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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비처럼 음악처럼 _ 쉘부르의 우산, 자끄 드미 감독

그냥_ 2020. 5. 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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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대화를 포함한 극의 전반을 음악으로 구성하는 오페라의 매력과, 노래하는 동안의 캐릭터와 연기를 북돋우는 뮤지컬의 매력과, 연출과 편집이 적극적으로 극에 개입하는 영화의 매력을 환상적으로 배합해 낸 작품입니다.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샹송과 황홀하고 매혹적인 색감이 비가 되어 관객을 사랑으로 흠뻑 적십니다.

 

 

 

 

 

 

 

 

'자끄 드미' 감독,

『쉘부르의 우산 :: Les Parapluies De Cherbourg』입니다.

 

 

 

 

 

# 1.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항구도시 '쉘부르'에서 엄마와 함께 우산가게를 운영하는 '쥬느뷔에브'와 자동차 정비공 '기이'. 두 젊은 연인의 열렬한 사랑이 알제리 전쟁으로 인해 어긋나게 되는 과정과 그 후를 그린 비극적 멜로 영화입니다. 역사적 사건이라는 거대한 풍파에 떠밀린 개인의 비극이라는, 대단히 클래식한 플롯의 드라마죠.

 

물론 1964`년 작에게 '클래식하다'라는 표현이 적합한가에 대해선 다시 생각해 봐야겠지만요.

 

 

 

 

 

 

# 2.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워낙 파격적인 스타일로 승부를 보는 영화다 보니 서사만큼은 특별함보다는 안정감을 추구합니다. 유서 깊은 고전적 플롯 위에 펼쳐지는 인류 보편의 사랑과 연민에 감정 이입해 즐기는 정도까지는 충분합니다만, 치밀하게 조립된 이야기로서의 감동을 기대하는 것까지는 냉정히 무리입니다. 물론 전쟁에 얽힌 역사적 함의와, 항구와 우산의 의미, 비와 눈에 담긴 철학적 혹은 서사적 메타포나, 감독 '자끄 드미'의 영화 철학 따위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다고 덤비자면 못할 것은 없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론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류는 그냥 취하듯 느끼고 즐기는 영화들이죠.

 

 

 

 

 

 

# 3.

 

보통의 영화들이 상황과 인물을 선보인 후 뒤이어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과는 달리 화면이 채 나오기도 전 베이스가 되는 음악이 먼저 씬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경험은 그 자체로 대단히 독특합니다. 매 상황마다 첫 현악 반주가 흘러나오는 3초 안에 씬의 정서가 어떤 것인지 눈보다 귀로 먼저 이입되는 경험은 다른 작품들로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것이죠.

 

 

 

 

 

 

# 4.

 

일상적인 대사를 보통의 영화처럼 소화하다 트랙이 나오는 순간에만 선택적으로 음악적 연출이 적용되는 현대적 뮤지컬 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 이 작품의 일상적인 대사까지 모조리 노래로 받아내는 오페라적 연출법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이색적입니다.

 

이 독특한 스타일은 몇 가지 특징적인 효과를 만들어 내는데요. 첫 번째 재미있는 점은, 강제로 일정한 박자감 위에 균일하게 대사를 얹어야 하다 보니 단순히 대사뿐 아니라 움직임, 이를테면 끄덕임이나 걸음걸이 따위들 모두 특유의 샹송 리듬에 종속된다는 점입니다. 행동들이 특별히 안무화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걷거나 움직이기만 해도 죄다 춤처럼 보이게 된다는 것이죠. 이 춤과 같은 움직임은 다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황홀함을 구체화한 듯한 느낌으로 승화됩니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법한 '온 세상이 사랑 노래로 가득 찬 것만 같다'라는 말의 예술적 증명과 같은 영화라고나 할까요.

 

 

 

 

 

 

# 5.

 

또 다른 재미있는 점은 음악이 시퀀스를 강하게 지배하다 보니 샷 편집이 대단히 제한적이라는 점입니다.

 

쉼표가 들어가는 순간이나 강한 스타카토가 찍히는 몇 지점 외에, 함부로 컷 전환을 했다가는 음악이 잘려나가기 때문이죠. 때문에 롱테이크로 길게 뽑아내는 화면이 연출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고, 여기에 요즘과는 달리 공간감이나 심도 표현이 적극적이지 않은 고전적 공간 연출이 더해지며 되려 높은 현장감이 발생합니다. 소극장에서 손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지근거리의 무대 위에 있는 배우의 공연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그나마 쉼표에 맞춘 제한적인 컷 전환조차도 음악이 종속되어 있다 보니, 특유의 리드미컬한 느낌을 한층 북돋우기도 합니다. 중반부 엄마와 '쥬느뷔에브'의 대화는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네요.

 

 

 

 

 

 

# 6.

 

영화를 차치하고서라도 현악 베이스에 브라스 편곡이 더해진 전형적인 60` 풍의 음악 (음악에 대한 조예가 한없이 얕아 정확한 표현은 모르겠군요.)들이 그 시대만의 낭만적 사운드를 훌륭히 선보입니다. 향후 영어로 번안되기도 하는 <I'll wait for you>는 지금 들어도 참 좋은 명곡이죠. :)

 

 

 

 

 

 

# 7.

 

우리 관객의 입장에서 외국어라 더 좋은 점도 있습니다.

 

노래로 대화한다는 게 소리보다 내용이 먼저 귀에 들어오는 네이티브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오그라드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인들에겐 큰 이물감 없이 노래를 소리로서 감상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이죠. 물론 이런 장르를 소화하는 데 있어 프랑스어라는 언어 자체가 좀 사기적이긴 하지만요.

 

 

 

 

 

 

# 8.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로맨스를 테마로 하는 뮤지컬 영화 특유의 <어지러울 정도의 핑크빛 달콤함>은 감안하셔야 합니다. 사람에 따라선 영화가 너무 달달해 못 보겠다 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으로 영화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건 썩 적절치 않다는 생각입니다. 최신작도 아니고 근 60년 전 영화를 찾아볼 땐 최소한의 서치는 하고 보는 게 자신을 위해서라도 상식적이죠.

 

 

 

 

 

 

# 9.

 

영상미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합니다.

 

형형색색의 파스텔톤의 색감과 넘치는 오브제들의 적절한 배치들이 일련의 초현실적 연출을 동화적인 것으로 수용하게 합니다. 차분한 푸른색 계열이나 무채색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분홍색과 붉은색 등의 강렬한 원색들이 포인트 컬러가 아닌 베이스 컬러로 과감히 활용됨에도, 과하다는 느낌보다는 풍부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도록 하고 있습니다. 감독의 미술적 능력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죠.

 

화려한 색상을 감각적으로 다채롭게 적용하는 가운데, 치밀히 계산된 듯한 적절한 보색의 활용들은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썩 섬세하지 않은 사람조차도 능히 클래식한 것과 낡은 것, 레트로 한 것과 촌스러운 것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게 할 만큼 이 영화의 영상미는 인상적입니다.

 

 

 

 

 

 

# 10.

 

제한된 공간 안에서 카메라가 상하 - 좌우로 움직이거나 넓게 열렸다 좁혔다 하는 동안의 리듬감, 비례감. 중심을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주하는 화면의 분할 등의 시각적 연출에 주목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감상법일 듯합니다. 누벨바그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일련의 화면 연출들과 인물들이 서로 걷고 교차하는 뮤지컬스러운 움직임의 시너지는 기대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 11.

 

다만, 1시간 여가 넘어가다 보면 뻔한 플롯과 반복된 영상미와 노래들이 지루해지는 시점이 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접근 방식의 파격성과, 이 작품이 만들어지게 된 시점을 감안했을 때의 평가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음이 분명합니다만, 그래서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명성만큼' 재미있느냐? 라 물으신다면, 글쎄요. 사람에 따라 애매할 수도 있습니다.

 

 

 

 

 

 

# 12.

 

종합적으론 90여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대단히 풍부한 감각적 경험을 녹여낸 걸작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작품입니다. 만, 몇몇 장르적으로 선택된 비용 혹은 단점 들은 감안 하셔야 합니다. 지금 누군가에게 뮤지컬 영화를 권해야 한다면 이 작품보다 『라라 랜드』를 권하는 게 더 안전한 선택인 것만은 분명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라라 랜드』보다 조금 더 사랑스러운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자끄 드미' 감독, 『쉘부르의 우산』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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