movimiento』입니다. # 1. 1835년 무정부 상태의 아르헨티나입니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다시피 기본적으로 정치적 소재의 작품이죠. El은 영어의 The와 같은 정관사구요, Movimiento는 예상하셨다시피 Movement의 스페인어니까 (정치-사회적) 운동 정도로 이해하시면 무난할 겁니다. 국가 권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파편적으로 흩어진 군부 잔당들에 의한 농민..

Film/Drama 2021.12.22

폭주하는 자기애 _ 필름시대사랑, 장률 감독

# 0. 확실히 해이해진 요즘입니다. 며칠 연이어 편하게 떠먹여 주는 영화들만 골라봤다 싶죠. 조수석에 앉아 감독이 직접 말하는 대화만 따라가면 되는 . 타란티노 옆에서 미녀의 발가락이나 빨면 되는 . 세상 친절한 옴니버스 음식 영화 까지. 이쯤되면 슬슬 스스로의 기강을 잡을 때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리스트에 묵혀뒀던 비장의 카드를 꺼내야겠군요. '장률' 감독, 『필름시대사랑 :: Love and...』입니다. # 1. 제목부터 피곤합니다. 각기 따로 노는 어휘뿐 아니라 특히 혼란스러운 건 조사助詞가 없기 때문이겠죠. 필름 시대의 사랑인 건지, 필름과 시대와 사랑인 건지 아니면 필름으로 담은 시대적 사랑인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까요. 영화가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독이 직접 내건 제목을 만나게..

Film/Drama 2021.11.14

추악한 리얼리즘 _ 택시, 자파르 파나히 감독

# 0. 더 이상 영화를 찍을 수 없게 되었다. 고민 끝에 택시를 몰아야겠다 생각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 『택시 :: Taxi』입니다. # 1. 첫 번째 손님입니다. 강경한 법 적용을 주장하는 남자와 죄와 벌의 등가성에 대해 주장하는 여자입니다. 대화 내내 남자는 앞 좌석에 여자는 뒷 좌석에 앉아 있습니다. 남자는 화면의 정중앙에 여자는 귀퉁이에 위치합니다. 남자는 편안한 일상복을 여자는 차도르를 두르고 있습니다. 남자는 대화 내내 앞이나 옆자리 남자 운전사만을 쳐다봅니다. 여자은 돌아보지 않는 남자의 뒷모습을 응시합니다. 두 사람은 짐짓 같은 주제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 듯 하지만 다른 위계에 존재합니다. 여자는 교사입니다. 여자의 직업을 들은 남자는 말합니다. "그럼 그렇지. 현실과 동떨어진 일..

Film/Drama 2021.10.27

소녀의 선택 _ 피그테일, 이타츠 요시미 감독

# 0. 오랜만에 옴니버스, 그것도 애니메이션이군요. 중 첫 번째 단편입니다. '이타츠 요시미' 감독, 『피그테일 :: Pigtails』입니다. # 1. 푸른 들판 한가운데 놓인 외딴집입니다. [평온]과 [고립]이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시작부터 위화감을 조성합니다. 소녀는 빨래를 널고 있습니다. 빨래집게들이 다투는군요. 오래된 붉은 것들과 새로운 하얀 것들의 대립입니다. 오래된 것들로부터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읽힙니다. 새로운 것들은 낡은 것들을 존중 없이 배타합니다. 결국엔 서로를 파괴하는 단절로 이어집니다. 부서진 두 빨래집게를 맞대는 피그 테일의 소녀. 소녀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을 잇는 사람입니다. 칫솔입니다. 모가 상해버린 오래된 낡은 칫솔 두 개가 꽂힌 컵에 새로운 칫솔 하나가 더해집니다..

Film/Animation 2021.09.25

당연하지 _ 런던 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 벤 팔머 감독

# 0. 찐따의 로맨스도 달콤할까? '벤 팔머' 감독, 『런던 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 :: Man up』입니다. # 1. 한 번쯤 운동을 해보신 분들, 특히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하려다 실패해보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하실 겁니다. 가장 무거운 건 기구에 얹힌 50kg짜리 쇳덩이도 트레드밀을 달리는 100kg짜리 몸뚱이도 아닌 집안에 퍼질러 앉아 버티는 엉덩이라는 걸 말이죠. 물론 이런 식상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헬스 마니아들은 답답해 고개를 저을 겁니다. 아니? 운동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엉덩이가 무겁다는 거야? 파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처럼 대부분은 적당히 만나고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살아갑니다. 일반에게 사랑은 설레고 긴장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도조차 못할만큼 두려운 일은 하니죠. ..

Film/Romance 2021.09.15

힐링은 없어. 그리고 힘냅시다 _ 바다의 뚜껑, 토요시마 케이스케 감독

# 0. '오기가미 나오코'의 작품들이 흘러가는 구름과 바다를 보며 느리게 드라이브를 하는 것만 같은 영화라 한다면, 이 작품은 바다 앞에 차를 세워둔 채 운전석에 앉아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는 영화 쪽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1시간 넘는 동안 가만히 멈춰 서 있다가 차의 시동을 탁 걸며 끝나는 것만 같은 이야기랄까요. '토요시마 케이스케' 감독, 『바다의 뚜껑 :: 海のふた』입니다. # 1. 거리감이 인상적입니다. 차분한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최대한의 거리를 유지합니다. 주요 인물인 '마리'와 '하지메', '오사무' 모두 영화 내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배치되거나, 걷는다 하더라도 서로 멀찍이 떨어져 주변을 배회합니다. 오프닝에서부터 빙글빙글 겉도는 자전거와, 오열하는 '하지메'와 지켜보는 '..

Film/Drama 2021.09.01

해피피트 실사판 _ 남극의 귀염둥이, 황제펭귄 이야기

# 0. 더워. 더워. 더워. 더워. 더워. 더워. 더워. 더워... BBC earth 제작, 『남극의 귀염둥이, 황제펭귄 이야기 :: Snow Chick - A Penguin's Tale』입니다. # 1. 황제팽귄의 생태를 그린 다큐멘터리입니다. 흔히 펭귄 하면 떠올리실 법한 애들 중 하나인데요. 뭔가 미친놈 같은 눈매에, 고전게임 주인공 같이 생긴 애들은 '아델리 펭귄'이구요. 멋들어진 턱시도에 노란색 무늬가 고오급스러운 친구들이 바로 황제펭귄입니다. '조지 밀러'의 애니메이션 보셨으려나요? 그 영화 실사판이라 생각하시면 무난합니다. 후반부 남극해 넘어 세계관이 확장되기 전까지 주인공 '멈블' 성장 과정과 사실상 동일한 서사거든요. 아빠가 혹한 속에서 알을 놓치는 바람에 노래 대신 탭댄스를 마스터해버..

1초 _ 내가 어때섷ㅎㅎ, 정가영 감독

# 0. 대화하는 두 사람 뒤로 흐르는 시계 소리 똑. 딱. 똑. 딱. '정가영' 감독, 『내가 어때섷ㅎㅎ :: What's Wrong with Me? KK』입니다. # 1. 일부러 조금 더 반가운 척 말하는 목소리 1초. 수찬의 적당한 핑계에 무안해져 아랫입술을 살짝 깨무는 1초.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유진과 얼마나 만났는 지를 떠보는 1초. 일부러 심드렁한 척 한창 좋을 때네 말하는 1초. 5년, 8년, 10년. 27 평생 도합 23년을 연애했노라 말하는 뻔뻔한 1초. 이 남자가 내 나이도 이름도 모른다는 것에 내심 자존심 상하지만 티를 내고 싶지는 않은 1초. 그럼에도 "저 연애 잘해요!" 라 발끈 해 말하는 1초. 개구진 표정으로 "저랑 연애하실래요?" 라 말한 후 잠깐 가만히 멈춰 선 가영의 1..

Film/Drama 2021.06.19

김종관의 영화세계 _ 최악의 하루, 김종관 감독

# 0. 감독 김종관의 영화입니다. 김종관 감독, 『최악의 하루 :: Worst Woman』입니다. # 1. 골목길입니다. 물리적인 '방향성'과 다양한 골목들의 '보편성'과 좁은 곳을 파고드는 '탐구성'의 이미지입니다. 폭이 있는 도로를 구태여 한 곳으로 몰아 잘라버릴 정도로 감독은 좁고 깊은 길을 집요하게 묘사합니다. 한 일본인이 골목길을 걷습니다. 길가에 앉은 할머니가 엄한 외국인을 보며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은 이 인물에게 겉으로 보이는 모습 외에 다른 함의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길을 걷다 말고 공사장의 구멍을 들여다보는 장면 역시 이 인물이 무언가 혹은 누군가의 속을 들여다보게 될 인물임을 암시합니다. 한예리입니다. 레슨을 진행하는 교수가 연기하는 동안 그녀는 거울을 등지고 앉아 있습니다. 거울은 ..

Film/Romance 2021.06.15

마피아 게임 _ 서클, 에런 핸 / 마리오 미시온 감독

# 0. '정치질'하는 영화입니다. '에런 핸', '마리오 미시온' 감독, 『서클 :: Circle』입니다. # 1. 무지막지하게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경찰도 있구요. 레즈비언도 있습니다. 임산부도 있구요. 전과자도 있죠. 어린아이도 있고, 애매하게 큰 청소년도 있구요. 장정도 있고, 노인도 있습니다. 암에 걸렸다 막 나은 사람도 있구요. 이라크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군인도 있죠. 흑인도 있고, 백인도 있고, 아시안도 있고, 라티노도 있습니다. 인종차별자와 인종차별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이 동시에 등장하구요. 신을 받드는 목사와, 과격한 무신론자가 함께하죠. 대부분은 영어를 하지만,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2. 검은 방입니다. 빨간 원 위에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서 있습..

Film/Horror 2021.05.18

날아라 병아리 _ 현지계란, 오가량 감독

# 0. , , 에 이은 네 번째 에피소드인 '주관위' 감독 作 에 대한 리뷰는 생략합니다. 인터뷰 중심의 페이크 다큐를 베이스로 하는 소위 '내수용' 작품이기 때문이죠. 겉으로 드러나는 메시지 이상의 내용까지 제대로 알기 위해선 홍콩 현지 상황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데, 그런 게 제게 있을 리가 없거든요. '다양한 견해의 충돌을 뛰어넘는 연대의 가치'라는 메시지 정도를 제외하면 억지로나마 글을 풀어내기 위한 최소한의 이해도가 충족되지 않았다 생각했기에 무의미한 글을 남기지 않으려 합니다. 그럼 마지막, 제35회 홍콩영화 금상장 작품상 수상작 의 다섯 번째 단편입니다. '오가량' 감독, 『현지 계란 :: Local Egg』입니다. # 1. 전반적으로 일본판에 비해 진지한 영화일 거라 ..

Film/Drama 2021.02.19

기시감 _ 방언, 구문걸 감독

# 0. 2025년 홍콩, 중국 표준어(보통화, 普通话)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기사의 택시는 '보통화 불가능'을 뜻하는 하늘색 딱지를 붙여야만 합니다. 보통화를 구사하지 못하는 기사는 공항과 여객 터미널 같은 출입국 관리 지점에서 승객을 태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중환과 진중, 군통 상업 지구에서의 영업이 금지됩니다. 제35회 홍콩영화 금상장 작품상 수상작 의 세 번째 단편입니다. '구문걸' 감독, 『방언 :: DIALECT』입니다. # 1. 다섯 편의 단편 중 가장 짧은 단편이자 가장 일상적이고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단편입니다. 나름의 미장센이 두드러지는 작가주의적 성향의 여타 작품들에 반해 영화 은 명쾌한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데 전력을 다합니다. 일본의 프로젝트 세 번째 작품이었던 '츠노 메구미' 감독의..

Film/Drama 2021.02.16

얼음 사막 _ 겨울매미, 황비붕 감독

# 0. 이것은 믿기 힘든 이야기다. 불도저가 에디의 집을 허물었다. 달아난 저항군 무리가 에디의 집 표본을 만들었다. 무너진 집들에서 나온 벽돌과 도시에 산재한 다른 일상용품을 재료로 삼았다. 여름만 사는 곤충에게 얼음을 아냐고 묻지 마라. 제35회 홍콩영화 금상장 작품상 수상작 의 두 번째 단편입니다. '황비붕' 감독, 『겨울 매미 :: 冬蟬』입니다. # 1. "이것은 믿기 힘든 이야기다." 근래 본 영화들 중 가장 쉬운 작품입니다. 서사는 서사라 부르는 것이 쑥스러울 정도로 단순합니다. 불도저에 의해 철거된 '에디'의 집을 박제하던 부부가, 결국 그들 자신마저 박제한다는 내용이죠. 박제[剝製]라는 단어를 사전에서는, 라 정의하고 있는데요. 박제가 영화 서사의 전부이듯, '황비붕' 감독이 비관적으로 ..

Film/Drama 2021.02.15

운수 좋은 날 _ 엑스트라, 곽진 감독

# 0. 일본은 아무래도 보수적인 면이 강한 나라입니다. 정치, 사회, 경제, 교육, 그중에서도 문화 쪽은 더더욱 말이죠. 덕분에 그들이 그린 10년 후 일본의 모습은, , , , , 처럼 넓은 스펙트럼의 자유분방함에도 불구하고 다소 두루뭉술하고 평이한 소재와 뜬구름 잡는 듯한 전개 등의 한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상대적으로 더 역동, 아니 격동激動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 사회가 있다면 그들이 그린 미래는 조금 더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요.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다른 문화권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폭압적으로 강요당하게 된 사람들이 그린 미래는 아마도 조금은 더 특별하고 조금은 더 엄숙할 겁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제작의 은 사실 프로젝트의 세 번째 주자였는데요, 그 첫 번째는 2015년 '홍콩..

Film/Drama 2021.02.10

글만은 못하다 _ 하트 오브 더 씨, 론 하워드 감독

# 0. 허먼 멜빌의 은 저 같은 문외한도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소설이긴 합니다만 부끄럽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덕분에 비교 대상과 관련된 불필요한 정보나 명작의 권위에 관한 선입견, 원작 팬으로서의 쓸데없는 자긍심 따위 없이 담백하게 작품을 볼 수 있었죠. 영화를 보고 난 후 서재를 둘러보니 언제 산지 기억도 나지 않는 모비딕이 묵은 먼지에 덮혀 있네요. 이번 주말엔 고전 소설이나 한편 읽어봐야겠군요. '론 하워드' 감독, 『하트 오브 더 씨 :: In the Heart of the Sea』입니다. # 1. 그렇다고 소설을 고스란히 영화화한 작품으로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모티브가 되었던 '모카 딕 Mocha Dick'이라 이름 붙여진 난폭한 향유고래가 포경선 에식스 호를 침몰시..

Film/Action 2020.08.12

펜로즈의 계단 _ 신경쇠약 직전의 뱀파이어, 다비드 륌 감독

# 0. 뱀파이어 신화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함께 엮어낸 영화. 라고는 합니다만 뭘 알아야 이해를 하죠. 급하게 심리학 전공의 친구에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란 놈을 3줄 요약해 달라 했더니 돌아온 건 "그걸 알면 내가 교수를 하지. 개소리 말고 술이나 한잔 하실?"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뜻밖의 술값 지출은 감독에게 청구해야겠네요. '다비드 륌' 감독, 『신경쇠약 직전의 뱀파이어 :: Der Vampir auf der Couch』입니다. # 1. 평범한 현실과 신화적 무의식이 아닌, 뱀파이어가 존재하는 현실과 평범한 무의식이 만드는 역설적 세계관 속에 유로피언 B급 감성 코미디를 버무려낸 독특한 작품입니다. 네 명의 주인공 각자의 욕망과 교수의 잠꼬대, 최면과 꿈, 히스테리와 강박증, 불안, 그림자,..

Film/Comedy 2020.08.07

드디어 보았노라 _ 무서운집, 양병간 감독

# 0. 대작이 올라왔네요. 이런 기회를 놓칠 수야 없죠. 뭐가 되었든 한 분야에 최고의 자리에 오른 작품들은 한 번쯤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양병간' 감독, 『무서운집 :: Scary House』입니다. # 1. 여타의 글들은 작품을 보고 느낀 감정이나 주제의식 혹은 철학에 대한 생각, 이야기의 구성이나 표현의 방식 따위에 대한 제 개인적인 썰들을 풀어놓곤 했습니다만 이 작품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원테이크로 담아낸 홀로 남은 가정주부의 무료한 일상의 하이퍼 리얼리즘 '공포', '계단' 따위로 재해석된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의 고립감 '귀신'과 여사님 간의 역할 경계가 붕괴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함의 수차례 등장하는 베사메무초와 춤사위에 담긴 제의적 이미지의 의미 따위에 대해 되지도 ..

Film/Horror 2020.08.04

いただきます _ 심야식당 극장판, 마츠오카 조지 감독

# 0. "하루가 저물고 모두 귀가할 무렵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영업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사람들은 가게를 '심야식당'이라 부른다. 돼지 된장 정식, 맥주, 사케, 소주. 메뉴는 이게 전부. 무슨 음식이든 주문이 들어오면 가능한 건 만드는 게 영업방침이다. 손님이 있냐고? 생각보다 많다." '마츠오카 조지' 감독, 『심야식당 극장판 :: 映画 深夜食堂』입니다. # 1. 사람들이 모두 잠든 밤에도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밤이 편안한 사람들과 낮이 불편한 사람들이 각자의 입맛에 맞춰 소담한 식사를 합니다. 정갈한 음식들 위로 손님마다의 사연과 마스터의 담담한 눈빛과 다른 손님들의 오지랖과 넘쳐나는 시간이 찬으로 올라옵니다. 적당히 취하지 않을 만큼의 술 한잔이 곁들여지면 완벽하죠. 늦은..

Film/Drama 2020.08.03

물아일체 _ 바다의 사냥꾼 자고, 제임스 리드 / 제임스 모건 감독

# 0. 평생 물질 하며 살아온 노인의 전기물이란 아이스크림 위에, 압도적인 눈뽕이란 에스프레소를 끼얹은 아포가토입니다. 서사성이 강조된 재연 영화와 자연 다큐가 하나처럼 융화되어 있습니다. 극과 극처럼 보이는 생태 다큐와 전기물의 콜라보레이션이라, 독특하군요. '제임스 리드', '제임스 모건' 감독, 『바다의 사냥꾼 자고 :: JAGO a life underwater』 입니다. # 1. 말레이시아 바자우족의 노인 '로하니'가 자신이 살아온 삶을 풀어놓습니다. 증언에 예술적 역량을 더해 환상적인 그림을 선사합니다. 어리고 젊은 시절 '로하니'의 역동성과, 온몸으로 운동하는 인간의 심미성과, 그런 심미적 존재가 대자연과 어우러지는 순간의 감동이 경탄을 자아냅니다. 평온한 인터뷰와 과거의 재연 사이를 반복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