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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ction

총과 피의 테마파크 _ 장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그냥_ 2020. 4. 1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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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언제나처럼 환상적인 오프닝입니다. 지금부터 보게 될 작품이 165분에 달하는 런타임에 걸맞은 긴 호흡의 영화라는 것과, 그 긴 호흡 동안의 모든 서사가 결국 이 잘생긴 노예 한 명을 둘러싼 간결한 이야기로 귀결될 것이라는 선언이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풍부한 음장의 멋들어진 ost Django (by Luis Bacalov) 가 끝남과 동시에 감각을 제한하는 한밤의 숲으로 관객을 초대합니다. 긴장감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멋들어진 장총을 보며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찰나. 이빨을 대롱대롱 매달고 다니는 우스꽝스러운 치과의사가 의도된 방심을 연출합니다. 잠깐의 위트를 발판 삼아 다시 무자비하게 집중을 끌어올린 감독은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What's your name?"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장고_분노의 추적자 :: Django Unchained』입니다.

 

 

 

 

 

# 1.

 

오프닝 시퀀스는 테마파크 속 가장 멋진 롤러코스터의 경험을 연상케 합니다. ost가 들려오는 동안 관객은 어트렉션의 대기열에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조금은 겁도 나지만 그보다 더 큰 기대감에 가슴 뛰는 걸 숨기지 못하는, 이미 지불한 티켓값과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돌아설 수 없는 그 시점이죠. 칠흑같이 어두운 밤 장총을 울러 멘 형제와 노예의 행렬은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후 체인 리프트를 오르는 구간과 같습니다. 치과의사의 등장은 정점에서 잠깐의 숨 돌리기와 함께 낙하 직전의 호들갑을 떠는 구간, '장고'의 이름을 듣는 순간은 대망의 첫 번째 낙하지점이라 할 수 있죠.

 

극 중 '장고'는 생사의 기로에 놓인 위태롭고 절망적인 노예의 신분이지만, 영화 주인공 '장고'는 이보다 더 호화스러울 수 없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소개됩니다. 앞선 검붉은 자막으로 쓰인 Django라는 글씨는 소설책의 겉표지에 적힌 제목이라 한다면, '제이미 폭스'의 입으로 직접 내뱉어진 Django 야 말로 영화의 진짜 제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 2.

 

한밤의 혈투는 역설과 의외의 연속입니다.

 

먼저 총을 겨눈 사람은 되려 상대의 총에 쓰러집니다. 총에 맞을 거라 생각됐던 사람 대신 그가 타고 있는 말이 총에 맞죠. 무방비 상태가 된 적에게 끔찍한 마무리를 선사할 것이라 예상되는 순간 치과의사는 되려 최대한의 공손함으로 자신을 변호하는데, 그 변호는 그들이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는 노예를 '목격자'로 삼는 것을 근거로 합니다.

 

말에 깔려 다리가 부러진 상대에게 '조용히 해달라'는 부탁이 끝나기 무섭게 찢어질 듯 비명이 흘러나오고, 치과의사는 이전의 무자비함을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노예에게 말을 건네죠. 상황을 완벽히 제압하고 지배한 치과의사는 끝까지 노예를 '약탈'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하겠다 말하는데, 방금 사람의 머리통을 날려버린 주제에 족쇄는 '야만적'이라 평합니다.

 

 

 

 

 

 

# 3.

 

사람 죽인 사람은 스스로를 '의사'라 소개합니다. 자신의 행동은 정의로운 법 집행이라 말합니다. 그가 하필 '썩은 이를 뽑아내는' 치과의사라는 점과 그가 주장하는 법의 집행이 마냥 궤변은 아니라는 점은, 이 인물을 둘러싼 설정이 단순히 모순된 언어유희를 넘어 곱씹는 맛이 있는 역설로 승화하게 만들죠. 백인과 흑인 사이의 대결적 역학 관계에 대한 관객의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장총을 등 뒤에 선 노예에게 들려주고, 방금 막 구매한 노예에겐 말에 올라탈 것을 권합니다. 노예였던 '장고'는 그를 끌고 가던 백인과 같은 옷을 입은 자유인으로 탈바꿈하고, 백인들이 끌고 가던 노예는 호쾌하게 자신을 구매한 상인의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 넣습니다.

 

선입견에 기초한 관습적인 예측을 한 끗 차이로 연달아 빗나가는 동안의 장르적 쾌감이 휘몰아칩니다. 모든 역설과 의외를 허용하고 통제하는 '닥터 킹 슐츠'는 초반부터 어마어마한 연출적 푸시를 받게 되는데요. '크리스토퍼 발츠'는 어쩌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이 과감한 푸시를 완벽하게 접수합니다. 거기다 시종일관 평온하고 여유롭던 '슐츠'로 하여금 단 한번, '장고'의 등에 난 상처를 보고 놀라게 함으로써 오프닝에서 받은 연출적 버프를 주인공에까지 적당히 나누도록 만드는 영악함까지 엿보이는군요.

 

 

 

 

 

 

# 4.

 

'장고'가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변화하는 지점으로 지지부진한 드라마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은 '타란티노' 감독의 무수히 많은 장점들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탁월함입니다.

 

그에게는 창작자들이 본능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자신이 이 창작물을 얼마나 공들여 만들었는 지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버릇이 없습니다. 그는 관객들에게 불필요한 드라마적 감동 서사를 전달하지 않습니다. 그는 놀이 공원을 찾은 손님들이 어트렉션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안전장치가 작동하는 원리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일련의 오프닝을 통해 영화의 성격과 분위기와 서사를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정확하게 전달합니다. 과감하고 자유로운 전개를 잘 소집해 치밀하게 조립한 '수집욕을 불러일으킬 것만 같은' 시퀀스입니다. 문득 수준 높은 문학 작품의 서문을 읽는 듯한 인상도 드는데요. 자유로운 상상력의 과감한 전개를 자랑하는 이야기꾼이지만 글과 영화를 다룸에 있어선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타란티노' 감독의 성향을 생각할 때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5.

 

말에 올라탄 '장고'와 '닥터'는 개선장군과 같은 모습으로 마을을 향합니다. 아직 채 문을 열지도 않은 주점에서 천장의 등을 만지던 주인은 자신의 가게에 들어선 흑인의 존재에 화들짝 놀라 달아나죠. 태연하게 연방 보안관이 아닌 마을의 보안관을 불러달라 말한 '슐츠'는 바텐더를 자처하며 먹음직스러운 생맥주 두 잔을 가득 담습니다.

 

'슐츠'뿐 아니라 감독 역시 이전과는 달리 대단히 공을 들여 맥주를 화면에 담아냅니다. 고작 맥주 두 잔을 위해 광고라도 보는 듯 과장된 연출이 투자됩니다. 소중한 맥주는 '슐츠'가 손수 가져와 테이블에 얹어 놓죠. '장고'가 맥주를 받으려 하자 '슐츠'는 너의 것이 아니라는 듯 모자를 치우라 말합니다. 네. 이 맥주는 '장고'의 맥주가 아닙니다. 감독의 맥주. 정확히는 감독이 산 맥주입니다. 오프닝에서의 롤러코스터를 건너온 관객에게 건네는 축하의 한잔입니다.

 

 

어때. 재밌었지?

맥주 한잔하면서 내 얘기를 좀 들어볼래?

 

 

 

 

 

 

 

# 6.

 

맥주 한 모금 들이켜기 무섭게 그야말로 '타란티노스러운' 썰들을 풀어놓기 시작합니다. 초반부터 영화를 휘어잡은 '슐츠'가 어떤 배경을 가진 인물이며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지금 이 극이 어떤 세계관 위에서 펼쳐지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설정을 화려한 문장력과 함께 풀어놓습니다.

 

특히 카메라 배치가 참 재미있는데요. 말을 하는 '슐츠'를 잡지도 말을 닫는 '장고'를 잡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삼등분된 원탁의 두 지점에 주인공들을 앉히고 나머지 한 꼭짓점에 카메라를 얹어 마치 관객 역시 원탁에 함께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연출합니다. 영화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보안관을 데려온 이후의 작전에 대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등 뒤로 깊게 기대앉은 의자를 과장되게 앞으로 당겨 앉습니다. 동시에 카메라를 원탁에서 들어 올려 두 인물의 얼굴에 최대한 가까이 붙임으로써 관객 역시 의자를 당겨 앉아 이 비밀스러운 대화 안에서 이들과 함께 공모하는 듯한 흥미진진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 펍에서의 대화를 듣는 동안 관객이 느낀 흥분감은 단순히 연기나 서사뿐 아니라 연출의 영향까지 크게 받고 있습니다.

 

 

 

 

 

 

# 7.

 

마을의 보안관이 등장합니다. '슐츠'가 걸어 나옵니다. 잠시 멈춰 선 후 서로를 바라보구요. 다시 잠시 멈춘 후 총을 쏩니다. 다시 잠시 멈춘 후 걸어가구요. 다시 잠시 멈춰 선 후 확인사살을 하죠. 적절한 타이밍에 아녀자들이 우수수 쓰러지구요. 그에 맞춰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사라집니다.

 

동시에 화면 뒤로 깔리는 컨트리 음악 The Braying Mule (by Ennio Morricone) 의 리듬이 일련의 움직임이 만드는 리듬을 자연스레 이어받게하며, 상황을 연극 혹은 뮤지컬과 같이 과장되고 조작된 영역으로 변모시킵니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인위적인 느낌은 현실성을 완화시켜 폭력적 연출에서의 불편함을 효과적으로 제거합니다. 이를테면 누구나 분장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테마파크 '귀신의 집' 같은 공간으로 만드는거죠.

 

 

 

 

 

 

# 8.

 

'타란티노'의 영화들이 폭력적 표현이 난무함에도 그 폭력성만큼 자극적이지는 않은 건, 적재적소에 연출적으로 상당히 많은 배려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폭력적인 장면은 거의 없음에도 관객의 상상력을 최대한 활용해 스트레스를 의도적으로 증폭시켜 그 폭발력으로 주제의식과 장르적 색채를 심화시키는 것과는 정반대라 할 수 있겠네요.

 

스트레스가 통제된 덕에 두려움이나 불안함, 공포심 대신 어드벤처를 떠나는 흥미진진함으로 '슐츠'가 이 난관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즐기게 됩니다. 이어 언제나처럼 예상을 벗어나는 유려하면서도 화려한 말빨의 탈압박이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상황을 마무리 짓는 순간 터져 나오는 ost와 함께하는 세리머니까지. 여기까지를 소설로 치자면 '첫 번째 챕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출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 9.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영화가 왜 재미있는가를 설명하는 데 조금은 기여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쿠엔틴 타란티노'를 즐기는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작가주의적 감독들의 영화들은 연출적인 묘들을 이야기하는 동안 즐거움이 배가됩니다만 '타란티노'의 작품들은 그렇게 즐기는 영화가 아니죠.

 

그의 영화는 위와 같은 연출적 기술을 신경 쓰지 않으며 보게끔 만들어진, 보다 정확히는 모르고 봐야 더 재미있게끔 만들어진 영화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잘 짜여진 완성도보다 오히려 그 잘 짜여져 있음을 느끼지 못하게끔 숨겨내고 녹여내는 솜씨에 있습니다. 알면 알수록 더 깊이 있는 유희를 즐길 수 있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들과는 여러모로 대척점에 있다 할 수 있죠. 양극단에 있는 두 감독의 영화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대중과 평단의 인정을 받는 걸 보면, 역시 성패는 스타일이 아니라 실력에 의해 결정되는 거라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되는군요.

 

 

 

 

 

 

# 10.

 

따라서 위와 같은 내용들을 전혀 느끼지 못하셨다면 그야 말로 영화를 '제대로' 보신 셈입니다.

 

앞서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들 따위를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며 봐야 진가가 드러나는 영화니까요.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장르적으로 더 감각적으로 몸을 내맡기며 보게 만드는 영화니까요. 미키 마우스의 『디즈니 랜드』 대신 마더퍼커 장인과 함께하는 『타란티노 랜드』를 놀러간다는 마음으로 봐야 좋습니다.

 

마을 보안관을 처치하는 동안의 활극이라는 '범퍼카'와, 브리톨 형제에 대한 복수극이라는 '후룸라이드'와, 머저리 같은 KKK들에 대한 풍자를 곁들인 학살극이란 '바이킹'과, 브룸힐다의 동화라는 '회전목마'와, 현상금 사냥을 다니는 겨울 동안의 컨츄리 버디무비라는 '대관람차'와, 본편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한 '익스트림 롤러코스터'를 즐기고 나면. 하루 종일 자유이용권으로 놀이기구를 타고난 후 떨어지는 석양을 뒤로한 채 기분 좋은 피로감과 약간의 아쉬움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듯한 마음으로 앤딩 크레디트를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 11.

 

'김영하' 작가는,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 문제를 숨겨두지 않는다. 소설이라는 것은 감정의 테마파크와 같아서 다양한 코스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 뒤에 나가면 그만이다"

 

말하는데요. 작가의 의미를 소설가뿐 아니라 이야기꾼으로까지 넓게 본다면 이 영화는 다음의 말을 가장 정직하게 증명하고 있는 작품 중 하나라 할 법합니다. 위대함 따위를 전혀 추구하지 않지만 장르적 탁월함만으로도 그 자체로 위대할 수 있다는 걸 필모그래피 내내 증명한다는 게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군요. 『헤이트 풀 8』의 리뷰에서 '매년 겨울이면 생각날 끝내주게 재미있는 영화'라 말씀드렸는데요. 이 영화는 사시사철 언제고 생각날 끝내주게 재미있는 영화라 해야겠네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장고_분노의 추적자>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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