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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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63

간택 _ 엘레나, 정민지 감독

# 0. 아니, 솔직히 억울합니다. 정민지 감독, 『엘레나 :: Elena』입니다. # 1. 익숙한 아파트 단지. 우이천 산책로. 맑은 하늘 아래 평화로이 흐르는 강물. 단아한 징검다리. 회색 옷의 주인공. 엘레나. 관객에게 인사하려는 찰나 어깨를 부딪히는 누군가. 사과하지 않고, 옆을 지나는 다른 사람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어깨에 묻은 작은 먼지를 덜어내는 깔끔함. 나 요새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 이름은 순자. 그녀에겐 짝이 없다는 소식을 알아냈어. 친절한 웃음의 순자는 중년의 여성. 다리 아래로 시퀀스가 옮겨간다. 반만 먹고 남겨진 옥수수. 엘레나와 비슷한 회색 옷을 입은 세 명의 친구. 알갱이를 나눠주며 대화한다. 산책하는 개? 사료 먹고 편하게 사는 애들 질투하는 거 아니야?! 에서 센스가 ..

Film/SF & Fantasy 2024.04.08

감독놀음 _ 은밀한 공범, 죠죠 히데오 감독

# 0. 평범한 소재로 비범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있지만,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내다 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죠죠 히데오 감독, 『은밀한 공범 :: 恋のいばら』입니다. # 1. 은 수입사가 지어 붙인 이름입니다. 원제는 恋のいばら. 그러니까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군요. 참고로 영어 제목은 Thorns of Beauty인데요. 이쪽이 그나마 더 직역에 가까운 번역이기는 합니다. 실제 영화의 핵심은 '가시'로 은유된 각자의 마음에 있다는 면에서, 관계 중심적인 뉘앙스가 강한 '공범'이라는 우리말 제목은 썩 정밀해 보이지는 않죠. 양가적 감정에 놓인 두 여자의 갈등을 그린 작품입니다. 원제에 긍부정이 배치되는 두 개념을 접붙여둔 이유죠. 모모는 켄타로에게 집착과 파괴를 함께 느낍니다. 수차례 복제하고 ..

Film/Romance 2024.03.30

도메크의 망원경 _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 0. 마그다의 정신을 들여다보는 도메크의 망원경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 A Short Film About Love』입니다. # 1. 어지간한 변태가 아니고서야 이름 외우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생소하신 분들도 이나, 시리즈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그 작품들 만든 동유럽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이죠. 30여 년 전, 성경의 십계를 주제로 각색 제작된 데칼로그(Dekalog)라는 폴란드 Tv시리즈가 있었는데요. 그중 6번째, 간음을 주제로 한 에피소드에 분량을 추가 개봉한 작품입니다. 관음은 작품의 핵심적인 설정입니다. 멀리는 히치콕의 이창, 가까이는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에 이르기까지 엿보기는 에로스를 다룬..

Film/Romance 2024.03.04

이슬 _ 은교, 정지우 감독

# 0. 시들어 메마른 꽃은 꿀을 탐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이슬을 탐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정지우 감독, 『은교 :: Eungyo』입니다. # 1.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얼마나 다른 사람일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10년 전에 비해 나는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된 걸까 하고 말이죠. 아무래도 타향살이 고학생이었던 당시보다 주머니 사정은 조금 나아졌습니다. 본업에서의 직무능력이나 위기가 있을 때 되새겨볼 경험치도 조금은 늘었죠. 상황에 맞춰 어른 연기를 하는 것에도 조금은 익숙해진 듯합니다만, 그 정도를 제외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졸업반 선배가 되어 스무 살 신입생 앞에서 억지 조언을 짜내던 순간의 기분과, 삼십 대 중반이 되어 사회초년생 후배들 앞에서 어른 흉내를 내는 지금의 기분은 크게..

Film/Drama 2024.02.18

맑은 하늘의 자화상 _ 어느 멋진 아침, 미아 한센 로브 감독

# 0. 불안한 선택의 미로 끝에 뒤돌아 깨닫는 맑은 하늘의 자화상 미아 한셀 로브 감독, 『어느 멋진 아침 :: One Fine Morning』입니다. # 1. 파리라는 배경, 불안이라는 코드, 걷는다는 이미지는 아녜스 바르다의 같은 작품을 생각나게 합니다. 마침 프랑스 영화이기도 하고, 각각 코린 마르샹과 레아 세두의 존재감으로 견인하는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혹은 삶의 무게에 떠밀린 주인공의 분투를 현실적으로 그린다는 면에서 노아 바움백의 같은 작품이 연상되기도 하는군요. 겉보기에는 주인공 산드라의 고단한 삶을 진중하게 조명하고 독려하는 드라마처럼 보이는데요. 생각하기 따라서 그보다 조금 더 깊은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벤슨 증후군에 걸린 산드라의 아버지 게오르그의 메모에 담긴 ..

Film/Drama 2024.01.12

결혼 바이럴 _ 조립, 신택수 감독

# 0. 여름밤, 부부는 완수해야 할 과제가 있다. (2019년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신택수 감독, 『조립 :: assembly』입니다. # 1. 감독은 평범한 사람들의 결혼 생활이라는 것을 크게 세 가지 감정으로 규정합니다. 비좁다. 피로하다. 그럼에도 사랑한다. # 2. 창백한 도시는 피로감을 상징합니다. 멀찌감치 지나는 지하철을 내려다보는 구도로 담아 그들의 삶을 작고 소소한 것으로 연출합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트인 공간을 걷는 장면은 의식적으로 생략됩니다. 곧장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에 인물을 집어넣고 그마저도 구석에 몰아 고립시킵니다. 인물을 거울에 반사시켜 안 그래도 좁은 공간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킵니다. 지쳐 고개를 숙이는 순간 거울 너머 함께 고..

Film/Romance 2023.12.14

미녀와 천사 _ 나의 엔젤, 해리 클레벤 감독

# 0. 역시 피부 좋고 향기 좋으면 반은 먹고 들어갑니다. 해리 클레벤 감독, 『나의 엔젤 :: Mon Ange』입니다. # 1. 판타지 로맨스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내내 홀딱 벗고 다니는 투명인간인데요. 유일하게 입는 옷이라곤 엄마의 빨간 드레스 하나뿐인 노출증 변태죠. 홀로 자식 키우는 엄마가 '나의 엔젤'이라 불렀다고 자기 이름 삼아버린 나르시시스트이기도 한데요. 한국에서 태어나 우리 똥강아지라 불렸으면 졸지에 영화 제목도 우리 똥강아지가 될 뻔했습니다. 후반부 접어들어 오만데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살려 여자 알몸을 훔쳐보기까지 하는데요. 언제 잡혀 들어가도 할 말 없을 문제적 인물임에 틀림이 없죠. 그런데 이런 놈도 연애를 합니다. 결혼하고 애도 낳습니다. 미모의 여자친구랑 같이 데이트도 하고..

Film/SF & Fantasy 2023.10.24

그녀의 고백 _ 흐르는 대로, 치쿠마 야스토모 감독

# 0. 숨겨뒀던 책갈피를 꺼내다. 치쿠마 야스토모 감독, 『흐르는 대로 :: の方へ、流れる』입니다. # 1. 오프닝입니다. 흔들리는 버스 손잡이에 간신히 매달린 손은 연약함과 위태로움 따위를 은유합니다. 창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은 거대한 흐름을 의미합니다. 무엇이 지나간 건지 모를 정도의 빠른 속도와, 흘러가는 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수동성이죠. 이내 여자의 뒷모습이 카메라에 길게 담깁니다. 뒷모습은 숨겨뒀던 솔직한 마음일 수도 혹은 뒤돌아 서있게 만드는 부끄러운 치부일 수도 있을 겁니다. 여자 옆에 한 남자가 섭니다. 여자는 어깨너머로 책을 훔쳐봅니다. 두터운 책의 두께는 사연의 깊이, 몰래 훔쳐보는 것에서는 느슨한 호기심이 발견됩니다. 책갈피입니다. 흘러가던 흐름을 잘라 멈춰 세우는 도구. 삶의 ..

Film/Romance 2023.09.22

마침내 도달한 중도의 평화 _ 3000년의 기다림, 조지 밀러 감독

# 0. 매혹적이고 환상적이며 치명적인 극단들을 소거한 끝에 마침내 도달한 중도의 평화 조지 밀러 감독, 『3000년의 기다림 :: Three Thousand Years of Longing』입니다. # 1. 짝퉁 골동품을 타고 나타나 알리세아를 만난 지니입니다. 소원에 앞서 들려주는 시바 여왕과 귈텐과 제피르의 이야기는, 집착으로서의 매혹이자 극단으로서의 환상이며 비극으로서의 치명입니다. 불신과 맹신. 구속과 자유. 집착과 고독. 욕망과 체념. 과학과 동화. 이야기와 현실. 다양한 위상의 대립항을 놓고 각각의 극단이 가지는 불완전성을 교훈 삼는 세 편의 단막극을 전개합니다. 기나긴 시간과 드넓은 바다에 은유된 원망과 후회와 분노와 집착을 견뎌낸 끝에, 마침내 치우침 없이 도달한 중도의 평화를 그려낸 작품..

Film/SF & Fantasy 2023.02.04

아키라정전 _ 사랑의 이발소,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

# 0. 로망 포르노(ロマンポルノ)를 아시나요?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 『사랑의 이발소 :: ピンクカット・太く愛して深く愛して』입니다. # 1. 1980년대 일본. 닛카쓰(日活)라는 이름의 영화사가 제작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제법 잘 나가던 역사와 전통의 닛카쓰는 70년대 들어 도산 위기에 처하는데요. 그래서 찾은 회심의 활로가 바로!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저예산 고효율 말랑말랑 소프트코어 포르노를 양산하자는 것이었죠. 결과는 대성공. 천편이 훌쩍 넘는 작품을 찍어내다 못해 전용 극장까지 만들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더랬습니다. 이후 80년대 들어 VHS 보급과 노골적인 하드코어 AV의 출현, 검열의 압박 등에 밀려 사라지긴 했지만 말이죠. 목적이 분명한 만큼 제작 법칙은 단순하고 절..

Film/Romance 2022.11.18

여름바다라는 풍경화 _ 여름바다에 뜨는 가벼운 것들, 조혜린 감독

# 0. 겨울바다 사진이 여름바다 그림 속으로 풍덩 조혜린 감독, 『여름바다에 뜨는 가벼운 것들』 입니다. # 1. 퀴어 코드의 로맨스 영화입니다. 대체로 정체성을 자각하지 못한 주인공이 정체성을 탐색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정체성을 인지하고 있으나 모종의 이유로 그것을 인정하거나 표현하기 주저하는 사람들이 용기를 얻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인데요. 도입에 등장하는 전 애인 수영의 청첩장과 같은 코드를 생각한다면 후자에 조금 더 가까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다만 보다 보면 뭐랄까요. 퀴어는 그냥 소재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하게 됩니다. 영화에서의 퀴어란 두려움에 못 이겨 마음속 깊이 끌어안고 침전해 있는 무언가로 대체되어도 별 지장이 없거든요. 심지어 사랑이라는 정서조차 그렇게까지 본질..

Film/Romance 2022.10.30

뉘앙스 ⅱ _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뉘앙스 ⅰ _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 0. 대상(Her)이 주체(She)가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어른의 사랑 - 영화평론가 이동진, 그녀(Her) 한줄평 - 토드 헤인즈 감독, 『캐롤 :: Carol』입니다. # 1. 창살과 함께 영화는 시작됩니다. 감독은 자 morgosound.tistory.com # 6. 테레즈의 '안심이 되냐'는 물음에 캐롤은 놀라운 사람이라 답하며 회피합니다. 두려운 게 있다면, 도와줄 것이 있다면 청하라는 말에는 단호하게 두려운 것이 없다 말하죠. 여행 캐리어는 캐롤의 깊고 은밀한 내면을 의미합니다. 그 속에 숨겨둔 총을 보여준 다음 두려움에 대한 대화를 풀어내게끔 편집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캐롤은 내면에 두려움을 숨기고 있으며 그 두려움이 [총]이라는 아이템으로 연결되..

Film/Romance 2022.10.22

뉘앙스 ⅰ _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 0. 대상(Her)이 주체(She)가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어른의 사랑 - 영화평론가 이동진, 그녀(Her) 한줄평 - 토드 헤인즈 감독, 『캐롤 :: Carol』입니다. # 1. 창살과 함께 영화는 시작됩니다. 감독은 자신이 펼쳐놓으려는 이야기의 환경을 똑같은 모양의 틀이 군집된 창살로 정의합니다. 거칠고 건조한 철제 질감과 오밀조밀한 구성은 단절감이나 통제력 따위의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암시합니다. 정체성을 제약하는 압박감과 획일성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기본적으론 짙은 정서의 멜로 영화입니다만 못지않은 드라마적 깊이를 겸비한 작품인 것이죠. 다양한 형태의 [프레임]을 징검다리 삼아 풀어낸 작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대표적으로 창문을 꼽을 수 있을 테죠.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

Film/Romance 2022.10.20

7번방의 노마 _ 블론드,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

# 0. 논란의 작품입니다. 고인 모욕에 대한 이야기도 들리구요. 왜곡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더 크게 들리는 듯합니다. 수위가 세다는 마케팅에 속은 일부의 관객들이 화를 내는 듯한 모양새도 있군요. 혹자는 '마릴린 먼로를 창녀로 만드는 영화'라며 분개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원작 소설에 대한 비판에 조금 더 가깝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과연 그것만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은 충분한 것인가에 다소 의문이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영화를 보고 있으니까요.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 『블론드 :: Blonde』입니다. # 1. 전기 영화란 몇몇의 예외적 시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인물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소개하거나, 간과되기 쉬운 입체성을 재조명하기 마련일 텐데요. 문제의 는 왜곡을 차치하고서라도, 인물의 정체성을 ..

Film/Drama 2022.10.04

헤어졌어 _ 연기, 김경래 감독

# 0. 헤어졌어. 갑자기? 왜 헤어져요? 김경래 감독, 『연기 :: While you play』입니다. # 1. 무수히 많은 연습으로 이뤄진 이별, 무수히 많은 이별로 도달한 사랑입니다. 이별을 연기하는 동안 시간도, 환경도, 성격도, 상황도, 해석도, 심지어 입장까지도 계속해서 뒤바뀝니다. 테이크를 굳이 숨기지 않는 등 오롯이 타인을 연기하는 가상의 행위임을 명확히 합니다. 하지만 그런 표피적인 것들과 무관하게 정서는 단일한 방향으로 깊어만 갑니다. 사랑이죠. 절정부 포차를 나선 후, 헤어지자 말하는 순간의 상대와 키스하는 순간의 상대는 다른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이고, 그 말을 하는 남자 역시 다른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입니다. 입맞춤에 화들짝 놀라는 여자 역시 이별을 원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사랑을..

Film/Romance 2022.09.02

미결로 완성될 영원의 바다 _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 0.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며 제목 잘 지었다 싶은 작품은 드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JSA는 JSA구요. 올드보이는 원작 제목이었죠. 박쥐나 스토커, 아가씨 모두 완성도와 별개로 특색 있는 제목은 아니었습니다. 기껏해야 복수는 나의 것이나 친절한 금자씨 정도가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창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 봐야 거기까지죠.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창작을 하나 꼽으라 한다면 저는 제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찬욱 감독, 『헤어질 결심 :: Decision to Leave』입니다. # 1. 헤어지면 됩니다. 그냥 헤어지면 됩니다. 헤어지는 데에는 결정決定이면 충분하죠. 하지만 영화의 제목은 헤어질 결심決心.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왜 결심..

Film/Romance 2022.07.12

수박 겉 핥기 _ 이퀄스, 드레이크 도레무스 감독

# 0. 수박 겉을 핥습니다. 심지어 천~천히 핥습니다. 드레이크 도레무스 감독, 『이퀄스 :: Equals』입니다. # 1. 빌어먹을 세상이 또 멸망했습니다. 만세. 어찌어찌 멸망했다 하는 데 자세히 모르셔도 무방합니다. 어쨌든 망했다는 것만 알아도 충분하죠. 기성의 국제 사회는 깡그리 망하고 '선진국'과 '반도국'으로 이분화된 세상입니다. 선진국은 불필요한 소모를 유발하는 것으로 취급된 감정을 제거함으로써 근로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 인간들의 사회입니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평준화를 의미하는 '이퀄'이라 불리죠. 반도국은 현생 인류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입니다. 선진국의 이퀄들은 그들을 (지극히 이퀄의 관점에 따라) '결함인'이라 부릅니다. 감독은 감정의 제거라는 폭력적 방법론을..

Film/Romance 2022.07.08

포트폴리오 _ 하트어택, 이충현 감독

# 0. 그림은 이쁩니다. 이성경은 더 이쁩니다. 진짜 겁나 이쁩니다. '이충현' 감독, 『하트어택 :: HEART ATTACK』입니다. # 1. 사랑하는 사람의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 위해 100번의 시간을 돌리는 여자의 이야기 # 2. ... 라고 하네요. 루프물입니다. 언제나 이쁜 이성경이 보드 타다 자빠져 코피 흘립니다. 애매하게 잘생긴 외쿡인이 어색한 연기력 뽐내며 농구합니다. 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첫눈에 반하게 되는데요. 저런. 외쿡인 형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 마비로 승천할 팔자라고 합니다. 시간 능력자인 듯한 여자는 시간을 되돌려 남자를 살리려 하는데요. 100번이나 시도했지만 낭낭하게 실패하고 맙니다. 실망한 여자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뽀뽀를 하구요. ..

Film/SF & Fantasy 2022.03.29

한 그루의 사과나무 _ 고스트 스토리, 데이빗 로워리 감독

# 0. 기억되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아 보이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유령처럼 '데이빗 로워리' 감독, 『고스트 스토리 :: A Ghost Story』입니다. # 1. 를 보려고 했는데요. 감독 이름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누구더라... 아! 고스트 스토리의 감독이었군요. 생각난 김에 고스트 스토리를 애피타이저로 한 번 더 보고, 그린 나이트를 봐야겠습니다. 철학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입니다. 쫀쫀한 이야기는커녕 시간이 멈춘 듯 느린 템포와, 바스러지는 현학적 대사들과, 연출적 물리적 관계적 개념적 층위의 공백들과 여백들이 감상을 어렵게 합니다. 혹시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셨고 말씀드린 류의 건조하고 느린 호흡의 메시지 중심 작품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면 다른 작품을 보는 것도 생각해보..

Film/SF & Fantasy 2021.11.26

올해의 단편 _ 맛있는 엔딩, 정소영 감독

# 0. 이번 옴니버스 너무 좋은데요? 단편 옴니버스 두 번째 에피소드입니다. '정소영' 감독, 『맛있는 엔딩 :: Tasty Ending』입니다. # 1. 무수히 많은 신발과 오브젝트는 누적된 무언가를 의미합니다. 특유의 물 빠진 색감과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깊은 한숨이 인물과 공간의 수분을 제거합니다. 제법 긴 시간 동안 대사는 단 한 마디도 없습니다. 물건을 챙기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는 손길에 과격하면서도 처연한 정서가 엿보입니다. 서랍장에서 상자를 꺼냅니다. 상자 속에서 다이어리를 꺼냅니다. 1000일. 3년 여가 넘는 긴 시간을 만났다는 것보다, 1000일 이후론 세지도 않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시콜콜한 잘잘못에 대한 작품이 아닙니다. 여자의 이별은 어떤 사연 어떤 핑계를 댄다 하더라도 결국..

Film/Romance 2021.11.08

당연하지 _ 런던 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 벤 팔머 감독

# 0. 찐따의 로맨스도 달콤할까? '벤 팔머' 감독, 『런던 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 :: Man up』입니다. # 1. 한 번쯤 운동을 해보신 분들, 특히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하려다 실패해보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하실 겁니다. 가장 무거운 건 기구에 얹힌 50kg짜리 쇳덩이도 트레드밀을 달리는 100kg짜리 몸뚱이도 아닌 집안에 퍼질러 앉아 버티는 엉덩이라는 걸 말이죠. 물론 이런 식상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헬스 마니아들은 답답해 고개를 저을 겁니다. 아니? 운동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엉덩이가 무겁다는 거야? 파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처럼 대부분은 적당히 만나고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살아갑니다. 일반에게 사랑은 설레고 긴장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도조차 못할만큼 두려운 일은 하니죠. ..

Film/Romance 2021.09.15

김종관의 영화세계 _ 최악의 하루, 김종관 감독

# 0. 감독 김종관의 영화입니다. 김종관 감독, 『최악의 하루 :: Worst Woman』입니다. # 1. 골목길입니다. 물리적인 '방향성'과 다양한 골목들의 '보편성'과 좁은 곳을 파고드는 '탐구성'의 이미지입니다. 폭이 있는 도로를 구태여 한 곳으로 몰아 잘라버릴 정도로 감독은 좁고 깊은 길을 집요하게 묘사합니다. 한 일본인이 골목길을 걷습니다. 길가에 앉은 할머니가 엄한 외국인을 보며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은 이 인물에게 겉으로 보이는 모습 외에 다른 함의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길을 걷다 말고 공사장의 구멍을 들여다보는 장면 역시 이 인물이 무언가 혹은 누군가의 속을 들여다보게 될 인물임을 암시합니다. 한예리입니다. 레슨을 진행하는 교수가 연기하는 동안 그녀는 거울을 등지고 앉아 있습니다. 거울은 ..

Film/Romance 2021.06.15

그대가 원하면 _ 언어의 정원, 신카이 마코토 감독

# 0. なるかみの すこしとよみて さしくもり あめもふらぬか きみをとどめむ なるかみの すこしとよみて ふらずとも わはとどまらむ いもしとどめば 하늘에 천둥이 여리게 울리니 드리운 구름에 비라도 오려나. 당신을 붙드네. 하늘에 천둥이 여리게 울리고 비님이 안 와도 이 몸은 있겠네. 그대가 원하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 『언어의 정원 :: 言の葉の庭』입니다. # 1. 스타일이나 장르와 무관하게 일정 궤도 이상에 오른 감독 대부분은 상당한 수준의 치밀함과 합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때론 중2병이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감성적인 작품을 하는 신카이 마코토 역시 예외는 아니죠. 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히나 논리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감히, 엄격한 형식논리 안에서 벌어지는 이분법적 구조라 정의한다 ..

Film/Animation 2021.06.05

주인공만 3명 _ 조안, 김지산 / 유정수 감독

# 0. 이젠 제법 익숙한 소셜 미디어 까는 영화입니다. '김지산', '유정수' 감독, 『조안 :: Joan』입니다. # 1. 일반적으로 떠올릴 법한 소셜 미디어의 비판적 문제의식을 소집해 하나의 이야기 속에 녹여낸 단편입니다. 제프 올롭스키의 나, 츠노 메구미의 와 유사한 문제의식 위로 불쾌하고 섬뜩한 미스터리 호러의 장르적 재미를 살짝 더한 작품 정도로 이해하시면 적당하겠군요. 영화에는 총 세 인물이 등장합니다. 조안과, 소개팅남, 그리고 이름 모를 내레이터죠. 이야기는 조안이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 데이팅 어플을 통해 새로운 남자와 소개팅한다는 내용입니다. 그 과정을 소셜 미디어의 의인화로서 내레이터가 전개하는 구성이죠. 각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소셜 미디어의 폐해를 비판적으로 대변합니다. '조안'..

Film/Thriller 2021.05.26

대종상스러운 _ 불륜, 김준성 감독

# 0. 제50회 대종상 단편영화제 대상 수상작입니다. '김준성' 감독, 『불륜 :: Unlawful Love』입니다. # 1. 드라마 단편선을 보는 것만 같은 익숙하고 안정적인 구성입니다. 노년의 삶이라는 인본주의적 아이템과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의 정서와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될 보수적 가치들을 곧게 묘사합니다. 감독의 연출보다는 배우들의 연기가 작품을 이끌어 나갑니다. 특히, 배우 '신구' 선생과 '김지영' 선생의 연기는 언제나처럼 탁월합니다. '노년'하면 떠올릴 법한 , , , , , 등의 부정적 이미지들을 라디오 따위의 보편적이고 직관적인 아이템들로 연결지어 영화가 전개되는 공간 전체를 주제의식으로 감싸 안습니다. 주·조연 가릴 것 없이 모두 선명한 만화적 캐릭터로 묘사해 남녀노소 편안하게..

Film/Romance 2021.05.22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다 _ 바베트의 만찬, 가브리엘 액셀 감독

# 0. 강신주 교수는 라는 책을 통해 무문관(無門關)을 저 같은 똥멍청이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을 따라 48개의 관문을 차근차근 넘는 동안 수많은 화두들을 흥미롭게 즐기고 나면 어느새 서서히 하나의 메시지로 소집됨을 느끼게 되죠. 집착을 벗어던지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자. '가브리엘 액셀' 감독, 『바베트의 만찬 :: Babettes gæstebud』입니다. # 1. 기본적으론 요리 영화입니다. 노라 에프론 감독의 과, 브래드 버드 감독 ,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과, 존 파브로 감독의 같은 정줄 놓고 편안하게 남들 밥 차리고 밥 먹는 거 구경하는 먹방 영화들의 조상님 쯤 될법한 영화죠. 동시에 종교 영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주인공부터 일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

Film/Drama 2021.04.29

철창 안의 새 _ 엘리사와 마르셀라, 이자벨 코이젯트 감독

# 0. 사람들은 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녀들을 싫어한 걸까. 그녀들은 대체 왜 그렇게까지 서로를 사랑한 걸까. '이자벨 코이젯트' 감독, 『엘리사와 마르셀라 :: Elisa y Marcela』입니다. # 1. 사랑을 다루고 있음에도 멜로보다는 에 더 가까울 영화입니다. '엘리사'와 '마르셀라'의 사랑이 쌓여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긴 합니다만, 그보다는 두 사람이 시대의 폭력을 피해 정착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떠도는 여정과, 그 과정에서의 존재론적 외로움을 더 많이 포착한 작품이기 때문이죠. 20세기 초, '다양성의 가치'를 '종교적 미덕'이 폭력적으로 압도하던 시대. 두 주인공이 서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치러야 했던 고통의 시간을 다룹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라는 점입니다. 가 아니라는 점이죠...

Film/Drama 2021.04.11

슬랩스틱 로맨스 _ 페어리, 도미니크 아벨 감독

# 0. 이곳은 상상想像과 수사修辭가 현실이 된 요정의 나라. 도미니크 아벨, 피오나 고든 부부에게 사랑은 그런 곳입니다. '도미니크 아벨' 감독, 『페어리 :: La fée』입니다. # 1. 지루한 일상은 내달리는 자전거와 반복되는 티브이 시청으로 구체화됩니다. 손님에게 무관심한 돔의 태도는 가방 안에 숨겨둔 강아지 미미를 알아채지 못하는 모습으로 과장됩니다. 요정 같은 환상적인 사랑과의 첫 만남은 직접 자신을 요정이라 소개한 후 고장 난 엘리베이터를 고치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의 심드렁한 마음은 연출된 퉁명스러움으로. 돌이켜보면 기적 같았던 우연은 실제 비현실적인 기적으로 표현됩니다. 나를 살려준 그녀의 손길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부드러웠기에 실제 피오나는 돔의 위에서 춤을..

Film/Romance 2021.03.29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_ 레베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넷플릭스의 를 보려 했습니다. 'DELING' 님 댓글 덕에 뮤지컬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요. 살펴봤더니 리메이크 작이더군요. 원작은 무려 1940년 작, 그것도 히치콕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라기에 까흠짝 놀랬더랬죠. 더 놀라운 건 그 마저 1939년에 출간한 '다프네 뒤 모리에'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역시 무식하면 놀랄 일이 이렇게나 많습니다. 80년 전 책을 찾아보기엔 너무 게으르고 뮤지컬은 볼 방법이 없다는 핑계로 작품에 대한 감상은 영화 두 편 연이어 보는 것으로 적당히 갈음하려 합니다. 기대되는군요. 오래전 명곡을 리메이크 버전과 비교해 듣는 재미가 있듯 영화 역시 같은 서사를 다루는 두 창작자의 시각을 적절히 비교해 가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니까요. 우선은....

Film/Thriller 2021.03.10

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아요 _ 애수, 머빈 르로이 감독

# 0. 1940년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 구조를 가져와 세계 대전 전후의 영국을 배경으로 변주한 후 '비비안 리'의 미모와 '로버트 테일러'의 잘생김을 끼얹고 워털루 브릿지라는 공간으로 구체화된 쓸쓸한 서정성으로 마무리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머빈 르로이' 감독, 『애수 :: Waterloo Bridge』입니다. # 1. 첫눈에 사랑에 빠진 두 선남선녀가 등장합니다. 두 사람의 순수하고 고결한 사랑은, 앙숙인 몬테규-캐퓰렛 가문 간의 갈등이나, 영독 전쟁 따위의 저항하기 버거운 외부 요인에 의해 방해받게 됩니다. 달빛 창가에서의 세레나데나, 비 오는 날의 청혼과 같은, 짧지만 아름다운 데이트와 약속을 나눕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결투나..

Film/Romance 2020.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