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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내가 너를 놓쳤어 _ 먼 훗날 우리, 유약영 감독

그냥_ 2019. 9.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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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重慶森林>, <해피 투게더春光乍洩>, <화양연화花樣年華>, <아비정전阿飛正傳>, 진목승 감독의 <천장지구天若有情>, 혹은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英雄本色> 시리즈와 같은 냄새입니다. 개인의 곤궁함으로 모자이크 된 화려한 도시를 부유하는 청춘들의 이야기. 거부할 수 없는 흐름 속에 표류하는 사람들의 위태로움과 발버둥. 그 아래 흐르는 처연하고 섬세한 서정성과, 처절하고 육중한 고독감 등을 꺼지기 직전 가장 밝게 빛나는 불꽃처럼 눈부시게 그려내던 그 시절의 그 영화들 말이죠.

 

 

 

 

 

 

 

 

유약영 감독,

『먼 훗날 우리 :: 後來的我們』 입니다.

 

 

 

 

 

# 1.

 

물론 정서의 결은 살짝 다릅니다. 홍콩 영화는 반환을 앞두고 거대한 집단이 통째로 입양되는 듯한 긴장감,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의하지 못하는 존재들의 불안함, 정착하지 못하고 버려진 존재들의 고독감,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들에 대한 짙은 회의와 허무함, 돈의 축제를 벌이기라도 하는 듯 화려한 도시와 그 이면에 분칠된 개인의 빈곤함 같은 것들이었습니다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베이징은 물질에 대한 갈망, 성장과 성공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담보되지 않은 최면적 믿음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도태되는 것에 대한 깊은 불안함을 기반으로 합니다. '샤오샤오'의 무수히 많은 남자들로 대변되는 철저한 고독감과, 그럼에도 쉬이 해갈되지 않는 관계와 교감에 대한 갈증, 시종일관 집을 노래 부르는 '젠칭'의 목적을 잡아먹어버린 수단들에 대한 맹목성, 아빠의 존재로 상징되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리게 될 무언가들과 성장 그 자체에 매몰된 듯한 사회에 대한 회의감이 짙게 묻어나죠.

 

무수한 정서들에 숨 막힐 듯 과포화된 도시 한가운데서 발버둥 치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일련의 시대적 배경과 상당한 합치를 보입니다. 영화는 서정적 멜로로서 충분히 훌륭합니다만 분명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느 홍콩의 명작들처럼 말이죠.

 

 

 

 

 

 

# 2.

 

관객의 삶과 교감합니다. 생전 본 적 없는 중국의 샤오샤오와 젠칭을 통해 마음속 깊이 숨겨뒀던 사랑과 찌질함과 후회와 그럼에도의 역사를 꺼내 다시 읽어보게 됩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갈 것만 같던 풍요로운 춘절과 같은 시절을 떠올리게 됩니다. 누가 봐도 서로 좋아하는 것들이 서로 친구라 박박 우기는 그 순간의 그 정서를 떠올리게 됩니다. 감출 수 없는 두근거림을 서로 확인해 나가는 동안의 설렘에 미소 짓게 됩니다. 와락 저질렀던 첫 키스와 함께 옮겼던 소파와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던 날의 비루함과 나눠 먹을 수만 있다면 라면만 먹어도 행복했던 순간과 봄꽃같이 황홀했던 사랑의 날을 기억하게 되죠.

 

사랑을 위해 희생해야 했던 일상과 마음만으론 극복할 수 없었던 현실과 당신의 소중함을 익숙함으로 착각하던 순간들을 기억하게 됩니다. 두고두고 가슴 치며 후회할 무심함을 차곡차곡 쌓았던 멍청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사랑하지만 붙잡을 수 없게 만드는 염치와 무수히 많은 '그랬더라면'을 생각하게 할 후회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지만 정작 가장 원했던 무언가를 잊어버린 혹은 잃어버린 지금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과 그 이상의 것들이 한데 어우러진 정석적 멜로의 눈부심. 화려하고 따뜻한 감각 뒤로 이어지는 잃어버린 소중함에 대한 알싸한 뒷맛이 일품입니다. 영화는 사랑하고 있을 사람들과 사랑했던 사람들 모두에게 왈칵 눈물 쏟게 만드는 무언가를 훌륭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 3.

 

물론 익숙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감각은 없잖아 있습니다. 애초에 결말을 선언하고 들어가는 영화인 데다 로맨스라는 장르가 참신함보다는 폭넓고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보편성을 지향한다는 걸 감안할 때 더더욱 그러하죠. 하지만 익숙한 이야기를 식상한 클리셰로 보이게 하느냐, 시공간을 넘어서는 보편성으로 보이게 하느냐 라는 건 결국 완성도에서 결정된다고 보는데요. 이 영화의 완성도는 스스로를 '보편성 높은 좋은 영화'로 평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i miss you."

 

보고 싶었다는 말에 놓쳐버렸다 답하는 한마디는 영화 전체를 넘어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하는 멜로라는 장르 일반을 관통합니다. 두고두고 곱씹을 명대사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죠. '너를 잃고 내 세상은 색을 잃었다'라는 시각적 효과를 통해 멜로 안에서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와, 본질을 잊은 채 달려 나가고 있는 물질적 성공에 대한 허무함이라는 주제의식을 중의적으로 또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서사를 친절하게 분절하는 건 덤이구요.

 

 

 

 

 

 

# 4.

 

다만 연애가 연애로서 끝나버린 후의 종합된 정서를 다루다 보니 지금의 가족들이 병신이 되어버린 건 아쉬운 부분입니다. 결혼까지 잘해놓고 애도 있는 양반의 세상이 전 여친 때문에 무채색이 되어버린다면 그 마누라랑 아들은 뭐가 되나요.

 

젠칭 부자의 이야기는 영화에서 시사하는 베이징이라는 공간에 대한 더욱 선명한 정의와 도농 간 격차 및 갈등을 구체화한 시대적 은유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분량 조절엔 실패한 느낌도 없잖아 있긴 합니다. 특히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굳이 아빠의 편지로 받아냈어야 했을까라는 생각은 끝내 지울 수가 없군요. 뭐가 됐든 이 영화는 멜로 영화고 이 영화는 젠칭과 샤오샤오의 영화일 텐데요.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랄까요.

 

# 5.

 

2020년의 중국이 1980년의 홍콩을 이제야 따라잡은 느낌입니다. 한참 뒤늦은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또 앞으로의 중국 영화가 그동안의 양적 팽창 이외의 질적 성장을 이루리라는 걸 기대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죠. 돈지랄물 취급하며 한켠에 치워뒀던 중국 영화들을 눈여겨보게 만들 계기로서 이 영화는 차고 넘칠 만큼 훌륭하지만, 동시에 반세기 전의 홍콩 영화들과의 차별점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만, 뭐 중국 영화의 성공은 제 알바 아니구요. 다만 확실한 건, 이 영화에 반하게 될 젊은 사람들은 주윤발 따거에게 반해 이쑤시개를 온종일 씹고 다녔다는 아재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란 점입니다.  '유약영' 감독, 『먼 훗날 우리』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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