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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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영화 9

소유를 사유하다 _ 돌로레스, 마이클 로젠 감독

# 0. 박제가 되어 버린 그녀를 아시오? 마이클 로젠 감독, 『돌로레스 :: Dolores』입니다. # 1. 소유욕이라는 감정을 탐구하고 탐미합니다. 미리 구분해야 할 것은 감독이 탐구하고자 하는 소유욕이란 썩 중립적이라는 점입니다. 인간 게오르그가 탐욕적이고 망상적이고 지저분하고 추악하고 짜증스러운 인간이라는 것과 별개로 말이죠. 모형 제작자로서의 순수한 장인정신이라거나, 종이비행기 날리는 소년에게 모형을 건네는 다정함, 돌로레스의 생일날 그녀의 아버지를 본 딱 인형을 선물하는 섬세함, 병든 동생을 걱정하고 챙기는 모습 따위를 숨기지 않고 있으니까요. 감독이 이해하는 게오르그는 관객의 생각보다 훨씬 순수합니다. 순수하게 악할 뿐이죠. 감독은 욕망하는 게오르그를 단죄하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Film/Thriller 2024.03.22

변경의 동물 _ 에브리띵 윌 체인지, 마튼 페지엘 감독

# 0. 수십, 수천 세기가 흘러도 사건이 일어나는 건 현재뿐이다. 마튼 페지엘 감독, 『에브리띵 윌 체인지 :: Everything Will Change』입니다. # 1. 모큐멘터리(Mockumentary), 우리에겐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실 영화들이 있습니다. 연출된 상황극을 다큐멘터리의 기법으로 촬영해 마치 실제 상황처럼 보이도록 만든 작품들이죠. 파라노말 액티비티 같은 파운드 푸티지 물들도 큰 틀에서 모큐멘터리의 일종이라 할 수 있을 테고요. 아파르트헤이트를 은유했던 닐 블롬캠프의 디스트릭트 9이라거나, 딘 플라이셔-캠프의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 한가닥 하는 여배우들이 기싸움하던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 같은 작품들도 있었더랬습니다. 영화 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방법론을 뒤집어 ..

Film/SF & Fantasy 2023.09.08

옳음과 올바름 _ 패러다이스, 보리스 쿤츠 감독

# 0. 합리의 구심력에 저항하는 윤리의 원심력 SF적 상상력을 끌어내리는 현실의 중력 보리스 쿤츠 감독, 『패러다이스 :: Paradise』입니다. # 1. 수명을 거래하는 SF 영화라면 앤드류 니콜의 이 생각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파과적 상상력과 아만다 사이프리드,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캐스팅으로 이목을 끄는 데까진 성공했었는데요. 태만한 세계관 연출과 어색한 액션, 괴랄한 전개에 방점을 찍는 허무한 결말로 실망스러운 평가를 듣고 만 작품이었죠. 언젠가부터 소재의 자극성과 주연 배우의 미모에 힘입어 [결말 포함] 딱지 붙인 싸구려 유튜브 등지에서 소비되고 있는 듯한데요. 아무리 망작이라지만 썩 가혹하군요. 여하튼 아이템의 창의성이 핵심 동력이라는 점에서 이미 선점한 영화가 있다는 점, 특히 그 영화가..

Film/SF & Fantasy 2023.08.16

말뚝 _ 매니페스토, 율리안 로제펠트 감독

# 0. 선언입니다. 말뚝을 때려 박는 듯한 작품이랄까요. 율리안 로제펠트 감독, 『매니페스토 :: Manifesto』입니다. # 1. 부랑자, 앵커, 리포터, 추도문을 읽는 여인, 교사, 어머니, 증권사 직원, 공사 인부, 인형사, CEO, 가수, 안무가, 실험실 직원. 극단적 환경에 노출된 극단적 견해를 가진 13명의 사람들과 그들의 입에 얹은 괴기한 대사가 케이트 블란쳇에 의해 연기됩니다. 여기서의 '극단'이란 통상적 의미에서의 폭력성 따위를 내포하지는 않습니다. 각각의 사조를 이룰 만큼 자기 확신이 강한 존재들만이 가질 수 있는 '선명성'을 의미하죠. 뭐, 당연합니다. 다다이즘이니 미니멀리즘이니 도그마 95니 하는 알게 모르게 한 번쯤은 들어봤을 네임드 선언을 대사 삼아 읊고 있으니까요. # 2...

Film/Drama 2022.04.24

비처럼 음악처럼 _ 쉘부르의 우산, 자끄 드미 감독

# 0. 대화를 포함한 극의 전반을 음악으로 구성하는 오페라의 매력과, 노래하는 동안의 캐릭터와 연기를 북돋우는 뮤지컬의 매력과, 연출과 편집이 적극적으로 극에 개입하는 영화의 매력을 환상적으로 배합해 낸 작품입니다.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샹송과 황홀하고 매혹적인 색감이 비가 되어 관객을 사랑으로 흠뻑 적십니다. '자끄 드미' 감독, 『쉘부르의 우산 :: Les Parapluies De Cherbourg』입니다. # 1.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항구도시 '쉘부르'에서 엄마와 함께 우산가게를 운영하는 '쥬느뷔에브'와 자동차 정비공 '기이'. 두 젊은 연인의 열렬한 사랑이 알제리 전쟁으로 인해 어긋나게 되는 과정과 그 후를 그린 비극적 멜로 영화입니다. 역사적 사건이라는 거대한 풍파에 떠밀린 개인의 비극이라는..

Film/Romance 2020.05.18

무제 _ 아무르, 미카엘 하네케 감독

# 0. 굳게 잠긴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서는 저택. 깊은 방 침대 위 곱게 눈을 감은 노년의 여인. 누가 놓았는지는 몰라도 사랑이 가득 담긴 것만은 확실한 꽃잎들과, 무언가가 자유로이 날아간 것만 같은 열린 창. 사랑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AMORE. 영면에 든 노인과, 그녀와 마지막을 함께 했을 누군가에게 보내는 듯한 청중의 긴 박수소리. 일련의 오프닝 시퀀스는 사실 이 작품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의 서사는 여인이 마지막으로 건넜을 켜켜이 겹쳐진 시간들과, 그녀를 마지막까지 사랑한 누군가들과, 이들의 여정에 존중의 박수를 보내는 이유에 대한 각주라 할 수 있죠. '미카엘 하네케' 감독, 『아무르 :: Amour』입니다. # 1. 깊고 좁은 복도를 걸어 들어가는 노부부. 잘 들리지도 않는 ..

Film/Romance 2020.05.06

기막힌 영화 _ 브라 이야기, 바이트 헬머 감독

# 0. 부정적인 면에서도 긍정적인 면에서도 괴기합니다. 인상적인 화면과 음향, 대사 없이도 유려하게 흘러가는 동화적 이야기, 관능적인 아이템들과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독특한 코미디. 이 모든 걸 품어내는 아제르바이잔의 황홀한 전경이 독보적인 매력을 확보하게 합니다. 동시에 대단히 불친절한 은유들과, 통념을 벗어난 행동들로 인한 핍진성의 부재, 밑도 끝도 없이 널을 뛰는 플롯과 이 모든 걸 한층 심화시키는 '대사가 없음으로 인한 불편함'이 관객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죠. 어떤 분들에겐 영화제에서 상 탈만하다 싶은 인상적인 영화가 될 테지만, 누군가에겐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어 보입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영화를 좋게 보신 분들도 단점들을 부정하지는 못하시리..

Film/Comedy 2020.02.19

독일의 용기, 독일의 자신감 _ 그가 돌아왔다, 데이비드 우넨트 감독

# 0.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시종일관 진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언변에 감화되기도 하고 심지어 사랑한다 소리치기도 합니다. 독일 영화에서, 그것도 군복을 입고 나치식 경례를 하는 모습의 히틀러에게 말이죠. 아시다시피 독일을 비롯한 다수의 유럽 국가에선 나치식 경례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가 됩니다만, 히틀러에겐 알 바가 아닙니다. 경례를 하지 않는 2014년의 요즘 사람들을 예의 없다고 불평하는 히틀러의 모습을 담은 간결한 오프닝으로 감독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는 금기에 거침없이 도전하겠노라 선언합니다. 영화 속 히틀러는 원래 자신의 모습 그대로 행동하지만 사람들은 알아서 최대한 선의로 해석합니다. 과격한 표현은 메서드 연기로 시대착오적 언동은 풍자로 받아들여집니다. 정신..

Film/Comedy 2019.04.10

Citizens, Be Ambitious _ 브이 포 벤데타,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

# 0.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토록 이 영화에 열광하게 하는 걸까.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 『브이 포 벤데타 :: V for Vendetta』입니다. # 1. Revolution도, Revenge도 아닌 Vendetta의 'V'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토록 'V'에 열광하게 하는 걸까요. 낭만적인 언변 때문일까요? 화려한 가면 때문일까요? 유려한 칼솜씨 때문일까요? 아니면 신사적이고 여유로운 태도 때문일까요? 마지막 모습에 담긴 비장미 때문일까요? 아니면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지적인 존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부패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투영하는 걸 수도 있겠죠.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어쩌면 그 이외의 것 때문일 수도 그 모든 것 때문일 수도 있겠죠. 다만 분명한 ..

Film/Action 2019.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