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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철창 안의 새 _ 엘리사와 마르셀라, 이자벨 코이젯트 감독

그냥_ 2021. 4. 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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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사람들은 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녀들을 싫어한 걸까.

그녀들은 대체 왜 그렇게까지 서로를 사랑한 걸까.

 

 

 

 

 

 

 

 

'이자벨 코이젯트' 감독,

『엘리사와 마르셀라 :: Elisa y Marcela』입니다.

 

 

 

 

 

# 1.

 

사랑을 다루고 있음에도 멜로보다는 <드라마>에 더 가까울 영화입니다. '엘리사'와 '마르셀라'의 사랑이 쌓여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긴 합니다만, 그보다는 두 사람이 시대의 폭력을 피해 정착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떠도는 여정과, 그 과정에서의 존재론적 외로움을 더 많이 포착한 작품이기 때문이죠.

 

20세기 초, '다양성의 가치'를 '종교적 미덕'이 폭력적으로 압도하던 시대. 두 주인공이 서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치러야 했던 고통의 시간을 다룹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라는 점입니다. <인정받기 위한 서사>가 아니라는 점이죠. 레즈비언의 사랑을 인정하고 정식 부부로서 제도권에 편입해 달라는 류의 사회적 맥락의 투쟁 서사가 아니라, 필요하다면 모든 걸 내던져도 좋으니 그저 사랑하고 있을 수 있는 좁은 공간만이라도 남겨 달라 부탁하는 인간에 대한 영화입니다.

 

 

 

 

 

 

# 2.

 

'엘리사'가 '마리오'로 분하는 선택은,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진 본연의 인격을 포기했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을 가진 상태에서 사랑도 가지겠노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기해도 좋으니 사랑 하나만 남겨달라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에 대한 비이성적 시대 폭력을 보노라면, 당시 사람들은 무엇이 그토록 미워 (보다 정확히는 두려워) 저렇게까지 그녀들을 박해한 걸까 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죠. 그리고 그에 정확히 비례한 만큼, 그런 정체성의 포기와 잔혹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나누고자 했던 사랑의 깊이에 역으로 감동하게 됩니다.

 

'엘리사'는 도입부 수녀원에서 스쳐 지나듯 "움직이는 것만 믿어."라 말하는데요. 사소할 수도 있지만, 관점에 따라선 영화에서 다루고자 하는 철학적 주제 의식을 엿보게 하는 훌륭한 대사라 할 수 있겠네요.

 

# 3. 

 

작품에는 끊임없이 <철창>이 등장합니다. 때론 방범창의 모습으로, 때론 채의 모습으로, 늘어선 문어 다리의 모습으로, 빼곡하게 줄지은 나무의 모습으로 등장하죠. 두 사람은 수녀원에 있든, 학교에 있든, 어디에 있든 사회적 종교적 규율이라는 통제 안에 갇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철창 안에서 태어난 두 사람이 철창을 탈출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 4.

 

아이러니 한 점은, 두 사람이 유일하게 자유로움을 느끼는 공간이 철창 안이라는 점입니다. 두 사람이 가장 처절하게 사랑하고 치열하게 다투고 소리 내 펑펑 울고 누군가에게 위로받는 유일한 공간이 감옥이라는 점은, 역설적인 비극을 자아냅니다.

 

"원한다면 딸과 감옥에 남아도 좋다." 말하는 '엘리사'의 제안을, 편리한 은유가 아닌 합리적 판단으로 설득할 수 있느냐는 장르적인 측면에서 작품의 성패를 결정할 핵심적 포인트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텐데요. 감독은, 이 여정을 성공적으로 그려냅니다.

 

 

 

 

 

 

# 5.

 

드라마적 서사와 별개로, 어쨌든 사랑을 다루는 영화답게 상당히 아름다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흑백의 화면을 수놓는 기하학적 구도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강한 비극성과, 플래시백의 효과, 실화의 성격을 강화하는 높은 현실감을 더합니다. 쏟아져 내리는 비와 같은 <물>을 반복적으로 활용해 각 시퀀스마다의 사랑의 성격에 대입해 구체화하는 것 역시 심미적이면서 문학적인 묘사라 할 수 있겠죠. 해당 메타포는 '엘리사'가 '마리오'가 되는 순간, 다른 색의 우산을 쓰고 함께 비를 맞는 뒷모습에서의 강한 인상으로 보상받게 됩니다.

 

그 외에 소소하게 <말>이나 <점> 같은 요소들 역시 단순히 서사 안에서 기능하는 것 이상의, 주제의식과 연결된 메타포로서 역할합니다. 밀도가 높은 영화라는 뜻이죠.

 

# 6. 

 

개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점은 흑백영화라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음영 대조가 대단히 강조되어 있다는 점일 겁니다. 긍-부정을 막론하고 시퀀스를 지배하는 사람에게 강하게 떨어지는 <빛>과, 디테일을 날려버릴 정도로 강하게 떨어지는 통제의 <그림자>가 해당 장면의 성격을 극적이게 만듭니다. 덕분에 영화는 비극적 여정을 육중하게 짓누르는 짙은 비장미와 종교적 - 제의적 이미지를 함께 얻을 수 있었네요.

 

 

 

 

 

 

# 7.

 

메시지를 위해 실존 인물의 서사를 손쉽게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 역시 좋습니다. 사건으로도, 표현으로도 말이죠.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멜로보다는 드라마에 더 가까울 수밖에 없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정서적 발전과정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사랑을 확인하자마자 헤어지게 된 두 주인공이 주고받는 사랑의 편지를 표현하는 방식의 서정성은, 해당 씬의 도전적인 표현법과 별개로, 이전까지 충실하게 정서적 과정을 쌓아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죠. 물리적 '욕망'보다 '사랑'의 갈증을 해갈하는 장면으로 읽힐 수 있었던, 배드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 8. 

 

결과적으로 아이를 남기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마르셀라'의 선택에 대한 도덕적 합리화를 통제하는 것 또한 좋습니다. 딸 '아나'가 '마르셀라'를 찾아가는 순간의 플래시백으로 작품 전체를 감싸 안아 둔 구성은, 그녀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담담히 인정하면서 시대 속에서의 인물의 비극을 가치중립적으로 목격하게 하는 효과적 연출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엄마를 변호하기 위해 딸 '해원'을 동원해 비겁하게 면죄부를 줬던 것과는 대조된, 담담히 원망을 듣는 예의 바른 서사라 할 수 있겠죠.

 

 

 

 

 

 

# 9.

 

굳이 옥에 티를 꼽아야 한다면, 두 주인공간의 균형이 무너져 있다는 점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영화의 제목은 '엘리사'와 '마르셀라'이지만, 영화는 '마르셀라'의 시선과 정서에 치우쳐 전개됩니다. 화자를 선명히 함으로써 작품의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한 선택으로 이해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남자 행세를 해야 했던 '엘리사'의 멘탈리티 역시 놓치고 지나가 버리기엔 아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군요.

 

첫 베드신 이후에 문어를 들쳐 매는 장면이랑, 미역인지 뭔지를 시꺼먼 것들을 둘러 매고 우유 부어 마시는 장면 등은 좀 뇌절 같아 보이긴 합니다. 뭘 의미하는 지는 어렴풋이 알겠습니다만, 그래도 메타포는 은은할 때 매력적인 법일 텐데요. 몇몇 포인트들에서 감독이 자신의 문학적 표현에 심취한 듯한 인상이 삐져나와 보인 달까요.

 

 

 

 

 

 

# 10.

 

그럼에도 종합적으론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사실상 영화 중반부 즈음해서 이후 서사의 방향이 공개되어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이야기를 즐기기에는 썩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진중한 드라마 안에서 때론 치열하게 때론 섬세하게 살아가는 인물의 정서를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을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올라가는 스탭 롤과 함께 곱씹어보게 되는 두 질문의 뒷맛이 일품입니다. 사람들은 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녀들을 싫어한 걸까요. 어떻게 그녀들은 모든 걸 포기하면서까지, 학대를 받으면서까지 그렇게나 깊이 서로를 사랑한 걸까요. '이자벨 코이젯트' 감독, <엘리사와 마르셀라>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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