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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다 _ 바베트의 만찬, 가브리엘 액셀 감독

그냥_ 2021. 4. 2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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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강신주 교수는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라는 책을 통해 무문관(無門關)을 저 같은 똥멍청이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을 따라 48개의 관문을 차근차근 넘는 동안 수많은 화두들을 흥미롭게 즐기고 나면 어느새 서서히 하나의 메시지로 소집됨을 느끼게 되죠.

 

집착을 벗어던지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자.

 

 

 

 

 

 

 

 

'가브리엘 액셀' 감독,

『바베트의 만찬 :: Babettes gæstebud』입니다.

 

 

 

 

 

# 1.

 

기본적으론 요리 영화입니다. 노라 에프론 감독의 <줄리 & 줄리아>과, 브래드 버드 감독 <라따뚜이>,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카모메 식당>과, 존 파브로 감독의 <아메리칸 셰프> 같은 정줄 놓고 편안하게 남들 밥 차리고 밥 먹는 거 구경하는 먹방 영화들의 조상님 쯤 될법한 영화죠. 동시에 종교 영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주인공부터 일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 온 목사의 자녀들일뿐더러 영화 내내 무지막지하게 많은 찬송가가 울려 퍼지기 때문입니다. 실제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인상적인 혹은 자극적인 대목을 묻는다면 대부분 귓가에 이명처럼 울리는 '아멘'이나 충격적 비주얼의 '메추리 요리'를 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본질은 편안하고 따뜻한 힐링을 목적으로 하는 요리 영화도, 기독교 교리 속 사랑과 나눔을 증명하는 종교 영화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들은 그저 소재에 불과하죠.

 

 

 

 

 

 

# 2.

 

집착에 대한 영화입니다. 작품 속 모든 인물들은 '무언가를 집착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갈등은 과거의 손해를 잊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두게 만드는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로렌스 장군은 마르티나에 대한 사랑에 집착했던 사람이구요. 아킬 파핀은 예술가로서 흘러가 버린 시간에 집착하기에 우울감을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삶의 목표로서 필리파를 가수로 만드는 것에 집착 해 보지만 결국 좌절하고 맙니다.

 

목사 역시 소명의식에 대한 집착으로 두 딸의 인생을 자신의 수족으로 복무케 합니다. 딸들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헌신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집착합니다. 바베트가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매는 그녀가 프랑스로 돌아갈 것을 우려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바베트와 바베트의 유용함에 집착하게 되었던 것이죠.

 

 

 

 

 

 

# 3.

 

자매가 바베트에게 "당신의 남은 인생은 가난할 것"이라 말하는 대목과 주민이 자매에게 "천국에서 부자가 될 것"이라는 덕담에 흐뭇하게 웃어 보이는 모습은 이들의 헌신은 경건하지만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딸들의 설정이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스스로 목사가 된 딸]이 아니라 그저 [목사의 딸]에 머물러 있음이 중요합니다. 이들은 분명 희생적이고 숭고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자신들의 삶과 철학을 쌓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뜻이니까요.

 

<종교적 금욕주의>는 물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만 딸들은 이를 기계적으로 학습했기에 그 자체를 목적으로 대하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타인에게 배워 학습한 철학이기에 헌신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을 반목으로부터 구하지 못했고.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해방되었어야 할 자신들마저 [집착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집착]에 사로잡히고 말았죠. 두 사람이 마녀의 음식 운운하며 바베트가 나누고 싶어 한 만찬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건 당연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 역시 수십 년에 걸친 <두 자매의 헌신>이 아니라 하룻밤 동안의 <바베트의 만찬>입니다.

 

 

 

 

 

 

# 4.

 

바베트입니다. 그녀는 파리 코뮌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었고 파리에서의 삶 역시 잃어야 했습니다. 언제든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한 사람이죠. 모든 것을 잃었고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가지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입니다. 그녀는 더 나은 식사를 나누기 위해 식재료 10프랑을 깐깐하게 흥정하지만 만찬을 위해서라면 가지고 있는 1만 프랑을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는 사람이죠.

 

바베트는 돈을 다 써 어쩌냐는 자매의 걱정에 당당한 태도로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다" 말합니다. 이때의 예술가는 협의에서의 아티스트가 아닙니다. 집착을 벗어던진 사람을 뜻하죠. 바베트는 영화 속 등장하는 모두와 달리 유일하게 종교적이지 않습니다. 그저 탁월한 요리사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영화 속 무수히 반복해 찬송가를 부르는 그 누구보다 더 종교적이고 더 경건하며 무엇보다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째 영화 전반의 종교적 색채와 대조적이게도 비판적인 뉘앙스도 묻어나는군요.

 

맛있고 아름다운 음식을 먹는 순간엔 누구나 솔직해집니다. 맛있다. 배부르다. 행복하다. 라는 감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느끼고 있는 순간엔 집착할 수 없습니다. 집착을 벗어던지면 조급해할 이유가 없고, 조급하지 않은 사람은 온화하고 행복합니다. 주변을 둘러볼 힘이 생깁니다. 집착하지 않기에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선의를 탁월함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바베트의 만찬> 이죠.

 

 

 

 

 

 

# 5.

 

곁가지를 조금 살펴볼까요.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유일하게 처음부터 온 마음으로 만찬을 즐긴 사람, 로렌스 장군입니다. 한량 같던 로렌스는 마르티나에 대한 사랑을 잊기 위해 혹은 사랑을 얻기 위해 장군으로서 군공에 몰두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에 대한 오랜 집착은 벗어날 수 없었죠. 젊은 시절의 자신을 마주하는 장면은 과거의 집착을 마주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만찬을 즐긴 후 로렌스 장군은 비로소 사랑이라는 목적지향적인 감정과,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집착을 분리하는 데 성공합니다. 당신과의 만찬을 남은 시간 동안 늘 생각하겠노라 말하며 손에 남기는 입맞춤은 대단히 낭만적이지만 그의 진정한 정체성은 입 맞춘 후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또 다른 장면, 만찬을 위해 바베트가 프랑스로의 휴가를 요구하자 며칠간 자매가 대신 식사를 준비하게 되는데요. 자매의 음식을 맛본 주민이 음식의 질이 떨어진 것에 투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주민들이 바베트가 만든 음식의 퀄리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이에 집착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구요. 자매는 헌신적으로 요리를 나누는 행위 그 자체를 행복해하는 바베트와 달리 의무감에 종속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 6.

 

물론 위와 같은 <집착>을 중심으로 한 이해는 모두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적 해석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소위 책 한 권 읽은 인간의 무서움 인지도 모르죠. 그냥 이렇게도 영화를 본 사람이 하나쯤 있구나 하시면 좋겠네요. 위의 생각 모두를 차치하고서라도 음식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시라면 후반부 바베트가 대접하는 화려한 음식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한 번쯤 볼만한 가치는 충분한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영화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정갈한 프랑스 식당을 하나 찾아봐야겠네요. 가브리엘 액셀 감독, <바베트의 만찬>이었습니다.

 

# Rest in Peace,

Stéphane Audran (1932` ~ 2018`)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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