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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코러스, 레니, 린다 _ 마이티 아프로디테, 우디 앨런 감독

그냥_ 2025. 12. 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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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황금빛 미소의 아프로디테

 

 

 

 

 

 

 

 

우디 앨런 감독,

『마이티 아프로디테 :: Mighty Aphrodite』입니다.

 

 

 

 

 

# 1.

 

고대 그리스의 원형 극장. 한 무리의 코러스가 등장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아이스토파네스나 에우리피데스 같은 고전 극작가의 스토리텔링을 오마주해, 뉴욕에 사는 스포츠 기자 레니 와인립의 소동극에 더할 비장미를 빌려오기 위함이다. 물론 그것을 고스란히 차용할 우디 앨런은 아니다. 엄숙한 등장에도 불구하고 코러스가 논평하는 대상은 아킬레스나 오이디푸스 같은 신화 속 영웅이 아닌, 신경증적 뉴요커의 양육 문제나, 아내의 불륜, 매춘부 개조 시도 따위의 한심한 것이다. 현대인의 사소한 고민조차 고대 비극이 다루던 운명, 윤리, 어리석음 같은 원형(Archetypes)의 연장선에 있다 주창하면서도, 형식과 내용의 괴리를 통해 그 진중함을 비웃는 모습은 과연 우디 앨런스럽다.

 

작중 코러스는 오로지 레니 하고만 소통한다. 일련의 독점적 상호작용은 코러스가 레니의 내면화된 도덕적, 혹은 운명론적 의식을 외부로 투사한 메타드라마적 장치임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레니가 생모의 정보를 불법적으로 취득하려는 장면에서 코러스는 레니가 애써 무시하려는 고전적 지혜나 초자아의 목소리를 성실히 대변하고 있다. 그 순간 레니의 반응은 흥미롭다. "그것이 당신이 항상 코러스 멤버로 남아있는 이유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나는 행동한다. 나는 일을 만든다." 고전적 운명론을 경멸하고 개인의 자유의지를 신봉하는 현대인의 휴브리스[각주:1]다.

 

 

 

 

 

 

# 2.

 

나르시시스트 우디 앨런의 영화 속 주인공은 언제나 우디 앨런 자신이다. 도입부터 오이디푸스를 지목하는 것처럼 그의 서사란 [고전 비극의 영웅이 운명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변주한 것과 같다. 입양아 맥스가 비범한 재능을 보이자, 레니는 아이의 생모 역시 비범한 여성일 것이라 확신하고 그녀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어렵게 찾은 생모 린다 애쉬는 어리석고 둔한 매춘부였음이 밝혀진다. 레니는 충격을 받지만, 이내 그녀를 '개조'해 부도덕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려 한다. 마치 오래전 갈라테이아를 만들었다던 피그말리온처럼 말이다. 코러스는 레니의 시도에 '신이 되는 것'이라 비난하며 경고하지만, 레니는 역으로 조롱하며 자신은 행동주의적 현대인임을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 맹인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통렬하다. 거리에서 돈을 건네는 레니에게, 아내 아만다의 불륜을 폭로하며 당신은 장님과 다를 바 없다 조롱하는 대목이다. 최종적으로 레니의 개조는 실패한다. 특히 캐빈에게 중매하려 거짓을 꾸미다 실패하는 모습은, 인간이 운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다는 서사적 결론으로, 레니의 휴브리스가 명백히 좌절되었음을 선고하는 것과 같다.

 

결국 레니가 운명을 거부한 행동은 역설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그의 모든 자유의지적 행동은 예상치 못했던, 심지어 코러스가 경고한 것과도 전혀 다른 종류의 더 예측 불가능한 운명으로 이어진다. 인간 행위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 아니라, 예언될 수 있는 결정된 것이라는 고전 비극의 교훈조차 넘어서는 결말이다. 자유의지란 운명에 대항하는 힘이 아니라, 운명의 불확실성에 복무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면에서, 감독 특유의 인간 존재에 대한 싸늘한 시선이 짙게 묻어나는 셈이다.

 

 

 

 

 

 

# 3.

 

그리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린다 애쉬다. 그녀는 포르노 배우 출신 매춘부로, 레니가 속한 뉴욕 상류층 사회에서 가장 천박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동시에 이 부도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입양 보낸 아들을 그리워하며 후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유일하게 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지적으로 미숙하고 세련되지 못할지언정 황금 같은 마음을 가진 그녀는 영화 내내 예측 불가능한 매력과 순수한 생명력을 유감없이 뽐낸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과 욕망, 다산성을 관장하는 아프로디테의 현대적 표상으로, 레니의 지적이고 신경증적인 세계관에 대항하는 원초적인 에로스인 셈이다.

 

그래서 레니의 건방진 개조 시도에도 불구하고 린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지식과 의지 따위로는 생명의 원초적인 힘을 통제하거나 길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프로디테적 권능은 마지막 하룻밤을 통해 극적으로 발현한다. 레니에게 이 하룻밤은 단순한 일탈이었겠지만, 린다는 그가 알지 못하는 사이 레니의 친딸을 임신하여 출산한다. 코러스는 이 장면을 '마치 제우스와 아프로디테의 사랑'같다 논평하는 데, 그녀는 예측불가능한 다산성을 통해 그 이름처럼 '마이티'한 생명력의 여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또한 그녀의 존재는 레니의 초기 동기였던 유전자 결정론을 단호하게 해체하고 있기도 하다. 레니는 맥스의 생모가 천재적 지능을 물려주었을 것이라 가정했지만 틀렸다. 린다의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맥스는 천재이고, 못생긴 루저 레니와 낳은 딸은 아름답다. 레니가 린다를 어리석다 생각하면서도 그녀를 좋아하게 되는 감정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감정이란 지성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닌 본능적 끌림이 지배하는 영역, 즉 아프로디테의 권역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린다는 매춘에서 벗어나 헤어드레서로 전직하지만, 그조차 레니의 영향이 아닌 린다 내면의 순수하고 선한 본성이 환경을 극복하고 성장을 이끌어 냈을 따름이다.

 

 

 

 

 

 

# 4.

 

작품은 오이디푸스 신화의 잠재적 위험을 꾸준히 암시하기에, 관객은 레니의 행동이 맥스의 근친상간이라는 오이디푸스적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서사적 긴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감독은 끝내 '비극적 파멸'을 '기적적 아이러니'로 대체함으로써 고전 비극의 근친상간 클리셰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우디 앨런은 고전적 엄숙함을 현대 실존주의의 복합성으로 대체함으로써, 비극적 카타르시스 대신 삶의 기적적 아이러니라는 실존적 긍정을 제시하는 것이다. 로저 에버트가 '냉소주의의 함정을 피하고 그리스인들이 결코 관리할 수 없었던 것, 즉 행복한 결말을 가진 잠재적 비극'이라 평한 이유다.

 

몇 년 후, 레니와 린다는 장난감 가게에서 각자의 아이들과 마주친다. 운명이 인위적인 통제 노력보다 훨씬 더 기발하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재구성할 수 있음을 묘사하는 결말이다. 코러스는 비장한 논평 대신 현대적인 재즈 팝송 "When You're Smiling (The Whole World Smiles With You)"을 부르고 춤추며 작품을 마무리한다. 최종적인 긍정은 운명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카산드라의 예언은 대부분 옳았으므로), 결국 삶의 기쁨과 웃음이 그 모든 고난과 신경증을 초월한다는 앨런 특유의 시각을 종합한다. 따라서 마이티 아프로디테는 뉴욕 지식인의 신경증(레니)과 고전적 지혜(코러스)의 결합을 통해, 비극적 파국 대신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도 삶을 축하하고 미소 짓는 것이 현대인이 취할 수 있는 '그나마 실존적 태도'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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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ὕβρις(Hubris) 고전 그리스 윤리·종교 사상에서 질서 있는 세계 속 인간 행동을 규제하고 있는 한계를 불손하게 무시하는 자만 또는 교만을 일컫는 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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