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728x90

로맨스 71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다 _ 바베트의 만찬, 가브리엘 액셀 감독

# 0. 강신주 교수는 라는 책을 통해 무문관(無門關)을 저 같은 똥멍청이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을 따라 48개의 관문을 차근차근 넘는 동안 수많은 화두들을 흥미롭게 즐기고 나면 어느새 서서히 하나의 메시지로 소집됨을 느끼게 되죠. 집착을 벗어던지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자. '가브리엘 액셀' 감독, 『바베트의 만찬 :: Babettes gæstebud』입니다. # 1. 기본적으론 요리 영화입니다. 노라 에프론 감독의 과, 브래드 버드 감독 ,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과, 존 파브로 감독의 같은 정줄 놓고 편안하게 남들 밥 차리고 밥 먹는 거 구경하는 먹방 영화들의 조상님 쯤 될법한 영화죠. 동시에 종교 영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주인공부터 일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

Film/Drama 2021.04.29

철창 안의 새 _ 엘리사와 마르셀라, 이자벨 코이젯트 감독

# 0. 사람들은 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녀들을 싫어한 걸까. 그녀들은 대체 왜 그렇게까지 서로를 사랑한 걸까. '이자벨 코이젯트' 감독, 『엘리사와 마르셀라 :: Elisa y Marcela』입니다. # 1. 사랑을 다루고 있음에도 멜로보다는 에 더 가까울 영화입니다. '엘리사'와 '마르셀라'의 사랑이 쌓여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긴 합니다만, 그보다는 두 사람이 시대의 폭력을 피해 정착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떠도는 여정과, 그 과정에서의 존재론적 외로움을 더 많이 포착한 작품이기 때문이죠. 20세기 초, '다양성의 가치'를 '종교적 미덕'이 폭력적으로 압도하던 시대. 두 주인공이 서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치러야 했던 고통의 시간을 다룹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라는 점입니다. 가 아니라는 점이죠...

Film/Drama 2021.04.11

슬랩스틱 로맨스 _ 페어리, 도미니크 아벨 감독

# 0. 이곳은 상상想像과 수사修辭가 현실이 된 요정의 나라. 도미니크 아벨, 피오나 고든 부부에게 사랑은 그런 곳입니다. '도미니크 아벨' 감독, 『페어리 :: La fée』입니다. # 1. 지루한 일상은 내달리는 자전거와 반복되는 티브이 시청으로 구체화됩니다. 손님에게 무관심한 돔의 태도는 가방 안에 숨겨둔 강아지 미미를 알아채지 못하는 모습으로 과장됩니다. 요정 같은 환상적인 사랑과의 첫 만남은 직접 자신을 요정이라 소개한 후 고장 난 엘리베이터를 고치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의 심드렁한 마음은 연출된 퉁명스러움으로. 돌이켜보면 기적 같았던 우연은 실제 비현실적인 기적으로 표현됩니다. 나를 살려준 그녀의 손길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부드러웠기에 실제 피오나는 돔의 위에서 춤을..

Film/Romance 2021.03.29

탐정놀이의 목적 _ 레베카, 벤 휘틀리 감독

# 0. 히치콕 감독의 리뷰 말미에 말씀드린 대로 불필요한 선입견 없이 기대를 가지고 작품을 보려 노력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기대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는 레베카가 아닙니다. '벤 휘틀리' 감독, 『레베카 :: Rebecca』입니다. # 1. 히치콕 감독의 작품이 원작으로서 완벽하기에 이후 창작되는 는 모두 1940년 작품 속 설정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식의 순혈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레베카가 아니다라는 표현은 레베카라는 인물의 존재를 극의 중심에 놓고 전개되는 영화가 아니라는 뜻이죠. 이 영화는 오히려 입니다. 릴리 제임스가 연기한 '나' 말이죠. 영화에는 무수히 많은 부실함이 발견되는데요. 그 대부분은 이야기는 레베카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

Film/Thriller 2021.03.11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_ 레베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넷플릭스의 를 보려 했습니다. 'DELING' 님 댓글 덕에 뮤지컬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요. 살펴봤더니 리메이크 작이더군요. 원작은 무려 1940년 작, 그것도 히치콕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라기에 까흠짝 놀랬더랬죠. 더 놀라운 건 그 마저 1939년에 출간한 '다프네 뒤 모리에'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역시 무식하면 놀랄 일이 이렇게나 많습니다. 80년 전 책을 찾아보기엔 너무 게으르고 뮤지컬은 볼 방법이 없다는 핑계로 작품에 대한 감상은 영화 두 편 연이어 보는 것으로 적당히 갈음하려 합니다. 기대되는군요. 오래전 명곡을 리메이크 버전과 비교해 듣는 재미가 있듯 영화 역시 같은 서사를 다루는 두 창작자의 시각을 적절히 비교해 가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니까요. 우선은....

Film/Thriller 2021.03.10

2학기에서 _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이와이 슌지 감독

# 0. 쏘아 올린 불꽃을 옆에서 보면 둥글까요, 납작할까요. 불꽃놀이는 어디서 보아야 가장 아름다울까요. '이와이 슌지'는 왜 이 질문을 관객들에게 건넨 걸까요. '이와이 슌지' 감독,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 打ち上げ花火、下から見るか?横から見るか?』입니다. # 1. 오래된 브라운관 테레비. 촌스럽고 과장된 선전. 잡동사니가 가득한 문방구와, 새빨간 낡은 운동화. 친구 집에서 가지고 놀았던 게임기. 슈퍼마리오. 매주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슬램덩크의 신간. 친구들과 하루 종일 뛰놀아도 지친 줄 모르던 깡마른 꼬꼬마 시절의 나, 그리고 우리. # 2. 무더운 여름. 온종일 귓가에 맴도는 매미소리. 8월이면 어김없이 열리던 마을 불꽃축제. 그때만 맛볼 수 있었던 달콤한 솜사탕과 짭..

Film/Romance 2021.01.10

아담 샌들러 홈커밍 _ 머더 미스터리, 카일 뉴어첵 감독

# 0. 아담 샌들러 + 제니퍼 애니스턴입니다. 전형적인 미국식 말장난 코미디물이라는 거죠. '카일 뉴어첵' 감독, 『머더 미스터리 :: Murder Mystery』입니다. # 1. 말장난 코미디이자 대리만족 포르노입니다. 범접할 수 없는 경제력을 가진 부호들 한복판에 떨어진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평범한 중산층 커플'이 그들 수준의 부를 맘껏 누리는 걸 보며 대리만족을 즐기는 영화죠. 여기서 멈추면 영화가 끝나고 난 후 부러움과 질투심, 열패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만 남게 될테니 끝나기 전에 현실로 돌아와 으쓱할 수 있도록 부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한방 먹이며 자존감을 회복할 겁니다. 그 한방이라는 것은 언제나 돈보다 더 의미 있는 가치를 역설하는 훈계질로 귀결될 가능성이 클테죠. # 2. 세부적인 방..

Film/Comedy 2020.11.15

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아요 _ 애수, 머빈 르로이 감독

# 0. 1940년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 구조를 가져와 세계 대전 전후의 영국을 배경으로 변주한 후 '비비안 리'의 미모와 '로버트 테일러'의 잘생김을 끼얹고 워털루 브릿지라는 공간으로 구체화된 쓸쓸한 서정성으로 마무리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머빈 르로이' 감독, 『애수 :: Waterloo Bridge』입니다. # 1. 첫눈에 사랑에 빠진 두 선남선녀가 등장합니다. 두 사람의 순수하고 고결한 사랑은, 앙숙인 몬테규-캐퓰렛 가문 간의 갈등이나, 영독 전쟁 따위의 저항하기 버거운 외부 요인에 의해 방해받게 됩니다. 달빛 창가에서의 세레나데나, 비 오는 날의 청혼과 같은, 짧지만 아름다운 데이트와 약속을 나눕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결투나..

Film/Romance 2020.10.08

캐스팅이 80% _ 시시콜콜한 이야기, 조용익 감독

# 0. 장르물의 성패는 대부분 감독의 역량에 의해 좌우되곤 합니다만, 단 하나. 로맨스물 만큼은 감독보다 배우의 개인기에 의해 성패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그 좋은 예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네요. '조용익' 감독, 『시시콜콜한 이야기 :: Trivial Matters』입니다. # 1. 분명 이 영화는 어설픕니다. 평범한 젊은 남녀가 썸을 타는 동안의 말랑말랑한 감수성을 다루는 영화인데 정작 두 주인공의 일상성과 균형이 모두 무너져 있거든요. # 2. '엄태구'의 '도환'은 찐따입니다. 오래 전의 내가 겹쳐 보이는 것만 같은 자연스러움과 민망함이 전달되어야 할 보편적 캐릭터 표현 대신 나와 아무 상관없는 '도환'만의 찌찔함이 묘사됩니다. 인물을 둘러싼 곁가지 설정들 대부분 명확한 계획하에 배치되..

Film/Romance 2020.09.27

장미빛 절망 _ 카이로의 붉은 장미, 우디 앨런 감독

# 0.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사탕을 슬쩍 보여준 후 영원히 다시 맛볼 수 없다는 걸 증명합니다. 사탕이 달콤하면 달콤할수록, 1920년의 파리가 낭만적이면 낭만적일수록, 스크린을 탈출한 모험가와의 데이트가 황홀하면 황홀할수록 절망감은 비례해 커져갑니다. 완벽한 사랑을 꿈꾸는 소년과 소녀들에게 우디 앨런의 붉은 장미는 제이슨의 마체테만큼이나 가혹합니다.        우디 앨런 감독,『카이로의 붉은 장미 :: The Purple Rose Of Cairo』입니다.     # 1.  2012년작 『미드나잇 인 파리』의 기시감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영화입니다. 이를테면 『미드나잇 인 카이로』랄까요. 물론 연대를 생각하면 이 작품이 원조, 『미드나잇 인 파리』가 계승작이라 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겠습니다만 지금..

Film/Romance 2020.08.10

달이 아름답네요 _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 리 토시오 감독

# 0. 코스프레에 재능 있는 아내와 연기파 직장인 남편입니다. 저 정도 손재주와 미모면 그냥 직장 생활 관두고 유튜버로 전직하면 떼돈 벌거 같은데요. 아직 한창인 3년 차에 이혼 같은 뻘소리 하지 말고 저랑 골드 버튼이나 노려보는 게 어때요? '리 토시오' 감독,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 :: 家に帰ると妻が必ず死んだふりをしています』입니다. # 1. 범용성 높은 가족 코미디를 늘어놓은 후 마지막 신파의 폭풍으로 한방을 노리는 한국식 드라마 영화들에 반해, 일본의 드라마 영화들은 만화적인 모에캐의 카와이かわいい한 덕후 감성으로 분량을 때운 후 안분지족安分知足식 교훈극으로 승부를 보고자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 영화는 그런 보편적인 일본 드라마 영화의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네요..

Film/Comedy 2020.07.09

영화에 관한 영화 ⅱ _ 이창,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영화에 관한 영화 ⅰ _ 이창,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유명 감독의 대표작들을 볼 때면 그러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살짝 움츠러드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무언가 이 대단한 영화가 왜 대단한 건지를 알아 모셔야만 할 것 같은 압력 같은 게 느껴진 morgosound.tistory.com # 4. 대단히 엄격한 구조의 작품입니다만 동시에 대단히 '파괴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종(縱)적인 레이어들과 각각의 레이어 안에서 다시 횡(橫)적으로 분절되는 물리적-서사적 프레임들이 만드는 입체적인 볼륨 위를 주요 인물들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동안 대단한 속도감과 긴장감이 구현됩니다. 명징하게 직조된 일련의 구조를 일탈적으로 넘나드는 순간 마다마다 관객 역시 대단한 해방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각자 장르를 대변..

Film/Thriller 2020.07.05

영화에 관한 영화 ⅰ _ 이창,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유명 감독의 대표작들을 볼 때면 그러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살짝 움츠러드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무언가 이 대단한 영화가 왜 대단한 건지를 알아 모셔야만 할 것 같은 압력 같은 게 느껴진달까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주제 파악 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스스로 영화와 관련된 소양이 한없이 빈곤하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죠. 아는 것도 없고 통찰할 능력도 없는 인간의 글이라는 걸 솔직하게 고백하고서 마음 편하게 거장이 만든 오래된 테마파크를 즐겨보겠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이창 :: Rear Window』입니다. # 1.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다리를 다친 사진작가 '제프리'가 치료하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창밖의 이웃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이웃 '쏜월드'의 행동에 의아함을 ..

Film/Thriller 2020.07.05

천우희느님 _ 출중한 여자, 윤성호 / 박현진 / 백승빈 / 전효정 감독

# 0. 삶의 여러 단면을 논하는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청년 실업의 자해적 고통 『한심해서 죄송합니다』. 2시간 30분짜리 막장 영화 『라스트 데이스 오브 아메리칸 크라임』. 냉전 시대의 아픔과 인간성의 저력을 관조하는 『어네스트와 셀레스트』. 과학적 메시지를 다루는 방법론에 관한 고찰 『빙하를 따라서』까지. 최근 빈약한 지적 내구력의 한계를 시험케 하는 어렵고 복잡한 영화들을 연이어본 결과 결국 방전되고 말았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지칠 대로 지친 심신을 달래줄 뇌의 전원을 내리고 볼 수 있는. 아니면 말고식 가벼운 웹드라마나 하나 찾아봐야겠네요. '윤성호', '박현진', '백승빈', '전효정' 감독, 『출중한 여자 :: Prominent Woman』입니다. # 1. 웹드라마는 기본적으로 단단한 ..

Series/Romance 2020.06.19

Miluju tebe _ 원스, 존 카니 감독

# 0. 무명 뮤지션의 버스킹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동시에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낭만으로 가득하기도 하죠.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들이 삶을 통채로 걸어 음악을 하는 이유와, 외로운 사람들이 열렬히 사랑을 갈구하는 이유를 함께 느끼게 하는 영화입니다. 뻔뻔한 소매치기와 고장 난 청소기와 관절염에 자살해버린 아버지와 악기상에서 치는 피아노 위로 아일리시 모던 락에 담긴 사랑이 울려 퍼집니다. '존 카니' 감독, 『원스 :: ONCE』입니다. # 1. 영화는 비어 있습니다. 의도된 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재구성한 풍경들, 이를테면 음악을 연주하는 순간마다 등장하는 연출이 마련해준 가상의 무대 따위는 없습니다. 진행을 위해 필요한 사람들과 필요한 조건들이 동원된다던지 하는 등의 계획된 인과 역..

Film/Romance 2020.06.06

비처럼 음악처럼 _ 쉘부르의 우산, 자끄 드미 감독

# 0. 대화를 포함한 극의 전반을 음악으로 구성하는 오페라의 매력과, 노래하는 동안의 캐릭터와 연기를 북돋우는 뮤지컬의 매력과, 연출과 편집이 적극적으로 극에 개입하는 영화의 매력을 환상적으로 배합해 낸 작품입니다.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샹송과 황홀하고 매혹적인 색감이 비가 되어 관객을 사랑으로 흠뻑 적십니다. '자끄 드미' 감독, 『쉘부르의 우산 :: Les Parapluies De Cherbourg』입니다. # 1.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항구도시 '쉘부르'에서 엄마와 함께 우산가게를 운영하는 '쥬느뷔에브'와 자동차 정비공 '기이'. 두 젊은 연인의 열렬한 사랑이 알제리 전쟁으로 인해 어긋나게 되는 과정과 그 후를 그린 비극적 멜로 영화입니다. 역사적 사건이라는 거대한 풍파에 떠밀린 개인의 비극이라는..

Film/Romance 2020.05.18

내 실수였어 _ 넌 실수였어, 타일러 스핀델 감독

# 0. 개인적으로 근래 본 모든 영화 중 가장 적절한 제목의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이 영화에는 아주 사소하고 귀여운 '실수'들이 몇몇 있기 때문이죠. '타일러 스핀델' 감독, 『넌 실수였어 :: The Wrong Missy』입니다. # 1. 첫 번째 실수.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 캐릭터가 비호감입니다. 조금 독특한 성격 탓에 평소엔 그닥 주목받지 못하지만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러운 그런 풀꽃 같은 여자... 가 아니라 '미시' 얜 그냥 비호감입니다. 아니, 비호감이라는 말도 순화된 표현이구요. 역겹다는 게 더 정확할 지경입니다. # 2. 두 번째 실수. 로맨틱 코미디의 남주인공 캐릭터가 비호감입니다. 주인공이 둘인데 둘 다 비호감이라는 거죠. 내일모레 환갑인 64년생 할아재를 데려다 섹..

Film/Romance 2020.05.17

무제 _ 아무르, 미카엘 하네케 감독

# 0. 굳게 잠긴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서는 저택. 깊은 방 침대 위 곱게 눈을 감은 노년의 여인. 누가 놓았는지는 몰라도 사랑이 가득 담긴 것만은 확실한 꽃잎들과, 무언가가 자유로이 날아간 것만 같은 열린 창. 사랑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AMORE. 영면에 든 노인과, 그녀와 마지막을 함께 했을 누군가에게 보내는 듯한 청중의 긴 박수소리. 일련의 오프닝 시퀀스는 사실 이 작품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의 서사는 여인이 마지막으로 건넜을 켜켜이 겹쳐진 시간들과, 그녀를 마지막까지 사랑한 누군가들과, 이들의 여정에 존중의 박수를 보내는 이유에 대한 각주라 할 수 있죠. '미카엘 하네케' 감독, 『아무르 :: Amour』입니다. # 1. 깊고 좁은 복도를 걸어 들어가는 노부부. 잘 들리지도 않는 ..

Film/Romance 2020.05.06

에스프레소 _ 콜드 워,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 0. 포스터만 봐도 어려운 영화입니다. 감독 이름에서부터 심상치가 않죠. 도스토예프스키든, 차이코프스키든, 로만 폴란스키든 어쩌고 저쩌고 스키 들어가면 대부분 엄청 대단하면서 동시에 무지막지하게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이 감독...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싶었는데, 세상에나. 『이다』의 감독이었군요.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콜드 워 :: Cold War』입니다. # 1. 정서와 서사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때깔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전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패턴화 된 오브제들의 감각적인 리듬, 적재적소에 4:3 비 화면을 명확한 의도 하에 과감하게 잘라 들어가는 굵은 선, 깊은 여운을 불러일으키는 여백 등의 이미지가 구현하는 심미성은 이번에도 역시나 감동적입니다. 흑백의 ..

Film/Romance 2020.05.05

총과 피의 테마파크 _ 장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 0. 언제나처럼 환상적인 오프닝입니다. 지금부터 보게 될 작품이 165분에 달하는 런타임에 걸맞은 긴 호흡의 영화라는 것과, 그 긴 호흡 동안의 모든 서사가 결국 이 잘생긴 노예 한 명을 둘러싼 간결한 이야기로 귀결될 것이라는 선언이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풍부한 음장의 멋들어진 ost Django (by Luis Bacalov) 가 끝남과 동시에 감각을 제한하는 한밤의 숲으로 관객을 초대합니다. 긴장감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멋들어진 장총을 보며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찰나. 이빨을 대롱대롱 매달고 다니는 우스꽝스러운 치과의사가 의도된 방심을 연출합니다. 잠깐의 위트를 발판 삼아 다시 무자비하게 집중을 끌어올린 감독은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What's your name?" '쿠엔틴 타..

Film/Action 2020.04.15

국민 여동생의 위엄 _ 어린 신부, 김호준 감독

# 0. '송강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티켓파워와 팬덤을 가진 배우 중 한 명입니다. 대체적으로는 작품의 세계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며 함께하는 크루들과의 호흡을 중요시하는 연기 스타일의 배우입니다만 『변호인』의 클라이맥스 법정 씬이나 『사도』에서 아들의 죽음 이후 마지막 장면, 『마약왕』의 파멸직전 저택에서의 최후와 같이 혼자서 영화를 끌고 나가야 할 때엔 주저 없이 파괴력을 보여주는 배우죠. '이병헌' 역시 영화팬들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배우입니다. 『남한산성』과 『밀정』, 『내부자들』, 『광해』, 『악마를 보았다』, 『달콤한 인생』 등과 같이 선명하고 스타일리쉬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작품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지배해 나갈 때면 그야말로 혀를 내두르게 되는 훌륭한 배우죠. 명실..

Film/Romance 2020.03.26

느낌적인 느낌 _ 윤희에게, 임대형 감독

# 0. 눈. 일본. 달. 편지. 엄마. 딸. 사진. 여행. 고양이. 담배. 바텐더. 사랑. 이별. 처연하고 창백한 톤으로 서정성을 한껏 강조해 사랑이란 특별한 감정을 감성적이고 감각적이고 문학적인 묘사와 함께 관객과 교감하고 나누는 멜로드라마 영화. 코로나와 함께하는 차분하고 고요한 주말 오후의 오갱끼데쓰까군요. '임대형' 감독, 『윤희에게 :: Moonlit Winter』입니다. # 1. 보험을 깔고 갈까요. 영화 최고의 장점, 김희애가 나옵니다. 주연 배우가 다양한 상황에서의 구분된 정서를 섬세하게 다듬어 표현합니다. 막말로 티켓값은 배우 표정만으로도 거의 대부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김소혜, 성유빈의 싱그러움이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게 합니다. 역시 젊은 게 좋아요. 주제도 선합니다. 시대적 아..

Film/Drama 2020.03.22

구찌 장바구니 _ 거짓말의 발명, 리키 제바이스 감독

# 0. 명품 가방을 장바구니로 쓰는 듯한 영화입니다. 포르셰 사서 동네 마실만 도는 영화입니다. 다금바리를 잡아 어묵을 만들고 해외여행 가서 한식당만 다니는 영화입니다. 누군가는 부잣집 지하실에 사람이 산다는 가벼운 설정만으로 오스카와 칸을 동시에 연성해내지만, 누군가는 거짓말이 없는 세상이라는 거창한 아이디어로 이런 한심한 결과물을 내기도 합니다. 감독의 손에 우연찮게 진주 목걸이가 쥐어졌지만 걸고 보니 안타깝게도 돼지 목이었습니다. '리키 제바이스', '메튜 로빈슨' 감독, 『거짓말의 발명 :: The lnvention Of Lying』 입니다. # 1. 재미없기가 어려운 소재입니다. 거짓말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나만 거짓말을 할 수 있으며 그 거짓말은 모든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의심받지 않는다라..

Film/Comedy 2020.02.21

고독의 書 _ 토니 타키타니, 이치카와 준 감독

# 0. 한 줌의 수분도 없는 모래장. 모래의 바다에서 태어난 배. 그 배를 홀로 만드는 아이. 아이를 스쳐 지나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걸음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아들. 화사한 꽃들 가운데 꽃잎 한 장만 공들여 그려진 그림. 그 한 장을 바라보고 주목하고 관찰하는 아이. 의아한 그림에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선생님과, 선생님이 자신을 왜 부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이. 늦은 저녁 홀로 타는 자전거, 쓰러질 듯 위태롭게 하지만 자유롭게 자전거를 모는 아이. ‘토니 타키타니’. ‘토니 타키타니’의 본명은 정말로 ‘토니 타키타니’입니다. '이치카와 준' 감독, 『토니 타키타니 :: トニー滝谷』입니다. # 1. 까슬한 책장을 조심스레 넘기는 것만 같은 영화입니다. 건조해 만지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찢어질 ..

Film/Drama 2020.01.08

이런 위로도 있다 _ 내 몸이 사라졌다, 제레미 클레팡 감독

# 0. 그로테스크한 표현과 육중하게 침전되는 감각, 독특한 상상력과 따뜻한 주제의식이 인상적입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소년 '나오펠'의 곤궁하고 허무한 삶의 여정, 해부학실을 탈출한 '손'의 위태롭고 불안한 모험이 분리된 서사의 물리적 결합을 넘어 적극적으로 정서를 주고받는 화학적 결합에 다다릅니다. 직접적이고 말초적인 불쾌감과 사회적이고 관계적인 불쾌감을 교차적으로 매칭 하는 방식이 효과입니다. 비 내리는 저녁의 피자배달, 나무로 만든 옥상의 이글루, 돌고 돌아 몸 옆에 자리하는 손, 차갑고 위태롭게 서있는 타워 크레인의 모습들 마다마다 서정성이 상당합니다. '제레미 클레팡' 감독, 『내 몸이 사라졌다 :: J'ai perdu mon corps』 입니다. # 1. '나오펠'의 삶은 보통의 드라마들처..

Film/Animation 2019.12.04

3분 20초 _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감독

# 0. 1970~80년대 모타운 음악들을 좋아합니다. 스티비 원더나 템테이션스, 인챈트먼트, 잭슨 5, 마빈 게이, 슈프림즈 같은 이름들이죠. 리뷰를 쓰는 지금은 'Superstition'으로 유명한 '스티비 원더'의 『Talking Book』 앨범 수록곡 'Lookin' for another pure love'이 흘러나오고 있네요. 서른 줄이 넘어가다 보니 새로운 노래들을 찾는 게 점점 힘에 부친 달까요. 안전하고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특정 브랜드에 익숙해져 갑니다. 얼마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녔던 것 같은데요. 갑자기 서글프네요. 물론 이건 제가 이상한 거구요. 보통 저의 세대에겐 버즈와 SG워너비로 대변되는 소몰이 창법 때의 음악이 향수를 불러 일으킵니다. 저보다 살짝 윗 세대분들은 야다나 얀 같..

Film/Romance 2019.09.27

안소희의 마스크뿐 _ 아노와 호이가, 이재용 감독

# 0. 여성주의 영화라고 합니다. 대체로 무슨 '주의'가 붙은 영화들은 모 아니면 도입니다. 이념적 목적성에 철저히 복무하는 한심한 영화거나, 이야기의 결과가 이념이 지향하는 가치를 증명하는 멋진 영화거나. 과연 이 영화는 모일까요 도일까요? '이재용' 감독, 『아노와 호이가 :: Anu and Huyga』입니다. # 1. 최고의 장점은 단연 '안소희'입니다. 그녀의 얼굴, 눈매, 표정, 목소리, 머리카락, 붉은 홍조는 그 자체로 최고의 설득력을 가집니다. 한국인 둘이서 밑도 끝도 없이 몽골로 날아가 어색한 전통의상을 빌려 입고 벌이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설득해내야 한다. 라는 난해한 미션은 배우 혼자 몽땅 해결합니다. 풍경도 기가 막힙니다. 몽골 전통 가옥 특유의 분위기와 질감이 대단히 포근하게 묘사됩..

Film/Romance 2019.09.26

야한 척 _ 오, 라모나!, 크리스티나 제이콥 감독

# 0. 『몽정기』 같은 영화입니다. 사춘기 언저리의 사랑... 이라는 말로 순화된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청춘들의 영화죠. 이런 류는 기본적으로 유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찌질할 수밖에 없고 민망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아무리 유치하더라도 그보다는 더 귀여워야 합니다. 아무리 찌질하더라도 그보다는 더 순수해야 하고 아무리 민망하더라도 그보다는 더 솔직해야 합니다. '크리스티나 제이콥' 감독, 『오, 라모나! :: Oh, Ramona!』 입니다. # 1. 누가 봐도 잘생기고 비율 좋은 남자 주인공이 찐따라 우기며 등장합니다. 수다스러운 동성친구와 함께 앉아 있는 테이블 맞은편에는 첫눈에 반한 퀸카가 자리하고 있죠. 결국 영화는 저 퀸카 '라모나'와 어떻게든 한번 자보려는 발버둥... 인가 싶었는데 어라? ..

Film/Comedy 2019.09.21

내가 너를 놓쳤어 _ 먼 훗날 우리, 유약영 감독

# 0. 왕가위 감독의 , , , , 진목승 감독의 , 혹은 오우삼 감독의 시리즈와 같은 냄새입니다. 개인의 곤궁함으로 모자이크 된 화려한 도시를 부유하는 청춘들의 이야기. 거부할 수 없는 흐름 속에 표류하는 사람들의 위태로움과 발버둥. 그 아래 흐르는 처연하고 섬세한 서정성과, 처절하고 육중한 고독감 등을 꺼지기 직전 가장 밝게 빛나는 불꽃처럼 눈부시게 그려내던 그 시절의 그 영화들 말이죠. 유약영 감독, 『먼 훗날 우리 :: 後來的我們』 입니다. # 1. 물론 정서의 결은 살짝 다릅니다. 홍콩 영화는 반환을 앞두고 거대한 집단이 통째로 입양되는 듯한 긴장감,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의하지 못하는 존재들의 불안함, 정착하지 못하고 버려진 존재들의 고독감,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들에 대한 짙은 회의와 허무함..

Film/Romance 2019.09.20

꽃을 찢고 질문하다 _ 더 랍스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 0. 독특합니다. 고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독창적인 이야기가 관객의 이목을 부여잡습니다. 서사가 어떻게 굴러가게 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습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꽂힙니다. 설정은 각자의 영역에서 자기 매력을 지키되 따로 놀지 않습니다. 완성도도 구비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얻은 감동을 다른 영화에서 얻기란 매우 힘들어 보입니다. 이 영화는 누군가에겐 '요르고스 탄티모스'라는 이름을 평생 기억하게 할 계기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반면, '요르고스 탄티모스' 감독, 『더 랍스터 :: The Lobster』입니다. # 1. 기괴하고 불편합니다. 특유의 건조한 분위기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설정 위에서 이야기는 밑도 끝도 없이 널을 뜁니다. 서사에 깊은 개연성..

Film/Romance 2019.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