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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무제 _ 아무르, 미카엘 하네케 감독

그냥_ 2020. 5.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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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굳게 잠긴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서는 저택. 깊은 방 침대 위 곱게 눈을 감은 노년의 여인. 누가 놓았는지는 몰라도 사랑이 가득 담긴 것만은 확실한 꽃잎들과, 무언가가 자유로이 날아간 것만 같은 열린 창. 사랑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AMORE. 영면에 든 노인과, 그녀와 마지막을 함께 했을 누군가에게 보내는 듯한 청중의 긴 박수소리.

 

일련의 오프닝 시퀀스는 사실 이 작품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의 서사는 여인이 마지막으로 건넜을 켜켜이 겹쳐진 시간들과, 그녀를 마지막까지 사랑한 누군가들과, 이들의 여정에 존중의 박수를 보내는 이유에 대한 각주라 할 수 있죠.

 

 

 

 

 

 

 

 

'미카엘 하네케' 감독,

『아무르 :: Amour』입니다.

 

 

 

 

 

# 1.

 

깊고 좁은 복도를 걸어 들어가는 노부부. 잘 들리지도 않는 작은 목소리로 나누는 평범한 대화. 카메라를 뒤돌아 앉아 나누는 소담한 식사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 인물들을 특별한 개인이 아닌 보통 명사로 받아들이게 함과 동시에 감독이 어디에 시선을 두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직관적으로 유추하게 합니다.

 

그리고 문득 아무런 예고도 없이 비극이 찾아온 순간 영화는 테이블 안으로 깊게 드리우며 이질적인 아내의 태도에 당황한 남편의 모습을 올곧게 담아냅니다.

 

 

 

 

 

 

# 2.

 

이후에도 일관되게 화려한 영화적 기교보다는 상황에 대한 묵직하면서도 섬세한 묘사들이 담담히 펼쳐냅니다. 공적-사적-내적 영역을 구분 짓게 하는 몇 공간의 활용과, 창문과 비와 비둘기와 새 그림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동력은 작가주의적 기교보다는 인물 그 자체로부터 찾습니다. 한 손으로 안경을 끼느라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는 아내의 손길, 멍청히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남편의 표정은 다른 어떤 문학적 수사들보다 효과적으로 작동합니다.

 

 

 

 

 

 

# 3.

 

물론 숨길 수 없는 예술가적 감수성이 군데군데 삐져나오기는 합니다.

 

남편이 꾼 악몽의 표현을 비롯한 형이상학적 메타포들의 활용,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간절한 환상에 대한 연출들은 기술적으로 대단히 능숙하다는 생각입니다만, 그럼에도 이 작품은 이런 것들 따위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영화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긋이 바라보고 겸허히 고개 숙이게 되는 고뇌로 보는 영화죠.

 

 

 

 

 

 

# 4.

 

병마 앞에서 의식적으로 약간 더 밝고 수다스러우려 노력하는 남편.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사랑이 가득 담긴 아내의 눈빛. 그리 많은 기회가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직감하게 하는 함께 잡지와 신문을 보는 거실에서의 저녁. 특별한 사건으로부터 파생된 특별한 정서를 짜내는 것이 아니라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없이 일상적이었던 단어들. 이를테면 <장례식>이나 <운동>과 같은 단어들이 전혀 다르게 들리는 불편한 순간들을 진중하게 포착합니다.

 

마다마다의 아주 살짝씩 삐져나오는 절망감과 이를 숨기기 위해 허겁지겁 꺼내 드는 짜증이 서로의 가슴에 파고듭니다. 어색함과 정적, 무안함과 미안함이 애써 단단해지려 노력하는 심정을 조금씩 또 조금씩 허물어 트립니다.  

 

 

 

 

 

 

# 5.

 

비가 오는 날 홀로 창문 하나 조차 닫을 수 없는 무기력함에 대한 실망. 그런 아내가 걱정되어 일찍 돌아온 남편. 자신과 남편 모두에게 야속한 아내. 짐이 되고 싶지 않은 '안느'의 심정에 대한 보편적 공감이 매 호흡마다 공들여 차곡차곡 누적됩니다. 주인공의 심정이 조금씩 깎여 나가는 동안 관객의 마음 역시 아주 조금씩 침식되어 허물어져 내립니다.

 

 

 

 

 

 

# 6.

 

대단히 느린 호흡으로 젊은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병마에 갇힌 노년의 삶을 담담히 그립니다.

 

수십 년에 걸친 파도에 바위가 깎여 나가듯. 수백 년에 걸친 바람에 산이 깎여 나가듯. 공덕을 쌓는 심정으로 한 땀 한 땀 마지막 순간의 정서들을 수놓습니다. 여느 신파극들이 보이는 격정적인 감정으로 관객을 밀어붙이는 일은 일절 없음에도 그런 것들로부터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슬픔과 회한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교감하게 됩니다.

 

 

 

 

 

 

# 7.

 

심정적 곤란함과 별개로 현실의 비루함은 더욱 잔인합니다.

 

늙어서 병에 들어간다는 건 대신 스테이크 따위를 썰어주는 고상한 일이 아니라 화장실 뒤를 대신 살펴주고 머리를 대신 감겨 주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병세를 이겨내기엔 내게 남은 힘과 시간이 부족해 참 버겁다는 걸 인정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기저귀를 갈아주는 타인의 손길에 최소한의 존엄성을 고민하게 되는 일입니다. 담담한 죽음 따위는 없다는 현실의 비정함과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회상하는 순간의 비참함과 메말라가는 꽃잎과 같은 내면의 비루함과 어떤 선택이 이기적인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허무함과 언젠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잔인함을 동시에 짊어지는 일입니다.

 

 

 

 

 

 

# 8.

 

포기할 수 없는 남편과 마음의 정리를 시작하는 아내에서, 걱정하고 관찰하는 남편과 그런 걱정이 미안하고 또 미운 아내를 지나 결국 남편은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는 아내의 목숨을 거둡니다.

 

집안에 남겨진 비둘기를 붙잡고 쓰다듬는 순간의 '조르쥬'의 심정이라는 건 지금 나이의 저따위가 감히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죠. 마지막 순간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집을 떠나는 부부의 모습은 또래의 감독이 전하는 진심 어린 토닥임입니다.

 

 

 

 

 

 

# 9.

 

감독은 이 모든 것들을 아울러 이름 붙이길 <사랑>이라 합니다. 이때의 <사랑>이란 건 젊은 나이의 불타오르는 사랑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겠죠. 감독이 그리는 이 정서라는 게 과연 무엇인걸까를 밤새도록 어쩌면 수일을 수년을 평생을 고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습니다.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훌륭한 영화 아니 훌륭한 영화라는 말조차 부족할 거장의 명작입니다만, 개인적으로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입니다.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지도 않구요. 이 정서를 받아들이기에 살아온 시간이 이른 사람들에겐 너무 생소한 이야기일 테고 영화를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시간을 건너온 사람들에겐 너무도 잔인한 이야기일 테니까요. 

 

... 감상에 매몰된 조악한 글을 정리하고서 오만가지 생각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차마 생각과 감정을 정리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이번 리뷰의 제목은 없습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 『아무르』 였습니다.

 

Rest in peace. Rest in Amour.

"Emmanuelle Riva" (1927 - 2017)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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