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반응형

Film/Comedy 114

슈퍼 리치의 유쾌한 모험 _ 굿 포츈, 아지즈 안사리 감독

# 0. 언제나 주인공은 가브리엘 아지즈 안사리 감독,『굿 포츈 :: Good Fortune』입니다. # 1. 당장 눈에 띄는 건 키아누 리브스의 배우개그. 오만 영화를 다 찍은 키아누 리브스가 천사 역을 맡는 것쯤이야 있을 수 있는 일이다만, 굳이 어깨에 걸어 끼는 인형 날개를, 그것도 겁나 옹졸한 날개를 달아놓은 건 노골적이다. 담배 태우는 장면은 콘스탄틴에서, 개 좋아하는 장면은 존 윅에서 끌고 온 걸 테니, 이쯤 되면 본인도 즐기고 있는 게 틀림없다. 시놉시스를 읽고서 브루스 올마이티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거짓말. 둘 다 한심한 주인공에게 초월자의 권능을 빌린 다음, 적당히 신나게 살다가 어찌어찌 현실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차이가 있다면 모건 프리먼이 짐 캐리에게 빌려준 권능은 ..

Film/Comedy 2026.04.04

봉제선의 미학 _ 특급 비밀, ZAZ 사단 감독

# 0. 장르를 기워붙인 인위적인 봉제선이 그렇게나 즐겁다. ZAZ 사단 감독,『특급 비밀 :: Top Secret!』입니다. # 1. 외교 문화 교류를 위해 동독에 초청된 미국인 록스타가 납치된 과학자를 구출하려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공작에 휘말린 김에 겸사겸사 연애한다는 이야기. 별생각 없이 들으면 냉전 시대 스파이 스릴러와, 2차 세계대전 저항군 드라마와, 1950년대 록앤롤 뮤지컬을 적당히 접붙인 평범한 멀티 장르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시놉에서부터 코미디의 냄새가 솔솔 풍긴다. 아니, 동독에 레지스탕스가 왜 돌아다니세요? 짐짓 동독은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무난한 배경인 듯 보이지만 핑계.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흡사하게 묘사된 메타 풍자의 공간일 따름이다. 제복부터 하..

Film/Comedy 2026.03.08

창작자의 시냅스 _ 어댑테이션, 스파이크 존즈 감독

# 0. 상상하는 나 스파이크 존즈,『어댑테이션 :: Adaptation』입니다. # 1. 스스로 말하다시피 '존 말코비치 되기'는 골치 아픈 영화다. 분류학적 자아의 매개변수 연구와, 그 독점성과 완결성에 대한 윤리학적 고찰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까. 차기작이 이 피곤한 영화의 촬영 현장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이전의 논의에서 이어지는 바가 있다는 뜻이다. 층고가 낮은 7과 1/2층에 숨겨진 터널에서 자아는 무수히 분리되지만, 사실 판타지적 조작을 통해 작위적으로 해체한 것일 뿐 현실에서 그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모두 인지하고 감각하며 평가하고 갈망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일 따름이다. 어떤 창의적인 사람들은 새로운 인격을 상상해 드라마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데, 그 ..

Film/Comedy 2026.03.04

의도치 않은 서술을 맛본다 _ 프렌치 디스패치, 웨스 앤더슨 감독

# 0. 그냥... 의도적으로 쓴 것처럼 써 봐. 웨스 앤더슨 감독,『프렌치 디스패치 :: The French Dispatch』입니다. # 1. 50개국, 50만 독자를 거느린, 50년간 이어져 온 잡지사. 유달리 도드라진 40에서 60 언저리 애매한 숫자는 십중팔구 감독의 나이와 들어맞는 데 이번의 쓰임 역시 틀리지 않다. 실제 빌 머레이가 연기한 편집장 아서 하우저 주니어는 웨스 앤더슨 본인과 강하게 연결되는 데, 흥미로운 것은 굳이 50 타령을 늘어놓지 않더라도 이 시니컬한 편집증적 인물이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걸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오프닝에서부터 이런 작위적인 방식으로 이를 주지시키려 한 걸까. 영화가 끝난 후에 두 사람을 연결해선 곤란하기 ..

Film/Comedy 2026.03.02

종의 기원 _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 0. Some of them want to use you,Some of them want to get used by you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 :: Kinds of Kindness』입니다. # 1. 물론 친절 혹은 다정함의 종류라 직역하는 것이 무난하다. 다만 Kind는 때때로 종이라는 의미로도 쓰이기에, 제목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는 친절이라는 종(種, Species)으로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호모 코미스(Homo Comis, 친절한 인간)쯤 될까. 현생 인류란 다정함을 정체성으로 하는 유인원이고, 그것이 호모 에렉투스나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생물학적 분류에 가까운 것이라면, 우리 종의 특성은 유전자 결정적이라 주장한다는 면에서 요르고스..

Film/Comedy 2026.02.10

장르는 은혼 _ 은혼, 후쿠다 유이치 감독

# 0. 조잡한 만화라서 조잡한데... 어찌 조잡하다 생각했느냐 하시면... 후쿠다 유이치 감독,『은혼 :: Gintama』입니다. # 1. 이를테면 진중한 캐릭터 옆에서 심드렁한 캐릭터가 반쯤 감긴 눈으로 코를 후빈다면, 그건 코를 후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루하다'는 기의를 표현하기 위한 기표일 뿐이다. 해당 컷을 실사 영화화 한답시고 다 큰 성년 배우가 코를 후벼 파고 있다면, 관객은 일차원적인 기의뿐 아니라 '무안하다', '지저분하다', '민망하다', '무례하다'를 포함한 복합적 의미로 읽어내게 된다. 동시에 관객도 바보가 아니기에 그 장면에서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기의란 단순히 '지루하다' 하나뿐이란 것도 알고 있다. 일련의 사고 프로세스가 순식간에 주르륵 흐르면 결과..

Film/Comedy 2026.02.08

정우가 또 _ 윗집사람들, 하정우 감독

# 0. 하정우가 또 ㅈ같은 새끼를 데려왔네. 하정우 감독,『윗집 사람들 :: The People Upstaris』입니다. # 1. 좁은 골목길, 서로 어깨가 부딪히지 않으려 한발짝 비켜나는 사회에서 내가 습관처럼 물러서자 기다렸다는 듯 '아이구~ 고맙습니다~' 스트레칭 하는 꼬라지를 바라보는 당혹감. 억울하고 분하지만 지적 하자니 너무 짜쳐서 티를 낼 수도 없는 나를 음흉하게 입꼬리 들썩이며 관찰하는 느낌적인 느낌. 보통은 절대 하지 않을 법한 에티켓과 위선의 경계에 뻔뻔하게 발가락을 담근 다음,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감각. 이를테면 커여운 김향기를 김냄새라 부른 뒤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을 군내날 것 같은 콧수염 쓰다듬으며 지켜보는 감성이랄까. 문제는 그..

Film/Comedy 2026.02.06

발언 역학 _ 더 리틀 아워즈, 제프 바에나 감독

# 0. Don't fucking talk to us! 제프 바에나 감독,『더 리틀 아워즈 :: The Little Hours』입니다. # 1. 무작정 야한 영화를 기대했다면 유감이다. 물론 데카메론을 끌고 온 탓에 순결한 수녀들의 억눌린 욕정을 유감없이 드러내긴 하지만, 그럼에도 생각만큼 야하진 않다. 기껏해야 몇몇의 느슨한 은유일 뿐이고, 헐벗은 장면조차 데이브 프랭코의 탄탄한 빵댕이를 제외하면 오밤중 마녀 의식 장면 따위의 호러 연출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전부다.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한다면 차라리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 특히 넌스플로이테이션 매대를 뒤져보는 편이 낫다. 뇌가 녹아내릴 것만 같은 개막장성은 그쪽이 전문이니 말이다. 포스터에서부터 잔뜩 화가 난 수녀가 입 벌리고..

Film/Comedy 2026.02.04

코러스, 레니, 린다 _ 마이티 아프로디테, 우디 앨런 감독

# 0. 황금빛 미소의 아프로디테 우디 앨런 감독,『마이티 아프로디테 :: Mighty Aphrodite』입니다. # 1. 고대 그리스의 원형 극장. 한 무리의 코러스가 등장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아이스토파네스나 에우리피데스 같은 고전 극작가의 스토리텔링을 오마주해, 뉴욕에 사는 스포츠 기자 레니 와인립의 소동극에 더할 비장미를 빌려오기 위함이다. 물론 그것을 고스란히 차용할 우디 앨런은 아니다. 엄숙한 등장에도 불구하고 코러스가 논평하는 대상은 아킬레스나 오이디푸스 같은 신화 속 영웅이 아닌, 신경증적 뉴요커의 양육 문제나, 아내의 불륜, 매춘부 개조 시도 따위의 한심한 것이다. 현대인의 사소한 고민조차 고대 비극이 다루던 운명, 윤리, 어리석음 같은 원형(Archetypes)의 연..

Film/Comedy 2025.12.14

이번에는 뺏기지 않겠어 _ 키드, 찰리 채플린 감독

# 0. A picture with a smile—and perhaps, a tear 찰리 채플린 감독,『키드 :: The Kid』입니다. # 1. 예컨대 모던 타임스나 시티 라이트의 트램프는 홀로 세계와 대결하는 존재다. 그는 시스템의 톱니바퀴에 끼이거나 도시의 불빛 아래 서성일지언정, 언제나 관객이 감정 이입하는 유일한 창구로서 스크린을 장악했다. 반면 키드에서는 다르다. 화자는 모호하고 시선은 분산되며 정서는 독점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의 텍스트는 채플린이라는 거대한 자아가 파편으로 비산해 스크린에 투사된 듯 느껴진다. 거리의 부랑자, 버려진 아이, 그리고 어머니. 세 존재 모두 채플린의 내면에서 발원한 페르소나라는 뜻이다. 1919년 7월 7일. 기형으로 태어난 첫아들 노먼 ..

Film/Comedy 2025.12.02

정상이라 생각들기 시작했어 _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 글렌 피카라 / 존 레쿼 감독

# 0. What the Fxck?! 글렌 피카라 / 존 레쿼 감독,『위스키 탱고 폭스트롯 :: Whiskey Tango Foxtrot』입니다. # 1. 어떤 테마는 너무 단호하게 윤리적이라 가벼이 다루는 순간 인간성을 의심받기도 한다. 당장 인명 참사나 아동 학대, 역사 논쟁 등을 가져다 성급하게 극화한다거나 심지어 코미디로 각색하겠다 한다면 무슨 사단이 벌어질지는 눈에 선하다. 내용과 이유를 듣기도 전에 강한 거부감과 공분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심지어 몇몇의 경우엔 인신공격을 포함한 맹렬한 사회적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반전주의는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보편의 가치니만큼 대부분 심각하고 엄숙하게 다뤄왔다.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이 전쟁의..

Film/Comedy 2025.11.08

지독하게 성찰적인 _ 사스콰치 선셋, 데이비드 젤너 / 네이선 젤너 감독

# 0. 으어... 으아... 으에... 데이비드 젤너 / 네이선 젤너 감독,『사스콰치 선셋 :: Sasquatch Sunset』입니다. # 1. 감동적인 명대사가 난무하는 영화, 사스콰치 선셋이다. 영화의 조작은 익숙한 자연 생태 영화의 틀 한가운데 냅다 사스콰치를 집어던지는 것이 전부고, 대부분의 감상은 이들을 지켜보는 동안의 코미디와 불쾌감으로 소집된다. 감독은 대체 이 역겨운 존재들에 비춰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자연 다큐멘터리의 감정선은 보통 연민이나 경외감이고, 그것은 명확한 거리감을 전제한다. 엄마 기린이 새끼를 낳고, 사자가 얼룩말을 사냥하는 장면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기보다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다. 반면 영화 속 사스콰치의 행동들은 이례적으로 역..

Film/Comedy 2025.10.20

최고급 세트장 _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

# 0. 아름다운 삼분할로 고상하게 쌓아 올린 최고급 세트장 박찬욱 감독,『어쩔수가없다 :: NO OTHER CHOICE』입니다. # 1. 이분할은 관계를 직접 다루기에 관찰자의 시선은 두 요소 사이에 고정된다. 한편 삼분할에서는 비로소 경향이 생긴다. 나란히 배치된 첫 번째와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에는 복수의 관계가 성립하고 그로 인해 일정한 경향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요소들에 대한 집중력은 이분할에 비해 다소 희석되겠지만, 시선은 요소들 사이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밖으로까지 뻗어나간다. 이를테면 첫 번째 이전을 상상한다거나 세 번째 이후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고, 박찬욱의 신작은 그 모든 면에서 세 번째 이후를 상상하게 하는 영화다. 는 직전의 을 포함한 필모그래..

Film/Comedy 2025.10.18

괴짜의 출현 _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김민하 감독

# 0. 괴짜의 출현은 언제나 옳다. 김민하 감독,『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 Idiot Girls and School Ghost』입니다. # 1. 업계 전설이 되어버린 의 장준환이나 의 정범식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안국진의 , 봉준영의 같은 스타일리시한 영화들도 충분히 반갑다. 유재선의 이나 이정홍의 , 이옥섭의 는 물론, 이젠 체급이 달라져 버린 윤가은의 이나 나홍진의 처럼 믿을 수 없는 완성도의 작품들도 있었고, 남동협의 나 김다민의 처럼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작품들도 좋다. 김민하 감독의 데뷔작은 그중에서도 신정원의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데, 그의 세계가 엉뚱하고 개구진 소년의 것이었다면, 김민하의 것은 한결 귀엽고 발랄한 소녀 감성에 가까워 보인다. 어쨌든 ..

Film/Comedy 2025.09.28

안타까운 거리감 _ 암스테르담, 데이비드 O. 러셀 감독

# 0. 숭고한 주제를 현란한 재능으로 윽박지른다.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암스테르담 :: Amsterdam』입니다. # 1. 1930년대 미국, 파시스트 쿠데타 음모 '비즈니스 플롯'을 다루지만 정작 주인공은 스메들리 버틀러가 아니다. 스필버그가 링컨의 고뇌에 비춰 시대정신을 응축했던 것과 달리, 데이비드 O. 러셀은 허구의 아웃사이더들을 내세워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신음하는 개인에게로 카메라를 돌린다. 버트는 전쟁으로 육신과 시력을 잃고 전우들의 망가진 얼굴을 재건하는 의사, 밸러리는 상류층 가문의 억압을 피해 전쟁의 파편을 모으는 예술가, 해럴드는 평생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 흑인 변호사다. 이들은 각각 전쟁의 상처, 사회적 억압, 인종적 차별이란 시대의 폭력을 대변하고 있고,..

Film/Comedy 2025.09.10

시네마틱 르포르타주 _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테리 길리엄 감독

# 0. 곤조 저널리즘의 곤조는 의외로 사람 이름이다. 테리 길리엄 감독,『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 Fear And Loathing In Las Vegas』입니다. # 1. 호오와 성패는 별개다. '마음에는 들지만 망할만하다'라는 평은 생각만큼 희소한 감상이 아니다. 그 이름부터 괴팍한 다. 스스로를 마약에 내던진 괴짜 기자의 이야기는 마치 그 자체로 르포르타주와 같아서, 어지러운 영화의 감상은 아이러니하게도 감독이 제시하는 논거를 착실히 따라가는 지적인 작업들이다. 괴기한 시청각적 요소들은 하나의 목적, 1960년대 이상주의가 파산한 폐허에 남겨진 허무주의를 몸소 겪으며 취재하는 것에 소집된다. 주인공은 저널리스트 라울 듀크와 변호사 닥터 곤조다. 진실(Truth)과 정의(J..

Film/Comedy 2025.08.18

성공한 자의 안식년 _ 아메리칸 셰프, 존 파브로 감독

# 0. 스스로 실천해 증명한 지극히 영악한 처세술 존 파브로 감독,『아메리칸 셰프 :: Chef』입니다. # 1. 아메리칸 셰프는 기분 좋은 영화다. 창의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시스템의 톱니바퀴로 전락한 셰프가, 원초적 노동 행위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이야기. 영화의 화술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따뜻한 쿠바 샌드위치와 닮아서, 내내 각각의 재료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음식처럼 만족스럽다. 그런데 뒷맛은 의외로 깔끔하지 않다. 능숙하게 조리된 낙천적 위로 이면에, 그것이 과연 모두를 위한 것인가 반문하게 되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재기는 누구나의 성공담이 아니라,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자에게만 허락된 한가로운 휴가처럼 보이는 데, 그 지점에서 영화는 위선과 한계를 동시에 노출하고 있다. ..

Film/Comedy 2025.08.12

연기의 부재 _ 총알탄 사나이 시리즈, 데이빗 주커 감독

# 0. 코미디는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데이빗 주커 감독,『총알탄 사나이 :: The Naked Gun』입니다. # 1. 종종 노골적인 코미디는 일시적이고 휘발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웃음의 유효기간은 다른 장르 경험보다 짧기에, 비평을 논하기엔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지는 식이다. 그러나 몇몇의 뛰어난 영화들은 통념을 극복하기도 하는데, 는 그중 하나로서 손색이 없다. 위대한 의 정신을 이어받은 시리즈는, 영화가 스스로의 문법과 관습을 해체하고 전복시켜 코미디의 활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를 실증한다. 수많은 관객들을 매료시킨 슬랩스틱의 소란스러움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것임에 분명하나, 충분히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아래 깔린 형식주의 미학을 생각해 보는 것도..

Film/Comedy 2025.08.10

아버지의 회고록 _ 페니키안 스킴, 웨스 앤더슨 감독

# 0. 허구를 신앙하며 비행하던 아버지가 분주히 추락을 되돌아보며 읽어나가는 동화적 회고록 웨스 앤더슨 감독,『페니키안 스킴 :: The Phoenician Scheme』입니다. # 1. 호화 전용기에 앉아 독서 중인 베니시오 델 토로의 이름은 아나톨 자자 코다. 그는 여섯 번이나 비행기 추락을 경험하고도 살아남은 인물인데, 여섯 번의 암살보다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일곱 번째 비행에 나섰다는 점이다. 그는 거침없는 정적들의 흉악한 음모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날았다 추락하길 반복하는 사람이고, 이례적인 직선적 첩보 스릴러는 이 겁 없는 남자를 탐구하는 코미디 드라마다. 잿빛 슈트와 거의 비슷한 색깔,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새겨진 전용기는 그 자체로 자자 코다를 은유한다. 따라서 영화의..

Film/Comedy 2025.07.18

당신인가요 _ 시티라이트, 찰리 채플린 감독

# 0. "He is beyond praise because he is the greatest of all. What else can one say? The only filmmaker, anyway, to whom one can apply without misunderstanding that very misleading adjective, ‘humane’… Today one says Chaplin as one says Da Vinci—or rather Charlie, like Leonardo." Jean-Luc Godard 찰리 채플린 감독,『시티라이트 :: City Lights』입니다. # 1. 인생영화라는 말이 그렇게 고까웠던 시절이 있었다. 어떻게 두어 시간 남짓의 영화 한 편이..

Film/Comedy 2025.07.06

망각과 유예 _ 노킹 온 헤븐스 도어, 토마스 얀 감독

# 0. 망각하다 유예하고 유예하다 망각하는 바보들 토마스 얀 감독,『노킹 온 헤븐스 도어 :: Knockin' On Heaven's Door』입니다. # 1. 무릇 예술이란 우주와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생을 통찰하는 예술과 죽음은 불가분의 관계다. 대중 예술로서의 영화 역시 다를 바 없기에 수많은 감독들은 죽음을 다뤄왔다. 미카엘 하네케의 나 알렝 레네의 는 대표적이다. 의 능동적 허무주의를 신화적으로 이어받은 데이빗 로워리의 도 생각난다. 과 등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역시 죽음을 진중하게 탐구하는 감독 중 하나다. 코엔 형제는 옴니버스 서부극 를 통해 장르의 본질과 죽음을 함께 논한다. 긴츠 질발로디스의 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도 부분적으로 죽음을 그린 것으로 이..

Film/Comedy 2025.07.02

Our Contemporary _ 모던 타임즈, 찰리 채플린 감독

# 0.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찰리 채플린 감독,『모던 타임즈 :: Modern Times』입니다. # 1.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거칠게 회전하는 기어, 찢어질 듯 날 선 굉음은 산업화를 짐짓 역동적인 것으로 오해하게 하지만 사실 그 안의 것들은 극단적으로 무기력한 상태다. 처음도 끝도 없는 벨트가 제자리를 도는 동안 위에 놓인 물건은 옮겨지는 대로 옮겨질 수밖에 없고, 톱니바퀴는 앞선 톱니의 움직임을 물려받아 스스로를 마모한 후 다음에게 전달할 뿐이다. 지켜보는 노동자는 제자리에 멍청히 서서 하염없이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자본에 짓눌려 부속품으로 전락한 노동자..

Film/Comedy 2025.06.16

진실, 허구, 거짓 _ 블룸형제 사기단, 라이언 존슨 감독

# 0. 가장 완벽한 사기는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라이언 존슨 감독,『블룸형제 사기단 :: The Brothers Bloom』입니다. # 1. 형인 스티븐은 사기(con)를 마치 하나의 문학 작품처럼 주제적 아크와 상징을 포함한 '이야기'로서 설계하는 인물이다. 내내 손에서 트럼프를 놓지 않는 그는, 자신의 계획 하에 타인의 이해관계를 통제하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당연하게도 최종적 목표는 경제적 이익 따위가 아니다. 이야기를 너무나 잘 쓴 나머지 그것이 사기와 구분조차 할 수 없는 현실로 인지하게 하는 것으로, '가장 완벽한 사기는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란 대사는 그의 사상을 잘 보여준다. 스티븐의 세계 밑바닥에는 비단 사기뿐 아니라..

Film/Comedy 2025.06.10

오늘과 내일의 동행 _ 프린스 아발란체, 데이빗 고든 그린 감독

# 0. 내일 없는 오늘은 조급하고, 오늘 없는 내일은 허무하다. 데이빗 고든 그린 감독,『프린스 아발란체 :: Prince Avalanche』입니다. # 1. 번득 제목은 수상하다. 아발란체는 눈사태를 뜻하니 '눈사태 왕자'쯤 될 텐데, 영화는 눈사태와 아무 관련이 없고, 어리숙한 두 남자는 왕자와 더더욱 관련이 없다. 실제 감독 역시 꿈에서 우연히 영감을 얻었을 뿐 별다른 의미는 없다 소회 하니, 그런가 보다 해도 나쁘진 않다. 다만 제멋대로인 제목은 영화 속 해체적인 이미지와 파편적인 전개, 부조리한 분위기를 흐릿하게 암시하는 듯도 보인다. 흘러가는 크레디트 뒤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느슨하게 연상된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던 걸까. 아이슬란드 영화 (2011)를 ..

Film/Comedy 2025.06.08

개성적인 우리들 _ 소피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나인 안티코 감독

# 0. 제대로 배우지 않아 엉망이지만, 그래서 개성적인 우리들 나인 안티코 감독,『소피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 Playlist』입니다. # 1. 파편화된 청춘의 일상을 만화가 특유의 리듬으로 그린다. 원제 Playlist가 그러하듯 영화는 주인공 소피가 마주하는 삶의 여러 문제들—불안정한 직업과 미래, 복잡 다난한 대인 관계, 갑작스러운 건강 이슈, 열악한 주거 환경 등—을 랜덤 트랙처럼 배치한다. 소피가 체감하는 현실의 무질서함과 미래의 불확실함, 그로 인한 내면의 혼란을 복합적으로 암시하는 것이다. 흑백의 화면은 현실의 질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선택. '도전하는 청춘에 대한 낭만적 환상'은 화려한 색채와 함께 걷어내고, 인물의 생생한 감정과 상황의 버거움에 온전히 ..

Film/Comedy 2025.05.06

안부 전화를 해요 _ 줄스, 마크 터틀타웁 감독

# 0. 어떤 영화는 소박해서 훌륭하다. 마크 터틀타웁 감독,『줄스 :: Jules』입니다. # 1. 전형적인 미국의 마을에는, 전형적인 미국인 할아버지가 살고, 전형적인 미국식 저택 뒤뜰로, 전형적인 회색빛 우주선이 추락한다. 다들 먹다 남은 외계인 하나쯤은 있을 테니 그리 이상할 것 없는 평범한 이야기. 요염한 자세로 쓰러진 진지한 표정의 외계인과 그가 타고 온 우주선의 꼬락서니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얼마나 소박한 것인가를 가늠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니 SF가 아니다. 외계인이 초능력으로 강도의 머리통을 폭파시킨다거나, 수상한 노인 둘이서 죽은 고양이 시체를 모은다거나, 검은 옷 빼입은 요원들이 문을 부수고 들이닥치는 등의 사소한 장면들만 제외하면 영화는 따뜻한 휴먼 드라마의 ..

Film/Comedy 2025.04.20

간귀 _ 데드 탤런트 소사이어티, 존 쉬 감독

# 0. 맛은 평범하지만 간은 귀신같이 맞췄다. 존 쉬 감독,『데드 탤런트 소사이어티 :: Dead Talents Society』입니다. # 1. (1989)를 대화하다 보면 꼭 따라붙는 이야기가 있다. 제목에 대한 비하인드다. Dead Poets는 죽은 시인이라기보다는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과 같이 오래전에 죽은 옛날 시인에 가깝고, Society는 모임이나 협회를 뜻하는 것이기에 '고전 시인 협회' 정도가 적당함에도 그것을 냅다 직역하며 생긴 오역이라고 말이다. 다만 세태를 두루 관조하는 면이 없잖아 있었던 내러티브와, 특유의 비장한 뉘앙스가 작품이 받은 사랑에 보탬이 되었다는 아이러니를 첨언하면 대충 교양 있는 스몰 토크가 완성된다. 의 제목은..

Film/Comedy 2025.04.04

범죄의 재구성, 보급형 _ 킬 미 쓰리 타임즈, 크리브 스텐더스 감독

# 0. 이 동네에서 정신병자 집회라도 있냐? 크리브 스텐더스 감독,『킬 미 쓰리 타임즈 :: Kill Me Three Times』입니다. # 1. 코미디의 심벌이 되어버린 몇몇의 배우가 총 들고 멋있는 척하고 있다면 어지간해선 밥값은 한다. 미모의 테레사 팔머와 앨리스 브라가 사이에 서 있는 미어캣 닮은 저 남자처럼 말이다. 검정 슈트 빼입고 겁나 큰 스코프 달린 저격총 들고 선 남자, 누가 봐도 스티커로 붙인 듯 어울리지 않는 콧수염의 사이먼 페그가 세상 모든 미인을 10분 만에 꼬실 수 있다는 듯 치명적인 표정으로 카메라를 직시하고 있다? 오케이, 일단 합격. 급전이 필요한 도박쟁이 남편과 보험 사기가 천직인 사이코 패스 아내가 등장한다. 은행보다 금고가 편한 분조장 의처증 남편..

Film/Comedy 2025.03.04

모범적인 연착륙 _ 핸섬가이즈, 남동협 감독

# 0. 능숙하고 매끈하게 안착한 오컬트 코미디의 모범사례 남동협 감독,『핸섬가이즈 :: Handsome Guys』입니다. # 1. 호평을 받았던 (2010)을 리메이크한 영화는 잘 짜인 미국식 장르 영화의 맛을 훌륭한 현지화로 이식하는 데 성공한다. 이민재 감독의 (2019)이나 신정원 감독의 (2020)과 비슷한 야심을 가진 작품으로, 개인적으론 두 작품보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 평가하고 있고 세간의 평도 크게 다르진 않은 듯하다. 거친 표현을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당장 포스터만 봐도 안다. 유달리 세월을 정통으로 처맞은 이성민과 이희준의 섹도시발 표정을 보고도 주먹구구식으로 흘러가는 병맛 코미디 외에 다른 장르를 기대했다면 그건 관객이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놀란 건 표현..

Film/Comedy 2025.02.26

노스탤지어의 풍경화 _ 문라이즈 킹덤, 웨스 앤더슨 감독

# 0. 사진이 아닌 그림이고 설명이 아닌 문학이며 대화가 아닌 음악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문라이즈 킹덤 :: Moonrise Kingdom』입니다. # 1. 사소하다. 뉴 펜잔스 섬의 곳곳도, 카키 스카우트의 야영장도, 낡은 경찰서와 항구도, 사랑의 도피를 떠난 샘과 수지도, 그들의 탐험과 낙원도 모두 작고 사소하다. 웨스 앤더슨은 그 심각성이 사소해 보일 수 있도록 다운스케일링된 이야기를 최대한의 사랑스러움으로 가다듬어 인형의 왕국을 축조한다. 사소함을 역설하는 달뜨는 왕국에서 감독은 무엇을 찾고 싶었던 걸까. 무엇을 담고 싶었던 걸까. 세계는 안전함과 별개로 구속적이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 그러하다. 울타리에 둘러싸인 야영지가 그러하다. 스카우트의 규율과 규율을 증명하는 무..

Film/Comedy 2025.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