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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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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속삭임

그냥_ 2024. 8. 2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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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영화관 혼자 울 것이다.

 

 

 

 

 

 

 

 

『천사의 속삭임』

 

 

 

 

 

# 1.

 

배우 최민식은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특유의 소탈한 말투로 나라도 티켓값이 부담스럽겠다 말한다. 녹록지 않은 관객의 주머니 사정을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그럼에도 만드는 이들이 작가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지적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평론가 이동진은 <사랑의 하츄핑>을 비평해 달라는 팬들의 짓궂은 농담에 살려달라는 유머러스한 답변을 남겼다. 충성도 높은 수많은 어린이 관객들과 컬트적 현상에 호기심을 느낀 몇몇의 일반 관객층에 힘입어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도전하는 하츄핑에 대한 영화팬들의 반응은 유쾌하면서 일견 자조적이다.

 

얼핏 무관해 보이는 두 사건은 결국 영화계의 위기를 접점으로 만난다. 지난해 봄 <도박을 포기한 관객들과 다음 영화의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영화의 위기에 대해 글을 쓴 적 있는 데, 그로부터 1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마땅한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 못하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임영웅이나 BTS, 블랙핑크 등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스타의 팬서비스성 작품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정한 애니메이션 영화의 성적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기성 영화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글을 쓰는 지금 걸린 영화는 박성웅의 <필사의 추격>과, 조정석의 <파일럿>, 이혜리의 <빅토리> 등인데 개별 작품의 호오와 별개로 고전 중인 듯 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2차 산업이 유달리 소극적인 산업 특성상 관객수의 급감은 더욱 치명적이다.

 

솔직히 명예로운 죽음의 유효기간도 진즉 지났다. 코로나로 인해 문화 산업 전반이 경직 축소된 것은 사실이나, 대부분은 회복세 심지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산업도 적지 않다. 특히 종목 불문 스포츠의 성장세는 대단하다. 야구는 초반 티빙 유료화로 논쟁이 있었지만, 서울 시리즈를 시작으로 치열한 순위 싸움, 유쾌한 올스타전에 힘입어 기록적인 관객몰이 중이다. 축구 역시 대표 명문 수원 삼성의 강등, 전북 현대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리그 전체적으로는 성장세가 뚜렷하다. 각 구단과 팬들의 노력, 특히 쿠팡의 적극적인 공세가 더해진 결과일 것이다. 올여름 파리 올림픽 또한 수많은 스타를 탄생시켰고 그들의 콘텐츠는 연일 히트다. 유명 가수의 콘서트와 인기 뮤지컬 타이틀의 티켓팅엔 가족친지 둘러앉아 사활을 걸어도 쉽지 않다. '거리두기'라는 말이 어느새 생경해진 지금 거리엔 러닝동호회, 자전거 동호회 등 생활 체육 모임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컬트적인 활로를 모색하는 데 성공한 양양을 비롯 무더운 여름을 피하기 위한 휴양지 역시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걸 보면 대부분은 각자의 고충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 행복해 보인다. 영화관만 빼고 말이다.

 

 

 

 

 

 

# 2.

 

어릴 적 기억 속의 영화관은 '가난한 사람들의 시간을 죽여주는 공간'이었다. 중학생 소년이 주말만 오매불망 기다려 뻔질나게 영화관을 들락거린 건, 영화가 좋아서도 있지만 몇 푼 안 되는 용돈을 아끼고 아침 밤잠을 줄일 수만 있으면 4000원짜리 조조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달리 재미있는 영화라도 볼 때면, 보다 정확히는 유달리 이쁜 배우 누나들이라도 나올 때면 두 번 세 번씩 같은 영화를 본 경우도 종종 있었다. 못생긴 시골 아이의 눈에 임수정, 문근영은 천사고, 손예진, 전지현은 신이었으니까. 어쨌든 당시를 돌이켜보면 영화보다 단위 시간당 저렴하게 시간을 죽일 수 있는 수단은 피시방이 유일했다. "마, 니 주말에 뭐 하는 데.", "할거 없는데.", "영화 보러 갈래?", "뭐 하는데.", "몰라. 가봐야 알지" 호기롭게 무슨 영화가 개봉하는지도 모를 영화관을 선뜻 갈 수 있었던 건 만만한 가격 덕이 컸다.

 

그래서 하던 말이 영화관 구경 간다는 말이다. 이때의 영화관은 어떤 특정한 영화를 상영하는 목적지향적 공간이 아니라 일종의 피크닉 장소로 받아들여진다. 생전 영화 한번 본 적 없을 것 같은 아저씨와, 청춘남녀 사이 익숙지 않은 공간이 쑥스러운 아주머니가 모처럼의 데이트로 나와 애써 자연스러운 척 영화를 고르는 풍경은 결코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추울 땐 따뜻해서 좋고 더울 땐 시원해서 좋고 나오며 이야기할 수 있어 좋은 영화관은, 한 푼 아껴 먹고살던 평범한 동네 사람들에겐 멀리 피곤하지 않고 그리 비싸지도 않은 피크닉의 상한선이었다.

 

지금도 그럴 수 있을까. 밥벌이라도 하니 망정이지 용돈이나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는 학생시절의 내가 지금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 없다. 여태 남이야기하듯 했지만 당장 내 지갑사정만 하더라도 마냥 녹록지는 않다.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 왓챠, 애플 티브이, 쿠팡플레이까지 모조리 가입해 둔 미친놈의 특수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혹하는 작품들이 개봉할 때마다 극장에서 즐기면서 가볍게 넘길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형편은 못된다. 한 장에 대충 1만 7천 원, 두장이면 3만 원. 팝콘에 콜라라도 하나씩 들면 5만 원 금방이다. 그 돈을 들여 영화관이 태워주는 시간은 고작 두어 시간 남짓. 이후 식사라도 한다 치면 8만 원, 10만 원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과연 지금도 같은 값에 영화관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죽여줄 공간이 피시방밖에 없을까?

 

 

 

 

 

 

# 3.

 

코로나는 침체이기도 했지만 하드리셋이기도 했다. 이전의 관성적 소비에 따귀를 날려 강제적으로 브레이크를 거는 거대한 리셋 말이다. 습관적으로 데이트 코스로 영화관을 가던 사람들에게 '내가 왜 그동안 영화관만 갔지?'라는 당연한 의문이 생겨버렸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사람들은 다른 갈만한 데 없나 찾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게 쌓인 실탄과, 나가고 싶은 갈증을 '제대로' 풀고 싶은 욕구도 있었을 것이고, 영화관은 그 경쟁에서 경험적으로도 가격적으로도 처절하게 패배한다.

 

대충 야구장만 해도 2만 원이면 적당한 일반석은 앉을 수 있는 데, 대신 야구는 서너 시간은 가볍게 태워준다. 축구는 티켓 가격도 시간도 비슷하지만, 굽굽하고 청소도 안된 영화관에서 펼쳐지는 뻔한 클리셰가 아닌 실제 눈앞에서 뛰어다니는 선수들의 각본 없는 드라마를 즐길 수 있다. 혹시 여유가 있어 차를 몰 수 있다면 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진다. 두어 번 영화 볼 돈 모으면 슬슬 근교 나들이 각이 잡히기 시작한다. 연인 둘이서 준수한 러닝화 한 짝씩 사서 신는 것도 어렵지 않다. 신발만 사고 나면 추가 비용도 없고, 운동해서 좋고, 힙하게 인스타 찍을 수도 있다.

 

여차하면 한강이나 카페에 퍼질러 앉아 랩탑이나 태블릿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도 늘었다. 나 같이 고지식한 사람이야 그래서 영화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냐는 둥 사운드의 중요성을 모르느냐는 둥 볼멘소리를 하겠지만 낡고 낡은 구시대적 인간의 트집일 뿐이다. 로맨틱한 시기를 지난 연인이라면 그냥 모텔을 대실해도 그만이다. 대부분의 모텔에는 ott가 가입되어 있고 편안하고 시원하고 안락하고 눈치 볼 것도 없고, 겸사겸사 다른 것도 할 수 있다.

 

갈수록 줄어드는 종업원, 갈수록 지저분한 객석, 갈수록 떨어지는 영화의 품질, 그에 반비례해 올라가는 가격에 이번 주말에도 영화를 티켓팅하는 뇌리에 악마의 속삭임은 끊이지 않는다. "야, 그 돈이면 씨발 야구장을 가지." 갈수록 농도가 짙어지는 빌런의 비율, 갈수록 다채로워지는 빌런의 행각, 역으로 제멋대로 통제하려 드는 자칭 시네필의 패악질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가는 발걸음 뒤로 악마의 속삼임은 끊이지 않는다. "야, 그 돈이면 씨발 집에서 보고 말지." ... 아니지, 잠깐. 이걸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하는 게 맞나?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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