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여기 외로운 아들들의 동화가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프랑켄슈타인 :: Frankenstein』입니다.
# 1.
어머니와 다정한 경우는 더러 있지만, 아버지와 돈독하기란 쉽지 않다. 아버지가 성공한 사람일수록, 타고난 성정이 엄격할수록 더욱 그렇다. 일생 가족을 건사한 아버지는 자식이 헤쳐 나갈 세상이 녹록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아비는 그것을 표현하는 데 어리석고, 아들은 아비의 마음을 헤아리기엔 너무 어리다. 때문에 몇몇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동시에 나는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 섣부르게 다짐한다. 긴 시간이 흘러 아이를 가지고 나서야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겠지만, 그때는 아버지와 대화하기엔 이미 늦다. 떠나버린 아버지가 고픈 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를 답습할 것이고, 그렇게 대는 하염없이 이어진다.
메리 셀리의 역작 프랑켄슈타인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해석되어 왔다. 신과 피조물의 관점에서 파생된 인간성 탐구가 한 갈래, 아버지와 아들의 관점에서 파생된 관계성 탐구가 다른 갈래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굳이 첫 번째 담론을 외면하진 않으나 그럼에도) 두 번째 담론에 크게 집중한다. 메리 셀리의 빅터가 순수한 과학적 지식 탐구에 기반한 계몽주의적 오만함을 추동하는 인물이었다면, 델 토로의 빅터는 부성애 결핍에 시달리는 '망가진 아들'로 해석된 존재다. 감독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고, 창조자이자 피조물이며, 아들이자 아버지인 빅터에 대해 맹렬히 탐구하고 있고, 그렇기에 그는 세상 수많은 아들들의 집합이자, 아들들의 조각을 모아 빅터라는 크리처를 창조한 델 토로 본인과 다를 바 없다.
작품은 크게 세 개의 자기 고백으로 구성된다. 레오폴드의 시간, 빅터의 시간, 크리처의 시간이다. 각각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반복하는 것으로 보이나, 그럼에도 모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다각적 논의로 소집되어진다. 따라서 영화의 플롯은 순차적으로 빅터의 내면 깊은 곳을 향해 파고드는 과정이라 해석할 수 있는데, 이 글은 그러한 관점에서 풀어갈 것이다.

# 2.
시작은 레오폴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내 이름을 가졌기 때문에 너를 아낀다'라는 조건부적 사랑을 주입한 존재다. 이는 빅터로 하여금 스스로 '아버지도 실패한 죽음을 정복함으로써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괴물'로 규정하게 만든다. 윌리엄은 레오폴드가 그토록 바라던 아들이고, 따라서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었던 빅터에게 동생은 '자아의 이상향'을 대신한다. 이후 빅터는 윌리엄의 약혼녀 엘리자베스를 사랑하게 되는 데, 그녀의 존재란 동생이 독점한 결핍이라는 면에서 '부모의 사랑'과 다를 바 없다. 굳이 엘리자베스와 빅터의 어머니를 같은 배우가 연기한 이유다. 따라서 빅터는 스스로 윌리엄이 되어 아버지로부터 사랑받는 것을 꿈꾸고 있었으나 그것을 이룰 수 없었던 존재인 것이고, 이 유년기 사랑에 대한 갈증은 역설적으로 가시적인 존재 증명, 즉 생명 창조에 대한 광적인 집착으로 구체화된 셈이다.
한편 엘리자베스는 단순히 아름답고 다정한 여인이 아닌 빅터의 오만과 기만을 간파하는 영적인 캐릭터로 재해석된다. 빅터의 어머니는 빅터가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 스스로 진솔하고 윤리적인 사람, 나비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영민한 빅터도 그것이 옳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알고 있지만 받아들일 수 없기에 무한히 퇴행하는 교착적인 상태에 갇혀 있을 뿐이다. 붉은색은 죽은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색, 즉 어머니의 색이다. 따라서 화면을 온통 물들인 붉은 천사는 빅터가 이미지화하고 있는 부모의 사랑이고, 빅터는 그것이 자신에게 사명을 불어넣어 준다 믿었다. 이후 천사의 가면 아래 흉측한 해골은 그것이 타락일 뿐이었음을 의미하는 데, 그 보다 중요한 것은 그 꿈을 스스로 꾼 것이 다름 아닌 빅터 자신이라는 점이다.
웅장한 빅터의 실험실은 이 모든 모순적이고 해리된 심리 상태를 끌어 모아 투사한다. 이를테면 범죄자의 시체는 죄책감을, 전사자의 시체는 피해의식을 대변하는 식이다. 빛과 그림자, 피와 생명, 녹음과 잔해가 나뒹구는 높고 뾰족한 성은 빅터의 오만하고 순수한 이상이 미술적으로 투사된 공간이다. 불가분함에도 불구하고 불순물로 취급되는 무기상 하를랜더는, 빅터의 동기란 현실적인 이익(자본, 영생)에 있지 않으며,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꿈꾸는 그에게 매독과 같은 불결한 것일 뿐임을 명시한다. 잔잔한 슬픔이 흘러 모여 격랑의 바다가 된 지하실은 방치된 무의식의 공간이다. 그렇기에 그곳에 격리된 크리처란 빅터의 무의식, 빅터의 그림자일 수밖에 없다.

# 3.
레오폴드가 빅터의 근원, 빅터가 빅터의 자아라면, 크리처는 빅터의 영혼이다. 두 번째 파트, 피조물의 이야기다. 크리처는 빅터가 억지로 짓누른 본래의 기질이기에, 그것에 족쇄를 채워 학대하는 모습을 본 엘리자베스에게는 '나비의 날개에 족쇄를 채운 것'과 다르지 않으니 환멸 하지 않을 수 없다. 간절히 꿈꾸던 이상을 달성시켜 주리라 믿었던 크리처가 부모의 사랑, 즉 엘리자베스의 사랑은커녕 그녀가 자신을 증오하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된 빅터는, 크리처를 성(자아)과 함께 폭사시키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내면의 그림자는 폭탄 따위로 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크리처는 이미 관념적인 존재이기에 이후의 플롯은 동화적으로 서술될 수밖에 없다. 까마귀와 사슴과 늑대와 생쥐의 우화, 눈먼 노인과 숲의 정령에 대한 동화 따위다. 순수한 존재들 간의 교감, 타인에게 다정한 선의, 나이를 초월한 우정, 고통스러운 정체성을 직시하는 용기, 잔인하고 숭고한 세계의 순리를 경험하며 학대당하던 소년의 영혼은 자신의 근원, 빅터에게로 되돌아간다.
윌리엄과 엘리자베스의 결혼식은 빅터의 타협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그가 엘리자베스(부모의 사랑)를 되찾지 못한 것은 완벽한 크리처를 창조하지 못한 자기 탓이라는 인식인데, 그 아래에는 적어도 '자신의 영혼을 억누른 자기 증명'이라는 방법 자체가 틀리지는 않았다는 최소한의 자위가 숨어있다. 그런 빅터의 앞에 크리처가 돌아와 동반자를 만들어 달라 요청한다. 괴물의 창조는 타락이고, 순수한 크리처조차 타락을 요청한다는 것은 빅터에게 자신의 타락이 부모의 사랑과 무관한 본연의 기질이었음을 직시하게 하는 것과 같다. 즉, 갈구하는 크리처의 등장은 빅터에게 자신의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그래서 빅터는 원론적으로 윌리엄이 될 수 없음을 뜻한다. 윌리엄이 크리처에게 살해당하는 이유다. 한편 부모의 사랑이란 그런 타락한 자아조차 품는 것이고, 이는 빅터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합리화한 레오폴드의 학대에 대한 이미지가 파괴되었음을 의미한다. 크리처를 보호하는 엘리자베스가 빅터에 의해 살해당하는 장면의 함의다.

# 4.
끝내 자아와 인생 전체를 부정당한 빅터는 크리처를 쫓지만 이유도 목적도 없다. 원망스러운 자기혐오와 애처로운 애정결핍만이 있을 뿐이다. 북극은 마지막 남은 빅터의 아집과 맹목성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둘의 이야기를 듣는 선장이 선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쪽을 향하던 오프닝과 연결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윌리엄도, 엘리자베스도 사라진 세상에서 의지할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영혼은 스스로를 희생해 손을 뻗어 화해를 청한다. 결국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두 개의 파트란, 두 개의 자아가 각자의 내밀한 고통을 피투성이 손바닥에 얹어 상처투성이 손가락 끝을 간신히 내미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긴 방황의 끝에서. 마침내 빅터는 외로움에 격리한 가여운 나를 응시하고 대화하고 사과하고 화해한다. 부모의 영향력에 잠식된 자아는 영면에 들고 스스로 독립적인 내가 되어 태양 앞에 서는 고결한 아들이다.
그래서 멜랑콜리한 고딕 호러와 섬찟한 바디 호러가 난무하는 영화는 더없이 진중한 멜로다. 사실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음에도, 심지어 상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어리석은 바보들이 로맨틱한 태양 앞에 자신을 고백하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레오폴드라는 마음과 윌리엄이라는 마음과 엘리자베스라는 마음은 부서질 것이나. 화해한 빅터의 영혼은 부서진 채로 살아낼 것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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