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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에스프레소 _ 콜드 워,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그냥_ 2020. 5. 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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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포스터만 봐도 어려운 영화입니다. 감독 이름에서부터 심상치가 않죠. 도스토예프스키든, 차이코프스키든, 로만 폴란스키든 어쩌고 저쩌고 스키 들어가면 대부분 엄청 대단하면서 동시에 무지막지하게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이 감독...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싶었는데, 세상에나. 『이다』의 감독이었군요.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콜드 워 :: Cold War』입니다.

 

 

 

 

 

# 1.

 

정서와 서사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때깔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전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패턴화 된 오브제들의 감각적인 리듬, 적재적소에 4:3 비 화면을 명확한 의도 하에 과감하게 잘라 들어가는 굵은 선, 깊은 여운을 불러일으키는 여백 등의 이미지가 구현하는 심미성은 이번에도 역시나 감동적입니다.

 

흑백의 화면은 이런 수학적 미감을 한층 강조해 강렬한 스타일을 구축케 합니다. 특히나 공간 속에서 빛의 질감을 포착하는 능력만큼은 가히 독보적입니다. 『이다』때는 그래도 소재 때문에 그렇게 만들었나 했는데요. 멜로 조차 이런 식으로 만들거라곤 상상도 못했네요. 역시 어쩌구-스키들은 대부분 변태가 맞습니다.

 

 

 

 

 

 

# 2.

 

화면 연출이 영화의 절반이라면 메인 ost <심장>은 나머지 절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사에 담긴 함의뿐 아니라 상황마다의 절묘한 편곡은, 영화의 모든 주제의식을 그 자체로 함축하고 있다 할 수 있을 정도죠. 영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뮤직비디오인 것만 같다 말씀드린다면 너무 호들갑인 걸까요.

 

음악이 밝다고 해서 정서가 반드시 밝으란 법은 없습니다. 음악이 어둡다 해서 정서 역시 어두우란 법은 없죠. 그런 건 너무 심심하잖아요. 서사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는 음악들은 매 순간마다 직설적인 우울감과 역설적인 기대감 따위의 복합적 정서를 섬세하게 조율합니다. 상황마다의 인물에 이입해 음악을 집중해 듣는 것만으로도 영화에 기대할 수 있는 감동은 거의 다 돌려받을 수 있을 겁니다.

 

공명이 상당히 강조된 음향은 작품 특유의 공허함과 처연함을 효과적으로 연출합니다. 관객이 <사랑>이라는 정서를 마음껏 탐닉하고 탐구할 수 있도록, 소리가 그 빈 공간을 널따랗게 확보해주는 느낌이군요. 

 

 

 

 

 

 

# 3.

 

연출은 지독할 정도로 시대적 배경과 정서 그 자체에 대한 이미지로서 귀결됩니다.

 

위압적이고 절대적인 국가주의적 상징물들이 개인성이 거세된 패턴화 된 인물들 위를 강하게 찍어 누르는 구도를 통해 시대적 상황을 시각화합니다. 냉전 시대에서의 열렬한 사랑과, 자유로운 파리에서의 냉각기, 다시 강제 수용소에서의 재회 등을 통한 열적 대조를 통해 냉엄한 시대 속에서의 사랑을 더욱 도드라지게 합니다. 폴란드와 베를린과 파리 등 성격이 명확히 규정된 공간들 위로 그 공간에 담긴 역사적 맥락과 시류에 떠밀린 개인의 상황과 매 순간의 정서와 심장이라는 노래의 변주 방식과 곡의 가사 속 지점 등의 레이어가 층층이 겹쳐 작품에 입체감을 형성합니다.

 

 

 

 

 

 

# 4.

 

개인적으로 '파벨 포리코브스키'의 가장 독보적인 능력은 '잘라냄'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미지의 배치나 음악의 활용과 같은 기술적인 영역뿐 아니라, 서사, 정서, 관계, 메시지와 같은 무형의 대상을 통제함에 있어서도 일말의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섬세하고 중의적인 개념들을 충분한 고찰을 통해 베일 듯 날카롭게 자르고 들어가는 걸 보노라면 놀라울 정도죠. 도려내고 도려내 알토란만 간결하게 남겨내다 보니, 88분에 걸친 어느 한 장면도 버릴 게 없는 영화가 탄생합니다.

 

인물을 지긋이 전시함으로써 정서를 관객 스스로 온전히 탐닉하게 만드는 솜씨 또한 일품입니다. 보통의 감독들은 먼저 정서를 규정한 후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곤 하는데요. 그 '규정' 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정서가 언어화되고 그러다보면 언어가 담아내지 못하는 만큼의 여백은 탈락하게 됩니다. 반면, 포리코브스키의 작품은 다소 난해하고 추상적이라는 비평을 듣는 한이 있더라도, 중요한 정서의 편린이 탈락되는 것을 타협하지 않습니다.

 

 

 

 

 

 

# 5.

 

따라서 불친절함은 감수해야 합니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과정의 연속성은 없다 해도 좋을 정도로 생략됩니다.

 

사랑을 이미 경험한 이들이 과거를 되돌아보며 정서적으로 가장 강렬했던 순간들을 툭툭 잘라 소집해 놓은 듯한 인상입니다. 그 외 자투리들은 중요하지 않으니 필요하면 니들이 알아서 생각하라는 것 같달까요. 관객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합의하는 과정이 강요된달까요. 사랑해본 사람들만을 위한 영화 같달까요.

 

보통의 로맨스물에서처럼 안정적이고 연속적인 서사를 근거로 영화를 팔로우한다면 애로사항이 활짝 꽃필 수 있습니다. 물론 냉혹한 시대성이 다른 모든 정서적 영역들을 거세해버리는 바람에 남은 것은 사랑뿐이라, 사랑의 화신이 되어버린 두 사람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설득이 되기는 하지만요. 고전적인 미장센과 아이템 또한 이 신파극을 설득하는데 일부 도움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요.

 

 

 

 

 

 

 

# 6.

 

특정한 정서를 높은 시대의 폭력이라는 압력으로 추출해 낸

진한 에스프레소 같은 영화입니다.

 

2010년대에 강림한 근대적 미니멀리스트가 빚어낸 로맨스랄까요. 저같은 문외한마저 영화의 뛰어난 완성도에 대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멋진 작품입니다만, 분명 에스프레소에도 적응이 필요하듯 영화 역시 쌉싸름한 맛에 적응할 시간은 필요해 보입니다. 하긴 뭐. 예술 영화라는 게 보통 그러하지만 말이죠.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콜드 워』였습니다.

 

# +7. 그래도 『이다』 보다는 이 영화가 훨씬 친절하긴 합니다.

# +8. 처음 몇 분간 주인공 '줄라' 역의 '요안나 쿨릭'이 '레아 세두'인 줄 안 사람이 저뿐만은 아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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