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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nimation

이런 위로도 있다 _ 내 몸이 사라졌다, 제레미 클레팡 감독

그냥_ 2019. 12.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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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그로테스크한 표현과 육중하게 침전되는 감각, 독특한 상상력과 따뜻한 주제의식이 인상적입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소년 '나오펠'의 곤궁하고 허무한 삶의 여정, 해부학실을 탈출한 '손'의 위태롭고 불안한 모험이 분리된 서사의 물리적 결합을 넘어 적극적으로 정서를 주고받는 화학적 결합에 다다릅니다.

 

직접적이고 말초적인 불쾌감과 사회적이고 관계적인 불쾌감을 교차적으로 매칭 하는 방식이 효과입니다. 비 내리는 저녁의 피자배달, 나무로 만든 옥상의 이글루, 돌고 돌아 몸 옆에 자리하는 손, 차갑고 위태롭게 서있는 타워 크레인의 모습들 마다마다 서정성이 상당합니다.

 

 

 

 

 

 

 

 

'제레미 클레팡' 감독,

『내 몸이 사라졌다 :: J'ai perdu mon corps』 입니다.

 

 

 

 

 

# 1.

 

'나오펠'의 삶은 보통의 드라마들처럼 서사적이고 관계중심적입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하지만 교통사고로 인해 부모를 잃고 방황하는 고립된 영혼입니다. 덩그러니 내버려진 현실 앞에 어릴 적 꿈꾸던 피아니스트와 우주비행사는 잊혀진 지 오래입니다. 고달픈 하루살이에 보다 소박한 것들, 사소한 것들이라도 쥐어보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손 속은 언제나 비어있죠.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된 여자 '가브리엘'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그가 느낀 사랑이라는 것이 그저 여자였는지, 가브리엘이라는 사람이었는지, 비 오는 밤의 대화였는지, 대화 속에 담긴 무언가 였는지는 모호할 따름입니다. 나오펠은 가브리엘의 사랑을 쥐어보려 하지만 운명은 되려 그의 손을 가져가 버립니다. 바닥보다 더 깊은 어딘가로 떨어져 버린 나오펠은 결국 이글루가 있는 옥상으로 향합니다.

 

 

 

 

 

 

# 2.

 

'손'의 여정은 물리적이고 독립적입니다.

 

감독은 과격하고 과감한 판타지를 액션 어드벤처의 방식으로 풀어놓습니다. 절단면이 선명한 손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양새가 마치 큰 거미가 기어 다니는 것마냥 위화감을 줍니다. 목적을 알 수 없는 손의 여정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동안의 위태로움과, 썩은 깡통과 쥐들이 핥는 불쾌함과, 굉음을 내며 내달리는 지하철의 위험함과, 눈먼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는 허무함과,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목욕물의 처연함을 거쳐 사라져 버린 몸 앞에 도착합니다. '손'의 여정은 '나오펠'의 그것만큼이나 불안하고 위태롭지만 대신 훨씬 역동적이고 자유롭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가족'이라는 집단에서 탈락한 '나오펠'과, '나오펠'이라는 집단에서 탈락한 '손'이 영화 내내 병렬적으로 조응합니다. 가족을 잃고 원래 꿈꾸던 삶의 궤도를 벗어나버리게 된 '나오펠'과 기계에 휘말려 절단된 '손'은 외부의 파괴적 충격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나오펠'은 평화롭고 희망적인 가족에서 벗어난 공허함과 무기력함을 상징한다면, '손'은 공허함과 무기력함에 숨어 있던 희망을 상징한다는 측면에서 대조적이기도 합니다.

 

 

 

 

 

# 3.

 

쥘 수 없던 무언가를 쥐려 하던 나오펠의 손은 몸에서 떨어져 나온 이후에야 비로소 무수히 많은 것들을 움켜쥐는 데 성공합니다. 사라짐의 대상이 손이 아니라 몸이라는 것 역시 의미심장합니다. 감독에게 있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대상은 '나오펠'이 아니라 '손'입니다. 영화의 주제의식은 '나오펠'의 드라마가 아니라, '손'의 어드벤처에 담겨 있습니다.

 

'나오펠'은 결국, 추운 겨울로부터 안식처가 되어주길 바랬던 '가브리엘'이란 이름의 이글루와, 과거에 발 묶이게 하는 녹음기를 벗어던지고 어릴 적 꿈꾸던 소년 '나오펠'로 돌아가 건물에서 타워 크레인을 향해 날아오릅니다. '몸'이 '손'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죠. '손'이 사라졌던 '몸'을 찾았다는 것은, '나오펠' 역시 교통사고로 인해 사라졌던 무언가를 찾는 데 성공했음을 의미합니다.

 

 

 

 

 

 

# 4.

 

각기 다른 독특한 은유와 표현의 두 서사를 동시에 따라가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왼쪽 눈과 오른쪽 눈으로 번갈아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달까요. 미스터리 드라마와 SF 판타지에 발을 걸치고 있는 유니크한 서사에 담긴 정서와 메시지가 상황에 동떨어진 관객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범주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은 이 영화의 완성도가 결코 나쁘지 않음을 의미할 겁니다.

 

다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미지들과 과격한 묘사가 관람을 불편하게 하기도 합니다. 다만 그것이 관객을 쓸데없이 피곤하게 만들 만큼 복잡하게 꼬여있지는 않다는 건 다행스러운 부분입니다. 소름 돋는 표현들과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방법론과 창조적 상상력이 빚어낸 작품의 매력이, 삶의 이유와 관계를 되짚게 만드는 철학적 고찰을 넘어 인본주의적 위로에까지 넉넉하게 닿는군요. 그래요. 가끔은 추운 겨울 포근한 집안의 벽난로보다, 한겨울 홀로 맞는 처연한 눈발이 더 큰 위로가 되기도 하는 법이죠. '제레미 클레팡' 감독, <내 몸이 사라졌다>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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